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감성' 신인문학상 수상작

계간문예지 '문예감성'에서 수필 신인문학상을 받고 한국문단에 등단한 남태일 수필가(오른쪽으로부터 네번째)
[서울=동북아신문] 아래 글은 남태일 수필가의 수필인데 '문예감성'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다. 그의 수필은 꾸임없이 소박하고 진솔한 표달이 백미이다.  가슴을 흔드는 것은 진실을 담은 글에서 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편집자  

우리는 좁고 침침한 주택을 떠나 수도권의 넓고 전망 좋은 새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수도권으로 이사를 하니 서울에서 공부하는 딸 지영이가 제일 좋아했다. 딸은 물건이 조금만 낡아도 모두 버린다. 버려진 물건 속에서 유난히 눈을 끄는 것이 있었다. 앞뒤가 뭉텅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구두이다. 나는 그 구두를 품에 꼭 안으며 버럭 화를 냈다.

“야 ,지영아! 너 이거 왜 버렸어!”

지영이는 벼락같은 호통 소리에 두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왜 화를 내세요. 그 헌 구두를 새 집으로 가져가시려고요?”

“그래, 이 구두만은 내가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다.”

나는 헌 구두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지나간 쓰디쓴 추억과 사무치는 감회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50여 년 전 일이다. 아버지는 장손이었던 형을 각별히 챙기셨다. 부모님과 우리 6남매는 한적한 시골에 살 때, 남자 형제는 나보다 두 살 위인 형뿐이었다. 설날이 다가오면 아버지께서는 형님에게 새 신발을 사주시고 나는 달랑 양발 한 켤레만 안겨준다. 형님이 발이 커서 신발이 작으면 형의 신발은 늘 내 차례가 되곤 했다. 그나마 형은 워낙 깔끔하여 나에게 돌아올 때도 늘 멀쩡했다. 새 신발을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나는 속으로 아버지를 몹시 원망하고 미워하기까지 했다.

그해에도 기대하던 설날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으례 형님에게 새 신발을 사주셨다. 그때 새 신발을 너무나 신고 싶었던 나는 그 간절함이 가슴에 사무친 나무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꼭 새 신발을 신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형님의 새 신발을 몰래 훔쳐서 옆집 영수네 집으로 갔다. 친구들 앞에서 나는 신나게 뽐내면서 자랑했다.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함 그 자체였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발을 우리 집 나무더미에 깊숙이 숨겨두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며칠 후 철없는 영수 동생이 불장난을 하다가 그 나무 더미에 불이 붙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불은 바람 따라 삽시간에 우리 집 나무더미로 옮겨 붙었다. 아버지, 형님, 동네사람들 모두가 소리치고 물 뿌리며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다급해진 나는 신발을 찾으러 그 불길 속에 뛰어 들었지만 신발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타버리고 난 뒤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내 바지를 걷어 올리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벌겋게 붓도록 후려쳤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나는 중학생이 됐다. 우리 집 형편은 어려웠지만 우등상을 놓치지 않는 나의 우수한 성적을 보고 아버지는 형과 큰 누나의 학업을 중단 시켰다. 형은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하고 큰 누나는 도시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빵집에서 일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형과, 누나께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보란 듯이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간절히 바라던 큰 도시의 대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우리 집은 물론이고 온 동네 사람들의 경사였다. 동네 사람들 축하해주러 우리 집에 오고 아버지는 감격에 넘쳐 마을 잔치를 벌였다. 아마도 아버지에게는 그때가 당신의 일생에서 제일 행복하신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는 그 날 처음으로 나에게 구두 한 켤레를 사주셨다.

“둘째야! 너 아버지 많이 원망했지? 아버지도 여태 새 신발을 신어보지 못했다.”

사실 나 역시도 그때까지 아버지의 신발에 신경 써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신발을 내려다보니 다닥다닥 기운 신발은 바로 내가 신다가 버린 헌 운동화였다. 순간 나는 너무 미안하여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려 했지만 끝내 흘리고 말았다. 깊이 팬 아버지의 눈가에서도 어느새 눈물이 주름살을 타고 떨어졌다. 아버지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 품속에 안겨보았다 .아버지의 품속은 젖 냄새나고 안온한 어머니 품과는 달랐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는 싱그러운 흙냄새와 누렇게 익은 곡식낟알의 구수한 향, 그리고 빨갛게 익은 과수원의 달콤한 냄새였다.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버지가 사 주신 새 구두를 나는 도저히 신고 다닐 용기가 나질 안았다. 앞뒤가 뭉텅하고 모양이 없어 너무 촌스러웠다. 철없는 나는 도시에 일하는 누님을 졸라 새 구두를 샀고, 학교 다닐 때에는 누님이 사준 새 구두를 신고 방학 때 집에 갈 때만 아버지가 사준 구두를 신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어느 시골에 가서도 볼 수 없는 구두이어서, 그저 신발장 한쪽 구석에 보관 해 놓은 것이 바로 이 구두이었다.

나의 대학시절 어머니는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그 충격이 컸는지 앙상한 몸매는 더욱 작아지고 그나마 드문드문 남아 있던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해갔다.

아버지의 건강은 갈수록 점차 나빠졌다.

졸업이 가까워질 무렵, 어느 날 시골 형님으로부터 아버지의 건강이 위급하여 병원에 입원했는데 의사선생님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전보가 날아 왔다.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벌써 늦가을 이였다. 나뭇잎이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한때는 그렇게 푸르고 반짝이던 나뭇잎들도 빨갛게 말라서 길 양쪽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노라니 삶에 대한 쓸쓸함만 더해갔다.

병원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햇볕은 침대에 조용히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아버지는 몹시 야위셨고 몸체도 한결 작아보였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아버지는 눈을 번쩍 뜨셨다. 오래 기다림이 담겨있는 절절한 눈빛이었다.

“둘째가 왔나? 너 공부 안하고 뭘로 왔노?”

“아버지! 보고 싶어왔어요”

마비된 얼굴 근육은 무표정 하였지만 눈가에서는 벌써 이슬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베개를 적시였다.

그날 밤, 아버지는 힘겹게 지고 오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으셨다. 야윈 얼굴이었지만 약간 벌어진 입가에는 흐뭇한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손등의 깊숙한 곳에는 흙이 그대로 있었고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천국으로 가실 때 지참할 이력서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일생은 고생과 끝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다만 아버지는 두메산골에서 나를 도시 대학교로 보낸 것이 가문의 영광으로, 당신의 고생보람으로 생각하고 그 속에서 안위와 행복을 찾았던 것이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기억이 그대로 묻어 있는 그 구두를 물 티슈로 잘 닦은 후 햇빛에 말린 다음 깨끗한 종이로 싸서 내가 항상 즐겨보는 책과 함께 이삿짐을 쌌다. 낡고 모양 없는 구두는 “종이가 없는 책”이었다. 아니 나에게는 “종이가 없는 교과서”였다.

남태일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가, 시민기자,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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