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허창렬의 시는 아주 다이어트 잘했다. 쓸모없는 가지를 쳐내고 거치장스러운 잎들도 따버렸다. 마사구려는 절대 거부한다. 언뜻 보면 시행들은 마치 봄버들가지처럼 친친 늘어져 하느작이는 것 같다. 시를 읊어내려 가노라면 결코 그게 아니다. 탱탱하니 여문 회초리 같기도 하고, 단단하고 미끈하고 날씬한 박달나무방망이 같기도 하다. 그 속에 꽁꽁 박혀진 시 의식들이 휘친휘친 튕겨오며 이악스레 달려드는 듯하다. 야-옹 하는 고양이 이발 같은 것이 보인다. 디아스포라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약자의 눈물과 회한과 어쩔 수 없는 막무가내와, 또 가슴 치는 인생의 절절함 같은 것들이 엉켜 붙어서 고양이의 하얀 이발이 되나 부다. 바람에 날리는 한 많은 어머님의 하얀 옷고름이 되기도 한다.  편집자             
  


▲ 허창렬 프로필

시인, 평론가.흑룡강성 계동현 태생중국 요녕성 조선문보 편집•기자.흑룡강성 조선족창작위원회 회원연변작가협회 회원, 요녕성 작가협회 회원, 現재한동포문인협회 평론분과 부장

1999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중국조선족중견작가대계' 계열 시집 <북행열차> 출간(2011년 재판), 수상 다수

서울

빌라만큼
건방지고 낯색이
컴컴한
자존심들이
콧대 잔뜩 세우고
도로 옆에
올망졸망 꿔온 보리짝처럼
어두커니 서있다
가로등 아래
기다랗게 늘어 선
심장이 노란 보따리 족속들
내일은 또 어디로
떠나가야 할지
서로 행방조차 묘연하다
세루 양복에
꽃넥타이 맨 촌놈들이
매일 아침 휴대폰으로
일일이 세상을
검색하고
텅 빈 머릿속에
살아가는 지혜 같은 것을
철학인양
진리인양 걸레로 차곡차곡
닦고 또 닦는다
공자 맹자는
오늘 하루도 서있을 자리
앉아 있을 자리
한치 땅도 아직 없다


밥 한끼


내 늘그막에
얼마나 큰
금덩이 안고 살려고
이 밥 한끼
게걸스레 삼키고
목이 콰악 메이는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고 파라
소처럼 벌어
만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끼라도
사고만 싶어라
내 늘그막에
얼마나 큰 금덩이
안고 살려고
이 밥 한끼에 기어이
목이 자꾸 메이는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계절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답게 살고 싶어라…


밥 한 그릇

이 밥 한 그릇이 그래
무엇이라고
두 손으로 가슴 허벼
그리움 달래가며
삽질하고 망치질 하고서
땀으로 눈물로
마주 앉아야 하는가
이 밥만큼이나 하얗게 살다
하얗게 색이 바랠
우리네 인생
밥 한끼가 철학이고
밥 한끼가 결국 예술인 것을
날마다 양심이라는
맹물에 아버지의
유언 말아
후룩 후룩 삼키고 나면
밥이 나를
삼키는 것인지
내가 세상을
삼키는 것인지
가슴이 갑갑하도록
아리숭하다


아픔

구로九老에서
너를 부리고
전철은
다시금 대림 쪽으로
질주한다
신도림에서
2호선을 환승하고
십분 후
신대방 4번 출구를
나서면
심장에서는 딸랑이는
방울소리를
새삼스레 들을 수가 있다
십자가 소소리 높은
명동교회 뒷골목길 지나
어딜 가나
올망졸망한 호주머니
꽁꽁 여미고
줄느런히 빌라들이
숲을 이룬
겨울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면
나도 몰래
온몸을 옹송그리고
인심이 야박한
한치보기
서울 촌놈이 된다.


네 이름 불러본다 수선화야


개나리나
물맟초 대신
네 이름 불러본다
수선화야ㅡ
인정에 어리숙한
저 달을
빈 잔에 그리움으로
도옹 동동ㅡ
띄워놓고 분 바른 듯이
하얀 살결
말쑥한 그 향기에 취해
님 가신 동녘 하늘
바라보듯이
너 하나만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이쪽엔 봉선화
저쪽엔 수선화
어느 꽃인들
내 고향의
눈물꽃이 아니리오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울렁울렁
그저 넋 없이 잠간만
지켜보아도
손발이 나풀나풀
철없는 내
누이동생같이
너무 아름다운 꽃이여


두만강 2

웬 노랫소리인가
싶어 들어보면
길 떠난 나그네들의 속 깊은
울음소리였다
웬 풀피리소리인가
싶어 들어보면
정월 대보름날 어머님이
속으로만 속으로만
눈물 삼키시던
흐느낌소리였다
노래 한곡 부르라면
기어이 덩실덩실 탈춤을 춘다
춤이라도 추라하면
기어이 더 낮은 쪽으로
흘러가 반짝이는
큰 거울이 된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잊지는 말라고
강둑에 서면
보리수菩提树 한그루
모진 세월 속에
하느작이고…


세월 2
 

달을 안고 잘까
별을 안고 잘까
컴컴한 밤하늘은 음모가 깊다
남자라도 된다!
여자라도 된다!
하늘아래 어디선가
사람으로 마주서면
바람이라도 구름이라도
무조건 좋다!
가슴 깊숙이 크레용
색연필로 그려 넣은
까아만 눈동자
그리고 활활 불타오르는
빠알간 심장
자궁을 뚜져 시간을
꺼내놓고 살펴보면
오늘은 있는데
내일은 없다…


운명
 

한탄강
그 이름 앞에
가슴이
너무 시리구나
맨발, 맨손으로
여기까지
허둥지둥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네
인생,
죽으라면
죽는 척
해야겠지요
웃으라면
웃는 척
해야겠지요
용주사
산마루턱에
달빛이
너무 곱구나

백마강
그 이름앞에
가슴이
오늘 서늘하구나
상부상조
여기까지
허둥지둥
앞만 보고
뛰어 온 우리네
인생,
죽으라면
죽는척
해야겠지요
웃으라면
웃는척
해야겠지요
해인사
목탁소리에
풍경소리
너무 곱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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