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시로 보는 동포문인의 시세계...

▲ 김철호약력: 중국 용정시 출생. 연변대학 졸업. 연변인민방송국 문학편집, 연변일보 논설부/ 문화부 주임, 연변작가협회 이사 역임. 연변작가협회YUST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제5회 "진달래"문예상, 제16회 연변정지용문학상, 한국 호미문학상 본상, 한국 "아동문예"문학상 본상, 제1회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  등 다수 수상. 동시집 <작은 하늘>, 시집 <우리는 다 한 올 바람일지도 모른다> 등 다수 출간.


1. 하늘에 박힌 가시 


 
내가 아이 때 엄마는 아버지를 욕한다는 것이
“니 애빈 승얘(승냥이)네라, 승얘네라!”
친구들 모아놓고 북 대신 미닫이문 밀고당기면서
타닥탁탁… 둥둥둥둥…
달 떨어지는줄 해 돋아나는줄 모르고 술 마셔대고 담배 피워대며
애들 반찬까지 말끔히 먹어버리는 아버지가
승냥이같기도 하였겠지만 봉급날이면 과자봉지 사탕봉지 안고오는
아버지가 아버진 아버지여서 우린 많이 따랐는데
엄마 보다 애들을 더 고와하는 아버지가
엄마 눈에는 왜 승냥이로 보였을가?
때때로 방에서 흘러나오는 승냥이 울음소리가
엄마의 목소리임에도 엄마는 아버지가 승냥이라고 하는 일
무척 궁금하고 야릇했지만 바스락소리 하나 없이 귀 열고 잤었다
“니 애빈 승얘네라, 승얘네라!”
엄마에겐 아버지가 승냥이가 맞긴 맞길래 죽을 때 마지막 하는 말이
“절대 그것(아버지) 곁에 안 갈테니 그냥 태워서 날려보내달라” 했겠지!
그래서 그렇게 했다!
꺼먼 연기가 검은 가시처럼 하늘에 박히는 화장터의 굴뚝 바라보며
어떤 한이 있었길래 죽어 만나지 않겠다고 악을 쓰셨을가?
그런 한으로 우리 다섯 남매를 어떻게 배고 낳았을가?
엄마의 승냥이 울음소리는 진짜 승냥이 울음소리였단 말인가?
하늘에 박힌 저 가시가 과연 무얼가?
아아… 회석된 검은 연기처럼 이젠 영원히 알수 없는 하늘의 저 숨!

 


2. 나무


 
나무는 참으로 먼 곳에서 오래 온 것 같다
한번 쉬기 시작하니 떠날 생각을 안한다
밟아본 기분인 듯 늘 하늘 한 자락 쓰고 있다
아무리 가는 바람이래도 나무에게 들키면
꼼짝 못하고 예쁜 심음(心音)을 보인다
동서남북상하를 향한 푸른 입들은 늘 벌려져 있고
별이며 달이며 구름이며 태양이며 이슬이며를 끝없이 탐식한다
하나의 커다란 날개를 만드느라
서서히 오래오래 쉬며 꿈을 익히는 망(网),
자취 없는 나래질 소리를 념(念)하는 깊은 숨을 아무도 모른다
 
푸득! 나무는 오늘도 나래의 힘을 가늠해본다

 


3. 비

 

빛이 흐른다
이런 날에는 수많은 빛이 흐른다
빛의 길 따라 빛들이 흘러서
어디론가 간다, 달려 간다
고운 음악을 만들며 간다
빛들은 빛들을 만나
더 큰 빛이 되여 흘러간다
더 큰 선률 되여 흘러간다
빛의 흐름 소리는
하얗다가 검다
검다가 하얗다
고요하다가 요란하다
요란하다가 잠잠하다
텅빈 공간 쬐끔 큰 바람질이 있어도
빛은 꼭 가야할 곳에로 간다
그 곳에 가서 빛은 빛난다
고여서 빛난다
고였다 다시 흐르면서 빛난다
이런 날에 흐르는 빛은 빛이 아니지만
찬히 보면 빛이다
반짝이는 빛이다
충만해지는 찬란한 빛의 숨!

 


4. 새

 

새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점 하나인 네가 있기에
하늘은 저렇게 커보이는 거란다
나루배마냥 하늘을 가르면
까만 금이 생겼다가 금세 사라지고
너무 높이 솟아 하늘 속에 잠겼다가
다시 나타날 때에는 새야, 새야
넌 작은 별 하나로 반짝인다
찬히 보면 작은 별 그렇게 클 수가 없다
한 하늘 다 차지한 별 하나
하늘 만큼한 별 하나
죽어도 류성이 될 수 없는 별 하나
그건 하늘을 여는 작은 손잡이
꽉 잡아라, 그리고 저 푸른 하늘
넓고 깊은 하늘을 활 열어보아라!
하늘에 덮혀있는 저쪽 세상은 어떤 곳일가
새야, 하늘을 다 삼켜버린 새야
넌 알고 있겠지, 알고 있겠지
하늘을 하늘로 만든
하늘 보다 더 큰 작은 새야!

 


5. 바위 


 
바위를 옮겨다 시(詩)를 새기니 시비(詩碑)가 되였다
시비(詩碑)가 된 바위는 자기가 바위였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도고해졌다
새겨진 시(詩) 때문에 옷자락 여미는줄도 모르고
자기 앞에서 경건해지는 사람들 눈길을 업신 여기였다
 
어느날 시비(詩碑)앞에서 시비(是非)가 붙었다
시(詩)가 나쁜 시(詩)이니 지워야 한다느니
까부셔야 한다느니
시(詩)가 좋은 시(詩)이니 다치지 말아야 한다느니
영구보존해야 한다느니…
 
시비(是非) 끝에 시비(詩碑)를 잠시 그냥 놔두기로 했다
 
가슴이 철렁해난 바위는
식은땀을 한바탕 흘렸다
흉터가 나는 건 둘째치구 하마트면
풍지박살날번 했잖았구 뭔가!
 
무섭구나!
무섭구나!
 
바위는 자기 몸에 새겨진 시(詩)가 어떤 시(詩)인지 무척 알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였다
 
시비(是非)가 있는 시비(詩碑)
시비(詩)碑에 있는 시비(是非)
 
바위는 산에 돌아가 친구 바위들과 어울리는 그냥 바위이고 싶었다 

▲ 산에 오르면 이런 느낌...

6. 나비


 
너는 나를
아직
모르고 있구나
 
어느 하늘가에 가 서버리면
그 하늘의 그림일뿐이라는걸
 
하늘에 수놓아
한 마리 생명 날게 하고
다 가진 하늘에
노란 점!
 
점!
점!

 
저 큰 하늘보다
더 크게 눈빛 빼앗아 가는
노란 숨!
 
숨!
숨!

 
우리 하나의 숨으로
살고 있다는 걸
 
너는
아직
모르고 있구나
 
아직은…

 


7. 저고리


 
잔디를 다 덮고
하늘을 다 감싸
뿌리 깊은 나무 숨겨주고도
남는 품
 
욕심 많은 저 작은 가슴에서
뜬 별 얼마일가
새버린 해 달 얼마일가
 
노을 물 묻혀 쓴
천년의 이력서에는 꽃씨의 숨
 
고름줄을 쥐고 주춤거리는 짐승을 밀쳐라
흰 달덩이는 하늘 것이다

 


8. 두만강 진달래


 
벼랑에 뻗은
붉은 뼈
물파란 강줄기
잡아주어
흐를줄 모르는
물결 만든다
 
내 고향
두만강
묽고 순한 살속
굵고 강한
저 붉은 뼈

 


9. 흑백사진


 
과거로 가는 길은 색갈을 지우는 일이다
 
분홍립스틱을 지우고
금빛 머리카락 지우면
검은 것과 흰 것만 남는다
50년 전, 100년 전이 탄생한다
 
두 가지 새갈만 있었던 세월
눈 감으면 검고 눈 뜨면 하얗던 세월
밤은 검기만 하고 낮은 하얗기만 하던 세월
흰 것과 검은 것 외엔 다른 색갈이 필요없었던 세월…
 
희고 먼 하늘,
검은 이파리의 떡갈나무,
검은 눈동자엔 흰 눈빛이 반짝인다
흰 미소가 입가에 매달려있고
검은 분노가 가슴에 엉켜있다…
 
그러나 눈 감고 색갈들을 살살 지우면
찬란히 환생하는 흑백의 세계,
거기서 우리의 과거가 웃고 있다
그 어떤 칼라로도 가리울 수 없는 우리의 과거가
검은 파도 흰 파도로 출렁인다

 


10. 섬


 
나비야, 넌
파란 하늘 작은 뭍
가닿을 수 없는 먼 눈빛
놓쳐버린 예쁜 자리
 
못난이는 자신의 둥지
항상 스스로 빼앗긴다
 
날아가는 나비를
쫓지 말어라
나비는
바람 따라 가는 숨 아니다

 


11.바다


 
키(箕)가 용납할수 없는것이 있었다  
붉은색, 하얀색, 노란색...
 
물결로 결어 만든 커다란 키가
이런 색갈을 까불이면
색갈들이 철썩 철썩
뭍으로 밀려나온다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예민한 색각(色覺)으로
고르고 골라
이 더러운 색깔들을
뭍으로 밀어내버린다
 
철썩 철썩 철썩...
신나는 키질에
기슭으로 밀려나오는 찌꺼기들이
노랗게 하얗게 빨갛게 뒹군다
 
물론 다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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