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태일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수상 다수
[서울=동북아신문]“뭐, 개 장례식에 참가하라고?”
 
친한 후배로부터 개의 장례식에 꼭 참석해 돌라는 전화를 받았다.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다. 철물점 사장인 후배가 펫팸족 젊은 여성의 반려견을 오토바이로 깔려 죽였단다.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황색 국화와 흰색 국화 꽃말이 잘 조화된 근조화환 하나가 다리를 벌리고 서 있다. 거실에는 4만 년 전부터 줄곧 사람들만이 저승에 가서 평화롭기를 바라는 상징의 꽃, 흰 국화 꽃말들이 반려견 영정사진 주위에 ♥ 모양으로 정교하게 꽂혀 있다. 어쩐지 그 꽃말들은 피곤한 듯 하품을 하고 있다. 영정사진 밑에는“별이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검정 글자들이 털로 덮인 주인을 보고 놀라 옆으로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인간들과 똑같은 장례식이었다. 구별된다는 점은 반려견의 죽음에 반려견이 없고 사람들이 있다는 것뿐이다. 반려견의 영정사진 앞에 꿇어앉은 검은 상복을 입은 여 상주 S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개의 장례식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나의 가슴에도 비감이 스며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반려견 영정사진 앞에서 슬픔과 눈물을 뒤섞는 그 애절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찌하여 작은 동물의 죽음에서 발한 슬픔이 한 젊은 여인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금방 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촌뜨기 총각이 입사했다. 총각의 순수함과 멋진 외모에 반해버린 그녀는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수수했던 그 남자는 점차 세련된 미남에, 능력도 회사에서 일류로 발전하고 주위에는 많은 꽃이 손짓하였다. 하지만 “남편만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라며 혼자 못을 박았다. 겨우 결혼한 지 일 년이 지났을 때, 남편은 갑자기 젊은 아가씨와 가출을 했다. 사랑했던 남편의 배신은 자기가 세상에 살아갈 이유까지 빼앗아 갔다며 자살을 시도하였고,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친척들과 친구들이 아직 젊었는데 재혼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그녀는 다시는 사랑 같은 것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 무렵이었다. 중학 동창이 캐나다에 이민하면서 반려견 ‘별이’를 S에게 선물하였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신이 주신 선물’, 반려견이란 대체재를 통해 고독과 외로움을 극복해보려고 시도하였다.

귀여운 별이는 S의 심리를 포착하는 기묘한 능력이 있었다. 인간과 반려견이 교감을 하면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증가하여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충성심을 가진 반려견과 교류하면 심리적 위안과 정서적 안정을 받을뿐더러 인간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와 우울증을 치유할 수 있다는 동창의 경험담을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이 가출한 후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S는 현시대에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정서적인 결핍을 메우거나 의지할 곳을 찾을 때, 그 대상을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동물로부터 찾으려는 해답을 알게 되었다. 영혼의 교류가 솔직히 할 수 있고 애교 많은 별이는 그녀에게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은 물론 웃음을 폴폴 날려 주는 재롱둥이와 요술쟁이였다.

 S는 늘 상실감으로 당당하지 못하고 경쟁에 밀려, 시들어 가는 화초처럼 주눅이 든 상태였다. 그러나 퇴근하여 현관문에 들어서면 더없이 반가워하는 별이가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촉촉한 눈망울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그때면 밝은 기운이 웃음을 들추며 S의 아픈 마음을 가지런히 빗질해준다.

백화점에 갔을 때였다. 눈앞에서 한 젊은 여자가 전남편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젊은 여인은 사랑의 비를 맞은 것 같이 행복감에 푹 젖어 있다. S는 질투할수록 전 남편의 준수한 얼굴이 자꾸 떠올랐고, 폭포 같은 박력 감이 지심을 녹이는 섹스도, 미끈한 몸매와 그 넓은 가슴도 다른 여인이 향유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몸 전체가 폭발할 것 같았다. 그때까지 장난감을 물고 폴짝폴짝 뛰던 별이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뒷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그녀는 별이를 꼭 끌어안았다. 이때, 인간인 엄마와 ‘신이 주신 선물’인 별이는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 것처럼 둘만 감지할 수 있는 특유한 언어로 교감할 수 있었고 또 그런 방식으로 서로 위로하고 안위하였다.

S가 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고락을 공유하였는지도 6년이 되는 어느 날, S에게 청천 벽력같은 불행이 그녀에게 덮쳤다. 별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가던 도중에 대로를 지나갈 무렵, 갑자기 오토바이가 별 이에게 덮쳤다. 허둥지둥 쫓아가서 피가 낭자한 별이를 끌어안았을 때, 그녀는 마치 바늘 한 주먹을 삼켰을 때처럼 마음이 아팠다. 오토바이 운전기사는 내 후배인 철물점 사장이었다.

별이가 죽자 S 여사는 심각한 펫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죄책감, 죽음의 부정으로 별이의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하였다. 장례식을 치르고 4일 후, S는 삶에 집착할 이유와 의미가 상실했다고, 별이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수면제를 먹은 후 가스를 틀어놓았다. 다행히 대구에 사는 사촌 여동생이 출장을 왔다가 언니네 집에 들르면서 목숨을 건졌다. 

 일주일 후 철물점 사장이 안타까워 전국에 수소문 끝에 별이와 똑같이 생기고 색깔도 비슷한 ‘푸들’을 안고 그녀의 집안에 들어섰다. 고독과 가지런히 구석에 앉아 있던 S의 두 눈에서는 안개가 사라지고 밝은 빛이 반짝이었다. 이때 젊은 철물점 사장이 그녀 앞에 꿇어앉아 정중히 말했다.

“여사님, 저의 집사람이 병으로 돌아간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저와 별이를 함께 받아 주세요. 여사님에게 더는 상처를 주지 않고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녀는 멍하니 철물점 사장을 바라보고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였다.

“사장님, 고마워요. 하지만 저는 복잡한 인간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상실한 여자예요. 새로 온 별이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반려견들은 자기 마음을 자꾸 숨기는 인간과는 다르게 거짓이 없는 충성심이 있기에 안전감을 느낄 수 있어요. 새 별이는 제 가족이고 앞으로 그와 조용히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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