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도시-파리

 [서울=동북아신문] 보통 파리하면 무슨 낭만의 도시요, 예술의 도시요, 패션의 도시요 하며 멋진 수식어들이 많이 붙는다. 바로 이런 타이틀들 때문에 사람들은 파리로 몰려드는가... 파리의 드골공항, 좀 초라하다. 거무틱틱한게 삐까삐까한 북경공항이나 인천공항에 비기면 시골과 도시의 차이 같다. 그런데 입국이 그렇게 순조롭고 빨리 이루어질 줄이야! 사람들은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두 줄로 꼬리가 보이지 않도록 장사진을 이루며 쭉 늘어선다. 순간, 나의 뇌리에는 내국인, 외국인 생각이 피끗 떠오르며 어느 것이 외국인 줄인지를 살펴보았다. 우리 동양의 많은 나라들의 입국에서 습관된 동작으로.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두 줄 공히 내국인, 외국인이 막 썩여있는 것 같았다. 두 줄 다 코가 크고 작고, 키가 크고 작고, 피부색이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추장스럽게 내국인용, 외국인용하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라는 법도 없다. 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아무 줄에나 섰다. 입국심사카운터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볼라니 굳이 내국인이요, 국내인이요 나누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안내 글자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이제 곧 내 심사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 거리진다. 우리 줄을 심사하는 사람은 얼굴이 감실감실하고 두억시니 같이 생긴 커쿨진 사나이였다. 뭐, 나는 합법인데 뭐... 나는 스스로 강심제를 놓으며 여권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그런데... 참, 재미나게도스리 그 두억시니는 내 여권을 받아 프랑스비자 부분에 도장을 꾹 박드니 프랑스사람 특유의 윙크를 씩 해보이며 OK란다. 내가 언젠가 우리 코앞의 고국이랍시고 찾아간 나라의 입국심사에서 시시콜콜 캐어묻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괜히 긴장을 한 내 스스로가 우스웠다. 여하튼 기분은 좋았다.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나와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거저 여권에 도장만 꾹꾹 박히고 나오기. 입국심사원은 도장을 박는 기계런듯... 이런 판국이니 그 장사진을 이룬 줄이 쭉쭉 줄어들기다. 입국심사는 순식간에 완료! 이제 짐을 찾아 나오는데 누가 말리지도 않고 검사하자고 하지도 않는다. 세관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이렇게 쉽게 프랑스에 입국했다. 프랑스수도 파리에 정착. 사실 유럽련맹(EU)사이에도 모두 이렇다. 국경이 있는지 없는지 서로 자유롭게 드나든다, 돈도 유러로 통일되지 않았는가. 얼마 전에 여행사버스에 앉아 유럽련맹 여러 나라를 다녀봤는데 국경검사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강 하나 코앞에 두고 마음대로 못 드나드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다. 파리는 원래 낭만의 도시였다. 파리(Paris)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트로이국왕 푸리아머(Priam)와 왕후 헤카파(Hecuba) 사이에서 난 둘째 아들 파리스(Priams)로부터 왔다고 한다. 그럼 이 파리스란 어떤 존재냐? 헤카파가 파리스를 낳을 때 무서운 꿈을 꾸었단다. 파리스가 백 개의 손을 가졌는데 매 개 손에 횃불을 치켜든 복수의 여신으로 꿈에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기겁을 한 헤카파는 파리스를 짐승들이 잡아먹도록 들녘에 갖다버리도록 했다. 그런데 이 파리스는 죽지 않고 곰과 잘 지내며 점차 건장하고 용감하며 멋진 총각으로 자라났던 것이다. 파리는 멋진 총각-♂ 파리, 아니 프랑스사람들은 좀 요란스럽다.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여자건, 남자건 저 먼데서부터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봉슈(안녕)~’라는 말을 길게 내빼며 서로 왼쪽, 오른쪽 볼을 엇갈아 비벼대기에 바쁘다. 그들은 이런 흥분하기 쉬운 고도의 밀착형으로 친밀감을 나타낸다. 한국의 성희롱 같은 것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는 그간 잘 있었냐, 뭘 했냐, 보고 싶었다... 호들감을 뜬다. 그리고는 허리를 비비꼬며 낄낄 웃기도 한다. 물론 여자들이 더 하다. 좀 진정이 되는가 싶으면 담배를 꼬나물고 하염없이 연기를 내뿜기. 대학생들도 마찬가지. 커피숍이나 바(술집)에 가보면 엄지손가락보다 좀 더 굵은 잔에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또는 와인 한잔, 생맥 한잔 받아놓고 별로 안주도 없이 세월아, 네월아 앉아 뭉게며 벅쩍 떠들어댄다. 얼마 전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파리7대학교 아시아학과에서 이번에 초빙해온 새로운 교수들을 환영하는 파티가 있었다. 썩 오래 전부터 통보하기에 퍼그나 기대가 갔다. 그런데 점심에 학과의 어느 세미나실 같은데서 술이라야 기껏 포도주에 케익 몇 접시를 놓고 환영파티랍시고 하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우리 쪽 식으로 상다리 부러지도록 푸짐한 술상을 상상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원래 먹기보다도 이리저리 다니며 와인잔을 가볍게 부딪치고 조금씩 마시는 흉내를 내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정다운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였다. 이런 분위기야 말로 바로 환영의 분위기란다. 파리날씨는 정말 사람을 죽인다. 잠풍함에 어둑칙칙하다. 현재 겨울철 아침에는 8시가 되어야 희끄무레 밝아온다. 해가 잘 나오지 않는다. 작년에는 역사상 최악의 상태였다고 한다. 해가 나온다고 해야 우리처럼 화창하거나 화끈한 맛은 없다. 해가 뜨 있는 하늘이래야 우리처럼 해맑다기보다는 검푸르다. 그래도 해가 나오는 날은 축제분위기. 파리의  식당이나 커피숍, 바에 일반적으로 테라스(밖에 식탁과 걸상을 쭉 놓은 것)가 딸린 것은 바로 해가 나오는 날 해쪼임을 하며 먹고 마시기 위해서다. 물론 이 테라스자리는 값이 더 비싸다. 정말 파리의 이런 날씨에 묻혀 살다가는 우울증이 오기 쉽다. 파리사람들은 바로 이 우울증을 떨쳐버리자고 안간힘을 써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벤트나 모임을 벌리기 좋아하는 것 같다. 가족이벤트, 친구이벤트, 동네이벤트... 시내에 다니다보면 쩍 하면 무슨 놀이요, 공연이요, 축제요... 여하튼 구경거리가 많다. 요즘 1년에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시즌이라 나무들에 색등을 늘이고 샹제리아거리 및 세느강주변 파리중심부에서는 벌써부터 축제분위기가 들끓고 있다. 샴페인나라답게 곳곳에서 샴페인 팡팡~! 이런 이벤트나 모임은 하나의 축제! 그러니 멋지게 차려입고 기분 내기다. 허영을 좀 부려도 괜찮다. 그러니 모파쌍의 ‘목걸이’의 여주인공의 마음도 이해할만 하다. 그리고 그들은 햇빛 찬란한 프랑스의 남부 지중해연안도시나 대서양연안도시로 잘 몰려간다. 썬턴(해쪼임)을 위해서다. 썬턴을 가서 키카색으로 감실감실하게 태워서 오는 것이 휴가 때의 하나의 소원이란다. 여기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벌어지기도 한다... 휴가철이다. 다들 해변가로 썬턴을 가니 뭐요하며 야단이다. 그래 ‘나’도 가야겠는데 돈이 없다. 그런데 돈이 없어 못 간다고 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옆집에 휴가를 간다해놓고는 집에 가만히 꾹 들어박혀 있기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전등불이 켜져 있으니 옆집 사람이 신고를 했단다. 도적이 들었나 해서. 그래 경찰이 닥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고... 파리시정부에서는 여름에 돈이 없어 휴가를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해 세느강가에 모래톱을 만들어 거기서 해쪼임을 하며 즐기도록 배려하기도 한단다.     파리사람들은 요량껏 재미나게 사는 것 같다. 파리는 교통신호체계가 잘 잡혀있다. 동네의 좁은 길목에도 파란등, 빨간등이 자동으로 켜졌다, 꺼졌다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 신호등에 그리 개의치 않는데 있다. 그들은 빨간등이 켜졌는데도 지나가는 차가 없으면 무조건 지나가기다. 저 먼데서 차가 온다면 뛰어서 건너가기다. 지나가지 않거나 건너가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스럽다. 같은 선진국 우리 동양의 일본사람와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 파리의 차들은 철저히 인간중심적이다. 내가 지나갈 차례인데 아무리 사람이 건너간다고 해서 욕을 하거나 빵빵 경적을 울리는 법이 없다. 조용히 기다려주거나 때로는 손을 흔들며 마저 건너가라는 신호를 해준다.   파리의 버스나 지하철 같은 시내교통은 참 잘 되어 있다. 편리하다. 세계일류! 버스를 인공지구위성으로 통제하기도 한다고 하니 말이다. 여기에 사람들은 좌석이 비어있어도 잘 앉지를 않는다. 나는 이때까지 서로 앉겠다고 밀고 닥치거나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앉는다는게 기껏 비어있으니 앉으나 주지 하는 식이다. 버스나 지하철 출입문을 보면 승객들이 보턴으로 개폐를 조절하며 자기 절로 타고 내릴 수 있다. 그리고 표 한 장이면 버스나 지하철을 마음대로 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표를 잘 사지 않는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는데 있다. 재미나는 것은 버스기사나 지하철 매표소의 직원들이 무임승차하는 사람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역할은 차를 몰거나 표를 파는 것이지 무임승차 단속이 아니라는 태도다. 사실 전문 무임승차단속인원들이 있기는 하다. 이들은 예고 없이 불시로 단속을 한다. 그때마다 무임승차자들이 수두룩 잡혀나온다. 그런데 또 재미나는 것은 이들 무임승차자들에게 몇 십 배의 벌금을 안기는 마당에 발금을 안기는 쪽에서는 친구, 참 미안하이, 내가 이런 일을 맡아하다보니 할 수 없이...라는 태도고 발금을 내는 쪽에서는 힐쭉 웃으며 오늘은 재수가 없으니 방법없지... 라는 태도라는 것이다. 이래서 단속자들과 무임승차자들의 숨박꼭질이 꼭꼭 숨으라 머리카락 보인다 술래잡기처럼 ‘재미나’게 반복 풀이되고 있단다.     자, 그럼 이번에는 먹고 싸는 얘기. 좀 시시껄렁한 얘기 같지만 참 재미있다. 특히 여기 화장실이 재미있다. 내가 강의하는 청사에는 화장실에 거저 프랑스어로 ‘toillec'라고 씌었을 뿐 굳이 남자화장실이니, 여자화장실이니 밝히지를 않았다. 그러니 남자, 여자가 같은 화장실을 쓴다는 말이 되겠다. 물론 일을 보는 칸은 누가 들어가든지 안에서 문을 찰칵 채우면 나만의 은밀한 세계가 된다. 여기 대학생들은 화장실에서 남녀동급생들끼리 부딪쳐도 추호의 어색함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히히닥닥 거리며 웃고 야단이다.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수수불친(授受不親)이 무의식속에 박혀있는 우리로서는 어색하겠는데 말이다. 선생과 학생이 부딪쳐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아직 습관이 잘 안 된다. 사도존엄이 계속 머리를 쳐드니 말이다. 물론 여기도 남녀화장실의 구별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금단의 성역은 아니다. 남자 화장실이 차고 여자 화장실이 비었으면 남자가 여자 화장실을 써도 무방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낭만은 뭐니뭐니 해도 남녀관계에서 가장 진하게 피어난다. 어느 프랑스영화를 보니 남주인공 고중생이 자기 여자친구와 집 앞에서 키스를 하는데 엄마가 그것을 보고는 좋다고 박수를 쳐대는 것이였다. 사랑의 성숙축복! 사실 무슨 영화에서가 아니고 여기 젊은 처녀총각들은 실제로 길가나 버스, 지하철 같은 공중장소에서 잘 껴안고 키스도 잘 한다. 그렇다해서 누가 신경도 쓰지 않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거저 내 혼자 신경이 쓰인다. 프랑스는 법률상 동거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항도 있고 미혼모 보호법도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결코 두 사람의 애정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일반인에게 팽배하다. 그래서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부부들만큼 동거형식으로 사는 부부들도 수두룩하다. 결혼 전에 동거 기간을 갖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동거를 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 학생게시란을 보면 ‘여자친구 찾고 있어요. 밤이 외로워요!’하는 문구도 서슴없이 눈에 띈다. 몇 십 년을 동거하면서 아이도 낳고 실제 부부로 사는 이들도 많다. 이에 반해 합법적인 결혼의 이혼율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세 쌍 중 한 쌍이라는 것이다. 그 이혼의 이유는 가장 솔직하고 흔한 것으로 ‘이젠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우리처럼 구차하게 다른 변명은 안한단다. 부부 한 쪽이 바람이 났을 경우 ‘한순간의 실수였어. 용서해줘!’, ‘용서해줄게! 다시는 그러지 마!’ 같은 있을법한 대화도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곧 바로 합법적인 이혼절차로 들어간단다. 자식 때문에 헤어질 수 없다는 부부는 거의 없단다. ‘내 삶은 내 것이야~!’ 그러니 결코 자식 때문에 나를 희생하는 것은 부부 간 그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단다. 그리고 헤어진 후에도 원망, 저주보다는 가끔 연락하고 일이 있을 때 도와주기도 하는 일반 친구관계로 지내는 사람들도 많단다. 여기서는 황혼결혼도 많지만 이혼도 많단다. 이제 다 산 인생인데 뭐, 늘그막에 무슨 꼴... 그들에게는 우리 같은 이런 생각이 아니라 사랑은 죽을 때까지 추구하는 것이란다. 파파 늙은 할머니가 첫사랑이 그리워 이혼하기도 한단단다. 사랑에 있어서 그들의 이런 의무와 책임보다는 홀가분하게 사랑 하나에 매달리는 사랑지상주의는 자연히 외도도 곳곳에서 만연되고 있단다. 외도야말로 순수한 첫사랑에 첫날밤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년놈’들도 있단다. 그 외도상대 통계리스트를 보면 대체로 첫째가 직장동료, 그 다음이 친구의 파트너, 이웃, 아이들 학교 학부모순으로 간단다. 그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 속담이 맞지! 여기 여자들은 아이낳이를 그렇게 홀가분하게 한단다. 아이를 낳고는 곧 바로 시원하게 샤워를 한단다. 그리고는 곳곳에 전화를 하며 아이낳던 과정이나 느낌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불룩했던 배가 쑥 꺼져 들어가니 좋아죽겠다고 한단다. 산후풍이 올새라 머리를 동이고 뜨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들이쓰고 누워 끙끙거리는 우리들 산모들와는 다른 풍경. 동서양 여자들 체질적으로 다른가봐. 그녀들은 아이를 쉽게 키우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때까지 여기 엄마들이 애를 안거나 업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꼭 유아차에 밀고 다닌다. 버스에서든지 지하철에서든지 슈퍼에서든지... 우리 엄마들처럼 업고 안고 하면 적어도 좀 이상한 눈길로 볼 것이다. 왜 저렇게 힘들게스리... 파리의 녹색운동 세계가 알아준다. 파리 온 시내에 연기를 내뿜는 굴뚝은 두 개 뿐. 그것도 말짱 흰 구름 같은 정화된 맑은 연기를 내뿜는다. 무슨 밀가루 공장의 굴뚝이란다. 그런데도 파리시민들은 불만투성이다. 환경보호를 잘 못해 공기가 개망태기란다. 내가 느끼기에는 파리공기가 좋은데 말이다. 파리시내는 옛도시구획이라 길이 좁다. 여기에 녹색운동가들은 한 술 더 떠 길의 확장을 반대하고 차도를 불편하게 하며 차를 줄이자고 야단이다. 그래서 그런지 파리는 자연과 인간이 잘 조화된 낭만적 모습들이 많다. 파리에는 도처에 비둘기가 있다. 비둘기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떤 벤취에 앉아 있으면 무슨 먹을거리라도 얻어먹을가 해서 비둘기가 날아와 주위에 맴돌아친다. 이런 비둘기들은 어느새 사람과 가장 친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파리노트르담사원에 갔을 때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 밑에서 손바닥에 빵 같은 음식부스레기를 놓고 쳐들고 서있는데 나무에 있던 참새들이 앞다투어 내리 앉으며 주어먹는다. 여기서는 고 영악한 참새마저도 사람과 친해있다. 드골공항의 잔디밭에서는 토끼들이 뛰어논단다. 그리고 프랑스정부에서는 자기네 나라에서 이미 멸종된 독수리며 승냥이를 수입해 생태평형을 꾀한단다.       파리, 아니 프랑스는 기본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이다. 프랑스는 원래 켈트, 라틴, 게르만 종족으로 출발했다. 그렇지만 인권선언에 자유, 평등, 박애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프랑스인인지라 무릇 인권, 자유를 찾아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두 손 들어 환영이란다. 그래서 독재정권을 탈출해 프랑스에 와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든지, 기아를 벗어나기 위한 생존권 운운하면 프랑스국적을 얻는데 가장 효과적이란다. 한국의 홍세와, 아프리카의 많은 난민들은 그 전형적인 한 보기. 탈북자의 소리는 여기서도 들린다. 그래서 현재 프랑스는 많은 종족, 민족들이 별 탈 없이 어울려 산다.   파리, 아니 프랑스는 다원가치가 존중되는 세상이다. 그들은 프랑스혁명 때 혁명의 풍운아 마라와 이 마라를 살해한 샤록트․과대라는 여자에 대한 가치판단에 있어서도 악마와 천사의 흑백논리로 흐르지 않으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제2차세계대전 때 나치스독일에게 투항한 페당원수에 대해서도 절대악인 천고의 죄인으로 보지 않는 기분이다. 프랑스 사상가 뇌몽․에홍의 “인간연극의 관객”에 보면 페당원수의 투항은 당시 프랑스 절대 다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당시 프랑스의 모든 저항은 단지 프랑스 사람지간의 증오와 절망만 가중시키기 때문이란다. 프랑스사람들은 구소련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파리에는 스탈린거리가 있고 스탈린지하철역이름이 있다. 스탈린의 제2차세계대전 시기의 공로를 그려. 한마디로 그들은 예술가적인 다혈질에 어느 한 틀에 매여 편협하게 흐를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고 유연하게 트여있는 다원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유럽련맹이 형성되면서 프랑스인들은 유럽 내지 세계보편의 가치에 더 공감하는 것 같다. 여기 내 주위에 있는 분들을 보면 오늘은 독일, 내일은 스위스, 모래는 이태리 하며 별로 다른 나라에 간다는 의식 없이 거기 가서 관광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학위도 하고 포닥도 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인간이 사는 곳이면 다 갈 볼만하고. 먹을거리, 볼거리, 배울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그들은 알게 모르게 세계적인 마인드를 키운다. 참 재미있고 멋 있어 보인다. 한 울안에서 맴돌고 한 나뭇가지에 목매는 우리는 답답할시구!  파리, 아니 프랑스는 분명 위대한 사상가를 많이 배출한 나라다. 루쏘, 라깡, 부꼬... 그런데 이들 위대한 사상가에게서조차도 천진난만함이 있단다. 1948년 혁명과 1968년 ‘5월폭풍’ 같은 거창한 사회혁명에 참가하여 거리에 나가 돌을 던지고 총탄을 맞받아 나간 것은 단지 ‘자극적이’고 ‘재미나’고 ‘일종 심리체험’이고 ‘일종 사회실험’적이기 때문이란다.  파리는 쇼쇼쇼~의 도시. 볼거리도 많다. ‘MOULIN ROUGE’-빛과 색채, 소리의 환상적인 조화 속에서의 파리미인들의 각종 낭만적인 야한 쇼도 세계인들의 눈을 끌고 있다. 오세요, 파리로 오세요! 파리 잡으러 오시지 말고 낭만을 즐기려 오세요!   [끝] 2013.12.14     사실의 도시-파리     낭만의 파리 좋다. 참 좋지. 그런데 파리는 ‘구리’다. 날아다니니 더 ‘구리’다. 파리는 여름 한 철 내놓고 맑은 하늘보기 힘들다. 하늘은 시어머니 역정에 인상을 잔뜩 쓴 며느리 얼굴 같다고 할가, 항상 찌부둥해있다. 어쩌다 맑은 날씨라야 우리처럼 환상을 자극하는 뭉게뭉게 솜구름이 둥둥 뜨 있는 것이 아니라 간간히 흰 구름이 뿌려진 속에 검푸르기만 하다. 이런 맑은 날씨도 잠간 반짝이고 사라지기 일쑤다. 한마디로 햇빛 한 쪼각 보기 힘들다. 햇빛 한 쪼각이라도 보면 명절기분. 프랑스혁명, 만방에 자랑할만하다. 세계 최초로 전제왕정을 무너뜨리고 부르주아시민들이 일어나 공화정을 이룩한 혁명. 그러나 이 혁명기간에 벌어진 일들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바라던 이상적인 혁명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것은 루이16세 및 그 황후를 비롯한 왕실인원 1100여명을 포함하여 1,6000명 내지 4만명을 별로 합법적인 절차도 없이 단두대에 올려 이슬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한 피비린내 나는 혁명이였다. 무자비하고 살벌한 혁명은 혁명의 3거두로 불리운 마라, 단똥, 로버스빌  자신들의 생명조차도 보존할 수 없게 하였다.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의 명의로 살해되거나 혁명의 명의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극단적인 혁명은 당시 단두대가 세워졌던 파리 콩코르드광장에 너무 피비린내가 나게 하여 소와 말들이 그쪽으로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혁명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발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는 처참했다.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프랑스혁명의 결과는 나폴레옹의 군사쿠테타로 정리되고 만다. 그리고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왕정을 반대하여 일어난 프랑스시민들이 나폴레옹을 압도적인 투표로 지지하며 ‘황제’로 등극시키고, 그 다음엔 왕정을 복고시킨 사건이 아닐까? 물론 1830년 7월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긴 했지만...  프랑스는 민족자부심이 대단한 만큼 반민족자들에게 엄격하다. 프랑스는 2차대전 당시 나치에 협조한 반민족자들에 대해 전후 깐깐히 청산한다.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만 해도 10만명이 넘고 2000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700여명이 실형을 살았다. 이는 당시 인구의 5%에 해당하는 것으로 어마어마한 수다. 그리고 그 처벌에 시효를 두지 않고 오늘날에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광복 후 일제에 부역한 그 많은 사람 가운데 40여명만 재판에 회부하고 사실 실형을 계속 산 사람은 하나도 없고 중국이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난 후 ‘앞으로 보기(向前看)’를 강조하며 ‘세 종류 사람(三類人)’어쩌고 저쩌고 하며 어물어물해 넘긴 상황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프랑스는 과거청산이 그만큼 깨끗한 만큼 과거부채도 그 만큼 적다.  프랑스는 세금을 굉장히 많이 징수한다. 공무원들 아우성이다. 프랑스야 말로 사회주의란다. 사회민주당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골고루 잘 사는 사회주의식 정책을 편단다. 프랑스 전력회사 중견 월급의 한 절반쯤이 세금으로 나간단다. 내 월급 2천유로에서 3-4백유러가 세금으로 나간다니 확실히 세금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한 유명연예인이 세금도피로 러시아로 망명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세금을 낸다. 세금을 낸 만큼 혜택이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고 자부한다. 프랑스는 세금을 많이 징수하는 만큼 사회복지가 참 잘 되어 있다. 전형적인 복지국가다. 노숙자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한테도 이런 혜택을 주니 말이다. 유학생들이 세집에 들었을 경우 보조금이 나오는 것은 그 한 보기. 그래서 요새는 국고가 거들나 연금 줄 돈도 없다고 공무원들 사이에 불만소리가 인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남녀관계에 있어 결혼 전에 괴장히 자유롭다. 서로 눈만 맞으면 키스를 하듯 성관계를 갖듯 동거를 하듯 탓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일단 결혼을 하면 굉장히 가족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일단 퇴근해서는 곧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다. 우리처럼 동료들끼리나 친구들끼리 슬슬 눈을 맞추거나 옆구리를 쳐서 1차, 2차, 3차,,, 하는 법은 없다. 외식을 할 경우 연인이나 부부, 혹은 아이를 곁들인 가족동반을 많이 한다. 손님을 초대하거나 파티를 할 경우 주말에 집에서 많이 한다. 그래서 파리의 많은 가게들이나 식당들은 일찍 문을 내린다. 그래서 파리는 겉모양을 보면 밤생활이 없는듯하다. 우리처럼 삐까삐까 화려하지 않다. 거무틱틱하다. 그런 만큼 부부간 사랑에 절대 충성하기다. 오입이나 외도 같은 것은 절대 금물! 그리고 아이에 대한 의무나 책임도 성실히 이행하기다. 훌륭한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사람들 돈에 대해 무섭다. 1유로도 안 되는 1센팅, 2센팅부터 1유로, 2유로... 다닥다닥하다. 이런 동전들을 별도의 동전주머니에 정성스레 넣어 다닌다. 여기 사람들은 1유로도 큰 돈으로 보는 것 같다. 길거리의 거지나 공연자들의 돈구럭에 대개 1유로 미만의 센팅을  준다. 10원을 우습게 보는 우리와는 참 다르다. 여기 사람들은 식당에서 일반적으로 더치페이다. 우리가 말하는 AA制말이다. 언젠가 내가 왔다고 내가 소속되어 있는 학과에서 환영만찬을 베풀었다. 기분이 좋아 많이 마시고 많이 먹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결재할 때 되니깐 에누리없이 매인당 얼마씩 풍긴다. 나까지 포함시켜! 사실 이쯤하면 괜찮은 편이다. 한 중국 여자아이가 프랑스 남자친구 집에 들었는데 집세는 면하는 대신 물, 전기 등 사용료는 각기 정확히 나누어 부담이란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합리주의. 파리의 바(술집) 혹은 커피집 같은 데는 자리값(Table Charge)이 있다. 이 자리값은 메뉴판이나 그 어디에도 적혀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탠드에서 얼마만큼 멀어지는가에 따라 자리값이 매겨진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에 1유로라 할 때 스탠드에 기대서 마시면 1유로, 실내의 테이불에서 마시면 1.30유로, 밖의 테라스에서 마시면 1,50유로하는 식이다.  프랑스요리, 세계에서 알아준다. 전식, 본식, 후식 몇 시간을 요하는 풀코스로 각종 화려한 요리에 포도주를 곁들여 만포식 빵파레! 그런데 사실 프랑스사람 보통 먹는 거 보면 말 그대로 한 끼 에떼우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 보아도 저녁거리로 빵 한 쪼각이나 햄버거 따위를 사가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리고 거리나 지하철에서 열심히 무엇을 먹는 경우를 보게 된다. 여기 사람들은 먹고 싸고 하는 생리적인 면에서 상당히 솔직한  것 같다. 내 눈에 한 끼 떼우는 것이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다. 사실 파리의 일반 식당을 가봐도 둘이 마주앉아서 겨우 먹을만하게 작은 원탁, 혹은 네모난 상이 많다. 상 자체가 원천적으로 푸짐히 차려놓고 먹을 계제가 못 된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이 프랑스에 오면 항상 불만이란다. 항상 배가 고프단다. 프랑스사람 미국사람 웃는다. 미개하게 대식가들이라고. 여기에 한 마디 더-그러니 뚱뚱보가 많지. 프랑스사람들은 무슨 풀코스로 몇 시간을 먹는다 해도 이른바 영양가 차원에서 과학적으로 고루고루 맛보기식으로 조금씩 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살찐 사람이 그리 없다. 그리고 프랑스사람들은 식사에 낭비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점심식사를 학교 주위에 있는 프랑스문화체육부 공무원들의 식당에서 한다. 싸고 종류가 많으니 말이다. 이 식당은 뷔폐 식으로 되어 있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식판에 담아 계산대로 가서 계산하고 먹으면 된다. 그런데 재미나는 것은 계산대에 있는 빵은 무료로 그대로 준다. 참 인심이 좋다고 생각했더니 다른 의미가 아니고 다 먹고 난 후 이 빵으로 접시를 닦아 깔끔하게 먹으라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먹는 사람들이 많다. 고양이가 핥아먹은 것보다 더 깨끗하게 닦아먹는다. 잘 산다는 프랑스, 음식낭비가 심한 중국,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나한테는 너무 충격적이였다. 파리사람들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담배를 잘 피운다. 우리처럼 식후 담배 사람 죽이는 맛(飯後一只煙赛過活神仙)하는 식이 아니라 거저 푸∽푸∽ 하연 연기를 내뿜는 것이 하나의 낭만적 멋인가봐. 나는 담배를 피우는 내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백해무익, 담배 왜 피우지? 재미나자나요! 단마디명창! 그럼 그렇다치고. 그런데 나는 프랑스 담배꾼들 중에 엽초 말아 피우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퍼그나 흥취를 느꼈다. 비록 담배는 안 피우는 나지만 노스텔지아적인 정서를 자극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엽초를 말고 피우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너무 초라하고 서글펐다. 옛날 우리의 꽃분이가 해준 낭만적인 칠색무늬 꽃쌈지 같은 것은 볼 수 없고 아무렇게나 꾸겨진 천주머니나 비닐주머니에서 엽초를 꺼내는 품이 벌써 초라하고 서글펐다. 그리고 담배를 마는 폼도 우리처럼 그렇게 익숙하고 매끈하지를 못한 것 같다. 돈이 없어 마지 못해 피우는 엽초니 별 수 없겠지. 우리는 그래도 우정 내지 사랑이 깃든 하나의 낭만으로 승화시켰는데 말이다.       파리는 실로 예술의 도시다. 도처에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평상시에도 그렇커니와 요새 프랑스 최대명절인 크리스마스 및 새해기간에는 거리 곳곳에서 기상천외의 퍼포먼스 및 다양한 예술공연을 한다. 볼거리, 들을거리가 풍성하다. 참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들 퍼포먼스나 예술공연을 하는 사람 앞에는 꼭 돈구럭이 있다. 꼼짝 않고 퍼포먼스를 하던 사람도 돈구럭에 돈을 던져줄 때는 프랑스사람 특유의 윙크나 제스처로 고마움을 나타낸다. 유럽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 한마디가 그대로 통한다-‘무료 점심은 없다’. 그렇다. 여기서도 예술의 상업화 냄새가 풍긴다. 실은 그들 ‘예술가’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또한 예술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돈 몇 잎 기부하는 것도 인지상정.   파리에도 택시가 있다. 그런데 많지 않다. 사람들이 잘 타지 않으니 말이다. 택시값이 비싸단다. 그러니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우리처럼 쩍 하면 택시타기가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신사 같은 사람도 멋진 트렁크를 질질 끌며 지하철을 타겠다고 올리 내리며 야단이다. 출퇴근도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승용차를 운전할 경우에도 쌩쌩 달리기가 아니고 느긋하게 달리기다. 자가용은 주말이나 휴가 때 멀리 나갈 때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가용도 대형차보다는 소형차가 많다. 혼자 모는 운전석만 있거나 앞좌석만 있는 아이들 놀이감 같은 승용차도 있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처럼 차노예(車奴)가 되어 승용차는 꼭이라는 필수품이고 그것의 비교를 통해 누구 잘 나고 못나고를 따지는 그런 생각이 없다. 파리의 승용차 기름값은 미국의 4배나 비싸다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기름값도 기름값이거니와 환경오염을 고려하여 기름 자가용을 자제하고 전기 동력차를 선호하도록 유도한다. 전기 동력차는 충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주차하는 길가에 충전기가 비치되어 있다. 파리는 걸어다니는 일반사람들이 교통규칙을 잘 안 지키는 반면에 운전자들은 철저하게 교통규칙을 지킨다. 인행도에 도착했을 때 붉은 불이 들어올 경우 에누리없이 급정거한다. 그리고 푸른 불이 들어와 자기가 인행도를 건너갈 차례인데 사람이 건너고 있을 경우 절대로 운전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다 건너갈 때까지 차분히 기다린다. 건너가는 사람이 우물쭈물하며 주저하면 어서 빨리 건너라고 손메시지를 보낸다. 철저히 사람중심이다. 그러니 교통사고도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이때까지 교통사고 한 건 보지 못했다. 여행사의 경우를 좀 보자. 법적으로 여행운전규칙을 정해놓고 있다. 예컨대  운전수는 하루 12시간을 노동(운전)하되 이 가운데 4시간은 반드시 휴식을 취하도록 되어 있다. 이 4시간 휴식을 또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있다. 첫 출발해서 1시간 지나 15분 휴식하고 그 다음 얼마 가서 30분 휴식하고 또 그 다음 얼마 가서 45분 휴식하고 등등. 그러니 휴게소가 많다. 피로운전을 막기 위해서다. 운전수들은 철저하게 이 규칙을 지킨다. 사실 여행버스에 정착된 칩카드가 이 모든 것을 확인하고 기록한단다. 그리고 수시로 교통국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프랑스는 확실히 법치국가다. 굉장히 낭만적이고 대면대면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철저히 법에 따라 실시한다. 한 중국 유학생이 집에서 5000유로를 가져와서 입금하자고 했단다. 그런데 은행원이 이 돈은 어디서 왔는가, 학생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이 생길 수 있는가... 너무 꼬치꼬치 캐어물어 신경질이 났단다. 그래, 너네 은행 아니면 다른 은행에 가지, 돈을 주겠다는데 싫어하다니... 그런데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란다. 프랑스은행에서는 금융실명제에 돈세탁방지법 등으로 철저히 입출금내역을 통제한다. 내가 월급통장을 만드는데도 집주인을 불러내어 하나하나 확인한 다음 해준다. 그리고 입출금 내역을 다달이 집으로 우송한다. 물론 다달이 은행사용료를 내야 한다. 프랑스는 뛸 데 없는 선진국이다. 19세기 중반에 벌써 근대화의 과정을 끝냈다. 그들은 이 근대화를 일찍 힘들게 끝내서 그런지 이제는 모든 것이 느긋하기만 하다. 일하는 것이나 일처리가 세월아 네월아, 늦기만 하다.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의 빨리빨리하고는 천양지차다. 파리7대학 옆의 배수관인지 무언지 묻는 공사, 내가 왔을 때 파제껴진 것이 얼마 전에 겨우 마무리를 했다. 적어도 서너달은 걸린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끝낸 일솜씨를 보니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이들은 집을 지어도 마찬가지. 얼룽뚱땅 대충하는 것이 아니고 치밀하고 든든하게 한다. 이들의 집짓는 벽두께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벽두께가 저그만치 50센치미터 내지 1미터정도 된다. 현재 내가 세들어 들고 있는 빌라의 벽두께도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잠간 우리 중국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나는 자연히 우리 중국 사천 성도지역 집들의 벽이 벽돌 한 장 내지 몇 장 두께에 불과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파리의 날씨가 사천 성도지역의 날씨와 비슷하니 말이다. 그들의 집은 지진이 아무리 와도 끄덕없을 것 같다. 프랑스사람들이 집을 치밀하고 든든하게 짓는데는 루브르박물관이나 파리노트르담성당 같은 전통적인 건물양식에서 벌써 틀이 잡혔다. 그들은 집을 군사 요새나 성새처럼 짓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우리가 아니고 정말 이들이야 말로 백년대계의 집을 짓는다. 그들이 자랑하는 에필철탑을 좀 보자. 이 철탑은 1889년 프랑스대혁명 100주년, 그리고 파리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좀 있다가 철거할 가건물로 지었단다. 그런데 모두들 멋지고 좋다고 하니 그대로 두었단다. 그런데 저렇게 완벽하고 튼튼할 수가 있나 말이다. 나의 외국인거류증도 마찬가지. 3달이 지난 아직도 감감무소식. 원래는 3달 이내로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무슨 조사, 확인, 절차가 그렇게 많고 복잡한지... 여하튼 완벽하게 하는 만큼은 틀림없다. 프랑스의 여자는 강하다. 어느 여사회학자의 말이 재미나다. 프랑스여자는 애교만점이란다. 키스를 해주세요. 외로와요! 여기에 야한 속곳은 기본이란다. 그런데 프랑스여자에게는 분명 다른 모습이 있다.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프랑스가 아니더냐! 프랑스는 ‘자유의 여신’을 숭배한다. 여신이 그들을 승리에로 이끈다. 잔다르크-외적에 맞서 싸운 프랑스의 유명한 민족영웅-성녀. 그리고 들라크루와(Eugene Delacroix)의 낭만주의적 화풍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e)’(1830년)을 보라. 1830년 7월 혁명은 바로 이 여신의 기치아래 일어났다. 지금도 마찬가지. 두 연인이 걸어가는데 여자가 무거운 짐을 들었단다. 그래서 남자가 들어줄가하면 내 물건 내가 들기다하며 여자가 뻐긴단다. 일찍 모파쌍은 ‘목걸이’에서 일반 여자들에게 있을법한 정상적인 허영조차도 가차없이 꼬집었다. 그래서 여주인공은 10년이나 열심히 일하여 빚을 갚는다. 프랑스여성의 정직성이 돋보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소설도 안 된 걸 같은 ‘목걸이’가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명작이 된다. 그래 프랑스는 시몬드․보봐르의 “제2성”을 비롯하여 패미니즘-여권주의 진원지의 하나가 아니더냐. 프랑스사람들은 개를 무지 좋아한다. 놀이감 같은 애완개에서부터 사자처럼 덩치 크고 사납게 생긴 개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그러니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개고기를 먹으면 법적 제재를 받기도 한단다. 한국 ‘88올림픽개최 때 한국의 개고기식용 반대풍파를 일으킨 그 주역들도 바로 이 프랑스사람들이다. 여하튼 프랑스사람들이 개를 자식 맞잡이로 생각하고 너도 나도 끌고 다니는 것은 어쩌면 이해할만 하다. 그들의 오랜 유목문화 전통에서 비롯되었으니깐. 그런데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들의 개를 끌고 내지는 안고 다니는데 서린 그 외롭고 쓸쓸함, 그리고 개의 충성심에서 느껴보는 그 가련한 사디히즘적인 만족. 프랑스에서는 개를 그리 단속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대고 오줌을 갈기고 똥을 싼다. 개똥을 밟기도 일수다. 이런 개분비물처리 때문에 당국에서는 골치를 아파한다. 그리고 나는 분명 프랑스사람들이 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 것을 보았다. 파리에서는 거지도 개를 열심히 안고 끌고 다닌다. 어떤 때는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 세 마리다. 물론 이런 개들은 대개 못 먹어 비실비실하다. 그래 재미나는 것은 거지와 개가 나란히 앉아 구걸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거지한테는 동전 하나 주지 않아도 개에게 먹을거리를 사주는 사람들이 나선다. 그리고 사람과 개가 퍼포먼스를 한다. 사람보다 개의 돈구럭에 돈이 더 많이 흘러든다. 사실 재미나기는커녕 비참하다. 사실 거지와 개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거지와 성당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파리는 전통적으로 천주교세상이라 곳곳에 성당이 서 있다. 사람들은 경건한 자세로 세속의 더러운 영혼을 씻으러 성당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바로 이 성당의 입구에는 거지들의 손길이 내밀어 있다. 그런데 그 우상한테는 돈이 바쳐지을지언정 이런 거지들에게는 일전 한 잎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는 이 인정이 없는 세상을 ‘비참한 세계’라 대성질호했던가. 파리, 아니 프랑스는 이렇게 ‘멋대가리’ 없다. ‘재미’가 없다. 그래도 매력적이란 말인가? 그래도 오겠는가? 오시라!   [끝] 2014.1.15     예술의 도시-파리     파리는 멋진 타이틀이 많다. 낭만의 도시, 디자인의 도시, 패션의 도시,.. 이 가운데 뭐니 뭐니 해도 예술의 도시가 그래도 가장 점잖고 품위 있어 보인다. 그럼 우리 이제 예술의 도시-파리로 들어가 보자.  파리는 하나의 예술전당으로 볼 수 있다. 전반 파리시가 너무나 예술적으로 구획되었다. 파리는 센느강에 있는 시테섬으로부터 점점 확장되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시테라는 말은 바로 영어의 도시라는 city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세기 중엽 오스만에 의해 근대도시로 탈바꿈하면서 현재 도시스타일로 변모했다고 한다. 파리중심을 이루는 개선문에 올라가 보라. 개선문을 중심으로 샹젤리제를 비롯한 12개의 대로가 부채살처럼 쫙 뻗어나갔다. 한 눈에 보기에 시원하고 멋지다. 어쩌면 태양이 빛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파리는 이런 부채살을 끼고 빙빙 돌아가며 한 구역, 한 구역 맞물려 나갔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파리사람들이 좋아하는 달팽이모양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래 올망졸망 달팽이가 신비하지 않은가. 사실 프랑스사람들은 파리만이 아니고 전반 프랑스가 정6각형의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된 천혜의 멋진 나라라고 자부한다. 파리의 건축을 보면 고대 아테네의 대리석 기둥식 건축, 로마의 거뜬 들린 궁륭식 건축으로부터 중세기 고딕식 건축, 문예부흥시기 바로크건축, 그 후 로코코건축, 그리고 오늘날 현대건축, 포스트모던건축에 이르기까지 유럽 다양한 시기의 건축들이 나름대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건축미의 향연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런 건축들 사이사이에 펼쳐진 수많은 광장이며 공원들은 도시를 한결 여유롭고 조화롭게 한다. 그리고 이런 광장이며 공원에 다양하게 뿜어내는 분수며 많은 멋진 조각들은 도시의 예술적 품위를 기껏 살려준다. 여기서는 스트라빈스키광장에 있는 분수 하나와 반고흐조각 하나만 보자. 스트라빈스키광장에 있는 분수는 일단 모양이 특이하다. 아이들 장난감 같다. 그리고 다른 분수들이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물을 뿜어내는데 반해 이 분수는 기상천외-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무렇게나 자기 멋대로 뿜어낸다. 이 분수는 러시아 현대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의 ‘불의 제전’을 분수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반고흐조각은 아주 작은 공원 안에 있다. 이 공원은 바로 이 반고흐조각 때문에 인기만점. 그래서 아예 반고흐공원이라 한다. 반고흐조각은 1961년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조각가 지드킨이 조각한 동상이다. 나무껍질 같은 모습의 옷을 입고 있는 마르고 초라한 모습의 반고흐동상은 마치 인상파의 그림을 보는 감을 준다. 사람들이 진짜 고흐를 만났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기념촬영을 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바로 이런 예술적 도시에 그래피티(Graffiti)예술이 덤으로 가해진다. 파리사람들은 어쩌면 꼭 마치 아이들 같다. 도시 곳곳에 알락달락 칠갑을 한다. 어두컴컴한 지하철선로의 벽면에까지 칠해진다. 내가 사는 촌구석 같은 동네에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좀 지저분한 감을 준다. 그들은 워낙 낙서하기를 좋아한다. 낙서벽이 있는듯하다. 그런데 단순히 낙서로만 보기에는 좀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 그것은 분명 예술의 생활화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그래피티아티스트란 말이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린다. 이런 예술가들은 기존의 네모난 캔버스를 벗어나 살아있는 세상을 화폭으로 삼았다. 그래 건물들 및 그 주변환경과 어울리는 그래피티가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피티는 상당히 다양하다. 외계인이 쓴듯한 글자나 부호로부터 현대,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그림까지. 또 어떤 괴짜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치벽한 곳에 그려놓거나 똑같은 그림을 이곳저곳에 남기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신비하고 알쑹달쑹한 ‘짓거리’들이다. 그래피티아티스트로서는 그래도 미스틱(Misstic)이 유명하다. 그의 그래피티는 그 유명한 몽마르뜨에도 있고 마레에도 있다. 그는 애인과 헤어진 다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글과 그림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검은 옷에 섹시하면서 인상이 강한 여자를 잘 그린다. 그는 여자로서 이런 그림을 통해 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단다. 그래서 여자들이 매우 좋아한단다. 미스틱의 그래피티는 상품의 디자인이 되기도 했다. 어느 한정품으로 나온 가방에 그녀의 그래피티가 새겨져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미스틱의 홈페이지(www.missticinparis.com)에 가면 그녀가 1985년부터 작업해온 그래피티를 감상할 수 있다.  예술의 생활화를 추구한 그래피티가 좀 대중적인 당대의 것였다면 파리사람들의 본격적이고 전통적인 예술추구를 좀 보자. 여기에는 루이14세가 발명했다는 발레를 비롯한 많은 예술종류가 포함되겠지만 그래도 파리를 대표하는 예술은 미술이다. 프랑스사람들은 천생적으로 미술에의 장인정신이 발달한 것 같다. 반고흐, 고갱, 모네... 기라성 같은 세계적인 미술대가들이 수두룩하다. 프랑스는 일찍 루이14세 때 왕립미술학교가 섰다. 그리고 총칼만 휘둘렀던 같듯 나폴레옹 시대에 파리미술학원을 세웠다. 이것은 세계에서 최초로 미술교육을 진행한 곳이다. 현재 유명한 미술교육기관으로는 파리에서 전망 좋은 곳의 하나인 말라케(Malaquais)강변에 자리잡은 국립 파리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 Arts)가 있다. 이래저래 파리는 미술의 성지. 몽마르뜨로 가보자. 몽마르뜨, 평지와 구릉뿐인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 파리 최초의 주교인 생 드니(St-Denis)가 순교한 역사적인 장소다. 몽마르뜨란 이름 역시 몽(Mont, 산이라는 뜻), 마르트(Martre, 순교자라는 뜻), 즉 ‘순교자의 산’이라는 뜻이다. 사실 여기는 189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집값 때문에 파리 시내에서 살 수 없었던 많은 예술가들이 집값이 싸서 모여들었던 곳이다. 가난하지만 예술을 천직으로 알고 예술에 ‘순교’하던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한 끼 먹을거리도 없어 빵부스레기를 주어먹고 신발이 없어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돈이 없어 집세도 못 냈다는 예술가들. 물론 현재는 많이 변해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술적 정취는 물씬 풍긴다. 몽마르뜨의 중심가에 이르면 입구에서부터 초상화를 그리라고 호객하는 화가들이 눈에 띈다. 이런 화가들은 대개 수준미달급의 엉터리들이라고 한다. 중심가를 꿰찔러 테르트르광장(Place du Tertre)에 이르면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그림받침대를 세워놓고 즐비하게 늘어섰다, 테르트르란 말은 ‘언덕의 꼭대기’라는 뜻인데 실제로 이 광장은 몽마르트르의 작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광장이다. 한때 이곳은 처형장소였지만 현재는 화가들의 성당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부터 화가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도 이곳은 화가들의 언덕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모인 화가들은 거의 다 예술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수준급을 자랑한다. 몇 분 안 되어 한 장씩 척척 그려낸다. 그림스타일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정교한 사실주의필치, 모던적인 추상화, 만화적인 희극화... 값도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초상화를 그리는 가격은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약 25-30유로 정도이다. 이들 화가들은 파리나 프랑스화가들만이 아닌 것 같다. 유럽 각 지의 화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동양의 화가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아마도 이 예술의 성지-몽마르뜨에 와서 좀 굴러봐야 정녕 예술가로 거듭 나는듯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라도 한듯. 테르트르광장 뒤편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가 그 끝에서 오른쪽 길(Rue Gabrielle)로 걸어가면 49번지 피카소가 살던 집이 나온다. 좀 더 걸어가면 에밀구도광장(Place Emile Goudeau)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세탁선이 보인다. 세탁선은 당시 많은 시인들과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교류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피카소, 반고흐, 모딜리아니, 미티스, 기욤 등 유명한 화가들이 여기서 활동했다. 세탁선이란 이름은 막스자코브가 예전에 센느강변에 빨래를 하기 위해 떠다니는 배 모양과 집이 닮았다고 해서 지어준 별명이다. 1970년 세탁선은 화재로 불에 탔지만 곧 복구되었고 박물관으로 개장되었다. 박물관안에 들어가면 작가들의 기거했던 방들과 작업실이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사진, 작품들과 만날 수 있다. 사실 세탁선은 피카소가 화실을 차리면서 유명해졌다. 피카소는 큐비즘(Cubisme)의 논란을 일으켰고 입체주의의 영감을 불러온 ‘아바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을 이곳에서 그렸다. 그래서 큐비즘-입체주의 화풍의 탄생지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리고 Vincent길이 끝나는 쯤에 라팽아질(Lapin Agile, 날쌘 토끼라는 뜻)이라는 카바레가 있는데 20세기 초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이 단골로 드나들던 곳이다. 오늘도 샹송공연을 볼 수 있다. 이외에 1889년에 개장하여 프렌치 캉캉춤으로 유명했던 댄스홀-물랭루즈(Moulin Rouge, 빨간 풍차라는 뜻) 옆으로 난 Lepic길을 따라 올라가면 54번지 건물의 4층 왼쪽의 세 번째 집-반고흐가 테오에게 얹혀살던 집을 만날 수 있다. 고흐는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인상파화가들을 만나 흥분하고 교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고립되었다. 그리고 몽마르트르에는 원래 17세기에 밀을 갈거나 포도의 즙을 짜는데 이용하던 재분용 풍차가 30대 이상이나 설치되어 있었단다. 하지만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1870년부터 풍차가 없어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두 개의 풍차만 남아 있다. 블뤼트팡풍차와 라데풍차가 그것이다. 블뤼트팡풍차는 1622년에 세워졌는데, 1870년 마지막 주인이있던 드브레가 춤을 추는 술집을 만들어 1895년에 갈레트풍차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두 풍차는 당시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에게 노스텔지아를 자극했던지 혹은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던지 미적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 반고흐, 르느와르,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이 화폭에 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반고흐의 ‘블뤼트팡풍차’와 르느와르의 ‘갈레트풍차에서의 춤’은 그 보기가 되겠다. 현재 몽마르뜨에는 겔러리도 많고 경제력이 있고 세련된 사람들이 많이 살기도 한다. 초라한 거리의 거지 같은 예술가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인사동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사실 몽마르뜨만의 얘기가 아니고 파리에는 거리에 다니다보면 그림을 그려주는 예술가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특히 루브르, 퐁피두, 오르세 등 예술박물관 부근에 많다. 이들의 ‘몰골’을 보면 대개 초라하다. 머리는 삼검불 같고 얼굴에는 땟국이 흐르고 옷은 여러 물감으로 덕지덕지 덧칠되어 있다. 어쩌면 예술가의 진면모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즉석에서 그려내는 그림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하나밖에 모르는 그 투철한 직업정신, 하나하나 펼쳐지는 예술경지에의 몰입, 신령스러운 손놀림... 그래서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주위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박수갈채를 보내거나 앞에 놓여있는 돈구럭에 돈을 던져주거나 그 그림을 사기도 한다. 이들 예술가들은 실로 예술에 혼신의 정을 다 쏟는다. 좀 무모할 정도로. 퐁피두센터 옆에 있는 스트라빈스키광장(Place lgor stravinsky)에서 본 광경을 이야기하지. 한 ‘거지’ 같은 화가가 광장바닥에 대형 채색미인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가 한 획을 그을 때마다 미인은 파리 현실의 미인보다 더 생기를 띠며 아름답게 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한다. 그래도 별로 돈구럭에 돈을 던져넣지 않는다. 그 미인을 시샘해서인지... 그런데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던 빗방울이 삽시에 쏵 내리며 그 미인도를 씻어내 버리고 만다. 공든 탑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지는가... 사실 파리의 추절추절 비가 잘 내리는 궂은 겨울 날씨에 이런 미술작품은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파리의 화가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국인인 나까지도 아는데 말이다, 사실 그들은 이런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비가 오든 말든 그 돈도 안 되는 그림을 계속 그려 나간다. 그림, 그것은 그들의 숙명이니깐! 사실 프랑스사람들은 모든 곳, 모든 것을 예술화한다. 그들은 워낙 예술세포로 가득찬 예술체질들이다. 나는 프랑스남단의 지중해 해변도시 니스에서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프랑스의 겨울이 그렇듯이 잔뜩 찌푸린 흐린 날씨건만 지중해는 비취색갈처럼 파랬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해변가에는 나무작대기며 빈 깡통이며 광천수병이며 쓰레기가 무더기로 쌓여있다. 기분이 잡쳤다. 일말의 아쉬움이 감돈다. 그런데 여기저기 사람들이 쓰레기를 주어 나른다. 청소하는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이 쓰레기로 해변가 모래사장에 예술품을 설치하고 있었다. 바로 현대현실의 쓰레기예술이라는 것이다. 이제 밀물이 닥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는데 말이다. 이런 거는 그들하고 관계가 없다. 그들은 아무리 순간적이라도 예술을 추구한다. 그것이 허무하게 무너질지라도! 스러지는 꽃을 보는 아련한 아픔이 가슴에 맺히기도 한다. 바로 이런 기질로부터 프랑스는 19세기 말부터 예술을 위한 예술 같은 순수예술이 꽃펴날 수 있은 줄로 안다. 여하튼 멋지다. 너무 인간적인, 너무 예술적인 그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도 모르게 ‘nice!, nice!’를 연발했다. 니스의 프랑스어스필링이 워낙 영어의 멋지고 좋다는 ‘nice’와 꼭 같게 생겨 먹었다.  파리에는 미술박물관이 대단히 많다. 세계 3대박물관의 하나로 손꼽히는 루브르박물관을 비롯하여 퐁피두센터, 오르세미술관, 시립미술관 등 대형 전시관이나 박물관으로부터 로댕미술관, 고흐기념관, 피카소미술관 등 전문 전시관이나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렇지만 이들 전시관이나 박물관들은 중복되지 않고 나름대로의 독특한 경지를 펼쳐보이고 있다. 예컨대 루브르는 고대로부터 1848년까지 고전작품을 전시했다면 퐁피두는 근대미술과 동시대미술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오르세는 인상파걸작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시는 종족, 민족이나 이념을 초월해서 훌륭한 예술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세계적 범위의 미술작품을 취급한다.  사진, 사진을 빼놓으면 파리가 서러워하지. 낭만적이고 예술의 도시니깐 찰칵찰칵 사진이 발전할 수밖에!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le Baiser de l'hotel de ville, 1950년) 사진을 기억하고 계시겠지? 파리의 낭만을 전 세계에 확 각인시킨 그 사진 말이요. 이 사진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초기 인화본이 2005년 파리 경매에서 155000유로에 팔렸다. 두아노는 프랑스사람들이 워낙 가장 사랑하는 인기 사진작가이다. 그의 사진집은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파리에서는 매년 ’파리사진박람회(Paris Photo)‘가 열린다. 1997년부터 시작된 세계 최초, 최대 사진박람회로 그 열기가 대단하다. 세계 유명 갤러리와 사진가들의 사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좋다. 이외에 파리는 매년 유럽작가들의 사진을 주로 전시하는 사진전시회(Maison Europeenne de la photographie de paris)를 주최하기도 한다. 파리는 미술, 사진만이 아니다. 음악도 대단한 줄로 안다. 파리오페라하면 세계가 알아준단다. 파리오페라극장도 하나의 아름다운 경관이 되어 파리시내에 우뚝 서있다. 그래서 파리에 음악유학생들도 많이 몰려든단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런 귀족적인 클래식보다도 거리바닥의 대중적인 통속음악이 좋더라. 파리지하철, 백여 년의 역사만큼이나 좀 거무틱틱하고 노쇠한 모습 그 자체. 그러나 거기에는 항상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항상 지하철연주가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의 지하철연주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반년에 한 번씩 오디션을 거쳐 연주자에 뽑히고, ‘자하철예술가’ 자격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연주할 장소도 지정받는다. 그곳은 대개 사람들이 많이 나드는 환승통로다. 이런 환승통로에서 만날 수 있는 연주자들은 꽤 수준급이다. 괜찮은 실력을 자랑한다. 그들은 듣는 사람과 소통하며 서로 예술적 감각을 키워나간다. 물론 이런 자격증이 없으면서도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연주뿐만 아니라 다른 공연도 많이 한다. 두서넛이 한 조합으로 하여 연주에 노래하는 경우도 있고 혼자서 포장을 쳐놓고 재치있는 손놀림으로 꼭두각시놀음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전통적인 반주기에 맞추어 손발을 흔들어대는 사람도 있다. 파리의 이런 음악, 예술 공연은 지하철만의 얘기가 아니고 시내 곳곳에 있다. 아무렇게나 막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이크에, 갖출 것은 다 갖춰놓고 흠뻑 도취되어 사뭇 신명나고 진지하게 한다. 물론 공짜로 거저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앞에 돈구럭을 놓거나 아예 악기통을 돈구럭으로 쓰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의 노래나 연주를 CD로 굽어내어 판매하기도 한다. 그들도 살아야 하니 말이다. 이런 공연은 파리, 프랑스사람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우리 동양사람뿐만 아니라 저 남아메리카의 인디안이나 잉카사람들도 여기에 가세하기도 한다. 파리의 거리공연문화는 국제성을 띠고 있다. 파리의 거리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퍼포먼스-행위예술. 관광구나 번화한 거리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것이 이 행위예술. 실로 별라별 행위예술이 다 선보인다. 얼굴에 검댕이 칠을 하고 몸에 착 들어붙는 검은 복장을 입고 두 손에 권총을 쥔 강도모양새를 내는가하면, 두 발에 양걸춤을 출 때 늘어뜨린 목발을 하고 독수리모양의 ‘옷’을 둘쳐입고 날아다니는 독수리모양새를 내기도 하며 납색의 우주복을 입고 하늘을 향해 꼼짝 않고 서 있는 모양이 이 세상사람 같지 않다. 좀 이색적인 것은 우리 중국 티벳 라마스님 스타일의 짙노란가사를 걸친 사람이 달랑 스댄리스를 손으로 잡은 채 허공중에 뜬 모양으로 앉아 동양의 신비를 기껏 발산하고 있는 것이였다. 참, 파리, 아니 프랑스에는 괴짜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괴짜들을 용납하는 정도가 아니고 좋아하고 응원하는 파리, 프랑스사람들이 더 멋져보인다. 그 누가 길 중간 혹은 온 다리를 차지하고 행위예술을 한답시고 ‘지랄발광’을 해도 파리, 프랑스사람은 그것을 불편해하기는커녕 멋지게 봐주고 감상해준다. 때로는 경찰들이 나서서 장소를 보장해주거나 질서를 유지해준다.  파리는 쇼~쇼~쇼~, 쇼적인 도시! 이벤트를 벌리기 좋아한다. 언제든지 시내에 나가면 볼거리가 있다. 크리스마스시즌이 되면 고조를 이룬다. 그런데 이런 이벤트들이 상업적인 돈 구린내가 나는 것이 아니고 예술적인 향기가 나는 것이 너무 좋다. 파리백화점들을 비롯한 많은 가게들의 밖의 길가는 사람들을 향한 상품진렬창들은 너무 멋지다. 그곳은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상품을 선보이거나 소개하는 진렬창이라기보다는 멋지고 아름다운 인간의 미적 제품에 매혹되어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을 발하게 하는 곳. 크리스마스시즌에는 이런 진렬창들이 아예 나름대로 독특한 그 어떤 예술공연장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좋아라고 진렬창유리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를 납작하게 박고 보아주기에 여념이 없다. 파리의 이런 예술적 진렬창들은 이미 독특한 진렬창문화로 자리잡았다, 파리에도 포장마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포장마차도 너무 멋지다. 특히 크리스마스시즌에 집중적으로 나오는 포장마차들이 더 멋지다. 얼마 전의 크리스마스시즌에 나는 저녁에 파리의 최고 번화가인 샹젤리제거리로 나갔다. 길 양켠에 포장마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그런데 매 포장마차들이 모두 너무 깜찍했다. 꼭 마치 성탄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몰고 온 행운의 밀차들 같았다. 실제로 포장마차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보면 붉은 색깔의 성탄할아버지 고깔모자에 옷을 입기도 했다. 그리고 파는 물건도 보면 나름대로의 지방특산품이나 자기가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것들이 많았다. 분위기도 좋고 개성적인 예술적 센스도 좋다. 그래 돈을 누가 싫어하랴, 파리-프랑스사람들은 돈을 벌어도 이렇게 예술적으로 번다. 나는 파리시교, 내지는 프랑스 고속도로로 달리며 농촌풍경을 보고 감탄을 감추지 못한 적이 있다. 파리-프랑스의 농촌풍경이야말로 전형적인 진짜 예술적인 전원풍경이거늘! 프랑스는 별로 산이 없이 평지나 구릉이 많아 농사짓기에 적합한 천혜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는 유럽에서 최대 농산품생산국이다. 그런데 이들 농촌들을 보면 별장 같은 집도 멋지겠지만 경작지가 더 가관이다. 꼭 마치 푸른 잔디나 주단을 펼쳐 놓은 듯 하나의 아름다운 동산으로 꾸며 놓는다. 어떤 데서는 이런저런 기하도형이나 S라인이나 V형 같은 예술도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 별로 먹을 것을 가꾸는 밭이라는 개념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이 저 푸른 초원 위에 구름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함께 한 백년 살고지어...   파리-프랑스사람들은 예술적인 상상력과 독창성이 뛰어난다. 역시 크리스마스시즌에 저녁에 샹젤리제거리로 나갔을 때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빈둥빈둥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어느 공연장에 이르렀다. 일단 깜짝 놀랐다. 무대가 허공중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감탄했다. 공연이 너무 멋져서! 쪼각배 같은 무대가 와이야줄에서 이리저리 오가는데 거기서 성탄차림을 한 배우들이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고 선물도 내려보내며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난다. 우리 관객들은 밑에 서서 머리를 게사니처럼 위로 빼들고 보며 듣기에 제정신이 아니다. 여기에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기에 또한 바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다리도 아프지 않다. 더욱이 이국땅에서 간만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기를 볼 수 있어서 나는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날 나의 꿈에도 이 쪽배기가 나타났다. 그래 환상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가!   지루하쟈? 그럼 우리 같이 손 잡고 센느강의 예술의 다리(Pont des Aarts)를 산책하자. 예술의 다리는 초최 1801부터 1804년에 나폴레옹의 명으로 만들어졌다. 목조로 된 보행자 전용다리. 이 다리 위에서 파리의 예술가들이 전시를 하거나 공연을 하는 등 많은 예술활동을 펼쳐진다. 예술의 다리는 ‘사랑의 다리’ 또는 연인의 다리‘라고 불릴 만큼 낭만적인 다리이기도 하지요. 다리를 건넜으면 센느강변에 펼쳐진 야외조각미술관까지 산책하시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술서점 하나 소개. Taschen, 건축, 사진, 디자인, 패션, 광고, 영화 등 방면의 전문 예술서적을 파는 서점 둘러보자.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예술서적을 살 수 있어서 좋다. 세계 11곳에 직영점이 있단다.  파리는 예술적인 볼거리, 들을거리, 만질거리가 지천에 널려있다. 미래지향적인 예술의 생활화, 생활의 예술화가 잘 되어 있다. 그러니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만이 더 많은 문화생활과 예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너도나도 평등하게 양질의 예술을 즐길 수 있다. 오시라, 파리로! 파리도 팔락팔락 예술로 화하는 파리다.   [끝] 201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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