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국화 :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서울=동북아신문]아침부터 출근 준비에 바쁜데 카톡이 줄서서 소리친다. 짜증스럽게 "너희들은 출근 안 하나?" 하며 혼자말로 불평한다. 전 날에 먹고 마신 그릇들을 설겆이 못한 채 산처럼 쌓였다. 피곤 한데 친구들이 밤늦게까지 먹어라 부어라 했다. 이튿날 출근하는 줄 뻔히 알면서 돌아가지 않으니 말 할 수도 없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매장에서 온 하루 바지를 입혀 보았다, 벗겨 보았다, 했더니 스트레스가 쌓여 힘이 싹 바졌다. 아침부터 짜증내니 온 하루 일이 잘 되지 않는다. 손님들 바지를 입어만 보고 사지 않고 떠나 간다. 사지도 않고 값만 잔뜩 내려놓고, 다른 매장에서 산 바지를 착각 하고 들고 와서 어디가 잘못됐다고 바꿔 달라고 한다. 짜증을 내니 짜증 날 일만 생기고 스트레스만 쌓인다. 울고 싶다, 그런데 울 수는 없다. 울면 손님들이 다 도망 갈 것이니깐.  거울에 얼굴을 비쳐 본다. 꼴 보기 좋네, 괴물 같이 웃는다. 그만 콧물이 펄쩍, 괜히 혼자 화를 낸 것이다. 그러니 짜증 난 일만 생기지, 얼굴을 바꾸어 거울을 본다. 환 하게 웃으니 되게 예뻤다, 이렇게 예쁜 얼굴을 찌그려 괴물이 될 턱이 무엇인가. 결국은 마음을 바꾸어 생각 해 본다.  카톡이 줄 서서 소리 친건 친구가 많다는 뜻이 아닌가. 설겆이가 많이 쌓였다는 것은 이웃동료들이 많이 모여 즐겁게 먹고 놀았다는 뜻이 아닌가. 온 하루 매장에서 손님에게 바지를 입혔다, 벗겼다 한 것은 장사가 잘 되어 돈을 많이 벌 징조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 하니 기분이 좋아 졌다.  매번 스트레스가 생기면 이기지도 못하면서 고집만 세운다. 짜증만 내다 결국 마음을 바꾸어 생각 해 본다. 감사하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감사함을 배우는 길 밖에 없는 것 같다.  감사하면 감사가 일 하는 것이다. 감사가 없으면 방황하게 되고 마음이 병들게 된다. 약한 사람은 건강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감사한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의 중요성을 모르기에 감사 하지 않는다. 병에 걸리고 보면 감사가 없다. 암은 스트레스에서 온다. 감사 약이 좋은 세포를 생성한다, 사람의 몸에는 두 가지 세포가 산다. 좋은 세포와 나쁜 세포. 좋은 세포는 나쁜 세포를 잡아먹고 나쁜 세포는 좋은 세포를 잡아먹는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기 마련이다. 암은 손톱, 발톱, 머리카락처럼 빨리 자란다. 암을 정복하려면 몸에 좋은 세포가 많이 자라게 해야 한다. 좋은 세포가 많이 자라게 하려면 감사가 많아야 할 것이다.  감사가 나오지 않을 때는 부모님을 생각해 본다. 내가 어렸을 때 머리 숱이 엄청 많았었다. 많은 머리숱 때문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숱이 적은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남들이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좋은가, 하면 나는 좋기는 뭐가 좋아요, 쓸데없이 샴푸만 많이 쓴다고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자주 참빗(이 파내는 빗)으로 내 머리를 빗어 이를 파 내 주었다. 숱이 많으니 건사하기 힘들어 이가 자주 생겼다. 어머니는 짜증나 내 머리를 쪼아놓았다. 아파도 울지 못하고 참는다, 그때는 되게 억울했다. 내가 뭐 이를 만들어 내는가. 이가 자라서 그렇지, 그 때는 사람 몸에 이가 많이 생겼다. 옷에 이 약을 발라 놓아도 쓸데없었다. 겨울에는 옷을 밖에 내다 놓아 이를 얼궈 죽이고 여름에는 끓는 가마에 시루를 놓고 옷을 쪄 이를 죽이기도 했다. 그 때는 이가 더럽고 불편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가 몸에 있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 그 때 옷은 다 면으로 되어 사람 몸에 좋았다. 그 때는 가난해서 속옷을 자주 갈아입지 못 해서 이가 많이 생긴다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이 먹는 것도 화학품이 적게 들어 간 친환경이기에 몸에 이물질이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머니가 참빗으로 머리를 쪼아놓아 아팠지만 지금 바꾸어 생각해 보면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머리카락까지 세시며 사랑하시는 것이다. 내 머리 숱이 좀만 더 적었으면 어머니를 좀 더 편하게 하실 수 있었겠는데, 하는 생각뿐이다. 손톱, 발톱도 깎아 주시며 사랑 하셨다. 지금 머리숱은 많이 빠져 어렸을 때 절반 밖에 안 된다. 그래도 숱이 적은 편은 아니다, 이발관에 머리 깎으러 가면 뒤 부분은 숱을 보이지 않게 쳐 버린다. 그런데 앞머리는 예상외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머리 밑이 환이 들여다보이기 시작한다, 정신이 펄쩍 든다, 이게 뭣이람? 그제야 머리숱이 많은 것이 좋은 것이 란걸 느끼게 됐다.  어렸을 때 머리숱이 너무 많아 적어졌으면 했는데, 그래도 대머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대머리를 보면 너무 아니라고 보인다, 돈 많은 부자는 대머리에 머리카락을 심느라 엄청 돈을 많이 쓴다. 대머리 하나를 심는데 30억이 든다는 말도 있다. 대머리가 아닌 사람은 자기 머리숱에 감사해야 한다.  바다는 아무리 많은 물이 몰려 와도 다 받아 품는다. 부모님은 바다 같은 사랑을 지닌다. 물이 포도주로 됨과 같이 감사하라. 포도주는 물보다 진하다. 부모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진한 사랑이다. 농부가 추수할 때에 잘 여문 곡식을 따로 저장 했다가 내년 봄에 수고한 땅에 선물로 드린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다. 공짜가 없다. 내년에 또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 믿는다. 이렇게 믿음을 가지면 감사가 생긴다. 감사가 나오지 않을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라. 불평을 감사로 바꾸어놓고 감사하라. 저주가 없어지고 축복만 들어올 것이다.    수필                         신   내가 육아 도우미로 일하게 되었다. 사모님 쌍둥이를 키우니 아기 하나씩 보는 것이다. 사모님 겉 다르게 한 쪽 새끼발가락이 구멍이 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아기에게 좋은 우유 사 먹이고 이쁜 옷 사 입히면서, 그리고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신사는 데는 인색한 것이다. 그걸 보고 나는 자신 감이 생겼다. 집에 있는 내가 신던 운동화는 사모님 신에 비하면 많이 새것이다. 그저 뒤쪽 안면이 좀 닳았을 뿐이다.  나는 운동화를 가져다 신고 다녔다. 아기를 업고 다닐 때 발이 참 편했다. 누가 선물 해 주었는데 명품 신이었다. 작년 한 해 식당 파출 뛰면서 신었다. 어떤 식당은 일 할 때 신는 신이 없다. 그러면 나는 이 신 신고 일 했다. 비가와도 물이 새지 않으니 명품신인 것이다. 보통 신은 새로 사도 몇 번만 신으면 빗물이 새들어간다. 지금 신 뒤축 안이 닳았어도 밑바닥이 든든해서 비가 새 들어 가지 않는다. 작년 한 해 신고 올 한 해 신고 명년 한 해 문제없는 것이다.  가을이 되니 여름 운동화 씻어 놓았다. 이제는 겨울 신으로 바꾸어 놓아야 했다. 겨울 신이 라야 딸애가 버리는 신을 신는 것이다. 비가 오면 물이 새 들어 간다. 제발 이런 신 신지 말라고 새신 사 줬지만 새신은 놀러 다닐 때 신으려고 모셔 놓고 낡은 신 신고 다닌다. 내가 신을 아끼는 것은 나만의 눈물 나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소학교 1학년에 붙었을 때는 중국의 대식품 시기가 지나가고 문화 대혁명이 한창이었다. 돈이 없어 부업을 좀 하면 자본주의라 하였다. 지금 애들은 학교 가면 매일 엄마한테서 돈을 기지고 가지만 그 때는 주머니에 단 돈 1전도 없었다. 그 때는 여름철에 파란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학교 가나 집에 있으나 매양 파란 고무신 하나만 신고 다녔다. 아이들 모두가 똑 같이 파란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옷은 기운 것이라도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니들 옷을 입고 다녔고 누가 입던 옷을 주어도 좋아 했다. 새옷이나 새신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첫째는 입이었다. 양식고생 하지 않으면 잘 산다고 하였다.  파란 고무신을 사면 이상하게 1년만 신으면 구멍이 났다. 왜 2년 신지 못 하는지 안타까웠다. 나의 고무신은 열 발가락이 다 나왔다. 나는 흰 실을 바늘에 꿰서 신을 기웠다.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 눌러 가면서 기웠다. 지금 같으면 누가 이렇게 기운 신을 신겠는가, 그런데 나는 그 신을 다 깁고 신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때는 사람들이 이렇게 기운 신을 신고 다녀도 상관 하지 않았다. 하루 지나니 열 발가락이 또 나왔다. 나는 또 흰 실을 바늘에 꿰어 신을 기웠다. 하루 지나니 열 발가락이 또 나왔다. 또 흰 실을 바늘에 꿰어 신을 기웠다. 하루 지나니 또 열 발가락이 나왔다. 나는 그만 설음이 터졌다.  집에서 울다가 낡은 운동화를 찾아 신고 학교로 갔다. 학교에 도착하니 첫 수업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애들은 내가 늦었다고 놀려댔다. 선생님은 애들을 웃지 못하게 하고 빨리 제 자리에 들어가서 앉으라고 했다. 며칠 후 어머니가 버들 판 돈으로 파란 고무신 한 컬레를 사 주었다. 부업을 하면 자본주의 길로 나간다고 하지만 돈 때문에 이 부업만 모두 다 하니 막지를 못 했다.  부모님은 버들을 뻬서 껍질을 벗겨 말려서 팔았다. 뜨거운 가마에 시루를 놓고 찌면 껍질이 잘 벗겨진다. 예쁘게 껍질을 벗겨서 비를 맞히지 않고 잘 말려야 한다. 이렇게 정성스레 말린 버들을 팔아서 고무신을 사 주신 것이다.  그런데 며칠 안 되어 고무신 한 짝을 생산대의 배수구에 빠뜨리고 말았다.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건질 수 없었다. 나는 울면서 한 짝만 남은 고무신을 생산대의 건조실에서 담배조리 하는 할머니한테 가지고 가서 홱 던져 버렸다. 며칠 후 어머니가 까꾸래(갈고랑이)를 가지고 신 빠뜨린 곳에 가서 신 한 짝을 건져 내었다. 다행히 배수구라 물살이 세지 않아 그리고 물밑에 나무 가지들이 많이 버려져 있어 신이 걸려 있었다. 며 칠 동안 물속에서 신이 좀 삭았다. 그래도 다시 신게 되어서 너무 좋았었다. 그래서 이제는 신을 신을 때마다 나의 발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발이 따뜻해 난다. 그러니 마음도 따뜻해 난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