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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평론/ 한국 송명희]중국조선족시인의 장거리민족주의와 통일에의 념원
백운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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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31  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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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동북아신문]                           1. 서 론
 
  중국조선족시인 홍용암(1970년ㅡ)은 흑룡강성 산골에서 출생하여 16세때 첫시집 <<꽃무지개>>를 출판한후 시, 소설, 수필, 평론에 걸쳐 많은 글들을 썼고 중국, 조선, 한국에서 수십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우리 나라(한국)에서도 이례적으로 그의 책은 10여권이나 발간되였다. 그가운데 2006년 한해에만 해도 그의 시집이 5권이나 련속 출판되였는데 시집 <<다리를 놓자>>(2006년 1월)를 비릇하여 시조집 <<력사와 민족앞에>>(2006년 9월), 동시집 <<동년의 메아리>>(2006년 7월), 소년시집 <<소녀와 소년>>(2006년 10월), 사랑시집 <<하루살이가 되고싶었던 그날>>(2006년 10월) 등이 그것이다.

    성공한 기업가(연변백운그룹 회장, 2005년 북경으로부터 련속 <<중국100명개혁창업걸출인물>>, <<중국당대 걸출한 인재>>로 선정되여 국가적 훈장을 수여받은 기업인)이자 작가라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홍용암의 저서가운데서 시집 <<다리를 놓자>>는 조선반도 남북에서 거의 동시에 발간된 시집이다. 그가 초중생, 고중생, 대학생시절에 짬짬이 썼다는 이 책은 원래 중국에서 <<흰구름이 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1997년에 출간된 바가 있다. 그후 2005년 5월에 <<6.15남북공동선언>> 5돐을 맞아 조선에서 <<다리를 놓자>>로 시집 제목을 바꾸어 발행되였으며 2006년 1월초에 한국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발간되였다. 그의 시집이 남북에서 동시에 출간하게 된 배경을 그는 <<다리를 놓자>>의 <<머리말>>에서 <<오로지 겨레의 화해와 단합을 위하는 길에서 그리고 고국의 통일을 위한 길에서 <다리>를 놓는데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한것>>이라고 밝히고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발간된 <<흰구름이 된 이야기>>와 한반도 남북에서 발간된 <<다리를 놓자>>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줄곧 학생시인이였던 그가 생활상핍박으로 대학 2학년을 중퇴하기 직전인 1992년에 연변에서 완성, 탈고하여 5년이 지난 1997년에야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출판된 시집 <<흰구름이 된 이야기>>에는 모두 85편의 시가 수록되여있는 반면 그후 조선반도 남북에서 출간된 시집 <<다리를 놓자>>에는 10여편의 시가 더 추가되여 근 100편의 시가 실려있다.

    본고는 중국조선족시인가운데서 그 누구보다도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정체성인식을 뚜렷이 갖고 고국통일에 대한 강렬한 념원을 나타내고있는 홍용암의 시를 중국에서 발간된 시집 <<흰구름이 된 이야기>>를 텍스트로 하여 민들레꽃, 흰구름, 다리 등의 시적이미지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그의 시에서 표출된 민족주의의 성격에 대해 규명하고자 한다. 홍용암의 다른 저서들이 많이 있지만 본고의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흰구름이 된 이야기>>가 가장 적합한 텍스트라 판단되여 이 텍스트에만 한정하였음을 밝혀둔다.

    홍용암의 시문학에 대한 우리 나라(남반부 한국)에서의 연구는 건국대학 김영철교수(문학박사)의 론문 <<민족혼의 카타르시스와 정체성 탐색>>(2006년 제5호 <<문학세대>>에 발표), 용인대학 신상성교수(문학박사)의 론문 <<홍용암문학의 민족의식과 초극적의지>>(용인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2007년 제14호 <<인문사회론총>>에 발표), 한림대학 안락일교수(문학박사)의 론문 <<민족이라는 기의의 재발견 및 그 진정성이 주는 울림의 미학>>(2006년 10월에 써서 2008년 6월 <<백운 홍용암의 시문학연구>>에 발표)... 등등 적지 않은 유명한 학자들의 학술론문들에 의해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였다. 
 
                                       2. 민들레꽃, 리산의 정체성 
 
    홍용암은 자신의 시창작의 동기를 점점 사라져가는 중국조선족의 민족정체성과 문화의 탐구 및 민족적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사명감에서 비릇되였다고 분명히 밝히고있다. 즉 중국으로의 이주이후 세대가 교체되여가면서 민족의 고유한 풍속습관, 전통기질, 자각의식을 잃어가고 심지어 언어와 문자 그리고 민족적자존심마저 망각되여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때문에 민족의 뿌리에 대해서 점차 연구하게 되였고, 따라서 시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탐구해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으로부터 그의 시쓰기가 비릇되였다고 밝히고있는것이다.

    <<제가 태여나서 잔뼈를 굳힌 곳은 조선족이 비교적 희소하고 한족들이 주로 집거해살고있는 흑룡강성의 깊은 산간벽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곳의 많은 조선족동포들은 세월의 흐름과 한세대 두세대간의 교체와 더불어 점차 자기 민족의 고유한 풍속습관, 전통기질, 자각의식을 잃어가고 심지어 어떤이는 우리 민족의 가장 보귀한 기본특징인 자기의 언어와 문자, 그리고 민족적자존심마저 거의 까맣게 잊어가고있는것이 오늘의 보편적현실인것입니다. 실로 부끄럽고 가슴아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여기 수난의 이주민족인 우리 200만 중국조선족들의 력사 -- 즉 제가 어디서 어떻게 왔으며 뿌리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되여 이곳에 와 살게 되였는가 하는것을 알기 시작하고 연구하게 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저는 한 시대, 한 지역, 한 민족의 시인으로서의 무거운 사명감을 자각하고 짊어지고 리행하기에 힘써왔습니다...>>
    위의 인용문과 같은 창작동기에 의해서 씌여진 그의 시집에는 <<민들레꽃>>, <<흰구름>>과 같은 시적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시골마을 한 초가에서
       민들레꽃 사랑했던 소년
       동구밖 상사나무 아래서
       민들레꽃이 되였다네
       하염없이 맑은 하늘 바라고 서서
       노오랗게 그리움에 불타다가
       마침내 두둥실
       하얀 민들레씨로 날아올라
       정처없이 떠도는 한송이
       흰구름이 되였다는 슬픈 이야기...
 
             ㅡ 시 <<흰구름이 된 이야기>> 전문
 
    표제시인 <<흰구름이 된 이야기>>에서 시골마을 초가에서 민들레꽃을 사랑했던 소년은 동구밖 상사나무 아래에서 그 자신이 민들레꽃이 되여 하염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에 불타다가 그 하얀 <<민들레꽃씨>>가 하늘로 날아올라 <<정처없이 떠도는 한송이 흰구름>>이 된다. 이 시에서 소년은 자신이 태여난 시골마을 초가로부터 공간적으로 점차 멀어지다가 마침내는 하늘로 올라가 흰구름이 된다. 즉 시골마을 초가 → 동구밖 상사나무 아래 → 민들레꽃 → 하얀 민들레꽃씨 → 흰구름이 되여 정처없이 떠도는 과정을 통해서 시인은 조선족이 그들의 태여난 고향으로부터 류리되고 국경을 넘어 리산하는 과정을 드러내고있다. 즉 지상의 하얀 민들레꽃씨와 천상의 흰구름은 흩어지고 떠도는 성격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정처없이 류랑하는 디아스포라 중국조선족에 대한 표상이 된다. <<민들레꽃씨>>의 빛갈이 희다는 점에서 백의민족의 표상이 되며, 더우기 그 하얀 꽃씨가 바람에 흩날려 여러 곳에 퍼지는 성질은 한반도를 떠나 중국 이곳저곳에 리산한 중국조선족들을 상징한다. 하늘의 <<흰구름>>역시 한곳에 머물지 않고 떠돈다는 점에서 고국을 떠나 이국땅을 떠도는 조선족의 리산을 표상한다.

    즉 민들레꽃과 흰구름의 <<흰색>>은 백의민족에 대한 상징이며, 민들레꽃씨의 <<흩어짐>>과 흰구름의 <<떠도는>> 성질은 조선족의 리산을 표상하는것이다. 홍용암은 자신의 아호까지도 <<백운(白云)>>, 즉 <<흰구름>>으로 정함으로써 고국을 떠나 중국땅을 떠도는 조선민족의 후예로서의 민족정체성인식을 뚜렷하게 드러내고있다.

    <<민들레꽃>>은 홍용암의 시에서 중요한 시적 심상의 하나이다. <<흰구름이 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산문시 <<민들레가족 신화>>에서도 민들레꽃은 조선민족의 표상으로 형상화되고있다.
 
    나는 원시 저 건너 먼 바다 남쪽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 모여 피던 하얀 민들레가족 꽃씨의 꽃씨의 꽃씨의 꽃씨였다는데...
    어느날, 그 어느 회오리선풍에 휘말려 문득 여기 낯설은 지대에 불려와 자리를 잡고 싹이 트고 자라서 꽃을 피웠을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면 흙도 물도 기후도 생소한 이 땅에...
 
              ( ㅡ <<민들레가족 신화>> 일부분 )
 
    이 시를 보면 그는 중국이라는 거주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있는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반도에 뿌리를 둔 조선민족의 후예로서의 정체성을 갖고있다. 즉 현재 거주하는 국가보다는 혈통에서 자신의 민족정체성을 찾고저 한다. 그는 <<어느날, 그 어느 회오리선풍에 휘말려>> 흙도 물도 기후도 생소한 중국땅에 리산한 존재이다. 디아스포라인 화자는 새로운 땅에서의 확고한 정착에로의 열망을 표출하기보다는 오히려 <<저 건너 바다 남쪽 한라산 기슭에 오붓이 모여 산다는 하얀 민들레가족이 그립다...>>에서 보듯이 떠나온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더 강하게 표출한다. 즉 현재 살고있는 중국에 대해서 통합의 정체성을 갖지 못한채 <<생소한 이 땅>>으로 느끼며, 떠나온 고국(제주도)을 더 그리고있는것이다. <<한가득 하얀 그리움과 소망을 꽃씨처럼 펴들고 하염없이 먼 하늘 정처없이 떠있는 흰구름을 바라보며 일구월심 북편풍이 불어오기만 기다린다...>>처럼 민들레꽃씨에 감정이입을 한 화자가 일구월심 북편풍을 기다리는 리유는 북편풍이 불어와야 남쪽의 고국으로 날아갈수 있기때문이다.

    다른 한수의 시 <<민들레단상>>에서 거칠은 들판에 와 홀로 핀 <<민들레꽃>>에 대해 화자는 <<오죽 쓸쓸하고 외로웠으리/ 그래도 겉으론 눈물을 모르는듯/ 슬픔도 시름도 싹 잊은듯/ 하냥 담담히 웃는 꽃이여!>>라고 마음속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감추고 겉으로는 슬픔도 시름도 잊은듯 담담히 웃고있는 꽃으로 노래한다. 하지만 겉으로 웃고있는 민들레꽃의 깊은 내면은 <<저도 몰래 련민을 금치 못해/ 조심스레 두손에 꺾어드니/ 동강난 꽃줄기 그 밑으로/ 송골송골 내돋히는 하얀 고름ㅡ // 오, 너의 상처 너의 비애/ 얼마나 얼마나 쓰리고 깊었으면...>>처럼 상처가 덧나 고름이 맺히고 그 비애가 깊고 쓰라린것으로 진술된다.

    이 시에서 거칠은 들판은 조선족이 살아가고있는 중국땅에서의 렬악한 환경을, 그리고 민들레꽃은 그 렬악한 환경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조선족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웃고있지만 내면에서는 깊은 상처와 비애로 곪아터진 민들레꽃을 향해 화자는 깊은 련민의 감정을 나타낸다. 화자는 디아스포라로서의 고독과 슬픔을 민들레꽃에 투사하여 표현하고있는것이다. 여기서 민들레꽃이 안고있는 마음속 깊은 곳에 맺힌 상처란 고국을 떠나 리산의 운명을 안고 살아갈수밖에 없는 중국조선족의 집단적 상처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유발되는 비애는 개인적차원을 넘어서는 운명공동체로서의 민족적 비애이다. 화자는 그 상처에 공감과 련민을 느끼는 한편 그 상처를 통해 <<나는 혈관속에 흐른 내 피가 워낙 하얀 피였음을/ 처음 알았다...>>(시 <<력사의 이주민족>>에서)처럼 오히려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인식을 더욱 뚜렷이 갖게 된다...

    그러면 왜 <<민들레꽃>>이 중국조선족의 표상이 되였는가? 그 리유는 첫째, 민들레꽃씨의 흰색이 백의민족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둘째, 민들레꽃씨가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속성은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한민족의 리산과 매우 닮아있기때문이다. 즉 중국조선족의 리산의 정체성을 상징하기에 적합하다. 셋째, 민들레꽃이 여러해살이 야생초로서 생명력이 매우 강하고 갈가에서 사람의 발굽에 짓밟혀 수난을 당해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번식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있기때문이다. 민들레꽃의 강인한 생명력은 일제의 침략과 강점을 비릇하여 민족앞에 닥친 수많은 수난과 역경을 견뎌낸 조선민족에 뿌리를 둔 중국조선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닮아있다. 넷째, 중국조선족은 식용식물로서 민들레를 식탁에 자주 올릴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조선, 중국 등지의 어느 곳에서나 이 꽃을 쉽게 볼수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민들레꽃은 중국땅에 리산한 조선민족을 표상하게 된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그의 시에서는 민들레꽃이 디아스로라로서의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을 표상하는 이미지로 형상화되고있다.
    조선민족의 후예로서 그에게 고국은 <<한번도 안겨못본 고국의 품/ 수륙만리 이역에서 나서 자라도/ 커갈수로 그리운 사랑의 품/ 어머님 그 품을/ 잊은적 없네/ 잊은적 없네...>>(시 <<어머님을 그렸다네>> 일부분)처럼 머나먼 이국에서 태여나 성장하여 한번도 가본적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더욱 그리움이 커지고 잊을수 없는 대상, 즉 끝없는 동경의 대상이다. 따라서 화자는 <<네거리 류랑하는 고아처럼/ 끝없이 타향에서 떠돌>>며 그 가본적도 없는 조국을 어머니를 그리는 어린 아이처럼 그리워하고 어머님의 품을 잃은 고아처럼 칭얼거리게 된다.
    이처럼 그에게 고국은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끊임없이 동경과 그리움을 유발하는 대상이다. 
 
 
                                           3. 흰구름, 자유의 상상력 
 
    그의 시에는 <<흰구름>>을 비릇하여 구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흰구름이 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운바라기가 된 소년>>, <<나는 한쪼각 흰구름>>, <<한쪼각 구름이 되여>>, <<구름>>, <<구름과 강물>>, <<흰구름의 길>>... 등과 같은 시들에서 <<흰구름>>은 고국을 떠나 멀리 중국에까지 흘러들어와 떠도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시인 자신인 동시에 조선민족의 후예인 중국조선족에 대한 상징이다. 특히 구름가운데서도 <<흰구름>>은 조선민족, 즉 백의민족의 흰색을 표상한다고 볼수 있다.


    중국조선족의 연구학자인 리사가 지적하고있듯이 흰색 이미지는 한민족의 색채심상으로서 한민족의 민족의식이 표출되는 상징적 심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은 유별나게 흰색을 선호하는 집단무의식을 드러내는 민족이다. 화이트 콤플렉스(white complex)라 칭할만한 흰색에 대한 심리적, 정서적 애착은 한민족을 백의민족이라 부르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운바라기가 된 소년>>에서 소년 화자는 <<운(云, 구름)바라기>>가 되여 <<아늑하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고향>>, <<아득한 전설의 자기 고향>>에 마음껏 둥실둥실 날아갈수 있는 구름같은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기서 고향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처럼 아늑하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장소성을 지닌 곳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구름은 자유롭게 고향으로 날아가고싶은 그의 소망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사용되였다.


    <<한쪼각 구름이 되여>>에서 한쪼각 구름에 감정을 이입한 화자는 <<국계도 분계도 상관없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여 북풍에 밀려 남으로 남으로 떠가고싶은 욕망을 나타낸다. 여기서 남쪽은 옹근 조선반도를 가리킨다. 두만강, 대동강, 한강, 락동강... 그리고 백두산, 금강산, 태백산, 한라산을 스치고 신의주, 평양, 서울, 부산을 지나서 제주까지 갔다가 다시 남풍에 불려 북으로 북으로, 라진까지 갔다가 다시 남으로 남으로 그렇게 무한세월을 한반도의 북단에서부터 한반도의 남단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가 바로 구름이다. 화자는 구름처럼 국경의 경계를 초월할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여 중국과 고국 사이를 마음대로 왕래하기를 소망하는것이다.
 
       나는 한쪼각 흰구름
       왔다가 가는 한쪼각 흰구름
       갔다가 오는 한쪼각 흰구름
       어디 가나 발길 있닿는 곳
       거기가 바로 내 집이라
       긴긴세월 방랑살이 한이 맺히여
       홍안도 백발 되여 하얗게 센
       나는 한쪼각 흰구름
 
       나는 한쪼각 흰구름
       오고 돌아가지 못하는 한쪼각 흰구름
       산산히 흩어진 한쪼각 흰구름
       회오리 선풍에 휘말려 오락가락
       낯설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떠돌다
       눈 못감고 승천한 흰옷의 원혼들이
       정든 고국 못잊어 죽어서 찾아가는
       나는 한쪼각 흰구름
 
       나는 한쪼각 흰구름
       어제도 오늘도 한쪼각 흰구름
       정처없이 떠도는 한쪼각 흰구름
       세월따라 바람따라 하염없이 표류해도
       어데간들 잊으랴 어머니 고국산천
       부모형제 그리여 흘린 피눈물
       비 되여 쭈룩쭈룩 온 대지에 휘뿌리는
       나는 정녕 한쪼각 흰구름 ㅡ
 
             ㅡ 시 <<나는 한쪼각 흰구름>> 전문
 
    하지만 조선족에게 현재의 거주국인 중국과 고국인 조선반도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구름같은 존재는 하나의 리상이자 소망일뿐이다. 시인이 이 시를 쓰던 시기는 한중수교(1992년)가 이룩되기 전이였는데 그 당시 조선족의 현실은 자유롭게 고향을 향해 날아갈수가 없는 상황이였다. 긴긴 세월의 방랑살이로 한이 맺히고 홍안이 백발로 하얗게 세여도 오고가는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오고 돌아가지 못하며 낯설은 이역만리 타향을 떠돌다 눈을 못감고 승천한 원혼들이 죽어서야 그 혼이 구름이 되여 정든 고국을 찾아갈수 있는 부자유한 상황이였다. 따라서 조선족은 아무리 향수에 사로잡혀도 흰구름처럼 자유롭게 고국을 왕래하는 대신 고국산천 부모형제를 그리며 흘린 피눈물이 비가 되여 대지에 흩뿌리는 한쪼각 흰구름에 불과한 존재일뿐이였다.


    중국조선족의 전문연구학자인 리사는 그의 론문 <<중국의 개혁개방이후 조선족시문학의 민족정체성구현양상 연구>>(2013년 <<겨레어문학>> 제50호)에서 그의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적이 있다. <<이 시에서 <흰구름>은 일제강점기에 중국 만주로 이주한 유이민들을 상징한다. 시에서 <회오리 선풍>은 조선말기부터 불어닥친 민족수난의 력사적광풍을 암시하고있다. 그 광풍에 휩쓸려 그들은 멀리 중국땅까지 떠밀려온것이다.>> 조선족이 소망하는 자유로운 왕래에 대한 리상과 그들이 처한 부자유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흰구름>>은 첨예하게 드러낸다. 왜냐하면 마음속에선 그리운 고국땅으로 자유롭게 왕래할수 있는 흰구름이 되길 상상하지만 현실은 피눈물을 흘리며 주룩주룩 한줄기 비가 되여 <<대지>>로 추락하는 비구름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부자유를 뛰여넘을수 있는 자유의 상상력을 흰구름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부자유한 현실은 화자로 하여금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하여 <<동경>>이라는 시에서 화자는 <<그대들의 나라엔/ 국계도 분계도 없는가/ 오로지 고요한/ 평화와 친선과 사랑만이 있는가/ 그런 천국이 그곳에 있었던가?>>라고 하며 <<가없이 탁- 트인 푸른 하늘을/ 사이좋게 자유로이 오가는>> 한마리 새를 동경한다. 지상적 존재인 인간들의 세계에는 중국, 조선, 한국과 같이 엄연한 국계와 분계에 가로막혀 자유롭게 오고 갈수도 없이 구속되고 억압되여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천상적 존재인 새들의 세계는 탁- 트인 푸른 하늘을 마음대로 오고 갈수 있으며 새가 날고있는 천상(하늘)은 신비하고 생기와 행복으로 차넘치고 평화와 친선과 사랑만이 존재하는 천국과도 같은 세계이다. 지상과 천상, 속박과 자유, 인간과 새가 대조되며 지상적 존재인 화자는 천상적 존재인 한마리 새가 되여 국계와 분계를 넘어 자유롭게 오갈수 있기를 소망한다.


    <<동경>>에서 <<새>>는 <<흰구름>>보다는 적극적 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의 날개짓으로 원하는 곳으로 얼마든지 날아갈수 있기때문이다. 즉 북편풍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민들레꽃>>이나 정처없이 떠도는 <<흰구름>>의 수동성을 넘어서서 <<새>>는 보다 능동적으로 고국으로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존재이기때문에 그러한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싶은 시인의 적극적 의지를 나타내는 기표가 되고있다.  
 
 
                                        4. <<다리>>, 통일에의 념원 
 
    홍용암의 시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서 통일에 대한 념원이 강한 어조로 반복되고있다.
    <<우리의 소원은 하나 통일/ 북에 있는 이천만 소원도 통일/ 남에 사는 사천오백만 소원도 통일/ 남도 북도 아닌 이 지구 방방곡곡/ 구름처럼 떠도는 오백만 교포/ 우리의 소원도 똑같은 통일!>>(시 <<우리 모두의 소원>> 일부분)에서 보듯이 통일은 남북한의 동포뿐만 아니라 중국조선족을 비릇하여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아가는 재외한국인들도 똑같이 념원하는 민족적열망이다. 그가 한반도 남북의 통일을 그토록 강력히 념원하는것은 재외한국인의 한사람, 즉 같은 혈통, 문화, 력사를 공유한 공동체 -- 같은 민족이라는 자격을 가졌기때문이다.


    <<인간들이 그어놓은 세상 금/ 모든 금을 다 덮어 지우면/ 마침내 세계는 일매지게/ 아름다운 하나가 된다>>(시 <<눈이 내린다>> 일부분)에서 하얀 눈은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분단의 금을 덮어버리고 지워버린다. 시에서 <<저기 국경에도 거기 분계에도>> 차별없이 고루 내린 자연의 하얀 눈은 분단된 남북을 하나로 통일시켜주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또 다른 <<지도>>라는 시에서는 한반도의 지도를 그리다가 부득불 휴전선(38도선)을 그려넣은다음 너무 보기 슬퍼서 그것을 다시 고무로 지워버린다.


    그에게 분단을 상징하는 휴전선은 그렇게 흰눈으로 덮어버리고싶고 고무로 지워버리고싶은 경계선이다.
    <<장벽>>이란 시에서 화자는 <<와르르 쾅-!/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사방/ 5대륙6대주에// 케케묵은 남북조선 콩크리트장벽만 남았다...>>라고 절규한다. 또 <<묻노니, 언제 가야...>>에서는 <<동서독일이 갈라지고/ 남북한이 갈라지고// 어느날, 드디여/ 동서가 한몸으로 합쳤도다// 묻노니, 남북은/ 언제가야 하나로 이을고...???!>>처럼 동서독일마저 통일된 상황에서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가 된 조선의 통일은 과연 언제 이루어질것인가를 질문하고있다.
    그는 콩크리트장벽처럼 완강한 고국의 분단고착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통일을 간절히 념원하는것이다. 
 
              다리를 놓자
              그보다도 다리를 놓아야 한다
              하루빨리 다리를 꼭 놓아야 한다!
 
              가시철조망 삼엄한
              콩크리트장벽이 둘러막힌
              그 끝없이 깊고 높은 휴전선우에
              그 우를 가로질러
              인천과 개성 사이에
              서울과 평양의 하늘에
              한라와 백두의 기슭에
              그리고 너와 나의 마음에다
              칠월칠석 깨까치 다리를 놓듯
              채색의 무지개다리를 놓자
              그다음 제집 문앞 널판다리 드나들듯
              누구나 다 그리로 마음대로 오가게 하자
 
                     ㅡ 시 <<다리를 놓자>> 일부분
 
    시 <<다리를 놓자>>에서 분단극복과 통일지향의 절박한 필요성이 <<다리를 놓자!>>라는 구절에 대한 련속적인 반복과 <<다리를 놓자, 놓아야 한다, 꼭 놓아야 한다!>>라는 점층적인 강조를 통하여 고조되고있다. 화자는 처음에는 다리를 <<놓자>>라는 청유형 어미로부터 시작하여 <<놓아야 한다>>라는 강한 당위성으로 통일에의 열망을 고조시키며 <<꼭 놓아야 한다!>>를 통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통일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보다 강력한 당위적 의지를 점차적으로 고양시켜나간다.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다리/ 다리를 놓은 그것이 전부다>>에서도 련속적, 반복적으로 통일에 대한 절실함이 표출된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지금 다리를 놓지 않으면/ 력사에 길이 오점을 남길/ 후세의 죄인이 되고만다>>에서 보듯 만약 지금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력사에 길이 남을 죄악이 되기때문에 한반도 남북의 최고통치권자인 <<주석이건 대통령이건 할것없이>> 총동원하여 반드시 통일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다. 


    <<다리>>의 이미지는 칠월칠석의 설화를 차용하며 재차 반복된다. 견우와 직녀가 까막까치들이 놓은 오작교에서 칠월칠석에 한해에 한번씩 만난다는 전설처럼 까치와 까마귀가 견우더러 직녀를 만나게 하기 위해 다리를 놓듯 남북통일의 <<다리>>가 어서 놓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하지만 전설속의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오작교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던것과는 달리 현실속의 <<님>>과 나는 칠월칠석에도 강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이편과 저편에서 마주보며 눈물만을 흘릴뿐이다. 견우와 직녀의 오손도손 회포푸는 행복한 밤과 <<님>>과 내가 만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서러운 밤의 대조를 통해 민족분단의 슬픔과 불행은 명징히 드러난다. 그로서도 분단상황을 어쩔수 없기에 그저 눈물을 흘리며 우는것이상의 그 무엇도 할수 없다는 짙은 무력감이 시에서 표출되고있다.
    여기에서 유발되는 슬픔의 원인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 즉 통일이 되지 않는 외부적 현실에 있기때문에 화자는 그 슬픔을 개인적으로 통제할수가 없다.
 
              해마다 칠월칠석
              은하수에 깨까치 다리를 놓아
              견우 직녀 상봉하는 날
              한해에 한번씩은 어김없이
              한자리에 모여 오손도손
              그리운 회포 푸는 날
              그렇게 행복한 밤 ㅡ
              그렇지만 서러운 이 몸은
              님과 나는 작은강 하나 사이두고
              다리가 없어서
              나는 이켠 님은 저켠 마주보며
              날마다 밤마다
              한없이 흐느껴 울뿐입니다...
 
                     ㅡ 시 <<칠월칠석>> 전문
 
    또 다른 시 <<다리(1)>>과 <<다리(2)>>에서는 설사 국경강 그 우에 물리적으로 다리가 놓인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절규한다. 왜냐하면 중국과 조선 두 나라를 잇는 그 다리는 이쪽 저쪽 두 끝이 모두 철문으로 가로막혀있기때문이다.
 
             두 발은 저쪽 기슭에 대고
             두 손은 이쪽 기슭을 짚고
 
             너는 나를 한사코 건너가라고
             그리도 집요하게 엎드렸구나
             그 길고 지루한 아픈 세월을...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있니?
             철문이 철컥 막혀 못가는데야!
             하염없이 예서 서서 바장일뿐...
 
             그런 나를 바라보며 어리둥절
             너는 몹시 실망한듯 안타까운듯
             묵묵히 사색하며 말이 없구나...
 
                    ㅡ 시 <<다리(1)>> 전문
 
    이 시에서도 보듯이 <<다리>>가 있으나 철문에 가로막혀 마음대로 건널수 없는 상황에 화자는 깊은 개탄을 나타내고있다.
    그의 <<대성질호>>라는 시에서는 남북의 온 민족을 향해 큰소리로 질타를 가한다. <<대성질호>>란 큰 소리로 꾸짖는다는것이다. 그 꾸짖음은 분단을 초래하고도 통일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뻔뻔스럽고 부끄러운줄도 모르는 칠철만겨레를 향한 호된 질타이다. 통일을 하지 못하고있는 칠천만 겨레는 <<어머니의 허리>>를 동강낸 불효자식들이다. 따라서 <<여태껏 어머님의 젖가슴을/ 그토록 게걸스레 파먹고도/ 서로 제가 더 많이 먹겠다고/ 아웅다웅 두쪽으로/ 어머님의 육신마저 가르다니?/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그 무슨 동방우효례의자손이라고??/ 닥쳐라 닥쳐 주둥아리를...>>라고 남북의 동포들을 향해 어서 당장 통일을 이루어내라고 큰소리로 꾸짖는것이다.


    통일에 대한 열망을 표현할 때에 화자의 어조는 민들레꽃이나 흰구름을 노래할 때에 비해 자못 강경하다. 때로 그의 질타는 심한 욕설로도 표출된다. 통일을 위해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남북의 겨레는 <<이놈들, 이놈들>>, <<이 배은망덕한 나쁜놈들>>, <<낯가죽 두터운 생지옥 갈 놈들>>, <<이 천추에 용남못할 벼락맞을 놈들>>, <<불효자식들>>, <<쥐며느리와 도리깨아들놈들>>, <<족제비사위와 가물치딸년들>>로 호명되며 모욕과 저주를 거칠게 내뱉는데서 통일에 대한 절박함은 더 한층 생생하게 드러난다고 할수 있다. 나아가 화자는 <<어서 썩-- 그리 행하지 못할가...>>라고 하루빨리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이루어내라는 불호령을 내린다. 비록 한반도의 분단이 강대국의 역학관계속에서 어쩔수 없이 이루어진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고착화시킨채 분단극복을 위해 어딘가의 노력이 부족한것은 <<력사에 길이 오점>>이며, <<후세의 죄인>>이 되고마는 길이다. 따라서 칠천만겨레와 남북의 지도자들을 향해서 력사적위업인 통일을 빨리 달성하라고 강력히 주문하는것이다.


    동시에 그 자신도 이 통일의 위업의 달성에 작은 참여와 기여라도 하고싶은 심경을 피력한다. 즉 통일을 가로막고있는 완강한 콩크리트장벽을 허물기 위해 자기도 벽돌 한장이라도 직접 허물고싶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가령 가장 명절인 그 어느날/ 남북을 가로지른 콩크리트장벽/ 그 벽을 허무는 날 오거든/ 나도 가서 허물수 있도록/ 벽돌 한장만은 남겨다오!>>(시 <<가령 어느날>>에서)
    그가 이토록 조선반도 통일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싶어하는것은 그만큼 백의동포의 한 일원으로서 민족통일에의 열망이 너무나도 간절하기때문이다.
    그가 한반도 남북에서 거의 동시에 <<다리를 놓자>>란 제목의 통일시집을 발간한것도 아마 벽돌 한장을 허무는 그런 심정에서였을것이다.  
 
 
                         5. 홍용암의 장거리민족주의와 민족정체성
 
    홍용암이 중국조선족의 뿌리인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정체성의식을 확고하게 갖게 된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어린시절의 체험과 깊게 관련되여있다. 그의 출생지인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향 동방홍촌>>은 한족 밀집지역으로서 중국조선족이 희소하게 살고있는 지역이였다.
 
    <<... 그는 5살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먼 한족집에 얹혀살게 된다. 당시 탄광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다리를 다쳐 눕게 되고 둘째형은 목재일을 하다가 사고로 죽고 누나도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손목이 뭉턱 끊어지고 어머니마저 그 타격을 받아당하지 못해 정신착란이 오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잇따르는 온갖 불행은 그의 가족을 극도의 궁핍으로 몰아갔다. 그의 부모님은 눈물을 머금고 입에 풀칠이나 시키자고 자식을 못낳는 중국인집에 그를 억지로 양자로 맡기게 된것이다. 어려서부터 배고픔의 고통과 민족적 차별에 그는 얼마나 큰 설음을 받았겠는가...?!
    너무 일찍 어린 나이에 가족과 생리별할수밖에 없었던 절벽감을 일찌감치 몸으로 느낀것이다. 그리고 이주민족으로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고뇌는 아마 이때로부터 예리한 면도날로 이마를 쭉- 베이듯 본능적으로 인식했을것이다...>>
 
    인용문에서 보듯이 그는 연해연방 잇따르는 가족의 불행으로 다섯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와 생리별을 하여 언어와 혈통이 다른 한족집에서 차별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즉 그가 유년기에 받은 민족차별로 인해 한족의 문화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한편 중국조선족으로서의 민족정체성의식을 강하게 갖게 된것으로 생각된다.


    베리는 소수집단의 문화적응전략과 이데올로기를 그들이 고유문화의 정체성을 얼마나 중요시하는가 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문화적유지와 이주민이 새로운 주류문화를 수용하는 정도를 뜻하는 접촉과 참여의 두가지 차원에서 통합, 동화, 분리, 주변화의 4가지로 분류한바 있다. 즉 전통문화와 주류문화에 모두 동일시하는 통합, 주류문화에는 동일시하지만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약하게 동일시하는 동화, 고유문화에 동일시하나 주류문화는 무시하는 분리, 주류문화나 고유문화에 모두 동일시하지 않는 주변화가 그것이다. 한편, 그는 이주민들에 대한 다수집단 성원들의 문화정책전략과 이데올로기를 다문화주의, 동화주의, 분리주의, 배척주의 4가지로 분류했다. 그는 다수의 주류집단이 이주민들의 고유한 정체성과 생활방식을 존중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루도록 다문화주의를 추구하면 소수집단은 통합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반면, 주류집단 대부분이 동화주의, 분리주의, 배척주의 정책을 채택하면 소수집단이 통합적정책을 가지기가 어렵다고 했다.

    베리의 리론에 따르자면, 다민족국가인 중국은 조선족 등 소수민족에 대하여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룰수 있도록 다문화주의정책을 기본적으로 추구하여왔다. 길림성, 료녕성, 흑룡강성은 소위 동북삼성이라 하여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조선족밀집지역이다. 그리고 길림성 연길시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가 1952년부터 설치되여있다. 중국정부의 다문화주의정책에 따라 조선족은 고유한 언어사용은 물론 그들 고유의 생활방식을 존중받고 문화적다양성을 유지할수 있었으며 비교적 통합적정체성을 갖고 살아올수 있었다.

    그럼에도 홍용암은 조선족이 희소한 지역에서, 더우기 한족의 집에서 얹혀살며 차별받는 환경에서 성장함으로써 다른 조선족들과는 달리 통합적정체성을 갖지 못한채 분리의 태도 즉 조선, 한국의 전통적인 고유문화에는 동일시하나 중국의 주류문화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태도를 갖게 된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후 그의 시에서 조선민족으로서의 강한 민족정체성 추구가 나타났다고 할수 있다.

    그의 조선민족으로서의 확고한 민족정체성은 다수의 중국조선족시인들이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는 조선족이지만 시인에 따라서 자기의 조국을 조선, 한국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중국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등 혈통과 국가 사이에서 정체성혼란과 갈등에 휩싸여있는 현상과는 아주 상이한것이다. 그가 엄연히 조선족 4세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보다도 뚜렷한 민족정체성을 갖고있으며 조국통일에 대한 강한 념원을 표출하는것이 한반도 남북에서 그의 시가 주목받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되였다고 할수 있다.

    그는 같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인 조선족과 한족과의 관계를 <<한배속에서 다른 피줄을 타고 나온>> 아버지가 다른 동복형제로 그 위상을 설정한다. 그래서 <<말하자면 자네 아버지는 염황이고/ 나는 단군의 후손이니/ 우리는 배다른 형제일세>>라고 같은 어머니를 둔 형제일지라도 부계의 조상이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 그리고 <<핍박에 쫓겨/ 어머니는 나를 배속에 품은채/ 두만강을 건너/ 자네 아버지한테 재가온걸세>>라고 조선족의 이주를 일제의 핍박에 의한 어쩔수 없는것이였다고 진술한다. <<이 몸을 이토록 튼튼히 길러준/ 이붓아버지도 물론 잊지 않을거지만/ 나는 아무래도 이제 꼭 한번은/ 나의 친아버지를 찾아가봐야겠네/ 꿈에도 그려보고 불러보던...>>(시 <<력사>> 일부분)에서는 현재 살고있는 중국과 조국인 조선, 한국과의 관계를 이붓아버지와 친아버지의 관계로 정립하며, 그를 키워준 현재의 중국도 잊지 않겠지만 언젠가 자신은 그리운 친아버지인 조국을 꼭 찾아가보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하게 표명한다. 즉 그에게도 혈통에 기반한, 즉 단군이래 이어온 배달민족의 신화가 작용하고있는것을 볼수 있다. 

    그에게 민족이란 <<나는 혈관속에 흐르는 내 피가/ 워낙 하얀 피였음을/ 처음 알았다...>>(시 <<력사의 이주민족>> 일부분)에서 보듯이 기본적으로 백의민족으로서 혈통을 같이한 존재, 즉 혈연공동체이다.
    하지만 단순한 혈통개념을 넘어서서 그에게 민족이란 <<조선과 한국/ 삼천리 금수강산/ 칠천오백만 백의겨레/ 오천년 찬란한 문화...>>(시 <<고향>> 일부분)에서 보듯 문화공동체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치욕의 근대력사/ 수치스런 굴종, 예속, 망국의 비운/ 그속에서 방황하는 고난의 민족...>>(시 <<력사에 묻노라!>> 일부분)이지만 동시에 을지문덕, 연개소문, 서산대사, 리순신과 같은 민족영웅을 배출한 자랑스런 민족이며, <<살국원흉 이등박문을 쏘아눕힌/ 백의지사 안중근이 떳떳이 갔고/ 만세소리 하늘땅을 진감한/ 3.1의 봉화 오늘도 타오른다>>(시 <<력사에 묻노라!>> 일부분)에서 보듯이 영욕의 력사를 공유한 력사공동체로서 그는 민족을 인식한다.

    다시 말해 그에게 있어서 민족은 혈통과 문화와 력사를 공유한 운명공동체로 인식한다. 민족은 <<언어, 지역, 혈연, 문화, 정치, 경제생활, 력사의 공동체에 의하여 공고히 결합되고 그 기초상에서 민족의식이 형성됨으로써 더욱 공고하게 결합된 력사적으로 형성된 인간공동체>>라고 할수 있다. 홍용암은 이 가운데 혈통, 문화, 력사를 공유한 공동체로 민족을 인식하였지만 조선족의 경우 언어까지를 공유한 공동체이다.
    하지만 그의 민족개념은 국민국가를 배경으로 한 령토개념을 뛰여넘는다. 즉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지역적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장거리민족주의라고 할수 있다.

    디아스포라가 보편화되고 세계화가 진행되는 시대에는 초국가적이고 국경을 초월하는 장거리민족주의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대두하게 된다.  
 
  
                                                       6. 결 론 
 
    이 글은 중국조선족시인가운데 조선민족으로서의 민족정체성을 가장 뚜렷이 갖고있고 조국통일에 대한 강렬한 념원을 나타낸 홍용암의 시를 분석하였다.

    특히 민들레꽃, 흰구름, 다리 등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중국조선족의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인식과 조국통일에의 열망에 대해 분석하였다. 홍용암은 <<민들레꽃>>을 통해 리산의 정체성을, <<흰구름>>을 통해 그리운 고국을 자유롭게 왕래할수 있는 자유의 상상력을, 그리고 <<다리>>를 통해서는 조국통일에의 역할을 표출하였기에 본고는 이들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흰구름이 된 이야기>>를 비릇하여 <<나는 한쪼각 흰구름>> 등의 시에서 지상의 하얀 민들레꽃씨와 천상의 흰구름은 바로 디아스포라로 인해 여기저기 흩어지고 정처없이 떠도는 신세가 된 중국조선족을 표상한다.
    <<민들레꽃>>은 그 꽃씨의 빛갈이 희다는 점에서도 백의민족의 표상이 되며, 하얀 꽃씨가 바람에 흩날려 여러 곳에 퍼진다는 점에서는 한반도를 떠나 중국 이곳저곳에 리산한 조선족을 표상한다. 따라서 민들레꽃은 디아스포라로서의 중국조선족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이미지로 형상화되고있다. 홍용암은 그의 시에서 민들레꽃을 민족을 표상하는 이미지로 사용하였다.

    <<흰구름>>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떠돈다는 점에서 모국을 떠나 이국땅을 정처없이 떠도는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를, 그리고 <<흰구름>>의 흰색이미지는 백의민족을 표상한다. 그리고 홍용암은 자신의 아호를 <<백운(白云)>>으로 삼음으로써 백의민족의 후예이자 중국땅을 떠도는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인식을 환기한다. 화이트 콤풀렉스라 칭할만큼 한민족은 흰색을 선호하는 집단무의식을 갖고있다. 흰색에 대한 심리적, 정서적 애착은 조선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부르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조선족에게 현재의 거주국인 중국과 모국인 조선, 한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흰구름>>은 하나의 리상이자 소망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조선족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아무리 커도 자유롭게 고향을 찾아갈수 없다. 이 점에서 한중수교 전후의 중국조선족이 처한 고국과의 왕래가 부자유한 현실을 반영하였다고 할수 있다.
    홍용암의 시에는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서 통일에 대한 념원이 <<다리>>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표출된다. 통일은 조선반도 남북의 동포뿐만이 아니라 혈통, 문화, 력사, 언어를 공유한 민족이라는 공동운명체로서 재외조선인들도 똑같이 념원하는 민족적열망이다. 그는 통일에 대해 미온적인 남북을 향해 질타를 가하는가 하면 미력하나마 통일에 참여, 기여하고싶은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기도 한다.

    홍용암은 유년시절을 한족집에 얹혀살며 차별받는 환경에서 성장함으로써 다른 중국조선족들과는 달리 통합적정체성을 갖지 못한채 분리의 태도를 갖게 되였다. 즉 조선, <<한국>>의 전통적인 고유문화에는 동일시하나 중국의 주류문화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분리의 태도를 갖게 된것이다. 그가 자신의 시창작의 동기를 점점 사라져가는 중국조선족의 민족정체성과 문화의 탐구 및 민족적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사명감에서 비릇되였다고 밝히고있듯이 차별받으며 자란 성장환경은 오히려 그에게 확고한 민족정체성을 갖도록 작용했다.

    그에게 민족은 혈통과 문화와 력사를 공유한 운명공동체로 인식되고있다. 하지만 그것은 거주국가를 배경으로 한 령토개념을 뛰여넘는다. 즉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장거리민족주의라고 할수 있다. 리산이 보편화된 세계화의 시대에는 그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대두할수 있는것이다. 우리 나라는 해외동포를 재외국민으로 호명하며, 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등 그들이 조국발전에 기여할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있다. 말하자면 재외조선인들에게 장거리민족주의를 관주도하에 정책적으로 환기함으로써 국가발전을 위해 재외한국인들이 축적한 저력을 활용하고자 하는것이다.

    홍용암의 시를 통해서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시대의 민족주의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가졌다. 특히 이민을 통해 거주국과 모국이라는 두 개의 정치시스템속에서 이중적정체성을 갖고 살아가야 할 디아스포라에게는 자국민중심의 민족주의와는 다른 차원의 장거리민족주의라는 개념으로 그들의 모국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을 설명할수 있을것이다.
    그야말로 세계화의 시대이고, 령토나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재외조선인과 그들의 문학에 대해서 더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한국에서 출간되는 국가급학술지 <<동북아문화연구>> 2014년 9월호에 발표, 평자는 한국 부경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겸 문학박사, 저명한 문학평론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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