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철 프로필: 길림성 서란시 자경툰 출생.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경기도 기흥시. 1990~1992년 북경무장경찰, 2002~2007년 대련 외국어강사,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단편소설 '1987년 귀향길(처녀작)', '눈은 올해도 내린다'. '사랑꽃 한 묶음', '신병련 에피소드' 등 발표
[서울=동북아신문]한국으로 오면서 나에게 빡돌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누군가가 지어준 것인지 딱히 알 수 없지만 한국 사람들은 나를 빡돌이라 불렀고 나 또한 그 이름이 싫지 않았다. 미국 아버지에 독일 엄마, 그기에다 우수한 경주마의 혈통까지 이어받아  나의 배경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첫 만남은 홍콩에서 이루어졌다.
그때 어머니는 독일을 대표해서 경마시합에 참가했고  아버지는 미국을 대표해 왔었다.
그처럼 멋있는 사나이를 어머니는 처음 봤다고 했다.

달릴 때 흩날리는 황금색 머리깃과 확고한 두 눈, 건실한 근육이 당시 소녀인 어머니 맘을 한꺼번에 사로잡은 것이다.

그때 그 경기에서 아버지가 우승, 어머니는 7위에 그쳤지만 어머니는 자신을 잃은 채 기쁨과 행복으로 아버지에게 박수를 보냈다고 했다.

사랑의 씨앗이 싹트고 있음에 그 당시 어머니는 사춘기를 겪는 아이처럼 당혹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후, 하나하나의 기억을 드듬으며 그 황홀했던 추억으로 다가가는것이  어머니의 일상으로 되어버렸다.

꿈에서도 그리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석달 후였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가 어머니 앞에  불쑥 나타났을 때 어머니는 소녀의 부끄러움도 잊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가 이발을 드러내고 입술을 뒤집으며 헤시시 웃었다고 했다.
이 대목을 이야기 할 때면 홍조를 띤 어머니의 얼굴에서 늘 자책하는 듯한 중얼거림이 흘러 나왔다.

그 눈길은 아마 추파에 가까왔을거야 창피하게 말이다.

사실 아버지 어머니는 경주마였기에 자신의 욕망대로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마주들의 금전관계로 성사된 사랑의 유희에서도 어머니는 사랑하는 이에게서 오는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 오르가즘은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였지.

멀리 저 멀리, 아버지 쪽을 향한 어머니의 넉두리는 언제나 힘찬 모습이었다.

엄마 사랑은 시작으로 끝이 났기에 영구할 수 있는 거지.

나의 동년은 모래성 우에서 아빠의 형상을 그리며 흘러갔다.

세상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 겠지만 아빠를 닮아가렴.

그 많고많은 땅덩어리 중에서 한국에 왔다. 아세아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가장 높다는 한국, 사계절 피는꽃만 보아도 행복한 곳,  많은 것들이 낯설어 생소했지만 어머니 무언의 격려와 맞먹어 정이 많은곳이라 생각되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평탄하고 순리로왔다.
사실상 타향에서 이럴 수 있었던 것은 내 생에  예약되었듯이 뛰여던 귀인, 도련님을 만났기 때문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상 싶다.

깡마른 체구에 확고한 눈빛의 소유자인 도련님은 이제 삼십대 초반으로 언제봐도 젊음의 생기가 차넘쳤다.

몇달 전 나의 데뷔전 경기가 눈앞에 펼쳐져 왔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얼떨결에 늦출발을 하여 허둥대는 나에게 도련님은 고삐를 살짝살짝 당겨주며 내 조급함을 진정시켰다.  선행을 받았으면 좋았겠으나 이미 뒤쳐진 상황에서 기어이 외곽으로 선입을 강행하자면 상당한 체력이 소모될 것이 물보듯 뻔한 것이었다. 이렇게 경기가 4코너 까지 이어지고 직선주로에서 나의 진정한 추입이 시작되었다.

자 이제 가보자.

도련님이 허공에 날리는 채찍소리와 함께 나는 허벅지에다 힘을 실었다.
결승선 200미터 까지 쫓아왔을 때 난 이미 3위로 변해있었고 앞선 두마리의 말들이 걸음이 무뎌지고 힘이 빠져있는 것이 알렸다.

빡돌아 조금만 더.

고삐를 풀어버리고 엉뎅이를 간지럽히는 채찍소리를 맞받아 난 말 그대로 날아갔다.

내 생에 첫 우승이었다.
선행을 좋아하던 내가 이 데뷔전으로 추입형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 이후 무수한 우승들이 나와 인연을 맺었다.
물론 거기에는 도련님의 파트너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을 했다.
매번 경기때마다 상대말들의 장단점이나 상태, 질주습성을 파악하고 알맞는 전략을 짜며 경주에서 실천해야 하기에 도련님에게는 많은 지혜가 필요했다.

그랑프 대상경주 우승 이튿날이다.
훈련을 마치고 나서 도련님은 나의 목을 잡고 쿨쩍거렸다.

고마워 빡돌아, 너가 힘내준 턱에 나 이제 강남 전세집으로 이사 가게될 꿈도 가지게 되었어. 이렇게 일이년만 같이 힘써 보자  홧팅!

도련님이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반년이 지나 신춘배에서 우승을 하고 나서 도련님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빡돌아 빡돌아  나 세종시에다 32평짜리 아파트 하나 샀거던  아아 넘 좋아.  강남은 비싸서 엄두를 못내도 세종시라면 어때, 한국에서 제집 하나 마련하기가 쉬운줄 아니   난 정말 너무 행복해.

행복은 도련님에게만 찾아온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찾아왔다  나에게 뽁순이가 생긴 것이다.  사랑하는이가 생긴것이다.

뽁순이는 나보다 한살 어린 순 국산 말로서 타고난 청아함이 있었다.
한달전쯤 훈련에서 뽁순이를 알게 되었는데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좀처럼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뽁순이도 내가 좋은지 틈만 있으면 엉뎅이를 흔들거리며 내앞에서 어슬렁거린다.

며칠전 나는 처음으로 뽁순이로 인해 혈기로 충혈된 거시기를 느끼며 무섭게 뽁순이를 향해 쫓아갔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지만 뻔한 결과로 만물의 령장이라는 인간들 앞에서 고집을 꺾어야 했다.
우승으로 몸값이 장대처럼 치솟는 나에게 조건없는 사랑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얼마나 좋은가, 낮에는 훈련으로 바람을 헤가르고 바닥을 주름잡듯 하지만 별들이 총총한 밤에는 뽁순이 생각으로 모든것이 아름다워 지는걸   그를때면 가끔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나기도 했다.
부산태생인 뽁순이로 부터 부산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바다가 풍경을 이야기 할 때면 자유를 갈망하는 눈빛에서 경주마로 태어난 자신의 신세가  어둡게 비져질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대통령배 대상경주를 하루 앞두고 여느때와 같이 훈련을 마친 도련님이 나에게로 다가와 나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어린애처럼  코물눈물 쥐짜는 것이었다.

엄마의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
돈을 얼마를 써서라도 살려내야 해.  그렇지 않나  빡돌아.

나는 동감의 표시로 윗 입술을 까번지고 코로 킹킹 소리를 냈다.

금이야 옥이야 나를 키우시던 어머니,  자식 잘못 만나 부귀영화 한번 못 누려보시고...돌아가면 어떡해...사실  나도 고급승용차를 타고 빌딩에서 호화롭게 살고 싶다고
너나 나나 다 한계형 동물이야
너도 2~3년이 지니면 체력이 고갈이 들어  우승도 그림속의 떡이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되겠어  이 참에 딱 한번만 하자고 저쪽과 약속했어  쥐도 새도 모르게 할테니까.

도련님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 적어도 빼지달고 세치의 혀만 날름거리는 여의도 어중이떠중이 들 보다는 청렴해,  긴말을 요약하자면 핵심은 내일 대상경기에서 네가 져주는거다.  아니 네가 아니고 우리지, 우리가 져야 내가 이기게 되있어  그래야만 나는 어머니를 살릴수 있고 다리 끊어진 노루가 안되는거다  그럴려면 우린 3위안에 입상해선 안돼  절대 안돼  알겠지?

나의 멍때리는 표정을 읽었는지 도련님이 설명을 가했다.

왜냐고 묻지마.  인간세상은 이렇게 복잡해  인간구실을 하려니 나로서도 도저히 딴 방법이 없구나.
그리고 너에게 배팅했던 멍청한 관객들 속에서 짧은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성으로 습관된 병신들의 자아탄식 일꺼야  잠시 이미지 손상은 최선을 다하는 다음 경기에서 찾아오자구    너에겐 너의 인기를 되찾을 수 있는 실력이 있어.

알듯 말듯한 도련님의 말들을 되새기며 난 이날  실면하고 말았다.

제9경기 대통령배 대상경주가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놀랍게도 3코스에 위치하고 있는 뽁순이 모습을 볼수가 있었다.
16섯마리 말들이 2000메터를 뛰어야하는 장거리 경주여서  누가 선행받느냐가 큰 관심사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에 관중들의 본능적인 함성소리는 순식간에 경기장을 메워버렸다.

도련님의 뜻대로 난 네다리를 움직여 나갔다  우리의 인연과 우리의 우정이라는  이름하에 난 도련님의 지시에 따르기로 한것이었다.
3코너를 돈지 얼마 안되어 앞에 있는 말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힘을 내는 순간 도련님이 고삐를 알게모르게 당긴다  내 곁을 스쳐지나는 뽁순이 모습이 보였다  뒤돌아보는 눈길에는 우수가 짙었다.

가장 리얼한 쇼에 집중하고 있는 도련님과 그기에 순응하는 나,  그리고 어리석게 근심어린 눈길을 보내는 뽁순이
이런 연출속에서 우린 4코너를 돌아 직선주로에 진입하게 되었다.

빡돌아 힘네.
빡돌이 홧팅!

10까지 처져있는 나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승리를 갈망하는 웨침소리와 뚝심같은 믿음의 환호소리가 내 앞을 흐리게 했다.
문득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형상과 그의 삶이 그렇듯 익숙하게 정의로 펼쳐져왔다.

나는 뛰기로 결심했다  내 최선을 다해 달리기로 결심했다.
자고로  말은 인간과 달리 눈이 얼굴의 양 측면에 위치하여 보는 시야는 넓으나 이 세상 세부까지 똑똑히 볼수 있는 초점이 없다.
초점이 필요없이 하느님이 준 뜻대로 본능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실함임을 깨닭았다.

나의 미친듯한 추입에 당황한건 아무래도 도련님이었다.
앞선 말들을 하나하나 초월해 나가자 안절부절 못하는 도련님의 모습이 직감적으로 상상되어왔다.
결승선  50메터를 두고 도련님은 위험의 요소로 될 중요한 증거도 무시한채  있는 힘을 다해 고삐를 당겨대였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려대며  복잡하게 살아가는 도련님의 행위에 맞받아 나갔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낙마 사고였는데  이 사고의 판결이 결코 간단하지 아니함 은 선수가 낙마도중 결승선을 통과하였기때문이다.
슬로우 모션을 통해서도 그 판결은 애매하였다.

아니 낙마면 입상무효가 아닌가.

무효는 무슨 무효  결승선 통과까지 안 떨어졌잖아 발이 발안장에 붙어있었다니까.

붙어 있긴 개뿔  떨어져 있는 거 같은데...

아니 ,낙마는 그렇다치고 말이 달리려는데 왜 기수가 고삐 당기고 그래?

뭐?  기수가 말고삐 당겼다고?
그럴리가?

자네 경마에 까막눈이구먼.

이동안 아나운서는 몇번이고 본경기가 미확정중이니 구매하신 마권은 잘 보관하라는 말만 곱씹었다.

씨발 이게 어디 경마냐.

아직 두 경기가 남아있었지만 목에 피대를 세우며 퇴장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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