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세상을 빙빙 에돌아 제 자리로 다시 오다

 

                                          조선시대 녀류시인들 시와 사랑 4: 

 
 
                                         소춘풍(笑春風), 봄바람을 비웃는다!                                     ㅡ 세상을 빙빙 에돌아 제자리로 다시 오다                                                         홍용암 (엮음)       일개 천기(賤妓)의 몸으로 군왕(君王)을 모시고서도 속박의 몸이 되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당돌한 녀인, 세상에 짜하게 소문을 놓으며 인생을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어느날 깜쪽같이 소리없이 잠적해버린 천하명기 ㅡㅡ 그녀가 바로 소춘풍(笑春風)이다.     소춘풍(笑春風, 1467~? 추정)은 성종(成宗, 재위 1469년~1494년)때 함경도 영흥(永興)의 명기였다. 용모가 지극히 아름다웠기때문에 그 미모로 조선을 뒤흔들었다. 리능하가 지은 “조선해어화사”에 소춘풍을 두고 “미모로서 한세상을 뒤덮었다”라고 기록되여있을 정도다. 거기에다 성품도 담대하여 권력자들을 쥐락펴락했다고도 한다.     소춘풍은 기명(妓名)이고 본래의 이름과 성은 미상으로서 그녀는 가무와 시, 노래에 뛰여나고 수집음을 잘 타면서도 해학과 재치, 기지가 넘쳤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가무와 온갖 잡희(雜戱)에 재능이 출중한 기생을 뽑아서 한양으로 올려보내였던 "선상기(選上妓)제도"가 있었다. 각종 국가행사공연에 충당할 예능인을 찾아내기 위한 제도였다.    조선시대 국가행사때마다 궁궐연회는 조선제일의 경국지색 및 절세가인들의 경연장이였다. 경연에서 "선상기"로 그 실력을 인정받으면 소속된 지방의 관아로 돌아가지 않고 한양에 영영 머물러 살수가 있었다. 기생으로 말하면 출세한 셈이 된다.      당시 함경도 영흥 기생 소춘풍의 명성은 이미 조선팔도에 파다하게 퍼져있었음으로 성종이 그 명성만 전해듣고서도 특별히 그녀의 이름을 지명하여 선상기(選上妓)로 선출되였던것이다. 서울에 올라온후 소춘풍은 성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소춘풍(笑春風)"은 "봄바람을 웃는다"는 뜻으로 그것은 "잠간 봄바람처럼 지나가는 인생을 우습게 본다"는 뜻으로도 풀이되고, 또 달리 보면 "'세상사가 봄바람처럼 덧없다!"는 달관한 자세를 의미한다고도 해석할수 있겠다.     옛적부터 전해지는 다음의 한시(??)에 "소춘풍"이라는 결구가 한마디 나오는데, 어쩌면 그녀가 여기에서 "소춘풍(笑春風)"이라는 그 이름을 따온것인지도 모르겠다.        去年今日此門中 , 人面桃花相映紅 ;        人面不知何處去 , 桃花依舊笑春風。        지난해의 오늘에도 이 곳에 있더니       그대 얼굴 온통 붉게 복사꽃에 물들었지        반갑게 웃어주던 그 얼굴은 어디 가고        복사꽃만 옛과 같이 봄바람을 웃는구나!                           3정승6판서를 떡주무르듯 한 헌주가(獻酒歌)      학문과 풍류를 좋아했던 성종은 궁중에서 문무백관과 더불어 자주 연회를 베풀었고 그럴때마다 소춘풍을 불러서 풍자(諷刺)와 해학(諧謔)과 재치가 철철 넘치는 그녀의 노래와 춤과 시읊기로 그 주흥을 한껏 돋구게 하였다.      이날도 성종은 군신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소춘풍에게 행주(行酒)하게 하였다. 행주란 임금을 대신하여 군신들에게 술잔을 돌리고 술을 따르는것이다.     소춘풍은 먼저 성종에게 정중히 술을 한잔 따라올리고 청아하게 "헌주가(獻酒歌)"를 불렀다.          성종대왕 태평성대(太平聖代) 어즈버 태평연월 (太平烟月)이로다        격양가(擊壤歌) 드높으니 이 아니 성세(聖世)인가        순군(舜君)도 계시건마는 요(堯)임금인가 하노라!       온나라 백성이 풍년을 맞아 격양가를 부르니 요순시대에나 있을법한 태평성대요, 또 상감마마께서는 순임금보다도 요임금에게 견줄만한 일대의 성군이시라고 하늘높이 칭송을 하였으니 성종의 룡안에 환한 미소가 해님처럼 두둥실 떠올랐을건 당연한 일이다.     그다음 소춘풍은 잔을 들고 영의정을 비릇한 문신들앞에 나아가 깍듯이 술을 부어 권하면서 시조 한수를 지어 노래한다.           당우(唐虞)를 어제본듯 한당송(漢唐宋)을 오늘 본듯          통고금(通古今) 달사리(達事理)하는 명철사(明哲士)를 어떻다고          저설대 역력히 모르는 무부(武夫)를 어이 좇으리?       "덕으로 세상을 다스려 태평시대를 이룩한 요순시대를 어제 본듯하고 중국문화의 바탕을 이룬 한나라와 당나라, 송나라의 문화를 오늘 본듯 훤히 다 아는 선비들을 그냥 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인(장군)들을 따르겠는가?!"라는 의미로 그 자리에 있는 문신들을 찬양하고?? 무신들을 무시하는 노래였다.      그러자 문신들은 좋아라고 박장대소(拍掌大笑)하고 무신들은 저마다 화를 벌컥벌컥 냈다.     소춘풍은 아무일도 없었던듯 이번에는 무신들의 앞으로 다가가 일일이 잔에 술을 부어 올리며 시조 한수를 더 읊는다.           전언(前言)은 희지이(戱之耳)라 내 말씀 허물마소         문무일체(文武一體)인줄을 나도 잠간 아옵거늘        두어라 규규무부(赳赳武夫)를 아니쫓고 어이하리?!      그 뜻인즉 "앞에서 문신들에게 한 말은 우스개이니 노엽게 생각마시오! 문과 무가 다같이 중요한 하나인줄을 나도 알고 있으니, 훤칠하고 씩씩한 무관들을 아니따르고 어쩌겠습니까?"라는 말이다.      그러자 울컥 머리꼭뒤까지 치밀었던 무신들의 분노가 순식간 봄눈 녹듯 사르르 녹으면서 모두들 좋아서 야단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문신들이 시무룩해지면서 불만족해한다.      그래서 소춘풍은 나중에는 문신들과 무신들 그 중간에 앉아서 량쪽을 번갈아 돌아보며 랑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한다.          제(齊)도 대국(大國)이요 초(楚)도 역대국(亦大國)이라        조그마한 등국(藤國)이 간어제초(間於齊楚)하였으니         두어라 이 다 좋으니 사제사초(事齊事楚)하리라!      시조의 의미는 "제나라(문신)도 큰나라요 초나라(무신) 역시 큰나라이온데, 그 사이에 조그마한 등나라(소춘풍)가 끼였으니, 등나라는 제나라도 섬기고 초나라도 섬기겠나이다!"라는 내용이였다.      옛날 중국 등(鄧)나라 문공이 맹자에게 "등(鄧)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큰 나라인 제(齊)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 끼였으니, 그렇다면 구경 제(齊)나라를 섬기리까? 아니면 초(楚)나라를 섬기리까?”라고 물었을 때 맹자가 우와 같이 대딥했는데 그 고사를 빌어 우회적으로 여러 문무대신들을 모두 공경한다는 자기의 뜻을 내비친것이다.      잠시 긴장하고 어색한 감이 떠돌던 연회석에 삽시간 또 폭소가 터져오르고 열락(悅樂)의 흥취가 한껏 고조되였음은 물론 더 말할것도 없다.      소춘풍은 절묘한 재치와 해학이 차넘치는 아주 짧은 세수의 즉홍시조로써 조정의 내노라하는 문무고관들을 떡주무르듯 하면서 한바탕 울렸다가 실컷 웃겨버린것이다.     분위기는 곧 다시 화기애애하게 바뀌였다. 소춘풍은 그저 노래만 불렀던것이 아니다. 한낱 기생의 입담에 놀아나는 고관대작들의 웃기는 모습들을 재미나게 굽어보고 있었던것이다. 어쩌면 혼자 속으로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손자병법에 싸움이란 이기기 위해 하는것이 아니고 이미 이긴것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것이라 했다. 소춘풍은 시조노래 세마디로 그저 이를 확인한것뿐이다.     성종은 이 장면을 보고 너무나 흡족한듯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면서 당장에서 비단과 명주, 그리고 호랑이가죽을 소춘풍에게 상으로 가득 하사했다.                           하루밤 총애로 평생의 한을 품기를 거부하다        성종은 녀색을 너무 좋아하였다.     하루는 성종이 소춘풍을 불러서는 문득 고백하는것이였다.      "나는 네가 좋아 오늘 같이 지내고싶구나! 될수 있겠느냐...?!"     사실 군왕과 기생사이에는 구태여 그렇게 상의할 필요도 없이 오직 명령과 복종만 있을뿐이지만 성종은 절대 그리하지 않았다. 명령대신 그녀의 의견을 청취했다.      "아... 아니..."     소춘풍은 깜짝 놀라며 말을 얼버무리였다.     사실 소춘풍도 언녕 속으로 성종을 흠모했다. 군왕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내로서도 풍류를 아는 당대의 헌헌장부였으며 한낱 천한 기생인 자기에게까지 늘 한사람의 평등한 녀인으로 대해주는 그 풍도가 감격되고 너무 끌렸다. 그러면서도 소춘풍으로서는 선뜻 대답할수 없는 큰 고민이 있었다.     당시의 법도로는 임금을 단 한번만이라도 모시기만 하면 그 나머지 인생을 반드시 그 임금의 녀인으로 살아야 했는데, 자칫하면 한평생 그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차라리 상감께서 임금님이 아니시고 보통한량이라면 얼마나 좋으실가...?!)     소춘풍은 평소에도 그러한 아쉬운 생각을 늘 하군 하였다.     그래서 선뜻 대답을 못올리고 머리만 숙이고 있는데 성종이 다시 한마디 묻는다.     "너는 내가 싫으냐?"     소춘풍은 황급히 대답을 올린다.     "아니옵니다. 소첩도 마마를 흠모하지만 마마를 모시면 금후 너무 많은 구속이 따르게 되니...”     너무도 뜻밖이였다. 자기와 상대하는 녀인들은 모두가 임금과 단 하루밤이라도 함께 지내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데, 이렇게 당돌하게 거부하는 녀인도 있으니 민인지상의 군왕인 성종으로서는 난생처음이였다.     그러나 소춘풍이 한 말을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보통녀인들과 달리 궁냥이 깊은 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공하옵나이다..."     "무엇이 황공하다는 말이냐?"      " '일야총, 백년한(一夜寵, 百年恨)'이라는 말이 있듯 성상의 하루밤 총애를 입으면 한평생 독수공방의 한을 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오니, 그게 심히 두렵사옵나이다..."     성종은 자기는 임금이면서도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건만, 소춘풍은 일개 기생이면서도 자기의 인생만은 자기 뜻대로 살려는 그 의지와 자유가 부러워났다.      성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인은 그저 일국의 군주이지만, 인생을 자유분방하게 사는 너는 인생의 군주로구나!”     성종은 소춘풍을 돌려보냈다...      그후로도 소춘풍은 늘 성종의 부름을 받아 궁중에 자주 드나들었다. 성종은 평소 소춘풍을 매우 예쁘게 보았다.     하루는 성종이 또 소춘풍을 부른다.    소춘풍은 또 연회가 있겠거니 하고 달려갔으나 그런 기미는 없고 우울한 모습의 임금만 혼자 옥좌에 앉아있었다.     “상감마마, 오늘은 무슨 연회이옵니까?”     “아니다. 오늘은 없느니라...”     “그러하오면...??”     “오늘은 어쩐지 불시에 마음이 쓸쓸해지며 네가 보고싶어 불렀느니라!”     주안상을 준비하게 한 성종은 몇잔의 술을 마신후 말헸다.     “내 오늘 꼭 너와 함께하고 싶구나!”      소춘풍은 멍하니 성종을 쳐다보며 일시 대답을 못한다.    그러자 성종이 다시 묻는다.     “왜 마음이 또 내키지 않느냐?”      불호령이 떨어질것같아 마음을 조마조마 조이던 소춘풍은 임금이 조용히 묻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호ㅡ 내쉰다.      “황공하오나, 전번에도 말씀을 드린대로 오늘 성상을 한번 모시면 그후에는 계속 많은 구속을 받으며 살아야 할 일이 너무... 그래서...”      성종은 한동인 침묵하더니 드디여 리해가 된다는듯 수긍한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과인은 일국의 군주라지만, 이제보니 인생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너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군주로구나! 알았다. 방금의 이야기는 없었던걸로 치자...”                      군왕이 아닌 리서방과 밖에서 정을 통하다       그로부터 10여일이 지났다.    어느날 한밤중, 누군가 소춘풍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여봐라, 이 집이 천하명기 소춘풍의 집이 맞으렷다?!”     "천하명기는 아니옵니다만, 제가 소춘풍이옵니다..."     "허ㅡ, 내가 집 하나는 면바로 옳게 찾았군. 나는 양주에 사는 리서방일세. 그대의 명성만 듣고 초행길을 찾아오느라 이렇게 늦었으니 나무람말고 어서 문을 좀 열어주게나!"      그래서 등불을 밝혀들고 그 나그네를 방안으로 모셔들이고 보니 아무리 미복잠행(微服潛行)을 했다해도 단박에 알아볼수 있는 성종대왕의 룡안이 아니신가!    소춘풍이 소스라쳐 놀라 납작 엎드렸다.     “아니 상감마마, 성상께서 이 한밤중에 어찌 이리 루추한 곳까지...”     “쉿ㅡ, 놀라지 말라! 나는 오늘 왕이 아니라 지나가는 나그네의 자격으로 온것이니라... 그리 알라...”     “하오나...”     성종은 시종 시치미를 뚝 떼면서 말하였다.    “아참, 걱정 말래도... 나 리서방이라는데두 그러네그려! 그저 꽃을 찾아온 한마리의 나비라고 하지 않느냐? 얼른 주안상 가져오지 않고 뭘하느냐...?!”     성종의 말대로 그날 그렇게 마주앉은 성종과 소춘풍은 군주와 기생의 관계가 아니였다. 더는 성종을 거절할 리유가 없게 된 소춘풍은 자기를 억세게 끌어안는 성종의 품에 그대로 몸을 던져 덥석 안겼다.      그날밤, 두사람은 30대의 지아비와 20대의 지어미의 신분으로 아무런 우려와 구애없이 밤새워 사랑을 활활활 불태웠다...      다음날 새벽, 소춘풍의 집을 나서던 성종이 돌아보며 한마디 물었다.     “전과 같이 궁중회연에 나와주겠느냐?”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오늘부터는 군주만을 모시는 기녀로 살겠사옵나이다..."     그후에도 밤에 몰래 궁궐의 담벽을 넘어 변장을 하고 찾아온 성종과 소춘풍은 수없이 뜨거운 정염을 불태웠으나 아무도 두사람의 비밀을 몰랐다.     달콤하고 자극적이고 행복한 나날들이 계속되였다. 두사람은 더욱 정이 폭ㅡ 들었다...      야사에서는 왕이 그녀를 그리워해 밤중에 궁궐 담을 넘어 달려가 그녀 집의 뒤뜰로 통하는 기와장담을 뛰여내렸다고 한다. 왕하고는 안놀겠다는 그녀에게 성종은 "난 그냥 리서방이요!"라고 했다는 그 기막힌 일화 ㅡ 이와 같은 설화는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후의 송도 선비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 1556~1615)의 시화야담집(詩話野談集)인 <<오산설림(五山說林)>>에 수록되여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소춘풍이 서울에 올라온지도 어언 4년이 되였다. 매번 성종이 소춘풍의 집에 잠행하여 기나긴 밤이 짧도록 정염을 불태우다 날이 밝아 돌아갈 때쯤이면 소춘풍은 그지없이 아쉽고 안타까와했다.          자다가 깨여나니 원촌의 닭이 운다         안고 안고 다시 안아 새 사랑 내엿거든         무삼일 동녘하늘은 점점 밝아가느니...      남의 눈을 피하여 이렇게 찾아온 님이 녀인의 집에서 한밤의 정한을 다 태우지도 못했는데 새벽은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하늘을 밝히며 달려오는가? 그 새벽이 그야말로 야속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바람을 부르소서 비 올 바람 부르소서        가랑비 그치고 굵은 비 쏟으소서         한길이 바다가 되여 님 못가게 하소서!      할수만 있다면 서로 꼭 엉켜 안은채 몇날몇밤이라도 떨어지고싶지 않은 뜨거운 련정을 불살랐던 소춘풍의 바질바질 타드는 가슴은 밝아오는 멀쩡한 새벽하늘을 향하여 난데없는 장대비라도 내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성종이 갑자기 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더니만 즉위 26년 섣달 스므나흗날에 38세의 아까운 나이로 너무 일찍 승하하였다.      성종이 죽고난후 소춘풍은 너무도 슬퍼서 오래동안 식음을 전페하고 드러누워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세상에 약도 많고 드는 칼이 있다 하되        정 베일 칼이 없고 님 잊을 약이 없네       두어라 잊고 베기는 후천에 가 하리라!     성종이 승하한후 새로운 왕인 연산군(燕山君, 재위 1494~1506)의 등극에 따라 스스로 아예 없는 존재런듯 두문불출하는 소춘풍은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그녀도 왕을 모셨던 기녀의 본본을 스스로 지켜 그후부터는 다시는 그 어떤 손님도 만나지도 접대하지도 않았다.         바람불어 서리찬 날 울고 가는 저 홍안아       반남아 썩은 간장 네 소리에 다 썩는다       진실로 너 우는 밤이면 눈물겨워 하노라!     성종임금과 수없이 불태웠던 그 뜨거운 정염의 밤을 그리며, 그릴수록 더더욱 생각나고 너무너무 고통스러워, 이제는 그 아픈 못잊을 추억을 떨쳐버리려고 소춘풍은 마지막으로 아직 잔디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여 휑뎅그레한 선릉(성종의 무덤)을 다시 한번 휘ㅡ 둘러보고는 쓸쓸히 한양을 떠나간다...                          덧없는 세상을 빙빙빙 에돌아 다시 제 자리로      소춘풍은 문득 오래동안 가보지 못하고 한동안 거의 잊고 살았던 고향으로 가보고싶었다. 그래서 고향을 향해 타박타박 홀로 길을 떠났다.      고향으로 찾아가며 소춘풍은 짧지만 너무나 눈물겹고 다난다사했던 자기의 지나온 인생을 한번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서로 함께 의지하며 살다가 너무 일찍 돌아가신 그 가련한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일시에 욱ㅡ 온갖 감회가 갈마들며 줄끊어진 구슬이런듯 뜨거운 눈물이 두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함경도 두메산골 한 마을에 홀로 사는 과부가 있었는데 원체 너무 박색이여서 그 과부를 "보쌈"하여 업어가려고 하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하여 쓸쓸한 과부는 그 외로움을 견딜수가 없어서 누구든지 자기를 집적거리고 갖기를 원하는 남정네한테는 다 몸을 내주었다. 그래서 은근히 마을남자들에게서 매우 쉬운 녀자라는 얕보임을 당하면서 서럽게 살아가는 불쌍한 녀인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석양무렵, 지나가던 칠십이 다 된 늙은 탁발승이 찾아와 과부의 집에 하루밤만 묵어가기를 청하였다.      그날밤, 그 탁발승은 과부와의 동침을 요구하며 자기가 꾼 어제밤의 꿈얘기를 했다. 꿈에 만경창파가 눈앞에 아득하게 전개되거늘 잠시후 그 망망대해 한복판에 련꽃 한송이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그 련꽃이 활짝 피며 자꾸만 커져서 순식간 바다 전체가 꽃 한송이로 가득 차버렸다는것이다.     기이한것은 그 과부도 전날 저녁에 거의 비슷한 꿈을 꾸었는데, 산속에서 웬 백발로인이 과부에게 나타나 련꽃 한송이를 주면서 집에 가지고 가 정성스레 잘 키우라고 신신당부하고는 홀연히 바람처럼 사라지는것이였다.      본래 자기를 탐하는 남자라면 젊은이든 늙은이든 가리지 않았던 과부는 서로가 꾼 꿈까지 딱 들어맞자 그것이 분명히 하늘의 그 어떤 계시나 뜻이라고 생각하고 그날밤 달갑게 로승을 받아들였다.     다음날 아침, 탁발승은 떠나가면서 과부를 보고 이제 애가 태여난 후에는 상관없으나 그 애가 태여나기전까지는 절대로 일체 외간남자를 삼가하라는 다짐을 단단히 하도록 했다. 떠나는 탁발승에게 과부는 이름만이라도 알려달라고 간청하였으나 그는 어느 절에도 소속되여있지 않은 행운류수와 같이 떠도는 몸이라고만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하지만 과부는 이틀간 그 탁발승의 뒤를 몰래 가만가만 뒤따라다니며 수소문하여 끝내 그 로승이 석암사의 대사이고 법명이 운지대사라는것을 알아냈다.      과부는 집에 돌아와 인차 임신하였고 그날부터 일체의 남자를 거절하며 몸을 정결히 하여 어린애를 낳았는데, 그렇게 태여난 아이가 바로 소춘풍이다.      아이가 태여나자 과부와 관계했던 마을남자들은 처음엔 혹시 아이의 아비가 자기라고 말하면 그 양육덤터기를 쓸가봐 저마다 아니라고 발뺌할 준비를 하였지만 막상 아비도 모르고 태여난 그 아이를 보니 너무 곱게 생겼고 귀티가 잘잘 흐르는 비범한 아기므로 그 태도가 일변했다. 그들은 서로 저 아이는 자기의 아이일것같다고 말다툼을 했다.     이렇게 태여난 소춘풍은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속담과는 달리 박색한 어머니와는 너무나 정반대로 그 미모가 류달리 뛰여났고 머리가 남달리 총명하였다. 5살때부터 부근의 쌍용사의 선원에서 글을 읽고 불경을 배웠는데 열살이 지났을 때에는 어느덧 불경에 무불통지(無不通知)했다고 한다.      그녀가 12살나던 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쌍룡사의 중들이 의가지없는 고아가 된 그녀를 입양해 계속 키워주면서 불경에 통달한 신동(神童)인 그녀더러 차라리 입적하기를 권유하였다. 그러나 소춘풍은 한사코 뿌리치고 있다가 어느날 불공을 드리러 온 어느 한 기생의 눈에 들어 그녀의 수양딸이 되고 그다음 그 기생을 따라 영흥으로 와서 기생이 되였다.     기적에 이름을 올리고 동기(童妓)로 교방에서 꾸준히 기생수업을 하다가 어느덧 나이가 15~6세가 되여 교방의 규례대로 처음으로 남자를 받아들여 성인지례(成人之禮)를 올려야 했다. 그녀의 빼여난 미모와 뛰여난 재주를 높이 산 많은 부자들이 앞다투어 더욱 많은 돈을 내놓으며 서로 머리를 얹어주겠다고 나섰으나 소춘풍은 수양모의 권유마저 뿌리치고 스스로 한 가난한 선비를 택하였다고 한다.        사랑인들 아무나 하며 리별인들 다 섧으랴        평생에 처음이오 다시 못볼 님이로다        이후에 다시 만나면 연분인가 하노라!      돈은 나중에 얼마든지 벌수 있다고 생각한 소춘풍은 고이 간직해온 첫순정만은 돈으로 사려고 드는 아무 남자에게 막 주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그리고 평생에 처음이자 단 한번뿐인 순정을 바치는것이라면 비록 천한 기생의 신분이라지만 절대로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주고싶지 않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에서였다.     그후에 명성이 점점 높아질수록 돈 많은 한량들이 문전에 줄을 쭉ㅡ 이었다. 그러나 돈을 아무리 많이 가져와도 풍류를 모르는 남자에게는 절대로 함부로 몸을 맡기는 일이 없었다. 그대신 풍류를 잘 아는 괜찮은 한량이면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그녀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선상기가 되여 서울에 올라가게 되였고 그후 나라님인 젊은 성종임금과도 남몰래 사랑을 불태우게 되였으며 지금은 이렇게 다시 그 고향이 그리워서 찾아가고있는것이다.      꼬박 일주일남짓을 걸어서 함경도 영흥땅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수양모마저 이미 죽고 없는 집은 아무리해도 그녀를 도무지 그 곳에 정붙게 하지 않았다.      소춘풍은 다시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린후,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제 남은 할 일은 혹시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를 찾아보고 만나는것뿐이였다. 어머니가 생전에 수차 말씀해주시던 그 선색대로 한번 꼭 찾아가보기로 결심하였다.      소춘풍은 어머니가 알려주신 바대로 간난신고를 거쳐 겨우 운지대사를 찾아 석왕사에 갔으나 그 사찰에서 운지대사가 몇해전 다시 금강산 유점사에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또 금강산으로 다시 길을 떠났다. 어머니가 생전에 그 대사가 그녀의 아버지라고 말한적이 여러번 있었기에 이제라도 기어이 자기의 그 피줄을 찾아보려는것이 소춘풍의 일관된 생각이였다.      성종이 승하한후 세상의 락을 잃어버린 소춘풍은 금강산 유점사에서 주지스님에게 애원해 드디여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여 90세가 넘은 고승(高僧)인 운지대사(雲志大?)의 법사에 참석한다. 끈끈한 피줄로서의 인연이 분명히 있었을것이나 잠시 오래 속세에서 끊기였던 아버지와 딸의 첫만남이였다.      그때 유점사에게 받은 소춘풍의 법명은 운심(雲心), 그녀의 나이 28세, 이제 겨우 인생을 갓 알아가기 시작할 때인 한창 고운 꽃나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인젠 인생을 다 산 느낌이였다. 그녀의 운명처럼 스스로 지은 소춘풍(笑春風)이란 이름자 그대로 너무 일찍 우스운 세상을 읽어버렸고 인생의 허무와 덧없는 무상함을 알아버렸다. 나라의 지존인 임금님과도 원없이 서로 끔찍 사랑을 활활활 불태워보았고 그 권세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궐의 3정승6판서까지도 다 떡 주무르듯 해보았으니 평생에 원이 더 없었다.     락엽귀근(落??根)이라 했던가? 인젠 제 자리로 돌아갈 때가 된것 같았다. 그녀는 원시 불교계에 입적한 대사의 몸에서 기를 받아 태여난 육체의 몸이니 그 뿌리가 불교에 있었다고 할수 있었고 또 글을 알기 시작하던 5살때부터 쌍용사에 들어가 불경을 배우고 통달하였으니 그녀는 가히 불교와 끊을수 없는 끈끈한 인연의 끈을 가지고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복잡한 세상에 나가 살아보았자 별거 아닌 이 세상은 한낱 허황한 꿈같은 한세상, 그녀의 나이 열두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적 쌍용사의 스님들이 그녀더러 차라리 입적하라고 권고하던 그 뜻을 소춘풍은 이제야 조금 알것 같았다. 그때는 세상물정을 잘 몰랐고 또 세상리치도 깨치지 못했으며 아직 체험해보지 못한 바깥세상에 대한 일종 호기심과 유혹과 미련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 고집스레 끝끝내 은거중이 되기를 한사코 거부하였지만 지금 그런 세상을 빙빙빙 에돌아서 다시금 제 자리로 돌아오고보니 이제사 그 뜻을 제대로 알것 같았다.      (허사로다! 허사로다!! 모든것이 꿈같고 덧없고 허사로다...!!!)       소춘풍은 운지대사와 함께 서로 합장을 했다.      "나무아미타불... !!!"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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