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산

▲ 박수산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시분과장. 재한동포사회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디아스포문학의 시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인. 동포문학(4호) 시부문 대상 수상.
오렌지 먹기 

껍질 벗기기가 귀찮아통째로는 먹지 못할까 엉뚱하게 생각하다손톱으로 뜯고 또 뜯어 겨우 껍질을 벗겼다하얀 혈관으로 피를 주고받으며 붙어 있는 알맹이들맨살은 물렁하다입에다 넣고 단물을 넘기는데갑자기 산 뱀이 목구멍에서 넘어가는 느낌이다우린 서로 너무 많이 껍질을 벗겼다항상 쪽으로 가르는 데 열중했던 과거가 목구멍에서 꿈틀거린다원래 하나였는데 두부처럼 여러모로 가르고같이 숨을 쉬는 땅인데 공기조차 골라 숨을 쉬고한끝을 쥐고 종점까지 당겨야 하는데 한 줄을 놓고 서로 양쪽에서 당겼다가르다 못해 제 핏줄도 대담하게 남의 족보에 버젓이 올려놓았다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사방에서 통 것들이 입맛을 다신다  혈압 재기  현장에 일찍 출근해 보면안전교육장에서 혈압을 재보느라 분주하다정상으로 나올 때면 아무 말 없다가간혹 혈압이 높거나 낮으면저마다 자동혈압계기가 문제가 있다고 우긴다 엊저녁 술을 과음했거나갑자기 운동했을 원인도 있을 텐데자기 몸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기어코 혈압계기가 문제가 있다고 우긴다 생각해보면자신을 뒤집어 보지 않고항상 남을 가해자로 생각하는 우리그래서 충돌에 휘청거리고고착에 목을 매고 있지 않을까깊이 고민해본다 2017년 6월 26일 초고  재건축 건설현장  삽차로 깊숙이 땅을 파헤치면몇 천 년 전에 묻혀있던 자갈들이모래 속에서 민낯을 드러낸다 기나긴 흐르는 물속에서어떻게 살아왔을까어떤 건 주먹만 하고어떤 건 달걀만 하고어떤 건 메추리 알만하다 돌이 자갈의 모체라면저마다 각을 세웠을 텐데부딪침에 견디지 못했을까각이란 각은 다 문드러져돌의 모양은 사라져 땅속에 묻혔구나.  돌도 세월을 건너가려면날이 섰던 자존심들을 다 내려놓아야만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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