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이라는 거짓말과 상대적인 주관

▲ 정련 프로필: 흑룡강성 상지시 조선족중학교, 2002년 흑룡강성 문과수석. 북경대학 경제학원 국제경제무역학과 02학번, 학부 졸업.업무경력 : 2006년 9월 ~ 2010년 9월 우리에프앤아이(우리금융그룹 자회사, 현재 대신에프앤아이), 투자팀2010년 10월 ~ 2014년 6월 동양증권(현재 유안타증권) IB부문 기업금융업무2014년 6월 ~ 현재 유안타증권 기획팀, 비서팀 팀장, 중국변호사.
[서울=동북아신문]한동안 사드에 탄핵에, 머리속이 온통 정치다. “입장”이라는 제목을 생각하면서 이 제목으로는 정치적일수밖에 없을탠데, 잠깐 걱정되어 다른 제목을 생각해볼까 하다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오늘만 아주 조금 “정치적”이고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번 써보기로 했다.

  사람은 주관적이다. “객관적으로 그렇지 않니?”라고 하는 사람은 보통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다. 내 속에 수십년간 도사리고 있던 자아는 그 어떤 외부의 자극에도 “주관”적인 감과 의견과 결론을 지어준다.

  육아를 하는 나는 조금이라도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수없이 매일매일 리마인드하면서 노력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주관적인 아이 입장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경험적 선배라는 잘난 척은 전혀 없지만 엄마라는 특수관계인, 게다가 모든 지출은 내 지갑에서 나가게 된다는 점이 강하게 나의 입장을 고수하게 한다. 

  이명박정부 말미의 대선에서 “진보”인 남편과 같은 입장에서 선거의 과정을 지켜봤다. 그때 내가 남편한테 이야기했던 것이 있다. A 가 아무리 바보이고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B가 그 사람의 여러가지 점을 들어 세번 이상 A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B는 A를 싫어하는 구나 이상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공지영의 “도가니”를 읽다가 갑자기 책을 덮어버리고 결국 마무리하지 못하게 했던 대목이 있다. “진실은 게으른 법이다.”

  진실의 지위 또는 주관적인 정의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게으르고 오만스럽다.

  어린 친구들이 태극기집회에 나서는 분들과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말도 안되게 외 저러지… 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다. 불과 30년 전에, 그분들은 굶어봤고 내 아이를 굶겨봤고 자칫하면 북한이 쳐들어올 수 있다는 점도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냄비에서 느끼지도 못하고 천천히 익어가는 개구리들처럼 북한이 쳐들어온다는 것은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결혼하는 것처럼 그럴수도 있지만 그럴리가 같은 이야기로 길들여져 있다. 남북관계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감정의 바탕을 느껴보고 싶었다.

  화합이라, 이런 다른 역사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어떻게 화합시킬 수 있을까.

  솔직히, 이번 탄핵 사건의 경우 태극기집회의 분들도 그들의 감정에만 충실했고 우리도 우리의 감정에만 충실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이겼고 그들은 졌다. 다수인의 폭정에 그만큼 익숙해져 있는 우리 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도 역사는 한바퀴 더 굴러왔고 우리는 “진보적인 민주”를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역사의 굴레를 쫓아오지 못하면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자처할 수 있다.

  아마 이번 양쪽 집회의 인원수를 세어봤던 사람들은, 판사님들과 앞으로의 대선과 총선을 생각하는 의원들, 잠재 의원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과연 역사가 한바퀴 더 굴렀을까도 고민해봐야 할 점이고 앞으로도 과연 “화합”이 아닌 다수인의 폭정의 연속으로 우리가 계속 “다수”로서 우리 입장에서의 “정의”와 “민주”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또한 숙제다.

   이런 연민이 들기도 한다.

  내가 낳은 새끼니까, 내가 때리고 죽이면 또 어때.

  지금 듣기에는 지나치게 무법 무식의 멘트 같지만, 2~30년 전의 시골에서는 제법 흔한 얘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헌법”, “법치”로 인정(人情)이나 나를 먹고 살게 해줬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를 북한으로부터 안전하게 해줬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깨부수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화합”이 필요하다면 누가 손 내밀어 누구를 보듬어야 하는가.

  그들은 젊음을 다 받쳐 우리를 보듬어 주었다.

  며느리여서 그런가, 나는 어머님의 그 어떤 이야기에도 웃으면서 대답하고 손 한번 더 잡아 드려야지 노력한다. 나의 이념과 나의 생활로 그분을 설득하고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고 내 남편을 낳아주고 키워주신 고마운 분을 나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제껴 버릴 수도 없다는 것을 나는 동물적으로 느끼고 있으니까.

  사윤이를 낳고 출산휴가 중에, 경험이 없는 나는 산후 한달 쯤부터 혼자서 살림과 육아를 다 떠맡고 있었다. 그 당시 어머님께서 도와 주신다고 올라와 계셨고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님은 육아도 할 수 없었고 식사도 내가 챙겨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아니면 언제 어머님을 모시고 있어볼까 싶은 마음에 뭐라고 하셔도 웃으면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어르신들이 늘 하시는, 우리는 애 낳고 바로 엎고 밭일 했고, 풀어 두면 면 추울까 싸 놓으면 더울까 노파심에 이런 것이 일상이었다. 우리 첫째는 좀 유난스러워서 한달 이후부터는 오후 내내 세워서 안고 있지 않으면 끝없이 울고 징징거렸다. 낮잠을 재우더라도 내 가슴 위에 세워서 엎드려 놓고 재웠고 그렇게 세시간을 앉아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전에 빨래에 청소에 모든 살림을 끝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야근한 남편이 돌아왔고 나는 밥을 차려서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고 드디어 애를 남편한테 맡기고 잠깐 쉬려고 했는데, “애미야, 지금 국이라도 끓여 놔야 야가 밥 먹고 출근하지… “라고 하신다. 눈물이 왈칵 올라올 뻔 했다. 네… 하고 국을 끓여놓고 밤에 남편이랑 조용히 이야기 했다.

  어머님 입장에서는 며느리나 손주가 어떻냐 보다는 내 아들이 아침 한끼 따뜻하게 먹는 것이 더 중요할 꺼야. 내가 엄마여도 그럴 꺼 같아. 그런데 내입장에서는 좀 서운하고 힘들 수 있는 일이야.

  신기하게도 남편은 이런 내 입장을 이해한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쓰레기만 알아서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누가 누구를 보듬어주고 사랑하고 살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존중, 존중 정도는 해줘야 더불어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은 모르겠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진리나 정의가 아닌, 나의 “입장”임을 겸허히 한번 더 생각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오만때문에 지는 일도 없고 그 오만때문에 상처 주는 일도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며칠 전, 중국의 여러 도시의 여러 친구들이 같은 시간에 문자를 준 적이 있다. 태극기 시위의 사진을 걸어놓고 중국의 SNS에서 한미연합하여 중국과 결사 항쟁… 라는 이름으로 오전 중에 전 중국을 휩쓸었던 것 같다. 이것이 사실이냐고… 태극기와 이보다 더 큰 성조기가 같이 나와있고 도로를 꽉 메우고 있는 사진이라… 사진만 보면 그렇게 읽히기도 하겠구나 싶었다.

  사드, 중국인도 태극기가 아니라 성조기에 흥분했다는 점은 설명하고 싶다.

그 수십년간 쌓여온 오래된 정서의 바탕이 또 한번 다른 것이다.

  주변의 한국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어쨌거나 북한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드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을 많이 한다. 물론 이는 진실과, 전쟁 기술과 무기 매매와 이익과 외교와 모든 것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의 일반적인 감정적인 선택인 듯 하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무기 매매”를 위하여 자신들의 패권을 위하여 세계의 불화 요소를 만들고 자기들의 나와바리를 넓혀가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 마저도 불사하는 그런 악의 축은 오랜 세월 동안 “미국”으로 알고 있었다. 이 또한 오랜 시간 북한을 염려하는 한국과도 비슷한 이성적인 판단이나 해석이 아닌 “정서”이다. 엄마가 왔으니까 괜찮아…를 밀양선에 팔려가고 있는 와중에도 진짜 괜찮다고 느끼는 것 같은 그런 정서.

  그런 점에서 중국의 서민들은 태극기+성조기에 흥분했다.

  한국은 우방이었으나 미국의 손을 잡고 악의 축에 같이 뛰어들겠다 이거지… 라고 전혀 이성적이지 않게 읽게 된다.

  중국입장에서의 군사적 입지와 사드의 데미지 등을 기술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게 된다면 아주 다른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한국입장에서의 북한의 위협과 실제 사드의 목적과 효과 그리고 한국인들이 이로 인해 부담하게 되는 세금과 무역적 손실 등등을 감안한다면 또 다를지도 모른다.

  이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다만 서민들은 이런 진실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이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고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어”라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알 수 없다. 소소하게 하나의 회사에서 마저도 진실이 뭔지를 알지 못하는 마당에 조작된 언론에 의하여 보여주고 싶은 것만 각자 입장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알기는 뭘 안다는 말인가. 실제로 언론이 자율경쟁 시장이고 모든 사람들의 입장이 동등하게 나열된다면 그 많은 이야기를 듣고 소수 판단력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입장과 목적을 가감하면서 알아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전제가 없다. 언론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협하고 일부에게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인정할 테니까.

   나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선거 당시의 티비토론에서 순환출자 질문을 받고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요…”라고 넘어갈 때 분노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 마저 모르겠지 라는 생각에 우울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진실이다.

  “7번방의 선물”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울고 또 울었다. 꼼꼼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접했던 많은 흉악 범죄의 뉴스와 과정들이 “7번방의 기적”에서 나왔던 내용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누굴 믿고 우리는 범죄자라고 분노하고 가족에 대한 인신공격마저도 마다하지 않았던가.

   이 수많은 과정에서 아쉬운 건 중국이 됬든 한국이 됬든 정치를 하는 “높은 분”들 입장에서의 판단과 대처다. “협박”과 “원천봉쇄”의 시도로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나오는 건 상처투성이다. 되돌릴 수 없는. 외교라는 것을 진정 국익이 무엇이고 국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단 한번이라도 맡아본 적이 있었던가.

   수많은 시간을 지나고 수많은 사기를 당하고 수많은 “정의”를 체험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이성에 대한 고수는 놓치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다음, 또 다음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가 아닐 수 있고 나의 입장의 그러하지 않을 수 있기에 우리는 또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 아는 것을 기반으로 각자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겠지. 이렇게 우리는 더디게 더디게 하루 또 하루를 살게 되는 것 같다.

  입장,

  박근혜 “전”대통령이 되는 순간 많은 것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승리의 쾌감과 “진보”, “민주”의 향기를 느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입장은 또다시 내가 대충 살아도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어 라는 합리화 만을 위해서도 수 없는 루머와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싶어하고 심지어 만들어서 퍼트리기도 할 것이다. 대통령 국정 농단과 탄핵 사건은 우리가 겪어왔던 수만은 고리들에서의 하나의 문제점이었지 그것이 문제의 핵도 전부도 아니었던 것이다.

   아침에 아이들이 티비프로그램을 가지고 싸우고 있었다.

  막내는 어제 봤던 공주 만화를 다시 보고 싶었고 언니는 봤던 거니까 그거 보지 말고 다른 것을 보자고 한다. 막내가 징징거리다가 엄마가 화가 났고 티비를 꺼버리고 둘다 보고싶은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따로따로 샤워를 시키면서 언니랑 이야기했다.

  사윤아, 너도 다섯살 때는 봤던 소피아공주를 또 보고 또 봐도 계속 보고 싶어하고 좋아했어. 기억나? 사율이도 그냥 공주를 보고 있는 것이 좋아서 그런거야.

  동생이랑 그랬다.

  사율아, 언니는 커서 봤던 거 또 보는 거 싫어해. 엄마도 드라마도 봤던 건 다시 보는 거 별로야, 사율이가 보고싶은 거 안보여 주려고 그랬던 건 아니야, 알겠지?

   입장.

  지극히 주관적이 내 생각이 외부로 들어날 때 보이는 것이 입장일 것이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세상 둘도 없는 절친같은 운명적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아이들마저 입장으로 울고 운다.

  우린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입장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지나 않나. “우리”라는 이름을 만들기 위하여 과연 얼마나 많은 입장들을 짓밟고 시작하고 있나.

  아이러니하게 이런 것을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과 항상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전혀 다를 바 없이 또는 단 한 끗 차이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것을 한순간도 놓지 않고 살기로 한다.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 이 순간이 내 입장에서의 내 인생의 전부이니까.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