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도 만주리 통관량 1752만톤 

러시아서 장사하는 조선족 2,3만명

 

중국,러시아,몽골 3개국의 접경도시인 만주리는 러시아 보따리장사군들로 분비는 작은 도시이다.러시아풍격의 건축에다 가는 곳마다 눈알이 파란 러시아인들을 접할수 있어 마치 러시아가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이국풍이 물씬 풍기는 26만 인구의 작은 도시지만 만주리통상구의 중-러무역량은 중-러 전체무역량의 60%를 차지한다.2005년도 통관량만 보아도 1752만톤이나 된다.

 

시내 중심에서 20분가량 가면 중국,러시아, 몽골 3국의 국경이 린접한 돌로 만든 표시가 있고 국문이 있다 국문 전망대에 올라 가 보면 바로 건너편이 러시아다.국문 밑으로는 통관을 기다리는 기차화물바구니가 곽 밀려있는데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차량은 원유,목재,강재,화학제품이 대분이다.중국의 대러시아 수출은 전자제품,과일,곡물,경공업품이 주류이다.

 

만주리에는 또 중러 륙로통상구도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화물통관차는 생각보다는 적은편이였고 대신 국경관광차들이 줄을 서서 통관을 기다리고 있었다.중국에서 러시아로 가는 사람보다 러시아에서 들어 오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만주리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이 관광차를 타고 오지만 관광보다는 주목적이 물건구입이라고 말한다.지금은 이렇게 물동량도 대단하고 년간 수십만 러시아인들이 다녀가지만 개혁개방이후 러시아와 민간무역을 갓 시작하였을 때는 중국의 수박 한 트럭으로 러시아의 시멘트 한트럭을 맞바꾸는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땅에서 로어로 흥정하는 장사군들

 

만주리의 중러공동무역시장에 가면 중국인들과 러시라인들이 로어로 물건을 흥정을 한다.여기의 중국인 장사치들은 장사에 사용되는 로어는 류창하다.로시아인들이 중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장사를 잘 하려면 로어를 알아야 옷 한견지라도 더 팔고 값도 잘 받을수 있다.러시아 보따리장사군들은 마대같은 큼직한 가방을 메고 끌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물건 매대앞에서 중국인녀인 장사군과 열심히 흥정을 하고 또 많이 사면 값을 싸게 해달라고 시간을 끌기가 다반사란다.

 

장사는 러시아인이나 중국인이나  다를바가 없이 리윤을 많이 남기려고 무등 애를 쓰고 시간을 허비한다.중국녀성 매대주인들은 러시아인들도 인젠 이골이 터서 흥정을 할줄 알뿐만 아니라 심리작전도 곧잘 쓰는데 흥정을 한참 하다가도 값을 깍아줄 눈치가 보이지 않으면 다른 매대에 가서 휘휘 돌다가 다시 와서는 그쪽것이 싸다고 말하며 다시 흥정을 한단다.

 

하지만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이면 마대치기로 사간단다.그런 말을 실증하듯이 러시아인 뚱뚱보 아주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금방 산 물건들을 마대같은 대형가방에 차곡차곡 밀어넣느라 정신이 없다.이렇게 한번 만주리에 와서 물건을 구입해 가면 얼마나 벌수 있느냐면 러시아 쪽에 사정에 환한 박씨 조선족 아저씨는 적어도 1000루불은 번다고 알려주었다.

 

그렇지만 중국인이나 러시아인 상인들은 작년보다 장사하기가 어렵다고 툴툴거린다 한것은  작년까지만 하여도 러시아 세관에서 한사람당 50킬로그람씩 면세 해주던것이 올해 3월부터 20킬로그람으로 제한하여 한번에 물건을 많이 가져가지 못하니 자연 경비는 경비대로 들고 리윤은 그전의 반밖게 안되니 러시아상인들은 러시아상인대로 툴툴대고 중국상인들은 물건이 그전의 절반밖에 팔리지 않으니 중국상인은 중국 상인대로 불만이다.하지만 리윤이 좀적게 남을뿐이지 장사가 되기에 만주리는 낮은 러시아 상인들로 부쩍대고  밤이면 러시아인들로 거리를가 부야성을 이루는것이다.

 

만주리에서 울고 웃는 조선족 보따리상들

 

호텔에서 하루밤을 묵고 이틑날 만주리에 조선족민박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우리는 그길로 조선족민박을 찾아 주숙을 박영복씨의 민박으로 옮기였다. 이틀동안 거기서 묵으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우리가 민박에서 묵을 때는 손님이 이미 4명 들어있었다.그들은 모두가 러시아를 드나들며 장사를 하는 조선족들였는데 이 민박의 단골손님으로 주인과는 아주 익숙하고 허물이 없이 지내는 사이였다.그중에는 수화시에서 온 최란( 가명) 이라는 13살짜리 녀자애도 있었다.

 

원래 만주리시내에는 조선족이 20여호밖에 없었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해동되면서 민간무역이 시작되자 동북3성의 조선족들이 하나둘씩 만주리로 장사하러 들어가기 시작하였다.80년대 초반부터 발빠르게 모험의 길을 선택한 그들은 러시아 보따리장사 문이 열리자 만주리에서 러시아로 진출해 떼돈을 번 사람도 있지만  강도들에게 물건을 빼앗겨 빈털털이가 되여 만주리로 돌아와 술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90년대 후반에 러시아 보따리장사가 고봉을 이루었는데 하루에 러시아로 들어가는 조선족들이 10여명씩 되였단다.처음에는 물건을 장만하여 러시아에 가서 팔고는 만주리로 돌아와 재차 물건을 구입하여 러시아로 들어 가던것이 점차 친척이나 친구들이 그룹을 무어 만주리에서 물건을 보내면 러시아에서 받아 넘겨 소매하기에 경비를 절약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런 그룹은 보통 4,5명이 한팀이 되여 장사가 잘될 때는 둬서너달에 한번씩 만주리에 모여 축하 파티를 벌리는데  만주리 판을 쓸고 다니였단다.반면 러시아 장사에 망한 사람들은  고향에도 못가고 처 자식과 련락을 끓고 정처없이 러시아로 들어가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단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 러시아에 조선족장사군들이 적어도 2,3만명은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간지 10여년이 되는 사람들도 있고 비자가 만기되여 돌아오지 못하고 아예 거기서 눌러 앉아  막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어느 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든간 어차피 인간이 사는 세상은 마찬가지로 잘 나가는 사람은 잘나가고 곤경에 빠져 허덕이는 허덕인다.

 

우리가 민박집에 있을때 연변에서 왔다는 김씨는 로어도 아주 잘 하고 러시아 장사에도 미립이 터서 러시아쪽에서 무엇이 수요되다고 하면 만주리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러시아로 보내는데 이젠 전화 한통이면 짐을 꾸려 통관하는데까지 제시간에 갔다준다는것이였다.그리고 인상이 아주 깊었던것은 최란이였다.

 

우리가 민박에 갔을 때 이미 한주일 거기에서 묵었는데 러시아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보낸 데리러 온다는 사람이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참이였다.어머니,아버지는  최란이가 5살 나던해에 러시아 장사를 가면서 최란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갔는데 8년이 지난 오늘 할머니가 년로하여 애를 거두지 못할 형편이 되자 어머니,아버지가 최란이를 러시아로 데려 가려고 만주리에 오라고 했던것이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는 비자가 만기되여 만주리로 오지 못하고 아버지 친구가 만주리로 데리러 온다는것이였다.

 

우리가 떠나기 전날 취재를 나갔다가 돌아오니 애가 보이지 않기에 민박 주인에게 물었더니 러시아에서 건너온 최란이 아버지 친구가 데려갔는데 러시아로 건너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8년간 부모들과 생리별을 하고 살던 최란이가 이국 러시아에서라도 부모들과 상봉하기를 기원한다.

 

흑룡강일보 /특별취재팀 임국현,남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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