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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한중작가포럼/문학작품특집42]김춘식의 수필 '서재만필' 외2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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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1  16: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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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동북아신문] 수필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김춘식약력:1955년 흑룡강성연수현에서 출생.연변대학조선어문전업졸업(高等教育自学考试).연수현조선족중학교 부교장직에서 정년퇴직.

연변작가협회 회원.흑룡강조선족작가협회 회원,재한동포문인협회회원, 한국문예감성회원, 에세이 등 수백편 발표, 수상 다수. Wxid_4rrn0uxgn6uq22 이메일: jinchunzhi2008@hotmail.com

  
제1편 
 
서재만필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소원이라면 혼자 조용히 마음 놓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자그마한 글방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지금의 애들이라면 누구나 풀 수 있는 아주 작은 소원이지만 그때 나에게 있어서는 전혀 실현할 수 없는 공상이였다.여섯 식구가 허줄한 초가 한 간 반을 남북 두 개 구들을 놓고 살고 있었는데(초가삼간을 두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정주간은 두 집 사이에 막지 않고 툭 틔어있다.)그나마 북쪽 구들은 임시임시로 친척들이나 가깝게 지내는 마을사람들이 들어 온 집 식구가 남쪽 구들 하나를 놓고 비좁게 지낼 때가 많았다.

하기에 집에서 책을 본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낮에는 어른들이 다 일하러 가고 난 뒤라 책보기가 괜찮았지만 저녁은 그렇지 못했다.전기가 없을 때는 등잔불을 켜게 되는데 내가 책을 본다고 등잔을 혼자 차지 할 수 없는 것이요 설사 혼자 등잔을 차지했더라도 아홉 시 전에는 무조건 등잔불을 꺼야 했다.

전기불이 있어도 마찬가지었다 기실 그때 마을에서 켜는 전기는 화력전기라 불빛이 뻬데데한 게 등잔불보다 조금 더 밝을 뿐이었다. 어떤 저녁에는 책을 좀 더 볼 욕심으로 방안의 불을 껀 후 정주간에 나와 불을 켜놓고 책을 보기도 하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두 집 한데 쓰는 정주간이기에 내가 정주간에서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이웃집의 수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낮은 초가집에다 식구가 많은지라 한여름에는 낮이고 저녁이고 집 안이 얼마나 더운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여름날 낮엔 아예 헛간에 들어가 책을 보기도 하였다. 어떤 날은 벼짚거적을 펴놓고 거기에 누워 책을 보기도 하였다.특히 아버지가 중병으로 앓아 누운 후 나는 그 신음소리와 역정을 듣기 싫어 아예 집과 좀 멀리 떨어진 조용한 나무그늘 같은 데를 찾아 책을 읽기도 했다 .그때 나는 내가 홀로 조용히 책을 읽을 방 한 칸이 있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책을 좋아하여 책 사는 일은 젊어서부터 하나의 습관이었다.그래서 주머니에 돈이 많건 적건 틈만 나면 헌책방이나 시장거리에 있는 노천 책매대를 뒤집고 다녔다. 어느 날은 과월호 잡지 한 권을 사들고 흐뭇해하기도 했고, 어느 날은 신문합정본(合订本) 한 권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러니까 그저 책 한 권이라도 사들고 들어오면 기분이 좋았다고나 할까? 사온 책을 전부 독파하건 목차만 훑어보고 말건 책이 한 권 두 권 쌓여지면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책이 좋아 책을 사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이 쌓여가고 쌓여있는 책들을 바라보면서 마음 한구석에 나만의 서재를 가지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처음엔 방 하나에 책을 몽땅 쌓아놓고, 그것들 속에 묻혀 살고 싶다는 것을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듯 하다.그때 내가 생각하는 서재란 책을 보관하고,책을 읽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의미만 부여하는 정도였다.

서재라면 수선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하나는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얼마만한 책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다시 말하면 내가 수시로 뽑아볼 수 있을 만큼 책이 차곡차곡 꽂혀진 책장이 있어야 한다.하지만 나에게는 십 년 전까지도 이 조건이 구비되지 않았다.하나는 나에게 오랫동안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었다.오래동안 학교 울 안에 있는 공가(公家)의 비좁은 단층집에서 살다 보니 수선 나의 서재라는 공간이 없었다.그 보다는 나에게 많은 양의 책이 꽂혀진 책장이 없었다.얼마 안 되는 노임에 매달려 늘 여유 없는 살림을 살다 보니 마음에 드는 책들을 넉넉히 마련할 경제적 조건이 안 되였다.드문드문 조금씩 사서 모아둔 책들도 이 친구 저 친구들이 빌려가서는 돌려주지 않다 보니 시종 책이 모아지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선 그때 이웃집이나 친구의 집을 방문할 때면 은근히 기대를 한다. 그 집엔 어떤 책들이 있을까?책장은 얼마나 크며 서재는 얼마나 넓을까?거실이든 서재든 한 켠에 책장을 마련해두고 그 곳에 빼곡하게 들어찬 책들을 보면 막 부러워났다.그 버릇이 지금까지도 남아 지금도 낯선 집에 가면 그 집의 책장에 꽂힌 책들과 살짝 열린 서재에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문다.

서재, 아마 독서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꿈의 공간일 것이다. 글 쓰는 사람치고 자신의 서재와 독서실 갖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실제로 영국의 한 유명한 학자는 “책 없는 왕궁보다 책 있는 두옥을 택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철학가인 몽테뉴는 법원에 근무하다가 사직한 후 독서와 사색을 즐기며 <<수상록>>을 집필했는데 그는 세상의 누구보다 자신의 서재와 독서실을 갖기 원했던 사람이다. 산문가 양실추는 <<아사소품>>에서 “서재,얼마나 우아한 명사인가!사람들은 쉽게 학자 집안을 연상할 것이다.사대부 집안이라야 서재가 있다.고생스러운 학업 조건에서 고학하는 학자는 대개 서재를 가지고 있지 않다.가난한 독서인에게 서재는 그림의 떡이며 호화스러운 신선 세계다.” 라고 고견을 발표했다.

내가 진정으로 서재다운 서가를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전부터였다.지금은 여기 상지에 있는 아파트에 넓은 공간의 서재가 있을 뿐이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셋집에도 내 서재가 따로 한 칸 있다.큰 책장에 수백 권의 책이 꽂혀있고 컴퓨터,프린트기도 있는 깨나 널찍한 공간이다.아들은 내가 독서를 즐기고 글쓰기를 즐기는 것을 고려해 셋집을 잡을 때마다 꼭 방 세 칸짜리를 선택하여 나의 서재를 따로 한 칸 마련해주었다.까짓 다달이 돈 10만원(한화)만 더 들이면 서재 한 칸은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이밖에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를 막론하고 책을 좀 넉넉히 살 여유가 있게 된지라 책을 부지런히 사들였다.이 몇 해 나는 거의 주일마다 서점에 가서 책을 한 두 권씩 샀는데 이렇게 산 책이 한국에서 거의 5백 권이 되고 여기 상지에서 2백여 권이 된다.

서재는 나에게 있어서 한가하게 소일하는 곳이 아니라 진정한 생활공간이다.여가의 시간 한 시라도 멈출 수 없는 독서 공간이며, 스스로를 묻는 사색의 공간이며,영혼의 휴식처다.나에게 있어서 서재는 서적을 소장하고 책을 읽고 글을 지으며 산보하고 휴식을 취하는 종합 공간이다.그래서 지칠 땐 서재에 들어와 소파에 몸을 맡기고 육신의 노곤함과 정신의 피로함을 달랜다.나에게 서재는 멋지고 화려한 물리적인 의미의 서재가 아니라 감성을 다스리고 자신만의 사상을 구축하는 곳이자 학문을 연구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시키는 공간이다.

나는 서재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한 감을 느낀다.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공간, 가장 따뜻하고 안정감을 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탁상을 마주하고 의자에 깊숙이 묻힌채 유유하게 ,차분하게,때로는 홀린 듯이 책을 읽는 이것이 나의 독서자세이다. “잔은 채워야 맛이고 님은 품어야 맛”이라는 말이 있다. 여유만만하다가도 더러 푹하니 빠져드는 경지!. 흙의 숨소리마저 들려올 듯한 깊은 밤이나 새벽,정적의 그 깊은 공간과 시간 속에 자신을 던져 두고 독서에 빠져들 수 있는 행복감!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는 묘미를 느끼며 때론 붉은색,때론 분홍색,때론 파란색,때론 노란색으로 중요한 대목에 줄을 긋는다.때론 여기저기 책 여백에 느낌을 기록하고 때론 메모지에 베껴 옮기기도 한다. 때론 낮은 소리로 웅얼거리기도 하고 때론 졸음을 못 이겨 탁상우에 얼굴을 박은 채 침으로 책을 적시며 잠도 든다.

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 나는 잔업을 싫어하고 특근을 싫어했다.다만 육체적으로 피곤해서가 아니고 시간적으로 지루해서가 아니다.한시 바삐 서재로 오고 싶어서다. 아무리 그럴듯한 서재를 마련했다고 해도 책을 읽지 않으면 그림 속의 떡이요,거울 속의 미인일 뿐이다.그래서 옛사람은 책 읽기와 활용을 위한 ‘한가한 시간’을 가질 것을 권했다.나에게 있어 한가한 것과 같이 즐거운 일은 없다.아무 할 일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한가하면 능히 책을 읽을 수가 있고 글을 쓸 수도 있으니 천하의 즐거움이 이보다 큰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영국의 정치가이며 저술가이기도 한 처칠은 독서예찬이 아닌 “책의 예찬”을 쓴 적이 있다.그는 그 글에서 “설령 당신이 갖고 있는 책의 전부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가의 책을 한 권 빼어들고 쓰다듬거나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펴서 눈에 띈 최초의 문장부터 읽어보라. 그리고 설사 그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책이 서가 어디에 꽂혀 있는가를 기억해두라.그러면 책은 당신의 친구가 될 것이다”라고.

나는 가끔 책장 속에 끼인 책들을 보며 전에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수많은 책들이 없어진데 대하여 애석함을 금치 못한다. 친구,친척,동료들이 꼭 돌려주마 하고 빌려가서는 돌려오지 않은 책.이렇게 잃어진 그 많은 책들을 생각하면 그때 왜 마음을 모질게 먹고 거절하지 못했는가 하고 후회한다.그래서 앞으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책만은 더는 빌려주지 않으려 한다.남이 뭐라고 욕해도 상관치 않으련다.두 눈을 지그시 감고 두 귀를 꼭 닫고 못들은 척 하면 된다. 프랑스에는 일찍 “여자와 책과 말은 빌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동양에서도 “책을 빌리는 자도 ,빌려주지 않는 자도,빌린 책을 돌려주는 자도 바보다”라고 하여 ‘삼치(三痴)’라는 말이 전한다.

옛날 중국에 책 빌려주지 않기로 유명한 한 애서가가 있었다.이 사람은 자기 집 연못 한가운데에 다락집을 짓고 수만 권의 장서를 보관하여 애지중지 여겼다.연못에 외나무다리를 만들어놓고 혼자만 출입했는데 밤이면 다리를 거두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이 애서가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안 놓였던지 연못에 이르는 누문(楼门)에다 “楼不延客,书不借人(다락집에는 객이 머물 수 없소,책은 빌려주지 않습니다)”란 글을 큼직하게 써 붙였다.

근대 한국에도 책을 빌려주지 않기로 소문난 이가 있었는데 그의 변명은 “애지중지한 책은 사랑하는 연인과도 같다.자기가 사랑하는 연인을 어떤 친구나 후배에게 넘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이였다. 참으로 현명하고 묘한 변명이 아닐까 한다.

서재를 마련하고부터 가끔 서재이름을 짓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자신의 서재에 이름을 짓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독서인의 특징가운데의 하나이다.예로부터 허다한 문인들이 서재를 지으면 심혈을 기울여 서재 이름을 짓고 친지나 지인에게 글을 받았다.고금 명인의 서재를 종람해보면 흔히 우아하고 고상한 정취를 가지고 있다.

남송 시인 육유(陆游)의 노년 시절 서재를 ‘노학암(老学庵)’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사마광이 늙어서도 배우는 것은 마치 밤길에 촛불을 켠 것과 같다(师广老而学,犹秉蠋也行)”는 의미에서 따왔다 비록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배움은 그만 둘 수 없다는 의미다.

노신(鲁迅)의 젊은 시절 서재의 이름은 ‘삼미서옥(三味书屋)’인데. “경서를 읽는 것은 벼,수수와 같은 좋은 양식을 맛보는 것과 같고,역사를 읽는 것은 비교적 풍성한 음식을 맛보는 것과 같으며 ,제자백가를 읽는 것은 젓갈과 식초를 맛보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판교(郑板桥)의 서재에는 “방이 고상하면 되지 클 필요가 있겠는가?꽃향기가 많다고 좋은 건 아니다(室雅何须大,花香不在多)”라고 쓴 주련이 있다.

호적당(胡積堂)의 서재 명칭은 ‘서향인가(书香人家)’인데 서재의 주련은 깊이 음미할 만하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은 적선만 하는데 ,가장 좋은 일은 독서뿐이다.(几百年人家无非积善,第一等好事只是读书)”

서재에 이름을 붙이고 한결같이 그렇게 소원했던 그들의 소망처럼, 나도 작디 작은 내 서재에 내 삶과 마음을 담은 이름 하나를 달아주고 싶다. 멋진 이름이 아니더라도 내 삶이라고 다른 이들이 인정하고 끄덕여 줄 수 있는 그런 이름으로 말이다.

이 밤,탁상 위의 커피는 향기롭게 식어가고 나는 깊은 의자에 파묻혀 그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고전 한 권을 천천히 읽어간다.
 

제2편 

주고받는 인생드라마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친 아내는 출입문을 나서다 말고 되돌아서 냉장고에 다가가더니 냉장고에서 빵과 우유들을 부지런히 꺼내 가방에 담는다.그러면서 연신 나를 훔쳐본다.물으나마나 그것은 또 같은 직장동료아줌마들과 나눠먹으려고 가져가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그가 내 눈치를 보는 것은 내가 혹시 뭐라고 나무랄 까봐다.내가 이런 일엔 곧잘 잔소리를 하니깐.

“그까짓 것 누가 먹기 좋아한다고 또 가져가지?”
원래는 보고도 못 본 척 가만있으려 했으나 눈치 보는 게 우스워 일부러 나무람했다.
“여자들이 뭐 저네 남자들 같은 줄 알아.이걸 가져가면 다들 쉴 참에 얼마나 맛있게 먹는다고.남자들이 쉴 참에 담배 맛있게 피우는 것하고 같아.”
“체,”

나는 입을 비죽거리고 말았다.저 빵과 우유는 다 아들이 갖다 놓은 것이다.한국에서 그가 다니는 회사는 날마다 두 번씩 간식으로 직원들에게 빵과 우유를 주는데 그런 음식을 싫어하는 아들은 그것을 받아서는 먹지 않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다 집으로 가져온다.나와 제 어머니가 먹으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 역시 군입질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지라 냉장고에는 빵과 우유가 늘 쌓여있다.그러면 아내는 그것을 날라다가 제 동료들과 나눠먹는다.밀린 빵과 우유라 어떤 것은 유통기한이 지나기도 해서 내가 버릴라치면 아내는 냉장고에 둔 것이라 별일 없다면서 절대 못 버리게 한다.

“기한이 지난 것을 갖다 주고 되려 욕먹지 못해 그래?”
때로 내가 이렇게 나무람하면 “누가 억지로 주나?다들 제 먹고 싶어서 먹지.그런 것도 안 가져가서 못 먹어.아줌마들이란 일부러 돈 주고 그런 걸 사먹겐 안 되잖아?”하고 대꾸한다.
“그럼 마음대로 해.”
결국 번마다 내가 지고 만다.
아내는 이렇게 집에 먹을 것이 좀 남아돌아간다 싶으면 부지런히 남에게 날라다 준다.빵과 우유도 마찬가지다.한번은 한낮부터 비가 내려 회사에서 일할 수 없으므로 반나절 일찍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불쑥 집으로 들어섰다.그로 말하면 이 시간이 한창 출근시간 때라 나는 그가 어디 몸이 편찮아 그런 줄 알고 바삐 다가가 부축하며 물었다.
“자기 왜 어디가 아파서 그래?”
“아프긴?우유 가지러 왔는데.아침에 가방에 빵만 넣고 우유는 깜빡 잊고 안 넣었어.”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밀치고는 곧장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괜히 놀랐네.그런 일이라며 나한테 전화라도 하지.내가 갖다 주지 않으리.”
내가 선심을 쓰며 속에 없는 말을 하자 아내는 피~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어떻게 자기 일찍 퇴근한 줄 알고?자기 나한테 알려주지도 않고”
아차,이건 성의를 보이려 하다가 되려 까인 셈이다.

전날에는 아침 여섯 시도 안 되어 아내가 비닐주머니에 빵과 우유 그리고 사과 같은 것을 잔뜩 담아가지고 집 문을 나서는 것이었다.그래서 내가 이 새벽에 누구네 집에 갖다 주려고 그러는가 물으니 근처에 사는 조카딸네 집에 갖다 주련다고 했다.

“거긴 왜 이 새벽에?걔는 한창 단잠을 잘 건데.그리고 누가 그 걸 먹는다고?”
매일 아홉 시까지 늦잠 자는 조카딸네라 괜히 남 달콤한 잠이나 깨울 것이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물었다.
“왜 걔네 아들이 방학이라 요즘 집에 와 있잖아.낮에 놀면서 출출하고 먹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이걸 가져다 주면 얼싸 좋다 하지 않으리!”
“걔는 어린애가 아니고 대학생이야.그리고 사내야.그런 걸 뭐 좋아나 한다고?”
“체,다 뭐 자기 같은 줄 알아.남자애들도 군입질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야.”
그리고는 더 말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휘~ 젓고는 문을 열고 총총히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허 참,별 사람 다 보네.”
나는 머리를 설레설레 젓고 말았다.
“저 버릇 평생 못 고치니깐”

아내가 남한테 먹을 것을 날라다 주기 좋아하는 것 때문에 괜히 내가 민망스러울 때가 많았다.어떤 것은 돈 몇 푼 가치밖에 안 되기에 정말 가져다 줄 가치가 없는 것 같은데도 아내는 전혀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 것 같다.

전에 내가 교직에 있을 때 우리는 학교근처에 집을 잡고 있었는데 집 근처에 자그마한 공지가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일궈 채마 밭을 만들었다.비록 얼마 크지 않는 채마 밭이지만 도회지에서 이만한 채마 밭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훌륭한 셈이다.

우리 부부가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가꾸기에 봄부터 가을까지 갖가지 남새가 아주 잘 자라 우리 두 식구가 먹고도 항상 여유가 있었다.그러자 아내는 퇴근길에 집 앞을 거쳐가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늘 붙잡아 세워두고 남새를 비닐주머니에 담아 건네준다.

그것이라야 돈으로 치면 정말 몇 푼 안 되는 것들로서 혹은 줄당콩 한 바가지 혹은 감자 몇 알 혹은 고추 몇 웅큼,풋 배추나 상추 한 묶음,파 몇 대,오이나 가지 몇 개밖에 되지 않는다.그러면 선생님들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사양하지 않고 받아간다.그걸 보고 나는 가끔 아내를 나무란다.

“까짓 몇 푼 한다고 그런 걸 다 줘?장마당에서 돈 몇 푼이면 사는 걸 가지고.그 선생님들도 인사로 받는 거야,안 그래?주는 데 성의를 봐서 안 받지도 못하고…”
“자기가 뭘 안다고 그래?이건 장마당에서 파는 것하고는 다르잖아.화학비료도 안 주고 농약도 안 친 진짜 녹색식품이야,그리고 금방 밭에서 딴 것이라서 싱싱하잖아.다들 얼마나 좋아 한다고.그리고 이렇게 주는 것도 내 성의야.남한테서 받기보다 이렇게 주는 게 얼마나 좋아?”

아내가 이렇게 말 할 때는 나도 더 말을 못 한다.그의 말에 일리가 있고 없고 더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교직에 있을 때 봄이나 가을에 휴일 날이면 곧잘 아내와 산보 삼아 야외로 나가 나물을 채집한다.이렇게 나물을 채집해오면 아내는 그것을 다듬기 바쁘게 이웃들에게 날라다 주는데 집에 남기는 것은 기껏 한두 끼 거리 뿐이다.어떤 때는 정말 힘들게 캐온 것을 남에게 다 날라가는 것을 보고 내가 좀 나무람하면 되려 나를 핀잔한다.

“남자란 게 째째하게 별 것 다 아까워하네.우리야 더 먹고 싶으면 또 캐오면 되잖아.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런 것을 캐올 힘이 안 되잖아.”

결국 내가 또 할 말을 잃는다.그래서 나는 될수록 그런 일은 보고도 못 본 척 참여하지 않는다.학교에서 양어장 물을 다 푸고 잡아서 나눠준 큰 잉어 열 몇 마리를 한끼거리로 한 마리만 달랑 남기고 남에게 다 날라다 줬을 때도 그렇고 농촌에 사는 친구가 풋 강냉이 맛을 보라고 한 자루 보내온 것을 몇 이삭만 남기고 다 이웃에 나눠 줬을 때도 나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이렇게 남한테 잔스러운 것을 주기도 좋아하지만 또한 받기도 잘 한다.그 때문에 나한테 또 꾸중을 듣는다.나란 놈이 성미가 좀 괴팍하다 할까 남의 집에서 날라온 반찬을 먹기 싫어 한다.이젠 그래도 좀 많이 나아졌지만 젊었을 때는 남의 집에서 가져다 준 반찬에 조만해서는 수저를 대지 않는다.

그래서 전엔 남의 집에서 담근 된장이나 김치 따위는 식탁 위에도 올려놓지 못하게 했으며 남의 집에서 가져온 반찬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그래서 아내는 남이 반찬을 날라오면 항상 내 눈치를 보고 식탁에 놓고 안 놓고 한다.내가 아무런 내색이 없으면 그대로 식탁 위에 놓고 내가 좀 꺼리는 눈치면 아예 식탁 위에 놓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남들이 반찬을 날라오면 반갑게 인사하며 받아놓는다.기실 어떤 음식은 받아 놓긴 하지만 아내도 그것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

한 번은 옆 집 할머니가 청국장을 냄비에 잔뜩 담아서 가져왔는데 아내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받아두었다.그런데 나는 꺼림직해서 먹지 않고 아내는 워낙 청국장을 입에도 대지 않는 법이요,그렇다고 그것을 버리는 것도 안 되는 일이라 결국은 그 할머니 몰래 내가 그것을 청국장을 좋아하는 근처에 거처하고 있는 홀 아비한테 날라다 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후에 청국장을 참 맛있게 잘 먹었다면서 아내는 할머니에게 그릇을 되돌려주었는데 빈 그릇을 그냥 되돌려 드릴 수는 없고 해서 쇠고기 장졸임을 담아드렸다.

“전혀 먹지도 않을 것을 받기는 왜 받아.아예 받지를 말아야지.”
그릇을 돌려드리고 돌아온 아내에게 내가 불만을 터뜨리자 아내는 이번에도 제 도리를 내세운다.
“아무 것도 없는 할머니가 어쩌다가 주는 건데 어떻게 안 받아?더구나 그 분 성의는 무시할 수 없잖아.안 받으면 얼마나 섭섭해할 건데.이렇게 받아주니 얼마나 좋아해.없는 사람 것일수록 더 받아줘야 해.”

정말 귀에 걸면 귀걸이요,코에 걸면 코걸이라 도리란 둘러 붙이기에 달렸다.어떤 때는 집에 남아도는 남새 따위도 아내는 조만해서는 거절하지 않고 받아두는데 그렇게 받아서는 후에 누가 가져온 것인데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아서 가져왔다면서 남에게 또 넘겨준다.그 때문에 내가 골탕을 먹을 때도 많았다.

전에 우리 집 길 건너 맞은 켠에 낚시질을 무척 즐기는 한족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절반 낮 시간은 낚시질하는데 보내다시피 한다.그런데 그들은 낚아 온 물고기를 자기네가 먹기보다는 남한테 주는 것이 더 많다.그들의 낚시질은 물고기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종 취미에서였다.

기실 그들이 낚은 물고기라야 겨우 눈을 뜬 잔챙이들이요 하루 종일 낚아야 겨우 한두 근뿐이다.그런 물고기를 그들은 곧잘 우리 집으로 날라오는데 아내는 참 좋은 거라며 반색을 하며 받아 든다.
그런데 이렇게 받아 놓은 물고기를 몽땅 나한테 밀어 부친다.물고기 벨을 따는 것도 내 몫이요,그걸 먹어 치우는 것도 내 몫이다.아내는 바다 물고기는 좋아하지만 강이나 늪에서 잡은 민물고기는 비린내가 난다고 조만해서는 먹지 않는다.그 작은 잔챙이 물고기 벨을 따자면 아닌 게 아니라 고역이었다.

그래서 내가 몇 번이나 앞으로는 이런 것을 아예 받지 말거나 아니면 몰래 가져다 버리라고 하면 아내가 하는 말이란 또 그 도리다.남이 그래도 우리를 생각해서 갖다 주는 것인데 그 성의를 봐서 어찌 그렇게 할 수가 있겠느냐고.그래서 나의 고역은 또 이어진다.

비록 아주 보잘것없이 작고 적은 것들이지만 그것을주고 받기를 좋아하는 아내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웃지도 울지도 못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연속 벌어지고 그래서 아내를 둘러싼 우리 집 생활드라마도 연속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 한낮의 햇빛, 의자, 신선한 공기...편한 맘으로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보면 내가 수필이 되는 것 같다...

제3편 

밥 한 그릇의 서정
 
 
 
어려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엄마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지을 때 나는 소리였다 .또깍또깍 도마에 칼 부딪치는 소리,뽀글뽀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 칙칙칙 밥솥이 가쁜 숨을 토해내는 소리.그 소리가 밖으로 울려 퍼지면 애들과 정신 없이 뛰놀다가도 금세 부엌까지 들어와서 침을 꼴깍 삼키었다. 쌀이 끓어오르고 부푸는 동안,밥 냄새가 솔솔 퍼지기 시작하면 허기가 배를 가득 부풀게 하였고 그런 저녁이 어린 나를 살찌우게 했다.

젊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아내가 밥상 차리는 소리였다.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부엌에서 들려오는 그릇과 그릇 부딪치는 소리,밥상 차리는 소리.그 소리가 해 뜨는 아침마당에 울려 퍼지면 금세 온몸에 힘이 솟구쳤고 그 소리가 어둑어둑해지는 먼 동구 밖까지 퍼지면 일터에서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벼워진다.그 소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힘의 원천이며 지친 하루의 불안과 긴장을 풀어주는 해독제였다.가지런히 놓인 여러 가지 반찬과 뜨거운 국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윤기가 흐르는 하얀 쌀밥을 대할 때면 기분이 무척 좋다.나는 일부러 입으로 후~후~ 소리를 내 가면서 밥을 먹는다. 따뜻한 밥을 챙겨주는 아내의 수고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나에게 예나 제나 세상에서 가장 반갑고 정겨운 소리는’’빨리 와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다. 먹을 것이 없어서 너무너무 가난했던 시절.밥은 꿈이었다. 그 밥 냄새에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가 얹히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저녁의 힘이 솟아났다.항상 일터에서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는 나를 보며 말했다.”식아, 밥 안 먹었지? 식기 전에 얼른 이리 와서 밥 같이 먹자”.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위해 밥을 남기셨고 그렇게  내가 먹은 그 밥은 달았다

어린 시절,내가 가장 많이 건넨 인사말은  “밥 잡수셨어요?”이고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인사말도 “밥 먹었어?”였다 그리고 가까운 친지들이 내게 묻는 문안에도 가장 많은 말이”너들 밥은 제대로 먹고 지내냐?”였다. 한 사람에게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는 것은 별일 없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낸다는 뜻으로 통한다. ‘밥 먹었어?’는 그야말로 기본적이고 총체적으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말이다. 이 말만큼 친근하고 정겹고 따뜻하며 고마운 인사말이 또 있을까. 여기에 ‘밥’이 삶과 행복의 바탕을 이룬다는 생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는 일 가운데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던 시절에는 한 끼 밥 한 그릇 장만하는 고달픈 현실을 한 순간도 피할 수 없었으니 모든 관심과 결정은 결국 밥 한 그릇으로 귀착되기도 했다.그 시절에 배부른 사람 어디 있으랴마는, 거듭되는 흉년으로 생산대는 빈 타작인 해가 많았고 겨울을 지나면서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자연히 이른 봄부터 나물이나 부지런히 뜯어 먹게 되었는데 그나마 힘들 때가 오뉴월이었다.그때 중국 흑룡강성 상지시 모아산이란 곳에서 살던 우리 집에서는 당장 입에 풀칠할 것이 없어서 멀리100여 리 떨어진 아성시내에 있는 사탕공장에 가서 사탕 무 찌꺼기를 사다가 쪄먹기도 했는데 그게 어디 사람이 먹을 음식이던가? 못 먹어서 생긴 부황(浮黃)으로 식구들은 얼굴이 붓고 누렇게 떴었다.그런 것을 먹고 겨우 서너 살 된 남동생은 볼록한 개구리 배처럼 소화불량으로 배가 통통 부어 오르기도 했다. 그 시절 잡곡밥이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평민들의 꿈 중의 꿈이었다.하기에 그 시절엔 그릇에 넘치게 꾹꾹 눌러 담은 새하얀 쌀밥이 어쩌면 부의 상징이었고 행복이란 어쩌면 밥 한 그릇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나는 모아산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교통이 좋고 꽤나 번화한 모아산이란 곳을 떠나 저 멀리 기차도 안 통하고 버스마저 하루에 두 번밖에 안 다니는 연수현 중화진이란 시골로 어머니를 모시고 이사를 갔다.결국 밥 한 그릇 때문이었다.전해 여름방학 때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 사는 큰 형님네 집에 놀러 갔던 나는 물고기에 흰 쌀밥을 원 없이 먹었다.해마다 흉년이 드는 모아산과는 달리 해마다 풍년이 들고 물고기가 흔한 중화진은 그때 나의 인상에 그야말로 ‘魚米之乡’이었던 것이다.

밥 이야기가 나오니 밥을 충분히 먹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에도 유달리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풋나물죽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부른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 고프다”라고 하시며 남기던 어머니의 밥이었다.가뜩이나 부족한 식량에 그나마 일부는 아버지의 병 치료비며 큰형님의 대학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으로 이고 나가 팔아야 했으니 남은 식량으로 식구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여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는 죽을 먹었다.그런데 식사를 할 때마다 어머니는 밥을 반 그릇씩 남겼다. " 아까 정지칸 (부엌간) 에서 군입질 했더니 배가 안고프구나,"등 이유 없는 구실을 달면서 당신의 밥을 남겨 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용캐도 어린 우리 형제들은 입맛만 다실뿐 누구도 그 밥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건 꼭 어머니가 잡숴야 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아~, 냉수로 절반 배를 채우고 힘든 봄날의 논밭 일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날마다 삼시 세 끼를 먹어야 하는 밥이지만 나에게 밥의 의미는 각별하다.밥이 없으면 나는 하루 동안 힘없이 앉아 있어야만 한다. 밥심으로 일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한참 일할 때는 그것을 절감할 때도 있다. 한끼 식사는 한나절 일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밥은 일 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움직이고 생각하고 내일을 설계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일상생활을 이어 나가게 하는 것도, 또 내일을 꿈꾸게 하는 것도 다 밥의 힘이다.

시골에 있을 때 10여 년 농사를 지었었다.한여름 농사일은 입에서 단내가 난다. 땅에선 이글이글 뜨거운 기운이 솟는다. 온 몸에선 땀이 비 오듯 한다. 배 속에선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난다. 점점 배가 등가죽에 붙는 느낌이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구부러진다.이때 먼 곳 논두렁을 타고 점심밥을 머리에 이고 오는 아내가 보인다.일손이 빨라진다.손에 힘이 들어간다.들에서 막는 밥의 반찬은 소박하다. 콩나물무침이나 마늘쫑무침이 아니면 더덕이나 도라지무침에 깻잎, 청국장찌개 등이다. 말 그대로 ‘풀’뿐이다. 그래도 그것을 밥과 함께 넘기면 꿀맛이다.

한국에서 회사에 다니던 나는 잔업이 없는 날은 6시에 퇴근한다.한겨울 차가운 바람 불어 치는 퇴근길에 더디 오는 버스를 기다리거나  좁고 어둡고 긴 골목길을 걸을 때 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꾸루룩~꾸루룩 소리 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하얀 사기 그릇에 하얀 김이 몰~몰 피어 오르는 하얀 쌀밥을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세상에 밥만큼 맛있는 것이 없다. 밥은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밥은 나의  인생이며 즐거움이다.

지금 나는 나즈막히 넘어가는 어둑저녁을 창 밖으로 내어다 보며 밥 한 그릇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번 그려본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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