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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우데-러시아의 몽골 핏줄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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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9  14: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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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몽골 아줌마에게서 순식간에 초원 민족들의 패기가 폭발해 나왔다. 나는 마침내 몽골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다.

글/마졘(马剑)

울란우데, 울란바토르처럼 들릴 수 있다. 그렇다. 울란바토르에서 불과 400여km 떨어진 곳에 몽골인들이 대대로 살았던 집터가 있다. 다만 현재 이 지역은 러시아 영토에 속해 있다.

시베리아 대철도가 이 곳을 지나간다. 시내로 들어서자 거대한 몽골인 조각상이 사거리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다. 힘센 몽골 사나이는 준마를 타고 한 손에 활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날개를 펴고 날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독수리를 들어 올렸다. 이는 마치 세상을 향해 이 곳은 몽골인들의 영역임을 알리는 듯했다.

여러 날 러시아 대도시를 누비며 상징적인 둥근 러시아식 지붕에 피로를 느꼈는데 울란우데는 청류(清流)처럼, 오히려 길을 따라 늘어선 러시아식 건물에 독특한 개성이 가미되었다. 이 곳에는 몽골과 러시아 건축물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작은 집들이 많아 이 동방정교 국가에 이국적인 색채를 더해주었다.

울란우데는 러시아연방 부랴트공화국의 수도로 면적도 크지 않고 인구도 40여 만 명에 불과하다. 이 곳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지역은 청나라 때 중러 국경 도시였던 캬흐타이다. 당시 러시아 상인들이 중원의 찻잎을 싣고 북상한 첫 번째 행선지가 울란우데이고 다시 북쪽으로 가면 유명한 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이곳에 사는 몽골인들은 몽골족의 지계(支系)에 속하는 브랴트인이 많으며 13~14세기 바이칼호 지역에 들어선 몽골 부족과 현지 주민이 화합을 이뤄 형성한 후예들이다.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부랴트인들의 땅이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도심의 광장은 이 도시의 핵심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러시아 미인들과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를 지닌 몽골 소녀들이 많이 보였다. 가끔 러시아 여자아이가 몽골 젊은이와 팔짱을 끼고 도로를 자유자재로 누비고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광장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의 두상이 우뚝 서 있다. 레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높이 7.7미터의 청동 조각으로 1970년에 세운 동상이다. 현지인들은 울란우데의 새들은 한번도 레닌의 머리 위에 떨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옆에서 한참 지켜봤는데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중심 광장을 따라 바깥으로 두세 갈래의 주요 도로만 나 있을 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면 끝없이 펼쳐진 대초원을 볼 수 있다. 메인 도로에는 몇 채의 상징적인 러시아식 건물 외에도 규모가 크지 않은 라마 사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곳의 불교적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도심에서 30여km 떨어진 이볼긴스크 다스탄 사원으로 차를 몰고 가야 한다.

이볼긴스크 다스탄은 시베리아의 불교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시내버스로 갈 수 있고 차 안의 러시아 문자를 몰라도 상관없으니 버스에 불교 사원이 새겨진 사진이 붙어 있는지만 살피면 된다.

사원에 들어선 순간 마치 티베트 사찰에 들어온 것 같았는데 티베트식 건축물이 사찰 안에 분포되어 있었고 전경통(转经筒), 경번(经幡), 쌍녹법륜상(双鹿法轮像) 등 티베트 사원의 대표적 상징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있었다. 다만 표지판에 있는 러시아 표기들만이 사람들에게 이곳이 러시아라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티베트 불교는 몇 세기에 걸쳐 몽골 지역에 널리 전파되었는데 용맹스럽기로 유명한 러시아 땅에서도 생명력이 왕성할 줄은 몰랐다. 사원의 한 동자 라마승의 말에 따르면, 사찰은 몇 번이나 흥망성쇠를 겪었는데, 현재 사원의 건물 대부분은 거의 20년 동안 신도들이 자금을 모아 지은 것이다.

연달아 7~8그룹의 현지 몽골인들이 계속 사원으로 들어왔는데 대부분은 온 집안이 함께 와 절을 하고 경을 외우는 모습이 신비롭고 경건했다. 모든 것이 선대의 풍습을 답습하고 있었다.

사찰 밖에는 제대로 된 몽골 만두를 먹을 수 있는 몽골식당이 있다. 만두소로 씹는 맛이 일품인 소고기를 넣었을 뿐 중국식 만두와 다를 바 없었다. 거기에 걸쭉한 밀크차를 마시면 몽골인들의 패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옆에는 열여덟, 열아홉 정도의 체격이 큰 러시아 젊은이 몇 명이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동아시아인 티가 나는 나의 모습 때문에 젊은이들은 나의 방향을 가리키며 러시아어로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지 않고 카메라를 가지고 차 밖의 풍경을 찍었다. 그 중 한 명이 일부러 내 카메라를 손으로 만지는 식으로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이 참고 빨리 목적지 역에 내려 이 짓궂은 젊은이들을 떠나고만 싶었다. 한참 이들한테 시달리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은 체구가 작고 통통한 몽골 아줌마가 갑자기 러시아어로 이들 젊은이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갑자기 모든 차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젊은이들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다가 조용해지더니 차 앞으로 이동해 아줌마의 고함과 욕을 피했다.

초원민족들의 패기가 이 몽골 아줌마에게서 순식간에 폭발되어 나왔고 나는 몽골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확실히 알게 됐다. 당시 십여만 명에 불과했던 몽골군들이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것은 분명 신체적인 우세에 기댄 것이 아니라 아마도 이런 기개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명한 러시아 역사학자인 카람진은 “킵차크한국(金帐汗国)이 없었다면 오늘의 러시아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전에 러시아라는 나라는 없었고 수많은 크고 작은 귀족 공국들만 있었다. 몽골 대군은 1237년 모스크바를 침공해 이 공국들을 칸국으로 통일시켰다. 몇 백 년 간의 상호 교합을 거쳐 러시아인들은 유럽인들의 눈에는 아시아인으로, 아시아인들 눈에는 유럽인으로 보이게 되었다. 레닌이 아시아인처럼 보이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레닌의 할머니는 오리지널 몽골인이며 할아버지도 몽골 혈통이 섞였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이 점이 몽골인들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감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유이다. 나는 많은 러시아인들이 여전히 몽골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심의 칸갈로프 부랴트 역사박물관은 몽골인과 이 땅, 러시아인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최고의 창구이다. 옛 소련의 오래된 건물에 위치한 박물관은 3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거의 없었다. 귀여운 여성 관리원이 아예 나만 안내를 해주었다. 그녀는 이 도시에 전에는 관광객이 없었다고 말했다. 소련 시절 비밀 군사공장이 있던 이곳에는 지금도 지도에 빈 공간이 적지 않다. 나는 “지금도 출입금지구역이 있는가” 물었다. “스스로 생각해 보라”며 그녀는 신비스럽게 웃으며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었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서 주인인 우리(乌力)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리지널 몽골인으로 작지만 건장한 몸매에 천진난만한 웃음이 인상적이었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모습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는 몽골어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했다.

우리는 비록 이 지역에도 많은 학교가 있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기를 원하고 거기에 그들이 더 끌릴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은 아직도 몽골 관습을 많이 유지하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몽골인들이 러시아어만큼 몽골어를 잘하지 못하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더 이상 말할 줄 모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초원이 있는 한 몽골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호텔의 손님들이 작은 뜰에 모였다. 뜰 안의 넓은 소파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주저앉아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 보게 만들었다. 대초원의 별들은 유난히도 훤히 트여 있어 뭇별들이 마치 공중에 박혀 있는 것처럼 손에 닿을 듯 말 듯 하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손님들은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음악은 통했다. 몽골인 한 명 한 명이 모두 음악가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어 은은한 마두금 소리가 곧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손님들 모두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술을 한 잔씩 마셔야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술기운을 빌어 ‘울란바토르의 밤’을 흥얼거렸다. 다만 그 가사를 울란우데의 밤은 고요하고 조용한데 밀회에서 만난 젊은이는 여유로움이 가득하구나로 바꿔 불렀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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