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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글/박영진]"백제 땅을 다녀왔습니다"-중국동포역사교육문화탐방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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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6  21: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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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 사진
[서울=동북아신문]백제의 향기를 맡으며 백제인의 숨결을 느끼면서 백제의 영광도 있고 백제인의 한도 서려있는 백제 땅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중국동포역사교육문화탐방차로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충남 부여)과 웅진성(충남 공주)에 일박이일로 다녀왔다. 이번 이 역사교육문화탐방은 재한중국동포를 대상으로 한국사 및 민족의 역사문화탐방과 교육을 통해 민족의 뿌리를 알고 역사적 동질감 회복 및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더불어 ‘코리안 드림’을 통해 우리들의 미래비전과 역할을 발견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주제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데 중국동포사회의 현주소-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어떤 상황에 와 있으며 또 어느 길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고 탐구하는 뜻 깊고 소중한 시간을 갖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KC동반성장 기획단과 중국동포한마음협회 주관, 한중무역협회와 한국글로벌피스재단 주최, 행정안전부(행정자치부) 후원으로 조직된 이번 문화탐방에는 재한중국동포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열성팬 47명이 참가하였다.

9월 1일, 오전 8시에 서울 대림역에서 출발한 ‘서울고속관광버스’는 11시에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성에 도착했다. 첫 번째 탐방지는 백제왕릉원(능산리고분군)이였다. 부여10경중에서 부여4경으로 불리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8곳 중 한곳으로 되어 있다. 부여에 4곳이 있는데 왕릉원 바로 옆에 길게 들어 누운 부여나성, 점심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찾아가게 되는 백마강과 낙화암이 있는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그리고 시내 한복판에 보란 듯이 살아남아 있는 정림사지이다. 

백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백마강과 낙화암, 그리고 낙화암에서 백마강에 꽃잎처럼 떨어지는 삼천궁녀들이다. 그다음 떠오르는 것이 삼천궁녀를 거느리면서 오랫동안 왕의 의자에 앉아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해온 의자왕, 나중에 나라를 말아먹고 꽃 같은 삼천궁녀를 고기밥으로 만들고 자기도 포로로 잡혀 당나라에 끌려간 불쌍하고 가증스러운 의자왕, 권력욕을 버리고 왕의 의자를 태자 융한테 넘겨주었더라면 이런 비운을 맞이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아있다. 그리고 의자왕이 신라의 성을 공략했을 때 신라의 공주를 목 잘라 죽이지만 않았어도 김춘추가 이토록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멸망시키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인과응보라고 백옥 같은 신라의 예쁜 공주를 참하는 악행을 범한 의자왕은 천벌을 받아도 마땅하지만 군주를 잘못 만난 백제의 백성들과 소정방의 군사들에게 무참히 짓밟힌 백제의 여인들이 너무 불쌍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여진다. 동족상잔의 결과 동족이 타민족에게 짓밟히고 유린당하고 능욕당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백제의 유적지를 탐방하고 난 한국의 한 시인은 시에서 이렇게 썼다. 백제의 땅 야수에게 짓밟히니 옥수수 밭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소정방 군사들의 음탕한 웃음소리인가 백제 여인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인가 구곡간장 찢어지네.

   
▲백마강 황포돛배

구드래 선착장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부여1경인 낙화암이 있다. 낙화암은 백마강가에 서있는 높이 40m의 절벽인데 삼천궁녀가 몸을 던져 꽃처럼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부소산성에서 가장 유명하다. 전설속의 강- 백마강에서 난생처음 타보는 황포돛배인지라 그저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유람선 안내방송에서 백마강과 조룡대의 전설, 고란사의 고란약수와 고란초에 깃든 전설을 들려주고 나자 백마강노래가 흘러나왔다.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에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아래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 나라가 망한 백제인의 애환이 담긴 애잔한 노래 소리를 듣노라니 그 옛날 백제시대로 되돌아가는 듯 했다.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고란약수와 고란초가 피어있는 고란사가 있었다. 백제가 멸망할 당시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의 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절인데 고려시대에 건립된 듯하다. 고란사에서 나는 종을 울리며 삼천궁녀를 불러보았다. 그리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면서 두 손 모아 그들의 넋을 빌고 또 빌었다.

   
▲백제의 공산성과 백제군

백마강에서 떠난 우리 일행은 이번에는 부여2경ㅡ 정림사지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정림사지는 여러 시대에 걸친 유물들이 많이 출토 되었는데 특히 창건기인 백제시대와 중건기인 고려시대의 유물들이 제일 많이 출토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발굴조사에서 ‘태평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라고 씌어 진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로 불리었음이 밟혀졌다. 그 이후로 이 절터는 정림사지로, 탑은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백제의 영광을 자랑하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은 국보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지울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가슴 아픈 상처가 남아있다. 백제 사비성을 침공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탑의 1층 탑신에 승전기공문인 ‘대당평백제국비명’을 사방에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비문의 내용에는 당나라와 신라가 힘을 합쳐 백제를 공격한 이야기, 포로를 압송한 이야기 등 치욕적인 내용이 적혀있고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660년 7월 18일에 항복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여 정림사 오층석탑도 평제탑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538년부터 660년까지 약120년 동안 가장 찬란했던 백제의 도읍지라는 영광과 마지막 도읍지라는 아픈 역사를 동시에 껴안은 부여는 135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백제의 자취가 뚜렷하다. 사비성의 진산, 부소산의 아름다운 숲을 거닐고 백마강을 바라보며 면면이 이어지는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만끽하면서 우리는 아쉬운 심정으로 사비성을 떠나 또 다른 백제의 옛 수도였던 웅진성으로 떠났다.

   
▲ 백마강 입구에서

웅진성은 백제가 고구려 세력이 남하하자 어쩔 수 없이 첫 수도였던 한성(서울)을 떠나 두 번째로 도읍지를 정한 곳이다.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두 곳이 있다. 공산성과 무령왕릉(송산리고분군)이다. 이곳 탐방은 내일 일정으로 미루고 한국문화연수원이 기다리고 있는 마곡사입구로 문화탐방가족들을 싣고 ‘서울고속관광버스’는 신바람 나게 달려갔다.

저녁식사 후,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있은 저녁일정은 교육 강좌를 듣는 것이었다. 첫 강좌는 지구촌평화연구소 김백산소장님이 ‘통일한국의 비전’이라는 주제로 알차고 열띤 강의를 펼치셨다. 우리 한민족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정신인데 이것은 한민족 정체성의 근원이다. 한민족의 꿈은 민족의 이상과 세계에 대한 사명이다. 우리의 사명은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고 통일 민족으로 되어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통일된 나라를 위한 비전을 이루려면 남과 북 그리고 중국동포를 포함한 모든 겨레의 피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잘살자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꿈 이였다. 백제의 멸망을 불러온 동족상잔의 비극, 형제지간의 갈등이 초래한 고구려의 패망,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6.25동족상잔의 비극...  이런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중국동포한마음협회 회장, KC동반성장 기획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용선 회장의 강연이 있었다. 김용선 회장은 현) 법무부 외국인정책실무위원회 위원, 서울시 서남권민관협의체 사회문화분과위원장,서울시 외국인주민및다문화가족지원협의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중앙 다문화위원회 부위원장, 서울시당 동포특별위원회 위원장 ... 등 많은 직책도 맡고 계시는데 이름 있는 동포사회활동가이다. ‘코리안 드림과 우리’ ‘동포이주사와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무척 공감이 가고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튿날, 예정된 일정대로 공산성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또다시 백제시대로 되돌아가 본다. 13만 당나라대군과 5만의 신라군이 쳐들어와 사비성이 무너지자 웅진성으로 옮겨와 결사항전을 시도했던 의자왕, 그때 그 가열처절 했던 전투현장을 피부로 뜨겁게 느끼게 된다. 나중에는 그토록 믿었던 충신인 예식진장군의 배신으로 포로로 잡혀 당나라로 끌려 간 의자왕의 숨결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했다. 의자왕을 포로로 바친 예식진은 당나라에 가서 큰 벼슬을 하면서 잘 살다가 천수를 다 했다고 한다. 의자왕은 몇 해 후 멸망된 백제 땅을 그리워 하다가 이국타향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다. 의자왕을 팔아먹고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당나라의 개가 되어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려온 예식진과 그의 후손들, 고종임금(광무황제)을 팔아먹고 조선을 팔아먹은 대가로 일제의 개가 되어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 국민들을 개나 돼지처럼 여기며 추호의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없이 큰소리 떵떵 치면서 살아가는 한국의 슬픈 현실이다.

가슴 아픈 백제의 역사현장을 떠나 이번에는 국립공주박물관이 있는 무령왕릉을 찾았다. 무령왕릉(백제25대왕)은 1971년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굴되었는데, 1500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완전한 상태로 발굴되었다. 이는 삼국시대 피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한국 고대의 유일한 왕릉으로, 화려하고 세련된 미의식과 창의성, 수준 높은 공예기술을 엿볼 수 있다. 무령왕은 성군으로 역사에 알려져 왔는데 어진 정치를 베풀어 백성들이 풍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게 했으며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잃었던 많은 땅을 되찾기도 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의자왕이 비운의 왕, 실패한 왕이었다면 무령왕은 행운의 왕, 성공한 왕이라고 가히 할 수 있다.

   
▲ 고란사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백제로 시간여행을 갔다가 우리는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천안독립기념관에 들렀다. 이번 역사교육문화탐방의 마지막 일정이다. 국립기념관이라지만 국비가 아닌, 전액이 국민들의 뜨거운 성금으로
   
▲ 박영진 약력: 1968년 연변왕청백초구 출생. 1988년 연변대학 물리학부 입학. 1989년 대학생예술절 12.9기념글짓기응모 수필조 1등상 (침실야곡) 수상.2015년 청년생활 7기에 《그립다, 그때 그 추억》발표. 2016년부터 중국동포타운신문과 동북아신문에 본격적으로 수기 수필 20여편 발표.동포문학에 시, 수필 다수 발표.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현재 전북 전주 제이피엠주식회사 근무
모은 자금이라는 것, 국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깨끗한 양심으로 모아진 성금이라는 것,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난다. 이곳에서 나는 한국의 양심을 보았고 행동하는 양심의 위대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1945년 8.15광복이후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상징하는 독립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이 사회각계에서 제기되었다.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을 계기로 독립기념관 건립을 위한 국민성금 모금과 역사자료 기증운동이 국내. 외 각지에서 뜨겁게 일어나 1987년 8월 15일 역사적인 개관을 이루어 냈다. 한반도를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고 한민족을 저들의 노예로 부려먹으려던 일제, 조국과 조상을 팔아먹고 동포들을 팔아서 일본똥개로 되어 지들의 부귀영화만 꿈꾸었던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백제와 의자왕을 팔아먹은 예식진이 세세대대로 내려오면서 욕을 먹고 황산벌(충남 논산)에서 피를 흘린 백제의 오천결사와 계백장군의 충정이 아름다운 노래로 전해질 때,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이 땅에서 발붙일 곳이 없고 독립투사들의 거룩한 뜻이 겨레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때 우리 민족의 미래는 더욱 아름답고 찬란할 것이다.

                                                                               2018 09 05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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