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리승국은 근년에 중국 룡정의 유명한 소설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산 작가인 그는 윤동주의 고향 룡정에서 꿈꾸며, 비상하며, 나름대로 소설이란 한 우물을 파고 있다. 더불어 한민족의 풍습과 문화를 꿋꿋이 지켜나가면서 조선 민족의 문학의 발전을 위해 혼신을 불태우고  있다...<편집자>

▲ 리승국 프로필 : 조선 함경북도 회녕 출생. 1992년 소설 <사랑고개>를 <천지>잡지에 발표하며 소설 창작에 전력.  제15기 북경 로신문학원 수료. 60여편의 중, 단편소설 및 수필 수편 발표. 단편소설집 <풍경소리 아름답네> 출간. <천지>신인상, <도라지>문학상, 제4회김학철문학상, 2016년 <민족문학>(한문판)년도상 등 수상. 연변작가협회 리사, 소설창작위원회 부주임. 룡정시작가협회 주석, 룡정시 문화관 근무.

제1편

[중편소설] 마지막미쟁이(泥匠)

리승국


1.
어씨는 물고기를 아주 즐겨먹었다. 어씨의 성은 한자로 물고기 어“鱼”자였다. 하지만 성 어자에 걸맞지 않게 물고기를 먹었다. 자기는 조상의 얼굴에 먹칠을 한 망나니라고 자칭하면서도 그런 도덕같은데 구애받지 않는다며 물고기로 끓인 세치네국을 즐겨먹었다. 언젠가 저승에 가면 조상들이 자기를 구렁창에 처넣을것이라는것을 각오하고있었지만 대수로와 하지 않았다.
항간에서는 남의 집 부뚜막을 만들어주고 담장을 쌓아주며 집 바람벽을 미장해주는 사람을 일컬어 미쟁이(泥匠)라고 불렀다. 어씨는 그런 미쟁이가운데 한사람이다. 어씨는 미장일에 솜씨가 좋았고 그가 미장해놓은 건물벽이나 담장은 얼음판처럼 매끈해 보는 사람마다 엄지를 내밀었고 그를 찾아 일감을 맡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씨를 찾아 일감을 맡기자 어씨는 하루도 쉴새없이 매일 미장칼과 망치같은 연장을 넣은 소가죽으로 만든 누런 가방을 둘러메고 시가지의 구석구석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으며 경기가 좋을 때는 교외로까지 나가 며칠씩 묵으면서 일을 했다. 그렇게 일을 열심히 했지만 남는것은 그냥 몇푼 되지 않았고 그냥 시가지 변두리의 처마낮은 세집에서 살고있었다.

어씨의 마누라는 좀 분촌을 모르는 녀자라 늘 음식을 한 다야씩 해놓고는 나중에 음식이 변질해 버리군 했다. 어씨가 분수없이 음식을 해놓고 버리면서 랑비한다고 나무라면 제쪽에서 목에 피줄을 세우며 자기잘못을 승인하지 않았다.
“당신이 밖에서 점심을 에때우니 음식이 남는거지 내가 계산을 못해 음식을 랑비한겜두?”
기막히게 정당한 변명에 어씨는 입이 아프게 말다툼을 하기 싫어 그저 한발 물러나군 했다.
어씨는 마누라한테 돈을 그대로 맡겼다가는 나중에 하늬바람도 마시기 힘들것 같아 생각을 달리했다.
어씨는 삯전을 받으면 절반씩 떼내여 따로 감춰두었다가 몰래 저축해놓았다. 그렇게 모은 돈이 저그만치 다섯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되였다. 어씨는 이런 생각을 조금 더 빨리 했어두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았을거라고 여기며 장가 잘못간 자신의 팔자를 멀리 교회 십자가우에 걸려있는 둥근 달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더군다나 설상가상으로 마누라가 고혈압병을 고질로 앓고있어 늘 아슬아슬한 살얼음우를 매일매일 건느는 일상을 되풀이하고있었다. 그렇다할 증상은 보이지 않고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장착한거나 마찬가지여서 어씨는 항상 조마조마한 삶을 영위해나가고있었다.

어씨한테는 학교를 나온지 일년푼이 되는 아들이 하나있었다. 이놈의 자식도 담지 말라는 제 에미를 닮아서 어씨를 실망시켰다. 남들처럼 친구들과 섭쓸리지 못했고 늘 혼자 집구석에 칩거해있지 않으면 장돌뱅이처럼 장터나 쏘다니는것이 고작이였다. 아들놈의 하는 잡도리가 어씨의 맘에 들지 않아 속을 썩이고있는데 어느날 어씨의 마누라가 어씨한테 생각밖으로 아주 훌륭한 조언 한마디를 해주었다.
“당신 그렇게 홀로 일하러 다니지 말구 쟤를 데리구 다닙소. 쟤한테 당신 재간을 물려주면 이후 우리 다 죽고 없어두 굶어죽을 걱정은 없을게 아임두?”
“할일없어 좆같이 더러운 쌍놈일을 배우겠나.”
어씨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아들의 장래에 숱가락 얹기도 어려울건 뻔했다. 아들을 위해 뭐든지 해줘야 할것 같았다. 서두른다고 일이 되는건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아들의 장래를 차근차근 챙겨주어야 할것 같았다.
어씨는 어느날 삯일하러 떠나면서 아들한테 함께 가서 애비 일손을 거들어줄수 없을가 물었더니 생각밖으로 아들은 흔쾌히 머리를 끄덕여주었다.
“집에 있기도 답답한데 차라리 아버지 함께 가서 일이나 하는게 좋을것 같슴다.”

어씨는 아들이 첫날로 자기를 따라 일하는것이 마음에 켕켜 그냥 옆에서 벽돌이나 날라주는 일을 시켰지만 아들은 생각밖으로 미장일을 배워달라고 졸랐다. 조금 뜻밖이여서 황당했지만 이게 바로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어씨는 히죽이 웃으며 아들손에 자기의 손때가 묻어있는 미장칼을 쥐여주었다. 마치 죽음을 앞둔 장군이 마지막 병사한테 자신의 피묻은 칼를 넘겨주는듯 사뭇 장엄하기까지 했다.
“미장칼은 당기는쪽을 살짝 들고 힘을 손목에 주어야 수평을 유지할수 있단다. 그리고 눈은 항상 미장칼끝을 따라 주시하면서 절대 딴곳에 정신을 팔면 안된단다.”
아들은 어씨의 말대로 미장칼을 쥐고 세멘트반죽을 벽에 대고 미장질했지만 생각대로 되여주지 않았다. 그러자 어씨가 인차 미장칼을 받아 세멘트반죽을 벽에 대고 쓱쓱 문지르자 반죽이 마치 자석만난 철가루같이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어씨가 다시 미장칼을 휘두르자 세멘트반죽이 달라붙은 벽은 매끈하고 반듯하게 미장이 되였다.
“모든 일에는 노하우가 필요하단다. 하루이틀에 이 세상을 다 알지 못하듯이 평생 먹구살아야 할 재간을 한두번에 다 배울수 없단다.”
아들은 어씨의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지꿋게도 미장칼을 들고 벽에 문질러댔다. 엉망이 된 그 자리를 교정해주는건 어씨의 몫이였다.
어씨는 그렇게 시끄럽고 고달프게 아들한테 미장일을 배워주며 일을 해도 웬지 힘들지 않는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늘 홀로 미장일을 해오면서 고달픔보다 고독스러움으로 괴로워했었는데 인젠 그런 괴로움은 아들로 인해 사라지고말았다.
마치 아들은 어씨를 닮아 미장일을 할 사람으로 태여난듯 싶을 정도로 미장칼을 직성스레 휘둘러댔다. 세멘트반죽이 옷과 얼굴에 튕겨 어지러워졌으나 그런 일로 그만둘 아들이 아니였다. 어씨는 곁에서 아들의 미장질하는 모양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했다. 그 웃음에는 그렇게 고생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임을 느끼는 기쁨이 그들먹하니 너울대고있었다.
하루의 품삯은 로동량과 로동강도 그리고 로동기술가치에 따라 달랐는데 보통은 일감을 보고 값을 정한후 일을 시작하군 해서 일하는 과정이나 일의 경량은 어씨의 몫이였고 주인은 다만 질량과 진도만 따졌다. 하도 어씨가 일에 재치있고 솜씨가 빨라 보통일을 하루넘기는 때가 적었다. 그런 일솜씨때문에 어씨의 일감은 끊기질 않았던것이다.

아들과 하루일을 마친 어씨는 기분이 둥둥 떴다. 하루품삯을 2백원이나 받았다. 이만한 품삯은 이왕에 받은 품삯보다 별반 차이는 없었지만 아들과 함께 한 로동의 보상이여서 더없이 무거워보였다.
“아들. 오늘 한잔해야겠다. 이 애비 칭커하마.”
“돈을 엄마한테 가져다 주어야지. 그러다 야단맞으면 나까지 혼나는데...”
아들은 슬그머니 한발 물러서며 어씨 손에 쥐여져있는 지페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너와 함께 일한 날이라 상황이 달라.”
어씨는 아들과 함께 시가지로 들어오는 어구에 있는 물고기료리를 하는 싸구려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보통 이런 음식점은 아빠트공사장에서 일하는 농민공들이 아니면 어씨같은 품삯일을 하는 사람들이 들려 간단하게 다모토리나 다름없는 술상을 차려먹고 가는 곳이였다.
초저녁때인데 벌써 꽤많은 사람들이 와서 술상을 벌려놓고있었다.
어씨는 아들과 함께 한쪽 구석자리에 앉았다.
어씨는 아들한테 무얼먹을가 묻지도 않고 음식점 주인한테 음식을 주문했다.
“세치네탕 한그릇. 그리구 북경 얼궈터우 한병주슈.”
어씨는 주문이 끝나자 아들을 건너다보며 히죽 웃었다.
“아버지. 오늘 나를 칭커한다면서 물고기국 한그릇에 술한병임까?”
“왜 그만하면 됐지. 이집 물고기료리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기나 하냐? 이집 주인장은 먼 산해관 넘어 관내에서 물고기료리를 배워왔는데 여기와서 우리 조선족입에 맞는 세치네탕을 곁들여 만들어 팔고있단다.”
“온하루 일하구 그까짓 세치네탕 한사발, 아버지 혼자 마이쇼. 난 가겠슴다.”
아들은 새침해지며 발딱 일어섰다. 그러자 머리에 붙어있던 세멘트반죽 부스러기가 식탁에 우수수 떨어졌다.
“사람이 눈이 높으면 뒤로 넘어진단다. 이런 꼬라지를 해가지구 뭘 산해진미를 바라느냐? 우리한테 세치네탕이면 산해진미지.”
어씨는 손을 뻗어 아들을 도로 식탁에 마주앉혔다. 그리고는 물고기튀김 한접시 곁들여시켰다. 어씨는 히죽이 웃는 아들을 힐끗 흘기며 머리를 저었다.
그러는 사이 세치네탕 한뚝배기에 술한병이 상우에 올라왔다. 곁들여 나무를 쪼개놓은것 같은 짠지가 한접시 오르니 끝이였다. 댕그라니 뚝배기에 담긴 세치네탕과 짠지를 마주하고 어씨는 아들과 마주앉았다. 생각밖으로 세치네탕은 먹음직스러웠다. 누런 기름이 떠있는 뽀얀 국물속에 새까만 미꾸라지 몸뚱이가 보기좋게 들어있었다. 량도 푸짐했다.
어씨는 아들의 술잔에 술을 한잔 부은후 자기잔에도 한잔 듬뿍 부었다. 그리고는 술잔을 들고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어씨의 두눈에는 뜨거운 무엇인가 그들먹하니 차있었다.
어씨는 아들을 건너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처음으로 밖에서 술을 마셔보는구나. 니가 아니였으면 여기로 오지도 않는다. 기실 애비는 세치네탕을 무척 즐긴단다. 오늘 니 덕에 세치네탕을 맛보게 되는구나.”
아들은 묵묵히 아무말 없이 빈 저가락만 빨면서 어씨의 가라앉은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이까짓 세치네탕이 뭐 소나 말값이라도 된다구 먹고싶은것도 먹지 못하구 그럼까?”
아들은 저가락으로 까만 몸뚱이 미꾸라지를 집어 어씨의 쟁반에 담아주었다.

어씨는 술잔을 들어 목안에 털어넣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술은 뜨거운 피인듯 사뭇 따가웠다. 그리고는 아들이 집어주는 미꾸라지를 집어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탐닉했다. 어씨의 얼굴에 웃음이 서서히 번졌다.
“사람은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구 했다.”
어씨도 국물속에서 미꾸라지 한마리를 집어 아들앞에 놓인 접시에 담아주었다.
아들은 어씨가 주는 물고기를 집어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어떠냐. 맛있잖냐? 앞으로 우리 썰썰하면 여기와서 세치네탕으로 생활개선하자꾸나.”
아들은 대답없이 웃기만 했다.
어씨도 아들의 얼굴에 비낀 맑은 웃음을 바라보며 기분좋게 웃었다.

2

어씨는 삯일이 없자 고물시장으로 나갔다. 고물시장은 시가지의 동쪽귀퉁이에 자리잡고있었다. 원래 시가지의 가장 번화한 한복판에 있었는데 개발업체가 그 땅을 사는통에 그만 개밥의 도토리처럼 한쪽 귀퉁이로 밀려나고말았던것이다. 고물상들이 현정부를 찾아가 우리는 고물파는 사람들이지 고물이 아니니 제발 시가지밖으로 밀어내지 말아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도시건설프로젝트는 그들을 삽에 담겨진 언개똥마냥 무자비하게 시가지밖으로 팽개쳐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들은 억울하다고 아프다고 소리조차도 지르지 못한채 숙명같은 고물시장을 하냥 지키고있었다.
고물시장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그리고 값 또한 시내안의 철물상점 물건보다 쌌다. 이것을 노리고 어씨는 고물시장에 발길을 돌린것이였다.
그가 사려는 물건은 바로 자전거였다. 아들한테 한대 사주려고 고물시장을 찾아온것이다.
기실 자전거 한대로 두사람이 타고 다니려니 자연히 힘에 부쳤고 불편했다. 원래는 삼륜차를 사려고 했었지만 가만히 따져보니 차값은 그렇다치더라도 매일 태우는 휘발유값만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게 가슴이 아팠던것이다. 차라리 조금만 힘을 더 쓰면 그만한 돈을 절약할수 있고 그 돈이면 세치네탕 몇번은 더 사먹을수 있을거라는 타산으로 삼륜차를 포기하고 여기 고물시장을 찾아왔던것이다.
고물시장은 한적하기 그지 없었다. 어씨가 시장안에 들어서자 쇠더미뒤에서 거밋거밋한 얼굴들이 나타나 어씨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마치 배고픔에 시달린 강시같았다.
어씨가 좀 괜찮아보이는 자전거곁에 다가가 손잡이를 잡고 이리저리 여겨보자 코구멍에 쇠가루가 검게 묻은 남자가 손을 옷깃에 문지르며 스적스적 다가왔다.
“사려구유?”
“그래유.”
어씨는 관심없는 주인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보고 바퀴를 돌려보았다.
“금방 들어온건데 새것이나 다름없다니까. 사겠다면 80원에 주겠네.”
그소리에 어씨는 웃었다. 자기자신도 왜 웃었는지 모르고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녹쓴 자전거를 80원에 팔다니.”
“이래봐두 비둘기패 자전거유. 이런 자전거 어디가서 찾는다구 그래유?”
어씨가 자전거앞면을 확인해보더니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좋은 자전거라 마음에는 든다마는 좀 깎아주면 이자리에서 가져갈거유.”
어씨가 단호하게 나오자 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그루를 박았다.
“그럼 내가 한발 물러서지유. 75원에 가져가슈. 더는 내리면 나 진짜 화난다니까유.”
어씨는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전거핸들을 잡은 손을 풀었다.
“70원에 주슈. 안그럼 나두 관둘라우.”
주인은 한참 두눈을 슴뻑이더니 또다시 손사래를 쳤다.
“벌이두 안되는 자전거가지구 아웅다웅하기 싶지 않구만유. 그래 70원하시유.”
어씨는 호주머니에서 100원짜리 지페를 꺼내 주인한테 건네고는 자전거핸들을 잡았다. 주인이 넘겨주는 거스름돈을 받자 어씨는 주인의 어깨를 두르려주고는 자전거에 올라타고 고물시장을 나섰다.

자전거는 생각밖으로 새것이나 다름없이 탄탄했고 소리없이 앞으로 굴러갔다.
어씨는 고물시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자전거를 몰고가며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개선하고 돌아오는 장군의 허세에 찬 웃음같았다. 어씨는 속으로 구구를 해보니 자전거를 헐값에 산것 같았다. 새자전거를 사자구 해도3백여원은 넘게 팔아야 할텐데 새것이나 다름없는 자전거를 샀으니 기분이 어지간히 좋은게 아니였다.
어씨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술생각이 났다. 오늘은 집에 가서 마누라와 마라두포를 해달래서 술한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이르자 어씨는 마치 좋은 일을 하고 칭찬을 받고싶어하는 어린아이같이 집안에 대고 소리쳤다.
“자전거 사왔니라. 빨리 나와 구경 좀 해라.”
먼저 얼굴을 내민 사람은 마누라였다. 잘 쪄낸 만두같은 허연 얼굴을 한 어씨 마누라는 자전거를 보자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냥 둘이 자전거 하나 타고다니면 될 일이지 또 돈을 팔았슴두?”
“개떡같은 소리 좀 하지 말라구. 길에서 힘다 빼구 일을 어떻게 하냐구. 70원주구 헐값에 샀는걸. 허허허.”
어씨는 자전거 안장을 손바닥으로 탁탁 쳐대며 자신이 해낸 장거를 뽐냈다.
“다 낡아빠졌구마는 70원이 헐값이라구?”
“그 올빼미눈으로 좀 똑바루 보라구. 이건 비둘기패 자전거야. 명패라구.”
“쌀 한자루 살 돈을 허비해가며 호강을 하려구 비둘긴지 독수린지 개떡같은 자전거 사다니.”
마침 아들이 울안으로 들어왔다. 어씨의 손아귀에 쥐여진 자전거핸들을 잡으며 아들이 생각밖으로 환성을 질렀다.
“내 탈검까? 잘샀네.”
아들이 자전거를 맘에 들어하자 어씨 마누라는 더는 군소리없이 한쪽옆으로 비켜섰다.
“비둘기패란다. 새것이나 마찬가지야. 옛날엔 내노라하는 명패자건거야. 네가 타고다녀라. 난 그냥 저걸 타마.”
어씨는 구석에 처박혀있는 낡은 자전거를 가리켰다. 그 자전거는 마치 고기를 다 뜯어먹고 버린 뼈다귀같이 앙상했다.
“저녁에 마라두포나 볶으라구. 한잔해야겠네.”
“이걸 볶아 안주하쇼. 도살장에서 일하는 친구가 주었슴다.”
어씨가 받아보니 생각밖으로 돼지 염통이였다. 어씨는 입을 다시며 염통이 든 비닐주머니를 마누라한테 던져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해저물어가는데 또 어디감두?”
“아따 시끄럽게. 어디가긴 술뜨러 가지. 제미랄것.”
어씨 마누라는 입을 삐죽거리곤 아들한테 힐끔 눈을 주고는 뒤뚱거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자전거에 올라앉아 페달을 돌려보며 헤식은 웃음을 흘렸다.
“비둘기 자전거 다르긴 다르네.”

3.

“오늘은 좀 바삐 보내야 할가부다. 일량도 많고하니.”
어씨는 자전거페달을 밟으며 옆에서 함께 페달을 밟는 아들을 건너다 보았다.
“부지런히 하면 해와 함께 끝날겝다.”
아들의 힘찬 소리에 어씨는 맘이 한결 든든해졌다. 페달에서 끽끽 소리가 났지만 어씨는 세차게 페달을 밟았다. 바퀴가 마치 어씨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이 신바람난듯 앞으로 굴러갔다.
연장이 들어있는 소가죽가방은 아들의 자전거뒤짐받이에 실렸고 어씨의 뒤짐받이에는 마누라가 싸준 도시락이 실려있었다. 날마다 이렇게 반복해가는 삶이지만 어쩌면 궤도를 따라 돌아가는 해와 달같이 실증이 없이 하냥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은 일과 생각으로 돌아가고있었다.
일감은 항상 어씨의 맘대로 정할수 있는 일이였지만 이제는 아들과 함께 하는 일이라 아들의 적성에도 맞아야 했다. 하지만 어씨는 일감을 가려가며 할 계제가 되지 못한 처지였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신세에 이것저것 태를 칠 처지도 아니였다. 아들도 어씨가 잡은 일감에 대해 아무소리 없었고 어씨의 손을 맞춰 열심히 일을 했다.
오늘 해야 할 삯일은 담장쌓는 일이였다. 담장쌓는 일은 별로 기술이 없이도 하는 일이지만 그만큼 벽돌사이의 틈을 잘 발라주어야 했고 가로세로 생긴 틈을 바르는 일이 시간을 많이 잡아 품이 많이 들었다.
주인은 다 곰삭은 나무토막같은 늙은이였는데 어찌나 잔소리가 많은지 어씨가 일하는 내내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도무지 마음잡고 일할수 없었다. 밸같아서는 뿌리치고 싶었지만 하루를 꾹 참으면 300원은 벌수 있었기에 그저 못들은척하고 수걱수걱 벽돌을 쌓았다. 그런데 벽돌은 모두 어느 집을 허물어 얻어온 파벽돌이여서 벽돌쌓는것이 여간 힘든게 아니였다. 어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 이런 환경은 어떻게 응부해야 하는지를 잘알고있었기에 오늘 하루에 다 끝내기는 힘들것이 뻔했다.
“아들. 아마 래일 또 와야 할가부다.”
“왜?”
벽돌을 나르던 아들이 벽돌먼지가 내려앉은 코등을 쓱 문지르며 어씨를 쳐다보았다.
“이런 벽돌로 담장을 쌓자면 품이 곱짜로 들거든.”
“알았슴다. 그럼 오늘은 벽돌만 쌓고 래일 틈을 메우면 되겠네.”
“아마 래일 오전해를 보내면 끝날것같구나.”
어씨는 아들의 불깃불깃한 얼굴을 바라보며 넌지시 미장칼을 넘겨주었다.
“한번 벽돌 쌓아보련?”
아들은 인차 어씨의 손에서 미장칼을 넘겨쥐고 벽돌을 한장 주어 흙반죽우에 척하니 올려놓았다. 어씨가 곁에서 가르쳐주었다.
“먼저 벽돌의 생김새를 보아야 하고 그다음 가장 합당한 자리에 벽돌을 놓는것인데 최대한 벽돌의 기분을 맞춰주어야 한다. 만약 한장의 벽돌을 잘못 놓으면 온하루 일한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품삯을 한푼도 받을수 없단다.”
아들은 눈썰미가 좋아 어깨넘어로 본 어씨의 솜씨를 그대로 재현하고있었다. 아들의 벽돌쌓는것을 곁에서 보며 어씨는 턱에 난 수염을 기분좋게 어루쓸었다.
생각밖으로 아들의 일솜씨는 서툴지 않았고 오히려 폼을 잡은 그 자태가 자못 숙련공같았다. 어찌보면 30여년 미쟁이를 해온 자기자신보다 더 멋진것 같았다.
어씨는 아들과 번갈아가며 담장을 다 쌓고나니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벽돌을 올려놓고 미장칼을 물통에 넣고 씻고있는데 곰삭은 나무통같은 령감이 나타났다.
“오늘 수고했구먼. 이건 품삯이네.”
“품삯이라뇨? 래일까지 해야 하는데 래일 주십쇼?”
어씨는 령감의 잔소리에 넌덜머리가 나서 아예 말도 걸지 않았는데 생각밖으로 선불금을 내여주자 갑자기 마음이 훈훈해났다. 별 희한한 늙은이네. 어씨는 다시한번 두드리면 소리날것같은 령감의 마른 몸통을 훑어보며 령감이 내민 돈을 받았다. 그런데 돈은 흥정했던 액수의 절반밖에 안되였다.
“령감님. 나머지는 래일 주려구유?”
“아니지. 오늘 한것만큼 준거네. 래일 안와두 되겠네.”
“뭐라구유? 흥정한 값대루 해줘야 하지 않나유?”
어씨의 두눈은 순간 소눈처럼 불거져나왔다. 당금이라도 튀여나와 령감의 앞이마를 때릴것만 같았다.
“이틀일감을 하루했으니 절반만 주는게 맞는 계산이지.”
“이건 사람을 무시하는겝지유. 이제 틈을 메우는 일만 남았는데 절반 품삯만 주면 너무한게 아니시유?”
어씨는 들고있던 미장칼을 들고 령감한테 다가들었다.
령감은 뒤로 물러서며 갑자기 소리질렀다.
“사람잡는다. 사람...”
령감은 뒤로 물러나다가 그만 물통에 넘어지고말았다. 그바람에 물통이 엎어지며 령감은 물을 몸에 뒤집어쓰고말았다.
어씨와 아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정쩡해 서있다가 부랴부랴 령감을 부축해 일으켰다.
“령감님. 괜찮으시유?”
“사람을 잡으려 드는 도적같은 눔. 사람잡는다. 사람...”
령감의 고함소리가 마을을 놀래웠다. 어디서 뛰쳐나왔는지 장정몇이 바지가랭이에 바람을 달고 나타났다.
“이눔들이 날 잡는다.”
령감은 어씨와 아들을 가리키며 악을 썼다.
장정하나가 다가왔다. 마치 두억시니같았다.
“로인한테 망동을 부리다니. 한뉘 등을 땅바닥에 붙이고 하늘만 쳐다보며 살고픈가?”
“망동이라뇨? 난 령감님한테 손대지 않았수. 도리를 따졌을뿐이지.”
“품삯을 주면 받아가지구 곱도록히 돌아갈 일이지 로인을 괄시하면 안되지.”
이때 아들이 나섰다. 어씨는 아들이 나서는건 일을 더 크게 만든다는것을 일고있는지라 아들의 손을 잡았으나 이미 늦었다.
“흥정한 품값을 주지 않으니 도리를 따진건데 우리 잘못입니까?”
아들의 말이 채 끝나기 바쁘게 장정의 손이 번뜻하더니 아들이 저쪽켠에 나가 뒹굴었다.
“아니. 사람을 왜 치는거유?”
어씨가 장정앞으로 나서자 장정의 주먹이 다시 어씨의 면상으로 날아왔다.
“어이쿠.”
어씨는 피를 뿌리며 한쪽으로 나가 너부러졌다. 입안에 겨불내같은 냄새가 물씬 풍겼다.
“당장 여기서 꺼져.”
“좋수. 오늘은 물러가겠지만 이제 두고보우. 내가 쌓은 이 담장에 누군가 꼭 깔려죽을걸유.”
어씨는 자기가 쌓은 담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그는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끌고 귀로에 올랐다.
멀리 뒤에서 곰삭은 나무통같은 령감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아버지말대로 정말 우리가 쌓은 담장이 무너질수 있슴까?”
아들은 어씨의 벌겋게 부은 볼을 힐끔거리며 신비하게 물었다.
“내혼을 불어넣어 쌓은 담장이니 언젠가는 나를 위해 복수할것이다.”
신작로를 달려 시가지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아들은 또 어씨한테 물었다.
“아버지말대로 그렇게 되겠슴까?”
“그건 니 나름대로 생각해라.”
어씨는 어눌해진 아들의 얼굴을 마땅찮게 흘겨보고는 페달에 힘을 주었다. 어씨의 자전거는 아들의 자전거를 뒤로하고 곧추 시가지를 향해 질주했다. 어씨의 뒤로 피비린내가 따라가고있었다.

4.

어씨는 밤새 많은 생각을 했다. 자기가 아들을 데리고 미장쟁이 일을 하는것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웃칸에서 코를 골며 혼곤하게 자고있는 아들의 잠소리를 들으며 어씨는 신중하게 생각을 해봤다. 이러다가 자칫하면 아들의 앞길에 담을 치는거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했고 그래도 잘되면 아들이 자기의 기술을 익혀 더 훌륭한 미쟁이 기술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했으며 이대로 함께 꾸준히 돈을 벌어 아들도 장가보내고 개떡같은 마누라의 고혈압병도 고쳐주면 별 소원이 없을듯도 했다. 그렇게 자정까지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지만 나중에는 되려 종잡을수 없는 오리무중에 빠져 더욱 난감해진채 잠까지 설쳤다.
이튿날은 일감이 없는 날이여서 늦게 기상을 했다. 머리도 빗지 않은 마누라의 탈곡뒤의 짚단같은 얼굴이 누워있는 어씨의 눈앞에 나타나자 어씨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괜히 잠을 설친것이 마누라의 탓인듯 마누라가 꼴보기 싫었다.
“일어나 아침 드슈. 두부국 끓였어유. 돼지고기도 넣구 끓였는데.”
마누라는 마치 처음으로 음식을 해놓고 신랑을 깨우는 새각시처럼 말소리가 들떠있었다. 온밤 코를 골며 달게 자더니 정신이 개운해진것인지 아니면 아침 일찍 두부사러 나갔다가 길가에서 1월짜리 지페 한장이라도 주운것일게라고 생각했다.
부엌에서 수저소리가 달그락거리는것을 들으며 어씨는 아들이 이미 일어났다는것을 알았다.
어씨는 이불을 제치고 몸을 일으켰다. 아래칸 부엌에 눈을 주니 아들이 두부국에 밥을 우겨자르고있었다.
어씨는 금방 마누라가 돼지고기를 두부국에 곁들였다는 말이 생각나 마누라를 올려다보았다.
“돼지고기 샀나?”
“매일 힘든 일을 하는데 고기를 먹어야지 않겠슴두?”
“얼마나 샀는데?”
어씨의 목소리가 격하게 튕겨나왔다. 마치도 마누라가 돼지 통채로 사온것처럼 표정을 썼다.
“다섯근. 왜 그럼두?”
“아따 밑빠진 항아리같은 녀자봤나. 돼지고기 다섯근씩이나 사서 뭐 잔치라두 치를 잡도린가?”
“당신 맨난 일하구 힘빠져 들어오는걸 보니 맘에 켕켜 몸보신 시키려구 샀는데 뭐 잘못했슴두?”
마누라는 되려 눈을 부릅뜨며 턱까지 쳐들고 대들었다.
“누가 맥없댔나? 돈을 그렇게 가랑잎처럼 써버리면 언제 아빠트에서 살겠어? 생각 좀 가지고 살라구. 에참 나원.”
어씨는 이불을 와락 겉고 일어나 겉옷을 뒤집어쓰고 힝하니 밖으로 나갔다.
“저걸보슈. 내 먹고싶어 샀슴두? 왜 나만 죽일년인가 왜.”
어씨는 마누라의 울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왔지만 마음이 내려갈리 만무했다. 괜스레 마누라를 나무람하고나니 저으기 후회스러워졌다. 기실 어씨가 마누라를 탓한것두 잘살기 위한것이고 마누라가 돼지고기 다섯근씩이나 산것 역시 이 집을 위한 일이였다. 하지만 역정이 나는것을 모두다 마누라한테 퍼붓는 자신을 어쩔수 없었다.
어씨가 마누라를 만난것은 어느 가을 비오는 날이였다. 그날 어씨는 자전거를 타고 시교로 삯일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였다. 그날 늦게 삯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무렵이였는데 시가지로 들어오는 길목에 한 녀자가 배를 끌어안은채 쭈크리고앉아 몹시 고통스러워하고있었다. 어씨는 그 녀자를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다보았는데 어씨를 쳐다보는 그 녀자의 눈길이 사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있는듯 했다.
어씨는 자전거에서 내렸다.
“어디 많이 아픈가본데유?”
“아마두 맹장이 터진것같은데...”
겨우 입속으로 신음같이 내뱉은 말에 어씨는 인차 그 녀자를 부축해 자전거에 앉힌후 병원으로 페달을 밟았다. 그 녀자는 다행히 맹장이 터지지 않았고 무사해 수술을 마무리하고 살아났다.
어씨가 알고보니 그 녀자는 가을걷이 삯일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맹장염이 발작했는데 다행히 어씨를 만났던것이다.
이렇게 우연이 인연이 되여 두 사람은 래왕이 잦아졌고 나중에 그만 임신하게 되자 할수 없이 결혼하게 되였던것이다. 그후로 그들둘한테는 그렇다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결혼한 나중에야 어씨는 마누라가 남들보다 좀 모자라다는것을 알았다. 하지만 임신해 아이까지 낳은터라 재수없이 덫을 맞은 노루신세가 되고만것이였다.
어씨는 여러번 밖에 녀자를 두려고 생각했댔으나 량심에 걸려 종시 결단을 내리지 못한채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돼지같은 마누라를 끌어안고 자야만 했다. 어씨는 마누라의 구새통같은 몸을 올라탈 때마다 자신의 팔자를 탓했지만 어쩔수 없이 운명의 조롱을 받아들인채 눈을 감고 순간순간의 갈구를 무마해갔다. 그러한 행위의 리행은 가정을 위한 남편으로서의 의무였고 가장으로서의 철칙이라고 어씨는 간신히 자신을 달랬다. 그러한 신조가 없었다면 어씨는 언녕 어떤 화냥년한테로 달려가버렸을것이다.
어씨는 한참은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뒤가 마려워 공공변소로 향했다. 도시변두리의 아빠트단지들 곁에는 단층주택들이 많아 공공변소가 악취를 풍기며 길옆이나 주택들사이에 끼여있었다.
공공변소는 대개 모양새가 똑같았는데 특점이라면 화장실문이 없고 쭈크리고 앉으면 옆사람하고 대화도 할수 있고 담배도 빌려 피울수 있는 어찌보면 대중적인 공공장소였다. 그속에서 사람들은 별의별 대화를 다 나누는데 처음에는 아침날씨부터 시작해서 언거번거 얘기하다가 나중에는 가을배추값이 얼마 올랐고 감자값이 얼마 내렸으며 겨울나이 석탄값이 배로 껑충 뛰여오른것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정서가 고조되면 지금 아빠트는 개발상들이 돈을 아끼느라 아빠트사이를 가깝게 지어 건너켠 아빠트에서 녀자가 목욕하는것까지 창문넘어로 다 건너다 보인다는둥. 시가지안의 인력거군들한테는 거의 모두가 애인을 두고있다는둥 시시껄렁한 잡담을 늘려놓기도 했다. 이런 풍문들은 진실이든 거짓이든 변소안에서 듣는 사람들은 그 악취가 풍기는 공기속에서도 입을 벌리고 소리내여 킬킬거리군 했다.
어씨는 이때쯤이면 공공변소에 사람이 듬뿍 들어있을거라 여기면서 스적스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변소안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제일 안쪽에 자리가 남아있었다. 어씨는 조심스레 안켠으로 들어가며 곁눈질해보니 모두가 매일 아침마다 이 자리에서 보던 얼굴들이라 머리를 끄덕여 알흔체 했다. 그들 역시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씨는 그들과 변소에서 뒤를 보며 알게 된 지인들이였다.
어씨가 여기서 산지도 인젠 십여년이 되였으니 어씨한테 이 변소는 당연히 단골변소나 마찬가지였다.
어씨가 바지끈을 풀고 주저앉았는데 곁에서 하는 말이 어씨의 귀에 들려왔다.
“엊저녁 우리 뒤집 강동무가 뇌출혈루 죽었다누만. 금방 오십을 넘긴 끼끗한 사람이.”“강동무 이전부터 고혈압으루 많이 앓았었네. 나하구두 맨날 머리가 아프구 흐리터분하다구 했거든. 그러면서두 이상하게 병원에 가는거 못봤네.”
어씨도 강동무라면 알고있는 사람이였다. 어느 국영기업에서 회계로 있다가 기업이 파산되는통에 정리실업당한채 생활보장금을 지급받으며 살고있는 사람이였다. 어씨는 사람이 병앞에서 한마리의 파리나 모기보다도 더 보잘것 없다는 생각을 하며 문득 집에서 풀풀거리고있을 고혈압쟁이 마누라를 떠올렸다. 어씨는 속으로 자기 마누라 역시 몸속에 시한탄을 장착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순간 뜨끔해났다.
어씨는 부랴부랴 뒤수습을 하고 바지를 추슬리며 변소를 나와 집으로 들어갔다.
마누라는 밥을 먹었는지 웃간에 올라가 티비를 켜놓고 들여다보고있었는데 어씨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부엌을 들여다보니 식탁우에 비게가 보이는 두부국이 마지막 김을 말아올리며 어씨의 대령을 기다리고있었다. 아들놈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일이 없을 때면 아들은 두손을 호주머니에 꿰여지르고 장돌뱅이되여 시장을 기웃거렸다.
어씨는 스적스적 식탁으로 다가가 수저를 들고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두부국을 들여다보았지만 식욕이 솟지 않았다. 웃칸에서 들여오는 티비소리에 신경이 가면서 들었던 수저를 도로 놓아버렸다.
어씨는 티비를 보고있는 마누라앞으로 다가가 발끝으로 마누라의 살집이 이죽거리는 엉뎅이를 쿡쿡 찔렀다.
“왜 성가시게 굴가? 아침부터.”
마누라는 어씨의 발을 손으로 쳐대며 한쪽으로 비켜앉았다. 보매 아직도 화가 풀린것 같지 않았다.
“오늘 병원에 가보자구.”
“뚱딴지같이 병원에는 왜?”
마누라는 부석한 얼굴을 들어 어씨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당신 어디 아픈게 아임두?”
“내가 아픈게 아니라 당신 그 고혈압병을 보이자구 그러지.”
“난 또 당신이 어디 아픈가 했지. 내 이 고혈압이사 고질인데 병원에 가봐두 그냥 혈압약이나 챙겨주지 별다른 묘방이 있기나 하겠슴두?”
“그래두 한번 가서 검사해보는게 좋을듯 해서 그러우.”
“아따. 쓸데없이 돈 팔지 맙소.”
마누라는 그대로 몸을 바닥에 던지고는 드러누웠다.
어씨는 한마리의 돼지같은 마누라의 무지큰 몸뚱이를 찔 흘겨보고는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늦은 아침이라 해가 거의 반중천에 떠올라 서늘한 아침공기를 밀어내고있었다. 길옆의 쓰레기더미와 웅뎅이에서 풍기는 악취가 스멀스멀 골목을 채워가고 유령같은 늙은이들과 중풍환자같은 찌그러진 모양새를 한 사람들이 오가고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여기 골목에는 다리끊긴 노루 모이듯 전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부러움이 없이 살고있었다.
골목건너켠은 새로 들어선 아빠트단지였다. 도시건설로 아빠트가 단층주택을 밀어내면서 어씨의 미장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도시에서 시교로 밀려났다. 이제 이 골목도 저같은 아빠트단지들의 차지가 될것이고 어씨는 할수 없이 이사짐을 꿍져가지고 또다시 시가지 변두리로 옮겨가야 했다. 어씨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직껏 해온 이사차수만 해도 10번은 넘을것 같았다. 번마다 새로운 아빠트가 들어선탓에 장마철 개미처럼 세집을 옮기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어씨는 골목을 빠져나와 거리로 접어들었다. 금방 개발이 되는 새로운 구역이라 상가들이 많지 않았다. 가장 필수적인 상가들, 례하면 슈퍼마켓, 리발소, 물류택배, 의약상점같은 일상에 필요한 상가들이 먼저 엉뎅이를 들이밀고 자리를 차지했다. 혹시 가다가 음식점들이 문을 열었는데 대개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농민공들을 대상해 차린 음식점들이라 가격이 저렴했고 차원도 아주 낮았다. 이런 음식점들은 기실 어씨로 말하면 가장 합당한 소비장소여서 부담없이 한끼를 만낏할수 있었던것이다.
어씨는 문을 연 상가들앞을 지나며 기웃거렸다. 무엇인가 정확하게 살것도 없고 하고픈것도 없는데 자꾸 상가안을 기웃거리게 되는 자신에 대해 어쩔수 없는 공제불능이 생겨났다.
어씨가 마침 물고기료리를 하는 음식점을 지나는데 갑자기 향긋한 료리냄새가 코로 확 몰려들어왔고 뒤이어 텅빈 배속에서 개구리가 울듯 꼬르륵거렸다. 동시에 입침이 샘물처럼 솟아 입안에 그들먹하니 차올랐다. 어씨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몇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의 발길은 그대로 멈춰섰고 다시 뒤로 돌아 끝내는 그 물고기료리를 하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24시간 영업상가라 늦은 아침인데도 손님 몇이 상에 마주앉아 맥주를 마시고있었다. 보매 건설공지에서 일하는 농민공들같았다. 아마도 휴식인듯 한가로이 술병을 기울이고있었다. 아주 여유가 흘러 어씨는 부러운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한쪽 빈상에 엉거주춤 앉았다.
어씨는 이 음식점의 주인이 예전에는 농민공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음식점을 차렸는데 경기가 아주 좋아 이미 시가지 번화가에 총점을 두고 여기에 분점을 꾸렸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통에 시가지안에는 여러개의 물고기료리집이 생겨났다. 딱히 뉘집 물고기료리가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물고기료리를 즐기는 어씨한테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단 한끼 즐길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이였던것이다. 전번에 아들과 즐기던 물고기국처럼 말이다.
어씨는 물고기두부볶음 한접시를 시켰다. 두부를 곁들여서 볶은 물고기두부볶음은 값도 싸 어씨한테는 가장 합당한 소비대상이였다.

어씨는 소주 반근을 달래서 유리잔에 넘쳐나게 부었다. 그리고는 그안에 비껴있는 자신의 엉성한 몰골을 들여다보았다. 자기같지 않게 지지리도 구접스럽게 생겨먹은 나그네가 퀭하니 올려다보고있었다. 어씨는 저도모르게 피씩 웃고는 술잔을 들어 뜨거운 술을 목구멍에 쏟아넣었다. 알싸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흘어들어가며 따끔따끔 해났지만 어씨는 캬ㅡ하고 소리내며 입술을 문질렀다. 그리고는 인차 물고기 살점을 한덩이 집어 입에 넣었다. 이왕에 느껴보던 감칠맛이 아니였다.
어씨는 그런대로 수긋하고 술을 들이켜고는 물고기 살점과 두부덩이를 집어 입에 넣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반근술을 굽내고나니 정신이 해롱해롱해졌다. 한쪽에서 떠들어대던 농민공들도 어느새 가버리고 상가안은 고즈넉했다. 주인이 카운터에 턱을 고인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풋풋 웃고있었고 주방칸에서 칼도마우는 소리가 절도있게 들려왔다.
어씨는 마지막 두부덩이를 집어 입에 넣고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돈을 꺼냈다. 지페몇장이 손가락 사이에 잡혀나오고 함께 카드도 묻어나왔다. 어씨가 여겨보니 저금카드였다.
어씨는 카드를 내려다보면서 히죽이 미소하고는 카드를 도로 호주머니에 찔러넣고 몸을 일으켰다.
결산을 끝내고 밖에 나오자 어씨는 금방 꺼내들었던 카드안에 돈이 얼마나 있었던가를 가늠하느라 아빠트사이로 먼 하늘가를 바라보며 두눈을 쪼프렸다.
“올해만 지나면 5만원은 모을수 있을텐데.”
어씨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딱딱한 카드를 손아귀에 꼭 그러쥐였다.
“래일부턴 술도 끊어야지.”


5.

아침부터 아들은 찌뿌둥한 얼굴을 한채 밥도 먹지 않고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심기가 불편한가보다 하고 어씨는 자기생각을 하고있을 때 마누라가 밥보자기를 넣은 도시락가방을 어씨손에 쥐여주었다.
“오늘은 혼자갑소. 저눔이 아마두 하기 싫은가봅구마.”
어씨는 혹시나 아들이 일어나지 않을가 웃칸을 기웃거리며 신을 꿰여지르고는 도시락가방을 연장들이 들어있는 소가죽 가방안에 집어넣었다.
“오늘 집주인이 집세받으러 올거유.”
“압구마. 일이 끝나믄 일찍 돌아와야지 쟤가 오늘 생일인데?”
“그러지.”
어씨는 소가죽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오늘일감은 자전거로 한 십분쯤 거리에 있는 시교에 가서 부엌을 만드는 일이였다. 값은 그만하면 괜찮게 정해져 기분좋게 일할수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하니 웬일인지 자기가 해야할 일을 누군가 하고있었다. 이미 주인하고 협상이 된 일감인데 누가 감히 새치기를 했단 말인가?
어씨가 흐려진 얼굴로 널려있는 벽돌장을 툭툭 차며 주인을 부르자 주인이 달려나왔다.
주인은 어씨를 보자 손에 묻지도 않은 먼지를 괜스레 털며 웃었다.
“아이구, 어쩐다. 내 먼 친적이 내가 힘들게 보내는걸 알구 찾아왔지 뭐유. 허참 미안하게 됐구려.”
“그럼 전화라두 해줘야 내가 헛걸음을 하지 않을게 아니유? 이통에 다른 일감까지두 마다했는데 이렇게 맹랑하게 노는 법이 어디있수?”
“어쩔수 없다지 않수. 조금이라두 돈을 아끼려니 별수가 없구려.”
어씨가 집안을 대충 눈빗질해 들여다보니 한 사나이가 어씨와 주인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는듯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있었다.
어씨는 한눈에 그 사나이가 시가지 동쪽켠인 영국더기에서 살고있는 한족 왕스푸임을 알아보았다. 근본 주인의 친척이 될수 없는 사람이였다.
어씨가 문턱에 버티고 서서 왕스푸의 일하는 거동을 바라보자 왕스푸도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손을 멈추고 머리를 들고 어씨를 쳐다보았다. 어씨임을 알아보자 왕스푸는 손에 들었던 미장칼을 던지고 어씨앞으로 다가왔다.
“로위, 오랜만이네유.”
“자네두 여전하이. 허허허. 보니 신수가 좋아보이는군.”
어씨는 자기앞에 다가선 왕스푸의 나무토막같은 어깨를 툭 쳐주었다.
“허드레잡일을 하는 눔이 신수가 좋으면 얼마나 좋겠슈? 근데 여기는 어쩐일이래유?”
“내가 뭐 놀러다니겠나?”
“글쎄유?”
왕스푸가 주인을 돌아다보니 주인이 머밀거렸다. 왕스푸는 무엇인가 눈치채고 주인한테 다가갔다.
“그럼 내가 로위 일감을 가로챘다는거래유?”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해석했다.
“나두 살자니까 별수 없수. 아무래두 값이 조금이라두 적게 주고 일을 시키는게 나으니까 그렇게 된거유.”
“주인장, 사람은 량심으로 살아야 하는거래유. 우리 이렇게 하찮게 돈을 벌어두 량심만은 저버리지 않는거래유. 우리 미쟁이들 절대 같은 미쟁이 일감을 가로채지 않지유.”
왕스푸는 몸을 돌려 주섬주섬 널려있는 연장들을 주어 가방에 넣었다.
“자네 왜 이러나. 내가 자넬 나무람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그냥 해주게. 난 괜찮네. 이건 자넬 탓할 일도 아니잖나. 허참.”
어씨는 왕스푸의 손에 들린 연장이 들어있는 가방을 도로 빼앗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로위두 나를 알잖슈. 나는 아니라면 아닌거래유.”
“그럼 자네가 이렇게 그만두고 가면 내가 이 일을 할것 같나?”
“그래두 이건 아니지유.”
“그만 입씨름하구 하던걸 제대루 마무리해야지. 우리같은 쌍눔들의 량심은 미장일이 끝나 주인이 웃어주는 그 얼굴에 걸려있다는걸 자네두 알지 않나?”
이때 주인이 어씨와 왕스푸 사이에 끼여들었다.
“이거 안됐수, 내가 야박하게 굴었수다. 그러지 말구 함께 해주면 어떻겠수?”
주인의 말에 왕스푸는 어씨를 쳐다보았다.
어씨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어씨는 미소를 짖고는 왕스푸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었다.
“일이라는건 누가 하나 마찬가질세. 하지만 마음가짐을 바로하지 않으면 허실이 들어나게 되있거든. ”
왕스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유, 로위의 얼굴을 봐서 해줄게유.”
왕스푸는 갑자기 몸을 돌려 연장이 든 가방안에서 미장칼을 꺼냈다. 보니 한번도 다루지 않은 새것이였다.
“로위, 이건 언젠가 내가 로위한테서 빌렸던 미장칼을 돌려드리는거래유.”
“그게 언제 일인데 난 까맣게 잊었네.”
“빌렸던 미장칼은 다 닳아버려 새걸 샀는걸유. 만나면 돌려주려구 여태 가방에 넣구 다녔거든유.”
왕스푸는 미장칼을 기어이 어씨의 연장넣는 가방에 찔러넣었다.
어씨는 연장넣는 가방을 둘러메고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하루의 일감을 떼웠으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왕스푸를 만난 때문도 있겠지만 왕스푸의 여직껏 변하지 않은 인품에 마음이 후더워져서였다. 인심이 개떡같이 변해가는 세월에 자존심과 지조를 지켜 변함없는 왕스푸의 인격이 우러러보이기까지 했다.
“시간나면 하서로 오게나, 우리 세치네탕에 한잔합세.”
“그러지유.”
왕스푸의 배웅을 받으며 어씨는 마을을 빠져나왔다.
한참을 달리다가 어씨는 문득 왕스푸가 준 미장칼을 머리에 떠올리며 실소를 흘렸다. 어씨가 왕스푸한테 미장칼을 빌려준것은 2년전의 일이였다. 어씨의 기억에는 이미 거의 지워져가는 일이였지만 막상 오늘 미장칼을 도로 돌려받으니 어쩐지 마음이 알싸해났다.
그날 어씨는 미장일이 생겨 자전거를 타고 일감이 있는 합성리에 거의 도착할 즈음이였다. 도중에 어씨는 헐레벌떡 자전거를 타고 마주오는 왕스푸를 만났다. 어씨는 왕스푸와 풋면목을 익힌 정도였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한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개념때문에 상대에 대한 동지애를 품고있는 그런 사이였다.
“어디루 이렇게 바삐 가나?”
왕스푸는 자기 머리통을 탁탁 두드렸다.
“머리둔한 눔은 이런 고생밖에 할수 없는걸유. 떠나오면서 미장칼을 두고왔지유.”
“그래 미장칼 가지러 가는중인가?”
“그래유, 제길.”
왕스푸가 자전거를 세우지도 않고 어씨옆을 스쳐지나가려 하자 어씨가 왕스푸를 불러세웠다.
“이제 집까지 갔다오느라면 해가 중천에 뜨겠네. 집 가느라 말고 나한테 여벌이 있으니 그걸 쓰게나. 같은 일을 하는 눔들의 연장이야 뭐 다를게 있겠나?”
“로위 일에 지장을 주면 안되는데유.”
왕스푸는 자전거를 길옆에 세우고 어씨가 건네주는 미장칼을 받아들고 놀이감을 손에 든 아이처럼 웃었다.
“감사해유, 후에 좋은걸 하나 사서 갚아드릴게유.”
“관두게, 그깟게 뭐 얼마나 간다구 그러나 그냥 가져다 쓰라구.”
“감사해유.”
왕스푸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곱씹었다.
그후 어씨는 왕스푸를 보지 못했다. 서로가 살아가기 바쁜 일상에 사달리다나니 누구의 안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것이다.
어씨는 집에 돌아와 왕스푸가 돌려준 미장칼을 꺼내보니 한눈에 돈을 들여 산것이 알렸다. 손잡이와 칼날은 백철로 만들었는데 광택이 번쩍거렸다. 마치 정교하게 만든 소장품같았다. 어씨는 보자기를 찾아 미장칼을잘 감싼후 옷장안에 깊숙히 넣었다.

6.

어씨가 일어나니 언제 일어났는지 아들이 벌써 마당에 나와 자전거바퀴에 펌프질하고있었다. 보니 얼굴에 신심같은 홍조가 비껴있었고 두눈에는 정기가 넘쳐흘렀다.
어씨는 늘 아들과 함께 일하러 다니는것이 마음에 걸려 간혹 용돈도 찔러주군 하지만 하냥 아들한테 죄진 기분을 가무릴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은 한번도 투덜거리지도 심술부리지도 않고 하루세끼 해주는 밥을 먹고 온종일 어씨를 따라 삯일을 하러다니며 아들의 자리를 충실하게 지켜가고있었다. 어씨는 그럴 때마다 아들로 인해 자부와 긍지를 가끔씩 느끼군 했다.
아들도 근간에 많이 셈이 든듯 싶기도 했다. 예전처럼 철딱서니없이 시장돌이도 하지 않았고 점점 주변에 친구들이 보이기도 했으며 어떤 날에는 거울에 마주서서 한참씩 얼굴을 다듬기도 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어씨는 자기가 바라던 바에 즐거워했고 기대에 차있기도 했다.
“오늘은 길이 좀 머니까 바람을 많이 넣어야겠다.”
어씨는 손을 뻗어 자전거다이야를 꾹꾹 쥐여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미장칼 하나 더 챙기쇼.”
“왜?”
어씨는 진지해진 아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함께 미장을 해야 빨리 끝나지. 아버지 혼자서 언제 다 끝내겠슴까?”
“오늘일은 미장할 일이 아니니 미장칼은 필요없다. 날래 들어가 엄마 아침을 거들어라. 오늘 일찍 떠나가자.”
아들은 바람을 다 채운 자전거를 울바자앞에 세워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어씨는 아들의 튼튼하게 여물어가는 몸통을 대견스레 바라보며 변소로 달려갔다.
어씨는 아들과 함께 품삯길에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시가지에서 30여리 상거한 시골이였다. 오늘 어씨는 아들과 함께 그곳에서 하루동안 하수도를 파는 일을 해야 했다.
웬일인지 오늘 아들의 기분은 좋아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내 코노래를 흥얼거렸고 두눈을 쪼프리고 길 량쪽으로 펼쳐진 전야와 멀리 산발을 흔상하고있었다.
어씨도 아들의 눈길을 따라 전야와 멀리 산발을 바라보았다. 자연은 모든것을 감내한듯 말없이 풍요와 인내를 조용히 말하는듯 했다. 멀리 산발과 산발사이로 운무가 피여오르고 아직 떠오르지 않은 동산너머의 해빛이 먼 산꼭대기에 빨간 모자를 씌여주고있었다. 차지만 시원한 공기가 골안에서 흘러나와 어씨와 아들이 가고있는 포장도로에까지 퍼져왔다.
“아침공기를 실컷 마셔라. 이른아침 공기를 마시면 온하루 피곤도 모르고 일할수 있단다.”
아들은 어씨를 건너다 보며 웃었다.
어씨는 아들이 왜 웃는지 알고있었다. 터무니없는 도리를 과학적인듯 외곡하는 어씨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듯한 웃음이였다.
“믿지 않아두 좋아. 이 애빈 여직껏 이런 공기를 마시며 일했기에 힘든줄 몰랐단다. 아마 니눔과 이 애비는 체질이 다른가보다. 허허허.”
어씨는 먼 산을 바라보며 기분좋게 웃었다. 그 웃음은 가슴속 깊은곳에서 우러나오는 오랜만의 웃음이였다.
“아들. 이 애비가 20여년간 이렇게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자전거 다이야를 바꾸었는지 맞춰보아라.”
“50개.”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주어댔다.
어씨는 아들의 건성으로 하는 대답에 실망한듯 탄식같은 소리로 아들을 나무랐다.
“그걸 대답이라구 내뱉냐?”
“그럼 백개?”
아들이 되묻자 어씨는 손을 홱 하고 내저었다. 자기 마음을 조금도 알아봐주지 못하는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거짓으로라도 천개라고 하면 입이 삐뚤어지기라도 할가? 금방까지 시원한 공기를 마셨던 페부에 열기가 올리밀기 시작했다.
“니눔한테 이런것까지 각인시키려는 내가 더 한심하구나. 관두자. 니들 눈엔 이 자전거가 꼴보기 싫을테니까 이후에 애비가 죽으면 이 자전거두 함께 불태워 보내거라.  아마 죽어서두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닐 팔자같구나.”
어씨는 페달을 콱 밟았다. 자전거는 씽하니 앞으로 굴러갔다. 그뒤로 아리숭한 고민에 빠진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라섰다.

일이 시작되였다. 시골의 하수도는 시가지와 달리 단독으로 구뎅이를 파고 거기에 벽돌이나 돌을 쌓고 그 우에 덮개를 덮은후 흙으로 묻었다. 이런 하수도는 대소변이나 오물이 구뎅이에 찼다가 땅속으로 스며들기에 시간이 오래가면 인력으로 가셔내야 했다. 하지만 가셔내는 그 작업이 엄청 역겨웠다. 여러해 쌓여있던 썩을대로 썩은 오물들이 풍기는 가스냄새는 사람을 쓰러뜨릴 정도로 지독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대변소변은 밖에 있는 변소를 리용하고 다만 세수물이라 그릇씻은 구정물따위만 하수도에 버렸다.
오늘의 주인은 80이 넘은 늙은 량주였는데 자식들이 몸이 불편한 로인들이 밤에 바깥출입을 하다가 락망이라도 하면 큰일인것을 대비해 어씨를 불러 하수도를 파기로 결정했던것이다.
어씨는 이집 자식들의 효도에 감격해 하수도를 잘 만들어주리라 결심했다. 어씨는 먼저 자식들의 요구를 귀납해 가장 합당하게 그리고 오래 쓸수 있도록 만드는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어씨는 얼렁뚱땅 만들어놓은후 돈챙기고 가버리는 그런 얼치기 미쟁이들하고는 달랐다. 어씨는 여직껏 일해오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할수도 없었다. 어씨는 이런 생각을 아들한테도 일하는 시시각각 주입시켰다. 아들은 듣는둥 마는둥 했지만 일하는 솜씨에서 어씨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씨는 인간의 도리를 재간을 물려주는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고 실천에 옮기군 했다.
일이 시작되였다. 금방 땅 딱지를 떼기 시작했는데 해가 열기를 뿜기 시작했다. 어씨와 아들은 번갈아가며 곡괭이를 휘두르고 삽으로 퍼내기를 반복했다. 얼마를 파내려가지 못했는데 벌써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였다. 주인집 늙은 량주도 어씨네 부자가 땀흘리는 모양이 안쓰러웠는지 랭수를 담아다 주었고 얼음과자를 랭장고에서 꺼내 어씨에 부자한테 쥐여주었다.
“쉬면서 하라구. 쯔쯔쯔. 이 늙은것들이 여태 살아있어가지구 사람을 고생시키는군.”
“우린 먹구 살기 위해 하는 일이니 응당합지유. 허허허.”
어씨가 아들을 건너다보니 아들은 해빛이 숫구멍을 지져대는데도 말도 없이 모든것을 체념한듯 마치 금방 길들여진 소처럼 부지런히 일에 여념없었다. 
어씨의 마음은 순간 알싸해지며 서글픈 생각과 함께 아들이 가련해보이기까지 했다. 여직껏 키우며 잘 먹이지 못하고 잘 입히지 못해도 그냥 지나쳐왔지만 아들이 자기를 따라다니며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웬지 생각이 점점 달라졌다.
오전해를 거의 넘기자 두메터가량되는 깊숙한 구뎅이가 생겨났다. 마치 순간 생겨난 싱크홀같았다.
아들은 깊숙한 구뎅이를 내려다보며 히죽히 웃었다. 마치 전리품을 흔상하는 병사같이 얼굴에 자호감과 승리감으로 얼룩진 그림자가 잔뜩 비껴있었다.
어씨도 옆에서 같이 웃어주었다. 아마도 이것은 아들이 이 세상에 태여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힘에 의해 만든 성과일거라고 생각했다.
어씨는 미장칼을 아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오늘 벽돌쌓기는 네가 담당해라. 이 애비가 거들어주마.”
어씨는 아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직시했다. 어씨의 믿음어린 눈길에 흔들리던 아들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아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쉼 쉬고나자 또다시 땀으로 반죽된 일이 시작되였다.
생각밖으로 아들의 벽돌쌓는 솜씨는 례상외였다. 서툰 손놀림도 없이 벽돌과 벽돌을 물리는것이 마치 오래동안 해온 장인마냥 흠집이 거의 없었다.
“아들. 어디가서 벽돌을 쌓아봤냐?”
“전번에 담장 쌓을 때 해본게 전부임다.”
아들은 벌씬 웃었다. 자기의 솜씨를 긍정해주는데 대한 대답이였다.
“피를 속이지 못하겠구나.”
아들이한자쯤 쌓아올리자 어씨가 손을 바꿔주며 약간씩 잘못된곳을 지적했다.
일반 담장을 쌓는것보다 원 모양으로 쌓는것이 기술과 경험을 겸비해야 하는 난도가 있는 일이였지만 아들은 거뜬히 쌓았고 오차도 별로 없었다.
어씨는 이것을 운명의 조화라고 여길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먹고 살기 위해 배워낸 재간이였지만 아들은 마치 타고난 재간인듯 어씨앞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을 과시하고있는것이다.
해가 거의 저물어가서야 어씨와 아들의 합작품이 만들어졌다. 아들은 서쪽에 붉게 걸린 저녁 노을띠를 바라보며 이마에 남아있는 마지막 땀방울을 닦았다.
“힘들지?”
“아니 괜찮슴다.”
어씨는 아들의 잔등에 걸친 적삼우로 허옇게 내밴 소금기를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어씨는 주인집 량주가 건네주는 품값을 받아 옆차기에 챙겨넣고는 귀로에 올랐다. 고된 하루일의 뒤를 따르는 고달픔은 옆채기에 두툼하게 찔러넣은 돈때문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들. 오늘 저녁에는 세치네탕을 먹자구나.”
“좋도록 하쇼.”
아들은 가타부타 투정도 없었다. 어씨가 죽을 마시자고 해도 흔쾌히 대답할듯 했다.
“허참. 자식.”
어씨는 색조가 점점 바래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페달을 밟았다.
어씨는 아들과 함께 바래져가는 락조속을 향해 달려갔다.

 7.

며칠후 어느날 아침 시한폭탄은 끝내 터지고야 말았다.
마누라는 끝내 병원으로 실려갔고 단두대같은 수술대에 올라가 생과 사를 넘나들고있었다.
어씨는 머리를 싸쥐고 수술실앞에 쭈크리고 앉아 대기하고있었다. 아들은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돈을 지불하고 다시 입원수속을 마무리했다.
수술실로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드나들었는데 모두의 표정이 마치 웃기라도 하면 환자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는듯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아들이 숨을 죽이고 어씨의 곁에 와 조용히 앉았다. 어씨가 바라보자 아들은 입원수속을 마친 령수증을 어씨한테 건넸다. 어씨는 받지 않고 힐끔 종이장을 들여다본후 얼굴을 돌려 수술실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문이 열리면 어씨와 아들의 운명이 결정되는것이다.
어씨의 앞으로 오고가던 간호사와 의사들이 적어졌고 한참은 고즈넉해졌다. 어씨는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지금 어느때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들이 음료수를 손에 쥐여주어서야 갈증이 나는것을 의식했다.
“7시간 지났슴다.”
어씨는 놀라운 눈매로 아들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어씨는 수술실 문앞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으나 문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씨는  마누라가 담가에 실려 분명히 이 문으로 들어가는것을 자기 눈으로 보았지만 지금 이 시각 도리여 자기가 잘못 보지 않았나 의심이 들었다. 어씨는 혹시 마누라가 집으로 가지나 않았나 헛된 생각까지 했다.
이때 수술실문이 열렸다. 흰보자기를 몸에 감은채 마누라가 담가에 실려 나왔다. 마누라의 코와 입에는 숱한 비닐도관이 꽂혀있었고 주렁주렁 비닐봉지가 담가옆에 세워진 쇠꼬챙이에 달려있었다.
“비키세요.”
간호원의 앙칼진 소리에 어씨는 한쪽으로 물러났다.
마누라를 담은 밀차는 어느새 굽이를 돌아 구급실이라고 쓴 칸으로 사라졌다.
어씨가 어정쩡해 서서 마누라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데 뒤에서 마누라의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았다.
“예. 여기 여깁니다.”
어씨는 급한 나머지 손을 번쩍 들었다.
“환자는 24시간 간호가 필요합니다. 아직 의식불명이구요 생사여부는 이제 관찰해봐야 합니다. 아마 이삼일후에 깨여나면 구사일생이고 안그러면 각오하셔야 할겁니다.”
“그럼 어찌하믄 살수 있나유?”
어씨는 의사의 손을 꽉 잡았다. 의사의 손은 땀에 푹 젖어있었다.
“워낙 뇌출혈이 심해 많은 면적에 피가 퍼진 상태라 회복가능성은 절반이라고 보아집니다. 명이 길면 살수 있을겁니다. 운명에 맡기십시오.”
의사는 어씨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구급실로 들어가버렸다.
어씨는 의사의 허락을 받고 구급실로 들어갔다. 마누라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마누라 침대머리의 현파기 액정판에 마누라의 심장박동수가 파란 선을 그으며 마치 수소가 걸어가며 늘여놓는 오줌자리마냥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흘러가고있었다.
흰천에 감싸여 누워있는 마누라의 몸은 렴습을 마친 시신같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엊저녁까지만 해도 래일 함께 랭면먹으러 가자고 지청구를 대던 녀편네가 이렇게 혼곤히 잠든채 저승문어구에 서있을줄은 어씨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말도 나눌수 없는 마누라앞에 한참을 서있었지만 어씨는 자신이 이 시각 마누라한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저 묵도하듯 마누라손등에 꿰여진 주사바늘을 내려다볼 뿐이였다.
한참후 간호사의 축출에 마누라의 알아볼수 없는 얼굴을 다시 한번 일별하고는 밖으로 쫓겨나왔다.
아들이 복도의 걸상에 앉아 멍하니 맞은켠 벽을 바라보고있었다. 후줄끈해진 아들의 모습은 먹다남은 밀가루포대같았다.
“아마두 후사를 준비해야 할가부다.”
어씨의 말에 묵묵히 앉아던 아들이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씨는 들먹이는 아들의 어깨를 그러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등을 도닥여주며 중얼거렸다.
“니 에미두 불쌍하다. 더럽게 못난 나를 만났으니 저렇게 될수 밖에.”
아들은 말없이 흐느끼기만 했다.
한참후 어씨는 아들한테 나가서 식사하라고 타일렀다.
“어디가서 끼니나 에때워야지. 여긴 내가 지키마.”
“먹고싶지 않슴다.”
“그래두 먹구 힘내야 엄마를 돌볼게 아니냐?”
어씨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뜨거운것이 목구멍으로 올리밀어 말을 더 잇지 못하고말았다. 어씨는 말하다말고 아들의 등을 밀었다.
아들은 입원수속 령수증을 어씨한테 넘겨주고는 구급실쪽을 힐끈거리며 무거운 걸음으로 병원을 나갔다.
아들이 사라지자 어씨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참고 쌓였던 눈물이 골물이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흘러내렸다. 그리고 목이 꺽 메여왔다. 어씨는 꺼이꺼이 울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여겨보았지만 그는 더 세게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마음놓고 울었다.
지나가던 간호원이 어씨의 모양이 볼썽사나왔는지 위생지를 한웅큼 가져다 어씨의 곁에 놓아주었다. 그래서야 어씨는 천천히 마음을 눅잦히고 눈물코물을 훔쳤다.
어씨는 이 모든것이 도대체 누구때문인지 아리숭했다. 자기때문이라고 하자니 너무 비참했고 누어있는 마누라때문이라고 하자니 잔인했으며 아들을 탓하자니 후안무치했다.
어씨는 손에 들려있는 령수증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아래켠에 적혀있는 금액에 눈을 모았다. 거기에는 네자리 큰수자가 적혀있었다. 이 돈은 어씨가 마누라 몰래 저축해둔 돈이였다. 그리고 집도 사고 아들도 장가보내야 할 돈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누라의 목숨을 사야할 돈이 되고말았다. 얼마를 주어야 마누라 목숨을 건져올지 막막할뿐이다. 이제 이런 종이장을 몇장 더 모아야 마누라가 침대에서 일아날수 있을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씨는 걸상에서 일어나 주춤주춤 구급실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부연 유리에는 유령같은 그림자가 언뜻거리고 기기들이 내는 전자파소리가 간간히 들릴뿐이였다.어씨는 구급실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그대로 놓아버리고 몸을 돌렸다. 어씨는 도로 걸상에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는 홀로 중얼거렸다.
“죽지 않을거야, 어찌 쉽사리 죽을수 있단 말인가?”
어씨는 갑자기 어금이를 뿌드득 으깨지게 깨물었다. 원쑤같던 마누라의 존재감이 이렇게 큰지를 미처 몰랐던 자신이 너무 어처구니 없게 느껴졌다.
한참후 아들이 고기속을 넣은 만두를 비닐봉지에 싸들고 왔다. 아들은 인젠 셈이 들어 어씨의 한쪽 어깨가 되여가는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멋을 느끼고있을 때 마누라가 넘어졌으니 어씨로서는 맹랑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넌 먹었냐?”
“네. 식기전에 빨리 드쇼.”
아들은 구급실쪽을 일별하고는 어씨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만두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멍하니 앉아있는 어씨를 툭 건드렸다.
“아버지. 너무 상심마쇼. 이게 다 아버지 팔자가 사나와 그런거니 그대로 받아들이쇼.”
어씨는 아들을 낯선 사람처럼 돌아다보고는 말없이 만두를 꺼내 우적우적 씹어삼켰다.
어씨가 만두 하나를 거의 먹었을가 했을 때 의사가 다가왔다.
“오늘은 간호사가 간호를 책입집니다. 여기에 있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집으로 돌아갔다가 래일 다시 와보십시오. 그리고 래일 치료비 만원을 더 입금시켜야 합니다.”
어씨는 아들을 돌아다보고는 의사한테 한발 다가섰다.
“오늘 5천원 넘게 결산했는걸유. 무슨 돈을 또 만원씩이나 입금시키라는건데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데 만원이 대숩니까? 참 한심합니다. 병원에서 지금 살리려구 전력을 다하는게 보이지 않습니까? 환자가족에서 사람 살릴 성의가 없다면 우리도 포기하겠습니다.”
의사가 랭랭하게 찬기운을 뿜으며 돌아서자 어씨는 다급히 의사의 옷깃을 잡았다.
“아니 잘 몰라서 그래유. 살려야 합지유. 살려야.”
“그럼 래일 수금처에 가서 만원을 입금시키십시오.”
의사는 쌩하니 가버렸다.
어씨는 입안에 남은 만두 찌꺼기를 꿀꺽 삼키며 아들을 돌아다보았다.
아들의 얼굴은 이미 까맣게 죽어있었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돈이 있슴까?”
“가자. 갔다가 래일 다시 오자꾸나.”
어씨는 아들앞에 서서 허청허청 병원현관을 지나 회전문을 빠져나갔다.
밖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 아침이였는데 벌써 저녁이 되다니. 어씨는참 시간이 빨리도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며 곁으로 다가오는 아들의 손을 그러쥐려고 손을 아들한테 뻗었지만 어둠속에서 아들은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버렸다.
어씨는 손을 거둬들여 호주머니에 쑤셔넣고는 저금카드를 꼭 그러쥐였다.

8.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는 분명히 녀자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여기며 어씨는 문을 열었다.  문밖에 서있는 사람을 보는 순간 어씨는 그만 그자리에 주저앉을듯 휘청거렸다. 글쎄 마누라가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빛속에 서서  웃고있었는데 몸에는 환자복이 걸쳐져있었다.
“임자가 어찌된 일이우? 왜 왔수?”
어씨는 마누라가 반갑기보다는 무서워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내가 뭐 귀신임두. 그렇게 무서워함두?”
마누라는 어씨를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짓기 시작했다.
“오늘 일하러 일찌감치 가야하는데 아침밥을 지어야지.”
“임자 아직 환자인데 어떻게 병원에서 나왔수? 빨리 병원으로 가야지.”
어씨는 소리쳐 아들을 깨웠다. 하지만 아들은 깨여날줄을 모르고 잠속에서 허우적거리고있었다.
어씨는 그대로 달려가 마누라를 그러안았다. 생각밖으로 마누라는 아주 가벼웠고 몹시 가늘었다. 어씨는 아마도 병으로 앓다나니 하루사이에 많이 여위였을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머리를 돌려 어씨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마누라가 아니라 생전 보지도 못한 며느리였다.
“아버님 취하셨나요?”
며느리는 존칭어를 간사하게 구사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듯한 말투같았다.
“취한게 아니라 귀신한테 홀렸나보구나. 혹시 세치네탕 끓여봤나?”
어씨가 며느리한테 중떠보듯 묻는데 어디선가 세치네탕 냄새가 풍겨왔다.
어씨가 두리번거리며 세치네탕 냄새가 나는곳을 찾는데 며느리뒤쪽에 마누라가 세치네탕 그릇을 두손에 받쳐들고 서있었다.
“뜨겁습꾸마. 빨리 와서 받아갑소.”
어씨는 며느리를 밀어내며 마누라한테로 뛰여가 김이 문문 나는 세치네탕 그릇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마누라가 세치네탕 그릇을 어씨몸에 던지며 소리쳤다.
“돈 만원을 빨리 내놓으라니까.”
뜨거운 세치네탕 그릇이 그대로 어씨의 몸에 와 떨어졌다.
“으악.”
어씨는 몸을 솟구치며 펄쩍 뛰였다.
... ...
어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을 만져보니 멀쩡했고 자기는 구들에서 잠을 자고있었다. 사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창밖에서 새벽빛이 흘러들뿐 마누라도 생뚱같은 며느리도 아무것도 없었고 웃칸에서 아들의 코고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어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가 꿈을 꾼것을 의식하자 허구픈 웃음을 흘렸다. 망상같은 꿈을 되새기며 어씨는 한참을 그 자리에 그린듯 앉아있었다.
“오늘 만원을 입금시켜야한다고 했지.”
어씨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기신기신 일어나 옷을 꿰여입었다. 대충 눈꼽을 쥐여뜯으며 어씨는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훤히 밝아오기 시작했고 단층집들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무겁게 골목에 가라앉아있었는데 사람들의 그림자가 유령같이 여기저기에서 기여나와 혼탁한 연기속으로 사라져갔다.
어씨도 끌리듯 그 유령같은 그림자들을 따라 골목을 빠져나왔다. 매캐한 석탄연기속을 빠져나오니 높이 솟은 아빠트단지가 앞을 막았다. 여기부터는 록화가 잘되여있었고 길량켠에 화단도 가꿔져 같은 도시 다른 세상을 방불케하는 풍경이였다.

어씨는 길게 탄식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가로수가 우거진 소구역에는 시원한 공기가 가득 운집해 페부를 시원하게 씻어주었다. 아빠트단지를 빠져나오는 내내 어씨는 심호흡을 멈추지 않았다.
어씨가 거리로 나서니 하루의 바쁜 일상을 시작하러 나가는 사람들의 흐름이 시작되였다. 차도에는 차. 인행도에는 사람. 길옆의 가게는 언녕 문을 열고 아침 스낵들을 차려놓고 고래고래 사구려를 불렀다.
바쁜 일상을 시작하는 그속을 걸어가는 어씨는 자신이 한낮 빼놓은 낫자루같아 부끄러워졌다.
어씨는 그들이 차려놓은 음식들을 바라볼 렴치조차도 없다는 자괘심을 지닌채 드바삐 지나쳐 네거리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현금인출기가 가설되여있었다. 돈을 인출해야 했기때문이였다.
어씨는 두번에 걸쳐 돈을 인출해냈다. 두툼한 돈뭉치를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여액을 확인했다. 액정판에 20.000이라는 수자가 나타났다. 어씨는 자기가 시간나면 여기 인출기로 찾아와 천문수자같이 나타나는 저금 금액을 확인하며 즐거워했던것을 생각하며 실소를 던졌다. 자기가 천문수자라고 하던 저금이 몇번의 손가락 조작으로 훌쩍 날아나버리고있는것에 허탈을 느꼈다. 메질에도 깨여지지 않을 바위돌같이 채곡채곡 저축해놓았던 돈이 이렇게 허물어질줄을 어씨로서는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 일이였다. 먹고싶은 술도 세치네탕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며 남한테 맞아터지고 피흘리며 벌어모은 돈이 이렇게 값이 없을 줄을 어씨는 정말 알지 못했다.
“아무쪼록 별일만 없어야 하는건데.”
어씨는 저금카드를 뽑아 손아귀에 꼭 틀어쥐고 현금인출기박스안에서 나왔다.
거리는 각종 소음과 냄새로 점점 혼탁해졌다.
어씨는 길옆의 수많은 먹거리속에서 겨우 두부 한모를 사가지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그사이 일어나 부엌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아마도 엄마없는 자리가 아름차보였을거라고 어씨는 생각하며 손에 들고온 두부를 아들한테 건넸다.
“간단히 먹고 병원에 빨리가자.”
“돈 만원을 내야 하는데...”
아들의 기죽은듯한 소리에 어씨는 아들을 다시한번 쳐다보며 호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 식탁우에 던졌다.
“이 애비가 모아놓았던 돈이다.”
아들은 돈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어씨를 건너다보았는데 어씨는 아들의 눈빛이 순간 밝게 빛나는것을 보았다.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잖냐?”
어씨는 치석이 누렇게 낀 이를 드러내고 소리없는 웃음을 웃었다.
아침을 대수 에때운 어씨는 아들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가 돈을 수금처에 밀어넣고 마누라가 누워있는 구급실로 달려갔다. 구급실에는 벌써 의사들이 여러명 와서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있었다.
의사들의 어깨너머로 마누라를 들여다보니 마누라의 모양은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얼굴의 구멍마다에 어제와 똑같은 비닐도관이 꽂혀있었다.
어씨는 의사들이 주고받는 말소리를 들었다. 마침 의사들이 마누라의 병증상에 대해 말하고있었다.
“혈압이 지금처럼 온정되면 한 이틀 지켜보다가 입원실로 옮기시오. 생각밖으로 호전이 빠를것 같습니다.”
“그래유? 아이구 이런. 정말 감사해유.”
어씨는 앞에 서있는 의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한테 감사해하지 말고 안해분한테 감사해하십시오.”
“그럼 그럼유.”
“오늘부터 여기 있으면서 옆을 지켜야 합니다. 혹시 깨여날지 모르니까요.”
“그러지유. 응당 지켜야합지유.”
의사들은 연신 허리를 굽석이는 어씨의 옆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어씨는 간호사가 알려주는 주의사항들에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예예를 불렀다.
간호사가 나가자 어씨는 마누라앞으로 다가갔다. 마누라는 죽은듯이 고요히 누워있었다. 다만 호흡기와 침대머리에 놓인 기기의 액정판에서 흘러가는 그라프가 아직 마누라가 살아있음을 알려주고있을뿐이였다.
그래도 어씨는 조용히 마누라의 얼굴에 대고 중얼거렸다.
“그만 자구 좀 깨여나보지 그러우?”
아들이 뒤에서 툭툭 건드렸다.
어씨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걸상을 끌어다 침대옆에 놓고 마누라를 마주향해 앉았다. 어씨의 손은 마누라의 손을 꼭 잡고있었다.
아들은 어씨의 하는 양을 뒤에서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씨의 피곤기가 가득 찬 눈에서 피같은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제발 죽지만 말라니까.”
어씨는 혼자소리로 뇌까리며 마누라의 손을 끄당겨 그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마누라의 손바닥에 눈물이 즐펀하게 쏟아졌다.

어씨는 한참을 그렇게 흐느끼다가 얼굴을 들었다. 희뿌연 눈길에 마누라의 처져내린 볼이 눈에 띄였다. 어씨는 눈물을 닦고 다시 마누라의 가난이 꼬질꼬질 묻어있는 주름잡힌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처음 마누라의 얼굴에 손을 대여보았을 때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어씨는 지금도 그때 그 감각을 기억하고있었다. 그 시절 마누라의 볼은 잘 부풀어오른 금방 쪄낸 만두처럼 탱탱했고 한뉘가도 주름이 생길것 같지 않았다. 어씨는 그 만두같은 볼을 얼마나 만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꺼칠한 수염이 난 얼굴로 수없이 비비고 또 비볐었다. 그리고 지금 잡고있는 손도 어씨는 잘 다듬어놓은 옥이라고 비유한적이 있었다. 아주 어색한 비유를 했지만 그때 마누라는 즐겁게 웃었고 그냥 자기손을 옥에 비유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씨는 아들이 생기고 마누라의 살결이 느슨해지자 옥이 아니라 시래기에 비유했고 원쑤취급을 했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마누라를 만난 자신을 죽도록 후회했다. 그런 원쑤같은 마누라가 이렇게 쓰러져있자 어씨는 되려 가슴을 치며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있는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앞에서 모든 인간은 이렇게 너그러워지는것일가? 아니면 마누라가 없이 지내야하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비참해서일가? 어씨는 자신도 무엇때문인지 모른채 몸속에서 발로되는 감정을 그대로 로출시키고있을뿐이였다.
마누라는 오전 내내 점적주를 꽂은채 혼곤히 잠자고있었다. 어씨는 그자리에 앉아 마누라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씨는 만약 자기가 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다시는 마누라의 곁으로 돌아올것 같지 못할것처럼 못박힌듯 앉아있었다.
“아버지 점심하러 가쇼.”
언제 왔는지 아들이 어씨의 뒤에 와 서있었다.
“너나 나가 먹어라. 내가 여기 지키고있을거니까.”
어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저었다.
“아버지. 저한테 미장칼을 주쇼.”
아들의 홍두깨같은 소리에 어씨는 몸을 돌렸다.
아들은 어금이를 지그시 깨문채 어씨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미장칼을 해선 뭐하려구? 설마 너 홀로 돈벌이하겠다는건 아니지?”
“맞슴다.”
“미장일이 애들 장난이 아니다. 그리구 널 내놓구 이 애비가 시름놓을것 같냐?”
어씨는 세괃게 손을 저어 아들의 생각을 묵살해버렸다.
“엄마가 쓰러졌는데 그냥 이러구 있을수 없잼까?”
아들의 고달파보이는 눈확에는 눈물이 그들먹하니 고여 떨고있었다.
어씨는 마누라를 일별하고는 몸을 일으켜 아들의 등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굶어죽을 지경이 아니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어라. 이 애비두 다 생각이 있니라. 이제 엄마병이 호전되면 다시 일을 시작할수 있잖겠니?”
아들은 말없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밥이나 잘 챙겨먹어라. 괜한 걱정말구.”
어씨는 걸어가는 아들의 등뒤에 대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곁에서도 들을수 없을만큼 가늘었다.

9

한달가량의 병원신세를 진 어씨의 마누라는 드디여 퇴원했다. 죽는줄로만 알았던 마누라가 겨우 말을 할수 있고 남의 부축을 받으며 걸을수 있다는것이 어씨로서는 천만다행이였다. 삐뚤어지는 얼굴로 웃으며 어씨를 바라보는 마누라의 눈길에는 수많은 말들이 담겨져있었다.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것 같았지만 눈물이 그렁하니 매달린 눈에는 알지못할 내용들이 그들먹이 차있다는것을 어씨는 잘알고있었다.
“고생...”
퇴원해온날 밤 마누라는 힘없는 손으로 어씨의 손을 잡으며 겨우 외마디를 내밷았다.
어씨는 고개를 끄덕여 응대했다. 그리고는 수건을 적셔다 얼굴을 닦아주었다.
“래일 우리 함께 간만에 목욕하자구. 오래동안 목욕을 못했는데.”
어씨가 시무룩히 웃자 마누라도 입을 귀에 가져다 붙이며 웃었다. 그바람에 입귀로 걸쭉한 침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씨는 망가져버린 마누라를 내려다보며 그래도 처녀를 자기한테 바친 녀자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쩌면 마누라가 없었더라면 자기는 한뉘 외톨이로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튿날 아침 마누라가 갑자기 어씨를 툭툭 건드렸다. 어씨는 불에 덴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누라는 멀쩡하니 놀란 표정의 어씨를 바라보았다.
어씨는 마누라가 앓은후부터 늘 신경을 도사리고있었기에 조금만 다른 기척이나 소리가 나도 쉽게 놀라군 했다.
“왜?”
“돈... 돈 다 쓰고 어찌...”
어씨는 마누라가 돈걱정을 한다는것을 알고 허구프게 웃었다.
“근심말구 죽쳐있기나 하라구. 내가 그래 임자를 굶겨죽일것 같은가?”
어씨는 마누라한테 큰소리를 쳤지만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기실 어씨는 자기가 모아놓았던 저금을 다 털어 마누라 병치료에 써버렸다. 이제 마누라 약값. 집세. 입에 넣어야 할 먹거리를 어떻게 해결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어씨는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호주머니에는 몇백원밖에 남지 않은 저금카드가 들어있었다. 어씨는 무슨 방법을 대야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살아돌아온 마누라까지도 잃을것 같았다.
어씨는 골목을 서성거리다가 문득 왕스푸가 머리에 떠올랐다. 어씨는 드바삐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왕스푸의 전화번호를 찾아 터치했다. 인차 신호가 련결되였다.
“와이. 뉘긴데유?”
귀익은 왕스푸의 둔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로위네. 그간 잘 지냈나?”
어씨는 될수록 말투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다.
“허허허. 그럼유. 그런데 로위. 아침부터 전화를 하는거 보니 무슨 일이라두 생긴건 아닌가유?”
“아닐세. 혹시 일감이라두 없나 해서 그러네. 요새 한달간 몸이 불편해 쉬였더니 일감이 들어오지 않누만.”
“마침 잘됐네유. 어제 일감을 맡았는데 굴뚝을 쌓는 일이래유. 나 혼자 하기 힘에 부쳐 걱정했는데 로위 와서 도와주면 되겠네유.”
어씨는 그래도 왕스푸가 자기고초를 알아봐준다고 기뻐했다.
“알겠네. 그럼 래일 련계해서 함께 가세.”
어씨는 마치 탕개가 풀린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리고는 속으로 뇌까렸다.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 했는데...”
이튿날 어씨는 마누라를 아들한테 맡겼다. 그리고는 왕스푸가 준 새 미장칼을 꺼내 연장가방에 찔러넣었다.
“아버지 힘드면 내 가기쇼. 나두 얼마든지 할수 있는데.”
“관둬라. 굴뚝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나 잘 돌보구 있거라.”
어씨는 퀭하니 자기를 올려다보는 마누라를 내려다보았다. 마누라의 눈에는 근심같은것이 가득 어려있었다.
“밥. 밥 챙기고... 일찌기...”
어씨는 마누라의 말뜻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알았다니까? 점심은 챙겼구 해저물기전에 올거니까 아들말을 잘들으라구. 이제 저녁에 와서 목욕을 시켜줄게.”
어씨가 마누라를 내려다보며 웃자 마누라도 쳐다보며 웃었다. 일그러진 웃음이였으나 한없이 찬연했다.
어씨는 아들한테 저금카드를 건네주었다.
“오늘 집주인이 집세받으러 올거다. 이 카드의 돈을 찾아 집세를 물어야 한다.”
아들은 말없이 카드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어씨는 다시금 어금이를 지그시 깨물며 집을 나섰다. 어씨는 마치 사냥물을 찾아 떠나는 굶주린 승냥이같았다. 어씨는 지금 자신이 한없이 굶주려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피땀을 흘려야 한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결과는 응당 배를 불리는것이였고 래일 아침 무사히 눈을 뜨고 기상하는것이였다.
골목에 나섰던 어씨는 문득 멈춰서서 뭔가 생각하다가 몸을 돌려 도로 집으로 들어갔다. 어씨는 연장가방에서 새 미장칼을 꺼내 아들한테 넘겨주었다.
“이 미장칼을 잘 건사하거라. 이후에 따로 쓸일이 있을거다.”
어씨는 낡은 미장칼을 찾아 연장가방에 쑤셔넣고 다시 집문을 나섰다.
어씨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갑지기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가싶더니 핑하니 돌아가며 어씨는 순간 휘청거렸다. 어씨는 머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좀 지나 다시 눈을 뜨니 괜찮아졌다. 어씨는 아마도 요즘 많이 피곤해그런라고 생각하며 자전거에 올라탔다.
어씨는 곧추 왕스푸가 있는 하동으로 페달을 밟았다. 어씨는 골목을 벗어나 시거리를 질주했다. 기실은 질주가 아니라 아슬아슬 인파를 헤가르고 인력거를 에돌아 덮쳐오는 택시와 승용차의 어깨를 스치며 가까스로 하동의 왕스푸네 집부근에 도착했다.
왕스푸는 오래 기다린듯 담배를 피워문채 길옆에 쭈크리고 앉아있었다.
“늦었네.”
“로위 늦은게 아니라 내가 일찍 나온거래유.”
“갑세.”
둘은 오늘의 일감을 향해 달려갔다. 아니. 일감이 아니라 먹거리를 향해 달려가는 두마리의 굶주린 승냥이같았다. 어씨는 왕스푸 역시 많이 주려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굶주린 흔적이 보이지 않고 되려 얼굴에 기름기가 감돌고있었다. 어씨는 이 세상에 자기보다 더 주려있는 사람이 있을가 다시 되새겨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알찌근해났다. 어씨는 긴 한숨을 내뿜었다.
“로위. 근간에 근심이 많은가봐유? 얼굴색두 않좋구.”
왕스푸는 어씨의 얼굴을 근심스레 훑었다.
“몸이 불편해 그냥며칠 쉬였네.”
“감당하기 어려운 일 있으문 이 동생한테 도움을 청해유. 친구는 서로 도우는거래유.”
어씨는 왕스푸의 말에 그만 뜨거운것을 삼켰다. 어씨는 그래도 좋은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착한 사람은 도움받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하이. 이후 신세 많이 져야겠네그려. 허허허.”
어씨는 오랜만에 소리내여 웃어보았다. 어씨는 웃으며 먼 하늘에 떠가는 구름덩이를 바라보았다. 웬지 오늘 마음이 개운해지면서 말할수 없는 흥감이 서서히 몸속에서 솟아올라왔다.
어씨와 왕스푸는 반시간쯤 달려 오늘의 일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어씨가 보니 이미 굴뚝기초는 마무리된 상태였다. 그래도 굴뚝기초를 해놓았으니 다그치면 오전내로 끝낼수 있을것 같았다.
“어제 와서 먼저 기초를 때려놓았는걸유.”
이왕과 마찬가지로 주인이 와서 이것저것 주의할것들 그리고 요구사항들을 구구절절 늘여놓고는 가버렸다.
“기초를 때렸으니 하루걸릴거 없구먼. 부지런히 다그치면 오전내로 끝내게 될걸세.”
기실 어씨한테 굴뚝쌓기는 식은죽먹기였다. 왕스푸도 어씨의 능력을 알고있기에 도움을 청한거였다. 왕스푸는 그저 담이나 쌓고 부뚜막이나 고치는 정도의 미쟁이일뿐 어씨 재간에는 비하지 못했다. 왕스푸가 어씨를 존경하는 원인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였다.
드디여 굴뚝쌓기가 시작되였다. 어씨가 굴뚝을 쌓고 왕스푸가 벽돌과 세멘트반죽을 날랐다.
오늘 왕스푸 역시 기분이 좋은듯 얼굴에 웃음을 달고있었다.
“로위. 이후 우리 함께 일을 하면 좋을듯 한데 어때유? 그럼 더 큰 공정두 맡아할수 있을텐데유.”
“그럼 여북 좋겠나. 그런데 자네한테 내가 신세 지는것 같아 좀 그렇네.”
“듣기 거북한 말 말아유.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되믄 내가 로위를 스승으루 모실테니까유. 허허허.”
“한턱 내지 않구 스승을 그렇게 쉽게 모실수 있나? 하하하.”
어씨의 우스개에 왕스푸는 가슴을 두드렸다.
“좋지유. 오늘 일끝나믄 내가 한턱 쏠게유. 먹고픈거 잘 생각했다가 일이 끝나믄 말해유. 화끈하게 한잔해야지유.”
“좋네.”
둘은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
손을 맞춰가며 일하니 진척도 빨랐다. 오전해가 거의 되여오자 다섯메터 높이의 굴뚝이 거의 올라갔다. 이제 한메터정도 남은 부분에는 마무리를 하면 되였다.
“로위 내려와 담배쉼이나 해유. 오전내루 끝내믄 될텐데유.”
왕스푸가 소리치자 어씨도 다 끝난 일이라 잠간 쉬였다가 마무리하는것도 좋을듯 싶었다. 숨도 돌릴겸 물도 마실겸 어씨는 미장칼과 망치를 거치대우에 놓고 머리를 수그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어씨는 뭔가 자기를 밀치는듯 몸을 휘청거려지며 사위가 빙 돌아갔다. 어씨는 얼결에 옆에 가로매단 나무 가름대를 쥐였다. 하지만 어씨는 그 나무가름대를 헛짚으며 그만 아래로 꺼꾸로 떨러졌다.
“쿵.”
땅바닥에서 먼지가 풀썩 일었고 땅에 박은 어씨의 머리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왕스푸는 그 정경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어씨의 입에서 피거품이 게질게질 흘러나왔다.
왕스푸는 그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어씨를 안았다.
어씨의 머리에서 그냥 피가 솟아나오고있었다.
왕스푸가 손으로 더듬으니 어씨의 머리밑에 왕스푸가 굴뚝기초를 하느라 깨여놓았던 예리한 돌이 피에 젖어있었다.
“로위. 어이쿠 로위. 정신차려유. 이게 무슨 변이래유? 어이쿠 사람잡았네. 사람잡았어.”
왕스푸는 혼겁한 나머지 넋나간 사람마냥 소리질렀다.
어씨는 간신히 눈을 떴다.
어씨의 눈앞에는 혼겁해 소리지르는 왕스푸가 아니라 아들이 서있었다. 뭐라고 소리치는듯 했지만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어씨가 왜 엄마를 돌보지 않고 왔느냐고 물었지만 아들은 그냥 어씨의 몸을 흔들며 넉두리를 했다. 어씨는 듣기싫어 눈을 감고말았다. 몸이 세차게 흔들렸다. 어딘가 둥둥 떠가는듯 싶었다.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렸다. 어씨는 다시 아들을 찾았다. 아들이 언제 차를 사서 자기가 이렇게 아들차에 앉았을가 생각했다. 몸이 또 들추어졌다. 누군가 어씨의 입을 막았다. 어씨가 뿌리치려해도 막무가내로 어씨의 입을 틀어막았다.무언가 페부로 밀려들어오면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에 얼음과자를 먹고 오한으로 떨어본적이 있었는데 감각이 어쩌면 그때와 똑같았다. 몸이 추워지자 갑자기 마누라의 품이 생각났다. 그래. 오늘 저녁에는 마누라와 목욕을 해야지. 따스한 물에 이 먼지투성이 몸을 깨끗이 씻고 마누라를 안고 자야지.
어씨의 몸이 또다시 둥둥 떠가고있었다. 멀리에서 마누라가 웃고있었고 그 뒤로 아들이 달려왔는데 아들옆에 꿈에서 보았던 며느리가 함께 웃으며 달려오고있었다. 그 뒤에는 어씨가 오매불망 그리던 아빠트가 덩실하게 솟아있었고 아빠트밑에는 번쩍이는 하얀 승용차가 세워져있었다.
“이봅소 빨리 옵소. 새집들이 하지 않겠슴두?”
“아버지 빨리 오쇼. 새차에 앉아 들놀이 가기쇼.”
어씨는 손을 뻗어 마누라와 아들. 그리고 며느리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되려 그들은 점점 멀리 가버리고있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어씨의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아들. 니눔한테 미장칼을 물려주려했었는데...”
어씨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맥없이 손을 떨어뜨렸다.
어씨의 눈에는 인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씨는 자신의 몸이 점점 차가와져가는것을 느끼지 못한채 혼곤히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2017.3.26
룡정에서 탈고

▲ 발 밑에는 해란강 흐르고, 흐르는 해란강을 바라보는 마음의 강에는 끈끈한 사랑이 흐른다. '황성옛터', 민족의 성지 룡정!...그래서 차마 떠날 수가 없다...<편집자>

제2편

[중편소설]     우 물

 

1. 우물이야기
하암동 우물이 먼저 생겨나 상암동 사람들이 물동이에 물을 담아 이고 힘겹게 올리막길을 오를 때 하암동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복한 팔자에 자부심까지 느끼며 으시댔다.하암동 우물은 오래전부터 마을개척자들이 판것이였고 마을사람들은 그 우물을 젖줄기마냥 여기며 신모시듯 했다.
하암동마을의 대장은 강춘산이였고 상암동마을의 대장은 리석산이였다. 둘은 나이도 비슷했고 한마을에서 태여나 자랐으며 함께 두만강물에 몸을 적시며 살아왔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너무나 잘알았고 늘 서로 견주며 물러서려 하지 않는 모름지기 적수로 되였다.
두 마을은 천불지산을 등에 지고 두만강을 마주한채 세월의 비바람에 색이 바래고 다시 색을 올리며 죽음과 삶의 반복을 연출해왔다. 그에 따라 마을의 번창을 이끌어왔고 린근 백여리안에서 제일 큰 마을로 부상했다.
마을이 커지자 상급으로부터 하암동과 상암동을 합촌해 이름을 석암동이라고 지었고 대대주임직을 리석산이한테 넘겨주었다. 리석산은 나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가 대대주임이 되자 이에 앙앙불락한 하암동의 강춘산은 복수를 시작했다. 바로 우물아구리에 틀을 만들어 덮개를 해 달아놓고 자물쇠를 잠가놓았다. 그리고 시간제로 자물쇠를열었으며 우선권은 하암동사람들한테 주었다.
이에 불편을 겪은 상암동사람들은 당연히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서당글을 좀 읽어 세상물정에 밝은 할아버지는 쭉 마을에서 살면서 마을의 일상사에 참여하기를 즐겼으며 유해무해와 상관없이 앞에 나서 판가름을 하군 했다. 인젠 마을의 일임자가 되여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그 아집만은 여전했다.
할아버지는 강춘산의 행실에 분이 치밀었지만  우물이 하암동에 있고 그 우물외에 다른 우물이 없었기에 참을수밖에 없었다.
“상암동에도 우물이 있어야 한다.”
마을이름을 석암동이라 지었지만 마을사람들은 그냥 하암동 상암동이라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상암동사람들이 돈을 모아 우물을 파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우물을 가지고있는 하암동사람들은 돈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암동과 상암동 경계를 만드는것이였고 어디까지 경계를 그어야 민분을 사지 않고 돈을 내게 할수 있는가가 난제로 나섰다.
이번에도 대대주임인 할아버지가 나서서 경계를 그었다. 애매한 경계선에서 하암동과상암동 사람으로 갈리운 사람들은 서로 달리 희비가 엇갈려 누구는 돈을 내고 누구는돈을 내지 않게 되였다. 애매한 경계선에서 생과 사를 가르는 운명의 선을 넘어선 사람들의 운명도 서로 엇갈렸다.
상암동에서는 모금한 돈으로 우물을 파는데 쓸 도구들을 사들였고 우물파는 사람들의일당과 식비로 사용했다.
돈은 마을의 년장자인 할아버지가 관리했고 일군들의 식당도 할아버지네 집에 정해 하루 세끼 책임졌다. 이것은 마을이 생겨서 제일 처음으로 겪는 큰 공정이였고 대사였던만큼 온 마을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도 했다.
우물위치는 상암동에 세워져있는 늙은 느티나무옆에 정했다. 수맥을 찾는 사람을 수소문으로 청해 수맥을 찾게 했다. 그 사람은 상암동 곳곳을 누비다가 말뚝을 여기 느티나무아래에 쿡 박았다.
“여기외다. 세세대대 마셔도 굽이 나지 않을거외다.”
수맥을 찾는 사람은 할아버지가 건네주는 돈을 챙겨가지고 가면서 다시 한마디 더 보탰다.
“생명이 우물에 빠지면 수맥이 끊길수 있으니 절대 우물건사를 게을리 하지 마시외다.”
할아버지와 마을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가는 그 사람을 마치 신신을 바래듯 손저어주었다.
우물파는 공정이 시작되였다. 상암동 남정네들은 서로 앞다투어 우물파기에 나섰지만우물팔 사람은 할아버지가 정했다. 할아버지는 누가 일잘하고 솜씨가 좋고 누가 놀고먹기 즐기는지 잘알고있었다. 우물팔 사람들이 정해지자 할아버지는 날자를 정해놓고 그 날자에 우물을 다 파지 못하면 일당을 깎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마을의 명줄을 찾아내는 일이니 절대 게을리 하지 말기 바라네.”
이튿날부터 늙은 느티나무아래에서 우물파는 곡괭이 소리. 돌을 쫏는 정소리가 분주스레 들여 마을이 한결 생기가 흘렀다. 상암동 아낙네들은 집에서 간참을 만들어 머리꼭두에 이고 와 먼저 제 남정의 입에 인절미같은 음식을 밀어넣어주느라 부산을 떨어댔다.
할아버지는 밤과 낮이 따로없이 일군들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함께 일하면서 이것저것 까근하게 바로잡아주었다.
열흘가까이 지나자 우물이 대여섯자깊이로 내려갔다. 그런데 고갈된 땅인듯 물이 나올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안달아난건 할아버지였다. 그 수맥을 본다는 사람을 청해온게 할아버지였으니 속이 달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우물파던 사람들까지도 맥을 버리자 할아버지한테 동네의 손가락질이 날아왔다.
하암동의 강춘산이 흙무지우에 맥없이 앉아있는 할아버지를 찾아와 비아냥했다.
“리주임. 그렇게 고생하지 말고 그 돈으로 돼지나 잡아 하암동사람들한테 나눠주게. 그럼 우물열쇠를 자네한테 맡기겠네.”
“이제 여기 상암동에 집집마다 우물을 파주어 니들 하암동의 수맥을 끊어놓을거다.”
“패기는 좋구마는 하늘의 뜻은 어길수 없는거네. 보라구 우물밑바닥이 부엌아궁이처럼 바싹 마른게 보이지 않나?”
“그건 니가 상관할바 아니야. 이 석산이가 얼마나 아집이 센지 두고보면 알게 될거다.”
강춘산은 도리머리를 하며 하암동으로 내려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열흘째되는 날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 즉 나의 아버지를 우물속으로 내려보내 련며칠 계속 우물을 파게 했다. 로인의 고집은 끝내 끝을 보았다. 며칠후 할아버지는 온동네 사람들을 우물가로 불러모았다.
“이 우물은 임자네들을 위해 파는것이구 후대들을 위해 마련해놓는거네. 이 늙은게 이 우물에서 나오는 물을 얼마동안 더 마실수 있겠나. 이후라두 우리 이 우물을 마시며 이웃끼리 화목하게 살았으면 좋겠네.”
할아버지는 널판자로 덮어놓은 우물아구리를 열었다.
사람들이 들여다보니 우물안에 맑은 물이 담겨져있었고 푸른 하늘이 비껴있었다.
물을 보자 마을사람들은 환성을 질렀고 춤을 추었다. 상암동은 경사를 치렀고 우물이름을 마을 이름 첫자를 따서 “석정(石井)”이라고 지었다.  할아버지는 목수솜씨가 있는 벙어리네 아들 달수한테 부탁해 우물아구리에 틀을 만들어 올려놓고 덮개까지 해 달아 덮어놓았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석산이라고 지은것은 할아버지의 부친이였다. 그 이름도 옛날 할아버지의 모친이 할아버지를 밴 몸으로 산에 간 령감을 찾아떠났다가 마을뒤 돌산어구에서 그만 할아버지를 낳고말아 할아버지의 부친이 석산이라는 이름을 할아버지한테 달아주었던것이다. 원래 마을의 유일하게 먹물먹은 사람이라 마을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의사대로 우물을 석정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우물곁에 큰 돌을 가져다 석정이라고 새겨놓았다.
우물에 비를 세우자 할아버지는 강춘산을 불렀다.
“어떤가? 상암동의 우물맛을 한번 봐야지. 이제 하암동우물로 이어진 수맥이 여기서 끊길거네.”
강춘산은 할아버지가 드레박으로 길어올린 물을 마시며 얼굴을 붉혔다.
“탄복했네. 그런데 그렇게 맹랑한 소린 하지 말라구. 하암동 우물 수맥을 끊어놓으면 우릴 죽으라는게 아니겠나?”
그날 저녁 할아버지와 강춘산은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 할아버지는 우물을 판 기쁨때문에 취했고 강춘산은 사촌이 밭을 산것같이 배가 아파 취했다.
우물은 그후부터 발길이 끊기지 않았고 사시절 물동이 이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물이 생기니 마을은 생기가 넘쳤고 우물에서 솟아나오는 물은 사람과 가축의공동음료수로 되였으며 활력소로도 되였다. 사람들이 자주 모여들자 우물은 자연스럽게 한담하고 소식을 전하는 장소로 되였고 말하기 즐기는 사람들의 가장 적절한 명소이기도 했다. 마을의 모든 소문은 우물에서부터 시작되였고 그러한 풍문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느새 마을을 배회하다가 마을을 벗어나 멀리 다른 동네에까지 날려가기도 했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뒤짐지고 우물가로 나왔다가 할아버지를 등지고 두 아낙네가 하는 소리를 듣고 곧추 집으로 달려들어가 한참 굿잠에 빠져있는 아들. 다시 말하면 아버지잠자리를 들어올렸다.
“망할놈의 자식. 밖에서 무슨 도깨비짓을 하고 다니는거냐?”
아버지는 잠도 못깬채 속곳바람에 맨봉당에 무릎을 굻고말았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회초리가 들려있었고 턱밑의 갈색수염이 몹시 떨리고있었다.
“도 도깨비짓이 뭠두?”
아버지는 머리를 외로 탈고는 억울한 표정으로 씩씩거리고있었다.
“이눔의 자식이. 집안망신 시키려구 작정한게로구나.”
할아버지의 회초리는 사정없이 아버지의 등을 훑고 지나갔고 그자리에는 빨간 피방울이 맺혔다.
영문을 모르고 할머니가 무작정 달려들어 할아버지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아 던져버렸다.
“아침부터 왜 애를 때리구 그럼두?”
“개짓하구 댕기는(다니는) 저눔한테 물어보라구.”
“그러문 조곤조곤 물어볼 일이지 이렇게 부산스레 떠들문 동네보기 남세스럽지 않슴두?”
할머니는 겨우겨우 할아버지를 밖으로 등을 떠밀어 내보내고 아버지한테 웃옷을 걸쳐주었다. 할머니가 봐도 아버지가 무슨 일을 치긴 친게 분명했다.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아버지가 저리 밸을 쓰냐(성을 내냐)?”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그들먹하니 고여 떨다가 할머니의 물음에 그만 락수물 떨어지듯 바닥에 후두둑 흘러내렸다.
“제가 하암동 연실이하구 좋아하는거 아버지가 풍문에 들은것 같습꾸마.”
할머니는 연실이가 강춘산이네 외동딸이라는것을 알고있었고 아련한 연실이를 늘 눈여겨보아왔었다.
“애들좋아하는데 저 령감태기 왜 헛착고에 맞은 메돼지처럼 펄쩍 뛰며 저러냐?”
그러다가 한참 멍하니 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받쳐들고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이눔아. 간대루 걔 몸을 다친게 아니겠지?”
할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신기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더니 덥썩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연실이 몸을 만지면 애가 생김두?”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할머니는 아버지의 넓은 등을 짝 후려쳤다.
“이 미련한 눔아. 그런것두 몰라가지구 장가가겠다구? 이그이그.”
어느새 할머니의 얼굴에 느슨한 미소가 번져졌다.
할머니는 그 사실을 할아버지한테 얘기했더니 시무룩히 웃으며 “어험.”하고 건가래만 떼고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어험.”하는 의도를 잘알고있었다.
그후 우물가에서 아버지가 하암동 연실이를 좋아한다는 말이 떠돌아도 할아버지는 귀전으로 흘려보냈고 할머니는 남몰래 첫날이불감을 사들였다.

2. 우물안의 개구리
아버지가 연실이 다시 말하면 어머니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하암동 우물가를 지나다가 우물가에 한 녀자가 우물안을 들여다보며뭔가를 하고있었는데 그 통통한 뒤태가 눈에 잡혀 슬금슬금 다가가보니 어머니였다. 뭐하고있나 물었더니 머리빗다가 얼레빗을 우물안에 빠뜨렸다는것이였다. 어머니는 드레박을 우물안에 깊이 던져넣고 얼레빗을 건지려고 허우적거렸다.
“비켜라.”
아버지는 어머니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어머니손에서 드레박끈을 넘겨받아쥐고 한참을역사를 부리더니 얼레빗을 건져올렸다.
“머리빗는 일은 녀자들이 할짓이지만 이런걸 건져올리는 일은 남자들 할일이거든. 이후 나와 만날래?”
아버지의 풍류가 다분한 말에 어머니는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하지만 그후 아버지는 끝내 어머니의 손을 잡았고 달이 빼곰히 얼굴을 내미는 달밤에 맞추어 어머니의 입을탐닉하고말았다. 그런데 그것이 그만 동네 말나르기 즐기는 아낙네한테 보여주어 할아버지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였던것이다. 어찌보면 할아버지가 알아버린게 아버지한테는 어머니와 내놓고 함께 있을수 있는 가장 다행스런 일인것 같았다. 그후 아버지는 보란듯이 어머니네 집에 드나들었고 남들앞에서 꺼리낌없이 어머니의 손을 잡기도했다.
어머니는 성정이 외할머니를 많이 닮은듯 했다. 아버지 강춘산 즉 외할아버지에 비해외할머니는 온순했고 한뉘 누구하고 큰소리 쳐보지 못한 조용한 녀자였다. 어머니도 외할머니의 마음씨를 이어받아 인정이 넘쳤고 인사성도 밝았으며 늘 단아한 모양새를갖추고 다녔고 일도 걸싸게 해 아들가진 마을사람들이 은근히 탐하는 며느리감이였다.아버지가 어머니와 눈이 맞아 돌아나는것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것은 면목과 기반을 중히 여기는 할아버지로서 외할아버지가 늘 자기와 엇서는것이 썩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았기때문이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로서도 따로 생각이 있었다. 속에 앙금같은 외할아버지가 자리잡고있었지만 또 한면으로는 그와 사돈이 되면 마을에서 자기와 맞설 사람이 없어지는것이여서 마치 비로 불을 끄는것과 같이 꿩먹고 알먹기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태여날 때부터 몸상태가 허약해 늘 휘청거리는 아버지의 미래에 대한 위구심때문도 있었고 더우기는 그 상대가 연실이라는 처녀였기때문이였다. 그것은 어찌보면 아버지한테는 참으로 행운스러운 일이였다. 할아버지는 자존심이강한 사람이라 마을사람들이 탐내하는 며느리감이 아버지손에 들어온것이 자신의 자존심을 세워준것이라고 여기였고 사람들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것을 자신은 가질수 있음을 대시하는것이기도 했다.
“리주임은 운수좋게 마을의 일등 며느리감을 얻었구려.”
“그게 당연지사가 아닌가? 그리구 나밖에 뉘네집에서 그런 며느리감을 얻을 자격이 되나?”
할아버지의 말에 사람들은 뒤에서 늙은 황소같은 령감태기라고 입을 삐죽거렸지만 할아버지는 길일을 택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결혼시켰다. 한쪽으로는 외할아버지와 사돈이 되기 꺼려했지만 어머니를 다른집 며느리로 주고 싶지 않았던것이다.
할아버지는 통이 크게 돼지잡고 닭잡아 놓고 술도 한아름되는 항아리로 두 항아리나 받아 하암동 상암동 할것없이 다 청해 잔치를 이틀동안 치렀다. 석암동사람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할아버지의 배심을 긍정해주었고 그 배심에 따라주는수밖에 어쩔 도리가없었다.  
웬일인지 외할아버지도 가타부타 말없이 할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혼사를 동의했고 아버지도 흔쾌히 어머니와 동방화촉을 밝혔으며 어머니의 옷고름을 풀어헤쳤다. 어머니는 이렇게 명실공히 아버지의 안해가 되였고 할아버지의 며느리가 되였으며 후날 나를 낳고 어머니가 되였다.
어머니는 얌전한 성정을 가지고있었지만 데면데면한데가 많은 녀자였고 무슨 일이나 깐지게 해나가는 깔끔한 녀자는 아니였다. 시집온지 얼마후 어머니의 그 데면데면함이 할아버지의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할아버지가 슝늉만 마신다는걸 아버지가 여러번 귀뜸해주었는데도 번마다 랭수를 올렸고 어떤 날엔 된장덩어리가 할아버지의 국그릇에 고기덩이처럼 잠겨있었다.
“고기가 없으니 며느리가 된장덩어리로 고기를 대신했구나. 참 생각 잘했다.”
그리고는 그 된장덩어리를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삼켰다.
아버지가 아연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내려다보니 어머니는 그저 살포시 웃고만 있었다.마치 재미로일을 저지른듯 태연한 표정이였다.
저녁에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어머니의 대답은 더욱희한했다.
“어마이가 장국에 진짜로 고기덩이 넣은줄 알았다니까유.”
그후부터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한심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별명에 맞게 늘 한심한 일만 저지르군해 할아버지는 물론 동네사람들까지 당혹하게 만들었다.
내가 태여나 돐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이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응당 있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였고 더우기는 석암동마을에서 생기지 말았어야 되는 일이였다.
드디여 비운의 시작이 어스름한 새벽안개를 몰고 스멀스멀 석암동마을도 밀려들어왔다.
그날 어머니는 아침밥을 지으려고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왠일인지 나도 어머니와 함께 깨여나 칭얼거리며 울었다. 할머니가 안으려해도 어머니 가슴에 딱 들어붙어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할수 없이 어머니는 나를 대충 띠로 동여업고 우물로 나갔다. 이른 아침이라 우물가에는 사람이 없이 어머니 혼자였다.  어머니는 드레박을 우물안에 드리우고 낮은 우물아구리 틀에 몸을 쭈크리고 허리를 굽혀 우물을 퍼올렸다.  그런데 어머니등에 업혀있던 내가 그만 어머니 잔등우로 빠져나와 그만 우물속으로 철렁 빠져버렸다.  어머니는 무슨 돌덩이가 우물에 빠져들어가는가 착각했다가 자신의 등이 후줄근해지자 내가 우물속으로 빠져든것을 알아차렸다.
“애가 우물에 빠졌어유. 사람 살려유.”
마침 물길러 나온 한 마을의 로총각인 달수가 들고있던 물통을 팽개치고 우물속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사이 목이 터지게 소리질렀다.
“우리 장수가 우물에 빠졌어유.  사람 살려유. 어이쿠 이를 어쩌나.”
어머니는 우물안을 들여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따 좀 조용하우. 발을 헛디디문 나두 빠져죽는다니까.”
달수의 신경질적인 소리가 우물속에서 마치 도깨비소리처럼 울려나왔다.
어머니의 얼굴은 이미 흙빛이 되였고 혼나간 사람마냥 후둘후둘 떨고있었다.
어머니의 고함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우물가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좁은 우물안으로 더는 들어갈수 없어 다만 달수한테 모든 기탁을 할수밖에 없었다.
한참후 달수가 나를 우물에서 건져 겨드랑이에 끼고 간신히 올라왔다. 
나는 우물가 석판우에 뉘여졌고  무식한 시골사람들한테 인중이 눌리우고 엎디여 등을 두들기웠으며 나중에 꺼꾸로 들리워 물을 토하게 했다.  한참후 나는 저승문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서서히 이승으로 돌아왔다.  나는 캑하고 기침을 하고는 물을 왈칵왈칵 토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고 어머니는 그자리에서 기절하고말았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는 “어험!”하는것으로 욕을 대신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따로 잠자리를 하는것으로 보복을 했다.  나는 그날밤 할머니의 주글주글한 젖꼭지를 입에물고 잠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구해 끊어질번한 대를 이어준 달수한테 닭한마리를 가져다주었다.
“자네가 우리 리씨가문을 구했네. 후에 좋은 처녀 나지문 소개시켜주지.”
달수는 아버지와 동갑내기 소굽친구였다. 그의 부모는 모두 벙어리였고 나이가 들어 달수를 낳았는데 가정상황이 그렇다보니 달수는 장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었다. 하지만  목수일. 미장일에 솜씨가 있어 촌에서 유일한 기술일군이였다. 사람이 부지런하고 신체가 좋아 늘 마을사람들의 일을 거들어주고 촌의 일에 팔걷고 나서군 했다. 아마 달수가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여서 아침 일찍 우물가로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을것이였다.
외할아버지도 달수를 집으로 청해 나를 구해준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외할아버지는 원래 달수를 사위감으로 늘 보아왔었다. 그러나 그집 사정이 딱해 마을에 걸렸다. 달수의 손재간을 늘 칭찬해왔지만 입밖으로 사위감이라고 번지지 않았다. 기실 외할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해 썩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비해 너무 무골충이였고 패기가 없이 늘 녀자들 꽁무니나 따라 다니는 뼈가 없는 녀석으로 보아왔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위상이 한몫을 했고 그 덕분에 외할아버지의 대답을 얻을수 있었던것이다. 외할아버지는 가끔 가다가 달수만 보면 마음이 알싸해져 달수의 어깨를 두드려주군 했다.
그후 나는 다시는 우물가로 가지 못했다. 그 우물아구리가 마치도 나를 노리는 악마의 입인듯 할아버지를 비롯한 온집식구들은 나를 우물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3. 아귀(饿鬼)의 력방처(历访处)
내가 우물에 빠진후 석암동사람들은 우물을 꺼려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우물을 메워버리려 했고 어떤 사람들은 다시 우물을 파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수맥이 여기 우물밖에 흐르지 않는다고 하니 상암동에서 다른 우물을 판다는것은 별을 따온다는 말과 다를바 없었다.
나중에 의견을 모아 우물을 가시기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우물을 가셔내여 샘물이우물을 가득 채워도 우물을 긷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슬그머니 새벽에 일어나 아래마을 하암동우물을 길어오군 했다.  얼마간의 시간동안은 우물을길어가는것이 허용되였으나 나중에 하암동사람들의 식수가 점점 모자라자 하암동사람들은 우물에 다시 자물쇠를 잠가놓았다.
어느날인가 상암동사람 하나가 가만히 하암동우물에 잠근 자물쇠를 마스고 우물을 긷다가 외할아버지한테 들켜 혼쭐나게 얻어터졌다. 그리고 자물쇠까지 배상했다.
사람들은 점차 나를 우물에 빠뜨린 어머니를 원망했다. 
할아버지는 민심을 바로잡기 위해 시가지로 달려가 수토연구에 학식있는 교수를 청해우물에 대한 화험을 의뢰했다.  경비는 당연히 할아버지의 옆차기의 돈주머니의 돈으로 해결했다. 결과 우물은 깨끗한것으로 검증이 났고 할아버지는 우물의 우월점들을 잔뜩 적어넣은 패말을 만들어 우물곁에 세워놓았다. 
상암동사람들은 다시 좋은 성분이 많이 함유된 석정의 물을 마시기 시작했고 크게 번질번한 풍파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어느 봄날 일밭에 나갔다가 돌아온 아버지가 피곤하다고 드러누웠다. 그렇게 드러누운것이 그대로 병원에 들려갔다. 결과 아버지는 간암으로 진단받았다. 새까맣게 병이 든 아버지의 얼굴은 마치 저승자사의 상통같았다.  할아버지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망할눔의 새끼. 까짓 삼십년두 살지 못할거면 태여나지나 말지. 무심한것.”
아버지의 황달이 노랗게 든 두눈은 늘 할아버지의 몸을 따라 움직였다. 그 눈길에는할아버지가 뭔가 신통한 방법을 내놓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신이 아닌 이상 더는 아버지의 명줄을 이어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봄과 여름이 만나는 초여름의 어느날 그만 절명하고말았다. 할아버지는 아버지한테 명당자리를 찾아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내가 두살되던해에 과부로 되였다. 어머니는 과부가 된후 나를 업고얼마간 외가집으로 가서 지냈다. 그렇게 마음이 좀 안착이 되자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다시 할아버지집으로 돌려보냈다.
“죽어두 리씨집에서 죽어라.”
남편없는 시집살이였으나 별로 개의치 않고 시부모공대를 잘했다. 할아버지도 며느리가 아들의 빈자리를 착실하게 메워주고있어 속으로 못내 흡족해했다.
어머니는 데면데면했지만 일손이 재였고 걸쌌으며 욕심이 많았다. 많은 일을 어머니손으로 해제꼈으며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 근심을 끼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그런 며느리를 할아버지는 늘 대견스레 여겼고 더구나 내가 무탈하게 자라고있어 참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세상 뜬후 그해 상암동에서는 상사가 두번 더 생겼는데 하나는 할아버지 친구의 상사였고 하나는 아버지 또래의 젊은이였다. 원래 빈약했고 우량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것도 원인이지만 한해사이에 셋이나 죽는다는것은 어딘가 섬찍한 느낌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했다. 쭉 칠팔년동안 상사가 뭔지 모르고 지내오던 상암동에 한해사이 셋이나 절명하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우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무래도 그 우물에서 액운이 나오는거라고 여겼다.
“리주임. 저 우물을 메워버리자구. 아무래도 화근이 저 우물에 있는것 같네.”
사람들말에 할아버지는 갈퀴같은 손을 도리깨 휘두르듯 내저었다.
“천덕꾸러기같은 사람들아. 사람이 마시는 우물을 놓구 무슨 귀신재채기같은 소리하구 자빠져있나. 그 우물이 우리의 명줄인데 어찌 사람잡는 소리하구 있는거여. 그들이죽은건 팔자소관이구 명이 다 한거란 말이여.”
“령감의 손자두 그 우물때문에 죽다 살았는데 우물때문이 아니라니. 그 우물이 사달이라니까.”
사람들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감히 우물을 메우지 못하고 그냥 그 우물을 길어다 사람도 가축도 함께 마셨다.
어느날 어머니가 할아버지한테 청을 들었다.
“아버님. 한가지 청들려구 하는데 될수 있겠슴두?”
여직껏 대놓고 할아버지와 상의같은것을 해보지 못한 어머니인지라 할아버지는 신기한 눈으로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뭔 일이냐?”
“제 생각엔 우물에 정자를 세워 우물이 비를 피하게 하면 좋을듯 합꾸마.”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에 갑자기 얼굴이 밝아지며 손벽을 쳤다.
“애기네 어디서 그렇게 어물쩍한 생각을 했다니? 네가 나를 살렸구나.”
할아버지는 즉시 동네사람들을 모여놓고 우물에 정자를 세워 비를 막으면 우물이 훨씬 깨끗해지고 액운도 막을수 있다고 역설했다.
“내가 생각이 짧아 여러분들한테 심려를 끼쳤네. 정자를 세울 목재는 나한테 있으니 내가 내놓겠네.”
밎져본전이라고 상암동사람들은 할아버지의 건의를 받아들이고 함께 팔을 걷고 나서 정자를 세웠다.
목수일은 당연히 달수가 맡았다. 달수는 솜씨를 내여 옛모양을 본따 대들보도 튼실하게 가로 지르고 추녀도 높이고 추녀끝에 풍경도 매달았다. 그리고 정자이마빼기에  석정이라고 새긴 소나무패쪽을 걸었다. 달수덕에 마을에는 고풍스런 명소가 새로이 하나 생겨났다. 정자가 세워지자 사람들은 더는 우물에 대해 발설하지 않았고 그래도할아버지가 있어야 마을의 난제를 풀어나갈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한테 어리궂은 표정을 하며 넌지시 웃었다.
“이후에두 좋은 생각이랑 있으문 넣어두지 말구 나한테 일러다구.”
그후부터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참 총명한 녀자임을 알고 늘  별일 아닌것도 상의조로이것저것 묻기도 했고 어떤 때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기실 아녀자들이 일에 참여하는것을 많이 꺼려하던 할아버지였지만 어머니의 의견만은 결사적으로 받아들였다.
그해 겨울 사원대회에서 어머니는 촌 부녀주임으로 발탁되여 마을의 부녀사업을 책임졌다. 그러다나니 한 집안에 촌간부가 두사람이나 있어 명실공히 간부집안이 되였다.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사람들앞에 나서는것이 탐탁치 않았지만 마을사람들이 선거한것이라 어쩔수 없이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부녀주임이 되자 일이 많아졌다. 아직 젖을 찾아 탐닉하는 나를 돌봐야 하고 부모공대도 해야 했으며 마을의 부녀사업도 소홀히 할수 없어 늘 뛰여다녀야 했다.
어머니가 부녀주임으로 마을의 여러가지 일에 참여하자 할아버지는 어느날 대대주임자리를 내놓았다. 마을사람들의 만류에도 할아버지는 머리를 외로 탈며 손을 젖는것으로 대대주임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날저녁 어머니는 암탉 한마리를 잡고 술을 받아 저녁상을 차렸다. 그리고는 술을 한잔 부어 할아버지한테 올렸다.
“아버님. 무람된 저를 많이 원망합소. 제가 부녀주임이 되지 않았더라면 아버님이 대대주임자리를 내놓지 않는다는것을 알고있습꾸마.”
“그런 말 하지 마라. 애기네가 잘할수 있다는것을 마을사람들이 봐낸거지. 나두 인젠 이눔의 장수녀석이나 데리구 즐겨야겠어. 허허.”
웃고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뒤틀렸고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거칠은 손은 사뭇 떨렸다.
그후 할아버지의 모습은 늘 우물의 정자밑에 보였고 그 옆에는 내가 함께 하고있었다.
날씨가 추워지자 할아버지는 집안에 은둔해 애꿎은 담배만 축냈고 혹시 마을로인들과수천놀이 아니면 화투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그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어느날 어머니가 물길러 우물가로 나갔다가 혼비백산해 집으로 달려들어와 할아버지를 불렀다.
“아버님. 우물 정자밑에 사람이 얼어죽었습꾸마.”
할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우물가로 달려가보니 정자기둥에 한 사람이 웅크리고 누워있었는데 이미 꽁꽁 얼어있었다.
“정자가 귀신을 불러들였군.”
몰려온 사람들속에서 누군가 깨방정을 떨었다.
“귀신은 무슨눔의 귀신. 길가던 거지가 눈을 피해 정자에 들었다가 얼어죽은거유.”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상사일을 맡아하는 전령감을 데려다 혼을 부르게 하고 시체를 마을뒤산에 가져다 묻어버렸다.
그런데 며칠후 전령감네 로친네가 물길러 나왔다가 미끌어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얼음판에 쫏아 뇌진탕으로 드러누웠다.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이 우물이 심상치 않다고 여기면서도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할지 오리무중에 빠져버렸다.

4. 과부집 문턱
할아버지가 대대주임을 그만두자 새로 대대주임을 선거해야 했다. 그러나 막상 대대주임후선인을 뽑자니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도 마을의 젊은이들을 아래우로훑어보아도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날 외할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사돈. 내 생각에는 달수가 대대주임일을 해낼것 같은데 사돈 생각은 어떤가?”
“맘이 여려 힘들걸.”
“마을에서 인심이 두터운 사람은 달수밖에 없지 않는가? 내 생각으로는 달수가 적임자네.”
외할아버지는 사위로 만들지 못한 달수를 대대주임으로 만들어보려는 욕심에서 극구 달수를 내세웠다.
“우리 마음이 여하하든 마을사람들의 맘에 들어야 할게 아니겠나?”
그해 가을 마을에서 대대주임선거가 있었다. 후선인이 셋이나 나졌지만 나중에 외할아버지의 적극적인 추천과 선동하에 달수가 대대주임으로 당선되였다.
달수는 대대주임이 되자 제일 먼저 외할아버지한테 찾아와 우물에 잠근 자물쇠를 열자고 제의했다. 마을을 잘 이끌어 나가려면 단합하고 한마음이 되여야지 이것저것 옴니암니 캐면 큰 일을 할수 없다고 외할아버지앞에서 력설했다. 외할아버지도 달수의 말에 도리가 있다고 여기고 하암동우물에 잠근 자물쇠를 열어주었다.
이듬해 봄 달수는 하암동우물에도 상암동우물의 정자와 똑같은 정자를 세워주었다
외할아버지는 속으로 달수를 대대주임으로 점찍은 자신의 소견에 저으기 흡족해했으며 슬그머니 어머니와 달수를 마주세워놓고 가늠해보았다.
“이보게나. 우리 연실이를 달수한테 재가보내문 어떨가?”
외할아버지의 말에 외할머니는 덴겁을 했다.
“무슨 그런 당치두 않는 소릴함두. 동네망신시키자구 그램두?”
“그래 연실이를 그냥 과부로 두겠수. 나두 그년이 불쌍해 그러지. 아직 파랗게 어린년이 남편없이 오죽하겠수?”
“나두 달수를 보믄 그럴 생각이 있지만서두 그집 사정을 보구 좀 그런 소리합소. 그집 량주가 벙어리인 집에 들어가 고생시킬 생각임두? 그리구 장수할애비 들으문 난시날겝꾸마. 사돈앞에서 그런 말 꺼내지두 맙소.”
“달수는 총각이구 연실이한테는 애까지 달렸는데 볼게 뭘 있다구 그래. 난 넘 좋구먼. 허참.”
“사돈이 되여 좀 조용히 지낼가 하니 어째 몸이 근질거림두? 좀 마음놓구 살깁소.”
외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눈에는 애절함을 듬뿍 지닌 간절한 빛이 흘렀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달수를 집에 불러들여 함께 술을 나누었이다. 
어머니가 혹시 일있어 하암동으로 외할아버지 집에 가면 달수가 와있었고 함께 한밥상에서 수저를 들기도 했다. 어머니는 달수가 아버지친구이고 또한 대대주임이라 함께 있을 때가 종종 있어 한밥상에서 수저를 함께 드는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머니 또한 달수를 존중해주었다. 달수가 대대주임이고 아버지 친구라는 이미지보다도 그의 부지런함과 손재주가 맘에 끌려서였다. 달수에 비하면 아버지는 너무나 하찮은 존재였고 늘 술담배와 놀음에 탐해 거의 할아버지 등을 쳐먹은거나 다름이 없었다.하도 아버지가 독남으로 태여나 어쩔수 없는 상황이였으니 망정이지 할아버지 성칼에언녕 내쫓았을지 모른다.
달수가 대대주임으로 당선되자 부녀주임인 어머니도 바삐 돌아쳤고 늘 늦게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다나니 시걱은 당연히 할머니 몫이였다. 허리가 남달리 유표하게 기윽자모양으로 땅을 핥을듯이 구부러진 할머니가 부엌에서 때시걱준비를 할 때면 그 모습이 남세스러울 지경이였다. 할아버지의 말을 빈다면 다른집 녀편네들처럼 애나 많이 낳구 저러면 측은하기라두 하지. 밑구녕이 막혔는지 더도 말고 딱 하나만 내 싸가지고  저 모양이니 팔자가 더러워두 그냥 더러운게 아니라는것이였다.
어머니는 대신 아침 일찍 일어나 우물에 나가 물을 길어다 이침밥을 지었고 가축먹이를 만들었으며 나의 더러워진 옷들과 할아버지 옷견지들을 담다들고 우물에 가서 빨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우물에 빠졌다난후부터는 일절 나를 우물가로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더구나 어머니가 나를 업는것을 제일 꺼려했다. 그것이 습관이 되였는지 나 자신도 어머니의 품을 그렇게 탐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밖에 나가 일해도 온종일 할아버지와 할머니곁에서 맴돌며 놀았고 투정하나 부리지 않았다. 그덕에 어머니는 시름놓고 밖에 나가 일할수 있었다.

5. 나비들의 장난

달수는 마을사람들이 더는 비천하게 살수 없다면서 다종경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때 맞추어 양돈장을 건설하라는 당의 호소가 바람에 돛을 올린격이 되였다. 달수는 직접 앞장에 나서서 마을사람들을 휘동해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양돈장을 지을데 쓸 목재와 돌. 세면트를 구입해들였다. 양돈장을 짓는 목수일을 달수가 직접 담당했다.
멀리서 달수의 하는 모양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외할아버지가 사람을 잘 보아냈다고 속으로 못해 탄복했다. 
“저눔의 잡도리가 심상치 않은걸 보니 큰일을 해낼것 같군.”
어느날 아침 어머니가 할아버지한테 주밋거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버님. 저 양돈장을 돌보기로 했습꾸마.”
어머니의 말에 로인은 슝늉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어 컥컥 거렸다.
“뭐라구. 돼지치기를 한다구?”
“네. 공수두 많구 녀자들이 하기 쉬운 일이라 대대주임한테 말해 응낙받았습꾸마.”
“그럼 부녀주임일은 어쩌구?”
“그것두 해야합지무.”
“욕심을 너무 부리지 마라. 공수를 벌어두 몸에 알맞게 해야지 그러다가 몸이 낭패보문 새끼는 누가 돌보겠냐. 우리두 인젠 옛날같지가 않다.”
“저야아직 젊지 않슴두? 그리구 혼자 아니구 둘이 함께 하길래 일없습꾸마. 아버님과 어마이가 장수만 돌봐주문 됩꾸마.”
어머니의 자신심이 넘치는 목소리는 두 로인의 마음을 녹여주었고 그후부터 어머니는양돈장의 양돈원이 되였다.
돼지우리는 돼지 두마리씩 가두게끔 되여있었고 우리둘레는 돌로 쌓아 돼지들이 벽을뜯고 우리를 마스는것을 방지할수 있게 했다. 돼지우리 앞에는 넓다란 울타리를 만들어 돼지들의 놀이터로 썼다. 돼지우리 바깥쪽에는 칸을 두개 만들어 한칸은 돼지사료를 가공하는 칸으로 쓰고 다른 한칸은 휴식실로 만들었다.
어머니는 먼저 휴식실에 석회칠을 하얗게 올리고 출입문을 마주한 벽에는 양돈장의 처녀라는 제목의 처녀가 돼지를 사양하는 선전화를 붙여놓았으며 창문틀에는 파란 페인트칠을 올렸고 카텐은 크고 붉은 해당화꽃이 돋친 보로 대신했으며 바닥에는 서까래를 깔아 명실공히 녀자냄새가 다분한 휴식실로 아담하게 꾸며놓았다.
마을사람들은 어머니가 꾸며놓은 휴식실을 보고 아예 짐을 싸가지고 여기와서 새 살림을 꾸리라고 우스개를 했다.
양돈장의 돼지는 열마리정도 되여 힘에 부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꾸리는 돼지치기라 달수는 먼저 적게 시작해서 나중에 점점 크게 불리려고 했다. 치고있는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돼지가 불어나게 되겠으니 눈을 굴리듯 점차 규모있는 양돈장으로 꾸릴 계획이였다.
어머니와 함께 양돈장일을 하게 될 녀자 역시 과부였다. 그 녀자도 우물이 생겨난후 과부로 된 녀자로 이름은 련자라고 불렀다. 련자는 어머니와 동갑내기로 산넘어 금곡이라는 곳에서 시집을 온지 7년이 되였다. 남자애가 하나 딸려있었는데 나보다 다섯살이나 우였다. 달수가 련자를 어머니와 함께 양돈장일을 하게 한것은 그들의 남편이모두 달수의 친구였기때문였다. 달수 자신도 친구의 미망인을 홀대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어머니가 양돈장일을 시작하자 눈코뜰새없이 바삐 돌아쳤다. 아침 일찍 우물을 길어다 밥을 지어놓고는 부랴부랴 양돈장으로 나가 큰 물통을 실은 암소가 끄는 소수레를몰고 우물로 물길러 갔다. 련자가 우물을 퍼올리면 어머니가 받아 물통에 쏟아넣었다.그렇게 반시간 물을 물통에 채우고 나면 한겨울이라 해도 몸이 땀벌창이 되였고  마치 얼음사람같이 옷에는 고드름이 가득 매달리군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것을 감내한듯 아무런 내색도 없이 자기들이 할 일을 착실하게 해나갔다.
“련자. 힘들지. 우리 바꿔하자.”
어머니는 련자의 얼굴에 땀방울이 돋기 시작하면 련자가 힘들어 한다는것을 눈치채고인차 일손을 바꾸었다. 기실은 물을 퍼올리는 일이나 물통에 쏟아넣는 일은 비슷하게힘들었지만 어머니는 늘 련자한테 가벼운 일을 양보하려고 맘을 썼다.
“일없다. 니나 조심해라. 그러다 미끌어 떨어져 몸이 병신되문 재가는 고사하구 한뉘 과부루 살아야 해.”
“애달린 녀자를 누가 데려간다구 그래. 가만보니 넌 재가할 생각이구나.”
어머니가 물통을 건네며 련자의 빨갛게 언 볼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해빛을 잘 받은 사과알 같았다.
“우리 나이 금방 30을 넘겼는데 그래 이대두 두엄무지에 꽃힌 버섯신세가 되겠니? 아직 채 피지 못한 꽃인데. 호호호.”
련자의 말에 어머니의 얼굴에는 순간 알지 못할 애수같은것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웃었다. 련자를 따라 청아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그렇구나. 호호호. 근데 어떤 남자가 우리같이 애달린 과부를 데려가겠니?”
“그야 모르지. 모든게 녀자하기 나름이니까 남자는 따라오게 생겼니라. 호호호.”
“큰일날소리. 남들이 들으면 우리가 바람난 년들인가 하겠다야.”
어머니는 사위를 둘러보며 소리를 낮추어 련자를 나무랐다.
“호호호. 넌 겁두 많다. 글쎄 니네 시아버지가 무섭게 굴어 니가 소심할지 모르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가두 그냥 참을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련자는 마치 발정난 암노루마냥 몸을 떨어댔다. 그 모양을 내려다보며 어머니는 난색을 했다. 어머니는 속으로 미친년이라고 련자를 욕했다.
“가자.”
어머니는 수레우에서 뛰여내려 다짜고짜 소고삐를 거머쥐고 소잔등에 채찍을 날렸다.
“이랴. 우직한 소새끼.”
어느날 해가지고 일이 끝나 집으로 가려할 무렵 련자가 어머니한테 실토했다.
“연실아. 솔직히 말할게. 니가 나서서 나와 달수를 다리 좀 놔다구.”
련자의 말에 어머니는 한참을 멍하니 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사람아닌 귀신을 보고 굳어버린것 같았다.
“달수도 나를 좋아하는것 같더라. 않그러면 나를 여기 양돈장에 배치하지 않았을거다.니가 직접 말하기 껄끄러우면 니 시아버지나 아버지한테 부탁해보렴.”
련자의 청은 간절했다. 눈빛까지 빨갛게 물들어있어 보는 사람을 더욱 겁나게 만들었다.
“바람났어. 제대로 바람났다니까.”
어머니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날저녁 어머니는 어떻게 저녁밥을 먹었는지 어떻게 잠을 잤는지 기억이 묘연했다. 마치 련자의혼이 어머니한테 접신된듯 제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이튿날 양돈장에 나오니 련자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제 한 말을 비밀로 해달라고 애걸했다.
“못들었던걸루 할게. 녀자루 그럴수 있지무. 걱정마라. 비밀을 지킬게.”
어머니는 머리를 끄덕여주었으나 웬지 마음이 알싸해났다. 얼마나 남자가 그리웠으면남한테까지 속마음을 드러낼가 싶으면서 련자가 가긍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니가 맘에 두고있는 일이면 생각대루 해라. 속에 넣구 있다가 병들라.”
“포기할게. 내가 좀 주제넘는 면이 있거든. 그래서 아무소리나 막 내뱉는다.”
어머니는 마치 자기때문에 련자가 남자를 포기한것 같게 느껴져 마음 한구석에 옹이맺혀 내려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속으로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련자한테 좋은 남자를소개시켜주리라 결심했다.
어머니는 양돈장일을 하면서도 부녀사업을 착실했으며 공사에서 열리는 부녀회의에  빠져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여러번 두가지 일에서 한가지만 하라고 권해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번은 어머니가 공사로 부녀회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대대주임인 달수의 자전거뒤에 앉아 함께 마을로 돌아왔다. 달수가 어머니를 그대로 부리우고 집으로 갔으면 아무일 없었을텐데 어머니를 따라 양돈장에 들렸다. 한창 돼지먹이를 만들고있던 련자는 어머니와 달수가 함께 들어서는것을 보자 대뜸 얼굴색이 파랗게 변해갔다. 달수기 푸접좋게 우스개를 하는데도 련자는 개닭보듯 응대도 없이 돼지먹이를 담아들고 돼지우리로 달려나갔다.
어머니는 련자가 왜 그러는지 인차 알아차렸다. 련자가 질투를 하고있다는것을 짐작했다. 녀자들의 질투는 오뉴월에도 서리낀다고 잘못하면 큰 일이 생길것 같았다. 어머니는 모르쇠를 대며 말없이 달수를 데리고 돼지우리를 돌며 요사이 정황을 얘기했다.련자는 달수가 곁으로 다가가도 낯선사람대하듯 거들떠보지도 않고 돼지먹이만 주었다.
어머니는 련자가 진짜로 달수를 좋아하고있다는것을 속으로 감내하며 참 불쌍한 녀자라고 개탄했다.
그해 봄이 되자 굴암돼지가 새끼 네마리를 낳았다. 어머니와 련자는 돼지가 새끼를 낳는것을 처음 당해보는지라 어찌할바를 몰라 그대로 돼지굴에 방치해두었다. 이튿날나가보니 어미돼지가 새끼 두마리를 깔아죽였다. 이 일을 할아버지한테 일렀더니 할아버지가 듬성듬성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철부지들이 돼지를 거두니 그럴수밖에. 모르면 년장자들한테 묻는게 도리지. 낭패를 봤구나.”
원래 돼지는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인차 안아내와야 했다. 돼지는 미련하고 둔중해 자기 새끼를 깔아죽이는 일이 늘 생긴다.
그래도 두마리는 남겼으니 다행이였다. 어머니와 련자는 마치 자기들이 낳은 새끼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알록달록한 얼룩돼지새끼는 볼수록 귀여워 어머니와 련자는 번갈아가며 안아주었다.
어머니는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 따스하게 덥혀 돼지몸을 씻어주었고 직접 안고 돼지우리로 들어가 어미돼지젖을 먹여주었다. 어머니는 마치도 두번째 자식을 본듯 돼지사랑에 푹 빠져있었다. 집에 들어와서도 돼지 이야기밖에 할줄 몰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느날 문득 어머니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것을 느꼈고 그 냄새가 돼지냄새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 특유의 냄새가 돼지 냄새로 바뀌면서 나는 점점 어머니를 멀리했다. 밤에 어머니 젖을 쥐고 자다가도 젖에서까지 돼지냄새가 나는것같아 아예 할머니품에 기여들어 할머니의 후줄근해진 젖을 쥐고 잤다. 어머니는 차라리잘됬다싶게 코를 골며 잠을 편히 잤다.

6. 봄이 우는 양돈장
내가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나를 양돈장으로 곧잘 데리고 갔다. 밤에 어머니한테서 나는 돼지냄새는 싫었지만 여기 돼지똥냄새는 그렇게 싫지 않았다. 나는 그때에야 어머니가 하루종일 돼지똥냄새를 맡아도 역겨워하지 않는 비결을 알수 있었다. 여기서 돼지똥냄새는 응당한 냄새였고 그 냄새를 맡을수 없으면 여기서 일할 자격이 없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온종일 팽이처럼 돌아쳤다. 돼지우리안의 돼지똥을 쳐냈고 사료를 가공했으며 가공한 사료를 배합해 나같은 아이들은 열명도 쉬이 들어갈 큰 가마솥에 돼지죽을끓였다. 련자와 함께 하는 일이라지만 녀자의 몸으로 매일같이 한다는것은 쉬운 일이아니였다. 더구나 돼지가 새끼를 낳아 수자가 불어나자 일도 그만큼 많아졌고 일량도커졌다. 제일 힘든 일은 바로 돼지사료를 끓일 물을 긷는것이였다. 하도 어머니도 련자도 걸싼 녀자들이니 망정이지 다른 녀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였다.
어느날 오후 달수가 해진뒤의 훈풍마냥 양돈장으로 문득 찾아왔다. 문배내를 몰고 들어온 그의 손에는 종이봉지 하나가 들려있었다. 술기운인지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여있었고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입귀에 웃음을 달고있었다.  
“옛다. 곶감이다. 공사에 회의있어 갔다가 오는길에 니들 생각이 나서 샀다.”
어머니와 련자는 아닌밤중에 홍두깨같이 달수가 곶감을 내밀자 낯선 사람보듯 멍하니달수를 쳐다보았다.
“왜. 내가 어디서 언 돼지똥이라두 주어왔을가봐 그래? 허허참.”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다했을가 놀라와서 그러지.”
어머니와 련자는 곶감을 넣은 종이봉지를 받아 하나씩 입어 넣고 깨작깨작 씹으며 키들키들 웃었다.
“이제 양돈장을 기계화로 꾸릴 예산이다. 허허허.”
달수는 신심이 가득한 어투로 소리를 높여갔다.
“오늘 공사에서 농촌건설에 관한 회의를 했는데 공사에서 양돈장이 있는 각 대대에 동력물뽐프를 놔주기로 했다.”
“그게 뭔데?”
두 녀자는 곶감을 입에 문채 되물었다.
“이곳에 강철관을 땅속에 박아넣고 기계를 장치해 땅속의 물을 뽑아올리는거지. 그러면 다시는 힘들게 물긷는 일을 하지 않아두 되는거구. 하하하.”
“에이. 오빠. 술마시구 뻥치지 마오. 그게 그렇게 쉬우면 우리 장수할아버지가 사람을청해 상암동에 우물을 팠겠소?”
“그게 다 미개해서 그런거다. 이제 현성에서 탐사대가 내려와 며칠안에 물을 뽑아 올리잖나 두고봐라. 그러면 니들 발바닥에 털이 날걸. 하하하.”
달수가 가버리자 련자는 연신 한숨을 톱았다.
“내팔자는 개팔자인지 왜 이리두 복이 없을가?”
“호호호. 모든게 녀자하기 나름이라며. 한번 니 나름대로 해보렴.”
“관두자. 우물에 가서 물을 긷지 않아두 복이 터진거지뭐.”
련자는 마치 련애를 하지 못해 상사병이 든 십팔세 랑랑같았다.
해동이 얼어붙었던 두만강을 풀어놓고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천불지산줄기들이 기지개를 켜며 양지에 서서히 아지랑이를 피우던 봄날이였다.
과연 달수가 해방패트럭에 장비를 실은 차를 인도해 양돈장으로 들이닥쳤다. 트럭에서 내린 달수의 어깨는 잔뜩 높이 솟아있었고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빛이 가득 어려있었다.
“이 달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이제 석암동 집집마다 물뽐프를 놓아 제집에서 물을 마실수 있게 될거다.”
달수의 뜻대로 양돈장에는 동력물뽐프가 가설되였고 물을 끌어올리는 모터소리가 스피카에서 울려나오는 타령같이 귀맛좋게 들렸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온 마을사람들이 모두 양돈장으로 달려와 도관을 통해콸콸 쏟아져나오는 지하수를 신기하게 구경했다.
“야. 달수 대단하다 대단해. 아무래두 마을은 젊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니까.”
할아버지도 그런 말에 개의치 않고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웃었다.
“달수가 우리 석암동을 개변시켰군. 수맥이 없다던 석암동에서 이런 지하수가 쏟아져나오다니. 허허허.”
양돈장에 동력물뽐프가 설치되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달수한테 마을의 알맞는 장소에 공동으로 물뽐프를 놓자고 제의했다.
“자금이 없이 어떻게 뽐프를 놓겠슴두. 이것두 공사에서 지원해서 놓은건데. 이후에 천천히 집집마다 다 놓을수 있을겝꾸마.”
달수는 양돈장은 물론 우사에도 동력물뽐프를 설치했다.
어머니는 달수덕에 더는 물통을 실은 소수레를 몰고 우물로 물길러 가지 않았다. 그저 빨간 단추만 누르면 물이 콸콸 쏟아져나왔고 돼지우리도 솟아나는 지하수로 청소했다.
“이게 바로 사회주의 우월성이라는게다. 앞으로 우물물을 길어먹지 않고 집에 앉아 물을 받아 마실수 있을거야.”
달수가 마을에서 위상이 높아가고 예상했던대로 마을의 모든 일들이 착실히 진척되여나가자 외할아버지의 오금이 저려나기 시작했다. 자기가 점찍어놓은 달수가 휭하니 다른 녀자한테 장가가면 랑패를 보는건 물론 앞으로 마을에서 내노라 나서기도 어려울게 뻔했다. 그리고 달수가 어머니와 짝을 맺으면 할아버지도 외할아버지와 어쩌지 못할게고 외할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무시하며 으시댈수 있을것이였다.
외할아버지는 어느날 저녁 달수를 집에 청했다. 상에는 통닭이 올랐고 고량주가 향기를 뿜었다. 달수는 이 령감이 도대체 왜 이렇게 풍성한 음식을 차려놓고 자기를 청하는지 궁금했지만 통닭과 고량주를 보자 체신도 잊고 헤벌쭉거리며 웃었다.
“달수. 자네는 총명한 사람이니 내가 왜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지 짐작이 갈거네.”
외할아버지는 자못 심중한 어조로 서두를 뗐다.
달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넘치게 술을 부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외할아버지가 언제면 어서 한잔 들라고 하겠는가만 기다리고있었다.
“알다마다 여부가 있겠슴두. 나두 소원이 그겝꾸마.”
달수의 말에 량주는 서로 눈을 맞추고는 달수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그럼 자네두 마음에 두고있었단 말인가?”
“그렇습꾸마. 내가 뭐이 모자람두. 인젠 당당한 대대주임인데. 내 하고싶은대로 해야합지.”
“그래. 패기있네. 패기있어. 나는 자네 그런 패기가 맘에 들어. 하하하. 자 한잔하세.”
외할아버지의 권주가 떨어지기 무섭게 달수는 술잔을 굽냈다. 외할아버지의 얼굴에는안도의 빛이 그물그물 퍼져나갔다.
이튿날 외할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찾아 어머니 재가문제를 토론했다. 할아버지는 아무말없이 담배만 뻑뻑 태웠고 외할아버지는 모든 뇌즙을 짜내여 어머니를 재가시켜야 한다는 정당성을 역설했다. 그말이 할아버지 귀에 들어갈리 만무했지만 외할아버지는나의 장래까지 거론했고 나중에는 녀자로서 어머니가 가지고있는 인권을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등의 철학적인 말까지 서슴치 않고 했다.
“그럼 재가시켜야지.”
할아버지는 멀리 천불지산을 아슴츠레 바라보며 긴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언녕 그렇게 시원스레 나올것이지.”
“그런데 상대는 누군가?”
“달수가 우리 딸년을 맘에 두고있더구만.”
외할아버지의 말에 할아버지는 사뭇 놀라는 얼굴로 외할아버지를 직시했다.
“추측이 아니겠지?”
“내가 딸년을 놓구 그런 억측을 만들어내겠나. 허허허. 달수한테 재가하믄사 떡판에 넘어진 격이지.”
할아버지는 긴 숨을 들이그었다가 내뱉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할아버지는 곧장 양돈장으로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한창 돼지우리를 청소하는라 바삐 보내고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를 부르지 않고 휴식실봉당에 홀로 앉아 두리번두리번 휴식안을 둘러보았다. 아담하게 꾸며진 휴식실은 아늑했다.
“망할눔의 자슥이. 죽긴 왜 죽어가지구 이 애비 속을 뒤틀어놓는거냐?”
할아버지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는데 어머니가 들어섰다.
“아버님. 무슨 일루 왔슴두?”
할아버지는 엉거주춤 봉당에서 일어나며 건가래를 뗐다.
“어험. 아니다. 휴식칸을 잘 건사했구나. 보니 많이 힘든것 같드라.”
“일없습꾸마. 달수오빠가 동력물뽐프를 안장해주어 얼마나 쉬운지 모릅꾸마.”
“음. 그럴테지. 어험.”
할아버지는 붉게 상기된 어머니의 볼을 힐끗 건너다보고는 머밋거리다가 어눌하게 중얼거렸다.
“애기네 재가를 준비한다며?”
“네?”
어머니는 잠꼬대를 들은듯 할아버지의 가늘게 떨고있는 깊이 들어간 눈을 응시했다.
“장수 외할배가 그러더군.”
“아버님. 전 그런 생각은 한적이 없습꾸마. 저의 아버지가 로망나서 하는 소리니 속에넣지 맙소.”
“내 좀 껄끄러워 그러는거네. 재가야 응당 해야지만서두. 어험.”
할아버지가 가버리자 어머니는 그길로 외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딸을 화냥년으로 만들 작정임두?”
퍼렇게 물이 오른 얼굴을 마주하며 외할아버지는 외려 차분한 어조로 대꾸했다.
“넌 무슨소리 그렇게 하냐? 네 처지가 가긍해 그러는거다. 좀 자기생각도 하면서 살어라.”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합꾸마. 인젠 좀 그만합소.”
“달수가 너를 맘에 있어하는데 그런 자리가 어디 흔하냐? 너두 애딸린 녀자다. 하루빨리 임자를 찾아 새 살림을 꾸려야지. 언제까지 그깟 두상 모시고 살겠냐?”
외할아버지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있었다. 외할아버지는 그냥 할아버지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죽으나 사나 나는 리씨가문의 사람입꾸마. 아버지 다시는 그런 말 입밖에 내지 맙소.않그러문 다시는 못볼줄 압소.”
그후 어머니는 달수를 찾아 그 말을 했더니 달수는 웃으며 자기는 그날 외할아버지의말뜻을 잘못 듣고 마을을 잘 꾸려나가는게 소원이라고 말했는데 외할아버지가 잘못 리해한것이라고 허구프게 웃었다.
“속에 넣지 마라. 내가 어찌 감히 고니고기를 탐하겠니. 허허허.”
달수의 소탈한 웃음에 어머니 마음도 안정되긴 했지만  달수가 그렇게 나오자 어머니의 마음은 왠지 아리숭해났다.
날씨가 점차 따스해지며 새 각시의 얼굴마냥 해빛이 화사하게 밝은 어느날 오후, 어머니는 돼지들을 우리앞 놀이터에 풀어놓았다. 놀이터라지만 돌아가며 널판자로 막아온은 우리밖의 우리였다. 돼지들은 우리에 갇혀있던 몸이라 몸을 푸느라 넓은 공터를뜀질하며 난리법석을 쳐댔다. 어미곁에 항상 붙어있던 새끼돼지 두마리도 신이 나서 쫓고 쫓기우며 멀리는 가지 못하고 테두리안을 뛰여다녔다.
어머니는 련자와 돼지사료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우선 두병(기름을 짜낸 콩찌꺼기를 가마솥에 쪄낸후 둥근 모형틀에 넣고 압력으로 눌러 만든 사료, 하나의 무게가 10킬로그램가량 된다)를 토막내여 큰 다야에 담고 물을 부어 퍼지운다. 그다음 옥수수를 가루내고 거기다가 쌀겨를 섞는다. 그리고 두병이 다 퍼지면 가마솥에 넣어 함께 끓인다. 이렇게 끓인 돼지죽은 고급사료에 속했고 그렇지 못할 때면 들로 나가 돼지풀을 뜯어다 사료에 섞어 돼지죽을 끓였다.
대대마다 형편이 달랐는데 어떤 대대는 형편이 유족하지 못해 통옥수수이삭 아니면 꽁깍지를 분쇄해 사료와 함께 섞어 돼지죽을 끓여 먹였다. 이렇게 키운 돼지는 명절이나 년말, 기념일이면 잡아 사원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인구에 따라 분여했다. 모든것을 알로 분배하는 때라 조그마한 사적인 일이라도 생기면 가차없이 질책의 대상이 되였고 다시는 그 일을 할수 없었다. 그리고 사료의 사용에 따라 돼지고기맛도 달랐다. 정성을 들이고 좋은 사료를 먹인 돼지고기는 감칠맛이 나고 그렇지 못한 돼지고기는 민간에서 말하는 자리냄새(돼지고유의 냄새)가 나 맛이 없었다. 그래서 돼지를 잡을 때가 되여올 때면 돼지먹이에 신경을 썼고 조건이 허락되면 잡을 돼지를 따로 가둬놓고 먹이를 먹였다.
어머니는 양돈기술서적을 사다 읽으면서 양돈에 관한 지식을 조금 장악하고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료를 어떻게 어느정도 먹이면 고기가 맛있는가를 알고있었고 돼지질병과 돼지새끼낳이까지 하나하나 익혔다. 어머니는 다시는 어미돼지가 새끼돼지를 깔아죽이는 일이 없을거라고 장담했다.
지금 어머니와 련자는 이제 또 새끼를 낳을 굴암퇘지와 돌아오는 청명에 잡을 돼지한테 먹일 돼지죽을 따로 장만하느라 신경을 쓰고있었다. 두번째로 맞는 돼지분만이고 또한 처음으로 잡는 돼지인것만큼 마을사람들한테 확실하게 교대하고 싶었던것이다.
어머니와 련자가 희희닥거리며 일에 열중하고있는데 할아버지가 새끼돼지 한마리를 끌고 양돈장으로 들어왔다. 새끼돼지는 이미 죽어있었고 온몸이 물에 젖어있었다. 할아버지뒤로 다른 새끼돼지가 꿀꿀거리며 따라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새끼돼지를 땅바닥에 내동이쳤다.
“니들 머하느라 돼지를 우물에 빠뜨리는거냐?”
땅바닥에 뻗어버린 새끼돼지는 퍼그나 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중돼지에 이를 무렵이였다.
“아버님, 어떻게 된일임두? 왜 우물에 빠졌담두?”
“그걸 나하구 물으면 어떻하냐? 에잇 한심한것들.”
할아버지는 몸을 돌려 바람처럼 밖으로 사라졌다.
어머니와 련자는 얼굴이 사색이 된채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돼지를 풀어놓은 놀이터로 달려나갔다. 돼지들은 해빛아래 뻐드러져 낮잠을 자고 땅을 뚜지며 천하태평을 누리고있었다. 그속에서 유독 새끼돼지 두마리만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둘러막은 울바자를 둘러보니 한곳에 널판자가 떨어져 작은 구멍이 생겨있었다. 아마 새끼돼지가 이곳으로 빠져나가 사달을 친것이 분명했다.
하나밖에 남지 않는 나머지 새끼돼지가 발치에서 꿀꿀거리며 칭얼댔다.
“이 일을 어쩌니?”
련자가 어눌한 소리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쩌긴. 죽은 돼지 살릴수 없잖아.”
어머니의 말투는 격했으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었다.
련자는 죽은 새끼돼지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머니의 안색만 살폈다.
“가자.”
갑자기 어머니는 눈물을 옷소매로 쓱 문지르고는 양돈장을 달려나갔다. 그뒤를 련자가 쫓아나갔다.
어머니는 곧추 우물도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가 우물가에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외할아버지의 깡마른 몸도 끼여있었다.
어머니가 다달으자 사람들의 곱지 않는 눈길이 무수한 화살마냥 어머니의 몸으로 날아왔다.
어머니는 그 눈총을 여린 살갖으로 감지하며 우물가로 다가갔다.
“잘한다, 잘해. 맨날 돼지굴에 붙어있는다면서 돼지를 보지 않구 무슨 짓을 하냐?”
먼저 날아온 외할아버지의 핀잔에 뒤이어 할아버지의 노기어린 소리가 어머니의 이마를 두드렸다.
“망할 조짐이다. 망할 조짐. 어쩌면 돼지까지 우물에 빠지냐?”
정말 할아버지 말이 그른데 없었다. 어머니가 낳은 내가 이 우물에 빠졌었고 이번에는 어머니가 키우는 돼지가 이 우물에 빠졌으니 이런 우연이 어디있단 말인가? 이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하는것이 더욱 적합했다. 그런데 두 생명체가 이 우물에 빠진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사람이 식용수로 하는 이 우물에 돼지가 빠졌으니 더러워진 우물을 사람이 어떻게 마신단 말인가?
“인젠 어디가서 물을 길어다 마신다우? 또 하암동우물을 마셔야 하우?”
“그럼 오줌을 마시겠나? 정 안돼믄 돼지굴에 가서 물을 길어다 마셔야지비.”
“돼지가 사람보다 났구만. 돼지굴에다 동력물뽐프를 안장해놓았지. 그것두 모자라 돼지가 우물에 들어가 목욕하지. 참 살기좋은 동네다.”
“그럼. 살기좋은 동네구말구.”
달수가 멀리서 다가오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임이 오자 언거번거 떠들던 사람들이 자라목처럼 움추러들었다.
“돼지새끼 한마리 우물에 빠진걸 가지구 이렇게 야단침두. 우물이 더러우면 다시 쳐내믄 될 일이지. 고의로 한것도 아닌 아녀자들을 몰아붙이면 어쩌란 말임두.”
할아버지가 허청거리며 한발 나섰다.
“맞는 말일세. 헌데 조짐이 껄끄러워서 마음이 내려가지 않네.”
할아버지의 눈빛은 사뭇 떨렸으나 목소리는 극력 가라앉아있었다.
“아저씨, 무슨 귀신소리함두. 우물을 가셔낸후 소독해 다시 마시면 됩꾸마. 이제 젊은이 몇을 떼내 우물을 가시게 할게 근심맙소.”
그리고는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마을은 서로 도우며 잘 지내왔고 남을 헐뜯는 일이 없이 화목하게 지내왔습꾸마.남이 곤경에 빠지면 함께 구해내는게 도리지 꼭뒤를 눌러놓는게 도리가 아닙꾸마. 이제 청명이면 연실이와 련자가 키운 돼지를 잡겠는데 무슨 체면에 입을 들구 돼지고기먹으러 오겠슴두. 않그렇슴두?”
우물가는 순간 조용해졌다. 뜸을 들인후 어머니가 나섰다.
“미안합꾸마.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이 없게 돼지를 잘 단속하겠습꾸마.”
사람들은 박주가리씨통에서 씨가 날려나가듯 하나둘 흩어져갔다.
새끼돼지 액사사건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고말았다.
그날저녁 할아버지는 어머니와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고 반주술 반근으로 때우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도 나를 껴안고 한숨을 풀풀 쉬더니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다가 내가 잠들자 인차 뒤따라 잠들어버렸다.
이튿날 련자는 양돈장으로 나오지 않았다. 반나절이나 기다렸지만 그림자도 얼씬하지않자 어머니는 돼지사료를 만들다 말고 련자네 집으로 달려갔다. 새끼돼지 액사사건으로 집에서 가슴앓이를 하지 않나싶어서였다.
련자네 집은 하암동과 상암동이 잇닿아있는 경계선에 있어 하암동도 상암동도 아닌 애매한 곳에 자리잡고있었다. 할아버지가 련자 남편이 사람이 골끼있는것을 보고 우물팔 때 하암동과 상암동 경계를 그으면서 상암동에 넣었다. 그래서 련자남편은 할아버지를 미워한적이 있었다. 한것은 하암동에 속했더면 우물파는 돈을 내지 않았을건데 할아버지가 상암동에 넣어버리는통에 우물파는 돈을 내게 되였던것이다. 그후 련자남편은 목재판으로 가서 일하다가 그만 넘어지는 통나무에 치여 돈은 고사하고 목숨도 건지지 못하고말았다.
어머니는 련자네집 울바자를 열고 울안에 들어섰다. 고즈넉한 울안에는 애기풀들이 여기저기 모여 자라있었고 무거운 나무토막들이 마루밑에 팽개쳐 남자의 손을 기다리듯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어머니가 마루밑으로 다가가다가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련자의 말소리에 발목이 잡혔다.
“연실이 아버지가 리촌장을 사위로 점찍었는데 나같은 녀자가 다 뭠까?”
“아따 귀구녕 너르기두 하다. 눈딱 감구 내말 들으라니까. 련자와 살자구 맘먹은 내 마음두 그렇게 가벼울까?”
목소리 임자는 다름아닌 달수였다.
어머니는 터져나오려는 소리를 입으로 틀어막고 오도가도 못한채 굳어버렸다.
이어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어머니귀에 더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떠나간 혼을 도로 찾아들이자 어머니는 부랴부랴 그자리를 떠나 말벌에게 쫒기우는 암소마냥 헐떡거리며 양돈장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고 휴식실 봉당에 퍼더버리고 앉아 멍하니 새끼돼지를 안고 웃고있는 양돈장처녀그림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이 시각 양돈장처녀의 웃음이 그렇게 맑고 청순할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아버지생각을 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이게 바로 과부의 설음이라는건가? 왜 과부는 왜 설음을 느껴야 하는건가? 왜 울어야 하는가? 어머니는 그것을 알지도 못한채 그저 스스로 울고있을뿐이였다.
밖의 돼지굴에서 돼지들의 멱따는 소리를 내며 싸우고있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닦았다. 어쩌면 눈앞에 보이는 돼지가 어머니의 신세를 바꿔놓을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는 돼지굴로 나갔다.

7. 마르는 수맥
달수는 말한대로 젊은 장정 대여섯명을 떼내여 우물을 가시게 했다. 이번에는 내가 우물에 빠졌을 때와는 달리 아주 열심히 깨끗하게 가시게 했다. 그리고 석회로 소독도 말끔히 했다. 하지만 누구도 첫 드레박을 우물에 넣으려 하지 않았다.달수가 사람들앞에 나서서 우물을 퍼마셨지만 모두가 넌지시 건너다 볼뿐 마실념을 않고 기어이 하암동우물로 가버렸다. 할수 없이 달수는 양돈장의 동력물뽐프를 돌려 상암동의 집집에 새벽과 저녁으로 하루에 두번씩 식수를 공급했다. 전날일에 지쳤던 사람들은 새벽눈꼽을 쥐여뜯는 번거로움을 겪으면서도 돼지가 빠진 우물로 가지 않고 여기 양돈장으로 와서 식수를 길어갔다.
식수를 시간대로 공급하게 되자 양돈장의 사양원인 어머니와 련자가 아침과 저녁을 순번으로 직일을 서면서 사람들한테 물을 공급해주었다. 자신들때문에 생긴 번거로움으로 많은 사람들한테 고생을 시켰다는것이 더없이 안쓰러워 둘은 열심껏 직일을 섰다.
양돈장에서 울리는 물뽐프의 모터소리는 새벽의 안개속을 헤치고 두만강 은빛물너울을 한가히 누볐고 천불지산 수림우를 질주하며 저녁의 노을을 쫓아갔다. 조용하던 석암동새벽은 사람들의 하품소리에 깨여났고 저녁은 사람들의 육담소리에 잠들어갔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겼다. 하암동 경계를 그어 하암동에 귀속되였던 사람들은 상암동우물을 긷지 않고 하암동우물을 긷다가 감히 양돈장에서 공급하는 뽐프물을 길어갈수없었다. 그러다나니 혜택이 상암동사람들한테만 차례진게 화근이였던것이다.
“같은 대대사람인데 왜 상암동사람들만 뽐프물을 마실수 있고 우리 하암동사람들은 마실수 없단 말인가?”
누가 봐도 이건 말이 안되는 일이였다. 그리 하암동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먼저 외할아버지가 들고 일어났다. 외할아버지는 먼저 어머니를 찾아와 한바탕 야단을 치고는 달수를 찾아갔다.
“자네 도대체 대대주임 맞기나 맞는가? 마치 우리 하암동사람들은 에미없는 자식대하듯 하누만.”
“아참. 아저씨. 그런게 어디 있씀두. 아저씨네는 양돈장과 집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집가까이에 있는 하암동우물을 마시는게 아님두? 하암동사람들두 힘자라면 와서 물을길어갑소.”
외할아버지는 량심까지 팔아가며 대대주임으로 애써서 올려놓았는데 자기를 지나가는늙은 소 대하듯 하자 저으기 욱하고 밸이 치밀어 달수를 족제비같은 자식이라고 속으로 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암동우물물이 점차 적어지더니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암동사람들은 이게 상암동에다 물뽐프를 놓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뽑아대니 하암동우물의 수맥이 마르는거라고 여겼다. 외할아버지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에 명백한 일리가 있는것 같았다. 우쪽에서 흐르는 수맥에 물뽐프를 박아 하암동으로 흐르는 물을상암동에서 뽑아올려 하암동우물이 바닥이 드러나게 된것이 분명했다.
하암동사람들이 상암동으로 몰려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양돈장으로 쓸어들어와 동력물뽐프를 둘어쌌다.
한참 양돈장에서 사료를 가공하던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하암동사람들을 막아세웠으나 당해내지 못하고 한쪽으로 나뒹굴었다.
“왜 난동을 부림두. 집체재산을 마스면 범죄입꾸마.”
“그래 우리 하암동 물줄기를 가로채는건 범죄가 아닌가? 여기서 지하수를 뽑아내니 우리 하암동우물이 말라버린거야.”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맙소. 그게 이 물뽐프와 무슨 상관임두?”
외할아버지가 나서서 어머니의 뺨을 후려쳤다.
“입다물지 못하겠냐? 아무리 상암동에 시집왔다구 이 애비가 먹을 물까지 빼앗는데 모르쇠를 대다니.”
뺨을 맞은 어머니는 실성한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변인지 알지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다.
소식듣고 달려온 달수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물뿜프를 마스려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누구든 손끝하나 까딱해봐라.”
달수가 두눈을 부릅뜨고 버티고 가로막자 외할아버지가 나섰다.
“이보게 달수. 나는 자네가 생각이 깊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치보기인줄 몰랐구려.”
그렇게 달수를 괘여올리던 외할아버지는 오늘만은 례외였다. 마치 낯선 사람대하듯 말투에 서리가 차갑게 끼여있었다.
“무슨 일루 이램두?”
“하암동우물이 밑바닥이 드러났네. 여기에 물뽐프를 박아놓은것이 화근이란 말일세. 지금이라도 당장 이 뽐프를 없애버리고 물을 뽑지 말게.”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이 뽐프로 물을 뽑아 하암동우물이 말랐다면내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으니 돌아들갑소.”
“오늘부터라도 뽐프물을 뽑지 않겠다구 하면 물러가겠네.”
달수가 보니 이대로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할수 없이 달수가 한발 물러섰다.
“그럼 아저씨말대로 할테니까 제발 돌아갑소.”
외할아버지의 악착같은 고집을 꺾지 못한 달수는 두손들고 하암동사람들을 곱도록히 돌려보냈다.
달수는 어쩌는수없이 물뽐프를 뜯어내고는 모터가 마사져 쓸수 없다고 거짓말을 둘러대며 상암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다 마시라고 권했다. 마실물이 없게 된 상암동사람들은“돼지목욕했던 우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되였다.
난동은 일약 종지부를 찍었지만 어머니의 뺨을 때린 외할아버지는 그날밤 할아버지한테 한되나 되는 욕을 먹고 앙앙불락했다.
뺨을 맞았다는 소리를 들은 할아버지는 메돼지마냥 씩씩거리며 외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외할아버지도 할아버지가 올줄 알았는지 술 둬잔 마시며 담을 키우고있었다.
“잘났네. 내 며느리 뺨을 때리구두 술이 그 목구녕으루 넘어가는가?”
“내 딸을 내가 때리는데 자네가 무슨 상관인가?”
“뭐라구? 내딸? 연실이는 내 며느리야. 우리집 식구란 말이네. 그렇게 함부로 남의 식구한테 손을 대도 되는가?”
할아버지의 꼬챙이같은 손가락이 외할아버지의 코끝에서 오락가락했다. 잘못하면 외할아버지의 코를 작살낼 잡도리였다.
기실 외할아버지도 밸김에 어머니한테 손찌검을 했지만 속으로는 못내 후회하고있는중이였다. 다만 할아버지앞이라 허장성세를 부릴뿐이였다.
그후 한동안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집으로 가지 않았고 나도 곁따라 가지 않았다.
어느날 외할아버지는 잘 고운 닭곰을 해들고 슬금슬금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말로는내가 보고싶어 왔다지만 안속은 화해하기 위해였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간의 알륵은 종말을 고했고 어머니도 외할아버지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암동우물의 수맥이 끊긴것은 기실 상암동에 물뽐프를 놓은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달수가 지질연구전문가를 불러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하암동사람들한테 오랜 세월이 흐르면 우물이 마르는 일이 생긴다고 해석해서야 달수는 하암동사람들의 질책에서벗어날수 있었다. 하지만 하암동에 식수를 해결해주어야 하는 가중한 중임이 다시 달수의 어깨에 놓였다.
식수가 끊긴 하암동사람들은 할수없이 물동이를 이고 상암동우물을 길어다 마셨다
할아버지는 곤방대를 물고 우물정자의 돌의자에 걸터앉아 물을 길어가는 하암동사람들을 보며 미묘한 웃음을 웃었다.
“세월이 흐르다 보믄 강물도 역류할수가 있는거여.”
그렇게 하암동사람들은 거의 반년가까이 상암동우물을 길어마셨고 할아버지는 늘 우물정자에 걸터앉아 마치도 선심을 쓰듯  물길러온 하암동사람들한테 상암동사람들의 인품을 극구 찬양했다.
“두고보면 나중에는 화복이 자연스레 내 몸을 스쳐지나는거라네. 우리 상암동사람들은 그렇게 속이 좁은 사람들이 아니지. 자물쇠를 잠그면서 남의 신경을 긁는 일같은건 하지 않는다니까.”
할아버지의 말이 외할아버지의 귀에 들어가자 달수를 찾아가 성화를 부렸다.
“달수. 그래 우리 하암동사람들은 목말라 죽어두 상관없다는건가? 한개 대대를 책임진 대대주임이면 전면을 돌봐야지. 않그런가?”
“아저씨. 나두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습꾸마. 돈이 있어야 뽐프를 놓든 우물을 파든 할게 아님두?”
달수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난처해하자 외할아버지는 인상이 붉어졌다.
“내가 자네한테 닭다리와 고량주를 먹인게 아깝네. 아까워. 에참.”
외할아버지는 달수를 믿고는 자신의 반쪽 자존심도 찾을것 같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하암동사람들을 동원해 우물을 파려고 서둘렀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아무런 재간도 없고 또한 늙은 소가 된 몸인 신세에 그저 단 하나뿐인 자존심을 가지고 그런다는것을 알고있는지라 무슨 일이라도 칠가봐 겁났다.어머니는 외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이젠 젊은이가 아닙꾸마. 로년에 이제 무슨 우물을 판다고 그램두? 이제 촌에서 방법을 대서 식수를 해결할 때까지 상암동우물을 길어마십소.”
“죽는 한이 있어두 우물을 파서 니 시아버지한테 본때를 보여야 죽어두 눈을 감을거다.”
외할어버지는 갈비뼈가 앙상한 가슴을 탕탕 두드려댔다. 그리고는 기침을 세차게 깆었다.
“이 령감 가슴이 아프다며 그렇게 두드리면 어쩌나?”
외할머니의 말에 어머니는 외할어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외할아버지의 얼굴은 놀랍게 창백했고 피기가 없었다.
“아버지. 옛병이 도진거 아님두? 이제보니 병색이 얼굴에 폈는데.”
어머니의 표정도 심각했다. 외할아버지는 금방 장가들어 심한 페염으로 고생을 겪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이드니 아마 옛병이 도진것같았다.
“죽은것두 다 팔자소관이니 시끄럽게 호들갑 떨지 마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외할아버지는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힘도 부친몸으로 다른 사람들을 믿고 우물을 판다는것도 무리였고 우물을 판다해도 물이 나올지 확신할수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어쩔수 그냥 상암동 우물가로 물길러 갈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대신 할일이 많은 어머니가 물을 가끔 길어다주군 했다.
외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꼴이 볼썽사나왔으나 어쩔수 없이 그대로 봐주었으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할아버지도 나중에 맥이 진했는지 아니면 외할아버지의 물길러 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더는 우물정자로 나오지 않았다.
모든것이 물흐르듯 자연의 순리대로 진행이 되여갈 때 석암동에 하나의 큰 개변이 일어났다. 석암동대대가 석암동촌으로 바뀌였고 달수는 석암동대대주임으로부터 석암동촌장이 되였다. 얼마후 집체생산체제가 호도거리생산체제로 전이되면서 생산대의 모든 자산이 개인들한테 분배되였다. 양돈장의 돼지도 개인들한테 분배되였고 양돈장은 페허같이 텅빈채 방치되였다. 어머니도 더는 양돈장일을 할수 없었다.

8. 은하수를 에워오다
그해 봄 나라의 변강우대정책으로 석암동은 처음으로 수도화를 실시하는 대상으로 지정되였다.
수도가설공사준비는 처음부터순조롭게 진척이 되였다. 촌 탈곡장안에는 하얀 비닐수도관이 다발로가득 쌓여져있었다. 굵은 수도관도 있었고 가느다란 수도관도 있었다. 이제 이 수도관들이마치 사람몸속의 혈관처럼 땅밑에서 서로 련결이 되여 마을 집집의 부엌칸으로들어갈것이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탈면 수도물이 하늘의 단비마냥 물독안에 차넘치게쏟아질것이다.
할아버지는 땅을 분여받았을 때 공산당만세를 불렀는데 이제 정말집에서 물을 받아 마신다면 공산당만세를 한번 더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그래도 오래 살고 볼일이라며 할아버지는 혼자소리로 되뇌였다.
수도가설공사의 진척을 위해 어머니는 촌장인 달수와 함께 바삐 돌아쳤다. 첫째는 수도관을 묻을 구뎅이를 파는 문제였고 둘째는 구역을 어떻게 분여할것인가하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토질에 따라 땅을 파는데 난도가 달려있었기에 어느집에 어떤 토질이 차례질지는 가늠할수 없었다.
수원지는 마을에서 5리가량 떨어진 산뒤의 골짜기에 있었는데 그 골짜기로부터 마을까지 구간에는 무성한 소나무수림도 있었고 울퉁불퉁한 돌밭도 있었다. 공정에 쓸수있는 기계는 다만 불도젤 한대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다만 나무를 뽑고 터를 닦을수 있을 정도로밖에 별다는 용도가 없었다. 극력 사람의 힘에 의거해 수도관을 늘일구뎅이를 파야했다.
달수는 조금이라도 구뎅이파는 진도를 빨리기 위해 향무장부와 련계해 폭파약을 얻어왔다. 이제 바위를 만나거나 악렬한 토질을 만나면 폭파약의 힘으로 제거하려고 생각한것이였다. 어머니도 달수의 깐진 일솜씨에 속으로 감복해했다.
천불지산남쪽 비탈은 해마다 해동이 빨리 시작되여 벌써 3월말께면 논밭갈이도 시작되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괭이를 메고 마을앞 작은 습지로 나가 그곳에 물도랑을 파고흙을 퍼올려 장기판모양의 뙈기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마늘이나 파같은 풋남새씨를 뿌리기도 했다. 이런 일은 부지런한 사람들의 몫이였고 그네들의 소일거리기도 했다.그 뙈기밭가운데는 할아버지의 뙈기밭도 있었고 외할아버지의 뙈기밭도 있었다.
이곳 습지는 마을과 조금 동떨어져있었는데 마을에 물이 귀한데 비하면 이곳이 습지로 되여있는것이 이상했다. 아마도 마을의 물이 이곳으로 흘러버린거라며 마을사람들은 도랑으로 흘러버리는 물을 아쉬워했다.
해동을 알리는 소식은 두만강이 녹은 소리 다시 말하면 성에장이 강물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내는 소리로 전해들을수 있었다.
해동이 다가오자 마을사람들은 뙈기밭가꾸러 나가지 않고 몽땅 수도공사장으로 구뎅이파러 나갔다.
그날 달수는 어머니한테 석암동사람들을 탈곡장에 모이게 했다. 어머니는 두다리가빨라 어렵잖게 백여호되는 집들을 돌며 일일이 탈곡장으로 불러냈다. 탈곡장에는 무엇인가 바라는 눈길로 달수의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들로 꽉찼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신심같은것이 가득 서려있었다.
모여든 사람들을 둘러보며 달수는 자부심과 긍지가 한가슴 몰려와 온몸이 으스스 전륜해옴을 어쩔수 없었다. 석암동마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을줄은 생각지도못했던것이다. 그는 조금 흥분된채 모여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달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격앙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우물때문에 너무 힘들게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물걱정없이 살수 있게 되였씁꾸마. 하지만 식수는 그저 오는게 아닙꾸마. 우리 석암동사람들의 힘으로 땅을 파서물을 끌어와야 합꾸마.”
“파지무, 땅파는게 뭐 그리 대수요? 한뉘 땅파며 살아왔는데 까짓꺼 촌장이 알아서 떼주우.”
사람들은 이구동성 흥분되여 주먹을 내저었다.
“수도관을 묻을 구간은 집집의 인구에 따라 분여할게꾸마. 그리구 힘든곳은 적게 쉬운곳은 좀 많이 분여할것이니까 의견같은게 있으믄 인차인차 반영합소. 또 하나는 사람이 파기 힘든곳은 폭파약으로 폭파하겠으니까 근심하지 않아두 될게꾸마.”
“그러문사 바쁠게 뭐가 있수. 하루빨리 지긋지긋한 우물신세 면했으문 좋겠수.”
“수도물을 빨리 마시는가 늦게 마시는가는 여러분들이 하기에 달렸습꾸마. 이제 농망기도 다가오고 하니 빨리 서둘러 농사일과 겹쳐지지 말아야 합꾸마. 일손이 모자라는집들은 먼저 판 집들에서 함께 동원해 도와주면서 수도가설공사를 잘하깁소. 어떻슴두?”
“좋소.”
함성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온 탈곡장 하늘가에 울려퍼졌다. 달수는 어머니를 건너다보며 히죽이 웃었다. 격앙된 마을사람들의 심정은 목마른 사람이 한방울의 물도 갈구하는 심정과 똑 같았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분여받은 구간과 할아버지가 분여받은 구간을 합쳐 함께 파자고 했다. 기실 외할아버지도 왕년의 끼끗하던 사나이가 아니였고 외할머니 역시 꼬부랑할미여서 돌덩이같은 땅을 판다는게 말이 않되였다. 할아버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외할아버지는 고개를 외로 탈았다.
“관둬라. 나 혼자서두 얼마든지 팔수 있다. 니는 시집일이나 잘하구 부녀공작이나 잘해라. 이제 수도공사를 벌리면 할 일이 많을게다.”
기실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속셈이 따로 있었다. 우리 식구는 넷이였고 외할아버지 식구는 둘이니 분여받은 구간이 우리보다 적었다. 더구나 외할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하기를 꺼려했고 할아버지 신세를 지는 일은 절대 있을수 없는 일로 간주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외고집을 꺾지 못한다는것을 알고있지만 할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하는건 어머니로서는 보고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
“아버지, 옹고집을 좀 그만 씁소. 아직두 젊었는가함두.”
외할아버지는 자기 고집을 지키며 어머니의 권고는 소방귀처럼 여겼다.
“내사 어떻게 파든 니 일이나 해라.”
어머니는 할수 없이 외할아버지 생각대로 내버려두었다. 어머니 또한 그런 일로 마음편한 사람이 아니였다. 어머니는 가정보다도 집체에 몸을 담근 몸이였고 한몸을 둘로쪼개써야할 정도로 바쁜 사람이였다. 아침에 나가면 늘 한밤중에 들어왔고 이튿날에도 아침을 해놓고는 부랴부랴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해 나는 소학교에 입학했다. 소학교에서도 학교에 분여된 몫을 파느라 교원들과 상급학년 학생들이 동원되여 수도공사현장으로 나왔다. 나는 저급학년 학생이라 휴식날이여야 할아버지를 따라 공사현장으로 나올수 있었다. 하지만 구뎅이를 팔수는 없고 다만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구뎅이를 파는 주위에서 뛰놀았다. 할머니도 삽을 들고 나와 얕은곳을 파느라 굽은 허리가 땅에 맞붙을 정도였는데 그 모습이 어린 나의 눈에도 안쓰럽게 보였다.
어머니는 땅을 파다가도 촌의 일을 보러 가버리군 했다. 그러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계속 팠다. 땅을 파는 로인의 모습은 말 그래도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옆에서 할아버지가 땅파는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면 할아버지는 그래도 느긋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니눔이 이제 크면 이 할배가 우물도 파놓고 수도물도 끌어왔다는걸 꼭 잊지 말아야 해.”
나는 할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까땍거렸다. 나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한줄로 늘어서 구역에 따라 땅을 파는 마을사람들 모두가 산이라도 옮길수 있는 엄청 힘이 센 장사라고 생각했다.
나는 땅을 파는 사람들 속을 누비고 다니며 날리는 먼지속에서도 신나게 놀았고 그들이 땅을 파면서 한층한층 땅 깊숙히 들어가는 모양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그리고는 속으로 수도관을 그냥 늘이면 될걸 왜 힘들게 땅을 파서 땅속에 수도관을 묻을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봄날은 바람이 세찼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꼬박 사흘날은 불어쳐야 직성이 풀렸다.바람은 산골짜기에서 불어나와 땅을 파느라 흙을 퍼올리는 공사장을 휩슬고 지나가며뽀얀 먼지를 말라올렸다. 사람들은 먼지속에서 땅을 팠지만 누구하나 두덜대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땅을 파기에만 전념했고 그따위 바람불고 먼지가 날리는것은 개의치 않았다. 사람들의 맨머리에는 모래와 건불이 달라붙어 꼴이 말이 아니였으나 땅파기에 전념했다. 여기에는 멋쟁이도 신사도 없었고 남자와 녀자가 따로 구분이 없었으며 모두가 혼연일체로 되였다.
할아버지의 갈색수염에도 먼지가 부옇게 달라붙었지만 어루쓸 겨를이 없이 늙은 두더지마냥 열심히 땅을 팠다. 그 뒤로 할머니의 꼬부랑 오이같은 모습이 간신히 보이기도 했다.
마을뒤산 너머에는 천불지산 지맥이 뻗어내려오면서 생긴 깊은 골이 신작로까지 이어졌는데 그 골 이름이 검은골이였다. 천불지산 지맥에서 제일 깊은 골짜기로 골짜기에들어서면 나무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게 자라 대낮에도 해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검은골이라고 불려져 지금까지 전해내려왔다. 검은골에서 흘어내리는 산골물이 바로 석암동마을사람들이 수도관을 리용해 에워올 식수였다. 골이 깊어 물량도 많아 석암동사람들이 마시고도 남을 식수였다.
물탱크는 검은골 어구에 만들어졌고 그곳부터 석암동사람들이 단 삽과 괭이로 땅을 파야 했다. 이것이 바로 “우공이 산을 옮기”는 정신을 구사하는것이라고 달수는 사람들한테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직접 붉은 천에 “우공이 산이 옮기다.”라고 써 나무장대기에 달아 여러곳에 꽂아놓았다. 그 모양이 마치 70년대 제전을 만들던 그 장면을 련상케 했다. 그래도 그런 구호가 씌여진 기발이 펄럭거리니 사람들의 사기가 한층 높아진것 같기도 했다.
달수가 땅을 파느라 지친 석암동사람들을 위해 돼지를 잡아 생활개선을 시켜준 며칠후의 어느날이였다. 그날은 바람도 없고 해빛도 산자락에 자글자글 내려앉아있었다.
인젠 땅파는 일도 막바지에 들어섰는데 땅구뎅이 사이사이에 구멍을 뚫는 일만 남았다. 구뎅이 사이마다는 한메터정도의 구간을 남겨 밑바닥에 구멍을 뚫는데 그것은 폭파약으로 남포를 터쳐 뚫으면 되였다. 달수는 경험있고 나이지긋한 사람들을 조직해 폭파조를 내오고 통일로 폭파약을 관리하고 한집한집 남포를 터쳐 구멍을 뚫기로 했다. 총지휘는 촌장인 달수가 책임졌다.
그날도 달수는 전날처럼 한번에 네곳씩 한꺼번에 남포를 터뜨렸다. 그곳은 바로 우리집 구간이였다. 사람들은 모두 산쪽으로 피신했고 폭파약 심지에는 폭파조 사람들이 달수의 구령에 따라 불을 붙였다. 화약이 타는 냄새가 백여메터밖에 피신해있는 곳까지 풍겨왔다.
“쿵”
“쿵”
“쿵”
남포소리가 둔중하게 울리더니 연기와 먼지가 구뎅이속에서 치솟았고 돌덩이들이 하늘높이 튕겨올랐다. 한참 지났는데 마지막 한곳의 폭파약이 터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머리를 쳐들고 먼지와 연기가 자오록한 폭파현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영화 지뢰전의 한 장면같았다.
달수가 옆에 있는 폭파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세발 터졌지?”
“그런것 같네. 좀 기다려보세.”
모두가 숨을 죽이고 다시 남은 폭파약이 터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5분쯤 지나 아무런 동정도 없자 달수가 벌떡 일어섰다.
“야바된것 같구나.”
“오빠. 좀 더 기다려보오. 그러다 터지면 어쩌오?”
어머니가 일어선 달수의 바지가랭이를 잡았다.
“그러게.”
어머니옆에 있던 련자도 곁을 달았다. 그녀의 눈빛은 몹시 떨렸다.
“아따 터질거면 언녕 터졌지. 이 시간이면 열번도 더 터졌을걸. 모두 여기 가만있어. 내가 내려가볼게.”
달수는 어머니가 잡고있는 바지가랭이를 뿌리치고 털석털썩 아직도 연기가 가시지 않는 폭파현장으로 내려갔다.
“가지말라니까”
갑자기 련자가 새된소리를 질렀다. 련자는 소리지르고는 자기도 놀랐는지 손으로 입을 감싸쥐였다.
련자의 고함소리에 달수는 멈칫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허공에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다시 비탈로 걸어내려갔다.
달수의 뒤로 어머니와 련자가 종주먹을 쥐고 달려내려갔다. 마치 포화속으로 달려가는 간호원같았다.
내가 엄마를 부르며 일어서려는것을 할아버지가 내 숫구멍을 무작정 눌러놓았다. 나는 마치 돌에 눌리운듯 땅바닥에 납짝 엎드렸다.
달수는 고지로 오르는 용사마냥 연기와 먼지가 채 가시지 않은 구뎅이앞에 이르렀다.그는 몸을 쭈크리고 앉아 구뎅이안을 들여다보았다. 구뎅이안은 먼지로 꽉 차있어 잘보이지 않자 달수는 땅을 집고 구뎅이안으로 뛰여들어갔다.
“쿵-”
달수의 발이 땅바닥에 채닿기도전에 마지막 남포가 끝내 터졌다. 달수는 충격으로 구뎅이벽에 몸을 부딪치며 흙속으로 파묻혔다.
여라문메터까지 달려갔던 어머니와 련자는 남포가 터지자 기절하며 그자리에 너부러지고말았다.
피신해있던 할아버지를 비롯한 사람들이 몸을 일으켜 달수가 파묻힌 곳으로 달려내려갔다. 마치 또치까를 폭파하고 돌격하는 결사대 같았다.
사람들은 너부러져있는 어머니와 련자의 몸우를 뛰여넘어 무작정 연기와 먼지가 란무하는 달수가 파묻힌 곳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헐떡거리며 구뎅이속으로 들어가 손으로 흙을 헤치고 달수의 손을 잡았다.그의 손은 따스했다. 흙과 피로 혼탁하게 뒤섞인 손을 할아버지는 힘껏 당겼다. 달수는 이미 인사불성이 되였고 얼굴은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달수-! 이 우직한 눔아.”
할아버지는 달수를 품에 끌어안고 하늘을 우러러 괴성을 질렀다.
할아버지의 눈에서 피같은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사람들이 할아버지품에서 달수를 들어올렸다.
먼지날리는 땅에 누운 달수는 갑자기 딸국질을 해대더니 간신히 눈을 떴다. 한참을 둘러선 사람들을 올려다 보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노을이 빨갛게 들었네. 래일 날씨 참 좋겠다.”
달수는 미소하며 눈을 도로 감았다.
갑자기 련자가 달수의 몸우로 엎어졌다. 그 다음 통곡소리가 흩날리는 연기먼지와 함께 숲속으로 멀어져갔다.
어머니가 련자를 밀어내며 소리쳤다.
“뭘함두. 빨리 병원에 보내야지.”
어머니의 말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손잡이뜨락또르에 달수를 싣고 향병원으로 달려갔다.
달수의 명은 토끼꼬리처럼 짧았다. 향위생원 원장이 눈꺼풀을 뒤집어보고 맥을 짚어보더니 머리를 저었다.
달수는 불혹으로 가는 길어구에서 그만 요절하고말았다.
달수의 시체가 집문앞에 이르자 달수의 벙어리 부모가 허겁지겁 맨발로 달려나와 달수의 몸우에 쓰러지며 꺼이꺼이 울었다. 벙어리라 울음소리조차도 괴이하게 들려 어머니를 따라왔던 나는 아예 집으로 도망치고말았다.
달수는 천불지산 끝자락의 양지바른 산기슭에 안치되였고 향정부에서 비석을 만들어 세워주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은 산기슭에 마지막 리정표를 세워놓고 끝났다.
달수가 죽자 믿을 사람하나 없는 석암동에서 더는 살멋이 없어진 련자는 애를 데리고산너머 현성으로 들어가버렸다.
련자가 현성에 들어가 다시 재가를 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튼 남자없인 못살 녀자야.”
달수가 맡은 촌장자리가 비자 향정부에서는 어머니한테 림시로 대리촌장을 맡겼고 어머니는 달수가 채 끝내지 못한 수도공사를 위해 불철주야 뛰였다. 원래 걍핏한 몸매인 어머니는 더욱 말라갔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아침이면 또 싱싱한 얼굴로 일보러 나갔다.
수도공사는 예전대로 소리없이 진척이 되였다. 향에서 나서서 남포를 금지시켜고 인력으로 구뎅이를 팔것을 요구했다. 폭파약은 향 무장부에서 몽땅 압수해갔다. 수도공사 진도는 늦어졌지만 더는 사람의 생명을 걸고 모험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억척스레 해제낀 보람으로 수도가설공사는 파종직전에 마무리되였다.
하얀 수도관이 땅에 묻기웠고 그 수도관속으로 피보다 더 값진 수도물이 집집의 부엌으로 흘러들었다.
할아버지는 수도꼭지를 비틀며 흘러나오는 수도물을 한참 내려다보더니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인젠우물을 도로 묻어버려야겠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우물인데 묻어버리겠슴두. 두고두고 마시며 후세에 물려주여야 합지.”
외할아버지도 할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해 어머니도 똑같은 말을 외할아버지한테 했다.
어머니는 대리촌장으로부터 정식촌장으로 임명되였고 나는 촌장의 아들이 되였다.
몇년이 흘러 우물을 긷는 사람이 없어지고 차츰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갈 무렵의 어느날 우물뚜껑을 연 할아버지는 말아버린 우물을 들여다보고 아연해졌다.
“이게 다 자연의 순리이니 따를수밖에 없다. 액운을 몰아온 우물이니 묻어버려야겠네.”
할아버지는 마을사람들을 휘동해가지고 수레에 흙을 실어다 우물을 메웠다.
어머니는 묻어버린 우물자리에 돌을 깔고 원래있던 정자를 파하고 더 큰 정자를 추녀높게 지어 마을사람들의 소일거리를 즐기는 장소로 만들었다.

9. 전화위복
어느날 아침 외할아버지가 웃음을 흘리며 우리집으로 올라왔다. 보매 기분좋은 일이 생긴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의 웃는 낯에서 뭔가를 봐내려고 두눈을 쪼프렸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수도가설공사가 끝난후로 시름시름 앓는것에 마음이 무거워있던차에 외할아버지의 얼굴이 펴인것을 보고 심정이 한결 개운해졌다.
“아침에 우물뚜껑을 열어보니 우물에 물이 가득 차있더군. 이게 무슨 징조일가, 사돈?”
할아버지도 외할아버지의 말에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한참후 할아버지가 멀리 천불지산을 바라보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애초에 우물을 파느라 부산을 떨지만 않았어두 이런 일들이 없었을거네. 내가 너무 오지랖넒게 날뛰였지.”
두 로인은 뒤짐을 지고 하암동으로 내려가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우물안에는 맑은 물이 가득 차있었고 물우에 두 로인의 엉성한 몸이 비춰졌다. 그 뒤로 구름이 둥둥 떠다니고있었다.
“우물이 차오른걸 보니 아마도 좋은 징조갑네.”
외할아버지의 말을 할아버지가 받았다.
“인젠 좋은 일 생길 때가 됐지. 허허허.”
두 로인은 우물을 들여다보며 언거번거 주고받았다. 두 로인의 얼굴에 미소가 물너울처럼 퍼져갔다.
어머니는 하암동우물에 다시 물이 차오른것이 기쁜것이 아니라 우물로 인해 세월을 아우르며 생긴 두 로인의 알륵이 서서히 풀려 한곬으로 흘어가는것이 더 기뻤다.
어머니는 하암동우물에 큰 정자를 만들어 비를 피하게 해주었고 우물주위에 대리석을깔아 마을사람들이 우물로 나와 빨래하고 모여 한담할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상암동우물옆에 할아버지가 세웠던 “석정”이라고 새긴 비석을 가져다 하암동우물옆에 세워놓았다
그후 행정분할을 하면서 석암동은 다시 석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여 정식으로 석정촌이 되였고 어머니는 석정촌 제1임 촌장이 되였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향부련회주석으로 당선되여 명실공히 국가공무원이 되였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내가 대학을 다니는 그 몇년동안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두집 로인들의 초상을 지내주었고 묵묵히 삼년제까지 마무리했다.
내가 대학을 나와 대도시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자 어머니는 나한테 한가지 부탁을 해왔다.
“아들. 저기 어머니한테 남자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문 좀 하자.”
머뭇거리는어머니의 목소리에는 행복감이 그들먹하니 잠재해있었다.
“어머니 인생인데 왜 내가 간섭합니까? 내 보기에도 어머니가 생각 잘한것 같습니다.”
“호호호. 알았다. 설에 올 때 좋은 술 둬병 사가지구 오나.”
나는 어머니한테 집을 향소재지로 옮길것을 권고했다.
“출근이 번거로울텐데 집을 향소재지로 옮기십시오.”
“번거로워두 여기 석암동에서 그냥 살고싶구나. 우물도 지킬겸.”
나는 어머니가 나서 자란 석암동과 석암동 우물에 미련이 남아 떠날수 없을거라는것을 잘알고있었다.
“그럼 어머니 편할대로 하십시오. 나두 이제 때가 되면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 모시고석암동우물곁에서 살겁니다.”
나의 말에 어머니는 웃었다. 나도 즐겁게 웃었다. 둘은 오래도록 웃었다.
기실 한마을에는 우물이 하나였어야 했다.

2017년 2월 27일
룡정에서 탈고
 

▲ 그냥 자기도 모르게 조용히 찾아온 곳이다. 가슴에 별이 뜬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윤동주와 끊임없이 시로 대화를 해온다. 떠날 수 없는 고향이다....<편집자>

      단편소설

《파평》 윤씨
 


1
내가 일곱살되던 가을의 어느날 아버지와 삼촌이 잉어로 인해 한바탕 말다툼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날 삼촌은 마을앞 늪지에서 두어근 남짓이 되는 잉어 한마리를 잡아들고 메기입이 되여 우리집 대문을 떼고 마당에 들어섰다. 민물고기는 흔하디 흔한 세월이였지만 잉어같은 고급어종은 양어장에서만 키웠기에 쉽게 맛볼수 없었다. 내가 삼촌의 손에서 푸덕거리며 꼬리치는 잉어를 내려다보고 환성을 지르자 마루에 앉아 도리깨를 손질하던 아버지가 얼굴이 일그러지며 손을 홱 내저었다.
《당장 가져다 물에 도로 놔줘라.》
나는 이렇게 귀한 물고기를 도로 물에 놔주라니 아버지가 정신이 좀 돌지 않았나하여 수염이 더부룩한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여있었다.
《또, 또 시작한다. 그따위 귀신하품같은 소리를 좀 하지 마오. 그래 형님 혼자 파평 윤씨요? 그래 파평 윤씨는 잉어를 먹으문 뭐 씨가 마른다오, 룡왕이 잡아간다오?》
《먹겠으면 니나 가져다 먹어라, 내 눈에 보이지 말구.》
아버지는 그대로 힝하니 집안으로 사라졌고 삼촌은 투덜거리며 잉어를 들고 대문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다가 삼촌이 그 귀한 잉어를 도로 물에 놔주면 잉어고기를 먹지 못할거라는 생각에 부랴부랴 삼촌을 뒤 따라갔다.
삼촌은 잉어를 들고 곧추 집으로 가더니 잽싼 솜씨로 잉어료리를 해놓았다. 그리고는 술병을 들고 상에 마주앉더니 나한테 아버지의 옹고집을 절대 따라 배우지 말라고 하면서 나한테 잉어고기 한덩이를 접시에 담아주었다.
나는 잉어고기를 먹으면서도 아버지의 성난 얼굴이 떠올라 삼촌한테 나의 의뭉스러움을 털어놓았다.
《삼촌, 아버지가 왜 삼촌이 잡아온 잉어를 보구 화내오?》
삼촌은 내 물음에 신비스런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뇌까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니 아버지를 신선이라고 한단다.》
《좀 차근차근 알려주오.》
내가 조금 역정을 동반한 어투를 내뱉자 삼촌은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이건 옛말인데 멀고 먼 옛날 우리 파평 윤씨네 선조가 싸움에 패해 쫒겨가다가 강을 만나 건느지 못하고 있을 때 신기하게도 잉어무리가 나타나 다리를 놔주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한다. 그래서 그후부터 우리 파평 윤씨는 잉어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전해내려왔다는 구나. 넌 이런 귀신하품같은 소리를 믿니?》
《혹시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옛날에...》
나는 난생 처음 아라비안나이트같은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아버지편을 들고싶었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더니. 됐다. 그만하구 잉어고기나 먹어라. 오늘 실컷 먹고 다시는 먹지 마라. 아버지가 알면 니 성을갈아버릴지도 모르니까.》
나는 잉어가 우리 파평윤씨와 이런 신화같은 이야기로 얽혀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화내는 그 의미를 어지간히 리해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삼촌이 끓여준 잉어탕맛은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태여나던 해 삼촌은 군부대에서 복원해 고향에 돌아왔다. 그해는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전 해였다. 삼촌은 이름이 영규였고 우리 파평 윤씨가문의 셋째이자 막내였다. 아버지 형제는 모두 셋이였는데 아버지는 항렬로 둘째였고 큰 아버지는 광복후 마을 자위대대장으로 있다가 마을에 잠입한 강 건너로 도망갔던 지주 잔여세력들의 보복으로 총에 맞아 사망하고 기실은아버지가 여직껏 큰 아들, 큰 형노릇을 해온 셈이다.

삼촌은 아버지보다 여덟살이나 어렸지만 늘 아버지가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다투기가 일수였다. 삼촌는 어릴 때 크게 앓았는데 할아버지가 민간료법을 쓴다면서 삼촌의 다리에 숱한 뜸을 떴다. 그래서 그의 다리에는 뜸자리가 희뜩희뜩하게 가득 남아있었다. 삼촌이 어릴 때 마을사람들은 그의 다리에 난 뜸자리를 보고 얼룩 송아지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삼촌의 어릴 때 별명이 《얼룩이》였다. 삼촌은 어릴 때 공부를 제대로 못했지만 후에 부대에 입대해서 보고 듣고 배운 지식도 많았다. 그리고 책보기를 무척 즐겼는데 책에서 배운 지식을 응용한 덕인지 머리굴리기를 잘해 린근사람들은 《얼룩이》라고 하면삼촌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머리를 잘 굴린 덕에 남못지 않게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성격이 좀 우락부락해서 늘 아버지와 의견분기로 작은 다툼이 잦게 일어나군 했다. 하지만 삼촌네는 우리보다 더 잘 살았다.
나의 아버지는 온순한 편이였지만 우격이 세였고 판가름이 명백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삼촌의 일거수 일투족을 늘 마땅잖게 여기면서 형으로서의 의무감으로 훈계아닌 훈계를 하군 했다.나의 아버지는 순수하고 투박한 시골 농사군이였지만 마을과 린근에서 《장인(상례나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으로 유명해 아버지를《신선》이라고 불렀다. 동네나 이웃마을에 상사가 나면 어김없이 아버지를 청해 상례와 장례행사를 돌보게 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장인》이 되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내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늘 이웃집 제사나 장례에 다니는 것을 많이 보아왔던 것 같다. 아버지가 제사나 장례에 갔다오면 깊숙한호주머니에서 사탕이나 색과자(과자에 물고기나 짐승모양을 낸후 색을 올린 과자 일종)같은 당과류를 꺼내 나에게 주고는 귀신을 대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던 말이 아직도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할머니는 내가 스무네살 먹던 해,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세상 떠난지 20년후에 돌아가셨다. 내 어린시절 기억속의 할머니는 머리가 하얗게 서리내린 듯 했고 늘 흰저고리를 입고 있었으며 흰 고무코신을 신고 다니셨다. 그 당시 그런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로인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극히 드물었다. 할머니는 남들이 명절에만 입는 한복을 평소에도 입었는데 한복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할머니가 세상뜨자 아버지와 삼촌사이에 또 다툼이 벌어졌다. 원래 할머니한테는 반지가 하나 있었는데 할머니가 아까워 잘 끼지 않고 궤짝에 넣어두고 있던 금반지였다. 꽤나 값이 갈듯한 반지였지만 여태껏 할머니가 생전이여서 누구도 그 반지를넘보지 못했다. 그 금반지는 할머니가 시집올 때 할아버지가 약지에 손수 끼워준 반지라고 하면서 할머니는 생전에 우리 앞에서 그 금반지를 꺼내 베천으로 윤기나게 문지르는 것을 여러번 봤었다.
아버지는 《장인》이였던만큼 사람이 죽으면 치러야 할 일, 갖추어야 할 물건같은 이런저런 조목들을 일일이 알아서 처리했지만 삼촌은 그런 귀신놀음에는 흥취가 아예 없는 듯 금반지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며 아버지의 의사에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좀 그만 하오. 죽은 사람이 뭘 안다고 이걸 지켜라, 저걸 조심해라 그러오. 참 답답하오.》
하지만 아버지의 신념은 굳었다.
《안되면 안되는 줄 알아라. 고인이 쓰던 물건에 욕심을 부리면 액운이 닥칠 것이니 사욕을 버리고 내 말에 따르거라.》
아버지는 금반지가 든 나무함을 손안에 꼭 쥐고 삼촌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가락지를 보내겠으면 형님 몫만 보내오. 내 몫은 내가 가지겠소.》
삼촌은 한사코 범의 턱밑의 고기를 넘보는 여우마냥 아버지 손에 들려있는 가락지함을 쏘아보고 있었다.
《이건 엄마가 우리한테 남겨놓은 유품이 아니라 저승에 가지고 가야 할 소장품이다. 너 참 한심한 놈이구나.》
금반지가 든 나무함이 아버지의 손에서 세차게 떨렸다.
《그 가락지를 엄마함께 파묻으면 귀신이 엄마를 호강시켜준다오?》
갑자기 아버지의 손이 삼촌의 볼따귀에 부딧치며 《철썩!》 소리를 냈다. 순간 정적이 방안의 공기를 응고시켰다.
잠시후 아버지의 손에서 금반지를 넣은 나무함이 빠져나와 방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무함 덮개가 열리며 노란 빛을 발하는금반지가 또르르 굴러나와 삼촌의 발치에 멈춰섰다.
《엄마의 혼이 아직 니놈의 머리우에서 배회하며 내려다 보고 있는데도 무섭지 않니? 그래 가져가라, 가져가! 우리 파평 윤씨가문에 니같은 파렴치한 눔이 있다는게 수치스럽구나.》
얼얼해진 볼을 어정쩡하니 싸쥐고 있던 삼촌의 얼굴은 금시돼지간처럼 검푸르게 변하더니 발치의 금반지를 발로 차버리고는 맘대로 하라면서 손을 허공에 내젓고는 문을 박지르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는 삼촌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웃칸으로 올라가 이미 렴습을 치른 칠성판에 누워있는 할머니의 옷깃을 들고 베천에 싼 금반지를 품속에 꽁꽁 밀어넣으면서 혼자소린지 누굴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중얼거리 듯 말했다.
《액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계를 늦추면 어느새내 곁에 와 있는거야.》
시골의 장례는 옛식대로 사흘장례를 치르게 되여있었다. 하지만 간편하고 산 사람이 손쉽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불필요한 례법을 없애고 주요한 행사만 치르고 있었음에도 아버지는 한사코 자신이 알고 있는 장례법에 따라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이 미리 봐두었던 묘자리에 개토하게 했고 남들이 잘 나서지 않는 상사라 먼 친척되는 할아버지를 모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번 부르는 복(復), 즉 초혼을 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입관을 하고 성복을 일구고 운구, 하관, 위령제에 이르기까지모두 맡겼다.
이튿날 령구를 싣고 묘지에 도착해서 하관했는데도 삼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많이 굳어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 산 아래에 눈을 주었다. 하지만 삼촌의 그림자를 나타나지 않았다. 례의대로라면 이것은 최대의 불효였다. 아버지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 있더니 어금이를 부드득 소리나게 으깨물더니 먼 친척되는 할아버지한테 시작하자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러자 로인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호주머니에서 종이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글자를 확인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유세차 을축년 5월 20일, 학생…》
《잠깐…》
이때 갑자기 언덕아래에서 삼촌이 손사래치며 헐레벌떡 뛰여올라왔다. 삼촌의 출현에 모두의 얼굴에는 안도의 기색이 비꼈고 아버지의 찌프려졌던 량미간도 서서히 펴지더니 손을 내밀어 헐떡거리는 삼촌을 자기옆에 끌어당겨다 세웠다.
삼촌은 머밀거리며 아버지의 곁에 섰지만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손을 뽑아 몸뒤로 가져갔다.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고까움은 가시지 않은듯 싶었다. 다만 아들이라는 직책에 충실하려는 모지름음이 떨리는 눈길에서 서서히 발하고있었다. 그러던 삼촌의 큰 눈에서는 어느새 닭똥같은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지고있었다.
아버지는 그러는 삼촌을 흘깃 건너다보고는 먼 하늘을 한참 우러르더니 다시 고개를 깊숙히 숙였다. 그렇게 성분을 만들어 장례는 무사히 마무리가 되였고 금반지 풍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조용히 가라앉았다.

2

아버지는 금반지로 인해 삼촌의 비위가 많이 상해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어느날 아버지는 아침밥상에서 어머니한테 홍두깨같이 불쑥 한마디 했다.
《집에 있는 송아지를 영규네를 주기오.》
《송아지는 왜?》
어머니는 밥을 입에 문채 아버지의 수염이 더부룩한 얼굴을 의뭉스레 쳐다보았다.
《전번에 금반지때문에 걔한테 좀 안돼서 그러오.》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손에 들었던 숟가락을 상우에 내던지더니 발딱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뭐 부잠두. 생원(삼촌)네는 땐삥썅(电冰箱),세탁기, 없는게 없이 우리보다 더 잘사는데. 안돼꾸마. 》
《형제간이 그런 의리로 살지 뭘 그러오. 그리고 서로 잘 살면 좋지.》
《서로 잘산다구? 당신은 신선이 아니라 보살입꾸마. 죽은 형님의 무휼금도 혼자 해먹은 사람이 형제간의 의리는 무슨 개떡같은 의리?》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금시 굳어져버렸다. 그 일만 입에 올리면 아버지는 할 말을 찾지 못했고 모진 상처를 입은 모양으로 암담한 기색까지 지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 일로 인해 마음속에 모진 상처를 입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사심을 뼈저리게 느꼈을테지만 아버지는 그후에도 동생을 크게 탓하지 않았고 다시는 그 일을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삼촌의 머리는 정말 총명하다고 해야 할것 같다. 돈에 관련되는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머리를 굴려서라도 꼭 그 돈을 손에 넣고야 마는 돈 집착이 대단한 사람이였다.
호도거리를 시작하기전해 봄이였다. 삼촌은 향정부의 민정조리로 사업하는 친구를 찾아가 문화대혁명시기에 끊겼던 렬사유가족무휼금를 다시 지급해줄수 없는가고 탐문했다. 삼촌의 이 생각은 노다지 그 자체였다. 삼촌은 이 일을 아버지한테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있었기때문에 이 일이 성사되여 아버지가 알게 되면 자기한테는 한푼도 차례지지 않을것임을 불보듯 빤히 알고있었다. 친구가 힘써 보겠다고 하자 삼촌은 그 친구한테 소문을 내지 말라고 천당부만당부하면서 닭 두마리까지 가져다 주고는 친구의 입을 막아놓았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일을 성사시켜주었다. 그 당시 돈으로 백여원에 달하는 무휼금을 가로채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말았다.
워낙 순박한 농군인 아버지는 그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또한 그렇게 해도 되는지도 모르고있었다.
국경절이 다가오는 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산너머 금곡마을로 칠순을 훌쩍 넘긴 외가집 할머니 생신이라 외삼촌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외할머니 생신술자리에서 문화대혁명때 박해받은 사람들한테 무휼금이 내려왔다는 말을 얻어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인차 렬사칭호를 받은 큰 형님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럼 할머니도 렬사유가족무휼금을 받을수 있을것이 아닌가?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인차 삼촌을 찾아갔다. 아버지의 말에 삼촌의 얼굴은 금시 파래지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오리발 내밀듯 딱 잡아뗐다.
《큰 형님의 렬사무휼금은 문화대혁명때 끝났는데 뭘 그러오. 나도 알아봤소. 아니, 아니라니까.》
《렬사탑에 큰 형님 이름이 떡하니 새겨져있는데 무휼금을 안주다니 말이 안되지.》
《나라에서 하는 일을 우리 촌놈들이 알도리 있소?》
《글쎄다, 그전에 받았으니 괜찮다마는…》
순박했던 아버지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삼촌의 그 말을 믿어버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는 삼촌을 잘 아는지라 여기에 꼭 삼촌의 꿍꿍이가 있을거라고 여기고 아버지 몰래 향정부로 찾아가 끝내 삼촌의 속내를 밝히고말았다.
어머니의 말에 사실을 알게 되자 아버지의 얼굴은 퍼렇게 독이 올라있었다. 어머니는 성난 암펌처럼 삼촌을 욕해댔다. 나는 그러는 어머니를 처음 보았다.
《살다 살다 별 꼬라지 다 보겠네. 어마이, 아들 하나 잘 뒀습꾸마. 가서 그 잘난 아들한테 물어봅소. 그 돈을 가지고 얼마나 잘 살겠냐구?》
어머니의 성난 암소모양에 할머니는 도대체 무슨 감투끈인지 몰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돈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그 놈 자식이 어마이앞으로 내려온 큰 형님의 렬사무휼금을 가로 챘다꾸마.》
할머니는 세상에 벼락맞을 놈이라고 삼촌을 욕하더니 구들을 내려갔다. 그러는 할머니를 아버지가 말렸다.
《어마이, 관둡소. 엎지른 물인데 욕해봤자 소용없읍꾸마.》
아버지는 옆에서 삼촌을 욕하는 어머니도 제지시키더니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동네에 나가 술에 취해 들어왔는데 바깥 마루에 걸터앉아 혼자 하염없이 락루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아버지는 술로 자신의 마음을 위로 받으려고 했고 눈물로 삼촌을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일찍 저 세상에 간 큰 형님을 원망했다. 큰 형님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던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것이 아닌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나까지 그 일에 대해 모르는척 해온지 한달이 지난 어느날 저녁, 삼촌은 숙모와 함께 풀이 잔뜩 죽어 후줄근해진채 우리 집에 들어섰다. 나는 십상팔구 짐작이 갔다. 아니나다를가 삼촌은 연기하듯 할머니와 아버지앞에 무릅을 꿇으면서 울음부터 터뜨렸다.
《엄마(삼촌은 할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형님, 아주머니. 내가 정신나간 사람이오. 날 맘껏 패주오.》
어머니는 말도 없이 앵돌아져 앉았고 할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은 무표정한 채 굳어져있었다.
《정말 볼 면목이 없슴다.》
숙모가 간신히 한마디 뽑았다.
《볼 면목이 없으면서 왜 왔냐? 보기도 싫으니 날래(어서) 내 앞에서 꺼지거라.》
할머니는 부들부들 떨리는 소리를 겨우 내밷았다.
삼촌은 그저 눈물만 훔칠뿐 한마디 말이 없었다. 보매 엄청 후회하며 뉘우치고있는듯 했다.
한참후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을 기다리느라 한달이 걸렸구나. 그래도 네 발로 이렇게 찾아와서 참 다행이다. 돈을 누가 쓰던 상관없지만 사람은 량심으로 살아가는게 아니냐? 너도 자식있고 나도 자식있는데 이런 일이 자식들한테까지 련루가 될가봐 그게 더 근심이다.》
《형님, 미안하오. 흑흑》
삼촌은 울음을 터뜨리며 아버지 무릅을 끌어안았다. 아버지도 삼촌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는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지고있음을 나는 보았다.
그때 숙모가 호주머니에서 십원짜리 묶음을 꺼내 할머니앞에 내놓았다.
《그때 받았던 그 무휼금임다.》
돈을 보자 아버지는 허구프게 웃으면서 돈을 도로 숙모의 호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제수, 내가 그 돈때문에 영규를 나무라는게 아니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할가봐 그게 가슴에 맺쳐 그러는거요. 제수도 이번 일을 가슴에 손얹고 잘 생각해보기 바라오. 그 돈은 두었다가 조카 학교갈 때 학비에 보태오. 그놈 아버지 닮아서 머리가 좋던데.》
그리고는 태연하게 미소까지 보였다. 난생처음 이렇게 생소한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3

큰 아버지는 아버지와 삼촌과 많이 달랐다. 큰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일제강점시기 중학을 마친 사람이였다. 큰 아버지는 16세 나이에 그 시기 룡정에 주재해있던 간도일본총령사관에 들어가 잡일도 해보았고 일본이 투항하고 일본군이 개복자결하는 모습도 보았으며 일본군이 던지고 간 군담요도 덮어보았다. 그리고 1947년에 시작된 토지개혁에도 적극 참가해 공산당에도 가입했다. 큰 아버지는 그렇게 집단적인 생활을 즐겼기에 23살에 촌의 자위대대장이 되였다. 그때 자위대 임무는 마을을 순라하면서 토지개혁때 청산맞은 지주잔여세력이 강건너에서 강을 건너 마을에 들어와 보복하는것을 막는것이였다. 원래 마을에는 지주가 한호였고 부자집이 두집이였다. 그들은 집과 재산을 청산맞자 강을 건너가 여러곳에서 쫓겨온 지주, 부자들과 세력을 모아 항상 두만강변의 여러마을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며 안전을 위협하고있었다. 광복을 금방 맞은 때라 세상이 뒤숭숭했으며 곳곳에 토비와 지주무장세력이 둥지를 틀고있었기에 마을에는 자위대대원 30여명이 번갈아가며 순라를 했고 밤이면 촌지부 보초실에 모여 항상 대기하고있었다.
1947년 늦가을, 밖에서는 차가운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고있었다. 어둠이 깔린 마을은 지척을 분간할수 없을 정도로 칡흑같이 어두웠다. 밖은 비소리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을은 깊은 잠에 빠져 정적속에 잠겼다. 문틈새로 처마에서 떨어지는 락수물소리가 낮잠자는 나그네의 코고는 소리마냥 고르롭게 비집고 들려왔다. 촌지부보초실에는 큰 아버지를 비롯한 자위대원 다섯명이 순라를 마치고 돌아와 석유등불밑에서 두런두런 한담을 나누고있었다. 그들은 서로 귀신이야기부터 시작해 마을에 처녀가 몇명이고 총각이 몇명인데 비례가 맞지 않는다는둥 요즈음 누구와 누구가 눈치가 이상하다는둥 하면서 잡담을 늘여놓고있었다. 그렇게 자정이 가까와 오자 큰 아버지는 래일 일밭에 나가야하겠기에 자위대원들을 자게 하고는 소피보러 웃옷을 머리에 쓰고 밖으로 나왔다. 비는 좀 누그러든듯 했으나 빗발은 차갑게 몸을 엄습했다. 큰 아버지는 몸을 움츠리고 울바자 가장자리에 나가 숫총각의 기세로 한배짐 갈겼다. 큰 아버지가 몸을 으스스 떨며 바지를 추슬리는 순간 얼핏 눈결에 열대여섯메터쯤 떨어진곳으로부터 커쿨진 검은 그림자 여러명이 이쪽으로 다가오는것이 보였다. 찬찬히 여겨보니 행동거지가 이상했고 손에 무언가 긴 물건이 들려있었는데 이쪽을 향해 가리키고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친 큰 아버지는 몸을 돌려 집으로 달려들어가며 소리질렀다.
《놈들이다!》
《따땅…!》
총소리와 함께 큰 아버지는 문고리를 잡은채 마루우에 쓰러졌다. 이때 집안에 있던 자위대원들이 큰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총소리에 총을 들고 연기에 쏘인 벌떼처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마루우에 쓰러진 큰 아버지를 보자 대뜸 사태의 엄중성을 알았는지 너도나도 어둠속에 대고 눈먼 총을 쏘아댔다. 그 사이 그 검은 그림자들은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마을뒤쪽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총소리가 마을을 깨운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큰 아버지는 영문도 채 알지 못한채 누군지도 모를 자객들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말았던것이다. 그때 큰 아버지 나이가 23살이였다.
이 사건은 전 현을 들썽케 했고 린근 마을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더구나 죽음을 경험한 우리마을은 인심이 뒤숭숭해 누구도 해만 떨어지면 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며 문도 두겹세겹으로 잠궜다. 촌의 자위대는 밤낮으로 순라했고 력량도 증가해 마을을 지켰다. 그렇게 공포의 나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사람들은 차차 경각심이 뒤쳐졌고 큰 아버지의 죽음도 점점 잊혀져갔다. 그해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닥쳐오자 한통의 희소식이 마을로 날아왔다. 강건너에 있던 지주잔여세력들이 그곳의 정부제도에 맞서다가 여러명 사살되고 더는 발붙일곳이 없자 남쪽으로 도망쳐버렸다는것이였다. 그 소식에 마을사람들은 또 한번 광복이라도 맞이하듯 들끓었다. 온 마을은 축제의 기분처럼 사람마다 기쁨에 겨워 즐거워했다. 우리마을뿐아니라 린근의 여러마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큰 아버지 사살사건은 한통의 소식으로 일단락 지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게 끝이 아니였다. 큰 아버지의 후사처리문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큰 아버지의 죽음을 잊고있었지만 할아버지만은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있었다. 태여나서부터 흙에 묻혀 살아온 할아버지는 봄에 씨뿌리면 가을에 수확하듯 모든것에 명백히 하며 순박하게 살아온 농부였다. 그래던만큼 정부에 대한 믿음도 컸다. 할아버지는 정부에서 큰 아버지에 대해 후사처리를 해주기바랐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정부에서는 가타부타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이 이렇게 피를 헛되게 흘리게 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쟁마당에서 전사한 사람들도 위대하지만 자기 아들도 그들만 못지 않게 위대하다고 여겼다. 정부의 의도는 알수 없지만 따질것은 따져야 한다는것이 할아버지의 도리였다. 일단은 할아버지의 의사를 정부에 전달하는것이 첫보조였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열살도 채 되지 않은 삼촌을 데리고 십여리길을 걸어 구공서로 찾아갔다. 할아버지가 삼촌을 데리고 간데는 리유가 따로 있었다. 첫째는 삼촌이 나이가 어렸기에 아무말을 해도 크게 해가 될게 없었고 다른 하나는 그때 삼촌은 어린 나이에도 머리가 잘 돌아 말을 어른처럼 사리에 맞게 곧잘 했기때문이였다. 그러니 삼촌의 머리는 날 때부터 총명했던것이 분명했다.
구공서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구를 찾아야 할지 마음이 당황스러웠다. 집에서 떠나올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으나 정작 위엄스레 앞을 가로막은 구공서 나무간판을 마주하자 위구심이 서서히 마음한구석으로부터 괘여올라왔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게 아닌가하고 생각을 다시 해봤으나 그래도 해결책은 꼭 있을거라고 여겨온 할아버지였던만큼 신심도 컸다.
구공서 대문에 들어서자 총을 든 누런 군복을 입은 보초병이 앞을 막아나섰다.
《누굴 찾습니까?》
어정쩡 그 자리에 서버린 할아버지는 금시 대답을 못하고 두눈이 초롱초롱해 누런 군복의 보초병 손에 잡힌 보총을 호기심 가득차 바라보는 삼촌을 툭 건드렸다. 삼촌은 인차 할아버지의 의사를 알아차렸는지 오돌차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봉촌에서 왔슴다. 우리 형님은 놈들 총에 맞아 죽었슴다.》
삼촌의 말에 보초병은 인차 태도를 바꾸며 알흔체했다.
《몇달전에 반동파 총에 맞아 희생된 오봉촌의 그 동무 가족입니까?》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보초병은 할아버지와 삼촌을 구장사무실로 안내했다. 구장은 할아버지 나이와 비슷해보이는 구레나룻을 한 사람이였다. 좀 거칠어보이긴 하지만 첫 대면인데 많이 친절했다. 들은바에 의하면 구장은 항일련군에서 소대장으로 있던 항일투사였고 고향은 함경도 길주라고 했다.
구장은 푸접좋게 웃으며 할아버지와 삼촌한테 자리를 권한후 마주앉았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일에 너무 라태해진것 같습니다. 그런데 봉규동무의 사망은 전사가 아니라서 아직 렬사로 비준되지 못한것 같습니다. 우리도 여러모로 알아보고있는 중입니다만…》
《그럼 우리 봉규가 그렇게 피를 헛되이 흘려야 된다는건가유?》
《그런 뜻이 아니라 아직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그럽니다.》
구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삼촌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어르신님, 우리 형은 마을을 지키다가 놈들 총에 죽었슴다. 전장에서 싸우다가 죽은 사람이나 우리 형이나 다 같은 놈들 총에 맞아죽었는데 왜 전장에서 죽으면 렬사구 후방에서 죽으면 렬사가 못됨까?》
구장은 놀란 얼굴로 삼촌을 한참 내려다보더니 삼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잘 말했다. 참 담차구나. 이 아저씨가 너의 소원을 꼭 풀어주마.》
구장은 할아버지한테 큰 아버지의 렬사칭호문제를 꼭 상급에 제기해 유가족의 소원을 풀어줄것을 약속했다.
삼촌의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효과가 있을줄은 할아버지로서도 생각지 못한 일이였다. 할아버지는 속으로 삼촌을 데리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으며 막내아들에 대한 대견함으로 마음이 즐거워지기까지 했다.
구공서를 나오자 할아버지는 삼촌한테 시골에선 쉽게 먹을수 없는 꽈배기를 하나 사주었다. 그것은 삼촌이 태여나 난생 처음 먹어보는 별미음식이였다.
그해 겨울 정부에서는 큰 아버지한테 렬사칭호를 수여하고 우리 가족을 렬사유가족으로 칭해주었다. 우리 가족은 친인을 잃었지만 그만큼 지위와 대우가 높아졌고 할머니앞으로 무휼금까지 내려왔으며 명절이면 정부에서 구장을 비롯한 어르신들이 위문을 왔다가군 했다.

4

오봉산 산허리를 얼싸안고 간신히 빠져나온 콩크리트길은 넓은 개활지를 만나서야 비로소 허리를 펴며 두만강기슭을 따라 곧게 쭉 뻗어갔다. 그 길은 무자비하게 우리 마을뒤 공동묘지를 바로 꿰지르고 지나갔다. 원래 마을앞으로 흙길차도가 있었는데 후에 길을 곧게 편다면서 큰길이 마을뒤로 지나기때문에 마을뒤 공동묘지를 모두 옮기라는 이묘통지가 마을에 내려왔다. 정부의 지시이니 할수 없이 응해야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놀랜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귀신을 놀래우면 액운이 따른다고 했다. 무슨 란리도 아니구…》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의 정책은 무조건 관철하고 실천에 옮겨야 했다.
아버지의 말에 삼촌은 허구프게 웃으며 아버지를 시까스렀다.
《형님, 귀신도 사람처럼  놀래오? 허참, 당의 정책이 좋아 흙길도 콩크리트길로 고치는데 뭐가 불만이오?》
《불만이 아니라 고이 잠자는 혼을 건드리면 사람한테 해가 올가봐 그러는거지.》
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비껴있었다. 하지만 묘는 이장을 해야 했다.
이묘통지가 와서 며칠후 마을에서는 묘지임자들을 동원해 통일적으로 이묘를 시작했다. 임자없는 무덤은 정부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마을뒤 공동묘지에는 30여기의 무덤이 시루안에서 쪄진 만두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었는데 그 가운데 큰 아버지 무덤도 끼여있었다.
면례(묘지이장)하는날 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지꿋게 따라나섰다. 삼촌은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지금부터 배워두거라, 이후에 아버지뒤를 이을지 누가 알겠니?》
그리고는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보며 알수 없는 웃음을 얼굴에 띄웠다.
《알아두면 랑패없지 않소? 아버지 없으면 삼촌 장례 누가 치러주오. 내가 해야지.》
《짜식.》
삼촌은 나의 엉덩이를 악의없이 차면서 웃었다.
아무튼 나는 호기심에 의한 충동으로 무덤파는것을 직접 내 눈으로 똑똑히 보려했던만큼 결심을 단단히 다졌다. 무서울게 없었다. 혼자도 아니고 아버지와 삼촌이 있었기에 마음은 든든했다. 다만 파낸 유골이 어떻게 생겼을가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할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나까지 셋은 소달구지에 앉아 마을뒤 공동묘지로 갔다. 가기전 아버지는 엄마를 시켜 유골를 부위별로 쌀 백지와 염습할 때 쓸 광목천, 그리고 유골을 모실 칠성판과 제사 지낼 술과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시켰다. 어머니는 이런 큰 일에 대해서는 항상 아버지의 의사에 무조건 복종했다. 아버지도 어머니한테 당부하는것을 마치 응당한듯 여겼기에 모든 일이 자연스레 진행되였다.
묘지에 다달으자 아버지의 얼굴은 대뜸 근엄해졌고 몸가짐새를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것이 력력히 알렸다. 아버지는 웃음기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당부했다.
《엄마가 준비한 제사음식은 어딨냐?》
나는 대뜸 달구지에 실은 음식보자기를 내려 아버지한테 건넸다.
아버지는 음식보자기를 묘옆자리에 내려놓았다. 삼촌은 아버지가 하는양을 묵묵히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어딘가 비웃음이 가득 차 넘치고있었다.
아버지는 산신제를 지낸후 묘앞에 다시 음식을 차려놓고 우리더러 묘앞에 둘러서게 한후 술을 부어올리고 절을 세번 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알아들수 없는 말을 입속으로 념불외우듯 계속 중얼거렸다. 말은 알아들을수 없지만 그 뜻만은 분명히 알것만 같았다.
제을 끝내자 아버지를 비롯해 우리셋은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나는 묘를 파헤치는 순간 이름할수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상하게 가슴이 세차게 설레임을 어쩔수 없었다. 그때 내 나이 열여덟살이였다. 세상물정에 어섯눈이 뜨기 시작한 때라 이 순간이 나의 인생에서 삶과 죽음의 도리를 깨우쳐주는 인생과업을 수행하는 가장 엄숙하고 숭엄한 순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봉분을 파헤치고 관이 묻힌 자리를 짐작해서 파내려가기 시작하자 삼촌의 얼굴에는 점점 긴장감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마치 묻힌 관속에서 정말 귀신이라도 뛰쳐나올것 같은 예감때문인지 자주 아버지한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경계심을 가지고 삽질하기도 했다. 한참 파내려가던 삼촌이 갑자기《이크!》하며 무덤속에서 튕기듯 기여올라왔다. 삼촌의 얼굴은 흙빛이 되여있었고 두다리가 심하게 떨리고있었다.
《왜?》
아버지는 삼촌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 무덤속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우습깡스런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아버지는 삼촌손에서 삽을 빼앗아 들고 무덤속으로 내려갔다.
《난 또 형님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기라도 했는가 했지. 허참, 군대생활을 했다는 놈이 담이 작기는…》
《형님이 자꾸 귀신귀신하니까 신경 쓰이지 않소?》
삼촌은 무안했는지 얼굴이 뻘개지며 변명했다.
《이게 귀신이냐?》
이때 무덤을 파던 아버지가 뭔가를 삼촌발아래로 올리던지며 한마디했다. 그것은 붉은 천쪼각이였다. 삼촌은 덴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모양에 아버지와 나는 한바탕 웃어제꼈다.
아버지는 여기저기 찢겨진 붉은 천을 들고 무덤밖으로 나왔다. 그것은 한폭의 당기(党旗)였다. 생각해보니 큰 아버지는 공산당당원이였다. 유체를 묻을 때 관우에 당기를 덮어 장례를 치렀던것이다. 아버지는 잔디풀우에 찢겨진 당기를 정연하게 펴놓은후 아까 삼촌한테 던졌던 그 천쪼각을 가져다 제 위치에 맞춰놓았다. 당기는 화학섬유로 만들어진거라 원 모양이 그대로 보존되여있었다.
《우리가문에 공산당원은 형님 한사람뿐이구나. 렬사까지 됐으니 가문의 영광이다.》
《무슨 소용이요. 죽으니 한줌의 흙으로 되여버린걸.》
나는 그 당기를 보자 가슴이 벅차오름을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렬사의 조카로 된것에 더없는 자호감을 느꼈다. 나는 여직껏 이런 기분을 느껴본적이 한번도 없었던만큼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이였다.
아버지는 소달구지에서 칠성판을 내려 당기옆에 놓고는 백지를 꺼내 칠성판우에 한벌 폈다. 그리고는 다시 무덤속으로 내려갔다. 조금 지나자 아버지가 썩은 판자쪼각을 무덤밖으로 내던졌다. 나는 무심결에 무덤속을 내려다보았다. 열린 관속에는 검게 썩은 광목천이 덕지덕지 들어붙은 큰 아버지 유골이 뭔가를 기다리듯 누워있었다. 갑자기 여지껏 맡아보지 못한 이상한 냄새가 내 얼굴을 덮쳤다. 시체가 썩은 냄새였다. 일명 《저승냄새》였다.
《육탈이 잘됐구나. 수맥피해(유골에 물이 찬 상태)도 없고, 참 다행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근심했던바를 혼자소리로 되뇌였다. 그리고는 두개골부터 시작해서 각 부위별로 하나 삼촌한테  올려보냈다. 삼촌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어쩔수 없이 받아 종이로 유골에 묻은 흙따위를 닦은후 칠성판우에 순서대로 올려놓았다. 유골을 다 올려오자 아버지는 무덤속에서 나왔다. 아버지는 나와 삼촌을 부르더니 손바닥을 펴서 우리앞에 내밀었다. 아버지의 손바닥우에는 푸른 녹이 두툼하게 낀 줄당콩 크기만한 금속덩이 두개가 놓여져있었다. 찬찬히 여겨보니 탄알같았다.
《이게 탄알 아니유?》
삼촌의 두눈이 휘둥그래져서 아버지를 건너다보았다.
《그래, 이게 바로 형님을 죽인 탄알이다.》
《뭐라구?》
나도 놀라움과 호기심에 그 중 하나를 집어들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십여년간 형님은 이 원한을 가슴에 간직하고있었던거다. 오늘 이 탄알을 가슴속에서 꺼냈으니 형님은 인제부터 저 세상에서 편히 지낼거다.》
아버지는 가지고 온 도끼등으로 그 탄알을 돌우에 올려놓고 부셔버린후 그대로 유골을 파낸 무덤속에 던져버렸다.
아버지는 두손을 탁탁 털고는 유골이 놓인 순서를 확인한후 준비해두었던 광목천으로 렴습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거들던 삼촌이 한마디 했다.
《이 당기는 어쩌려우?》
《다시 덮어서 보내야지.》
아마 그 당기가 큰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마지막 명예이자 재산일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큰 아버지의 유골은 할아버지의 묘옆으로 옮겨져 자리잡았고 그후 할머니도 가지런히 그 자리를 지키게 되였다. 아버지는 여기가 쉽게 찾을수 없는 명당자리라고 여러번 되뇌이며 자랑삼아 우리한테 말했다. 나는 어떤곳이 명당자리인지 알수 없었던만큼 아버지가 명당자리라고 하면 명당자리라고 여겼다.
그후 나는 마을뒤산기슭의 렬사비에 새겨진 큰 아버지의 이름을 볼 때면 찢겨진 당기에 덮혀있던 큰 아버지의 유골을 떠올리군 했다. 다행이도 그것이 내가 큰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한 마지막 기회였던것이다.

5

내가 장가가기 두해전인 그해 추석날, 왠지 아침부터 까마귀가 귀찮게 울어대며 마을을 떠날념 않고 있길래 낫을 들고 대문을 나서던 아버지가 괜스레 넉두리같은 소리로 중얼댔다.
《까마귀가 설치니 길조가 아닌갑다. 오늘은 벌초나 해놓고 간단하게 제지내고 내려오자꾸나.》
《삼촌은 안감두?》
나는 삼촌의 자리가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삼촌의 역할을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손자이고 조카이지만 삼촌은 아들이자 동생이 아닌가. 순서는 아무래도 삼촌이 앞이고 내가 뒤였다. 나는 해마다 아버지를 따라 산소로 다니면서 느낀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바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지간의 끊기지 않는 뉴대가 바로 무덤이라고 여겼다. 인간은 이렇게 무덤을 만들어놓고 령혼에 기도하며 자신의 운명을 기탁한다. 그러한 기탁이 욕망으로 무너져내릴 때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게 된다.
나는 아버지가 얼마만한 기탁을 가지고 죽은자의 령혼을 불러오고 안식시키고있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버지의 그 한결같은 신념만은 알아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국이 병때문에 병원에 간다드라. 귀신이 붙었는지 갑자기 웬 정신병이냐?》
민국이는 삼촌의 큰 아들이다. 대학시험에 미끄러지자 우울해있더니 어느날 갑자기  귀신에게 홀리우듯 접신한 사람처럼 옷벗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미친듯이 추태를 부렸다. 정신이상을 호소하는 아들앞에서 삼촌은 속수무책이였고 숙모는 눈물만 뚤렁뚤렁 흘렸다. 정신병은 일단 걸리면 떨어지는 병이 아니기때문에 그 타격이 더 심했다.
나는 아버지 말에 입을 다물고말았다. 나 자신도 사촌동생의 병에 마음이 안스러워져 있었기때문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산소에 이르니 무덤과 무덤주위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잡초속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큰 아버지의 무덤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있었다. 아버지를 도와 무덤 세기를 깨끗하게 벌초하고나니 나는 이미 땀벌창이 되였다.
제까지 다 지내자 아버지는 제 지내고 남은 술을 술잔에 부어들고 한참 있더니 단숨에 굽냈다. 그리고는 조용히 아무일도 아닌듯한 소리로 한마디 했다.
《네 할미 무덤을 누가 판것 같구나.》
아버지의 그 말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남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아무 낌새도 채지 못했는데 도대체 아버지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건지 알수 없었다. 갑자기 공포가 엄습해왔다. 마치 할머니가 무덤속에서 서서히 걸어나오는듯한 착각을 느낄 지경이였다.
《여보, 무슨 소릴 하는겁두. 지금…》
어머니도 몹시 겁먹은 기색이였다.
《벌초하면서 보니 할머니 무덤자리 한쪽켠에 새 흙이 나와있고 풀도 봄풀이 아니였다. 내 짐작이 틀림없니라.》
아버지는 또 술 한잔을 비우면서 량미간을 찌프렸다.
《그럼 누가 할머니무덤을 도굴했다는겁두? 말도 안돼는 일이지. 우리하구 원쑤진 사람도 없는데…》
《글쎄다, 믿기지 않는 일이 우리 발등에 떨어지다니. 아무래도 내가 귀신을 노엽혀 화를 부른것 같구나.》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내려뜨린채 볼품없이 무너져있었다. 한참후 아버지는 나한테 당부했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거라. 이건 우리가문의 치욕이다.》
어머니는 더 말할나위 없거니와 나 역시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물론 삼촌하고도 비밀에 붙혔다.
그후부터 아버지의 말수는 더욱 적어졌고 장례집이나 제사집에 다니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으며 삼촌집에도 거의 가는 일이 없었다. 혹시 삼촌이 시내갔다가 돼지고기같은 색다른 음식을 사오면 마지못해 건너가군 했다.
아버지의 이상을 눈치챘는지 삼촌이 어느날 나를 불렀다.
《룡국아, 아버지가 좀 이상해진것 같구나. 어디 아픈게 아니냐?》
《아프긴, 일이 바빠 피곤해 그런거요. 삼촌, 신경쓰지 마오.》
나는 삼촌의 호기심을 눅잦혀주면서도 아버지에 대해 불안해오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아버지 신상에 난데없는 일이라도 생길가봐 걱정스러웠던것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생벼락이 삼촌 발등에 떨어졌다.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어느 추운 바람이 부는 날, 삼촌이 허둥지둥 우리집 문을 열어제끼며 대성통곡했다. 깜짝 놀란 우리집 식구들은 삼촌의 눈물코물 번벅이 된 모습에 아연해지고말았다.
《아니, 영규야. 무슨 일이냐?》
부엌아궁이에 마주앉아있던 아버지가 놀라고 어정쩡한 얼굴로 삼촌을 쳐다보았다.
《민국이가… 민국이가 목맸소. 어이쿠, 형님. 이게 웬일이우…》
이른 아침, 삼촌이 소여물을 주려고 소외양간에 들어가니 외양간 대들보에 민국이가 데룽데룽 매달려있었다. 밤중에 식구 몰래 자살을 해버린것이였다. 삼촌은 아들이 정신병에 걸렸어도 이렇게 독한 짓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만큼 그 타격이 너무나 아름차게 컸다. 아들의 시신을 보는 순간 삼촌은 하마트면 기절할번 했다. 눈앞의 정경을 꿈으로밖에 느낄수 없었다. 삼촌은 낫을 찾아 바줄을 끊고 아들을 땅에 눕힌후 허둥지둥 아버지를 찾아왔던것이다.
우리가 삼촌뒤를 따라 삼촌집에 가보니 민국이의 시신은 이미 꽁꽁 굳어있었고 가부키처럼 하얀 얼굴에 혀가 한발이나 나온 모습은 너무나도 험악했다. 우리가 가서야 숙모가 알고 집에서 뛰쳐나와 아들을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다.
《아이고, 내 새끼. 무슨 놈의 지랄병이 내 아들을 앗아갔노. 아이고, 불쌍한것아…》
그리고 숙모는 기절하고말았다. 한참 복새판을 벌여서야 숙모는 깨여났지만 눈을 감고 넉두리만 해댔다.
《아이고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민국이 시신을 집에 들여다 눕힌후 아버지는 민국이가 입었던 옷을 벗겨가지고 밖으로 나가더니 옷을 휘휘 저으면서 혼자소리로 혼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도 놀러나간 자식한테 저녁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같기도 했다.
이튿날 삼촌은 장의관의 령구차를 불러 민국이의 시신을 화장터에 가져다 화장해버렸다. 부모먼저 가버린 자식은 무덤을 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지만 삼촌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식의 죽음을 말끔하게 잊고싶었을것이다.
화장을 끝내고 집에 온 삼촌은 아들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책갈피속에서 민국이가 남긴 이상한 내용의 글을 발견했다. 그 내용은 대개 이러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을 꾼것 같다. 꿈에 누군가 나한테 자기의 물건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는 그런 꿈을 꾸지 말아야겠는데… 그런데 왜 자꾸 무서워지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죽을것만 같다. 누가 나를 죽일것 같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냥 나를 노려보고있는것 같아 잠도 제대로 못 자겠다… 》
삼촌은 아들의 글을 읽으면서 아들의 몸속에 귀신이 들어있었다고 생각했다. 삼촌은 그 글을 가지고 아버지 몰래 시내로 들어가 점쟁이한테 보였다. 점쟁이는 그 글을 보더니 짧게 한마디했다.
《귀신을 노엽혔느니라.》
《어찌하면 될가유?》
《제자리로 돌리거라, 아니면 멀리 피하거라.》
삼촌은 시내에서 돌아오자 숙모와 그 일을 말했다. 그리고 이사가려고 결심했다. 숙모도 변을 치르고나니 삼촌의 말에 응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냥 이렇게 있다가는 어떤 변을 또 당할지 누가 알겠는가? 일단은 이 자리를 떠나는것이 상책일듯 싶었다. 삼촌은 숙모의 본가가 살던 흑룡강의 어느 작은 진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무작정 고향을 등지고 떠나면 맘편히 살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냐?》
아버지가 나서서 말려보았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럼 이렇게 앉아 온집 식구가 귀신한테 잡혀 먹히워야 형님의 직성이 풀리겠소?》
《말을 그렇게 하는게 아니다. 후회하며 살지 않겠으면 차라리 모든것을 부리우거라.》
삼촌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두눈에는 기대와 원망과 안타까움이 흘러넘치고있었다.
아버지의 말에 삼촌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더니 서서히 붉어졌다. 그후로 고향을 떠나려는 삼촌의 신념은 더욱 굳어졌고 아버지는 락심한듯 하냥 한숨으로 밤을 지새웠다.
떠나는 날 삼촌이 아버지한테 한마디 남겼다.
《형님, 인젠 제발 그 귀신놀이 그만하우. 생 사람 잡지 말구.》
삼촌은 마치 아버지의 장인노릇이 자신한테 날벼락을 내려준듯 아버지를 원망했다.
삼촌의 말에 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순간 비껴갔다. 그리고는 뜻밖에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대답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몰랐다. 삼촌은 그렇게 가버렸지만 숱한 애환을 남겨놓았다.

6

삼촌은 이사간후 청명에도 추석에도 오지 않았다. 그해 추석에 아버지는 돈을 들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큰 아버지묘에 비석을 깎아 세웠다. 비석을 세우고 난후 아버지는 비석곁에 쭈크리고 앉아 담배를 말아 입에 물더니 두눈을 쪼프리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젠 표시가 되였으니 내가 죽어도 묘자리를 잊을 걱정 없겠지.》
아버지는 자신의 사명을 다 한듯 말하며 아직 낮선 비석을 어루쓸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속에 무언가 숨겨진 의미가 슴배여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아버지는 삼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리고 여기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에 와서 살기를 바라고있었다.
《아버지, 인젠 삼촌을 용서해줍소. 삼촌도 겪을만큼 겪었재임두. 보응이라는건 뉘우치는 나름에 따른거라고 여깁꾸마. 내가 삼촌한테 편지도 보내고 했으니 내 결혼때 꼭 올겁꾸마.》
나의 확신에 가까운 말에 아버지는 낮선 사람보듯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알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너도 삼촌이 그랬을거라고 여겼댔구나.》
나는 그저 머리를 끄덕여 응답했다. 그런 일을 입으로 말하지 않는것이 낫다고 여겼기때문이였다. 아버지도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삼촌을 떠나보내면서 얼마나 큰 돌덩이를 가슴속에 안고 녹여버려야 했는지 그것은 아마 아버지 혼자만이 아는 일일것이다.
한달후 삼촌한테서 끝내 소식이 날아왔다. 삼촌은 편지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몽땅 부정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열백번도 더 했다. 그리고 나의 결혼식에 가족과 함께 꼭 참가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끝으로 집 전화번호까지 적어보냈다. 그때 우리 여기 촌에는 전화가 보급되지 않았었다. 전화하려면 촌 공소부에 가야 전화련락을 할수 있었지만 그것도 불편하기 짝이 없어 아예 편하게 편지쓰는것을 위주로 해왔다.
삼촌은 편지에다 끝내 그 일만은 일언반구도 비치지 않았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그 말을 꺼낼수가 없었을것이다. 그랬다, 어찌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르고 입밖에 내비칠수 있으랴.
따스한 봄이 두만강을 건너 여기 오봉산기슭에까지 푸릇푸릇 다가왔다. 나의 결혼식도 아득바득 눈앞으로 닥쳐왔다. 나의 결혼식날은 아버지가 황도길일을 택한다고 손꼽으며 셈도 하고 책도 뚜져보면서 정한 날이였다.
나의 결혼식을 이틀 앞둔 그날 오후 삼촌은 일가족을 이끌고 끝내 살과 뼈가 여문 고향에 발을 들여놓았다. 얼마나 큰 결심을 했으랴. 정말 짐작키 어려운 일이였다. 일년이 좀 넘은 사이 삼촌은 머리가 많이 세여진것 같고 체구도 좀 주럽든듯 했지만 그 령리함을 말해주는 두눈만은 그대로 생기를 잃지 않고있었다.
그날 저녁, 가족이 오래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이런 날을 고대해왔을 아버지를 넌지시 바라보며 나는 감개가 사뭇 넘쳐오름을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 깊은 속마음을 헤아려보기가 너무나 벅참을 새삼스레 느끼게 했다.
저녁상을 물리자 술기운에 삼촌은 말이 많아졌지만 아버지는 그저 여기만 더 살기 좋냐고 묻고는 별로 묻지 않았다. 어머니가 숙모와 삼촌과 자연스레 이사간 곳에 대해 주고받았다. 말을 들어보니 살기 괜찮은곳 같았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고 더구나 숙모의 고향이라니까 별일은 없을것 같았다.
삼촌은 래일 산소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같이 가려고 하자 삼촌은 나를 데리고 갔다가 간단한 제를 지내고 온다면서 아버지를 밀막았다.
이튿날 어머니는 아침밥상을 물리자 간단하게 제물을 준비해 삼촌한테 챙겨주었다. 삼촌은 아버지한테 뭔가 말하려고 머뭇거리다가 어머니가 챙겨준 제물 보따리를 나한테 들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허청허청 뒤산더기로 향했다.
삼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큰 아버지 묘앞에 두억시니처럼 마주섰다. 삼촌은 제물을 차려놓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큰 형님. 내가 때늦게 와서 많이 노여웠지우. 욕도 험하게 했을거구. 당연하지, 살을 뜯어 팔아도 지은 죄 다 갚지 못할거라는거 아우. 땅에 그대로 묻어버리는게 하두 아까워 그런거우. 없애지 않고 가보로 그냥 두려다가 도로 가져왔으니 인젠 화 풀어유. 엄마가 지니고있수. 아버지가 준 선물이라든데…》
삼촌은 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한참 서있더니 품에서 종이에 싼 금반지를 꺼내 할머니의 제돌우에 올려놓고 꾸벅꾸벅 세번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맨손으로 비석뒤켠의 흙을 깊숙히 판후 반지를 종이에 싼채로 고이 묻고 잔디를 파다가 덮어놓았다.
삼촌은 그런후에야 내가 옆에 서있었다는것을 의식했는지 떨리는 눈길로 나의 얼굴을 직시하더니 나의 옷깃을 당겨 함께 무덤가장자리에 마주앉았다.
《룡국아, 이 삼촌이 가증스럽지 않니? 널 보믄 얼굴을 들기 부끄럽구나.》
삼촌은 극력 나의 눈을 피해 멀리 들판에 눈을 던지며 념불을 읊조리는 중처럼 참회의 소리를 간신히 뽑아냈다.
《삼촌, 그런 말 하지 마오. 아버지는 이미 삼촌을 용서한지 오래오.》
나는 삼촌손에 쥐여진 술잔에 술을 부었다. 나의 목소리도 많이 가라앉아있었다.
《나도 니 아버지가 알고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행이 사람을 잡을줄은 몰랐구나. 후- 내가 무지막지한 놈이지.》
삼촌은 말을 마치자 손에 들린 술잔을 몹시 갈린듯한 입안에 쏟아넣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눈굽을 적시며 끅-하고 외마디 신음소리를 냈다. 마치 몸속에 든 옴을 떨쳐버리지 못해 모지름을 쓰는듯 싶었다.
《그래도 삼촌은 내 삼촌이구 내 아버지의 친동생이요. 우리는 절대 삼촌을 버리지 않을거요. 그러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것들을 훌훌 떨쳐버리오.》
《네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한결 편하구나.》
삼촌의 얼굴에 비꼈던 검은 구름이 서서히 벗겨지고있었다.
삼촌은 묘를 휘둘러보더니 손을 뻗어 할머니의 비석을 쓸어주며 면구스레입을 열었다.
《그래도 형님의 속내는 깊구나. 말없이 비석까지 다 세우구. 돈을 꽤나 팔았을텐데.》
그리고는 넉두리하듯 혼자소리로 읊조렸다.
《후ㅡ 아버지, 엄마. 형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앞으로 손자들이 잘되게 저승에서라도 기도 좀 해주우. 큰 형님도 말이우.》
삼촌은 자신의 옥셈을 스스로 감내하며 갑자기 뚤렁뚤렁 눈물을 쥐여짰다. 삼촌은 가지고 온 술을 반병이나 비운후 마른 명태를 북ㅡ 찢어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으며 자리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비석뒤쪽에 눈길을 주더니 한숨을 길게 뽑고는 나와 함께 무덤을 떠났다. 그것이 삼촌이 부모의 산소를 찾은 마지막 걸음이였다.
삼촌은 나의 결혼식이 끝나는대로 떠나갔다. 며칠후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가 마을 공소부로 전해온후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일년후 우리 마을에도 전화가 보급되여 우리도 전화선을 늘여 전화기를 안장했다. 전화가 통하자 나는 제일 먼저 삼촌한테 전화해 우리집 전화번호부터 알려주었다.
《후에 일이 생기면 이리루 전화하오, 삼촌.》

십여년이 흘러갔다. 그간 삼촌한테서는 세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첫번은 둘째아들 동국이가 중점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이고 두번째는 숙모가 한국으로 돈벌이 나갔다는 소식이였으며 세번째는 이제 숙모가 한국에서 돌아오면 한번 고향에 다녀오겠다는 인사말이였다. 나와 아버지는 삼촌이 꼭 고향에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작년 여름, 아버지는 정부로부터 장례와 상례행사례법을 전수하는 전승인 칭호를 수여받았는데 인젠 팔십을 넘긴 아버지 나이의 전승인은 지금 몇명 생존해있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으로 민간인인 아버지가 전승인으로 되였다는것이 어찌보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아버지는 여러번 회의에도 참석해 텔레비에도 나와 린근에서 유명인으로 되였다. 나는 물론 이 일을 삼촌한테 알렸다. 소식을 듣고 삼촌은 별일도 다 있다며 웃었다.
《공산당이 좋긴 좋다. 형님을 명인으로 다 만들어놓구. 아무튼 좋은 일이니 아버지를 잘 모셔라, 사람몸에서 떠나간 령혼을 불러들이는 사람은 너의 아버지밖에 없니라. 신선은 신선이다.》
나는 삼촌의 말을 아버지한테 했더니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없다가 넌저시 물었다.
《그래 잉어고기 먹는 버릇을 고쳤는지 물어봤냐?》
《아니요.》
《담에 전화하믄 잉어고기가 몸보신에 좋은거라고 전해주거라.》
아버지는 알수 없는 웃음을 주름깊은 얼굴에 떠올렸다.
나는 아버지의 미소에서 아버지의 가슴속에 박힌 옹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버리는것을 감지할수 있었다…

2013년 7월 13일
룡정에서
2016년 “민족문학”(한문판)년도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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