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수필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홍연숙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시, 수필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8호 시부문 우수상 수상. 현재 울산 거주

제1편

한잔 할래요?

 전 술을 좋아해요. 요즘같이 모든 관계가 철벽처럼 쌓였을 때는요 술로 지뢰밭 같이 펑펑 터치우고 무방비 상태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술에 취한 언어들로 활기를 띄워 기분을 돋구죠. 술이 풀어주는 경계는 따뜻하게 녹으며 순간에 마음과 마음사이를 흘러요. 한잔 할래요?여기에 더 이상 가까운 관계가 없지요. 하루의 피로가 와르르 풀어지고 걸음에 날개가 달리죠. 그 어떤 약속도 없이 계획도 없이 불쑥 들어와 한잔 나누는 거죠. 딱히 일이 있어서 마시는 것도 아니구요 그냥 술이 고파서 술 생각이 간절해서 마시는 거죠. 괜히 공허하고 가슴이 딱딱하게 메말라 있을 때는요 술로 촉촉히 적셔주는 거죠. 요즘 세상 팍팍하잖아요. 또 침체된 경기로 들려오는 소식들이 가슴만 허비니깐요 더 그렇게 술은 이유없이 다가와요. 저는 취하려고 술을 마셔요.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시를 읊는 거와 같죠. 또 세상타령을 해야겠지만 현실이 녹녹치는 않잖아요. 술에라도 한번쯤 취하고 상처들로 얼어버린 마음을 싹 녹이고 다독거리는 거죠. 그래야 또 내일을 열고 갈 수 있잖아요. 술에 취하면 누구나 마음을 열게 되죠. 가면을 쓰고 꾸 욱 감춰 두었던 진실들이 이때다 하고 벌떡벌떡 기어 나오죠. 전 사실 따박따박 옳은 소리만 줴치는 사무적인 스타일에는 경기를 일으켜요. 도무지 그놈의 속을 알 수가 없어 거부기등껍데기같은 면상을 쥐여박고 싶어요. 가끔 막말버전으로 속을 훤하게 내보이는 동네 아저씨같은, 시장통 아줌마같은 이들이 편해요. 그래서 술을 즐기는 사람이 좋아요. 술김에 하는 소리는 내숭이 없죠. 정이 듬뿍 묻어 거침없이 눈치없이 비질비질 잘도 나오죠. 그래서 술은 요 진실해서 따뜻해서 좋아요. 술에는 안주가 필요 없어요. 앞에 앉은 사람이 안주예요. 나를 완벽하게 받아주는, 결점까지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죠. 흔히 말하는 술친구이죠. 술친구는 배신하지 않죠. 그렇지 않아! 하는 사람은 진짜배기 술친구를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죠. 이 평생에 그런 친구 하나 있는 건 축복이죠. 저는 술에 취하면 꼭 한사람을 귀찮게 해요. 좋아할리는 없죠. 내가 너 안주가? 하며 화를 내고 폰도 꺼 놓고 다시는 안볼 것 처럼 냉전도 벌이고 그러다가도 또 화해하고 좋아하고 그러죠. 술마시고 주사부리다가 멀어진 친구도 있어요. 그래서 술은 친구를 알아봐 주니까 좋아요. 술은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마시죠. 하루 24시간의 어느때에도 구애받지 않구요 강변이나 공원이나 옥상이나 마당이나 그 어디에서도 술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죠. 집에서 간단히 해 먹을 때도 있고 포장마차나 식당에 갈 때도 있지만 위스키나 와인처럼 우아하게 마셔야하는 술들은 장소도 따로 준비가 있어야 하는 반면에 저 같이 쏘맥에 막걸리를 짬뽕처럼 마시는 타입은 장소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다가오는데요. 마른 미꾸라지를 난로에 구워 고추장에 찍으며 다라이에 담궈 놓은 맥주를 홀짝이던 그때가 그리워요. 술, 하면 옛날이 떠오르고 고향에 가 있죠. 술은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주는 것 같아요. 오래된 이야기같은, 세상에 하나뿐인, 오직 나만이 소장할 수 있는, 명화를 말이예요. 술은 피카소도 고흐도 부럽지 않는 나의 감성을 키워주는 예술같은 거예요. 누구나 처음 술을 마시는 데는 이야기가 있지요. 사춘기때 가출하고 친구아버지의 술을 훔쳐 마신게 처음이었어요. 60도짜리 북대황 술이었는데 반 병을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았죠. 이튿날에 친구아버지는 내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셨구나 하며 기억을 못했으니 말이지 간이 염소 똥 만치 쫄 뻔 했죠. 안타깝게도 아버님은 세상이 싫어 목을 매여 떠났고 홀로 남은 친구와 고간에 남은 근들이 술들을 다 퍼 마시고 하늘도 찔러보고 세상을 개같이 보며 술 과목을 통달해 버렸죠. 아버님의 기일에 저 하늘 나라에서 그 술 다 보내다오 하시기전에 서천을 향해 울산의 태화루 막걸리 한병을 부어 드리며 또 한잔 했죠. 술에는 그리움이 있고 슬픔을 깔아놓는 클래식이 있죠.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에서 술은 아주 나쁜 음료라고 극한 비평을 했지 만요 저는 찬성하지 않아요. 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장식해주는 마법사이죠. 돌 잔치, 생일잔치, 연애, 결혼 개업 등 모든 경사의 날에는 빠질 수 없구요 장례식, 실련, 이혼, 졸혼 부도 등 기분이 나쁠때나 외로울 때도 한 몫 톡톡히 해주죠. 술은 우리의 삶에 빠질 수 없는 좋은 음료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지극히 사랑하고 애용하게 되는 거죠. 저는 매주 5일 정도는 술과 친분을 쌓아요. 남편의 의무단속과 처분권한도 시간이 지나면서 쇠퇴해지고 유효기간이 지나버려서 이젠 기분이 좋을 때면 오히려 제쪽에서 러브콜이 올 때도 있어요. 끈끈한 술사랑의 덕분이죠. 참 많은 주사애피소드가 있는 데요 불법체류자로 숨어 지낼 때 였어요. 경기도 양평의 도가니탕집에 있을 때 말이예요. 컨테이너에서 먹고 자고 하며 새벽6시부터 10시까지 일하고 들어가 1시간 자고 11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며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90만원을  받았는데요 글쎄 12시간 일하는 한국언니들보다 30만원이나 적게 받았다는게 말이 되지 않았지만요 여권도 사장님한테 바친 상태라 말도 못하고 그냥 죄 없는 속만 꼬집다가 어느 하루 회식때에 왕창 퍼 마셨죠. (그때는 돈이 아까워 술 사먹을 건방진 생각은 아예 머리에서 자동삭제가 되는 거죠.) 술이 된 김에 사장님한테 뭔 권리로 여권을 몰수하고 나의 로동대가를 착취하냐고 손가락질 하며 대들었죠. 그랬더니 저보고 너희 나라로 가라는 거 있죠. 내가 어디로 가든 나의 일이니까 당신은 나한테 함부로 하지마라 하고 보따리 싸고 나왔죠. 마침 그날 월급날이라 여권을 찾았지만 갈 곳이 없잖아요. 하지만 술이란 놈이 얼마나 든든한지 그 양평의 겨울도 추운 줄 모르겠고 무섭지도 않았어요. 새벽 두시쯤 되니까 실장님이 오셔서 정거장에서 떨고 있는 저를 다독거리더라구요. 그때는 술도 깨고 후회가 마악 올라 올 때였는지라 못 이기는 척 하며 얼른 따라 갔죠. 그후에 월급도 정상으로 올리고 추가로 일한 대가도 받아냈지만 다 술 덕분이였죠. 아마 주사중에는 유일한 쓸만한 거였죠. "이야기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라는 이성복시인의 말 대로라면 술은 그 고통을 이야기해주는 대리인이겠죠. 술은 꽉 막힌 마음의 분출구가 되어 우리를 고통에서 헤어나오게 하죠. 술을 마신다는 건 분노, 질투, 절망, 야심, 탐욕에서 헤어나오려는 절절한 노력이죠. 술을 마시며 인생이 여물어 가는 거겠죠. 여기까지 읽고나면 다들 미친년 미친소리만 한다고 욕을 퍼붓겠지만요 저는 술이 사람 만든다고 더 한번 미친소리 할렵니다. 술이 있으므로 딱딱한 말들도 술술 부드럽게 풀어가고 술이 있으므로 지극히 냉정한 계산적이던 머리에도 인간성이 입력되는 거죠. 술이 있으므로 해지는 저녁이 외롭지 않고 술이 있으므로 이 늦가을의 비어가는 공간들도 이렇게 껄렁껄렁한 소리로 후끈하게 채워가는 거죠. 어때요? 한잔 할래요?
2018.11.30  

 제2편

실밥
 
동네목욕탕 탈의실은 언제나 웃음이 끓어 넘친다. 긴 나무의자에 꺼리낌 없이 벌러덩 누워 질척대는 진한 농담들에 한바탕 왕 웃음들이 터지고 된장찌개냄새로 온 방을 점령한 쬐꼬만 가스렌지 앞에 엉뎅이하고 가슴들을 주렁주렁 내 놓고 한술씩 뜨며 비죽비죽 웃음들이 샌다.

편하고 느슨한 분위기지만 아래우로 스캔하는 숨은 눈길이 느껴 온다. 욕탕에서 나오자 빠르게 옷들을 걸쳐 입고 사우나에서 먹은 식혜값을 내려는데 청소아줌마가 가위 들고 살며시 다가 오더니 바지 아래단을 잡고 길게 흘러나온 실밥을 잘라준다. 그놈이 언제부터 기여 나왔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일테지만 청소부 아줌마에게는 보였다는게 사실이다. 내가 탈의실에서 옷을 벗을 때부터 그놈의 실밥이 눈에 띄였지만 냉큼 다가오기가 망설여지더라고 수줍게 터는 아줌마한테는 고마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실밥이 나왔다며 떠들어대지 않아서, 모르는 척 하지 않고 실밥을 잘라주려는 용기를 가져 주셔서 말이다.

목소리를 가지껏 높이고 일도 아닌 걸 왜 제대로 안되냐며 가족이나 친구나 잘 아는 사이에 일일이 간섭하고 나름 번잡해진 머리를 쳐대며 깊은 관심이라 했다. 슬며시 해결해줄 때가 없었다. 너무 사랑하니까 너무 가까우니까 더는 실수를 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여서 일깨워주는 거라는 나 한테서 알게 모르게 다들 상처를 많이 입는다. 또는 알려줘도 싫어 할거라면서 그낭 지나칠 때도 있었다.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허무할 것이라 여기며 나의 말들이 낭비되는 만큼 상대방이 무지하다는 교만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과 멀어 지고 혼자 잘난척하며 멀리 와 버렀다.

반성하고 후회하며 더는 이런 실수는 하지말아야 겠다고 고민거리를 만드는 건 약간은 허황한듯 싶다. 왜냐면  우리들이 그런 실수쯤은 보통이 아니냐며 어깨를 으쓱하며 지나치는 정도니까 말이다. 나도 그런 상처쯤이야 무감할 정도로 겹쳐 입으며 지내 왔으니까. 어릴때는 부모님으로부터 친척들, 선생님으로부터 친구들 또 친구부모님들, 다 커서는 직장상사들로부터 동료들, 시부모님, 남편...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친한 사이에 오히려 상처를 더 많이 받는 것의 진짜 이유는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당연히 진심어린 관심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건 믿어 의심치는 않지만 청소아줌마가 실밥 한줄 잘라준 만큼도 감사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듯 싶다.

실밥이 너덜거리면 당연히 꼴불견이다. 하지만 세상에 왼벽한 사람이 없듯이 누구나 "실밥" 은 달고 다닌다. 다만 본인 눈에는 잘 보여지지 않는 신비성으로 하여 상대방이 안타까워 터치해주다간 자칫 안좋은 결과로 "실밥"이 더 길어 질 수 있다는 거다. 여기에서 무엇을 일순위에 놓느냐가 정점이다. 실밥인가? 상대방인가? 청소아줌마는 나의 기분을 일 순위에 놓고 조심스럽게 다가와 실밥을 잘라주는 센스를 발휘한 덕에 사소한 일이지만 나를 감동 시키고 이렇게 글까지 쓰게한 것이다. 보일듯 말듯 한 풀꽃들이 사방으로 피여난 소박한 그림이 펼쳐진 듯 싶다.

한끗 차이로 아름다위 질 수 있고 한끗 차이로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서로 섞여 살면서 늘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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