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시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변창렬 약력 : 중국 길림 서란 출생, 서란조일중 고졸. 연변작가협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전상임부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원, 재한동포중견시인, 시 수백편 발표,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동포문학 대상, 도라지 문학상 등 수상 10여 차.

 

1.소와 아버지 

 

  

 

소의 눈에는

아버지의 타다 남은 담뱃불이

아직도 타고 있었다

 

아버지와 소는 형제가 되여

마주서서 속심말까지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는 담배 피우시고

소는 그 담배불을 새김질 하고

이렇게 수년을 엉켜 다닌 친구였다

 

소는 아버지의 담뱃불만 봐도

아버지의 속을 알아챘고

아버지는 고삐를 소머리에 얹으실 때마다

소의 지친 눈길을 미리 아셨다 한다

아버지는 소가 되려고

소의 성질을 익혀 두셨고

소는 아버지를 닮으시려고

아버지 손등을 핥기도 하였다

 

아버지께서 소수레 위에 쓰러졌을 때

집앞까지 모셔 온 소였다

소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아버지 담뱃불만은 익히고 있어

그대로 껌뻑이고 살아 온 것이다

 

소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울면 담뱃불이 꺼질가 안타까워 했고

웃으면 힘든 아버지 불쌍해서였다

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새김질하면서도 자주 게끼었다

담배냄새는 죽어도 구수하다는

소의 이야기 

 

 

 

2. 바람

 

 

 

 

고개 숙이고 걸어가셔도

바지가랭이에 날파람 이는 당신

나뭇잎 마른 풀들이 마구 번져지고

산등성이 넘는 그림자에서도

꼿꼿한 떡갈나무까지도 휘여졌지요

 

등짐 지고 가시는 당신께서는

노을을 업고 가는 그 자세였지요

담배 한 모금 사이에

산 하나 훌쩍 넘으시던 당신

이 아들놈 눈에는 바람이였어요

온종일 쉴새없는  돌개바람이였지요

 

저 멀리 하늘에서

불어 오는 바람소리도

전에 그대로 날파람 일고 있네요

언제나 눈앞에서 휙휙 지나 갑니다

 

그래서인지

이 아들놈 가는 길에도

바짓가랭이 찢어지는 

돌파람소리 뿐입니다

당신의 날파람이 저의 족보입니다

 

 

 

3. 무지개

 

 

 

 

구겨진 것을 펴 놓고

다시

휘어 놓은 너

 

휘어 질 때

생긴 주름살을

일곱색으로 갈아 엎으니

더 밝다지

 

땀에 절은 아버지 등허리

휘어진 색깔은

무슨 색일까

 

쟁기 잡던 그 손등에

너의 색깔이 옮았어도

흙탕물이 더 짙어

고동색은 지울수 없다지

 

지나간 소나기

지게에 짊어 지고

너 있는 쪽으로 가신 아버지

그 속에 웅덩이 하나

주름으로 페여 있다고

그리로 찾아가셨다지

 

 

 

4. 오빠

 

 

 

 

애교가 무딘 마누라는

오빠란 말

죽어도 싫다고 한다

 

밖에서는 남자마다

오빠라고 아양떨어도

집에 있는 이 남자는

오빠가 아니라고 딱 잡아 땐다

 

오빠가 되면

남자가 아니고

남자가 되면

오빠일 수 없단다

 

오빠는

언제나 오빠일 뿐

남자는

언제나 내 것 하나란 고집불통

 

오빠랑 애기 낳으면

몇촌이 되냐며

빤히 쳐다보는 그 눈빛이 더 이뻤다

 

 

 

5.노숙자

 

 

  

새는

그림자도 없는 하늘에

날고 있다

 

빌어 먹기는 싫고

애걸할데도 없는 허공에

맥 잃은 날개만 힘 겹다

 

둥지를 지어도

허름한 지프라기로 만든다

그 속에

빈 털만 남길 뿐

아무것도 모아두지 않는다

 

바람 한 모금을

이빨 사이에 물고

꽁지에 힘 추스릴 적에

부리는 입맛 다시지 않는다

 

구름 한 조각이

그림자로 다가 오면

너무 낯설어

한 바퀴 빙 둘러보고는

울음소리도 남기지 않고

텅 빈 둥지로 돌아 온다

 

둥지에는

그림자라곤 없다

바람구멍만 숭숭하다

 

새는 낮잠을 자고 싶어한다

배불리는 꿈만은 꾸지않겠다고

부리를 날개죽지속에 묻는다

 

 

 

6. 허수아비

 

 

 

 

누더기 한 폭에

노을 반 자락 숨기고

지는 해를 짊어 졌으니

어찌

뒷 짐 질 수 있을까

 

서너 알 새똥으로 배부른

저녁상

 

시 한 수 놓친다

 

 

▲ 누가 목란꽃은 희다고만 했나, 어여쁜 자색꽃이 햇빛의 속삭임 속에 꿈결같이 피고 있다...

 

 

 

7. 자목련

 

 

 

 

헐렁한 치마자락에

늘씬하게 흘리는

능청스런 사춘기

 

이 애비도 낯이 붉어지는

귀여움

 

잠깐만 젖어도

엉뎅이가 불 타겠는데

어짜자고

자꾸만 젖어 있느냐

 

너 에미도

신나게 흥건했다만

너도 꼭 닮아야 하나

 

 


8.구멍은 점이 아니다

 

 

 

새들은 눈부시여

하늘에서는

눈을 감고 난다고 한다

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

구름이 들어 갈가봐

눈을 감는지 누구도 모른다

 

새는 날면서

길을 만드는게 아니라

하늘에 터널을 만드는 것이다

그 터널에서

혼자만이 지나가면

없어지고 마는 터널이라

왜서인지 그림자도 없었다

 

넓은 하늘에는 티도 없는데

새는 점이 되여

작은 구멍으로 뚫려 있는지

스스로가 알수 없었지

 

땅우에 사는 우리의 눈으로

하늘에서 나는 새가

점 하나로 보일 뿐

구멍으로 보일수 없다만

구름의 눈에는

하늘의 구멍은 새 뿐인가 할거다

 

 

 

9.별의 가게 

 

 

 

북극성을 간판으로  걸었다, 아버지는  별을 팔고계신다

 

하늘에서 농사지어 거둔 낟알들 알알이영글어 부시다

익는족족 팔려 나간다

 

한  뼘 빛은 천냥이고 두팔빛은 만 냥인지라 

잠 못드는 사람들

북두칠성 삼태성 오라온좌...

별자리 훔쳐 간다만 불러봐도  빛만내려 주시는 아버지

 

장안에서 우루무치 비단길 은하계 달빛 모래길  낙타의 방울소리  젖어 드는지 밤하늘엔  별만

반짝일뿐

 

별의 가게 주소는 어디 눈에 맺힌 이슬방울 바람에 빛바랜 택배런가

 

새벽이 오면

계명성 거느리고

가게 문 내리시는 아버지

 

해빛은 별의 가게 총수입이시다

 

 

 

10.꽃게

 

 

 

너는 단풍이 되려고

붉게 타는 줄도 몰랐었어

삶아 놓은 너를 보고

바닷물이 붉은줄 알었지

 

솥에서 게워 낸 너의 침방울에는

흰 것 뿐이였다

뜨거울수록 더 삼켜야하는

붉은바닷물

더는 삼킬수 없어

나무가지되려던 발로

얼마나 버둥질 쳤을가

온 몸이 달아 오르도록

꾹 참고 묵새긴 분통함이여

죽을 때까지도

몸에 슴배인 붉은바닷물을

바다로 뿜고 싶었지

 

더는 보낼 때가 없어

더는 뿜어 낼 힘이 모자라

고이 간직한 괴로움으로

야무진 껍질을 뻘겋게 만들었을거다

 

오래 전에 떨어 진

나무잎 한 장이

너의 화신이라고 믿어 진다

그 때 그 나뭇닆도

그렇게도 뻘겋게 불탔었지

산에서 가져 온 붉은색갈을 지키느라

제 몸을 스스로 불태웠으니

 

 


 

11. 나도 홀로서기로 허리 세운다

 

 

 

구름이 떠난 그 자리에

그늘 하나 만들어 놓고

터를 잡은 민들레꽃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수백번 재여 봤어도

한 뼘 키로 어쩔수 없었다지

 

짧은 공간에

시든 떡잎으로

말라들기 지겨운 애석함을

홀씨로 가리우고 말았지

 

땡볕이 열두 자 길어도

반에 반자만 받아 먹고

나머지 자투리 빛을

땅바닥에 윽박지른 너

 

남의 것도 내 것이라고

허리에 감고 싶어

짧아도 길게 뻗치려는

꽃송이 하나로

나만의 하늘 만들어

홀로서기 허리 세우며

멀리 살피는 내 얼굴이여

 

나는

내 하늘아래 살고 싶은 걸

버젓이 보여주고 저

죽 편 허리가 불끈하다

  

 

 

12. 시 속에 가시는

 

 

 

살속에

가시가 찔리면 아프다

 

살이 가시때문에

아픈게 아니고

살이 있는 내가 아팠지

 

가시는 찌르며

살을 헤치지 않았으나

내가 아파서 야단을 하니

가시는 나쁜놈되지

 

혹시 살이없고

뼈만 있다면

가시가 찔러 낼같이

또 뼈도 버리고

가시만 챙기고 살면

내가 아플가

 

시도 가시에 찔려 살면

누가 더 아플가

 

 

 

13.고개

 

 

 

오르며 구부정해져

더 무서우니깐

내리면서 쭉 펴보려 했나

깨끗한 물이 넘어 갈 때는

물소리가 죽어 있었고

구수한 밥알이 짓 뭉게 질때는

질기게 낭떨어지더라

 

혀라는 문지기는

앞뒤 순서를

마구잡이로 줄 세워 놓고

안으로 쏟아 넣어서 일가

이 맛 저 맛

꾹꾹 문질러 넣는 저장소에

울때뼈가 지친다

 

혼자 덫을 만들어

스스로 걸리고 싶은 옹노에

아직도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괴상한 무덤들이

울컥하고 줄지어 서 있다

덩치 큰 뭔가를 토하고 싶어

 

말에 말이

지꿎게 굽어 들지않고

뻣뻣하게 빠져 나오는 분출구

고개를 펴 봐 죽 펴면

굽어서 취했을수도 있지

 

토해낸 말의 무덤이

어디다 자리잡을지도 모르고

편하게 묻어두고 싶지 않을거다

 

넘어 가는게 무섭고

내리 삼키는 것도 무섭지

꾹 다물어 봐

똑바른 길이

고개일지 누가알아

무서워도 벌리고 있는 아구리는

고갯길에 문지기로 허물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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