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연의 " 이 길이 싫다 "의 경우 "구조주의 시학"이 초현실주의로 가장 잘 표현이 된 한 수의 좋은 시인것 같다.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 /전철역 3번 출구 /디지털단지로 빠지는 길/에서 볼수 있다 싶이 눈섭 하나 깜빡이지 않는 작자의 초현실적인 독백이며 " 이 길이 싫은 이유"는 "개창자 같이 길고 길고 천태만상의 인간상" 임을 우리는 알수가 있다. /전철이 토해 놓은 인파 속에 /한낱 돌멩이 같이 /나는 /비벼대고 부대끼는 속에/ 금방 어디론가 튕겨나갈 듯/달을 안고 나와 /해를 지고 돌아간다/ 청춘을 불태워 배고픔 달래려고/ 오늘도 /
누구의 값싼 노동력 되었나 / 는 말 그대로 생생한 삶의 현장을 직접 카메라를 들이대고 생방송 하듯하여 노스탤적인 디아스포라의 처절한 몸부림에 읽는 이의 마음까지 울컥해나기도 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질 들뢰즈(Gilles Deleuze),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등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의 논의를 이론적인 배경으로 두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작독자(wreader)나 리좀(rhizome) 개념 등이 하이퍼텍스트 시를 분석하는 데 있어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여 년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이퍼텍스트 시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한국의 경우, 하이퍼텍스트 시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가 상당 부분 많이 진행된 상황이지만, 이것이 창작에까지 연결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2000년, 새천년을 맞이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언어의 새벽’이란 이름으로 하이퍼텍스트 시 프로젝트를 진행한 줄로 알고 있다. ‘언어의 새벽’은 김정란 시인과 정과리 평론가의 주도하에 진행된 프로젝트로, 시인과 일반 독자들의 합동 글쓰기가 이루어진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
그림자가 원이다
구 원뿔 혹시 원기둥인가
원래 도형은
그림자가 직선이다
원래 도형은
삼각형 사각형 아님, 오각형인가
알 수가 없다
높은 차원의 입체와 도형이
낮은 차원에 사영해서 생긴 그림자로
3차원의 몸뚱어리를
1차원으로 사영하는 그림자일 뿐인데
키는
별로라 한다
키가 작다고
소개팅에서 여자가
수학과 시 (전문)
포스트모던의 문화는 순수이성(理性)에 대한 병적인 믿음으로부터 현실에 대해 너무나 많은 해석을 양산하면서 끊임없이 가치를 전복한 대중매체의 발달로 이룩된것 같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 그들은 느낌의 세계로부터 객관의 세계와 인간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던 언어의 기능을 전복"시켰기때문이다. 곰곰히 살펴보면 성해동의 " 수학과 시는 "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는 수학과 그림자ㅡ 키가 어울려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모더니즘이 철탑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그와 반대로 높게 쌓아 올리는것이 아니라 횡적인 발전을ㅡ 다고리로 한다. 이 시의 주제는 기실 간단하다. 소개팅에서 여자의 한마디ㅡ 키가 작다ㅡ인데 무변(无边)의 횡적인 발전은 독자들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가동하도록 장치되여 있다
아무쪼록 오랜간만에 읽어보는 좋은 시들이라고 하여야 겠다. 단숨에 배 부를수는 없다. 차근차근 기초를 잘 다져가고 있는 작자들의 노고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18년 1월 6일
동탄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