'서지월시인과 함께 하는 시낭송회의', 서지월 시작품 특집

[서울=동북아신문]서지월 시인은 향토적이며 전통적인 토속정서를 가장 잘 살려내는 향토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고, 한국문단에서는 한국 정서를 가장 서정적인 가락으로 잘 살려내고 있는 리리시즘 서정시인으로, 중국 만주땅에서는 웅혼한 한민족의 역사를 가장 장엄한 톤으로 노래해 온 민족시인으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  

최근(9월 22일) 대구광역시립두류도서관 주최, 달구벌시낭송협회(회장 오순찬) 주관으로 서지월시인을 초대해 그의 등단 30년의 올곧은 삶과 문학에 대한 감회를 들어보는 시간과 시세계를 시낭송 전문가들의 낭송으로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에 본지는 '서정시'에 대한 서지월 시인의 생각과 그의 작품을 실어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편집자  

      나의 抒情詩

         서지월

열대여섯 살 무렵부터 나는 열심히 서정시를 써왔습니다. 꽃과 나비, 새들의 하모니며 저녁마다 우러르던 바알간 노을빛에 그리움 같은 걸 묻어두며 누이의 화안한 미소에까지 나의 서정시는 번져갔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시는 곱다는 것으로, 크레용을 가지고 좋아하는 계통의 색깔을 골라 도화지 위에 박박 그려내는 그런 그림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해에는 비가 많이 내렸고 태양에 흑점이 많이 생긴 해로서는 농작물 피해 뿐만 아니라 눈이 산더미같이 와 억수로 추운 겨울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잔칫날 파장처럼 술렁거리며 저마다 생활의 짐을 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변소에 가 앉아 똥을 누면서 생각하듯 서정시는 계속 써 온 것입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의 그 휴식의 표정을 보고 삶의 한순간이 애처로웁듯 초췌하다는 것을 밥을 먹으면서 힐끔힐끔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내가 그리던 사랑나무의 핑크빛 사랑열매도 저문 강언덕 위로 낙하할 즈음, 나는 세상을 근심처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사물의 형상이라는 게 어두운 쪽은 잘 보이지 않듯이 용케 명암을 따지는 세상을 맞게 되었고 혓바닥 내민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숨 가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버릇은 서정시를 쓰는 그것만은 휙 뿌리쳐버리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베에토벤의 심포니가 더욱 강렬하게 뇌리를 때리었고 나자빠진 영혼처럼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흰 백합화를 흔들며 지나가던 소녀꽃장수마저 거리에서 사라져버린지 오래 바람도 집 잃어 우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내가 그만한 무지개 색깔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형편이라서 늘 눈물나고, 어릴 때는 노란 은행잎 주워 세면 마냥 즐겁기만 하여 더 가질려고 떼를 써 줍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신 다른 것에 눈을 흘리는 정황이 되었으니 때가 묻고 구성이 잘 되질 않았습니다. 비오는 날의 장단같은 것이 어딘가 맞지 않는 슬픔 느끼고 저무는 처마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정녕코 오늘에 와서 이제껏 꽃이나 별이나 사물에서 보던 나의 서정시가 도시를 꽉 메운 빌딩 속 어딘가에 숨어, 눈 딱 감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하고 몇 번을 외쳐 봐도 눈 떠보면 흰 구름 한 송이 피어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나의 서정시는 바람 구르는 새벽풀밭 잃고 새들이 날아와 야영할 숲마저 잃어버린 채, 세상의 마지막 광장 쪽으로 우리가 쓸쓸히 발맞추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서지월시인 시특선]     꽃잎이여  한 세상 살아가는 법 그대는 아는가.  물빛, 참회가 이룩한 몇 소절의 바람 옷가지 두고 떠나는 법을 아는가.  눈물도 황혼도 홑이불처럼 걷어내고 갓난아기의 손톱 같은 아침이 오면 우린 또 만나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꽃이 피는 것과 소유하는 일이 서로 반반씩 즐거움으로 비치고 있는 그 뒤의 일을 우린 통 모르고 지내노니     내 사랑   길을 가다가도 문득 하늘을 보다가도 문득 지금은 안 보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하늘아래 꽃잎 접고 우두커니 서 있는 꽃나무처럼 그리움은 해지는 산능선 노을로 앉아있지만  밥을 먹다가도 문득 물 마시다가도 문득 안 보면 그뿐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길을 가다가도 문득 하늘을 보다가도 문득 지금은 안 보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하늘아래 꽃잎 접고 우두커니 서 있는 꽃나무처럼 그리움은 창가에 이즈러진 조각달로 떠 있지만  누워 있다가도 문득 눈감았다가도 문득 안 보면 그뿐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중국에서는 유명한 리하수 작곡가가 작곡하여 연변가수 전예정님이 불러. 연변텔레비죤방송에서 연변애창가요로 매주일가에서 방영.     꽃이 핍니다   우리가 아롱다롱 살아가면서 죄 짓고는 못 산다고 꽃이 핍니다  검은 마음 검은 꽃은 없어도 전생에 노랑저고리였던 개나리 다홍치마였던 진달래꽃에 이어 보랏빛 머리칼이었던 라일락에 이르기까지 산에서 들에서 골목에서 집안에서 피어나는 꽃, 꽃들  저대로는 참한 얼굴들 하고 가릴 것 없이 숨길 것 없이 부귀도 공명도 자존도 엄포도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복되게 살자고 햇빛하고 친구 되고 바람하고 친구 되어 맑은 향기로 술 담그며 푹 젖어옵니다  흐르는 구름 내버려두고 굽이치는 江물 내버려두고 죄 짓고는 못 산다고 죄 짓고는 못 산다고 과욕일랑 바다 멀리 밀어내어버리고 오직 한 마디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열 번을 속삭여도 침 마르지 않는 꽃이 핍니다    깊은 밤에 시를 쓰다   시가 돈이 되는가 밥이 되는가 혼이 되는가 명예가 되는가 시가 사랑이 되고 목숨이 되고 평화가 되는가  그러나 봄철 어김없이 꽃 피듯 시는 저혼자 기어가는 벌레의 생각처럼 시간을 밀어내고 있는 것을  나뭇가지의 잎새들이 바람에게 자신을 내맡기듯 시는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맡긴다  모래사막을 쉬지 않고 걸어와 두 눈 껌벅이는 낙타의 짙은 눈썹 위에 앉은 모래알갱이를 누가 털어낼 수 있을까  걸어온 만큼 또 걸어가야 하는 그의 숙명처럼 깊은 밤 비단길을 수놓는 자 그대는 시인인 것을!   우리가 세상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립다 그립다 하는 것은 진실로 눈물이 아닐 바엔 빈 그릇을 비워둘 뿐이다. 살기가 좀 팍팍하고 캄캄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괜찮다 괜찮다 하는 것은 불어오는 바람을 바람으로 맞으며 거리를 서성이던 어린날의 바람개비 그 튼튼한 날개깃으로 시계바늘을 돌리며 이 시대의 불면을 맛본 탓이러니 꽃이여, 불러도 대답 없는 꽃이여 시방 네 이름을 잊어버릴까 나는 숨가쁘게 달려왔다.    산다는 게 뭐 별 것 있는가 ㅡ흑룡강에 와서     산다는 게 뭐 별것 있는가 강으로 나와 흐르는 물살 바라보든가, 아니면 모여있는 수많은 돌멩이들 제각기의 모습처럼 놓인 대로 근심걱정 없이 물소리에 귀 씻고 살면 되는 것을  산다는 게 뭐 별것 있는가 강 건너 언젠가는 만나도질 사람 그리워 하며 거닐다가 주저앉아 풀꽃으로 피어나면 되는 것을  말은 못해도 몸짓으로 흔들리면 되는 것을 산다는 게 뭐 별것 있는가 혼자이면 어떤가 떠나는 물살 앞에 불어오는 바람이 있는 것을  모습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그 모두가 우리의 분신인 것을 산다는 게 뭐 별것 있는가 하늘 아래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목숨인 것을    흑룡강에서 부르는 노래 ㅡ黑龍江아, 너는 내게    흑룡강아, 너는 내게 무슨 일로 불러 세워 이토록 꼼짝 않게 바라보라 함이런가 눈발이 흩뿌리는 날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채 그저 침묵으로 바라보게 하더니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 가는지 물길 가르쳐주지 않고 이제는 파릇파릇한 풀잎사귀들 그들의 친구인 잔돌들 사이로 내가 왔다고 반기는데 흑룡강아, 흑룡강아 이 강 건너면 러시아땅 저 물새들 날아 꽃잎 하나 물고 오면 그 꽃잎으로 안부 삼아 천년 내 사랑 기다리라 함이런가 해가 뜨면 얼굴 씻고 달이 뜨면 발을 씻고 이대로 여기 머물러 살아라 힘이런가 피리 잘 불던 少年이 공기놀이 잘 하는 小女 만나듯이 흑룡강아, 흑룡강아 오늘은 내가 풀잎 따서 입술에 대고 풀피리나 불며 지낼까 먼 나라에서 흘러오는 구름 벗하며 조약돌 세다가 잠이나 들까    진달래 산천   진달래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 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 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백성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난 듯 큰일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 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산천초목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진달래꽃물 들였었?熾?    강물과 빨랫줄   오늘도 어머니는 강물을 훔쳐 와 한 자락씩 줄에 너신다. 누런 호박오랭이 썰어 말리듯이 햇빛은 항시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것이지만 얼굴 없는 바람은 부뚜막 위에서 불고 장독대를 넘어와 어머니의 허이여신 머리칼 위에도 분다. 하늘과 땅 그 크낙한 화해를 위해 세상의 이쪽과 저쪽의 분별을 위해 두 귀 바지랑대는 생명의 줄을 튼튼히 받치고 있다. 천년풍우 그 어느날에도 우리의 제기(祭器), 제기(祭器) 같은 것. 먼 산 그리메 숱한 메밀밭 위으로 낮달이 조을고 젖은 빨래의 그 휴식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파란 하늘은 아득히 멀고 나는 왠지 눈물이 핑 돈다.    미소    가진 것 하나 없는 우리들에게 꽃은 피어 늘 교태로운 이 꽃의 말씀을 바람은, 남루한 치맛자락에 싣고 우리들은 살점 위에 혹은 꽃가루에 묻어 온 혼령 위에 와 그 몸짓 그대로 교태 부리는 것 또 보고보고 있으며 당신과 나의 데이트 시간도 냉수에 아른히 비치는 낮달이듯이, 우리가 그저 불평 없이 지내이는 것도 그처럼 묻어오는 당신의 훈훈한 살점이, 한 잎의 꽃이 되어 낮달이 되어 새 맑은 얼굴로 오는 그 바람 속이 아닐까, 피는 꽃잎을 바라보듯 언제나 그처럼 살고 싶어라.    나비야 靑山 가자   북망이라도 금잔디 기름진데 나비야 청산가자.  울아버지 흰 띠 매고 압록강 건너고 울엄마 초승달같이 쓰러져 울던 저녁 우리 누나 새하얀 박꽃같이 피어서 독립만세 부르다 숨진 곳, 나비야 청산가자.  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해도 오천년 피강물 놋낱으로 굽어보고 잠든 말발굽소리 천변의 돌멩이 산천도 내것 초목도 나의 것 곱고 고운 나래 나비야 청산가자.  피피새 우는 오리목 모밀밭에 나래 접고 북녘땅 내려다보면 눈물 왈칵 쏟아지고 남쪽하늘 바라보면 강남제비 온다야 어느 날 우리 아침상 받아 허기진 배  채울지 몰라도 눈물겨운 한때 가슴에 못박히우던 저 멍든 세월의 풀잎하늘,  나비야 청산가자 가서는 곱게 물든 편지 한 장 빵 한 조각 없어도 산천은 다 우리 것 초목은 다 우리의 것.   해란강은 흐른다   말이 없어 입 다물고 입이 없어 말 못하는가 접시 위에 놓인 세월의 뿔뿔이 흩어져 숨진 돌멩이 오늘도 강 언덕 내달리던 말발굽 소리 들리건만 해란강 너는 그늘진 시대의 수심 깊은 골짜기 타고 내려 사슴처럼 긴 육신으로 누웠구나. 피의 산맥 뜯긴 살점의 아파도 말 못하던 그날의 조국은 싸늘한 너의 얼굴 할퀴고 너는 묵묵히 때론 빈집 홀로 남은 아이와 같이 울어도 몇 됫박의 눈물 더하였겠는가. 벌판을 떠나는 저 기러기 떼의 군단 휘어진 날개편에 조국의 사직 실어보지만 그건 까마득한 찬공(天空)의 해일, 마주보는 산언덕 강허리 끊긴 길 위엔 우거진 잡초들의 낮은 음성 뿐 들리느냐 백두산 천지의 물소리가 부르느냐 일송정(一松亭) 푸른 솔의 바람소리를.    낙동강은 말이 없다    밤이 오기까지 꽃들은 말없이 피었다가 지고 먼 숲의 바람소리 흩어졌다 모이는 강 안에서 물살 가르며 날으는 철새떼처럼 우리는 저마다 하나씩의 비릿한 꿈을 안고 강을 떠나고 있다.  목발을 짚고 돌아선 쓸쓸한 총칼 뒤로 한때 피의 노을이 흐르고 지금은 초롱초롱 눈 맑은 별들마저 하늘에서 눈물짓는 밤 사슴같이 목이 긴 사람들과 질경이같이 질긴 목숨의 이 강에 우리는 목축이고 피리 불었건만 어찌하여 강은 썩어만 가는가.  선량한 인간의 마을로 흘러와서 우리의 쌀이 되고 젖줄이 되고 천년 하늘은 강둑을 따라 구비쳐 푸르렀건만 잔혹한 문명의 이기에 지배당한 포로처럼 젖은 이마의 식은 땀 훔쳐내고 그 이마와 가슴과 허리에 죽음의 붕대를 감고서 오늘도 마른 휘파람 굴리며 낮게 낮게 신음하고 있는가.  너와 더불어 살던 흰 옷의 물새와 따뜻한 입김의 풀꽃은 이내 피었다가 지고 달디 단 바람과 꽃과 별은 쓰디 쓴 입맛처럼 울고 있다.  죽은 물새들의 날개죽지 상한 지느러미의 은어떼 신이 쓰다버린 비밀봉지 빈 깡통 시궁창의 쇳물...... 둥둥 떠서 흐르고 강은 썩어 어디로 가 몸 눕히고 다리 뻗는가.  인제는 썩는 물이 밭고랑 너머 목 쉰 음성으로 식탁에 오르고 화병의 꽃들도 시들어버리는 시간 피곤한 육신은 접힌 우산처럼 버려지나 인간의 마을에서는 젖먹이 아기도 목이 가려워 칭얼칭얼 깨어서 운다.    吉林의 노래   어찌된 것이냐 한줌 흙 풀 한 포기 구르는 돌멩이마저 말 없으니 여기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땅 아니더냐 벌판을 휘둘러 온 저 바람마저도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그냥 불고 간다 어찌된 것이냐 강과 언덕아 나무들아 분명 이 곳은 낯선 땅 아닌데 저 廣開土大王 말발굽 이곳에까지 닿아 북녘 향해 북소리 울렸다 하는데 어찌된 것이냐 그 옛날 柳花夫人과 朱蒙이 살았다는데 활 잘 쏘는 주몽의 화살은 어디 가고 물 긷던 동네 아주머니들 물항아리는 어디에서 쉬고 있는가 송화강 물 길어 저녁밥 지으면 지붕위론 새하얀 박꽃 피던 시간마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아 이리도 내 마음 답답해져 오는 것은 저 강줄기 휘돌아 흘러 벌판을 향해 함께 흐르지 못하기 때문인가  *주몽이 태어나서 어머니 유화부인과 22세까지 살았다는 옛 동부여 도읍지.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달 뜨는 마을을 달려와 내가 먼저 손 내밀면 너는 수줍어 은쟁반같은 얼굴로 나뭇가지 뒤에 숨어버리고 너와 나의 살을 건드리는 남풍의 하늘은 속절없이 빤히 내려다 보고만 있으니  바둑이는 어디 갔느냐 엄마따라 방앗간에 밀 빻으러 갔는가. 내 어릴적 검정고무신의 피라미떼들은 큰 강물따라 흘러갔는가.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타는 아지랑이 풀밭에 주저앉아 삐삐 뽑으며 숨찬 나를 불러내어 이 언덕 위에 세워놓고서 저만치 눈웃음 흘리며 사라진 세월....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남풍도 선머슴애처럼 보채고 있으니 휘드러진 꽃가지도 손 내밀고 있으니    왜 수레바퀴는 굴러가서는 돌아오지 않는가    왜 수레바퀴는 굴러가서는 돌아오지 않는가 한참을 생각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두 송이의 꽃과 두 개의 찻잔을 마주하고 내다보는 창밖 눈은 내리고 기별 없이 눈 내리는 소리  지금 어디메쯤 언 땅을 딛고 내 마음 천년 수레바퀴는 포로의 강을 지나 어느 잡목숲을 굴러가고 있는가  비운 찻잔을 놓고 마주앉은 사람의 눈을 들여다 본다 바람이 분다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라지만 난로가 없고 저 유리문이 없다면 들짐승과 다름없다는 생각에 왜 굴러간 수레바퀴는 시간의 기름을 치고 돌아오지 않는지  옷깃을 세우고 우리가 일어날 즈음 눈은 멎고 깜깜한 하늘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두 힘의 수레바퀴는 지금 한짐 가득 눈뭉치를 싣고 더욱 미끄럽게 미끄럽게 이 세상 끝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도 그처럼 가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듯 미끄러운 유리문을 밀고 나왔다.    슬픈 밤이 오거든    슬픈 밤이 오거든 그대여 창을 열고 별을 보라 나는 거기 지상의 괴로운 꽃으로 피었다가 하늘의 별 되어 울고 있으리니 그대가 만약 창을 닫고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명상에 잠기신다면 나는 나는 별 사닥다리 타고 내려와 그대 창가 부서지는 이슬 되리니 밤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가슴과 같은 것 실로 우리가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지지 못할 때 그대는 지상에서 나는 하늘에서 하염없는 눈물 흘리리    달구벌의 노래   오천년 유구한 역사 이어온 반도 삼천리 낙동강 구비따라 줄기차게 흘러와 기름지고 햇빛 맑아 살기 좋은 땅, 달구벌 이루었네  달성공원에는 대구의 선비정신 지켜온 서침나무가 무성한 잎을 달아 시민들 쉬어가는 터전 이루고 국채보상공원에 울려퍼지는 달구벌 대종소리는 250만 대구시민의 심장이 되어 뛰고 있는 맥박처럼 울려퍼지네  영남루 누각 위에 싱싱한 아침 해는 떠올라 새벽 닭 울음소리 금호강을 깨우고 팔공산과 비슬산은 ?윱㈏慊낮?서로 마주보며 달구벌을 한몸에 알싸안고서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나,..... 신명난 어깨춤 더덩실 추고  오늘 우리가 저 광활한 만주벌판을 지나와서 뻗어내린 반도의 기름진 땅 달구벌에서 웅혼한 기상 한몸에 받아 아리아리 아리랑 숨찬 아리랑 고개 잘도 넘어와 달구벌 터전 위에 민족의 번영 이루었네    서지월시인 프로필  • 1955년 가창에서 태어 남. • 1985년, 제2회「전국교원학예술상」문예부문에 시 <꽃잎이여>로 大賞에 당선, 문교부장관상 수상. • 1985년,『심상』신인상 및『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시 <朝鮮의 눈발> 당선. • 1993년,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 2002년,중국「長白山文學賞」수상. • 중앙일보「한국을 움직인 인물들」,조선일보「국내 주요인사 인물정보 BD」,문화일보「문화예술인 BD」,연합뉴스「한국 주요인물」에 선정됨. • 국제펜클럽·한국문인협회·한국시인협회 회원(중앙위원)· 한국아동문학인협회·한국동시문학회 ·아동문예작가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외국문학분과위원장 및 대구시인협회 회원. <낭만시> 동인으로 활동. • 현재,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공동의장.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시집,『가난한 꽃』(1993, 대구시인협회상 수상시집), 『백도라지 꽃의 노래』(<白桔梗花之歌>, (중국 '장백산문학상' 수상시집),『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천년의 시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시집 선정) 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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