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시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허인 약력: 본명 허창렬, 시인/평론가. 기자/편집 역임.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전부회장/평론분과장. 동포문학 시부문 대상 등 수상 다수.

1. 사랑이 내게로 와서 문 두드릴때 1

 

사랑을 비 오듯이 하라
사랑을 눈 내리듯이 하라
사랑을 노래 부르듯이 하라
사랑을 꿈꾸듯이 하라
아픔이 없는 인생이 어데 있으랴
미움이 없는 인생이 어데 있으랴

사랑을 항상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하라
하도 아프고 아파 어루만지면
상처마다 뚝뚝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덕지덕지 피눈물이 말라 붙더라도
그것마저 당연하듯이 사랑하라

두번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도록
그렇게 사랑을 하라 처음부터
우리 모두가 그러했듯이
이끌면 이끌려 가는대로 두손을 맞잡으면
무조건 마음이 향하는대로
너 없인 더는 이 세상을 나 홀로
살아가야 할 아무런 리유마저 없었을만큼
그렇게 사랑하라

미움도 사랑하라 그리움도
사랑하라 기다림도 사랑하라
사랑이 내게로 와서 살짝 문 두드릴 때
나는 방문을 살짝 열고 커피 한잔
진하게 타 들고 산과 이야기 나누다가
바람과 이야기 나누다가 하늘과 이야기 나누다가
바다와 이야기 나누다 가구름과 이야기 나누다가

괜스레 얼굴이 가무잡잡한 풀들과
손발이 간지러워 멋적게 뒤통수
긁적이는 어리숙한 살구나무와
눈동자같이 맑은 가을 호수와
이야기 나누다가 때 지나면 심드렁한게

사랑이더라도 오늘은 하루종일
두런두런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싶다
사랑이 내게로 와서 문 두드릴때
난 한오리 바람이 되여
어디론가 누굴 찾아 멀리 떠나고 싶다

 

2. 사랑이 내게로 와서 문 두드릴때 2

 


괴로웠노라 말을 하면 정말
괴로워질가
외로웠노라 말을 하면 정말
외로워질가
그리웠노라 말을 하면 정말
그리워질가
사랑했노라 말을 하면 정말 사랑이
나에게로 올가
괴로운 날은 괴로운대로
외로운 날은 외로운대로
그리운 날은 그리운대로
서러운 날은 서러운대로
사랑을 밥 먹듯이 하자
사랑을 물 마시듯이 하자
사랑하고 사랑하다 홀로
목 메이는 그런 날이면
어느 별엔가
찬 이슬로 내려 앉아 그 고운
두눈으로 너의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리
사랑이 마르고 다슬어
이 세상에서 말끔히 사라져 갈때
난 그래도 일찌기
뜨거운 가슴으로 그 누군가를
사랑했었노라 말을 하리

 


3. 사랑하다 아플 때면

 


사랑하다 아플 때면
남산에 올라
북산기슭의 까칠한 까치둥지와
남산기슭의 진붉은
진달래가 서로 강물에서 만나
아름다운 그림이 될때
우리 언제 아팠던듯이
시원하게 어디론가
흘러가는 개울물로 두손을
깨끗이 씻자

잘 다슬어 반질반질한
저 자갈돌들이 까마 아득히
태고적 바위의 이야기를
말끔히 잊은듯이
덤덤히 서 있는 저 성벽위의
한포기 풀처럼
바람이 흔들면 흔들리는대로
몸을 내 맡기자

내 가난한 조국과
내 가난한 아버지와
내 가난한 어머니와
내 가난한 형제들을 언제나
한방울의 눈물로 사랑하였듯이
오늘은 먼데서 손님과
따뜻한 인사말
한마디라도 선뜻이 건네자

아팠던 만큼 아무렇치도
않았던듯이
살아가야만 했던 지난 날들을
오늘은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산과 호수와
두런두런 옛이야기 나누며 하늘아래
바위로 우뚝 서보자

사랑하다 아플때면
남산에 가라
북산이 왜 높았던지 그
까닭이 알린다
사랑하다 아플때면
북산에 가라
남산의 구름이 흰옷을 차려입고
왜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가는지 그 까닭이 알린다

 


4. 산다는것은 1

           


묻지 않기로 했다.
새벽이 오면
창문을 열어 아침을
맞아 들이고
밤이 오면 이불을
펴 피곤한
육체를 잠 재우기로 했다.
 
왜 사느냐고
무엇으로 사느냐고 물어오는
낯선 시선들에 잡혀
얼굴도 가끔 붉혀야 겠지만
나에게서 더 이상
관심이 없는 일들을 묻지도 따져보지도 않기로 했다
 
산다는 것이
정말 잘하는 짓인지 나로서는
알수조차 없지만
그것이 조물주에게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하는것인 양

가끔은 눈물이
나오는 일이 있어도
가끔은 사랑보다 분노가 앞서는 일이 있어도
나는 끝끝내 참기로 했다.

산다는건
눈물이 나는 일
산다는건
미여지는 앞 가슴을 햇볕에
깨끗이 말리워야 하는 일
웃으면 하얗게
소금이 내 돋는 일

 


5. 산다는 것은 2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
산다는 것은 외러운 일

오늘도 나는 와일드 빛
오렌지 색으로
어느 바닷가 어느 언덕위에
바위로 우뚝 서있다

가물거리는 별
가물거리는 등대
희망이라는 점 하나에
오늘은 또 누구의 이름표 한장
절망으로 붙어  있을가

산다는건 상처투성이
산다는건 눈물투성이

뒤 돌아 보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던 일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눈물이 났던 일

죽으러 온 세상 그래
살아야 하겠기에 너도 나도
부르는 희망의 노래

  

산과 바다의 만남, 그리고 그 이야기...  


6. 먼 우뢰소리

 


네가
울던 날 공연히
가슴이
쓰라린 사람들도
있었다
비여버린만큼
다시
가득 채워버리는
한줌의
햇살때문에 창자마저
꺼내들고
껄껄 웃을수 있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네가
온다기에 고즈넉히
방구석에
들어 앉아 내다 본
남국의
하늘은 찌뿌둥했다
사람
사는 일이 어찌
맑고
밝은 날만 있으랴
설움을
토해내듯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봄소리에
풀들은
가만히 감았던
눈을 뜬다

 


7. 혈(血) 1


 
목마른 독버섯이 재채기한다
창문쪽을 마주앉아
풀쩍풀쩍 콧물을 들이 마신다
파노라미쳐 가는 감기
몸살인것이 분명하다
충무로 대학가에서 소문을 듣고
총대바지 입은
바람이 쏜살같이 내게로 달려온다
적청황록남자, 난데없이
현기증이 야료 부린다
열두개의 심방에서 메마른 우물이 더욱
깊은 뿌리를 내린다
자의의 터밭에 싱싱한 상추와 풋풋한
고추를 심어놓고
타의의 십자길엔 불통의 대문을 세워
싯누런 대못을 쾅쾅 박아놓는다
디켄즈의 시계줄엔 오늘도 사망 시간이
따로 표시되여 있질 않다
더 이상 보지도 말것, 듣지도 말것, 이상한
흥분에 고개도 끄떡이지 말것-
나는 나의 무덤을 더욱 깊숙히 판다
하루종일 무덤속에 반듯이 누워
밤하늘의 뭇별을 가슴으로 꼼꼼히 세여본다
발가락까지 세여봐야 결국
몇가지 되지도 않는 내 삶의 리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코 막고
답답한 일들의 련속일뿐
나는 다시 자유로에서 테헤란로쪽으로
터벅터벅 하이에나와도 같이 걸어간다
해빛이 무참하게 나의 발톱에 뚝뚝 쏟아진다
순간 피들이 벌떡벌떡 일어서고 있다
밟으면 딱딱한 유리처럼 파삭파삭 깨여진다
파스켈로 손끝에 들려있는
빠알간 저녁노을 한송이ㅡ
 
 

 
 8. 혈(血) 2


 

절대의 강자가 없듯이
절대의 승자도 없다
순종의 밥그릇은 이미 깨여졌고
마분지에 그린 웃음 한조각
누워서 황제가 황제를 알현하기다
또 누가 알랴 거꾸로 흐르는
저 은하수의 맑은 강물에
몰듐이며 나트륨이 헤염을 칠지
눈굽이 축축한 안개는 이제
존재의 의미 하나로도 너무 족하다
좋고 그름도 우리들의 곁을 떠나버리면
저절로 라태해지는 법ㅡ
맑스는 푸른 피. 예수는 까만 피
부처님만이 빨간 피로 이 세상을 노래 불렀던가?
김치에 깎두기 그냥
허름한 삿갓을 쓴 <<아리랑>>이면
나는 오늘도 너무 행복하다
혈(血)이 혈(血)을 만나 마침내
혈(穴)을 이룬 강물
드림에 드럼을 타고 출렁이는 작은 몸뚱이들
등곬에서 부서지는
또 하나의 하아얀 아쉬움 하나
착하고 착하신 우리 이모
이제부터 나를 부를양이면
그냥 돌멩이라고 불러주오
그것도 싫증이 나면 썪돌에
칼을 갈듯이 마침내
한 혈육이라고만 불러주세요
황진이가 서경덕의
가슴을 끓여놓아 사품치며 요란하게
흐르는 울울했던 한방울의 피ㅡ

 

9. 이제 시인들은 한 백년 굶어 죽어도 좋다

 

단테의 지옥에 가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보들레르의 <<신천옹>>
천국의 칼바람에
검은 머릿카락 희끗희끗 휘날려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타고르의
<<불타는 동방신국>> 그 앞에
한 백년 꺽두러니 서서
이제 시인들은 굶어 죽어도 좋다
이역만리 오랑캐 꽃들의
저 우아한 눈빛,
그리고 깃털같이 가벼운 홍채(虹彩)
홍모보다 더욱 가벼운
우리들의 냉혹한 사유
自高自大로 더욱 오만해지는
우리들의 뉘앙스
찰나의 섬광으로 순진하고
어리무던했던 자연(自然)앞에서
우리는 오늘도
봉쇄된 육아실에서
죽으러 온 세상 살아 남기 위한 연습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보라 저기 저 발자크의 교훈을
보라 저기 저 말라르메의
"바람"같은 움직임을
땅바닥에 떨어져 버린 시편
그리고 빈약한 설움의
제 2 음절을 따라 부르며
오늘도 우리는 여기서
결코 자신심을
잃어서도 안되겠지만
바슐라르 호프만
클라게스의 때 지난 영혼(魂魄)으로 우리는 이제 무엇을
3ㅓ 길게 말할수가 있는가?
형이 상학적인
그 간결함이나 현상학적인 우리들의
그 지향성은 늘쌍 어느 행동주의자들의
그 유연성 앞에서 여지없이
물거품으로 산산히 부서지고 있거늘
이제 우리 이 시대의 유치하고
어리석은 시인들은
커피나 엽초, 그리고
그 저급적인 낭만 대신
한 백년 보리밥속의 돌멩이 삼키다가
마침내 굶어죽어도 좋다...

 


10. 종선여등 (從善如登)

 


내가 항시 너를 사랑하는 까닭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그런 까닭이기때문이요
내가 항시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늙으면 늙을수록 더욱
곱게 늙어가는 그런 이유에서때문일것이다

죽어서라도 한줌의 푸른 별 대문에 못 박아 걸어놓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 하나쯤
가슴에 품고 너를
우러러 희망의 노래 한곡쯤
부를수 있는 까닭은

살아서 만지작거렸던 그런
그리움이 쪽배를 저어 나에게로
다가 오기때문이리라
가난한 내 어머니와
가난한 내 아버지와 가난한 내 형제와
가난한 모국어로 가난한 행복을
눈이 멀어 노래 불렀었던 우리

내 죽어 그대의 눈이 되려하는
까닭은 아직도 너로 인해
가슴이 너무 뜨거운 그런 까닭이요
갈길이 급한 너에게
지팡이 하나쯤 건네주고 싶은
그런 까닭이리라

사랑은 고목에도 꽃을 피우나니
내가 너를 사랑해야 하는
까닭은 살아서 너로 인해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그런 목마름이 펑펑 그리움으로
샘 솟고 있기때문이리라

 

11. 사랑을 알기에 사랑마저 버린다

 


사랑을 알기에 사랑마저 버린다
버리고난후에야 다시금 주어드는 이 이별
그때는 사랑한다는 그 말이 이렇게 어려운 말인줄도 미처 몰랐었다
그저 꼭 지켜주리라던 그 말 한마디마저 이처럼 가슴 찌르는
헐망한 돌멩이였음을
하나 둘씩 다시금 새롭게 배워간다
 
정녕 너를 사랑하였기에
내  눈동자만큼 너를 아껴주는것이 내 생명의 전부, 성스러운 의무였듯이
이제는 지켜줄수조차 없기에 돌아서야만 하는 이 헐망한 박수소리
 
아아 언녕 파김치된 안녕아
손발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는 돌고래떼여
우리들의 슬픈 사랑은 이렇게 너무 빨리 끝이 났어도
우리들의 깊은 사랑은 드디여 나무의 창문을 열고 다시 시작된다

너를 멀리로 떠나보내면서 나는 진정한 남자가 된다
너를 넋없이 지켜보면서 나는 드디여 노오란 손수건이 된다
오늘도 이렇게 느낌을 주며  느낌을 받으며
꺼지지 않는 불씨 사진속의
우울한 두 얼굴
사랑을 알기에 사랑으로 버려진 장미꽃 한송이여


 
12. 기다려달라는 말 이제 더는 하지 않을래
 
 
기다려달라는 말 이제 더는 하지도 않을래
애써 침착하게 꽃처럼 파아랗게 웃는 너에게
이파리의 속셈에도 부드러운 너의 물향기
작고 침침한 내 속에서 자꾸 내 심장을 어루만져주던 너
그렇게 시간이 우리들을 버리고 간 그 빈 자리에 하얗게 서서
죄꼬만 손 보따리 살랑살랑 자꾸
흔들어주는
아아 찢어지는 맨 가슴에 내려앉는 보얀 먼지여
바라보는 눈길이 차갑게 얼어붙는 싸늘한 등뼈여
강물이 돌담 쌓고 흰 가슴 내밀어도
너는 언제나 내속에서 탁탁 튀는 작은 불꽃이여

이제는 두번 다시 기다려달라는 말 하지 않을래
장미의 눈물마저 작은 풀들의 가위질에 
꽁꽁  얼어드는 맨 가슴에 그처럼 큰 상처 아로새겨가면서
마주서면 언제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내 침묵의 얼큰한 파편쪼각들이여
앉고 싶은 자리마다 비둘기떼가 주르륵 흘리는 구슬같은 긴 세월의
눈물방울이여
해빛이 몸을 펴고 돌개바람 쫓아갈 때
안녕 내 사랑아 바이바이 내 삶의 무거운 십자가여
쉬다가도 끊임없이 걸어가야만 하는 너와 나의
인생의 십자길에서 이제는 두번 다시 기다려달라는 말 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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