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전국시기에 출현한 예서는 동한시기에 이르러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파책을 주요 특징으로 한 예서는 전서체의 번잡함에서 탈피하여 상대적으로 간략한 글자체로 그 우수성을 인정 받았다.하지만 모든 사물이 발전, 변화하 듯이 예서체 또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수 밖에 없는 절박한 시기에 놓이게 되였다. 전서체에 비하면 예서체는 많이 간략해졌다고는 하나 한자한자 독립적으로 써야 하는 시간적,속도적 제한성을 피할수 없었다.이런 객관적 변화요구에 의해 점차 형성된 초기의 형태가 바로 章草이다.장초가 예서로부터 변화,생성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번기에 언급한바 있다.

1.章草의 출현. 진나라 말로부터 동한시기에 이르기까지 예서에서 변화,발전하여 隸草라는 초기형태의 글자체가 출현하였다.간단히 말하면 예서를 좀 흘려서 쓴 글씨형태를 이른다.이것은 어디까지나 초서의 추형雛形에 지나지 않는다.유적에서 출토된 漢簡(한나라 때 대나무쪽에 쓴 글씨)에서는 글자의 필획을 줄여서 쓴것,글자사이를 이어서 쓴것,또 어떤 부호로 대체한것 등의 여러 형태를 볼수 있다.이런 형태들은 오늘 날의 초서와 별로 다를바 없음을 보아낼수 있다.한간에서 그 특징을 보면 隸草의 體勢를 두가지로 나누어 관찰할수 있다.하나는 예서체의 파책 그대로이고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내리금획을 길게 아래로 뻗쳐 썬 모양이다.서한시기에 이르러 예초가 성숙되였고 그 기초상에서 가공,정리되여 규칙적인 획의 감소를 조리있게 한 동시에 예서의 筆意를 그대로 살려 두었는데 필획이 간략되였고 쓰기에 편리한 글자체가 자리매김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章草이다.

 
2.장초의 특점. 장초는 기본적으로 예서의 필법과 체세를 유지하였고 글자마다 독립적이며 크기가 고르고 구도법상 從的형태를 취하였으며 아래위 글자는 연결하지 않는것이 특점이다.동한시기 대표적 서법가로는 杜度와 崔瑗이 있다.당시 두 사람을 지칭하여 "崔杜"라 부를만큼 영향력 있는 서법가였다.그 이후의 장초서법가로는 張芝와 皇象이 있다.장지는 자가 伯英이고 동한시기 敦煌酒泉 사람이다.그의 대표작은 "八月九日帖"이 있다.황상의 자는 "休明"이고 삼국시기 오나라 廣陵江都 사람이다.대표작으로는 "急就章"이 있다.그리고 陸機란 서법가도 장초에 능한 사람이다.그의 대표작은 "平復帖"인데 중국에서 가장 이른 傳世筆跡이다.

3.今草의 출현. 금초는 장초보다 좀 늦게 나타난 초서의 일종이다.역시 예서로부터 생겨났는데 書寫과정에서 예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수요에서이다.한나라 말에 장초가 왕성기를 맞이하여 한때 성행하였다.하지만 내재적으로 잠재되였던 부족점들이 魏晉에 이르러 玄學(도가의 학문.주로 위진남북조시대의것을 가리킴)의 흥기와 더불어 시대적 심미경향에 변화의 바람에 맞춰 금초가 흥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 장초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이것이 금초 출현의 시작이다.금초는 동한에서 시작하여 晉의 王羲之에 이르러 집대성되여 위진이래의 장초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글자체가 출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금초이다.장지가 금초의 창시인인데 대표작으로는 "冠軍帖"이 있다.東晉시기에 이르러 금초는 왕희지,왕헌지의 주도하에 발전하였고 그 두사람은 당시의 대표적 서법가로 대두하였다.금초의 형성,발전에 왕희지는 결정적 작용을 일으켰다."十七帖"이 그의 대표작이다.금초와 장초의 가장 큰 구별점은 예서체에서의 흔적인 "기러기꽁지"로 된 파책을 안쪽으로 收筆하는 용필법이다.그리고 위 글자의 마지막 수필방향이 다음 글자의 기필방향 쪽으로 향하는 呼應관계를 갖는다는 점이다.글자와 글자의 획이 연결되고 글자의 형태가 네모에서 둥근 형태로 변화하였다.글자의 구조는 진일보로 간략되였고 장초의 靜적인 형태에서 動적인 형태로 변화하였음을 보아낼수 있다.글자의 크기도 고르지 않게 변화무쌍한 예술미를 연출하였다.

   今草  張芝의 <冠軍帖>

4.狂草의 출현.장지의 今草가 발전하여 극적인 표현형태인 광초가 나타나게 되였다.광초를 일명 大草라고도 한다.광초는 結體가 자유롭고 변화가 다채로우며 몇 글자가 연결되여 하나의 單元을 이루기도 하며 흩어졌다 모였다 하여 소탈하고 분방한 특점을 지니고 있다.광초의 대표 서법가로는 당나라의 張旭과 懷素가 있다.세간에서는 이 두사람을 가리켜 "顚張醉素"라 부른다.장욱의 대표작으로는 "古詩四帖"이 있고 회소의 대표작으로는 "自敍帖"이 있다.

기타 초서대가들로는 孫過庭,黃庭堅,吳鎭,徐渭,王鐸,장瑞圖,傅山,黃愼,八大山人,董其昌,于右任,林散之가 있다.초서는 중국서법예술 가운데서 예술적표현력이 가장 강하고 영향력이 심원한 글자체의 하나이다.초서체의 생성,발전,성숙은 여러 글자체들의 끝없는 변화속에서 이루어졌다.동진시대에 이르러 초서는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 시기 초서는 이미 문자의 내재적 역할을 벗어나 순수 예술적표현의 형태로 발전,변화하였다.

  狂草  張旭의 <古詩四帖>

서법의 풍격은 서법가의 주관적인 면의 특점과 작품의 내용,필묵의 기교에서 표현되는 정신적 면모가 한데 어우러져 나타나는 독특한 모습이다.풍격은 한 서법가의 예술적 견식과 정신적 면모와 심미수양의 체현이고 독특한 성숙정도의 표지이다.만약 한 작품이 개인의 풍격특징이 없어 남의 것과 같다면 예술창작의 의미가 없을것이다."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글씨는 곧 그 사람이다"하는 말들은 서법예술의 원리를 집중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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