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2003-11월-25일

부당해고, 임금체불, 탈세 등 해외 한국기업의 추태를 고발한 인권백서를 보니 정말 낯이 뜨겁다. 국제민주연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원을 얻어 24일 발간한 "해외한국기업 인권현황 백서"에 따르면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중 상당수가 근로자 탄압과 임금 체불, 탈세 등으로 현지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수출단지내 S사의 경우 한국인 사장이 잠적해 현지 노동자 400여명과 한국인 직원이 밀린 임금을 받지 못했다. 과테말라에 진출한 N사와 인도네시아 보고르 지역에 위치한 의류업체 B사 등은 임의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로 당국의 제재를 받았거나 소송을 제기당한 상태에 있다. 필리핀 카비테 수출자유지역에서는 다수의 한국기업들이 현지법의 허점을 악용해 면세혜택이 허용되는 5년이 지나면 고의부도를 내 문을 닫은 뒤, 법인명칭만 바꿔 다시 면세혜택을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물값을 아끼기 위해 수질검사를 하지 않은 물을 식수로 공급, 노동자의 파업을 초래한 적이 있고, 경비지급도 없이 연장근무를 시켜 현지인들의 원한을 사는 기업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해외 한국기업들의 "추태"는 해당 기업 뿐만 아니라 전체 한국기업, 나아가 대한민국의 이미지마저 크게 실추시키는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지금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을 탄압한다는 오명을 씻기 위해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법제화해 실시하고 있지만 사후조치가 미흡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터에 밖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들이 현지 근로자를 탄압하고 불법과 비리를 저질러 현지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으니,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지금을 "세계화 시대" 또는 "지구촌 시대" 라고 한다. 이 말은 한 국가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시에 국제적으로 가치기준이 점차 동일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경쟁과 협력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이미지 실추는 국가경쟁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 국내에서 겪고 있는 외국인력 대란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들과 현지근로자들의 인권을 챙기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방치할 수는 없다. 정부는 국내외 기업에 고용된 외국인력의 인권보호와 효율적 관리를 위한 법적ㆍ행정적 체계를 정비하고, 관련부처 및 재외공관간 협력시스템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해외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의 소명의식과 장기비전이다. 한국을 대표한 "국가대표 기업"이라는 의식을 갖고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그 것은 바로 자신들의 사업경쟁력을 높이는 길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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