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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2019 작품특집3] 해암 시 편린 외 12수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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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4  11: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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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암 약력: 필명 수라. 1970년 중국 길림성 서란 출생. 1988년 <송화강>에 소설 <오월> 발표. <도라지> <송화강> <연변문학> <흑룡강신문> 등에 시 수필 수십 수 발표. 2016년 7월 <동포문학> 우수상 수상. 2017년 한국 <한반도통일문학> 시 부문 신인상 수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편린
 

매일 거울을 한번쯤 봐야 한다.
얼굴에 자라는 시간의 싹들을 잘라내야 한다.
그리고 절실하게 위장한 죽음의 실마리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한페지씩 자서전을 쓴다.
누구와 나란히 카메라앞에서 미소를 다듬던 기억이 아니라
혼자 손가락에 닿는 잔주름의 촉감을 되새기는 모습으로 ...
죽음은 영원히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으로
거울처럼 앞에 서있다.
그리고 그뒤에 깨여질 허상의 순간을 위해
아무 것도 아닌 벽을 감추고 있다.
 
 
투명한 그림자
 

침묵, 그 고귀한 위선의 껍질을 벗기면
얄팍한 진리의 속셈이 드러난다.
열린 귀의 문고리를 두드리고
닫힌 입술에 화려한 립스틱을 바른다.
어제는 미쳐가는 내일을 기다린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물 떠난 붕어의
파닥임을 느낀다.
바닷게는 느긋하게 갯벌을 기여 가고
나는 반쯤 남은 빵과 반 남은 커피를
두고 떠난다.
하나 둘 셋 흩어지는 엷은 그림자들
 
 
검은 봉지
 
 
수많은 사람들이
내곁을 스쳐지났어.
검은 봉지들이 내 다리를 스쳤어.
검은 비밀들이
총총히 집으로 향했어.
파란 불이 켜졌어.
건느지 않으면 안될 차례
내겐 시간이 필요해
건너야 할지 말지
게임처럼 살순 없어
제한된 속물
시간앞에 선 나체모델들
건반같은
하얀 낮 까만 밤들을 밟으며
이건 선택을 버린 선택
할인된 자유일뿐.
 

통증
 
 
바람이 스쳐도
아프다
생각마저 아프다
새벽을 납치한
밤만큼 아프다
취한 날보다 아프다
미친 개한테 물린것 보다
아프다
깨진
두번째 사랑만큼 예리하다.
이상의 시가 생각날 만큼
저리다.
살며 질렀던  몹쓸 짓들이
질끗질끗 
쑤신다.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모든  욕망이
스러지고
모든  아픔이
서려온다
피안彼岸의
그림자.
 

꿈 1
 
 
잠깐 눈을 붙였다.
의자에 접혀진 정오의 시간,
 
복도 입구에 빛이 들어왓다.
인간의 윤곽으로  눈부신  빛그림자,
내 게로  다가온다.
 
잴수 없는 백금의 빛속에
너는 너답게  눈부시다.
긴듯 민듯  스며드는 너의 향기
 
깨진 낮꿈 사이로
이 미터 앞에  네가 걸어 오고
너의 시선은 내 시야를 비껴 지난다.
 
영혼의 진실은 순간뿐이다.
눈을 감아도 잠이 들어도,  죽는다 하더라도
서로 닿을수 있는  미지의  길이  있음을.

 
꿈 2
 
 

그날  너에게
내 꿈을 말할 때
난 사실  너를 꿈꾸고 있었다.
나 홀로  꾸는  열대야의 꿈을
 
우,리,는
길거리를 무심코 걸었다...
 
너의 블라우스
검은 색은 덥다.
꿈결에 흔들리는 나의 눈동자를
너는  비밀처럼   지켜보았다
내 등에 얼굴을 묻고
나즈막이 건늰  밀어
그런 너와 나를
의식의 울바자 너머로
지켜보며
슬픈 인연을 예감했나봐.
갈거라고.. 멀리
사랑을  떠나서 갈거라고..
꿈을 웃던 너의 입술은
허무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꿈 3
 
 
생각지도 않았던 꿈이 찾아왔다.
한동안 잊혀 가던 사람이
담가에 실려  돌아왔다.
이제 그만 잊어가고 있구나
하며 지낸 하루하루가 너무 해맑아서
이젠 잊혀 지며 살고 있나 했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화살이 되여
딱지 앉은 상처에 꽂힌다.
예리한 슬픔에 꿈이 잘려 나간다.
멀리 떠났을 그 사람이
방금 다시
내 곁을 떠난다.
꿈에서 깨여난 아픔 위로
사랑이 덧날 것 같다
 
   
풀과 새 
 
 
 
 
풀은 위험하다.
짙은 여름풀은 위험하다.
바람이 선뜻선뜻 갈아눕힌 푸른 잎새들이
차례로 덤벼든다.
나 어쩌다 그들의 거침없는 무도의 파티장에
침몰했나
어느 신의 계략일가 탱탱한 여름의 유혹에
서슬푸른 추억의 살기를 감춘채
나 어쩌다 꽃잎 하나 묻히지 않은
6월의 푸른 늪 한가운데 허우적 거릴가
바람의 광분속에 풀들의 노래,
내 메마른 가슴이 빠져들어 그대로 잠들고 싶은 ,
나 어쩌다 일렁이는 너희의 춤사위에
이름없는 서러움을 풀어헤치며
짝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홀로 서있나?
풀들은 위험하다
쉅게 다가와 나를 괴롭힌다.
날 세운 초록의 일격에
풀이 두렵다
 

청라의 오침 
 

따가운 커피를 한컵 마시고
바람이 닿지 않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스티로폼 한장 깔고
반듯이 눕는다
이제 남은 건
오 침 시 간
금속들의 충돌은 계속되고
모든 소음은
귓구멍사이를 지나간다
날카로운 칼끝이 유리 위를 미끄러지듯
우리의 수면은 이제 견고하다
얼어붙은 겨울강처럼
혈액은 유유히 흐르고
단순한 꿈 하나 봉인된채
먼지를 만끽하다
정월의 한반도 청라지구
어느 벽구석에
우리는
미이라처럼 누워있다.
부활의 시간을 기다리며...
 

의자의 생활 
 

의자는 조금씩 소리를 낸다
아무도 앉지 않은 빈 의자가
아무도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를 낸다.
아무도 앉지 않는 빈 의자의
얇은 신음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옮기려 하지도
그렇다고 앉으려 하지도 않는 빈 의자요
의자는 신음하는 관절을
움직이고 싶어 한다
의자는
힘이 없다
의자는 자신이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잘 모른다
오래 서있었다 는 생각을 한다
의자의 생각은 많이 다슬고
삐걱거리기도 한다.
의자는
언젠가의 자신이 붕괴 될 날
먼지 조금 날릴수도 있는
열반을
기다린다.
의자의 자리에 의자가 있다
의자는 의자의 의리를 지킨다
의자의 자리에 의자가 자란다
의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
 
 
첫차
 

날 세운 새벽바람
횡단보도를 잘게 썬다.
토막진 그림자들
출구로 쏟아진다.
잠시 숨 돌린 허기를 휘여잡는
어묵향
김밥. 삶은 계란네
간밤의 술기운을 빵 뚫는 어묵탕
5시 13분
계단을 밟는 초침소리에
검은 베낭을 추스른다
빈대떡처럼 굳은 얼굴
영하의 수은주처럼 냉엄한 표정들이
투명한 침묵속을 오가다
비슷한 유기체들이 다면체 거울속처럼
복사된 운명처럼
자동문 안으로 삼켜진다.
컹컹 짖어대는 레루소리에
섞이는 기침 두 토막
자취방 눅진 옷내음
숙취에 얼룩진 숨결 몇가닥
숨가쁜 환승에 흩날리는 눈빛들
먹이 찾아 파닥이는 날개짓들이
고국의 새벽을 헤집는다.
 
 
뱀을 위한 추도문 
 

일회용아이스커피플라스틱컵의
난민생활은 태평양중심
아틀란티스대륙이 종착점
해나른한 오후를 위해
에어컨 한기가  빵빵한 커피숖에서
마신 에소프레소
내몸은 7분마다  새로운 세포들로 제작되고
탄 내음 나는 커피맛이  목젖에  걸린다
졸음이 넘실대는 오후에
각성 따위 필요 없지만
그래도 일회용 기도는 해야 한다
이제 추방지는 없다. 쓰레기가  되야 한다
나를  추방할 여건이 불충분한 이유로
이제  눈물도 수출금지다
이런 만남이 가당키나 할가
도로변 유리벽에 충돌한  새의 망막에는
푸른 이끼가  돋아 날 징조다.
껍질의 두께는  더 이상 얇아 질수 없고
그물에 걸린 고래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어제 만났던 파랑새는
빛이  떨고 있는  동굴 속에
날개를 접고 꺼꾸로 매달린 박쥐가 되였다.
황금박쥐
피를  빨아라. 신선한  피.뜨거운  피.
아름다운  나의 피를 방울방울
머금어라
알리미늄커피캔에 모가지가 낀 얼룩뱀은
결국 회색가오리의  부리속으로
뱃속에 담았던  플라스틱을
인계하고 
 
*  북태평양 한복판에는 엄청나게 큰 쓰레기 더미가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다. 남한 면적의 14배나 되는 거대한 ‘플라스틱 섬’으로 크기만 따지면 ‘제7의 대륙’이라고 할 만하다.
 
 
 
어떤 이유 
 

책꽂이에서  책들이 흘러내린다
산사태처럼  흙과 돌과 물의
괴물이 되여  나의  디스플레이를 채운다
어둠의  새로운 제왕이다
허위와 진실이 사이좋게 오가는 징검다리사이로
날조와 비방은 수초처럼 흐느적 거린다
너와 내가 어디서 왜 무엇으로 만났는지
이유도 없이 우리는 연인들처럼 집착에 빠진다.
결국  오랜 세월  뇌에  기생한 애벌레의
원인은 나의 고장 난 도어록
비밀스런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시간의 지평선너머 정체불명의 추락사.
수많은 진실이 그 우물에  빠져  죽었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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