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외국인노동자 샬롬의 집 원장, 신부)

 지난 2005년 10월 17일 샬롬의 집(1192년 설립)은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도와 남양주시의 지원을 받아 국내 최초의 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의 건립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날도 개관식을 앞두고 샬롬의 집 모든 실무자들은 성대한 행사 준비를 위해 여념이 없었습니다. 초청 대상자만 하더라도 손학규 경기도지사,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김대환 노동부장관 외 많은 귀빈들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한 인권보호와 복지 향상을 위한 새로운 출발과 전환점이 되는 화합과 축제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막 점심을 마칠 무렵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단속 차량이 공단에 들어와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왜 이런 때에 오는 것일까?” 정말 당혹스러웠습니다. 전에도 몇 번 단속이 들어와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단속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의례적으로 있어왔던 일이었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단속하는 현장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상태였습니다. 차량에 이미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태운 상태에서 차량이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라 서둘러 나가지 못했던 단속차량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제 차량의 앞쪽에 있던 차량 한대가 빠져 나가자 단속차량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마주친 차량에서 저를 본 단속반원 3~4명이 차량에서 내려 저의 차로 와서 문을 두드리며 욕을 했습니다. 저는 순간 두려웠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은 없었습니다. 두려움에 있는데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차량에 둘러 선 단속반원들의 공포분위기에 기가 죽은 저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단속차량 뒤에도 차량이 밀려 있고, 저의 차량 뒤에도 트럭과 승용차량이 얽혀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불법체류자가 단속된 공장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정체된 상황에서 공장주들은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속도 좋지만 일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잡아가도 되는 거냐!”하며 항의했습니다. 단속반원들도 사태가 순간적으로 일어나자,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사태를 빨리 수습하려 했습니다. 단속차량을 움직이려 했지만, 주민들은 이미 차량 움직이는 것을 거세게 만류했습니다. 저 역시 의도와는 상관없이 차량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무슨 권한과 힘으로 공무를 집행하는 차량을 막아 설 수 있겠습니까? 이미 차량에 승차한 것을 막을 방법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의아해하는 것은 저를 본 단속반원들이 급히 내려 저에게 욕을 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이유가 무엇인지 하는 것입니다. 단속차량은 그러기 이전에 빠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단속차량 뒤에 있던 차량이 항의를 하자, 뒤에 있는 차량을 보내 주었습니다. 단속차량 역시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본 순간 차량에서 단속반원이 내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단속반원 중에 낯익은 사람 몇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의정부출입국관리소 직원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저희 샬롬의 집에서 비자 연장과 관련하여 출장업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점심때에는 자장면을 시켜 같이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의정부출입국관리소에서도 몇 차례 만나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던 분이 저를 본 순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욕을 했던 것입니다. 차라리, 모르던 사이였으면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제가 물었습니다. “의정부출입국관리소에서 단속 나오셨나요?”, “아닙니다. 서울목동출입국관리소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서운했습니다. 업무상 그럴 수 있겠지요.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그때서야 저는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분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나, 주민들과 공장주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단속과정에서 빚어진 비인권적인 일들이 폭로되었습니다. 구타와 폭행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괴했습니다. 그것은 공권력을 행사한다면서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비인간적인 처사를 행했던 사실이 있었음을 말입니다. 신분증 제시 없이, 미란다원칙 공지 없이, 수갑을 채우고, 단속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가했다는 사실. 결국, 이런 사실로 인해 주민들과 공장주는 차량을 막아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법을 지키고, 법을 올바르게 집행해야 하는 법무부 직원이 오리려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왜 함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공장주와 주민들은 단속의 책임자에게 답변을 듣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공권력 집행을 강압적으로 수행하려 하였고, 주민들과 공장주들은 명확한 답변을 요구하며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책임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고, 3~4시간이 경과된 후에야 도착한 책임자(목동출입국관리소 과장)는 “단지, 홍보 차 오게 되었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과 공장주들은 더욱 강력하게 항의하였습니다. 몇 차례 협상이 있었지만 번번이 결렬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진 주민들과 공장주들은 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200 여명이 몰려와 합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만류하여 돌아가도록 유도했습니다. 오히려 사태가 악화되면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우선 단속 차량이 출입국관리소로 가서 조사를 받고 단순 불법체류자는 출국조치를 취하고, 여권위조 및 밀입국 등 범법사실이 확인될 시에는 보호 출국시키는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과 공장주들은 이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단속과정에서 비인간적인 처사와 정당한 법집행이 되지 않았으니, 지금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풀어주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오랫동안 이주노동자와 함께 해 온 ‘샬롬의 집’ 이정호 신부님이 주민을 대표해서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당신이 출입국에 가서 그 이행여부를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강하게 거부하던 사람들도 이에 수긍하였습니다. 그 상황은 극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험악한 분위기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이정호 신부님은 단호하게 그들에게 자신이 책임을 지고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주민들과 공장주들은 단속차량의 이동을 허락했습니다.

  현장에 많은 언론 취재진들도 와 있어 그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주민들과 공장주들은 마치 성난 파도와 같았습니다. 한 순간 어떠한 상황이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임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이었고, 공장주들은 어려운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어쩌면 주민, 공장주,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공생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이 없으면 생존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주민, 공장주들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게 되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정호 신부님의 역할이 없었다면, 오히려 그 상황은 악화되었을 것입니다. 생존권을 위해 공권력에 맞설 수밖에 없었던 주민과 공장주를 설득하고 합의로 이끌었던 이정호 신부님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내 드리지 못할망정 오히려, 출입국관리소의 과잉단속을 법집행 방해라는 허구를 씌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주민과 공장주, 당시의 현장에 있었던 모든 분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누구의 잘못과 책임으로 인해 발생되었는지? 그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그 현장에 있던 주민의 말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국민이 원하는데, 법은 국민을 위한 법이 되어야지.” 지난 과거 우리는 악법에 살아 온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습니다. 올바른 법집행과 공권력의 행사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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