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제1편

딸애는 사춘기
딸애는 올해 12살, 어느새사춘기의 문턱에 한 발을 들여놓았다. 덕분에 무방비상태에 있던 무력한 이 엄마는 딸애와 시도 때도 없는 마찰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주로 의견충돌이나 개인의 취향문제, 관심사 등에서 첨예한 모순으로 나타났다.  딸애 마음속에서의 엄마의 위상은 중국의 폭락한 주가처럼 천길 나락으로 곤두박질했고, 엄마의 말은 씨알머리도 먹히지 않았다. 곰상곰상 말 잘 듣던 착한 딸애의 입버릇은 “안다고요, 내가 다 알고 있다고요.”로 변했다.

 
여행 스케쥴 짜기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과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연인들을 상대로 하는 조언이기는 하나, 부모 자식사이에도 충분히 적용이 된다. 나의 미국행 목적은 뚜렷했다. 딸애와 함께 뉴욕 맨해튼의 활기찬 모습과 미술관의 작품을 감상하고 대학의 도시인 보스턴에 가서 하버드대학 캠퍼스를 거닐며, 자유의 천국인 미국의 현대화적 분위기와  학구적인 분위기를 느껴보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고, 단기적 목적으로는 어떻게든 사춘기 딸애와 잘 친해보자는 속셈이었다. 깊이 있게 미국을 여행하기 위해 나는 뉴욕과 보스턴 두 곳만 정해서 구경하기로 했다.

뉴욕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참으로 다양했다. “뉴욕엘 왜 가요? 뉴욕은 서울이랑 똑같아요. 볼 거 없어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뉴욕 좋지요. 뉴욕은 한번쯤 꼭 가보아야 할 곳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느껴봐야지 싶은 생각이 든 곳이기도 했다. 그동안 가족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나와 딸애 단둘이서, 패키지 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을 떠나기는 처음이다. 딸애는 나의 수많은 여행경험에 기대려 했고, 나는 딸애의 영어실력을 믿었다.

  자유여행이었으므로 티켓 구입부터 숙소예약, 공항에픽업나올 택시기사 연락, 관광스케쥴 모든 것을 내가 일일이해야 했다. 나는 여행은 즐기지만 이런 사전 준비를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아니,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부터 먹는다. 이제 와서 이실직고하지만 나는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대부분은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식으로 따라만 다녔던 것이다. 그러니 짧은 시간에 뉴욕 여행 스케쥴을 나 혼자 다 짠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게다가 난 하루나 이틀을 통째로 떼어내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기에 어떻게든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보려고 애썼으나 결국 짜투리 시간은 올 여름 서울의 열대야 기후땜에 진이 빠진다는 이유로 맥주를 마시는데 투자해버렸다.

  뒤늦게야 나는 나의 여행파트너를 떠올리고 넌지시 이 임무를 떠넘겼다. 처음에는 신나서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여행후기를 읽어보고 여행스케쥴을 짜던 딸애는 곧 엄마가 원하는 여행이 자기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딸애와 나는 또 한번 충돌을 겪었다.뉴욕 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가 맨해튼, 그리고 박물관, 현대미술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등이었다면 딸애가 생각하는 뉴욕은 타임스퀘어, 번화한 쇼핑가, 눈이 모자랄 정도로 진열된 화장품가게, 세계 유명 브랜드 샵, 맛있는 요리 이런 것이었다. 내게 보스턴이 하버드, 예일대,메사츄스공과대가 있는 대학의 도시라면 딸애에게 보스턴은 퀸시마켓과  랍스탑이 있는 먹거리 도시였다.

  쇼핑에 초점을 맞춘 딸애의 스케쥴과 미술관, 박물관 관람을 위주로 하는 나의 스케쥴은G20회의에서의 시진핑과 오바마처럼 팽팽하게 대립했다. 처음엔 누구도 누구에게 양보할 기색이 없었다. 딸애가 제안했다.“그럼 엄마가 원하는 꼭 가야할 곳을 적어보세요.” 우리는 각자 꼭 가야만 하는 곳과 왜 가야만 하는지를 설명하는 ‘여행기획서’를 만들었다. 그 기초상에서 다시 절충하여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했다.

  모녀간의 첨예한 모순
여행스케쥴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옷이었다. 나는 여행사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옷을 여벌로 여러벌 싸들고 다닌다. 내가 뉴욕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교회의 언니가 딸애에게 줄 옷이 있으니 와서 고르라고 하였다.뉴욕에서 살고 있는 조카가 보내온 거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괜찮다고 생각되어 열심히 골라온 옷을, 딸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전혀 성의없이 옷을 한 손으로 집어서는 눈앞에서 1초도 멈추지 않고는 아니야 하면서 한쪽으로 밀어놓거나, 이건 잠옷 하면 되겠네, 이건 너무 커, 이건 너무 촌스러워, 내 스타일이 아니야 이런식으로 전부 퇴짜를 놓았다. 결국 뉴욕에 가서 딸애에게 입히려고 야심차게 골라온 옷들은 뉴욕으로 가는 트렁크안에 들어가보지도 못한 채 종이백에 도로 들어가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입이 닳도록 설득을 해도 소용없었다.

미국의 소비가 비싼 걸 고려해 햇반이며 라면, 누룽지 등을 바리바리 싸가는 나의 행위도 딸애에겐 엄청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미국까지 가서 고작 이런거나 먹을거냐고 불만을 토했다. 여행을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짐을 싸면서부터 나와 딸애는 쉴새없이 실랑이를 벌였다. 먼 곳에 여행가서 딸애와 티격태격할 생각을 하니 가기 전부터 기운이 쫙 빠졌다.

 
뉴욕의 상공에서
  드디어 뉴욕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 우리는 한껏 부푼 가슴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항공기연결문제로 인천공항에서 한시간 지연이 된 아시아나항공은 14시간의 긴 비행끝에 뉴욕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예정도착시간보다 한시간이 늦은, 뉴욕시간 12시 17분이었다. 비행기에서 나는 “마션”, “아이 인더 스카이”등 다섯편의 영화를 보고 두 번이나 칫솔질을 하고 몇번 쪽잠이 들었다. 

비행기가 서서히 착륙을 시작했다. 맑은 하늘아래옅은 푸른색의 빌딩숲이 엽서처럼 펼쳐졌다. 비행기가 지상에 거의 닿을 무렵엔 갑자기 수많은 녹색의 나무숲이 눈앞에나타나서 편안한 시각적 느낌을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뉴욕의 이미지는 번화하고 역동적이고 냉정하고 천변만화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뉴욕은 어떤 도시일까 오래전부터 상상해왔다.상하이처럼 럭셔리할 것 같기도 하고, 파리처럼 로맨틱할 것 같기도 하고프랑크푸르트처럼 학구적인 분위기가 다분할 지도 모른다. 유럽처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진 않지만 뉴욕은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꼭 가야만 하는 도시로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 매력이 대체 무엇일지를 이제 확인할 시간이 왔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입국심사
  미국입국심사는까다롭기로 소문이 나 있다. 내가 아는 지인도 작년에 뉴욕에 입국을 하는데 반시간가량 질문에 답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소식을 들은터라 나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내가 소지하고 있는 모든민증을 들고왔다. 공항은 넓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드디어 입국장에 도착하고보니 사람이 그렇게 많을 수가.역시 아메리칸합중국은 스케일이 달랐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언제 입국심사를 마칠까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비자종류에 따라 서는 줄이 달라서, 안내대로 줄을 섰더니 자동기계에 가서 신분체크를 하라고 한다. 기계가 시키는대로 여권의 비자가 붙어있는 면을 스캔하고 지문을 스캔하고, 사진찍고 영수증을 받았다.

  역시 미국은 자유롭다. 보통 출입국심사를 받을 때면 모자를 벗으라고 하는데 여기선 개의치 않는다. 모자를 쓴 채 사진을 찍었다. 기계에서 프린트되어 나온 확인증을 들고 다시 어디로 가서 줄을 서야 하는지 몰라서 물어보려니 모든 스태프들이 다 바쁘다. 어떤 스태프는 태도도 아주 불경스럽다. 어디에든 사람이 무더기로 몰려있었다. 이렇게 질서없는 입국장을 본 것도 처음이다. 이번엔 조금 여유있어보이는 스태프에게 물어 다시 줄을 섰다. 바로 우리 차례가 오고, 입국심사원은 나와 딸애의 여권과 확인증을 받더니 미국에 며칠 머무를거냐고 물어본 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도장을 쾅쾅 박아주었다. 이 쿨한 미국 가이라고! 참 맘에 드네.

나와 딸애는 너무나 쉬운 입국심사에 신이 나서 그곳을 빠져나오자 하이파이브를 했다. 며칠을 통털어 처음으로 딸애와 이처럼 잘 통했던 순간이었다. 예감이 상서롭다.

 
 세상에서 캐리어의 양이 가장 많은 전송대
  금세 공항밖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오산이었다. 짐 찾는 곳에도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일단 카트부터 하나 밀고 오기로 했다. 카트를 당겼는데 빠지지가 않는다. 자세히 보니 한쪽 바퀴가 레일안에 있어서 기계에 돈을 넣어야 꺼낼 수 있었다. 6불이란 거금을 지불하고 카트를 빼냈다. 어차피 돌려받을 거니깐. 나와 딸애는 큰 캐리어 두개를 갖고 왔으므로 카트에 실으면 편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카트비용을 돌려받지도 못한다. 이 나쁜놈의 자본주의라구야. 공항에서 한 방 당한 셈이다.

  화물 전송대에선 캐리어가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캐리어는 나오지 않았다. 그 어느 공항에서도 이렇게 많은 캐리어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살짝 지치려고까지 했다. 딸애는 내가 잠시라도 눈길을 다른 곳에 돌렸다가, 혹시 우리의 캐리어를 다른 사람이 찾아갈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우리의 캐리어와 비슷한 캐리어가 하도 많아서 몇 번이나 엉뚱한 캐리어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정말이지, 미국에 갈 때는 평범하지 않은, 개성만점 캐리어를 갖고 가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그래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드디어 짐을 찾아서 나왔다. 그곳에는마중나온 사람들로 붐비었다. 한마디로 질서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출국장으로 나온 우리의 마음은 한없이 기쁘기만 했다. 드디어뉴욕땅을 밟았다는 생각으로. 픽업 온 기사아저씨가 C번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우리가 짐을 찾는 동안, 픽업 나온 기사아저씨한테선 몇 번이나 전화가 걸려왔기에, 나는 마음이 다급해서 걸음을 다그쳤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택시요금을 추가로 요구할 수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딸애는 금세 짜증을 냈다.
“엄마, 너무 빨리 걷잖아요. 못 따라가겠다구요.”

뉴욕 첫인상
  기내방송에서는 뉴욕 날씨가 흐리다고 했으나 하늘은 맑았고 흰 구름이 귀엽게 떠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나와 딸애는 살짝 흥분되었고 평화로운 뉴욕의 분위기에 흠뻑 취했다.얼마쯤 달리자 길가에 이쁜 양옥들이 나타났다. 뾰족지붕을 가진 하얀색의 집들, 커다란 창문과 예쁜 정원을 가진 집들이다. 문밖에는 아름다운 꽃바구니가 걸려있다. 딸애는 예쁘다를 연발하면서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연락이 왔다. 어디까지 왔냐고. 시름이 놓였다. 어쨌거나 물설고 낯설은 이국타향에서 누군가와 접속이 된다는 건 믿을 구석이 있다는 게 아닌가. 마음의 탕개가 풀리면서 피곤이 몰려왔으나 나는 창박의 풍경에 정신이 팔려 졸음을 쫓아냈다.

 맨해튼 첫 인상
  택시가 시내로 들어갈 즈음,  딸애는 결국 피곤을 이기지 못해 내 다리를 베고 잠이 들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병풍같은 맨해튼의 마천루 빌딩숲, 아! 드디어 내가 뉴욕 맨해튼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빌딩숲속에 들어서자 차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기사아저씨는 수시로 도로를 변경하거나 끼어들었고, 빽빽소리를 냈다. 뉴욕의 택시운전이 험하다는 것도 익히 들어왔는데 사실이었다. 하지만 뭐, 중국에서 이런 거친 운전행위에 어지간히 단련이 된 나에겐 이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림짐작해도 백 년은 쉬이 넘었을 것 같은 고풍스러운 빌딩들이 나타났다. 내가 좋아하는 아치형 문과 계단,무늬있는 철제 난간, 미국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남녀주인공들이 프렌치코트를 입고 난간에 기대어 서서 키스하는 장면이 눈앞에 선하다. 파리처럼 낭만적이진 않아도, 프랑크푸르트처럼 지적이진 않아도 뉴욕은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사아저씨는 여전히 거칠게 운전을 했고, 나는 목숨을 하나님께 맡긴 채, 뉴욕의 매혹적인 건물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낮 온도 25도의 날씨에살랑살랑 부는 바람, 길을 걷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휘날렸다. 각양각색의 얼굴과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거리에서 걸어다니는 걸 보며 역시 이곳은 자유의 천국이라는 걸 느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게스트하우스에 무사히 도착했다. 젊은 매니저아가씨는 우리를 도와 짐을 3층의 방으로 올려주었고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공간이라, 주의할 점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긴 여로에 지친 나와 딸애는 짐을 풀자 곧 침대에 누워 다리를 쭉 뻗고 잠을 잤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여행 시간은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다.

  저녁 8시, 나와 딸애는 호기심과 설렘에 가득찬 심정으로 게스트하우스의 대문을 열고 맨해튼의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우리가 투숙한 곳은 타임스퀘어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이다. 불과 한 블록 걸어나왔을 뿐인데도 완전 별천지다. 사면팔방 어디를 바라봐도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꼿꼿이 솟아있어 마치도 끝이 뾰족한 성냥갑을 질서정연하게 세워놓은 것 같았다. 서쪽하늘엔 석양이 이쁘게 물들고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지나치기만 하면 어깨를 스치는“뉴욕에서의 이름 모를 인연”이 되었다. 그 틈에 끼어 나와 딸애도 수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불야성을 이룬 뉴욕은 황홀한 힘으로 우리를 흡인했다.

딸애가 말했다.
“엄마, 여기 딱 홍콩 같아요.” 
그랬다, 뉴욕은 홍콩의 확대판 같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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