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돌아오니 어릴적 일이 머리에 선히 떠오른다.

해마다 추석이 돌아올 때면 어머니께서는 제사준비로 바삐 보내셨다. 소금 살 돈마저 없을 정도로 째지게 가난한 살림이라 어머니께서는 겨, 바가지, 비자루, 고추가루 같은것을 등에 지고 걸어서 10여리되는 팔기자장터에 가서 팔았다. 이 돈으로 사탕과자나 과일 그리고 고기붙이나 술 같은것을 조금씩 사오군 했는데 우리가 먹을가봐 감춰두기까지 했다. 평소에 우리가 아무리 이밥을 해달라고 졸라도 해주지 않고 꽁꽁 감춰두었던 입쌀을 꺼내서는 발방아를 찧어 가루를 내였다.

추석날이면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이른 새벽부터 부엌에서 바삐 돌았다. 찹쌀지짐을 굽고 골무떡을 만들고 고기를 삶군 했다. 준비가 끝나면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을 데리고 조상들의 산소에 가서 어른들을 따라 술을 붓고 절을 올리게 했다.

그래서 어릴적 나는 추석을 떠나가신 선조들을 기리는 날로 기억해왔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제사법은 한해두해 변함없이 대대손손 이어져왔으리라.

떠나가신 고인들에게 올리는 이런 귀중한 례식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색바래지고있다. 일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령전이나 무덤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례를 올리는것을 《미신》활동이라고 비웃고있고 일부 사람들은 시끄럽다거나 부담스러운 일로 여기고있다.

그럼 추석날 제사의 진정한 이미지는 무엇인가?

한국의 안병렬선생은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제사는 돌아가신 어른에 대한 추모의 정을 가지게 한다. 제사상앞에서는 마음이 스스로 너그러워지고 멍든 가슴이 봄눈 녹듯 사라져서 서로간의 의리도 두터워진다. 제사상앞에서 피여나는 아름다운 인정, 이런 아름다운 감정이 마음속깊이 뿌리내리고 자라야 남을 사랑하는 마음도 따라서 자라게 될것이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것이다.》

이렇게 제사는 돌아가신 어른을 위하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게 한다. 돌아가신 어른을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는 의식을 통해 자손들이 스스로 조상에게 공경심을 갖게 되고 고인의 훌륭하심이나 교훈이 될만한 점들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후회나 뉘우침의 말들을 나누며 앞으로 더 성실하게 어른을 섬기자고 다짐한다. 따라서 살아계신 어른들을 공경하는 기풍도 수립한다...

세월이 흘러 민족의 넋을 기리는 방법과 형식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고인을 추모하며 고인의 생전뜻을 받들어나가겠다는 후세사람들의 정성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상, 경제상 등 원인으로 산소에 갈수 없다면 자기 집 방에서라도 정히 제사상을 준비할수 있다. 그저 밥 한그룻에 술 한잔 그리고 사탕, 과자나 혹은 과일 조금으로 소박하게 하여도 상관없다. 정성스런 마음이 슴배여있다면 그만이다. 이는 누구나 다 할수 있는것이다. 이상분들이 앞장서서 꾸준히 정성을 기울인다면 우습게 여기던 젊은이들도 꼭 따르게 될것이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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