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으로 중국은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의 외자유치도 50만건시대를 돌파, 2006년2월말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는 루계로 55만건,실제외자리용액도 6300여억달러에 달해 중국경제에 대한 외자의 중요성이 날로 뚜렷해졌다.국무원에서부터 지방정부에 이르기까지 외자유치를 지도자선발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으며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중요시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조선족들도 자신의 독특한 언어적, 혈연우세를 앞세워 ‘봉황’을 끌어들이는 ‘오동숲’역할을 하며  외자유치의 전연에서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고 있다.

천진의 ‘탕원현상’과 광동의‘계서현상’

전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선족 외자유치군단가운데 한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주축이 되여 외자유치를 선도하고 있는 경향이 출현하고 있는데  천진의 '탕원현상'과  광동의 '계서현상'이 비교적 대표적이다.

1990년대초부터 천진에는 조선족대학졸업생들이 찾아들기 시작하여 한국기업의 유치에 앞장섰다. 현철, 김원호, 김영식, 렴재윤,황철훈, 리경세, 우봉금, 백설봉, 진철호, 조승철,박영일, 김상원 등 흑룡강성 탕원현조선족중학교 출신의 젊은이들이 천진에서 한국투자유치의 선봉장으로 활약함으로써 ‘탕원현상’을 출연했다. 이중 대표주자인 현철씨는 1990년 동북재정학원을 졸업하고 천진개발구의 공상관리부문에 배치받았다. 중국의 공업도시인 천진에서는 당시 한국투자유치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라 그와 같이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하고 실무에 익숙한 인재가 드물어 현철씨는 단위의 중용을 받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현철씨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주고 제일 처럼 발벗고 나선데서 한국기업들의 인정을 받았는데 직간접적으로 그를 찾아 천진에 정착한 기업들만해도 200여개,투자액으로 치면 3억달러에 달한다.  오상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탕원현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천진에 진출한 황철훈씨는 신용과 믿음으로 한국투자유치에서 솜씨를 폈는데 그를 거쳐간 한국기업은 100여개, 투자액으로 치면 5천만달러에 달한다. 그의 능력이 인정을 받아 황철훈씨는 천진 진남개발구 투자유치국 부국장으로 활약했다. 이들은 모두 동창 혹은 한고향 출신들이여서 한사람이 투자를 유치하면 각자 자신의 인맥을 통해 도와나서 일을 순조롭게 진척시켰다. 하여 한때 '천진에서 탕원사람을 찾으면 통한다'는 말도 류행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부터 일본어 인재양성에 중시를 돌렸던 흑룡강성 계서지역(계동,밀산)의 조선족들이 일본어 구사능력을 바탕으로 심수, 광주, 동관, 혜주 등 광동지역의 일본기업들에 통역 및 관리업무를 맡게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들중 일정한 기반을 잡은 조선족들이 일본회사에서 형성한 인맥관계를 토대로 투자를 유치하는데로 발전했는데 태백, 유성호, 김룡수, 서정파, 임학철,심정남 등 50여명 계서출신 조선족들이 앞장서고 있다. 광동지역의 한 조선족유지에 따르면 계서지역 조선족과 관련되는 외자가 어림잡아도 수천만달러에 달할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족외자유치능수들 지역사회의 ‘대들보’

중국과 지리적으로 린접해 있고 같은 동북아경제권에 속하는  한국과 일본의 투자유치가 산동, 강소, 북경, 천진, 상해, 료녕 등을 주도로 많은 지역들의 외자유치중점으로 부상하면서 각 지역들의 투자유치부문에 한국어와 일본어에 능숙한 조선족인재들이 속속 등장해 지역경제발전의 ‘대들보’역할을 하고 있다. 할빈의 김계호, 심양의 선우광, 대련의 공영택, 청도의 윤명금, 김광룡, 박철룡, 위해의 강봉오, 연대의 리종한, 연변의 박현기, 녕파의 김일봉, 가흥의 김문혁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할빈개발구 외자유치국 부국장으로 사업하고 있는 김계호씨는 할빈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다가 일본에 6년간 류학, 귀국한후 언어우세와 인맥우세 등으로 1998년 할빈개발구 외자유치국에 전근되였다. 한국과 일본을 제집을 드나들듯하면서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투자자들의 리익을 도모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보람으로 총투자가 2000여만달러에 달하는 중한합자 만도(할빈)자동차샤시시스템유한회사를 비롯해 57개의 한국기업을 유치했다. 일본기업도 이도쥬상사, 히타치, 미츠비시를 비롯한 10개의 기업이 할빈개발구에 정착했는데 통투자액이 5천만달러에 달한다. 할빈개발구 외자유치국에서 근무한 8년간 김계호씨는 1억5천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해 2003년 3월 부국장으로 승진, 할빈시 우수공무원의 영예를 지녔다.

대련경제개발구 외자유치2국 국장으로 사업하고 있는 공영택씨는 흑룡강성 밀산출신으로서 대경석유학원을 졸업한 엘리트다. 대경유전에서 설계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1993년 대련시의 공무원채용시험에 통과되여 대련개발구에서 일한투자유치를 추진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였다. 사심을 버리고 신용과 열성으로 확고부동하게 한우물을 판 보람으로 당시 ‘한국기업의 불모지’로 불리우던 대련에 180개의 한국기업을 유치, 통 투자액은 8억달러, 일본기업 200개를 유치, 총투자액은 12억달러, 대련의 투자유치 '1등공신'으로 불리우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성과로 그는 선후로 대련시 로력모범, 대련시 우수공산당원 등 영예를 지녔다.

이외에 해남의 김미자, 남명동, 심수의 남화섭, 천진의 김란화, 청도의 김봉동, 연대의 최룡덕, 위해의 권주일, 심양의 길경갑, 서안의 정태철, 대련의 리웅진, 김미화, 할빈의 로광석, 김영학 등 기업가들을 비롯해 개인의 인맥을 리용해 외자를 유치하는 조선족외자유캄개미군단’도 무시할수 없는 상황이다.

 믿음직한 ‘중매군’역할로 신임받는 조선족단체

조선족 도시화의 가속과 산업화의 진입으로 전국 여러도시들에 친목과 화합, 상생과 발전을 위한 조선족단체들이 생겨나 지역 조선족사회의 구심점역할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본연의 기능수행에 충실하는 한편 직,간접적으로 투자유치에서도 ‘중매군’역할을 발휘하고 있어  신임을 받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 청도시조선족기업가협회, 광동조선족기업가협회, 길림성조선족기업가협회, 할빈조선족상공회,  북경고려경제문화연구회, 천진조선족련의회, 란주조선족협회, 내몽골조선족연구회 등 민간단체들이 활약하고 있다.

심양시조선족기업가협회는 심양시조선족기업인들을 구성해 교류와 협력의 무대를 만들고 조선족들의 경제, 문화 등 각종행사에 70여만원의 성금을 기증하는 한편 심양의 대한국유치를 위한 한국주행사에도 적극 협조해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협회의 부회장인 심양소리샘그룹 리금숙동사장은 380만원을 투자해 한국주간 ‘소리샘의 밤’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한국투자자들의 유치에 기여함으로써 정부의 표창을 받았다.

광동성조선족기업가협회는 광동지역의 조선족들을 하나로 묶어내며 현지에서 조선족들의 이미지를 인상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협회의 홈페이지를 가동해 광동지역의 투자유치정책을 적극 홍보하며 한국인투자자들을 위한 자문봉사를 따라세워 호평을 받고 있다.

조선족변호사들 투자유치의 법적’가이드’

전국적으로 중국법률을 숙지하고 한국인의 특성에 익숙한 조선족변호사들이 한국투자유치의 법적’가이드’로 활약하며 특수한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 청도의 김옥, 위해의 리영태, 대련의 박학송, 북경의 김련숙, 김철, 김호, 장영두, 심양의 조봉 등 50여명의 조선족변호사들이 선도하고 있다.

중국정법대학을 졸업하고 산동흥전로펌회사의 간판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는 김옥변호사(녀, 36세)는 주청도 한국총령사관, 청도한국상회,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등 수십개 단체, 협회의 법률고문으로 위촉되였다. 청도를 찾는 한국기업들과 한국인들에게 믿음직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여 '김옥변호사를 찾으면 투자에 랑패없다'는 정론이 나있다. 그를 거쳐간 한국기업은 200여개, 투자액으로 치면 수천만달라에 달한다. 또한 경솔하게 투자하였다가 피해를 입는 한국기업들을 위해 손실을 미봉해준것만 해도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료녕대학 법률학부를 졸업하고 료녕에서 사업하다가 1997년 위해에 진출해 산동영량태업로펌회사를 설립한  리영태변호사는 위해 변호사협회 섭외사무위원회 변호사와 위해시 중재위원회 중재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는 한국기업들에 준법경영을 권장하며 투자과정에 나타날수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해줌으로써 그를 거쳐간 100여개 한국기업에서는 로동분규나 계약분규 등이 발생하지 않았다.

중국정법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류학하여 석사학위를 취득, 귀국하여 북경금평변호사사무소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호변호사는 중국통과 한국통으로 한국기업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중국법률과 한국법률간의 차이점을 들어가며 중국투자의 위험부담을 최소한 줄이도록 대책과 방법을 강구해주는 김호변호사에 대한 신뢰로 그를 찾는 한국인투자자가 늘고 있다.

민족간부는 외자유치의 ‘무형자산’

민족의 리익을 대변하고 민족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민족간부의 중요성은 자명한 일이다. 동북3성의 여러지역들에서 사명감을 안고 자체의 우세를 살려 지역경제의 발전을 위한 한국투자유치에 전력투구함으로써 량호한 조선족간부의 형상을 수립하고 조선족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있다. 흑룡강성 쌍압산시의 리룡길부시장, 할빈시위 박일비서장, 길림성 장춘시의 리룡희부시장, 료녕성 금주시 진금옥부시장, 심양시 대동구정협 로팔균주석 등을 포함해 산하의 현(시)들에서도 조선족간부들이 중시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흑룡강성 녕안시를 들수 있다.

한국재계 서렬 12위를 차지하는 동부그룹 산하의 (주)동부한농화학이 녕안시에 중국내 첫 공장인 '동부한농(흑룡강)화공유한회사'를 설립, 총투액이 1억5천만원에 달해 2005년 흑룡강성 최대의 외자유치항목으로  주목을 끌었다. 한국의 대그룹이 연해도시나 중심도시도 아닌 녕안시에 정착하게 된데는 동일만, 김경진, 심상조 증 조선족간부들의 노력의 결실이다. 2004년 녕안시는 흑룡강성 최초로 현(시)급에 대한국 외자유치판공실을 설립, 녕안시위 상무위원인 동일만 부시장이 주임을 맡고  시정부 김경진 비서장과 민족종교국 심상조 국장이 부주임을 맡았다. 동부한농의 투자유치를 위해 간이식 수술을 하고 약보따리를 짊어지고 나선 동일만부시장, 한해에 한국을 10여차례 방문한 심상조 국장, 한국어에 익숙치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김경진 비서장 , 동부한농관계자의 말을 빈다면 투자의 최적지가 아닌 녕안시를 선택한것은 조선족간부들의 높은 자질과 열성에 감동을 받아서이다.  현재 한국인삼공사의 투자유치도 진척중이다.

주중한국대사관 김하중대사는 1992년 한중수교당시 량국교역액은 50억달러에 불과했으나 2005년에는 1119억달러, 인적교류는 연 13만명인 상황에서 2005년에는 연 440만명, 한국의 대중국투자는 2억1천만달러에 달했으나 2005년에는 311억달러, 3만8천개의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그동안 조선족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긍정하고 나서 향후 량국관계의 심화, 발전과정에서 조선족 사회의 기여와 역할에 더욱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흑룡강신문/진종호 기자 zhonghaoche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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