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누구도 부모들이 걸어간 그 길 위에 놓여있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고서 어느 날 동창생과 통화를 하다가 이런 얘기가 오갔다. ‘우리도 인제 60살이야. 나이를 생각해야지.’ 그 소리를 듣다가 잠간 멈칫했다.

‘뭔 소리야? 2년 연상인 너나 60세를 해라. 난 아직 멀었다.’ ‘멀긴 뭐가 멀어? 2년이나 4년이나 거기서 거기지 뭐.’ 구시렁거리며 전화를 끊었지만 꼼꼼히 생각해보니 4년 후에 60살이라는 생각에 섬뜩해졌다. 아니 내가 벌써 예순에 가까운 나이라니?

요즘 내가 빠져있는 드라마는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 (친애하는 나의 친구들)이다. 이 드라마를 보는 것이 두렵고 짜증나지만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력콤플렉스로 교수들한테 물주노릇을 하지만 배신만 당하는, 그래도 선의를 베풀 수밖에 없는 노처녀 오 충남(윤 여정), 딸 완희에게 욕으로만 사랑표현을 하는 난희 (고두심)지만 갑작스러운 암이란 소식 앞에 본래의 강인한 모습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으려고 자살소동까지 벌리는 희자, 희자의 둘도 없는 친구 문 정아는 세계여행을 꿈꾸지만 고집불통 남편에 의해 물거품이 되자 이혼을 제기한다. 난희의 베스트프랜드였던 이 영원, 화려한 여배우이지만 암을 몇 번이나 넘긴, 하지만 한 남자에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며 긍정적인 삶을 산다. 드라마는 노인들의 우정, 사랑, 남은 인생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 그리고 엄마의 인생, 장애인의 삶에 대한 다소 무거운 주제에 대해 조명하면서 우리 부모세대들의 이야기를 유쾌하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노희경 작가의 말을 빈다면 아무리 포장해도 이 드라마의 결론은, 부모님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 살기 바빠요, 그러니 당신들은 당신들끼리 알아서 행복하세요, 우리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정 떼세요, 서운해 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잖아요.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오늘의 현실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새삼스럽게 충격적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포장하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폭로했고 자식들이 부모 곁에 남을 수 없는 현실이 고의가 아님을 알려주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에게는 누가 죽었다고 슬퍼할 겨를도 없다. 내 기억력이 퇴화하고, 내 무릎이 시린 것을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내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귀도 안 들리고, 주의도 산만하며, 치매도 오고, "밑이 헐거워" 아무 데서나 빨리 용변을 봐야 하는 노인들의 이야기, 생로병사 중 로병사를 경험하는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기가 바로 노년기다.

“죽거나, 아프거나, 아니면 의지가 꺾이는 시기"로써 행복하지만은 않은 언젠가는 맞아야 하는 이별의 순간이 기다린다는 연장선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 마지막 회에서 요양원을 탈출하는 조 희자(김혜자)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치매에 걸린 희자는 문정아(나문희)에게 전화를 걸어 "너는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는다고. 정아야 나도 그러고 싶어, 감옥 같은 좁은 방 말고"라며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엄마가 생각나서 이 장면을 보면서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퇴직 후 바로 쓰러진 아버지를 따라 양로원에 계신지가 거의 15년 이 된 어머니는 걸핏하면 집으로 나가겠다고 떼를 썼다.

그때면 마음이 모질지 못한 두 언니는 엄마를 당해낼 수 없어서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총알같이 달려가 어머니를 어르고 달래고 하다가 되지 않으면 우린 다시 엄마 보러 다니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다. 엄마의 요구대로 가고 싶다는 요양원으로 세 번이나 옮겼다. 치매가 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는 세 딸 중 누구 집에 가도 괜찮으니 요양원만 아니면 된다고 매일같이 성화를 부렸다. 사실 세 딸 중에 조건이 맞는 집은 우리 집이었지만 출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안 된다고 잡아뗐다. 제일 큰 문제는 밤에 화장실출입을 할 때면 엄마를 의자에 앉혀 화장실에 모셔가서 옷을 벗겨드리고 뒤를 닦아줘야 하는 데 매일 저녁 세 번이나 네 번 이상이었다. 엄마를 온갖 감언이설로 양로원에 묶어놓고 가끔씩 명절 때만 선심 쓰듯이 하루 이틀 집에 엄마를 모셔가면서도 효녀인척 했다.

차를 타고 요양원에 마중 온 정아를 따라 전예 없이 화사한 모습으로 요양원을 뛰쳐나가는 희자의 모습에서 엄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얼마나 요양원이 지옥 같았을까. 그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인데 그 피를 물려받은 아들애가 내 마음을 헤아려 줄 거라는 믿음은 아예 버려야 할 것 같다. 이처럼 슬프고 잔인한 노년임을 깨닫게 하는 드라마가 바로 ‘디어 마이 프렌즈’였다.

이보다 더 슬픈 것은 나도 그리고 누구도 결국은 부모들이 걸어간 그 길 위에 놓여있다는 거다.

드라마에서 노년들은 죽음과 병마를 두려워하면서도 번개여행을 떠나며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 지금 현재 생생히 살아있는 자신들의 존재를 마음껏 느낀다. 나도 그들처럼 길 위에서 실컷 여행하다가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데 현실이 얼마나 받쳐줄지 알 수가 없다. 치열하고 당당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노년들을 위로해주고 젊은이에게는 자신의 부모를 생각하게 하는 ‘디어 마이 프렌즈’의 여운이 오래 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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