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까마귀님은 용케도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깨어났습니다. 간밤에 호르몬 분비가 자연스러웠는지, 이상하게 머리가 하나도 안 아픕니다.


머리 아픈데 처방이 따로 없네요..^^


장가 안간 노총각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가기 싫어도 심신 건강을 위해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갔다가 싫으면 다시 돌아오던지..^^ 장가못간 총각들에게는 할 말이 없습니다. 잘못 말했다간 따귀를 얻어맞을라..^^

 

아침부터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까마귀님은 옷을 주어입고 문을 나섰습니다. 

 

머리를 들고보니 한겨울의 날씨답지 않게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습니다. 싸늘한 겨울바람을 맞으니 날 것 같습니다.


- 날아라, 까마귀야. 하늘 높이 훨훨 날아라.


그런 기분으로 추운 줄도 모르고 온 하루 활개 치며 북경의 백화점이란 백화점은 거의 모두 돌아다녔습니다.


생각밖에 북경의 백화점이 환하고 보기 좋네요. 서비스도 옛날과 달리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올림픽이 끝나면 아주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없는 물건이 없고,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역시 선택이란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적어도 문제고 많아도 문제입니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니, 까마귀의 쇼핑 가방도 서서히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로션, 크림, 이쑤시개, 굽 높은 구두, 까만 구두약, 까만 외투, 까만 색 안경, 그리고 또 뭐더라..^^ 


돌아오는 길에 미용원에 들려 긴 머리를 짧게 깎아버렸습니다. 턱수염도 깨끗이 밀어버렸습니다. 내친 김에 겨드랑이 털도 깎아버릴까 하다가 그만 뒀습니다.

 

죄송하지만 원래 털이 많은 까마귀입니다..^^


다음은 사우나로 달려가 열심히 땀을 뺐습니다. 10년 묵은 때가 충분히 퍼지기를 기다려, 까마귀님은 까만 몸뚱이를 때밀이 아저씨에게 맡깁니다. 


때밀이 아저씨가 때를 밀면서 상을 찡그립니다.


- 어쿠, 이게 무슨 냄새야.


깜둥이가 휜둥이로 변신하는 과정은 20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아저씨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거울 앞에 와 서니 막 정신이 납니다.

 

오랜만에 홀딱 벗은 까마귀입니다.

 

거울 속의 남자는 나이에 알맞게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갔습니다. S라인은 아니지만 D라인도 아닙니다. 대충 H라고 할까요.

 

그리고 유일하게 작은 눈이 살짝 눈에 거슬렸지만, 그래도 잘 보이기만 하니 됐습니다. 성형외과에 가서 눈 위에 주름을 하나 더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조상이 준 얼굴을 마음대로 뜯어고치면 안 되지요..^^ 


콤플렉스 없는 사람이 없다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노총각 노처녀는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족이란 바로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은 바로 호기(豪氣)이고 애교입니다. 호기는 바로 남자의 기본이고, 애교는 여자의 인기입니다.


거울 속의 까마귀가 거울 밖의 까마귀에게 윙크합니다. 기분으로는 어지간한 장가는 열 번은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 외모는 이만하면 됐고 다음은 뭘 할까.


까마귀님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눈앞에서 크고 작은 엉덩이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 여자목용탕의 풍경은 어떠할까.


여자목욕탕에 신경을 쓰는 까마귀님, 순간 직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를 꼬시는데 꼭 직업이 필요한 거는 아니지만, 결혼을 상대로 여자를 꼬시려면 무엇보다도 고정 직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인물과 성격을 중히 여기지만, 여자는 남자의 경제력과 인격에 끌린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살기 바쁘면 일자리를 찾으러 나가지만, 대신 여자들은 살기 힘들면 시집 갈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교토에서 공부할 때 있은 일인데, 한 연구실의 일 년 선배인 예쁜 일본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졸업하면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그녀는 단 마디로 시집간답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나올 수 있을까요?


그 후부터 어깨에 힘이 빠져 아르바이트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여자가 부러웠고, 두 다리 사이의 고추가 부담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어릴 때 여자가 부럽다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까마귀는 여자들의 꽃 치마가 부러웠을 뿐입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역시 바지보다 치마가 편합니다. 입기도 편하고 벗기도 편한 것이 치마였습니다. 

 

유치원 다닐 때의 경험으로 볼 때, 역시 세상살이는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 까마귀도 치마를 입고 싶어. 


담배 한대 꼬나물고 여자목욕탕 쪽 바람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우리 까마귀님, 사유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니 다행입니다. 


그 만큼 운동은 싫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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