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정자 약력: 수필가. 평론가.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국어교원, 길림신문사 기자. 현재 일본거주, 일본 ECC외국어학원 한국어강사. 연변작가협회회원, 일본조선학회회원, 일본조선족연구학회회원. 수필 「화산 우에서 사는 사람들」, 제9회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필 『감나무에 담긴 정』 제1회 同胞文學 安民賞. 수필부문 우수상. 수필집 『금밖에 나가기』,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
 [서울=동북아신문]“달에 가기로 했습니다. 아티스트들과 함께.”

세계에서 처음으로 계획된 민간인 달여행 티켓을 전매한 패션 쇼핑사이드 「ZOZOTOWN」의 마에자와(前沢)사장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일본 샐러리맨들의 평균 연수입이 4백만엔이 좀 넘는데 한 장에 백억엔 한다는 티켓을 칠백억엔이나 들여서 7장 전부 쟁취함으로써 세상을 놀래킨 마에자와 사장의 인생철학의 하나가 “돈은 쓰면 쓸수록 불어난다”이다.  그의 이런 철학에 의해 만들어진 무한루프는 이러하다.엄청 큰 돈을 쓴다→ 상상도 못 했던 체험을 하고 특별한 만남을 얻는다→ 자신이 성장했음을 깨닫는다→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 그리고 다시 돈을 엄청 쓴다→ …… 그 유명한 실례의 하나가 뉴욕의 경매시장에서 미국의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현대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의 그림을 1억 1000만달러(123억엔)에 낙찰한 일이다. 그랬더니 바스키아 그림을 좋아하는 헐리우드 배우 디카프리오가 그 사실을 알고 그림이 보고 싶다면서 연락해 왔는데 이 이야기가 이슈가 되어 전 세계에 전해졌다. 따라서 「ZOZOTOWN」의 이름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래서 매출 량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 마에자와 사장이 이번에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갈 달여행 티켓을 샀다. 달여행 후에 어떤 명작들이 탄생될지 지금부터 기대가 된다. 그를 인터뷰한 기자들의 평에 의하면 마에자와 사장은 꿈을 갖고 사는 소년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꿈을 위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그렇게 꿈이 있는 사람이기에 단칸방에서 시작한 사업을 일본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달여행도 그런 꿈을 이루는 무한 루프의 한 고리이다. 인간은 인생의 무한루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가 어디에 얼마를 투자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루프가 달라진다. 20만엔을 버는 사람이 1만엔만 쓰다면 그는 흔히 상상되는 체험 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은 똑같은 원 안에서 뱅뱅 도는 그저 고만한 무한루프를 되풀이 하게 된다. 그러나 20만엔을 버는 사람이 20만엔을 쓴다면 그는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경험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새로운 비전을 안겨줄 수 있다면 그가 쓴 돈을 낭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제 남편이 중국제 팔보죽 한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어디서 생긴 거예요?”하고 물으니 남편이 늘 점심을 먹는 중국집 요리사가 병원에 데려다 준 감사의 뜻으로 억지로 안겨 준 거라고 했다. 길림에서 일본에 온 중국인 부부인데 동료들도 중국인뿐인 식당 안에서 늘 일만 하다나니 10년이 되어도 일본어로 말할 수 없어서 남편이 우리 차로 병원에 실어다 주고 번역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들을 데려다가 일본회사에 취직시키고 싶다고 부탁해서 남편이 회사에 소개했는데 여태껏 부모가 보내준 돈으로 공부는 안 하고 편하게 놀기만 했던 그 애가 취직 시험에 합격될 리가 없었다. 별 수 없이 중국에 돌아갔다가 요즘 다시 돌아왔지만 취직은 못했고 힘든 일은 하기 싫고 그래서 부모에게 붙어사는 겨우살이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눈을 뜨면 식당에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자는 무한루프 속에서 그 부부는 돈은 좀 모았겠지만 아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 못했다. 아무리 돈이 좀 있으려니 사회에 나설만한 어떤 능력도 못 갖춘 아들이 지금처럼 돈을 벌지 않고 쓰기만 한다면 돈이 바닥이 나는 것은 순간일 것이다. 열심히 돈을 버는 무한 루프 속에서 아들이라는 이 고리를 놓쳤기 때문에 그들의 무한루프에는 아직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도쿄에 가면 한국인이 하는 가방공장들이 많은데 거기에서 일하는 한국인 불법체류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회사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거의 밖에 안 나가니 일본어는 늘지 않고 그렇게 돈을 버느라 자식교육은 놓치게 된다.  그런 악성 무한루프에 빠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딸애 교육에만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부터 일본학교를 다니게 된 딸애가 일본애들을 따라잡고 초과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비싼 과외비를 내면서 일류대학의 학생을 가정교사로 들이었고 제일 유명한 학원에 보냈다. 그랬더니 첫 중간시험에서 학년 4백명 중 130위를 했던 딸애가 기말시험에서는 학년 50위 안에 들었고 졸업할 때는 학년 2위를 해서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또 학원을 두 곳이나 다니게 하였더니 나고야 국립대학에 들어갔고 대학 졸업 후에 영국유학을 보냈더니 건축공업 쪽이었던 전공을 자기의 적성에 맞는 디자인 쪽으로 바꿀 수 있었다. 돌아와서는 대학원에 들어가서 석사 박사 공부를 하게 했고 그래서 지금은 나고야대학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 와서 20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모은 돈으로 집을 사고 재산을 늘이는 사이 우리는 버는 족족 모두 딸애에게 투자하였다. 돈을 벌어서는 딸애에게 투자하고 또 돈을 벌어서는 딸애에게 투자하는 이 무한루프 속에서 투자할 때마다 딸애는 발전하였고 더 높고 좋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무한루프 속에서 어느 날 돌아보니 늘 부모 돈으로 공부하고 살아가던 딸애가 어느새 우리 집의 경제적 기둥이 되어있었다. 해마다 가는 온천여행비도 딸애가 내주었고 집의 승용차도 딸애가 돈을 내서 마스다(松田) CX3로 바꿔주었다. 남편의 지갑, 벨트, 키케스 같이 돈이 드는 소지품은 다 딸애가 명품으로 골라 사주었고 며칠 전에는 자기 생일인데도 도리어 나에게 멋진 가죽가방을 선물해 주었다. 딸애를 공부시킬 때만 해도 그저 딸애의 인생이 좀 더 밝고 편하고 딸애가 좀 더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에서 돈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애 덕을 보고 있었다. 일본에 오기 전에 나는 이미 수필가, 비평가라 불리는 작가였다. 하지만 그 때의 내가 사는 세상이 좁았기 때문에 내 글은 빈약했고 시야가 좁았다. 일본에 오니 국제 학술회의에 다닐 기회가 많이 생기었다. 문제는 교통비는 물론 호텔비용까지 다 자기부담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공부가 거의 취미인 나는 좀 무리해서 돈을 쓰더라도 부지런히 학술회의를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낯선 학자들의 낯선 학문에 좀 방황하기도 했지만 20년을 다니다 나니 어느 사이인가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었고 내 학문도 부쩍 늘었으며 내 시야도 많이 넓어지게 되었다. 내가 쓰는 논문이나 평론들이 논문집이나 평론집에 선택되게 되었고 수필집도 평론집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글을 쓰는 것이 그렇게 힘들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다. 인생은 무한루프의 연속이다. 다만 그것이 악성순환과 양성순환으로 나뉠 뿐이다.도박에 빠진 사람은 도박에 지면 있는 돈을 다 끌어서 도박에 밀어 넣는다. 그래서 지면 이번에는 빚을 내서라도 또 도박을 하고 그래서 또 지면 사채 빚에 아내까지 밀어 넣는다. 유명한 스포츠선수나 배우 가수들이 마약에 젖으면 두 번 세 번 체포되다가 나중에는 은퇴까지 이르게 되는 것도 무한루프의 악성 순환이다. 자기 인생의 무한루프는 자기 자신이 만든다. 아래로 하강하는 악성 무한루프를 만들지, 늘 똑 같은 자리를 도는 원형 무한루프를 만들지, 아니면 돌수록 위로 올라가는 나선형 상승 무한루프를 만들지 결국 선택은 자기가 하는 것이다. 본원통화량의 거의 세배에 이르는 일본은행의 돈을 풀어서 엔화의 가치를 낮췄지만 경제 성장과 물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덤으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실시한 결과 국채만 불어난, 제 털을 뽑아 제 구멍에 꼽는 식의 아베노믹스 경제 정책이 일본의 경제를 확실하게 끌어올리지 못하는 것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에 높은 벽을 세우고 시리아를 폭격하고 이제는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까지 일으키면서 강압적인 수단을 쓰는 것이 도리어 미국의 세계적 위치를 흔들리게 만드는 것도 다 그들이 악성 무한루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무력대치의 무한루프 속에서 악성 순환을 하던 한국과 북조선이 요즘 대화를 통해서 70년의 전쟁상태를 끝내려는 평화무드를 만들어 가고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두 수뇌가 겨우 빠져 나오고 있던 악성 무한루프에 다시 되돌아가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빌 뿐이다. 내가 어디에 마음을 쏟고 어디에 시간과 돈을 붓는가에 따라 거기에는 그에 상응한 무한루프가 생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작가로서의 무한루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 상승선이 완만하게 그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위로 올라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니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나의 무한루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같은 동그란 원이지만 옆에서 보면 라선으로 올라가는 무한루프, 나는 그런 무한루프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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