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성공여부는 타이밍이 결정

▲ 남태일 '한국원생태불고기식당' 사장
[서울=동북아신문]중국 절강성 이우시 척계광로에 가면 즐비하게 들어선 아파트 한 가운데, 유난히 높은 주상복합 건물 한 채가 우뚝 솟아 있다. 이 건물 5층에는 '한국원생태불고기식당(韓國原生態烤肉餐廳)’이라는 큰 간판이 걸려 있다. 절강성 이우시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한식식당이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올라가면 1500㎡의 자연 생태공원 모양의 쾌적한 초록색 식당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바로 남태일 사장의 사업장이다.

2017년 1월 18일, 식당을 개업한지 6개월 째 되는 날이다. 중국도 불경기이지만 안정적인 매출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으며 본점은 이미 체인점 4개 업소까지 계약을 맺었다. 또 한국의 유명백화점과 같은 인기있는 은태백화점(銀泰百貨)과 식당 등과 장기협력 계약도 체결 했다. 6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사업 확장을 크게 일군 것이다. 정말 가슴이 뿌듯하다.

 
남태일 사장은 2000년에 한국에 입국하여 건설현장에서 안 해 본 일이 없다. 8년 전의 일이다. 당시 그가 일하던 도배퍼티 사장은 3개월 동안 월급 한화 630만 원을 지급하지 않고 질질 끌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들의 대학 입학금도 마련해야 했다. 사장에게 절박한 사정을 얘기했지만 통장엔 겨우 100만 원 밖에 입금되지 않았다. 결국 윽박지르듯 하여 겨우 530만원을 받아냈다.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나오는 과정에 그는 허리가 비끗 해 일주일동안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리하여 고민 고민 끝에 다시는 건설현장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막노동이 너무 싫었고 흡사 악몽과도 같았다. 마침, 그때 인천에서 배로 중국 위해(威海)를 오가며 보따리장사 하는 친구가 함께 장사를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판단력과 실행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장사에 대해서는 동물적 감각까지 겸비한 친구였다.

그는 친구한테 장사 관련 많은 것을 배웠다. "양사익우(良師益友)"를 만난 것은 그의 행운이었다. 2년 후 그 친구는 한국의 중소기업 사장의 초빙으로 절강성 녕파시에서 기업의 차장이 되었고, 그는 아들과 함께 한국화장품 무역에 뛰어들었다. 그때가 2012년이었다.

뛰어난 품질과 저렴한 가격의 한국 화장품은 신뢰도가 낮은 중국 화장품과 비싼 해외 명품브랜드를 재치고 중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한류열기와 함께 중국여성들로부터 호응이 뜨거웠다. 아들이 결혼하면서 며느리도 화장품 무역에 합류했다. 남 사장은 재미교포인 교회목사와 동업하여 화장품 마유(馬油)를 대량으로 도매 납품하고, 그의 아들은 설화수, 후, 오휘 같은 다른 브랜드 화장품을 도매를 담당했다. 그 시절 한국화장품은 회사에서 출고하기 바쁘게 다 팔렸다. 몇 년간 한국 화장품이 중국시장에서 호황을 누리면서 나 또한 사업의 단맛을 알게 되었고 돈도 적잖게 벌었다.

 
비즈니스는 주기가 있다. 어떤 제품이든 호황기가 있으면 침체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중국시장 화장품 도매 무역 역시 2015년 봄부터 포화상태가 되었고 그로인해 가격도 하락했다. 때마침 중국 이우시에서 사업하고 있는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국인 한분이 이우시에서 팥빙수, 설빙(雪氷)가게를 경영하고 있는데 장사가 매우 잘 된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이튿날, 아들과 함께 중국 절강성 이우시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우시의 여름 낮 온도는 평균 38~40도다. 한인이 운영한다는 그 점포에는 손님들도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조카와 공동투자로 이우시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에 불고기 설빙점을 오픈하였다. 문을 여는 날부터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인절미설빙, 망고설빙, 딸기설빙은 인기메뉴가 됐다. 지금은 체인점이 4개로 늘어났다.

남 사장에게는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찾을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아들과 함께 상해로 출장을 갔다가 한인이 경영하는 ‘한국숯불고기집’에 식사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1000㎡ 되는 식당에는 싱싱한 나무와 화초가 공원처럼 무성하게 자라고 기암괴석에서 폭포가 떨어지고 연못에서는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더운 한 여름인데도 입구에서는 하얀 눈이 날리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인테리어로 꾸며진 식당이었다. 사업이란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남 사장은 곧장 생태공원 식 한식당을 시작하기로 했다. 1000㎡이상 규모로 된 가게를 오픈하려면 적어도 200만 위안이 필요했다. 조카는 위해에 있는 아파트를 팔기로 하고 그는 대련에 있는 집을 팔기로 하였다. 아내는 집을 팔아 장사하면 안 된다며 펄펄 뛰었다. 그러나 이미 미치다시피 된 부자를 이기지 못했다. 다만 장소 선택이 중요했다. 여러 곳의 투자환경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들은 절강성 이우시에 투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우시는 세계에서 제일 큰 소상품시장이 있고 경제 유통이 빠르고 한인과 조선족이 각각 2만 명씩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2016년 3월 말 남 사장 부자는 이우시 곳곳을 누비며 부동산에서 정보를 수집하였다. 4월 초 번화가를 벗어난 새로 건축한 주상복합건물에서 상인들을 모집 하고 있었고 1000㎡ 이상을 임대하면 특혜를 준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3일 동안 건물주변의 아파트 인구, 주변상권, 주요고객층, 주변의 경쟁업체수와 밀집도, 경쟁업체들의 매출까지 일일이 분석해 보았다. 다행히 주위에는 한식당은 물론이고 대형식당도 없었다. 4월 중순에 계약을 하고 인테리어에 들어갔다. 불고기 설빙점 사업을 시작할 때 인테리어 하면서 중국 일꾼들이 책임감 없이 일하는 것을 보고 큰 실망을 했던 터였다. 때문에 현장을 A구역과 B구역으로 나눠서 인테리어 업체에게 맡겼다. 인테리어가 시작되자 시공업체끼리 경쟁이 붙어 상대방을 감독하고 머리가 터지는 물리적 충돌까지 일어났지만, 그들의 경쟁은 결과적으로 양질의 인테리어를 창출해냈고 시공기일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또 자재를 구입할 때는 조금 비싸더라도 가게 근처에서 여러 번 나눠서 구입하면서 점포사장들과 낯을 익히며 식당 개점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 60만 원으로 인테리어 자재를 확보하면서 개점하기 전에 많은 점포의 사장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결국 그들 식당의 단골이 되었다.

창업을 할 때는 운영자금 활용에 있어서 테크닉이 필요하다. 사업가는 타인의 돈을 잘 이용하고 또 잘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인테리어 업체와 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들과 마지막 결산을 할 때 지불할 금액의 20%를 천천히 지불하여 식당 운영 자금 난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

사업장이 대형인 만큼 직원모집도 중요했다. 인테리어시작과 동시에 종업원들을 모집했다. 광고를 하자마자 80여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중국에 조선족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조선족을 한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기업이기 때문에 응모했다고 했다. 그 중에서 40명을 뽑아 교육을 시켰다.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기에 무엇보다도 언어와 문화적 소통이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높은 연봉을 주더라도 한국어 한국문화에 박식한 현지인 한 명을 경리로 초빙하고 그를 통해 종업원을 관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상벌(賞罰)이 분명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임직원을 관리하도록 했다.

2016년 8월 18일, 드디어 식당은 문을 열었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려 식당에 들어서면 중국 남방에서는 볼 수없는 흰 눈이 날리고 기암괴석에서 떨어지는 폭포소리가 더없이 청아하다. 연못에서는 마치 물안개 같은 몽롱한 연무가 피어오르고, 초승달 같은 다리 밑 연못에서는 금붕어가 예쁜 고기비늘을 번쩍이며 헤엄을 치고 있다. 푸른 대나무와 관음죽, 대나무야자, 산세베리아 등 여러 종류의 화초와 관목이 테이블사이에서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쾌적한 어린이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손님들은 자연의 생태를 감상하며 노릿노릿한 삼겹살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처음에는 홍보가 부족하여 손님이 적었지만 이우시 TV방송국을 찾아가서 방송 광고를 요청하자 두 명의 MC가 식당을 취재하고 일주일 동안 방송을 내보냈다. 중국 돈으로 2만 위안의 비용이 들어갔다. 그러나 TV방송 광고는 매출이 2배로 껑충 뛰어 오른 기대 이상의 높은 효과를 불러왔다. 사업에서 홍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식당이 자리를 잡으면서 뜻밖의 경사도 이어졌다. 2016년 12월 20일 중국 상계에서 한국의 현대백화점만큼 인기가 있는 은태백화(銀泰百貨) 동양 지점에서 부장과 직원이 우리식당을 찾아 왔다. 자기소개를 하고 식당을 한번 둘러보겠노라며 주방, 냉동실, 냉장고, 어린이 놀이터 등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그날따라 점심에 손님이 만원이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만족한 표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먼저 제안했다.

“우선 절강성 동양시 지점에서 가장 큰 공간을 임대해 줄게요, 우리와 함께 운영하지 않을래요? 인차 계약을 체결하지요.”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신규점포 입지 대상이었다. 거절하면 식당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호박이 덩굴채로 굴러들어 왔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고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 장사는 별 볼일이 없었다. 남 사장 부자가 흔쾌히 대답을 하지 않았더니 12월 30일 까지는 꼭 답을 달라고 하였다. 그들과 협력을 하면 식당의 비전과 희망이 보이지만 까다로운 조건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먼저 찾아 가면 그 까다로운 조건을 개변시킬 수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고심 끝에 남 사장은 그들이 다시 찾아 올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위험이 클수록 이익도 증가 하는 법이다. 자기네 식당이 제일 유력한 후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고, 그들이 꼭 찾아오리란 확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의 아들과 아내는 무작정 기다리다 절호의 기회를 놓일 수 있다며 안절부절 못했지만 남 사장은 3일만 더 기다리자고 했다. 은태백화와의 협력하는 목적은 많은 투자자들을 흡입하기 유리하고, 높은 광고비를 절약할 수 있으며 무궁무진한 손님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 하루하루 바질바질 타들어가는 마음을 어떻게 형언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였다. 12월 29일 오후였다. 은태백화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이튿날, 양쪽에서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약서를 마침내 체결하게 됐다. 그리고 은태백화가 어디서 개점하더라도 협력업체로 함께 하자는 장기계약서도 체결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불고기 설빙점도 더 큰 비전을 갖고 앞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중국은 사람도 많고 계층도 다양 한만큼 시장을 공략하려면 다양성 확보도 중요하다. 그러나 식당의 특색을 지키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한국 전통요리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원천이다.

남 사장은 또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에서 내리자 상쾌한 추위가 얼굴을 스쳤다. 일 년 중의 가장 추운 계절이지만 벌써 봄의 머리카락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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