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송숙 약력: 연변작가협회 회원,안성문인협회 회원,재한동포 문인협회 이사. 소설 '백송이의 노란 장미꽃', 수필 '푸른 달래',시 '13월의 사랑'등 50여편 발표. 수필 '봄과 가을'연변TV공모 금상,수기'시어머님의 유산'연변일보 평강컵 공모 1등상,2017년 청암문학으로 한국문단 등단.

 

1.

행복은 내곁에

고 송 숙

 

행복이란 무엇일가?

권세있는 능력자의 높은 관직일가?

아니면 돈많은 부자의 오만한 얼굴일가?

어느 시인은 일찍 "행복은 인생의 제일 크고 제일 높은 선이다"라고 소리높이 웨쳤다.

하지만 권력도 없고 부자도 아닌 내가 무한한 행복에 취해있는걸 보면 행복이란 권력과 돈으로 느낄 수 있는것이 아님을 알것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는 최대의 행복은 삶의보람을 느끼는데 있고 삶의 희노애락을 어떻게 즐기는 마음에 따라서 행복의 저울추가 오르내리는것이다.

또 행복은 넘침과 부족함사이에 있는 중간역이기에 마음을 어느쪽에 놓는가에 따라 행복의 표준도 다르고 느낌의 척도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급행열차처럼 너무 빨리 달리기에 어떤이는 행복이라는 이 작은역을 지나치고 행복을 멀리에서만 찾으려고 환상하고 내곁의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나도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난후에야 행복은 바로 내곁에 있고 모든 일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남편과 두 딸애와 함께 온가족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는 너무 힘들게 찾아온 만남이여서 행복을 더욱더 간절하게 느끼고 순간마다 느끼는 이 행복이 사라질가 두려워 실없는 걱정에 잠기기도 한다.

나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2007년부터 시작되었다.

200753일 한국에서 유학생 공부를하는 딸애의 부모 초청을 받고 나는 꿈에도 오고싶던 한국으로 입국하였다.

딸애가 뛰어난 학습성적에 학교의 모범생이여서 총장님과 교수님들의 한결같은 추천으로 대학교의 첫 유학생 부모로 초청되여온 나는 이 세상의 행운아로 남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었다.

행운스럽게 속초시와 훈춘시가 자매도시를 맺은 인연으로 나는 속초 민예총 예술축전에 참가하여 나의 시가 전시된 시화전에 초대되어 문화교류를하였고 설악문화제,속초민족예술제,8.15통일문화제와 같은 대형 행사에서 시낭송을 하고 웅변도 하면서 재중국 동포 초대시집에 시와 수필을 발표하고 한중 문화교류행사에도 참가하였다.

속초 민예총의 작가님들은 설악산, 시립박물관,울산바위,통일전망대와 같은 여행지들을 딸애와 함께 관광시켜주었고 딸애는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중국유학생들을 위하여 열심히 뛰어다녔다.

이렇게 딸애와 함께 즐거움을 누리며 세상에 부럼없이 살던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놀라운 소식에 나는 기절하여 쓰러지고말았다.

딸애의 유학생 비자 수속을 맡았던 브로커가 학력위조로 수속하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소식과 함께 청운의 꿈을 품고 한국에서 공부하던 딸애 대학교의 17명 중국 유학생들은 억울하게 중국으로 추방되었던것이다.

한점의 허위와 거짓도 없이 깨끗한 마음그대로 법과 원칙대로 살아왔지만 딸애는 창창하던 배움의 길이 졸업 3개월을 앞두고 끊겨버렸고 나의 잘살아보려는 부푼 꿈은 펼치기도전에 풍비박산나고 말았다.

하루사이에 불법체류자로 전락되자 나는 조금이라도 돈을 벌고 한국에 머물고싶은 욕심으로 낙엽이 흩날리는 10월의 을씨년스러운 가을비를 맞으면서 꿈과 희망을 품었던 정든 속초를 떠나 경기도의 작은 시골에 정착하여 여행가방을 풀었다.

지인들과 일체 연락을 단절하고 자기 이름도 숨기고 시골 음식점에 취직한후 말로만 듣던 불법체류자의 생활을하니 하루하루가 작두위에선 나날이었고 하루하루를 살얼음위를 걷는 기분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았다.

중국의 브로커가 야밤 도주하니 딸애가 너무나 야속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가 없어 절망의 벼랑가에서 방황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외로움과 고독감,억울함과 그리움의 눈물로 베개잇을 적시며 뜬눈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눈물의 비가오면 가슴속의 붙는 불을 끈다는데 나의 가슴은 불타서 한숨마다 연기로 뿜겨져 나올지경으로 시커멓게 멍들고 타들어갔다.

2008년 한국에서 첫 새해 일출을 볼때였다.

솟아오르는 태양과 함께 송대관 가수의 "해 뜰날"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왓는데 그 노래와 함께 나의 두볼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주위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꿈을 안고 왔단다,내가 왔단다,슬픔도 외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쨍하고 해 뜰날이 돌아온단다"

새해 일출을 바라보면서 나에게도 외로움의 구름이 가셔지고 쨍하고 해뜰날이 찾아와서 하루 빨리 가족들과 만나게해달라는 소원을 빌고빌었것만 끝도 보이지않는 어둠의 터널은 길고 길었다.

하늘에 외롭게 떠다니는 구름송이를 보아도 가을날에 땅에서 뒹구는 낙엽을 보아도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아도 모든것이 가냘프고 처량한 나의 신세로 생각되면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보였다.

진한 그리움과 혈육의 정을 품고 한걸음에 달려온 한국땅이 나의 조국이고 고국이고 모국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땅에서 밤마다 그리움에 모대기고 보이지도않는 희망의 끈을 찾아보려고 허우적거리며 고독하게 보낼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한번은 식당에서 손님들의 송년모임이 있었는데 중국노래를 들어보자는 노래요청에 연변가요인 "타향의 봄"을 불렀다.

"봄이 오면 돌아간다고 안해와 약속했것만 그 약속을 지킬수없는 이내마음 외로워라,그누가 알아주랴~타향의 슬픈 노래를 구름넘어 나는 새야~이내마음 전해다오"

노래를 부르던 나는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흐느끼고 말았다.

사랑하는 가족도 만나지못하고 병환에서 언제 운명할지모르는 어머님도 찾아뵙지 못하고 새들도 날아가는 내고향으로 갈 수 없는 안타까움에 그동안 참고참았던 눈물이 줄끊어진 구슬처럼 흘러 내렸던것이다.

송년회의 모임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지만 같이 울어주고 또 27만원의 눈물에 젖은 돈을 안겨주면서 힘내라고 어깨를 다독여주던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가슴이 찡하도록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드디여 웃음을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어둠의 터널에도 기적처럼 쨍하고 해 뜰날이 찾아왔다.

한국정부의 혜택으로 꿈결에서도 소망하던 불법체류자라는 무거운 보따리를 벗어던지고 당당한 동포의 한사람으로 생활할 수 있는 규제를 받은 나는 온 세상을 독차지한것처럼 마음은 둥둥떠서 하늘을 날아예는 기쁨을 맛보았다.

하늘의 태양도 더 눈부시게 보여지고 한줄기의 바람도 살뜰하고 포근하게 나를 맞아주는것 같고 따스한 햇살이 보들보들 인사하고 소곤소곤 햇빛이 속삭이는 소리에 세상의 주인공으로 행운아로 탈바꿈 한것만 같았다.

외국인 등록증도 운명의 조화처럼 한국에 입국한지 꼭 4년이 되는 53일에 재발급받고 다시 태여난 생명으로 꿈같은 생활을 하게되었다.

그리하여 딸애는 꿈결에도 그리던 한국으로 다시 입국하여 피부미용사 학원,정보처리 기능사 학원,중국어 통역 가이드학원에서 마음껏 공부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남편은 전기학원,창호기능사 학원에서 재능을 배우고 나는 컴퓨터학원,한식요리학원에서 공부하여 조리사자격증을 취득하고 모두가 자기만의 시간표에서 분주히 맴돌고 있다.

한국의 역사문화탐방,투자박람회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유적지에도 찾아다니고 나의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제주 고씨의 삼성혈을 찾아 조상들의 살아온 삶의 발자취들을 돌아보면서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부여잡고 가슴이 뭉클하는 감회에 젖기도하였다.

지금은 시민자치대학 수료생공부도하고 신문과 문학잡지에 시와 수필을 발표하면서 수상의 영광도 마음껏 누리고 당당한 한국의 한 시민으로 4대보험 혜택까지 받는 세상에 더이상 부러울것이없는 즐거운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 입국한지 어느덧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한국인들과 같은 피가 흐르는 한민족이기에 또 같은 꿈을 꾸고,같은 음식을 먹고,같은 말을하고,같은 생활을하는 떨어질 수 없는 돈독한 인연으로 살아가고있기에 인제 한국은 내몸의 일부가 아니라 내몸 자체로 되여버린것 같고 타향도 정이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너무 실감적으로 안겨온다.

힘들고 가슴아프던 어제가 있었기에 행복을 느낄줄아는 지혜를 찾게되었고 인생을 보듬으면서 완미하고 행복한 삶을 풋풋하게 느낄 수 있는 넓은 포옹력을 가질 수 있었고 부자꿈을 이룰 수 있어서 지나온 세월에 큰절을 올리고 싶도록 고맙고 감격하는 마음이다.

손님들에게서 사탕 몇알을 받을때,작은 봉사로 지체장애자들을 도와주고 흐르는 땀방울을 씻을때,가족이 모여서 소박한 식사를 할때에도 나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나혼자만이 독차지한것 같다

식당에서 12시간의 힘든 육체노동을하지만 매일매일 되풀이하는 일상에 만족하고 활기찬 오늘의 삶에 만족한다 .

소박하고 수수한 인생이지만 가족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각자의 꿈을향해 도전하고 작은 봉사로 받은만큼 돌려주고 베푸는 삶을 사는 지금의 나는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오붓하고 생기있는 내가족의 사랑을 먹는 재미에 가족들과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엮어가는 매일매일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행복이란 씨앗을 마음속에 심고 정성껏 키워가고 있다.

하루하루를 사랑으로 시작하고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베풀면서 행복과 동행하고 오늘 진정으로 가슴뛰는 삶을 살았다고 미소지을때 모든 행복은 내곁에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오늘도 내곁에 있다.

 

2.

새봄과의 약속

 

상큼한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봄이 왔다

부드러운 바람손이 살며시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향긋한 봄 내음이 온 몸에 휘감겨들며 코끝을 간지럽힌다.

기나긴 겨울의 구름에서 풀려나던 3월의 어느 봄날 ,서비스업 교육을 받을 행운이 찾아왔다.

한국 정착 후 비자변경을 위한 의무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배움의 시간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교육 강사는 음식업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업 보건건강관리,식자재 운반 작업과 안전, 화상 대처법, 가스 안전 사용법들을 알기 쉽게 가르쳐주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나는 열일곱 살이예요"라는 노래에 맞추어 스트레칭 체조를 했는데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봄처럼 파릇파릇한 십대로 되돌아간듯 싶었다.

갑작스러운 호흡정지와 심장마비가 발생했을 때 심폐소생술로 혈액을 순환시켜 호흡을 돕는 응급치료를 배웠는데 심장병으로 앓고 있는 남편의 건강을 대비하여 골든타임을 잡을 수 도 있다는 안도감이 생겼고 나도 혹시 모를 누군가를 구할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마음이 뿌듯해졌다.

"너를 만나면"라는 용혜원 시인님의 시를 낭송할 때에는 지쳐있던 내 마음이 봄비를 맞은 듯이 생기가 돌아왔고 보다 멋지게 내일을 살고 싶은 부푼 희망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믿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 워비곤 호수효과,머피법칙을 배우면서 그동안 과도한 자신감으로 다각도로 발생할 수있는 사고를 무시한 채 요행만을 바라며 안전에 불감 적이였던 자신을 오늘에야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안전무료 교육은 교육만이 아닌 아름다운 노래와 운치 있는 시도 있었으며 웃음치료로 스트레스도 풀었고 음악 감상으로 지친 몸을 다독여주기도 했다.

3시간의 음식업 안전 무료교육을 마친 후.이수증과 함께 이쁜 앞치마를 선물로 받았으며 47명의 학생 중에서 제일 우수한 모범학생이였다는 강사님의 과분한 칭찬과 이수생들의 응원의 박수소리에 마치 로또에

당첨된 듯이 흥분되기도 했다.

봄날의 첫 출발점은 부풀어 오른 꿈과 함께 새해의 설계도를 펼쳐가는 즐거운 나들이었다.

겨울잠 자던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경칩 날에 수년 동안 동면하던 잠에서 깨어나 내 마음에 쌓여있던 먼지들을 말끔이 청소하고 허둥지둥 뛰어다니던 마음에 작은 휴식터 하나를 마련해주면서

스스로에게 여유로움을 선물한 하루이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수년간의 타향살이를 하면서 타인을 배려하는 데는 아낌없이 투자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염두에도 없었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멀리하고 살았었다.

휴무일이면 끝없이 이어지는 지인들의 생일파티,친구자녀들의 결혼식, 이웃에 살던 인연들의 인정 빚을 갚는라고 서울로 지방으로 정신없이 뛰여다닌 시간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마음은 봄바람처럼 설레였고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서비스업 교육을 받으면서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수 있었으며 스스로 마음과 대화하고 마음을 쓰다듬어주면서 자기애를 키울 수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나 만을 위한 것이 아닌 가족과 친인들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꽃길이 된다는것을 깊이 깨우치는 하루였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금방 잠에서 깨여난 봄 아기처럼 기지개를 펴고 내 몸을 보석처럼 아끼면서 내 마음을 봄꽃으로 수놓아가겠다는 작은 소망을 새봄에게 살며시 약속해 본다

청암문학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고

3.

국화꽃 피는 가을에

 

가을이다.

국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국화는 온 누리에 내린 햇볕의 은총을 받아 무더기로 여기저기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노오란 구름을 펼친듯한 고운 자태, 찬서리를 두려워하지않고 단아한 모습으로 수줍게 미소하는 꽃송이는 너무 매혹적이다.

국화는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4군자의 하나에 속하지만 스스로를 낯추고 겸양의 미덕을 갖춘 꽃으로 평범하면서도 수수하여 서민의 꽃으로 불리우며 모든이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조용히 관찰해보면 국화꽃은 나의 인생과 닮은곳이 너무 많은것 같다.

한국에 입국하여 음식점에 취직한후 한복희 사모님께서 국화라고 이름짓고 정답게 불러준 이후부터 오늘까지 국화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국화꽃의 매력에 푹 빠져서 아예 한송이의 국화꽃이 되어버렸다.

10여년전 낯선 타향땅인 한국에서 집 생각 고향 생각으로 힘들고 외로워할때 식당의 사모님께서 많은 배려와 도움을 주셨다.

생활의 필수품인 비누와 창문커텐,선풍기,무엇이 필요하면 무엇을 선물로 주면서 도와주었는데 그때 사모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 시련을 이기지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집 생각에 누구보다 집착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눈물을 떨구었고, 한가닥 슬픈 노래에도 펑펑 눈물을 쏟고,일하면서 실수를 해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면서 살뜰하게 보듬어 주셨다.

손편지로 <<열심이 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국화꽃처럼 활짝 웃으면서 삽시다>>하고 칭찬글도 적어주셨고 비타민이며,건강식품이며,계절에 맞게 옷을 사주었고 1년내내 먹을 김장 김치를 듬뿍듬뿍 담아 주셨다.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일은 남편과 딸애의 취직을 도맡아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친정엄마의 제사로 중국에 3번 다녀올때마다 너무나 많은 사랑과 배려를 주셨다.

설 명절과, 추석 명절 ,생일까지 선물을 두둑히 챙겨주셨고 4대보험도 가입시켜주어서 많은 혜택을 받고있다.

사모님과의 인연으로 한국에서 사모님의 여섯남매와 가족처럼 오빠 동생하면서 인정을 쌓아가고 있다.

한국은 정이 넘치는 나라여서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너무 좋은 인연들과 만나고 있다.

단골손님인 강혜연 언니는 회사에 출근하면서 야식으로 주는 라면을 먹지않고 하나하나 모아서 끼니를 거르지말고 식사하라면서 택배로 보내주었는데 정성이 담긴 컵라면을 200봉지도 넘게 받았다.

목욕탕의 사장님으로 계시는 74세의 할머니께서 서비스에 만족한다면서 10만원 돈을 팁으로 줄때에는 너무 황송해서 몸둘바를 몰랐고 지체장애자 할아버지가 꼬깃꼬깃접은 5천원을 팁으로 주면서 <<웃는 얼굴이 부자집의 맏며느리같다>>고 칭찬해줄때 목이 꺽 메여서 할말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내가 만난 사람들이 겸손과 나눔의 미덕을 가르쳐주었고 따스한 사람사는 세상을 가슴으로 일깨워주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수년전에 하루에도 몇번씩 울고 실수를 연발하던 왕초보 서빙이 인젠 넉살좋은 아줌마로 여유롭게 담소하고 모든일을 감내할수있는 직원으로 탈바꿈 하였다.

사장님 부부에게서 (보배)라고 불리우고 가계의 ()이라고 칭찬해주고 가족과 똑같은 대접하고 믿음을 받으니 날마다 웃음과 노래가 넘쳐흐른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어느곳에 뿌리를 내려도 꽃을 피우는 국화꽃처럼 강한 생명력을 키우는 인내를 배웠고 어려운 환경에서 함부로 굴어도 악착같이 삶을 지속하는 국화꽃처럼 생명을 이어가는 지혜를 배웠고 그윽한 향기로 주어진 모든것에 용납하고 감사하고, 변함없는 그 빛갈, 그향기 그대로 오래오래 빛뿌리는 국화같은 꽃으로 피여나게하는 인생수업을 받은것 같다.

이름이란 사람이 살고있는 집의 문패이고 말은 그사람의 얼굴이고 얼굴은 그사람의 명함이고 행동은 그사람의 향기라고 생각한다.

국화라는 이름은 사모님이 지어주신것이지만 빛과 윤기로 이름을 빛나게하는것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이름에 도금한 버젓한 명함장도 없고 수수한 들꽃처럼 국화라는 이름밖에 적을것이 없다.

하지만 깊은 시련과 고통의 몸부림으로 피여난 국화꽃처럼 가을의 농익은 향기가 저절로 넘쳐흐르는 가을여인이고 국화곷처럼 활짝웃는 얼굴이 나의 도금한 명함장이다.

얼굴도 몸매도 내세울곳이 없고 실팍한 몸매에 나이도 50대를 넘어섰지만 나의 재산인 건강한 신체와 즐거운 웃음과 소박한 진정이 조화되여 50대의 내 나이에 주렁주렁 매달려서 국화곷 향기가 솔솔 풍겨나고 있다.

한국이라는 이 삶의 간이역에서 국화로 살면서 눈길로 하늘의 원고지에 시를 쓰고 국화꽃의 꽃살로 대지에 수를 놓으면서 꿈꾸는 여자, 배움에 꿈틀거리는 여자로 부푼꿈을 꾸고있다.

국화꽃은 신이 모든꽃의 완성품으로 제일 마지막으로 정성을 다해서 빚은 꽃이라고 한다.

성숙된 아름다움으로 사색의 계절인 이 가을날 지나온 인생여정을 돌이켜보니 내가 선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나의 꽃인 완벽한 국화꽃을 피워낸것이 너무 대견스럽고 국화꽃이 나이고 내가 국화꽃이라고 생각한다.

20개의 테블로 30여평되는 작은 음식점에서 나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따뜻한 눈길과 조용한 웃음을 보낸다.

손님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웃고 때로는 어줍짢은 위로도 건네고 한사람 한사람 그 얼굴을 익혀가면서 언젠가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칠때 정답게 손을 잡을 수 있도록 그런 인연을 이어가려고 한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은일도 많이하면서 나의 마음속에 시들지않는 국화곷 한송이를 날마다 키워간다면 나의 인생은 향기로와지고 세상은 아름다워질것이다.

이것이 국제인으로서 가져야할 나의 마음가짐이고 또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국화라는 이름을 지키고 빛내며 살아가고 이름에서 향기가 나고 잔잔한 감동소리가 돌돌 흐르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엷은 미소를 짓는 한송이의 가을 국화로 살아갈때 진정으로 국화라는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노랗게 통통 익은 가을이 내가 가는 길우에 황금의 국화꽃 주단을 깔아놓고 어서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그렇다.

나 성숙되고 완미한 가을 여자- 국화꽃으로 살아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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