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커다란 꽃바구니 같은 여름이다. 많은 꽃들이 시들어가고 피고 있는 꽃들 또한 엄청나다. 보고 보아도 계속 펼쳐진다. 억수 더웠던 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무기력으로 시간마저 영원히 멈춘 듯 했다.

여름이라고 항상 천둥번개가 동반되는 건 아닌가보다. 그냥 안개비만 이십 일 줄창 내린다. 아침에도 내리고 점심에도 내리고 저녁에도 내리고 밤에도 내리고 새벽에도 내린다. 노가다일을 하는 남편은 비땜에 일을 하지못해 못내 아쉬운가 보다. 자고 일어나면 또 비야? 하며 밖을 하염없이 본다. 복 받은 거여, 덕분에 비를 원 없이 보잖수~ 그리고 비를 보고 질려버린다. 뉴스에서는 "미투"가 비만치나 질리도록 나온다. 
▲ 홍연숙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현재 울산 거주
어쩌다가 흰 구름이 섞인 푸른 하늘이 빠끔히 얼굴을 내밀 때, 이젠 비는 갔거니 하고 하늘을 한장 찍으려 들면 후두둑 떨어지는 비방울이 이마를 신나게 때린다. 부리나케 해빛쪼임 시키려고 내어 놓았던 다육이들을 집안으로 모셔놓느라 허둥대는 나의 모습은 여름과 함께 푸르다. 하지만 다육이 만큼 정성을 들였으면 그 많은 인연들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항상 겉돌았던 감정은 정열적인 여름만큼 진실하지 못했다. 이 여름에 급 성장하는 나의 반성이다. 월드컵 때문인지 비도 전반전, 후반전을 나눈다. 그 사이, 집 근처에 외롭게 걸쳐진 삼각뙤기밭을 어슬렁댄다. 꼬부랑상추할머니가 7, 8년을 가꿨던 밭인데, 요 이태 동안 그냥 비우더니 빼곡히 들어앉은 풀들이 키를 넘는다. 오월의 고사리처럼 꼬부라진 할머니의 흰 등이 저 풀숲에 가려진 듯이 당금 볼록하게 일어설 것만 같다. 할머니가 쌓았던 돌담이 허물어진 대로 상실의 추억을 남기는 동안에 길옆의 뻣뻣하게 늙어버린 풀들이 누렇게 색을 잃는다. 몸퉁이 터지도록 짝을 부르던 숫매미들의 울음소리도 시들해진다.비도 그쳤다. 세상을 뒤흔들던 "미투"도 다가오는 월드컵에 자리를 내주더니 고만 사라져버렸다. 흔적이 꽤나 깊었을 터인데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잊는 것도 빠르다. 월드컵도 끝나고 그 열기도 식어가고 또 잊혀간다. 또 뭔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일을 벌리고 있을 무렵, 새 계절도 어느덧 색바랜 오솔길로 이어지고 그 오솔길을 따라 올 여름도 그렇게 간다. 아마도 그 길을 따라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봄이 올 것이다. 편집/ 방예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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