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고량주 '설원'문학상 응모작품

인 서울 하던 날

가슴께로 몰린 피
단내 물씬 뿜어 올리며 숨 골랐지
검색대 엑스레이를 후줄근하게 뚫고 나와
덜거덕덜거덕 잔소리 늘어뜨리며
보이지 않는 발자국이 뒤꽁무니에 졸졸 따라붙었지
 
따라나선다고 데굴데굴 떼쓰는 것들
죄다 가방에 탑승하게 해주셨지
어머니는 호위병 딸려 보내듯 뿌듯해 하셨지
하지만 고공비행 한 번으로 그만 다리가 풀렸지
축 늘어져 질질 끌려오는 짐짝일 뿐이었지
 
요즘 리무진 요금도 올랐다며 푸념하는 친구
안내로 들어선 곳 공항철도,
풀어지는 시골 아주머니 장 보따리마냥 들뜬 말소리
톤 낮추라 손시늉으로 응답하는 깊어진 친구
눈동자를 꿀꺽 삼키고 신물이 핑 돌았지
꽉 조인 겨울 신발 같은 지하철 안에서 
두루마리 휴지처럼 아득하게 풀려나가는 노선 위 한 점에서
호일의 은빛처럼 반짝이는 사람들 시선에 감겨
옮겨주기를 기다리는 의족으로 굳어버렸지

친구는 덜컹덜컹 커다란 가방을 끌고 집으로 갔지
가방 속에는 시골에서 온 짐짝이 들어있었지
짐짝의 무게는 가방 바닥으로 흘러내렸지
귀퉁이로 몰렸지.

 

병(甁)

퇴근시간 지하철은
목이 잠기도록 무거워진 몸들을 실어 나른다
상자마다 빼곡한 무게가 발바닥 밑으로
주저앉을 자리를 찾는다.

회사에서 입은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말들을 꿀꺽꿀꺽 삼키는 구멍
쓰거나 달콤하거나 독하거나 밍밍하거나 톡 쏘거나 부드러운 것들이
구석구석 흘러들어 몸을 불린다.

물로 끼니를 때운 위장처럼 출렁거리는 퇴근길
덩달아 출렁이는 말들이 내뿜는 과잉 이산화탄소에 
거친 숨을 철썩거리며 목적지에 도착한다.

입과 입을 짠-하고 부딪혀줄 친근한 몸끼리의 만남

진한 입맞춤을 위해 입을 여는 순간,
발효되고 있던 오장육부에서 뻥-하고 터져 나오는 신음.

출근길 지하철
다시 빼곡히 채워지는 상자들
지난 밤 왈칵거리는 말을 입 닳도록 쏟아내던 몸들이
질주하는 시간 위에 발붙이려고 휘청거리며 애쓴다.


고향친구

아버지가 계시는 시골
강가에 앉아
강아지처럼 바짓가랑이를 핥으며 매달리는
흙먼지를 톡톡 두드려 떼어내면
강물은 투박한 웃음을 밭고랑처럼 일구며
빨래판을 쑤욱 내밀었다

뒷집 살던 소꿉친구 겸이랑
빨래판을 뗏목 삼아 물에 띄워 올라탄다고
바동바동 아우성을 많이도 쳤는데
하고 있으면
강물은 그 옛날 물 밑으로 가라앉은 우리 목소리를
한 줌씩 건져 올렸다

벼이삭에서 알알이 흩어져
어느 집 어느 회사 어느 가게로 배달된
밥처럼 구수할 친구들 이야기를 상상하다
싸라기마냥 제집구석만 파고든다는 겸이 애잔할 때
강물은 흩어진 친구들을 불러들이려고
한 척 두 척 배를 띄우기 시작했다 

깊숙한 도심의 어느 소용돌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향친구,

무심한 듯 가던 길에 잠깐 마주 앉아도
삽시에 방파제를 무너뜨리며 내 기억의 바다로 흘러드는

고향친구는 강물이었다.

▲ 최미성 : 1982년 길림성 룡정시 출생, 현재 서울시 노원구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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