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조선족 3040>

여기는 내몽골의 일망무제한 대초원.여기 대초원에 우리 민족이 수전을 개척하고 뿌리내려 100여년, 조상들이 피땀으로 일구어놓은 터전을 굳건히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겨레들이 있다.

우리가 내몽골자치구 수부 훅호트(몽골말로 '푸른 도시'라는 뜻)에 도착한것은 4월 11일,초봄이라 황사바람에 날씨가 쌀쌀하다.끝이 간데 없이 펼쳐진 대초원은 아직도 노리께한 잔풀이 봄바람에 나시시 떨고 있어 좀은 황량하고 쓸쓸한감이 들었지만 대초원의 웅장함과 거대함을 그래로 간직하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밟고 선 이 내몽골 대초원,이 초원에서 몽골나라를 세운 위대한 칭기스칸 (1162-1227)이 천군만마를 호령하며 대초원을 일사천리로 달리던 웅장한 말발굽소리가 귀전을 스쳐지난다.그 말발굽소리를 멀리하며 들려오는 아리랑노래, 내몽골 대초원에서 우리 겨레들이 궤짐을 풀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지도 100여년,지금도 이 대초원에서 아리랑노래를 대를 이어 부르고 있기에 그렇게도 친절하고 살갑게 들려오는것이다.

중국의 북부 변강에 위치한 내몽골자치구는 동북으로부터 서남으로 쭉 뻗어 나간 좁고 긴 띠모양을 닮은 형태로 동서 직선거리가 2400킬로메터,남북 직선거리가 1700킬로메터이다.동,남,서쪽은 흑룡강,길림,료녕,하북,산서,섬서,녕하,감숙 등 8개성과 린접해있고 북쪽은 러시아와 몽골인민공화국과 린접해있다.여기에 49개 민족의 2100만명이 살고 있는데 각 민족중 조선족 인구수가 7위로 2만 2000여명이다.내몽골자치구 건설환경보호청의 원청장으로 사업하다가 정년퇴직한 렴호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내몽골에 조선인들이 정착한 력사는 동북과 비슷한 시기로서 100여년 력사를 가지고 있다.

1897년 제정러시아와 청정부는 중동철도부설협의를 체결하고 몇년간의 공사끝에 1903년에 통차하였다.중동철도를 부설할 때 많은 조선인들이 철도공사에서로역을 하였는데 공사가 마무리 되자 일부 는 철도에서 일하게 되였고 일부는 강을 따라 수전을 개척하고 논농사를 지으면서 정착하게 되였다.

이들이 처음 내몽골에 뿌리내린 다음 20년대와 30년대에 동립운동지사들이 일본제국주의의 마수를 피해 먼 내몽골에 농장을 꾸리고 운동자금을 마련하였고 같은 시기에 많은 조선인들이 일제의 등살에 못 이겨 내몽골지역의 눈강, 송화강을 따라 수전을 개척하고 새로운 삶터를 만들었다.

1924년 당시 한국 광복군참리부장이였던조병준은 상해의 대한민국 림시정부의 위탁을 받고 황하변의 써덩후루터우란 곳에다 배달농장을 꾸렸는가 하면 1926년 칭기스칸진에서 조선인 14호가 수전농사를 시도했으나 기후가 맞지 않아 실패하고 1939년에 동북 각지에서 떠돌던 조선인 300여명이 재차 칭기스칸에 들어와 물을 막고 수전을 개척하는데 성공하였다.그리고 집단적인 이주로는 1947년 목단강지역의 자발적으로 조직된 조선인 난민 200여호가 아영기 신발에 정척하여 수전농사를 개척한것이 지금 전 내몽골자치주에 유일한 조선족향으로 남아 있다.

해방후에도 포두강철공장건설,초원건설, 제지공장,고무공장건설을 지원하여 동북삼성의 조선족들이 내몽골에 갔으나 대부분이 서부 내몽골에 산재하여 있다.개혁개방 초기 훅호트,우란호트,하이랄, 만주리 등지에 동북의 조선족 몇백명이 김치장사나 식당을 하느라 내몽골에 진출했으나 지금은 대부분이 되돌아가고 그자리에 눌러앉아 발전한 사례는 손으로 곱을만 하다.하지만 동북의 조선족들이 개혁개방 초기에 김치장사나 식당을 꾸리면서 우리민족 음식문화를 내몽골에 전파한것은 쉬운일이 아니였다.

몽골족은 개고기와 매운 음식을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에 개고기와 매운음식을 먹지 않아 조선족음식점을 경영하는 조선족들은 애도 많이 먹었단다.그러나 맛을 들이고 난 다음에는 떼기 어려운것이 우리민족 음식문화인가 보다.조선족 정통식당에서 볼라니 몽골족들도 이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개장국을 잘 드는것을 보면 조선족들이 밀물처럼 내몽골에 진출했다가 설물처럼 빠져나왔지만 지금도 훅호트나,우란호트에 가면 진달래,아리랑,한국궁.연길불고기,조선개장집 등 간판을 내걸고 우리민족 전통음식을 고집하며 큰식당을 경영하며 고마운 분들이 있는가 하면 장사는 잘 되지않아도 시장에서 눌러 앉아 김치장사를 파는 아낙네들을 드문히 볼수있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한국인들도 내몽골대초원에 눈길을 돌리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활발한 상태는 아니고 광관객들이 드문히 드나들고 어쩌다 중소기업들이 고찰을 오는 상황이다.흑호트에 가서 한국 려행사나 한국독자 혹은 합자기업 간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는 푸술히 볼수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국료리도 찾아볼수 없다.그렇다고 한국기업이 없는것은 아니다. 2002년도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81개 기업이 내몽고자치주에 들어왔었는데 거의가 중소기업으로 방직업, 의류제조업, 양식업,식료품가공업, 목재가공업에 종하였지만 지금은 딱히 얼마가 남아있는지 구체적인 통계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하지만 한국인들이 내몽고초원에 대한 호기심은 지금도 끓기지 않고 있다.

올들어 1월부터 3월달사이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과의 무역액이 464만딸러, 한국기업이 42만딸러를 투자하여 적봉에다 신한농업무역회사를 설립하였고 훅호트시에 독자기업으로 각기 20만딸러와 1만따러를 투자하였으며 흥안맹에 한맹양돈장에 1만5000딸러를 투자하였다.물론 규모가 적고 투자액이 많지는 않지만 투자유치우대정책과 내몽골초원의 독특한 자원 우세를 설득력있게 홍보하고 조선족이 한국과의 뉴대역할을 잘 발휘한다면 앞으로 한국의 투자유치도 점점 상승세를 타리라고 조선족 유지인사들은 신심을 보여주었다.

훅호트는 내몽고자치주의 수부라지만 조선족의 3분의 2는 동부내몽골인 흥안맹과 후룬벨맹에 거주하고 훅호트시에는 1100여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말 그대로 정말 쌀의 뉘 같이 적지만 그들은 한사람같이 똘똘 뭉쳐 서로 돕고 나누며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다.직장생활을 하고 장사를 하고 바삐 돌아치면서도 민족의 얼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안고 우리 일이라면 발벗고 나선다.

훅호트에 사는 조선족 유지인사들은 내몽골조선족연구회(자치구민정에서 공식비준한 사회단체)를 내오고 내몽골의 조선족 정치,경제, 문화,교육 등 제반분야를 설렵하여 연구 할뿐만아니라 조선족의 친목과 화합에 일조하는 행사를 조직하군 한다. 그들은 이미 "내몽골조선족"이란 책과 "조선성씨족보전서"도 출판,발행하였다.그리고 매년 정월 초사흘이면 자작 도시락을 싸들고 한자리에 모여 명절의기쁨과 만남의 희열을 만끽하고 봄이면 파란 색삭이 돋아나는 초원에 나가 들놀이도 즐긴단다.

조선족이 뿌리내려 100여년, 선조들이 피땀으로 개척한 내몽골땅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겨레들의 밝은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의 찬란한 앞날을 그려볼수 있었다.

2006/05/11 흑룡강신문 특별취재팀 임국현기자, 남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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