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효선 / 지구촌 공동체들을 탐방하고 있는 공동체운동가

[서울=동북아신문]보통 사람들은 예루살렘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상상을 할까? 신성한 도시. 성지순례, 십자군, 노란색 모스크일까? 나에게 예루살렘은 좀 다르다. 처음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총을 든 군인이었다. 그 뒤로 사이비 종교 교주의 기도를 듣고 줄줄이 쓰러지는 중국인들……. 그리고 아르메니안 교회의 남자 사제들의 웅장한 노래와 강렬한 색색의 전등을 보았고, 정통파 유대교인들의 털 달린 둥근 모자를 쓰고 양복을 입은 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 모든 경험들을 하루 이틀 사이에 하고는 나는 두통에 시달렸었다. 이 두통 현상은 강렬한 예술품이 많이 있는 박물관에 가면 종종 나타나곤 했다. 그렇다. 나에게 예루살렘은 기이한 기운을 가진 예술품이 잔뜩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그저 도시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두통에 시달릴 수 있다니, 정말 특별하기 그지없다. 전 세계의 많은 도시를 가보진 않았지만 그런 곳이 딱 두 곳이 있었다. 예루살렘과 바라나시. 홀리시티로 알려진 곳들이다.

그 예루살렘에 다시 왔다. 올드시티는 두통을 유발하므로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동예루살렘에 가기로 했다.

▲ 강탈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확장하기 위해서 공사 중인 모습. 예루살렘 여기저기서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를 표방하는데, 때문에 전 세계의 유대인들의 방문을 환영한다. 유대인이라면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이 아주 쉽다고 한다. 더 많은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알리고, 돌아올 수 있는 나라를 알려주기 위해서 ‘Birthright Israel’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스라엘 생득권이라는 뜻인데, 유대인 젊은이들에게 10일간 이스라엘 투어와 이스라엘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전 세계 어디에 살든지 이스라엘에 가본 적이 없는 18세에서 32세에 해당하는 유대인이면 본인이 원할 경우 이스라엘 행 왕복 비행기 티켓과 체류 비용이 전부 지원된다. 이곳을 고향으로 수백 년 동안 살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피난 후 다시 돌아와 사는 것은커녕 방문조차 불가능 한 것과 무척이나 대비된다. 많은 비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이 권리 아닌 권리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기도 하고, 그저 공짜 해외여행 기회로 사용하기도 한다. 다양한 단체들이 ‘Birthright Israel’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역사탐방, 생태체험, 키브츠 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시오니즘을 옹호하는 교육은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All that’s left’라는 시민단체는 이 Birthright에 반대되는 Birthleft라는(right라는 뜻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오른쪽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른쪽의 반대는 왼쪽 left!) 여행을 기획하여 다른 측면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주로 북미 유대인들을 위해서 프로그램들이 기획되지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유대인들이 주로 많이 살고 있는 서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예루살렘. 조금 걷다보면 어느 샌가 동예루살렘에 도착할 정도로 둘은 그저 붙어있다. 어느 물리적인 단절도 되어있지 않다. 조금 분위기가 다른 이웃 정도랄까?

▲ 아랍어로 그래피티가 되어 있는 동 예루살렘 주민들의 집의 모습.

하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이 두 예루살렘 주민들의 삶은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으며, 무지막지하게 달랐다. 오늘 Birthleft 투어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아흐메드는 동예루살렘 주민이다. 우리를 이웃들이 사는 동네로 이끌어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을 다녔어요. 그리고 7년째 되는 해에 선택해야 했어요. 동예루살렘 주민들은 살던 곳을 떠난 지 7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빼앗겨요. 이대로 영국에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건지, 아니면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했지요. 저는 돌아오는 것을 선택했어요. 저는 동예루살렘 주민입니다. 지금 여기 보이는 이 집들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어요.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이였죠. 1948년에 일어난 나크바 이후로, 전쟁을 피해서 사람들은 피난을 갔어요.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집이 부서져 있거나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그런 집들을 유대인들은 부수고 다시 짓거나 덧짓거나 했어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을 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특별히 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집을 살려면 이웃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가를 받아야 해요. 물론 반대의 경우에는 허가 따윈 필요 없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평생 집을 빌려서 살 수밖에 없는 거예요.”

동예루살렘에 사는 이웃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집 앞에 그림을 그리거나 간판을 내걸었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걸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 언덕배기에 멈추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모두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아흐메드가 묻는다.

▲ 언덕너머에는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가르는 벽이 있다

“이 풍경에서 무언가 다른 게 보이는 사람?”

“아름답네요. 그런데 벽이요. 벽이 보여요.”

“네. 2003년에 동예루살렘과 서안을 가로지르는 벽이 세워졌어요. 이 벽은 예루살렘 주민들로 하여금 서안과 연결되는 것을 어렵게 하기도 했지만, 서안 내에서의 이동조차 힘들어지게 했어요. 예를 들면 라말라에서 베틀라함까지 가려면 예루살렘을 거쳐 가면 더 빠르지요. 하지만 그게 불가능해진 거예요. 예전에는 10분이면 가는 길을 1시간 반이 걸려서 가게 되었어요.”

아흐메드는 다섯 가지 다른 팔레스타니안이 있다고 했다.

첫째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니안, 둘째, 서안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니안. 셋째,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니안, 넷째,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니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세 곳이 아닌 다른 곳, 이를테면 레바논이나 요르단, 시리아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니안.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쫓겨나 가자지구로 온 난민들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에 남아 있게 된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여권과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며, 투표권도 가지고 있다.

서안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원래 서안에 살고 있거나, 전쟁 후 서안으로 오게 된 난민들이다. 팔레스타인 여권이 있으며, 팔레스타인 정부에 투표가 가능하다.

그런데,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좀 달랐다. 전쟁 이후에 무인지대(No man’s land)가 되기도 한 이곳의 주민들은 팔레스타인 시민권도, 이스라엘 시민권도 없다. 그 어떤 자치 기구도 없고, 리더도 없다. 그들이 출국을 하고 싶으면 요르단 임시 거주 확인증이 나온다. 그 종이로 여권을 대신한단다. 이스라엘 정부는 세금은 톡톡히 거둬들이고 있는데다가, 대부분의 땅을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걷다가 한 마을에 멈춰 섰다.

▲ 실라완 마을의 전경.

“여기는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살았던 유대인들의 마을이에요. 그리고 여기 보이는 이곳은 유대인들의 공동묘지이지요. 이들은 여기서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훨씬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살았어요.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죠.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마을을 부수고 사람들을 쫒아내고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바로 그 공동묘지가 있는 곳 옆이 동예루살렘에 있는 명소이자 성지인데 아랍 이웃들을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케이블카를 건설하겠다며 한창 공사 중이었다. 아랍사람들을 마을에서 쫒아낸 단체가 운영하는 카페를 잇는 곳인데, 그 공사를 아랍인들이 삽을 들고 땅을 파고 벽돌을 옮기며 하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그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슬플까? 고통스러울까? 아니면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가 지나가자 하던 삽질을 멈추고 빤히 바라보았다. 경계인지 원망인지 아니면 분노인지 모를 눈빛으로.

우리는 조금 더 내려가서 실라완의 풍경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 실라완의 풍경은 서쪽 예루살렘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색색깔의 빨래가 널려있고, 각각의 모양을 한 하얀 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 너머로 금색으로 빛나는 모스크가 보인다. 한 도시에서 다른 듯 비슷한 듯 다른 그런 이웃 동네를 만날 수 있었다. 단지 20분 걸었을 뿐인데…….

우리는 며칠 뒤 아흐메드의 책방을 방문했다. 여전히 서예루살렘에서 동예루살렘으로 넘어가는 것은 잠깐 깜빡하는 사이에 일어난다. 어느 순간 버스의 창문 밖 풍경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챙이 긴 모자를 쓴, 구레나룻에 컬이 잔뜩 들어간 사람들은 사라지고, 아이의 손을 잡고 차도르를 쓴 무슬림 여성들이 걷고 있다. 간판들은 히브리어에서 아랍어도 바뀌어 있다. 석류 쥬스를 짜는 가게들이 곧곧에 보이기 시작한다. 크나페를 파는 가게들도. 우리는 미처 맞은편 카페겸 책방을 보지 못하고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아흐메드는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인사해주었다.

“형제자매여! 잘 왔어. 찾아와주어 고마워. 지금은 손님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겠어?”

▲ 예루살렘 유대인구역 주민들의 공동묘지.

나는 때마침 문구점에서 필요한 물건들이 있어 아흐메드의 가게를 샅샅이 살피며 필요한 물건들을 골랐다. 여행 중에 떨어트려 고장 난 팬을 대신할 파인라이너 하나와, 히치하이킹 할 때 쓸 마커, 그리고 지도 보는 방법을 익히고 싶다는 로비를 위해서 지도 하나를 골랐다. 다른 손님들의 계산을 마친 아흐메드가 우리에게 말은 건다.

“그래 서안지구에 간다고? 정말 잘 생각했어. 내가 추천해주는 곳은 말이야…….”

아흐메드는 서안의 여러 지역과 가볼 만한 곳들을 추천해 주었다. 우리는 서안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존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지, 서안에 방문객으로 가면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방문하는 것이 정말로 팔레스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아니면 우리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은지 물었다. 아흐메드는 서안은 정말 아름답고, 정말 좋을 거라고, 그곳 사람들은 방문객들에 익숙하다며 걱정 말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가 봐야해. 가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우리는 아흐메드의 말을 듣고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서안에 갈 용기가 더 생긴다. 맞은편 책방에 꼭 가보라는 당부를 했기에 맞은편 책가게로 갔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들,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 아랍사람들의 아름다운 글이 담긴 시집, 팔레스타인 요리책까지 정말이지 갖고 싶고 읽고 싶은 책들이 가득했다. 아마 여기서 일주일간 지내라도 지낼 수 있겠지! 2층에는 아늑한 카페도 있었다. 시간을 넉넉히 보내고 싶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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