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영화와 우리의 현실

[서울=동북아신문] 7월부터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天気の子」)가 상영되고 있다. 2016년에 발표된 대 히트작 『너의 이름은』(「あなたの名前は」)이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 흡인력 있는 스토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그러잡아서 사람들이 영화 속에 나오는 배경지를 찾아가는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그런 신카이 감독의 새 작품이라고 하니 많이 기대가 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붓과 언어로 현대를 그리는 화가이자 시인”이라고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감독이 평가한 것처럼 그의 작품은 형상 미가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서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 난다.

새 작품 예고를 보니 그의 지난 작품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雲のむこう、約束の場所」) 『초속 5센티미터』(「秒速5センチメートル」)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 『너의 이름은』(「あなたの名前は」)을 다시 한번 돌려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옛날에 보았던 작품인데도 지금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보니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다시 한번 현재의 시각으로 지난 작품들을 해석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은 공간적이나 시간상으로 서로 격리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런 격리로부터 생기는 외로움 단절감을 서정적으로 애틋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들의 분투와 노력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보고 있으면 깊은 감동이 마음에 스며든다. 또한, 이런 내용이 현대인들의 고독, 암울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 되기도 해서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게 된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지긋이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빠지게 되는 것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평화와 통일에 대한 동경

얼마 전에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세 수뇌가 판문점에서 만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뉴스를 보고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우리 현실과 너무 흡사하여 깜짝 놀랐다. 예전에 볼 때는 그저 그런 느낌으로 보았는데 다시 보니 우리 민족분단의 현실 이야기 같아서 꼼꼼히 두 번이나 돌려 보았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雲のむこう、約束の場所」)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04년 SF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특이한 것은 일본이 남북으로 분단되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토는 미군 통치하에 있고 바다 너머 홋카이도는 유니언이 지배하고 있는데 그곳에 분단을 상징하는 탑이 하늘 높이 솟아있다. 이 탑은 엑슨 츠키노에라는 과학자가 설계하였는데 국제적 긴장이 커지는 동시에 이 미지의 '탑'이 탑 주변의 물질을 평행우주의 물질과 치환하기 시작했다. 단지 탑 주위 2킬로미터 되는 곳만은 치환이 되지 않고 있다.

중학교 3학년생인 히로키와 다쿠야는 쓰가루 해협 북쪽 너머로 보이는 이 탑에 매혹되어 언젠가는 그 탑에 날아가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두 소년은 추락한 해상자위대 무인항공기를 발견하고 군수공장의 공장장 오카베의 도움을 받아 항공기를 개조하기 시작한다. 그 꿈에 사유리라는 여학생이 가담하여 셋은 언젠가 홋카이도로 비행할 것을 다짐한다.

파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하얀 구름 떼, 그 아래 잔물결 이는 파란 바다, 여름 바람에 스쳐 휘어지는 푸른 풀, 낡은 창고 안의 작은 비행기, 그 옆의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2층짜리 낡은 목조 건물, 아름답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세 소년 소녀의 꿈같은 일상이 흐른다.

하지만 그해 여름에 사유리가 갑자기 사라진다. 사유리의 실종에 실망한 두 소년은 비행기 조립을 그만두고 각기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탑을 만든 과학자의 손녀인 사유리는 정부 기관에 의해 병원에 감금되고 깊은 잠에 빠지는데 그녀는 꿈속에서 그녀 외에는 아무도 없는 평행우주에 갇힌다. 토미자와 교수는 그녀가 평행우주와 홋카이도 탑의 주변 치환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자기 아래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타쿠야에게조차 이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며 사유리의 소재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꿈속에서 계속 서로를 찾아 헤매던 사유리와 히로키는 현실과 꿈의 접점에서 기적같이 만난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현실과 이세계(異世界)의 접점에서 서로의 손을 잡은 그들은 다시 그 탑으로 갈 것을 약속한다.

병원에서 사유리를 빼낸 다쿠야는 히로키와 함께 사유리를 구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완성하는데 그때 전쟁이 일어난다. 히로키는 잠든 사유리를 뒤에 태우고 전투기들의 폭격을 뚫고 드디어 그 탑 위에 이른다.

푸르른 하늘 하얀 구름, 정적 속에서 탑위를 선회하는 비행기, 그곳에는 폭격하는 전투기도 날아다니는 총탄도 없이 다만 고요한 평화만 흐른다. 단지 사유리가 깨어나기를 기원하는 히로키의 마음의 목소리와 깨어나도 히로키에 대한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달라는 사유리의 마음의 외침이 들려올 뿐이다.

순간 사유리가 기나긴 잠 속에서 깨어난다. 깨어나면서 꿈속에서 느꼈던 히로키와의 유대감, 히로키를 바라던 사랑의 감정은 잊어버린다.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눈물을 흘리는 사유리에게 히로키는 “내가 전부 다시…” 만들어갈 거라고 위안한다.

그리고 히로키는 미사일을 발사해 탑을 폭파하고 물질 치환을 멈춘다. 분단의 상징인 탑이 무너지는 순간 평행우주와의 치환이 멈춰진다. 세상에 평화가 도래한다. …

물론 신카이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 때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남북으로 갈라져 분단의 아픔을 겪는 그들을 보면 마찬가지로 분단의 아픔을 겪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들은 왜 ‘탑’에 날아가고 싶어 하는가?

그것은 ‘탑’이 분단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인 해석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막연한 동경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영화에는 사유리같이 남북이 갈라지면서 부모 형제가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사정도 인물 간의 이야기 과정을 통해서 나오는데 바다 건너 그 탑 너머에는 그들의 그리운 가족들이 살아있다. 그렇게 가족을 갈라놓은 분단의 상징이라서, 자유로이 날아갈 수 없는 곳이라서, 오히려 꼭 그 탑을 넘어가 보고 싶은 바람이 생겼을 것이다.

이는 분단으로 인해 이산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민족의 바람이기도 하다. 부모 자식이 있어도 만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언젠가 분계선을 넘어 행복한 가족 상봉이 이루어 지었으면 하는 그런 꿈을 남북에 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사유리의 3년간의 휴면은 어떤 상징성을 가지는가?

사유리는 이 기나긴 휴면 기간 아무도 없는 공간에 갇혀서 계속 히로키를 찾아서 헤맨다.

그러나 그녀가 다니던 학교에도, 미사일 탄피의 잔해가 널린 폐허에도 어디에도 히로키는 없다. 누구도 없는 그곳에서 사유리는 그래도 히로키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어서 하루하루를 버티어 낸다. 그렇게 고독한 꿈속에서 가끔은 그에게로 날아오는 하얀 비행기를 보는데 텅빈 하늘에서 날아오는 그 하얀 비행기를 볼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히로키와의 약속이 떠올라 현실과 이어진 한 가닥 끈을 놓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꿈’과 ‘현실’이라는 서로 닿을 수 없는 이공간(異空間)에 단절된 그들은 서로의 꿈속에서 서로를 느낄 수는 있어도 만날 수는 없다. 그래도 그들은 꿈속에서 계속 서로를 찾아 헤매면서 서로를 바란다. 서로를 만나고 싶은 그들의 그 간절함이 꿈과 현실이 접하는 순간을 만들어 냈고 그 순간 그들은 드디어 서로의 손을 잡게 되며 다시 한번 ‘탑’으로 날아갈 약속을 한다.

만약 우리의 염원이 그들처럼 강렬하고 우리도 그 염원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남북으로 갈린 이공간(異空間) 같은 두 세계에도 그런 접점이 생기지 않겠는가. 빛나는 광환 속에서 두 사람이 손잡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렇다면, 사유리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유리는 탑 너머에 할아버지가 있지만 분단 뒤에 태어나서 한 번도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 사유리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면 할아버지에게는 얼굴도 못 본 손녀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한이 되었을 할아버지는 미지의 탑을 설계할 때도 분계선 너머에 있는 손녀 사유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사유리가 분계선 너머에 있기에, 탑 주위 2킬로미터 되는 곳은 평행우주로 치환되지 못하도록 만들고, 사유리를 위하여 마지막 가능성을 남겨둔 것이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평행우주로 치환할지 탑을 무너뜨릴지 하는 선택권을 사유리에게 주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래서 사유리가 기나긴 수면 속에서 깨어나는 순간 탑 주변의 치환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결국, 사유리는 히로키를 따라 그 탑을 무너뜨리는 선택을 하였고 그곳이 평행우주로 치환되는 것을 막았다. 만약 사유리가 그 치환을 막지 않았다면 세상은 평행우주로 치환되어 훼멸 되었을 것이다.

이같이 사유리가 탑의 키워드였다면 우리의 통일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영화에서 전역(戰域)은 42도 선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38도 선을 상기시키는 그곳을 향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전투기들을 보면서 현실에서는 절대 그런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또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비극적인 우리의 운명에 전쟁까지 더해진다면 그 결과는 훼멸뿐이라는 것을, 그러니 평화와 통일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심심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소년과 한 소녀가 바란 평화와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분단을 상징하는 ‘탑’을 무너뜨렸듯이 우리에게도 평화 통일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있어서 그 바람을 위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합쳐 힘껏 노력한다면 통일이 어찌 허황한 꿈으로 그치겠는가?!

구름 저편 약속의 장소, 어쩌면 우리는 그곳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속의 장소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그래도 이제부터 우리는 살아가기 시작할 것이다.”라는 작품 엔딩의 히로키의 말처럼, 우리는 그래도 내일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

구름 저편에 약속의 장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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