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시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전월매 약력: 천진사범대학교 한국어학과 부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학박사, 재한동포문인협회 평론분과장,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중앙인민방송국 여성수필 우수상,흑룡강신문 교원수기 우수상, 중국조선어문 정음상 은상 등 수상; 시, 수필 다수 발표, 저서 『재중조선인 시에 나타난 만주 인식』(역락, 2014), 『한국문학 연구와 교육의 현장』(학술정보, 2016), 국내외 학술지 40여 편의 논문 발표

  1. 들국화 여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산기슭 후미진 곳의 들국화비바람에 흔들리어도햇살과 이야기하는 들국화누구와 보리 고개 넘어 왔던가그날의 아픔은어디로 동댕이쳤는가가을 서리를 머리에 이고노랗게 웃음 짓는들국화 여인(2002)   2. 겨울의 기도  생을 마무리 짓고조용히눈을 감는다 한 여름과 인연은 끊어지고즐거웠던 옛일을 뒤돌아보며사색으로 침묵한다 그리고 점지한다저 멀리 봄의 숨결 들으며꽃나무 뿌리 내릴 곳을 인동초 하나 추켜들고찬바람을 꾸중하며살며서 두 손 모은다(2002)  3. 꽃은 안다  한 알의 씨앗을익히기 위하여찬 이슬을 이마에 떠올렸다번개와 천둥을 이겼다아픔으로 퇴색하고한 잎 두 잎 꽃잎을 날리며어여쁘게 죽어가야 했다그리고 이제 또한 알의 씨앗을잉태하기 위하여한 겨울 언 땅에뿌리를 내려야 함을꽃은 알고 있다  4.  3월의 길목에서  진달래나무에 묻어있던겨울이 비명을 내지른다겨우내 참고 견디며 몸서리쳐왔던성화와 굴욕과 두려움도채 가시지 못한 채잎은 환희의 파란 미소가냘프게 짓는다대반은 푸르스름하고 소반은 누르스름한넉살에 짓눌린마음의 어두운 한구석봄바람이 휙 불어와아픈 상처 보듬다그 대가로 연분홍 마음 선물한다 시샘에한때의 호화로움의 그리움에 사로잡혀겨울은 바람에 멱살 잡히고도 최후 발악한다봄바람이 모든 꽃 친구들을 동반하면어쩔 수 없이 에테르처럼 풀리는 시간 속에그대는 잠시 체념하고 항복하리 보슬보슬 촘촘히언 가슴을 녹이기 시작한다무덤탈출이다  5. 벚꽃  사월의 길목에서어머니가 이고 오신연분홍빛 흰 드레스벚나무 위에 뿌려지면벚꽃향기 별천지로 찬연하다 사월의 며칠아름답게 환한 미소 지으며총망히 드레스 걷어 들이며 가시는 어머니가야속하고 못 견디게 그리워나는, 잠 못 이룬다  
▲ 가을의 국화를 알아서, 국화의 향기를 가슴속 깊이 맡기까지, 그 시간...
 6.국화와 9월   국화가 한창입니다내리쬐는 햇볕과 뒤집히는 햇볕도 한창입니다잎들은 햇볕들이 다 들고 서있지 못해정원이 받아서 들고 서있습니다작년이맘 때 사고로 갑자기 하늘나라 가신 오빠가국화에게로 자박자박 걸어오는 새가 되어잠깐 국화꽃과 함께 환하게 빛납니다.(2011)  7. 부부  한 쌍의 신발이 있다꼭 함께 신어야 한다칼끝 꽃샘추위에도생강나무 꽃 햇살에도우산 없는 여름비에도황금 빛 낙엽길에도지저분해졌다고 뒤처진다고한 짝을 버리면다른 한 짝은 무용지물이다물감 같은 노을 속으로 나란히 가려면땅을 꼭꼭 밟아도 주고부지런히 함께 닦아도 주고자꾸 끈을 죄여야만 한다(2008. 도라지)  8. 석별   인연은 갈대 스치는 바람이런가손잡고 이뤄낸 정오의 태양꿈꾸며 바라본 황혼의 석양이제는 그대를 떠나보낼 때진토에 몸을 푸는 분홍빛 연꽃처럼서해바다의 부레 없는 상어처럼항상 은근하면서도 열심히 뛰었던 그 모습분홍빛도 어느듯 자취를 감추었고미끈미끈한 비늘도 모두 흩어지고아무리 불러 봐도 산산이 부서진 그 이름아무리 소리쳐도 메아리 없는 이 아침에그대 떠난 빈자리에한그루의 정한 갈매나무로 호젓이 남고 싶다(2014. 동포문학)   9 새벽녘의 꿈  가물가물 졸고 있는 불빛 마주하느라면별보다도 더 총총한 생각이거머리처럼 착 들어붙어끈적끈적 하루를 집어삼키는데 저녁이면 수 천 번 지문과 간통하는 컴 키보드판은시니 평론이니 하는 활자정보에종일 분주하고 닦달을 친다 미지의 금빛세계를 찾아 황해바다 건너왔건만낮에는 진종일 그릇 씻고 갈비 굽느라소나무 껍질이 되어버린 뱃사공의 손무한대의 노력으로 알의 부화를 꿈꾸지만번번이 깨어지고 나뒹군다 대추나무 우듬지에 매달린 집 한 채험난한 풍랑 위에 표류하는상처받은 새손바닥에 으스러진 유랑민의 꿈    10. 낯선 둥지  튕길 것만 같은 푸른 하늘 바탕에 아파트는 소리 없이 질서정연하고제철 따라 무궁화는 의연히 쉬임 없이 피었다 지는데골목골목 즐비하게 늘어선 한글 간판 거리에서는팔십 년 전 조상의 흰 그림자들이 얼른 거린다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누구의 핏줄이라 주어댈 수도 있겠지만우리는 분명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익숙한 냄새를 알아 차릴 수 있다.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고향 떠나 우리들은 왜 그리도 먼 둥지로 옮겨가 살고 있는 걸까간도로, 만주로, 연해주로…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고 후두둑 소나기가 지나간 후에고즈넉한 거리에서 처마 밑에 빗방울 소리를 듣노라면언젠가 태어난 적이 있는 둥지로 돌아온 듯한 느낌도 들지만한없이 외롭고 새삼 서러운 것은품어주던 어미새들도 떠나고노래 소리가 끊겨진 나의 가난한 둥지 때문이 아니라여기에 내 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줄도 모르고너무 오래 떠돌다 이제야 여기에 이른 까닭이다(2014. 동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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