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희 수필가, 전동포모니터링단장, 재한동포문인협회 전회장, 수필/수기 백여편 발표. 수상 다수
[서울=동북아신문]내가 꿈꾸는 글쟁이 인생 나는 연변작가협회의 회원이지만 아직도 나 스스로 작가라고 자칭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럴듯한 글을 써서 문학상을 받은 적도 없고 내가 보기에도 내 글은 아직은 작가의 행렬에 들어서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부쩍 글쟁이 내 인생이 나에게는 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글쟁이가 아니었다면 그 외롭고 힘든 세월을 어떻게 견뎌 왔을까 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출로였다. 내가 처음으로 글을 발표한 것은 1985년 여름이었다. 어느 한 신문사의 통신원 학습반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실연당한 25살의 한 처녀가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실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자살한 그녀의 언니를 찾아가 취재를 했지만 그녀는 동생의 사연을 글로 남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통신 한편을 멋지게 쓰려고 했던 내 욕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신문 첫 면에 실린 짧은 글을 보면서 내심으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나의 글쟁이 인생이 첫 발을 내디디었다. 한번 꽂히면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성격인 나는 줄기차게 몇 천자에 달하는 통신을 연속 신문에 발표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신문사의 요직이라 이런 저런 사정으로 더는 신문에 글을 발표할 수 없게 되었다. 아쉽게도 나는 글쓰기를 접어야만 했다.

우연한 기회에 연변여성 잡지사 편집의 부탁으로 수기 한 편을 썼는데 그것이 나의 처녀작 ‘애모쁜 추억’이다. 그때가 1994년 5월이었는데 나의 첫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었다. 그 작품을 안고 골방에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연변작가협회 회원이 되기까지 50여 편의 수필을 썼지만 방송사에서 일하면서부터 주로 취재 글들을 많이 썼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수정해서 방송했을 뿐 깊이 있는 내 자신의 글은 쓰지 못했다.

50대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었던 한국에서 내 자신의 글을 다시 쓸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한국생활에서 내가 얻은 첫 번째 소득인 것 같다.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중국 조선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까지, 직장인으로부터 3D업종의 노동자로 전락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어쩌면 글쓰기였다. 어설픈 글을 써가면서 상처받은 내 마음을 스스로 위로했고 글속에서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내 자신을 찾았으며 글속에서 내가 앞으로 나갈 길을 찾게 됐고 글을 통해서 독자들과 공감하고 독자들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내 나름대로 꿈꾸는 글쟁이의 인생이 있다. 유식한 글쟁이가 되고 싶다. 유식함은 우선 책에서 나오는데 예나 지금이나 삶에 찌들려 책은 눈치레만 하다 보니 아주 무식한 짧은 소견의 글만 쓰고 있다. 어느 날 운이 좋아 로또가 당첨된다면 아니면 돈 많은 부자로 바뀐다면 소시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매일 억지로 나가는 파출부를 때려치우고 읽고 싶었던 책을 실컷 읽고 싶다. 기교가 있고 무게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요즘 한국의 한 인터넷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한 편의 글을 보내면 편집장이 무수히 긴 물음표를 나한테 보내온다. 처음에는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열을 받았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더니 아뿔싸, 내가 사용한 단어들은 대부분 중국조선족만이 사용하는 연변식도, 북한식도 아닌 한국식은 더구나 아닌 짬뽕 어휘들이였다. 띄어쓰기와 철자 그리고 문법도 새롭게 배우고 체계적인 한국문학공부를 하고 싶다. 여행수필을 쓰고 싶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한국의 아름다운 경치와 맛 나는 음식을 소개하는 여행 글을 쓰고 싶다. 비록 한국의 명소들을 가보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시간과 돈이 따라가지 못해서 꿈나라에서나마 그곳들을 헤매군 한다. 한권의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할지 몰라도 방황하고 아팠던 내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출간된다면 작은 파티를 열고 지인들에게 내 사인이 있는 책 한권을 선물하면서 그들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책 하나를 들고 하늘에 계시는 아빠를 찾아가 죽어도 아빠와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셋째 딸이 쓴 책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문학상을 받은 글보다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지금까지 자잘한 상을 받았지만 아직 묵직한 문학상은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상에 대한 욕심보다 글에 대한 내 자신의 만족감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 고민이다. 특히 글을 다 써놓았는데 도무지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던지 때로는 잘 써 보려고 여러 차례 고쳐보았지만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 원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쓰면 쓸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고 힘든 것이 글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가 만족되어 잘 썼어. 수고 했어 라고 나 자신을 칭찬할 수 있는 그때가 되었으면 싶다. 한국인들에게 조선족을 알릴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나의 글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조선족에 대해 알아가고 점차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글이 한국의 한 인터넷사이트에 발표되자 한국인들은 조선족은 모조리 추방해야 한다, 돈을 받고 일하면서 왜 힘들다고 하는지 아예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댓글이 열에서 아홉 개 정도이다. 상처 받은 마음을 다독이며 꾸준히 글을 싣다 보면 언젠가는 악성댓글이 동정과 칭찬 모드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쟁이인 내가 늘 갈구하고 희망하는 꿈이자 성공은 바로 이런 판타지이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