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영춘 프로필

중국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 졸업. 1989년 길림도라지잡지 문학강습반 수료. 길림신문, 도라지 잡지에 수필,시 통신보도 10수(편) 발표. 현재 한국 안양시 거주.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서울=동북아신문]보이지 않는 우물이 깊은지 얕은지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알 수 있고 돌이 물에 닿는데 걸리는 시간과 소리를 통해서 우물의 깊이와 양을 알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내 마음이 깊다면 여러 사람들의 말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흥분하고 흔들린다면 아직도 내 마음이 얕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의 우물은 과연 얼마나 깊고 넓을까?! 나는 알게 모르게 수년이 지나 지금에 와서야 나의 인생관이 차츰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많은 문인 선후배들이 각자 다양한 인생의 삶을 살아오는 것을 보면서 인간사의 세계 속에서 긍정과 부정에 대해 의논하고, 불만과 이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습관, 유모적인 말과 해학적인 글을 쓰는 습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쓰는데 있어서 예술의 미를 더한 정교한 습관을 지켜오는 것을 보고 느꼈다.  남에게 뭔가 계시를 주는 것을 또한 글을 쓰는데 있어서 문제를 제시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다른 분의 글을 뒤이어 릴레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꿈을 표현하고 또 시를 쓰는 분들은 시제만 제시하면 그에 따라 여러분이 각자 개성을 드러내는 시를 쓰는 그러한 습관들을 만들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들 있다. 이로 인해 나는 이미 만들어진 나쁜 습관들을 하나하나씩 지워가며 동참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좋은 말, 좋은 글을 써보려고 여러 번 반복을 했고 그 반복들이 모여서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중이다. 때문에 문인들을 존경하고 반가울 따름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이 좋아서 문학이 좋아서 여기저기 책을 빌려다 읽으며 문학에 대한 환상을 키웠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부터 돈을 좀 모으면 서점으로 달려가 문학에 대한 서적을 사서 보군했다. 그때만 해도 조선글 서적이란 별로 없었다. 한족이 많이 살고 있는 시내 서점에는 한쪽 구석에다 조선말 잡지와 얼마 되지도 않는 서적들을 옹기종기 진열돼 있을 뿐이다. 어쩌다 연변 연길까지 놀러가게 되서야 눈이 휘둥그레지게 서점 구석구석 책들을 둘러보면서 참 많기도 하다며 연신 감탄을 자아나던 나였다. 너무나 보고 싶은 서적들을 다 사고 싶었지만 경제상 여건으로 꼭 필요한 서적 몇 권만 사군 했다. 그때의 희열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연길서 서란시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밤 세워 읽든 생각이 지금도 선하다. 사춘기 때 처음 일기장에 적어 두었던 시로 작가나 된듯 혼자 싱글벙글 웃으며 몇 번이나 읽어보니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그지없고 시라고 할 수 없는 마음의 표현 밖에 될 수 없었지만. 첫 시작이라는 그 마음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이였다.사회에 진출 후에도 농망기에도 일을 끝내고 저녁밥을 먹기 바쁘게 테이블에 마주앉아 글을 쓰는게 즐거웠다. 림원춘 선생님의 소설을 "몽당치마"를 읽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었고 충격 그 자체였다. 흡사 우리 동네 옆집에서 벌어진 일인 것처럼 가슴에 와 닿았고 그 잔잔한 감동에 나는 한동안 그 소설로 인해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도 선생님 같은 소설을 쓰고 싶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도 소설이 좋아서, 특히 림원춘 선생님의 소설이 좋아서 읽고 나면 그 희열에 잠을 못을 설치곤 했다. 너무나 많은 좋은 작품을 남기셨기에 나도 림원춘 선생님처럼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을 쓰고 싶고 좀 더 욕심을 부려 보고 싶고, 또 내 마음을 예쁘게 계절의 아름다움을 물감으로 채색하듯이 글로 쓰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설 뿐이다/  허나 나는 야심만 너무 앞섰다. 인생 공부 없이 상상 으로만 쓴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인지 그때는 몰랐다. 또한 소설이란 게 작가가 자기 눈을 통해본 현실적 인생경험과 허구와 현실세계를 계획해서 써는 것인 것을 이제 와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열심히 글을 써왔건만 돌아온 건 가난뿐 하여 글 쓸 기회는 점점 줄었고 나중에는 아예 필을 놓았다. 책이 좋아서 글이 좋아서 소설을 자주 읽었지만, 내 자신이 다시 창작을 하리라 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대한민국에 와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또 전에 글 쓰던 문인과 친구들이 연락되었고 그들은 지금도 꾸준히 쓰면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나도 차츰 글을 써보려고 애를 써봤다. 허나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고 이십여 년의 공백으로 머리는 백지 상태나 다름없었다.  나의 고민은 깊어갔고 차츰 글쓰기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을 무렵 우연히 찾게 된 문인 친구와 상봉을 갖게 되면서 글을 쓰고 되는 촉매제가 되였다. 당시 도라지 문학 강습이나 연변대학 조선어문계 통신 공부를 한 것이 글을 쓰는데 있어서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비록 몇 편의 작품을 출품을 했지만 정작 작품다운 작품은 아직까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시 글을 쓴다는 것은 새로 문학에 입문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욱 힘든 것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가 하는 부담감. 짜임새 없이 흐트러진 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모든 것이 생소하고 두려웠다.나는 용기를 내서 현실에 벌어진 사실로 충실하게 수필을 동포신문에 발표하였다. 처음 글을 쓸 때처럼 희열을 느꼈고 많은 문인 친구와 지인들로 부터 축하 전화와 댓글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언제부터인가 선생님, 작가님, 수필가님, 칭호를 듣게 되면서 부터 많은 부담감을 가졌다. 이제 겨우 글쓰기 시작한 초보에게 너무나 가혹한 칭호에 몸 둘 바를 몰랐고 잠시나마 대인 관계에 잠수를 탔다. 나는 부족한 글을 끄적거리며 예쁜 글을 써내는 시인에 대한 부러움이나 막힘없이 현실 생활을 적나라하게 써내려가는 소설가들을 보면서 그들의 내공 역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그동안 글을 쓰면서 많은 아픔을 겪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지금도 나는 내 마음에 있는 것들을 진솔하게 담아내면서 언젠가는 나의 진심이 통하리라 생각하며 앞만 보고 질주하고 싶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나의 글은 허점투성이고 모자라고 부족하다. 마음은 항상 조금 더 아름다운 글로 채우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데……앞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배우는 자세로 모든 것을 수용하며 겸허하게 글을 쓰는 글쟁이로만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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