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던 중국동포여성, 분당경찰서에 자진신고 하러 갔다가 유치장에 30여 시간 억류당하고 서울출입국에 압송 당했다 풀려나 이십여 일 간 입원치료, 사과조차 못 받아내 

    

중국동포여성 이현숙씨는 십여 년 전에 남편을 잃고 막부득이 한국행을 선택했다. 현제 아들은 연길정신병원에서 정진질환치료를 받고 있으며 딸애는 연변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매달 한화 30만씩 드는 아들애 치료비를 대랴 딸애 대학공부를 시키랴, 그녀는 5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를 악물고 허둥지둥 일해 왔었다. 그러다 작년 12월5일에 유방암에 덜컥 걸려 왼쪽유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오른쪽에도 이상증세가 생겨 국부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가정부로 있으면서 덕 쌓은 보람인지 맘씨 좋은 주인집에서 고맙게도 5백만 원이란 거액의 수술비용을 대주어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금년 4월24일, 그녀는 우연히 친구한테서 ‘동포자진귀국프로그램’ 전단지를 얻게 되었다. 자진귀국하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재입국을 보장한다는 법무부의 공문을 기사화한 내용이었다. 아들딸 걱정에, 중병의 몸이다 보니 그녀는 일단 귀국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주인집에서도 그의 생각을 지지해 주었다. 

그녀는 114에 전화를 걸어 분당결찰서 외사계 전화넘버를 물었다. 미심쩍어서 다섯 번이나 통화를 했다.

분당경찰서 외사계 박용순 계장은 시종 친절하고도 깍듯이 응답해주었다. 분당재생병원에 말해 약값도 싸게 치료해 줄 테니 빨리 오라고 권고해왔었다.

맘씨 착한 그녀는 박용순계장의 말에 감동되어 시장에 가서 돼지발쪽과 약재를 사와서 왕발쪽 두 박스를 만들어 분당경찰서 외사계를 찾아갔다.

그녀는 ‘동포자진귀국프로그램’ 전단지를 보이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고생고생 돈번 이야기, 곡절 많은 가정이야기, 한국에서 스트레스 받고 병 얻고 유방암수술까지 받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울었다. 그녀는 정부의 정책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조사가 끝나자 이현숙씨는 외사계 이남기 경장이 시키는 대로 열손가락으로 돌아가며 지문을 찍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절차가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 사이 박용순 계장은 어데 갔다 온다면서 슬쩍 자리를 피했다.(그녀의 느낌이 그랬다.)

그런데 조사를 끝내자 그들은 사무실에 그녀를 가둬놓고 점심 먹으러 갔다 오더니 지하유치장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환자에게 약도 못 먹게 하고 점심도 주지 않았다. 이남기 경장은 긴급체포령을 내렸으니 잠시 유치장신세를 져야한다고 했다.

이현숙씨는 소름이 쫙 돋으며 돌아버릴 것 같았다. 자진신고 하러 온 사람을 잡아가두다니? 법무부의 정책이 내려왔는데 그 것마저 무시하고 이러는 법이 어디 있는가? 이러는 것이 내 평생에 얼마나 큰 상처 남기는지 아는가? 긴급체포령이라니, 도대체 누구의 명령인가? 하고 아무리 소리치고 항거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내보인 병원진단서도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지하1층 유치장에 내려간 그녀는 또 한번 심한 목욕을 당해야 했다. 유치장안 범인들의 이상한 눈길을 받으며, 구경거리도 생긴 듯 경찰들의 끼웃거림을 당하며, 사진 찍고 지문 찍게 하더니 시계, 목걸이, 핸드백 다 빼앗고 유치장에 가두는 것이었다.

나는 암 환자이기에 약을 먹어야 한다. 주인집에 전화해서 약 가져오게 핸드폰을 달라고 하니 베트리를 빼서 주는 것이었다. 

4월 중순이라 지하실은 추웠었다. 치마에 스타킹을 입고 온 그녀는 온몸이 떨리면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함치며 항거해도 아무런 보람 없었다. 외려 간수원이 다가와 그러면 죄가 가중된다고 으름장만 놓는 것이었다.

저녁 9시가 되자 천만다행 주인집에서 기다리다 못해 경찰서로 찾아왔었다. 세상에 자진신고하러 온 중환자를 유치장에 가두는 법이 어디 있느냐? 당장 풀어달라고 거세게 항거해도 막무가내, 결국 그녀는 주인집에서 보내온 우유와 빵으로 유치장안에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약까지 먹고, 가져온 외투로 몸을 꽁꽁 싸고서야 겨우 밤을 지새울 수 있었다.

그녀가 지하실에서 빠져나온 것은 정오 12시, 그녀는 이제 집에 가느냐고 물었다. 이남기 경장이 당연히 집에 가야한다고 이죽거렸다.

그녀는 점심을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오후 2시가 넘자 이남기경장과 운전수, 또 다른 한 경장이 그녀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차에 싣고 서울출입국으로 향했다. 목동 본사 5층인 것 같았다.

본사의 웬 젊은 공무원이 문을 열고 나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 공무원은 단번에 낯을 찡그렸다. 당신네 정신이 있느냐고? 자진신고 한 동포를 잡아오면 나더러 어쩌라는 가고? 하물며 법무부정책이 내려와 지금 한창 실행하고 있는 마당에 이게 무슨 행동인가고? 당신들이 잡아왔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문을 닫고 들어가려 했다.

이남기 경장은 그제야 얼굴이 벌게 나서 이렇게 변명했다. 범인이 달아 날 가봐 그랬다니, 풀어줬다 벌금을 내면 어쩌겠냐?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다시 한번 거세게 항의하자 모르고 그랬는데 어쩌겠는가고, 하는 것이었다.

풀려나온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주인집에 가지도 못하고 대구언니네 집에 갔다. 열이 오르기에 열흘 동안 점적주사를 맞으면서 치료를 했었다.

동생네집이라도 오래 있을 수 없어 서울로 돌아온 그녀는 여행증을 하러 명동에 있는 중국대사관을 찾아갔다. 수속 마치고 내려오면서 보니 적십자병원이 눈에 띄워왔었다. 그녀는 무작정 그 병원의 문을 떼고 들어가 날 살려달라고 애원했었다. 그녀는 유방암수술을 한 경위에 잡혀 들어갔다 온 과정을 말하고, 이곳에서 치료를 해주지 않으면 난 죽을 것 같다고 울면서 도움을 청했다. 그녀를 접대한 사람은 허명월 의사였다.

허의원은 대뜸 서대문에 있는 적십자병원 지사에 전화를 해서 입원수속을 밟게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데 있냐고, 안심하고 치료하라고 따뜻이 위로해 주었다.

서대문적십자병원의 백종대 외과과장이 인차 그녀를 입원시키면서 안심시켰다.

3일 치료를 하고서는 전번에 수술했던 병원에 가서 소견서를 떼 오라는 부탁을 해왔었다. 병 치료를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녀가 자기가 수술 받았던 안양 고대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당직은 여권을 가져오면 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분당경찰서 박용순 계장한테 전화를 하며 사정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니 이튿날 아침 9시에 와보라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그녀가 박계장을 찾아가자 박계장은 언제 그랬냐 듯이 위조여권은 줄 수 없어 이미 유관부문에 보내 처리하게 했다고 잡아떼는 것이었다.

그때에야 서울조선족교회가 머리에 떠오른 그녀는 김사무엘전도사를 찾아갔었다. 김사무엘전도사가 전화를 하자 대방은 인차 소견서를 떼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에 가서 정작 소견서를 떼려고 하니 담장자가 컴퓨터를 두드려보더니, “아주머니 문제 있습니다. 검찰 수사 중이군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도 억울하고 분해서 내가 무슨 죄를 범했느냐 살인이라도 한줄 아느냐? 나는 불법체류를 했을 뿐이다, 고 소리쳤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 치료를 하면서 사귄 한 간호원이 그녀를 측은히 여겨 퇴근할 때까지 남아 기다렸다가 몰래 소견서를 뽑아주었었다.

그녀는 천만다행히 적십자병원에서 무료로 20여일 치료를 받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한국에 약값도 비싸고 해서 일찍 중국에 들어가 치료도 하고 자식들을 돌보려고 자진신고를 했던 그녀는 그때로부터 2달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비행기표를 사고 귀국할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동안 쓴 경비는 말하지 않더라도 입은 정신적인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설사 그런 정책이 내려왔는지 몰랐더라도 전화 한통이면 출입국관리국에 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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