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㉑]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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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칼럼㉑]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는 것
  • 동북아신문
  • 승인 2019.11.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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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해선

"조금만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편견과 차별이 없이, 감정적 대립이 없이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평화롭게 공생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상대방의 차이에 대해 인정하고 알고자 노력한다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서로에게 더 많은 앎의 기회들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될 테니까..." 칼럼 중에서

 

최해선 약력 :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일본 에히메대학 사회학 석사. 일본 칸세이가꾸인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현재 한국 모 IT회사 해외마케팅 팀장.(사진은 둘째 고양이 쿠로와 함께)
최해선 약력 :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일본 에히메대학 사회학 석사. 일본 칸세이가꾸인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현재 한국 모 IT회사 해외마케팅 팀장.(사진은 둘째 고양이 쿠로와 함께)

 1.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되고 동물들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게 되고 동물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나는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 일이었다. 동네 이웃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어쩌다 우리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이 탐이 나서 몰래 키우려는 마음을 품게 되었지만, 그 마음도 잠깐이었다. 고양이의 습성상 내 마음대로 되지 않자 얄미워서 이불장 위에 집어 던졌던 적이 있었다.
당시만해도 고양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강아지는 충신, 고양이는 간신”이라는 세속의 고정관념만 믿고 있었던 터라, 누군가가 강아지를 좋아하느냐 고양이를 좋아하느냐고 질문하면 관례적으로 강아지를 좋아하고 고양이는 싫다고 대답했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종종 아무런 이유 없이 고양이에게 가했던 폭행을 떠올렸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내면 속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과 잔인함에 몸서리쳤고,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죄책감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게 된 것은 고양이를 입양하고 나서부터였다.

10년 전의 늦가을, 천진의 어느 상가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줍는 계기로 얼떨결에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고 이 작은 계기의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번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두 마리의 길 고양이를 더 입양했고, 한국으로 이주할 때 까다로운 반려동물 해외 반입 절차도 마다하고 몇 개월의 시간과 거금을 들여 세 마리를 모두 데려오게 되었다.

어떤 이는 극성이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이것은 나의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이자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한국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의 서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게는 소박한 신념이 하나 있습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믿음입니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돌에 맞아 싼 사람도 왜 그런 일을 저질러야만 했는지를 알고 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 심성입니다.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알면 알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 스스로도 더 사랑하게 된다는 믿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천 번만 번 공감이 되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주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쉽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쉽게 싫어하고 배척한다. 이런 섣부른 판단이 오해와 편견을 초래하고 혐오를 생산하는 것이다.

2018년10월 고궁나들이 중 북촌에서

2.

한국에 정착한지 어언 5년이 지났고, 여기서 생활하면서 한가지 발견한 것은 한국사회와 중국동포사회는 서로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 경악을 금지 못하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2018년 10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서구PC방 살인사건이었다. 게임 아이디가 한자라는 이유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가해자를 조선족으로 추측하고 사이버 상의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경찰이 중국동포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귀화한 조선족이거나 부모 중에 조선족 출신이 있을 것이라고 근거 없는 댓글을 남발했다. 게다가 가해자의 생김마저 “조선족스럽다”라는 것이다. 그저 가해자는 조선족이어야만 했었고 이런 잔인한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절대 한국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조선족 전체를 범죄자로 몰아갔다. 그 후, 진상이 규명되자 조선족을 비방했던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듯이 순간에 사라져 버렸지만, 중국동포들의 마음은 상당히 불편했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중국동포들은 범죄자와 일탈자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

이 사건을 접했을 때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시기의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 사건과 오버랩된 것이었다. 1923년, 도쿄를 중심으로 관동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재난으로 인한 사회 불안 속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근거 없는 낭설이 확대되면서 6,000여명의 조선인이 무고하게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정말로 소름 끼치게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내 머리 속에는 만약 중국동포에 대해 그 이주역사와 한국으로의 재 이주 과정을 잘 알고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조선족 혐오”가 사회적으로 문제화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맴돌았다.
많은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한국의 88올림픽 이후 급속하게 팽창하는 재개발 위주 경제발전과 중국의 개혁개방시기 노동력의 자유이동이 적절하게 잘 맞물렸기 때문이다. 한국은 값싸고 언어가 통하는 안정적인 노동력이 필요했고, 다수의 농촌 출신에 생산수단과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는 중국 동포로서는 코리안 드림이 경제적 부를 꿈 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빠른 자본주의의 생리 속에서 오랜 단절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동포 노동자들은 바로 한국의 산업전선에 투입되었고, 상대적으로 한국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을 도맡아 종사하게 되었다. 어쩌면 중국동포들의 한국에서의 신분은 동포보다는 외국인노동자가 더 적합할 지도 모른다.

현시대의 가치관은 철저하게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만 판단한다. 그 결과 사회는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진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 나는 저성장, 저출산, 청년 일자리 문제, 노인 빈곤문제 등 일련의 사회 문제들은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이런 미래 불투명의 불안과 생존권마저 장담할 수 없는 사회적 불안은, 급기야 중국동포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인식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재중동포들이 한국에서 정착해서 살아가는 것은 한국의 자원과 세금을 축내는 존재로 알고 있었다.

그 동안 한국에서 온갖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해오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존재로 전락했으니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재한 중국동포들은 억울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재한 중국동포들의 현주소에 대해 조금만 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어느 한 개인의 잘못으로 전체 중국동포들을 평가하거나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사실, 나는 재중동포 4세이다. 이주 역사가 다소 빠른 집안이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조선의 백성이었고 조국은 조선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새 중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국적을 부여 받았기에 근대국민국가적인 나의 신분은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고, 한반도에 루트를 갖고 있는 한민족이다.

중국동포들은 광복 후, 중국의 복잡한 사회 변형 속에서 자신들의 루트를 제대로 알아갈 기회를 잃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50년대, 정풍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의 조선학교에서는 조선의 역사와 지리를 커리큘럼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정풍 운동 이후, 조선의 역사와 지리는 모든 커리큘럼 속에서 빠졌다. 필자도 한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으며, 고등학교 때 세계사 교과서에 실린 3페이지 분량의 <3.1운동>이 전부였다.

그나마 조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과외독서로 따라오는 이야기 책, 집안 어른들의 구술, 소신 있고 양심적인 역사 선생님들의 번외 가르침 덕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조부모와 부모로부터 가족의 이주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지만, 그것 만으로 한반도에 대해 애착이 생기는 것은 어딘가 조금 부족했다. 

그러던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몸소 겪고 단편적인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점점 이 땅에 대해 애착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마치 한국이라는 조부모의 나라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중국의 동북처럼 뼈를 저리는 추위도 없고, 일본 열도처럼 찜통과 같은 무더위도 없는 한국의 쾌적한 날씨는 최고가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강산”이란 말이 그저 국가권력에 강요된 찬양의 말이 아니었던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풍수지리가 좋은 곳에 선견지명의 조상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특히 옛 사람들의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그들의 삶의 자취를 하나하나 알아갈 때면 슬기로운 선조들의 모습과 깊은 문화에 존경심 마저 생긴다.

2007년 로터리 장학재단 주최 효고현(兵庫県) 아와지시(淡路市)관광 중 시즈노사토 공원(静の里公園)에서

4.

올해의 추석연휴 마지막 날에 고궁을 다녀왔다. 작년에는 경복궁과 덕수궁을 다녀왔기에, 이번엔 종묘와 창덕궁을 다녀 왔다.

종묘는 경복궁이나 창덕궁, 덕수궁처럼 티켓만 구매하면 바로 구경할 수 있는 개방된 곳이 아니다. 사전에 예약을 해야 구경할 수 있고 지켜야 할 에티켓도 많다. 예를 들어, 종묘의 정문 외대문 안에 들어서면, 돌로 깔아놓은 길이 쭉 뻗어 있다. 길은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고 가운데 길이 가장 높고 양쪽으로는 살짝 경사져 있다. 가운데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고 해서 신로라고 한다.  신로의 오른쪽은 임금이 다니는 어로이고, 왼쪽이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이다. 때문에 종묘에 가서 아무 길이나 막 걸으면 안 된다.

종묘는 조선시대의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태조 임금이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 한양으로 천도한 후 가장 먼저 만든 것이 경북궁도 창덕궁도 아닌 종묘와 사직이라고 한다.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최고의 존엄한 사당이며, 조선왕조의 정신과 역사가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근간이 유교였고 유교의 핵심이 효와 충인지라, 종묘의 의미는 백성들에게 유교적 가치관을 전파하면서 권력과 통치를 강화했다.

신을 모신 곳이기도 하기에 단청을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색상을 절제하여 다른 궁궐에 비해 보다 단조롭고 심플하면서 근엄하고 고귀한 기품이 흐르도록 지어졌다.

정문으로 들어갔을 때 눈에 띄는 것은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사각형 못이다. 이는 천원지방의 원리를 따른 것으로 사각형 못은 땅을, 둥근 섬은 하늘을 의미하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한다. 둥근 섬에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고, 종묘의 특성상 못에는 물고기도 꽃도 없다

종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례는 철저하게 남성중심으로 진행되고, 제사 음식 장만에서부터 제관 집사, 악공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성들이 담당했고 여성의 출입을 금기시했다.

이런 종묘가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해인사의 장경판전, 석굴암과 함께 한국의 최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 5월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다른 궁궐은 임금이 살지 않아서 박제된 역사라고도 하지만 종묘에는 임금의 영혼이 깃들어 있고 예전과 같이 제사 의식이 진행되고 있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책정 될 때 산 역사가 진행된다는 점이 크게 평가 받았다고 한다.

종묘를 구경을 하고 나니, 한층 더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고 조선왕조의 희로애락이 느껴졌고, 그들의 정신에 대해서 이해하는 뜻 깊은 앎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서 뿌듯했다. 지금까지 집에서 지내던 전통이라고 믿고 왔던 제사문화와 비교도 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또한 여기서 생활하는 시민으로서의 주체성도 뚜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2003년9월 경복궁에서

5.

이렇듯 알게 되면 더 알고 싶어지고, 알면 좋아하는 마음이 싹트고 존경심과 긍지감이 생기고사랑의 마음이 생긴다.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설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하며 서로의 소통에 도움이 되고 인식을 함께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 많은 중국동포들은 한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 찬란한 문화를 통해 자긍심을 느끼지 못한다. 한국인들도 재중동포들의 이주역사와 형성, 한국으로의 재 이주에 대해서 모르니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느끼고 서로 공감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조금만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편견과 차별이 없이, 감정적 대립이 없이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평화롭게 공생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상대방의 차이에 대해 인정하고 알고자 노력한다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서로에게 더 많은 앎의 기회들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될 테니까.

* 대림칼럼은 동북아신문과 흑룡강신문의 공동주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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