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재순: 중국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상임부회장중단편소설집 베이징과 서울에서 각각 출판 소설, 수필 등50 여 편 발표.(카카오스토리 http://blog.daum.net/cs194819/5)
[서울=동북아신문]늦가을 비가 구질구질 내리고 있었다. 작고 허줄한 트럭 한 대가 빗속에서의 덜커덩 소리를 마치고 칙-하며 멈추어 섰다. 기사인 듯싶은 한 남정이 운전석에서 쿵하고 내려서더니 차 우에 덮였던 비닐을 확 당겨 벗겼다. 조촐한 이삿짐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둘 짐을 내려놓는다. 내려지는 짐과 함께 그 속에 웅크리고 있던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나무토막마냥 난장이를 겨우 면한 법한 남자 하나와 멋없이 길고 가는 몸체를 가진 여자였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시교 근처의 크지 않은 동네- 그 동네에서도 또 좀 동떨어진 외딴집이다. 그 집은 벌써 오래전부터 비어있던 집이였다. 이사 간 주인이 집이 팔리지 않아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집이였는데 아마 이번에 아주 헐값에나마 팔려 나간 모양이었다. 빈 절간같이 먼지와 고요에 묻혀 있는 텅 빈 집안은 심드렁하니 낯선 주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쓸데없는 잡동사니들을 집어치우며 먼지를 털어내고 있던 안주인은 벽에 걸려 있는 캘린더에서 어느 여름날의 숫자에 눈길이 멎어버렸다. 동공이 굳어진 그녀는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종잇장을 와락 잡아당겨 뜯어 버린다. 깜짝 놀란 남편이 달려와 아내의 눈길이 꽂혔던 찢어진 달력의 어느 한 숫자를 보았다. 모든 것을 알아차린 그는 말없이 아내를 끌어안았다…

이 외딴집의 굴뚝에선 비릿한 흙냄새를 풀풀 날리며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 올랐다. 빗속에서 갈래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가는 회색 실타래 같은 연기는 한 많은 아낙네의 푸념 같이 처량하게 공중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얼마가 지나서야 동네 사람들은 그 외딴집에 새 주인이 이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두 내외는 슬하에 자식도 없이 단솔한 두 식구의 가정 이란 것, 또 하나, 조선족이 많은 이동네 사람들과는 달리 중국사람 즉 한족이고 성이 왕가란 것, 그 외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소문을 내기 시작 했다.
“새로 이사 온 집 말 이에요, 봤어요? 여자는 천성 콩나물같이 생겼고 남자는 어쩌면 그렇게 송이버섯 같이 생겼겠어!”
그리하여 그들 내외의 이름은 그만 “콩나물여자” “,송이버섯남자”라고 명명되고 말았다.
그들이 이 고장에 온 것은 어느 이름 없는 자그마한 신발공장에 출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이사 온 이듬해 여름은 장마철 기간이 무지도 길었다. 매일 동네를 가로질러 출퇴근에 오르는 그들은 언제나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다녔다. 이상하게도 키가 껑충한 그녀는. 우산을 잔뜩 옆으로 벌려들고 그 남자는 그녀의 겨드랑 옆에서 그녀와 몸을 딱 붙이고 부지런히 같이 걷고 있었다.
“웬일이여, 불편하지도 않나? 기가 차서”
사람들은 높낮이가 그렇게 차이나는 두 사람이 한사코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붙어 다니는 것이 너무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놀란 눈빛으로 상식에서 벗어난 그들의 행보를 한참씩 서서 바라보군 하였다. 이런 부조화의 풍경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우산을 쓰는 날마다 지속 되었다.
옆을 지나는 동네 분들이 고개를 한껏 돌리면서까지 이상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아도 그 부부는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늘 그 한 모양새로 걸어갔다. 그런데 참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우산 하나를 꼭 같이 쓸 만큼 사이좋게 늘 붙어 다니는 부부건만 그들의 얼굴엔 도무지 웃음기란걸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항상 가라앉은 낮은 톤의 조용한 대화, 얼굴 표면 전체에 덮여있는, 그 무엇을 누르는 것 같은 얇고도 무거운 한 층의 납판 같은 막, 저 가슴을 누르는 무표정한 막 속엔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건가? 혹시 어디서 사고라도 치고 여기로 도망 온 사람들은 아닐까,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의 짐작을 해 보고 있었다.

신발공장이 어수선한 소문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미남이라고 손꼽던 마가라는 부공장장이 공장의 긴 생머리 어린 직원을 옆에 차고 어디론가 도망쳤다는 것이다. 방직공장에 다니는 그의 마누라는 어린 아들을 안고 와서 온 공장을 다 뒤집으며 남편을 찾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심양 어디에 가서 둘이서 벌써 살림도 차리고 가정식 신발공장도 차리고 있다고 수근 거렸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결혼 당초에 그 마가라는 부공장장과 마누라는 미남 미녀 멋진 커풀로 이 고장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한다. 물론 지금은 옛이야기지만.
송이버섯과 콩나물이 처음 이 공장에 왔을 때였다. .
“아니 두 사람이 부부라고? 핫하하!”
공장의 부공장장이란 사람은 완전 상 반대의 모양을 가진 두 사람을 번갈아 훑어보더니 큰 소리로 앙천대소 하였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부부라 하니 한 차간에서 일하라고 하였다. 옆에 사람이 부부를 한데다 밀어 넣는 것이 마땅하겠느냐 귀 띰 하였다.
“당연히 마땅하지, 난쟁이와 꺽다리가 서로 도울 수 있으니까 핫하하”
그 부공장장 이라는 마가의 비양조와 풍자가 가득 섞인 말에 송이버섯은 몇 번이고 울끈하여 되돌아서려 하였다.
“우리가 이런 상황 가릴 때예요 ?”
매번 콩나물은 이렇게 차분히 남편을 깨우쳐 주군 하였다.

둬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공장장이 전 직원과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던 중 안타까운 소식을 내놓았다. 그 도망간 마가의 아들이 혈우병에 걸려 급한 수혈이 수요 된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잇몸에 피가 잘나고 온몸에 멍이 잘 들어도 무슨 병인지 확진이 따라가지 못했었는데 며칠 전 탁상다리에 부딪쳐 넘어진 것이 심한 출혈로 이어져 병원에 갔더니 여러 모로의 진단을 거쳐 혈우병이란 것이 확진되었다는 것이다. 어제 밤에 그 마누라가 울며불며 하는 말이 체내 체외로 끊임없이 출혈을 일으키는 이 병은 시급한 수혈이 수요 되는데 애 아버지는 소식 두절이여 찾을 수 없고 지금 병원 혈액 창고에 그 아들에게 맞는 O형 혈액이 품절이 되었단다. 큰 외지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돈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계속 울었다고 한다. 지금 공장이 어려워 자금을 지원해 줄 수도 없으니 혹시 혈액형이 맞는 분이 있음 병원 가서 검사를 하고 우선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수근 거리며 도망간 애 아버지 마가를 썩어져라 욕을 하면서도 누구하나 선득 대안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이튿날 콩나물이 공장에 출근하여 송이버섯이 하루 결근하게 된다고 알려 왔다. 무슨 일이냐고 공장장이 물었다.
“아마 병원에 갔을 거예요”
콩나물의 말을 듣고 그 양반 토막나무마냥 단단해 보이더니 어디 아픈가? 공장장은 나름대로 생각하였다. 그리곤 더 묻지도 않았다.
그날 저녁, 그 외딴집· 방안엔 촉수 낮은 희미한 불빛이 두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여보 이것 좀 드세요”
누워있는 송이버섯을 잡아 일으키며 콩나물이 푹 삶은 닭 곰국을 차려 놓았다.
“심장도 별로 안 좋으면서 왜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헌혈을 한 거예요? 설마 공장에 O형이 자기 혼자겠어요”
“ 애가 참 위급 하더군 많은 양의 헌혈이 수요 됐어,”
“뭐가 그렇게 안타까워서, 그 싸가지 없는 마가가 우릴 어떻게 대했는데,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 콩나물이 말을 잇지 못한다.
‘아들애가 불쌍하잖아, 다 같은 자식인데…“
자식이란 한마디 말이 온 방안에 침묵을 깔아 놓았다.
아빠 엄마를 보고 늘 싱글싱글 웃던, 자신들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얼굴이 환영같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은 또다시 닥쳐왔다. 방학을 맞이한 동네 애들은 동네에서 떨어진 이 외딴집 뒤들녘- 야트막한 언덕바지 같은 야산을 옆에 끼고 출렁출렁 흘러가는 작은 강물로 몰려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엔 뭉실뭉실 떠있는 흰 구름들이 제자리 답보를 하며 강물 위에 한껏 모습을 비춰본다 야산의 각가지 이름 모를 잡목들로 무성한 숲속에서는 여름 벌레들이 앞 다투어 찌르륵-찌르륵 요란을 떨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배산임수(背山临水)의 아름다운 화폭에 평화로움을 서사하고 있었다.
모처럼 같은 휴일을 맞이한 콩나물 내외는 창문들을 열어놓고 집안 청소에 바빴다. 뒤 창문으로부터 애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말소리들이 흘러 들어왔다. 창문으로 다가가 뒷 들녁을 바라보던 콩나물이 갑자기 비명 같은 놀랜 소리를 질렀다.
“여보, 저 애들이!”
그리곤 털썩-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 왜이래?”
강물에서 신나게 자맥질하는 애들의 풍경이 한 눈에 안겨왔다.
밖을 살피던 남편은 비로소 영문을 알아차렸다.
“ 가뭄이여서 저 강물은 무릎밖에 안 올라오는데”
어느 결에 콩나물 옆에 털썩 같이 주저앉아 콩나물의 머리를 부둥켜안으며 송이버섯이 일깨워줬다. 그렇지, 저 강물은 무릎까지 겨우 올라오는, 버들 숲을 가로질러가는 냇물 같은 작은 강물이었다. 사실 콩나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물놀이를 하는 애들을 보고 기암을 한다. 거침없는 눈물이 속옷 차림인 그녀의 마른 젖가슴으로 줄줄 흘러 내렸다. 콩나물의 두 손을 부여잡고 무어라 설득을 하는 송이버섯의 눈에서도 막을 수 없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잊을 수 없는 그날이여

콩나물과 송이버섯은 정말 쉽지 않은 결혼을 하였다. 키가 큰 여성 집에선 남자 키가 너무 작다고 반대하였고 키가 작은 남자 집에선 여자 키가 멋없이 크다고 탈 잡았다. 그런데다 콩나물에겐 아버지가 없었고 송이버섯에겐 어머니가 없어 양가의 살림살이들이 모두 끼니를 겨우 이어가는 정도였다. 그런데 양친 친척들이 별별 소리를 다해가며 반대했지만 인연은 끝내 이어지고 말았다. 그 이듬해, 그들은 떡판 같은 아들을 낳았다. 정말 놀랍게도 아들애는 커 갈수록 키꼴은 저 엄마를, 얼굴은 번듯한 아빠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 애 친구들은 이 공부 잘하고 체육 잘하는 자기네 반 반장을 모두 좋아하였다.

중학교 가족 체육 운동 시간 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발목을 한데 묶고 절주 있게 앞으로 달리는 경색이 한창 이였는데 키가 큰 아들과 키가 작은 아버지가 펌프 절주가 잘 맞지 않아 몇 발자국 못가서 꽝당 넘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의 폭소 속에서 간신히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던 아들은 이미 정해진 꼴등이 확인 되자 천천히 두 발목에 묶은 끈을 풀더니 싱긋 웃으며 아버지를 등에 업고 뒤뚱뒤뚱 목적지 까지 도달했다. 온 운동장엔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느님께서 용케도 만들어 주셨네, 저런 복이 있을 줄 이야”
주위 사람들은 혀를 차며 감탄을 하였다. 그때는 바로 중국 정부가 바야흐로 번져가는 인구 증가율 때문에 “계획생육”이란 정책을 한창 실행하고 있는 시기였다. 조선족을 비롯한 오십 몇 개의 모든 소수민족은 두 애 출산까지 허용하는 우대정책을 썼지만 유독 본 주체민족인 한족에게만은 애 하나 출산밖에 못하게 하였다. 둘째를 낳으면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벌칙 금을 물고 또 호적도 올릴 수가 없는지라 콩나물도 애를 낳고 얼마 안 되여 피임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말 그대로 하나 자식 열 부럽지 않게 키워 가고 있었으니. 집안엔 항상 찬란한 해살이 넘쳤고 세 식구의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찰랑거렸다.
아들애가 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그해 여름이었다. 아들애는 외할머니 댁으로 놀러 갔다. 나무그늘 밑에서 부채질을 해도 땀이 흐르는 찜통더위다. 그 또래 외할머니 동네 애들은 성시에서 온 이 멋진 중학생을 모두 좋아했다. 그들은 합의가 되여 저수지에 가서 시원한 물놀이를 하기로 하였다. 친구들 중에서 수영을 제일 잘 하는 그 애는 반짝반짝 햇볕을 반사하는 수면을 바라보며 서서히 안쪽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저수지 가장 자리에서만 물놀이를 하고 있던 친구들은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손뼉도 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자맥질하며 나아가던 그 애의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솟구치기를 두 번 하더니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멀찌감치 서서 영문을 모른 체 이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친구들은 더는 수면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안차 그제야 자지러지게 소리들을 지르기 시작했다.
“야-빨리나와-빨리-”
“큰일 났어요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저수지를 만들 때 가끔은 깊은 웅덩이가 생긴다 한다. 저수지 중앙을 향해 활기차게 헤엄쳐 가던 그 애는 바로 그 깊은 웅덩이의 마력에 빠져 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둬 번 솟구치던 그 애는 꿀꺽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콩나물과 송이버섯이 소식을 전해 듣고 허둥지둥 찾아 왔을 때는 이미 퉁퉁 부은 아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을 때었다.
아아, 세상이 뒤집히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목을 맨다고 산으로 들어간 외할머니를 동네 사람들이 겨우 찾아 내였다. 사람들을 뿌리치고 식음을 전패 하며 아들의 무덤 앞에서 사흘 밤을 지새운 콩나물은 끝내 실신하여 누워 앓기 시작했다.
집문 앞 큰길엔 학교로 등하교하는 또래 애들의 웃음소리 말소리가 끈임 없이 들려온다. 그리고 책상위의 책들과 벽 어디에나 걸려있는 번듯한 아들애의 웃는 얼굴을 담은 액자들, 모든 것은 그대로 눈앞에 생생한데 아들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없는 텅 빈방. 이 큰 성시의 그 많은 인파속 어디에도 가슴을 오리는 그 그리움의 그림자는 찾아낼 수 없었다. 만사를 제쳐놓고 밤낮 지극정성으로 옆을 떠나지 않는 남편의 병수발에도 콩나물은 일 년 넘게 누워 있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아들도 잃어버리고 직장도 잃어버렸다 몸이 간신히 회복 되었을 때 그들은 도저히 이집, 이 성시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어디에나 아들의 흔적이 눈에 밟히는 아픔을 참아낼 수 없었다. 피가 흐르는 가슴을 다독이며 멀리멀리 어딘가에 가서 망각이란 선물을 안아보고 싶었다.
“당신에겐 아직 내가 있고 나에겐 당신이 있소 우린 한시도 떨어지지 말고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잖아.”
그들은 아픈 마음을 서로 끌어안고 이 생소한 고장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낡고 허술한 공장은 인력난에 시달리던 차여서 마침 그들로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집 뒤 개천에서 애들은 끊임없이 웃고 떠들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집안에서 콩나물은 멈추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송이버섯은 일어서서 앞뒤 창문을 꽁꽁 닫아 버렸다. 그리곤 아내를 부둥켜안고 같이 흐느꼈다. 그는 오랫동안 참고 있던 아내의 슬픔과 눈물을 쉽게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막고 싶지도 않았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참혹이여
외딴집의 달력도 벌서 몇 개를 바꾸었다. 시간은 피 흐르는 아픈 상처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망각을 위하여 혹시 둘 중 누구라도 손을 놓으면 무너질 것 같아 그림자처럼 붙어서 버팀목의 하모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에서 그 부부의 그림자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다. 항상 특유의 풍경을 이루며 동네를 꿰질러 다니던 사람들이였던지라 모두들 머리를 기웃거리며 행방을 궁금해 하였다. 혹 또 이사라도 갔나?

그렇게 얼마가 지난 어느 날 이였다. 숨 막힐 듯 답답하게 펼쳐진 하늘이다. 물기 가득한 먹구름이 그 하중을 이기지 못해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떠 있더니 끝내 와당탕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를 지르며 쏴-하고 몸체의 모든 것을 쏟아버린다. 소낙비는 거침없이 닥치는 대로 퍼 붓는다. 콩나물이 동네 거리에 나타났다! 길고 가냘픈 몸매는 더 휘청거렸고 풀기 하나 없는 얼굴은 더 조막만 해 졌다. 그리고 그녀는 일색 검정 옷을 입고 있었다. 살펴보니 항상 그녀 옆에 붙어 다니던 송이버섯이 없어졌다. 웬 일이야? 별로 익숙하지도 않고 종래로 웃음기도 없는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그러했다. 그들이 다니는 신발공장에서 소문이 새여 나왔다. 송이버섯이 어느 날 밤에 심부전으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것이었다. 그 소문도 놀라웠지만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콩나물이 예전과 변함없이, 사람들의 눈에 익은 그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데 마치 송이버섯이 그의 옆에서 같이 걷듯이 예전과 똑 같이 우산을 오른쪽으로 한껏 비껴들고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한쪽 어깨와 등줄기는 비에 흠뻑 젖고 있었다. 분명 그녀는 옛 그대로 송이버섯과 같이 걷고 있었다. 얼굴엔 예전보다 더 굳어 보이는 납덩이같은 막 한 층을 씌워놓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던 콩나물은 저녁 무렵이 되자 간신이 몸을 춰 세우며 일어났다. 그는 마을에서 좀 떨어진 작은 시장에 가서 돼지고기와 셀러리 한 묶음을 사왔다 뚝딱뚝딱 도마 위에서 만두소를 만들어내 몇 안 되는 물만두를 만들었다.

장맛비에 뒷산 언덕아래의 개천은 잔뜩 덩치가 커져서 강물처럼 누런 물살을 이루며 출렁출렁 거세게 흘러내린다. 장맛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저녁노을이 들녘과 강물을 비춘다. 찍 소리 없이 풀숲에 숨어 잇던 벌레들이 또 곡을 터뜨린다. 창문을 열고 멍하니 그녀는 초점 없는 눈길을 흐르는 강물에 꽂는다. 노을이 걷어지고 어둠이 엇비슷이 기어든다. 그녀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옷장에서 이 옷 저 옷을 꺼내놓고 초점 없는 눈길로 옷 한 벌을 고른다. 모처럼 간단한 화장도 하였다. 만두를 담은 그릇을 바구니에 담고 천천히 문밖을 나섰다. 한참서서 무슨 생각을 하던 그는 곧바로 집 뒤쪽으로 걸어 나갔다. 또다시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가엔 풀어헤친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우두커니 서있는 여인 같은 키 큰 수양버들이 있다. 실실이 풍성한 가지들을 늘어뜨리고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녀는 바구니를 들고 수양버들 아래로 가서 어둠에 천지간의 윤곽이 사라진 먼 곳-밑굽 없는 함정 같은 묘연한 그곳을 바라보았다. 한참 있다 바구니에서 만두를 꺼내었다.
- 만두를 그렇게 좋아하던 사랑하는 내 아들, 엄마는 매일 출퇴근에 바빠 그렇게 좋아하던 만두도 몇 번 못 해 주었구나. 그리고 당신도 같이 먹어요.
그녀는 만두를 하나하나 강물에 뿌렸다. 그리고 신을 벗었다.

며칠의 폭우에 잔뜩 사나워진 강물은 그가 몇 발자국 띠여 놓기 바쁘게 그의 허리를 치며 힘없이 몸을 맡기는 그녀를 넘어뜨렸다. 그녀는 추호의 미련도 없었다. 오히려 온몸이 알 수 없는 격정에 붕 떠있었다. 그는 물을 삼키며 아들을 보았고 남편을 보았다.
바로 이때였다 조그만 한 물체 하나가 물을 삼키고 있는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눈을 번쩍 뜬 그녀의 눈앞엔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물결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빛은 엄마를 찾는 어린 아기의 처절한 눈빛이었다. 강아지는 살겠다고 깽깽거렸다. 문득 무엇이 머리를 탁 치는 감을 느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강아지를 끌어 당겼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강아지를 품에 안고 물을 토하며 강가로 간신히 걸어 나와 풀숲에 훌러덩 누워 버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얼마가 지났을 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간신히 눈을 뜨고 눈앞에 놓인 작은 물체를 바라보았다. 물에 푹 젖어 착 달라붙은 털 때문에 역시 가느다란 몸뚱이가 된 강아지의 얇은 배 가죽이 팔딱팔딱 할딱이고 있었다. 조금 있더니 강아지는 몸을 일으켜 그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연약한 생명체가 희미한 숨결을 고르며 그에게 다가 왔다. 그의 눈에서 가느다란 눈물이 흘렀다. 너 몇 달이나 되니? 그녀가 중얼거렸다. 어린 강아지는 그녀의 눈빛을 느끼자 혓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싹싹 핥아 주고 있었다. 먼 옛날 어린 아들이 젖을 달라고 엄마 품을 파고들던 기억이 아리송하게 떠올랐다. 강가에 버려졌던 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옆에 물만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긴팔을 내밀어 만두를 주웠다. 어둠속에서 파란 불이 켜진 강아지 눈이 재빨리 만두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래 먹어라 넌 길을 잃어 이렇게 되었니, 버림받아 이렇게 되었니? 강아지는 그녀의 손바닥에 있는 만두를 냉큼 삼켰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비칠거리며 강아지를 바구니에 담고 일어섰다.

얼마가 지났을까, 동네 사람들은 콩나물이 얼룩 강아지 한 마리를 늘 품에 안고 다니는걸 보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강아지도 콩나물의 우산아래서 꼭 같이 걷고 있었다…

2016, 12,8
서울에서

류재순: 중국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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