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취업과 밀입국  


중국 조선족의 한국으로의 취업과 관련된 밀입국은 95-96년경에 절정에 이르렀다.1)  96년경 밀입국 알선료는 전년보다 20% 상승한  1인당 5만 위안(한화 500만원)으로 올랐는데 이는 현지 근로자 월평균 임금의 10년 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중 1만원을 계약금으로 내기 위해 전답을 팔거나 빚을 내는 것이 예사이었으며 밀입국의 성공자는 영웅으로 인식되기까지 하는 풍조이었다.2)  그들은 밀입국에 성공하여 식당이나 공장 기숙사에 들어가 먹고 자고 월 50만원 받는 게 소원이었다. 적발되면 벌금 100만원 내고 송환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한국내에 4만 여명의 불법체류자가 있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동북 3성에만 150여 브로커 성업 중이었다.3) 밀입국 성공하면 1인당 최고 500만원을 기준으로 성업 중이었고 그들의 수법은 일단 한국에 닿기만 하면 취업까지 연결되는 루트가 있고4)  해상입국이 별로 어렵지 않아 연고가 없어도 음식점이나 가내공장에서 얼마든지 일할 수 있었다고 보도되었다.

 

흑룡강신문의 인용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 막노동을 하더라도 1년만 고생하면 중국에서 평생 잘 살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 하나로 목숨을 건 밀입국 조선족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94-95년 사이에 1000여명이 밀입국자가 적발되었으며 이들은 한국과 중국내의 조직망을 이용해 해상을 통한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밀입국을 시도하였다.5)  그들은 종전에 주로 한국의 서남해상 이용하였으나 검거가 잦아지자 중국-러시아 극동지역-동해-부산 루트 활용하였다. 그리고 밀입국 방법도 단순한 해안 상륙은 기본적인 것이고 냉동차 밀입국(목포, 96.3.22-30명; 96.6.22-33명), 잠수 및 수영(울산, 96.6.4, 파나마 국적선), 정박중인 외항선 무단하선(부산, 96.6.7)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였다.

 

한중간에 밀입국 문제가 심각해지자 중국에서도 밀항대책을 위한 회의까지 개최되었다.6) 이는 한국행 밀항자들이 최근 급증하고있으며 밀항자들 중에는 중국 일반인과 조선족 뿐 아니라 중국의 당. 정 관리들과 현역군인들까지 포함돼 있고 밀항사건들이 점차 조직화되고 한-중 양국간 국제범죄 성격을 지님에 따라 대대적 척결에 나서게 되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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