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철 시인, 수필가
 [서울=동북아신문]올해 9월 28일. 우리 부부는 논산에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창가에 나란히 앉아 차창 밖을 내다봤다. 아름다운 풍경들이 순식간에 뒤로 도망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스쳐가는 그 풍경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1년이라는 시간을 가늠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1년 후의 재회를 계획한다. 어찌 보면 작별의 섭섭함을 외면하려는 시도일 지도 몰랐다.

항상 젊고 패기 넘치는 삶을 살줄 알았던 지난날의 유치함에 서글픈 웃음을 짓고 있는 지금, 내 머리는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다. 세월은 말 그대로 너무나 무정했다. 이제 1년 후 우리 부부가 상봉할 때면 우리는 서로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저 오렌지 빛으로 재회를 기다리는 이 마음이 왜 그토록서글퍼질까?…꿈은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어마지 않으면서 말이다.

영등포역에서 내려 우리는 공항 리무진을 갈아탔다. 마음은 점점 허전해지고 초조함은 묵직하게 밀려온다. 아내는 여러 가지 당부하느라 입이 쉴 새 없다. "냉동실에 있는 조기 구울 때는 불을 약하게 해야 해요. 계란을 삶을 때는 물이 끓기 시작할 때 한 번 굴려줘야 하구요"하고, 공연히 짐을 여기 옮겼다. 저기 옮겼다 했다. 마음이 허전한가 보다.

우리 부부는 곧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아내의 잔소리에서 해방된다는 마음도 잠시, 나 역시 작별을 실감하면서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 같다. 아내는 5년 동안 갈라져 있던 딸을 만난다는 설렘과 남편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으로 많이 헷갈리고 있었다. 아내는 공연히 화장실에도 몇 번이나 갔다 오곤 했다. 청도 행 티켓으로 바꾸어 쥐고 간편한 짐도 화물로 부쳤다. 모든 출국준비가 끝났다. 우리는 공항대합실에 말없이 앉아있다.

참으로 인간의 離合集散이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 느껴온다. 부부란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헤어져 살면서 그리워하고 금의환향을 기도하면서 지낸 세월이 더 길었던 것 같다. 2000년 10월 9일. 그때에도 지금처럼 나는 아내와 함께 공항 대합실에서 말없이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었다. 고국으로 떠나는 항공편을 기다리며 바래다주러 온 아내와 딸을 보며 나는 금의환향을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던가……. 

드디어 이별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다시 한 번 짐을 챙기고 심사대 쪽으로 향했다. 드디어 아내가 떠난다는 생각에 속이 통째로 텅 빈 것 같이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다 온 몸의 힘이 쭈―욱 빠지는 것 같다 해관 직원이 아내의 손에서 여권과 항공권 티켓을 받아 확인하고는 곧바로 안으로 통과시킨다. 돌아 서서 손을 흔들며 부디 몸조심하라는 말을 하며 심사대를 통과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은 왜 그리 왜소하고 애처로워 보이던지,  나는 가슴이 아파 몸을 움츠렸다. 

아내를 송별하고 돌아오는 길, 인파가 분비는 전철에서도, 영등포역에서도 내 마음은 허허벌판에 홀로 걷는 기분이었다. 아내의 잔소리를 떠나 한 마리의 새가되어 훨훨 날 것 같은 마음은 애초에 어디에 숨어 버렸는지 혼이 빠져버린 몸뚱이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늦은 밤 논산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졸면서도 아내에게 미안했던 일들만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날따라 유별나게 말이다.

근 30년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깨알 쏟아지는 밀월을 만끽하던 시기도 있었고 상대방의 약점만 보이던 위험기도 아슬아슬하게 지나 보내기도 하면서, 이제는 서로가 가여워 상대를 어루만져 주는 상호 연민을 느끼는 시기에, 우리는 또 한해를 갈라져서 살아야 한다. 부부란 서로 엉켜서 때로는 아옹다옹하고 때로는 밀고 당기면서 소소리 높은 자작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한 여름 칡넝쿨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얼기설기 엉켜서 살아온 시간과 갈라져 살아온 시간이 딱 반반이었다. 나는 이것이 운명이라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別離의 1년을 까마아득하게 느끼고 있었다.

늦은 밤이다. 논산행 버스 안에서 나는 억울한 꿈을 꾸었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나를 쌀쌀하게 냉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형제나 친구들도 나를 모르는 척 하며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바람에 억울한 마음에 내내 울컥울컥 했었다. 기사가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놀라 깨어났었다. 아, 이별이란 이렇게 쓸쓸하고 기다림이란 이렇게 막연한 것이구나! 휙 스치는 찬바람에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래도 희망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곧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영철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시낭송협회장. 시, 수필 수십편 발표. 동방문학 신인상, 동포문학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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