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영진

[서울=동북아신문]지난 1012(), 우리 중국동포역사교육문화탐방 가족들은 첫 탐방지인 합천, 가야면 가야산에 있는 불교의 성지- 해인사를 탐방하고 나서 가야의 왕도-김해로 떠났다. 두 번째 탐방지인 고 노무현대통령 생가와 추모의 집 그리고 묘역이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 불리는 봉하마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가 넘었다. 봉화산 봉우리의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봉하마을이라 불리는 봉하마을, 노란색으로 물든 봉하마을로 들어서는 길부터 노란색 바람개비들이 반겨주고 곳곳에 노무현전대통령을 기억하는 노란색 쪽지들이 산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퇴임한 노무현전대통령이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안고 고향인 이곳 봉하마을로 내려온 2008년부터였다. 그때 그토록 인기가 많았던 고향에 돌아간 전임대통령의 모습을 보려고 전국 각지에서 날마다 숱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사랑하는 대통령님이 살아 계실 때 찾아뵙지 못하고 때늦은 지금 이렇게 이곳에 와서 그분의 묘소를 참배하게 되다니 너무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고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이 아파났다.

천국이라 믿고 찾아온 한국의 푸른 하늘아래서, 할아버지의 나라에 같은 동포라고 좀 봐주겠지 하고 철석같이 믿고 찾아온 고마운 고국에서 천만 뜻밖에도 엉뚱하게 가증스럽고 밉살스런 중국거지로 몰려 별별 인신모욕과 인격살인을 다 당하며 마치 한국인들의 밥그릇 빼앗아 먹으러 온 도둑놈 같고 날치기 같은 중국인도 아닌, 짱개 취급을 당하면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힘든 나날을 보내던 나와 같은 중국동포들에게 어둡고 침침한 더러운 음지에서 햇볕 따사로운 양지로 나와 정상적인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 갈수 있게 해준 고마운 대통령이셨다.

조선족교회에서 불법체류자인 중국동포들이 한국정부의 부당한 동포정책에 대하여 단식항의농성을 벌였을 때 비정한 한국여론의 거센 반발과 참모진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무현대통령께서는 귀하신 대통령의 시간을 내어서 동포들을 따뜻이 찾아주시고 방명록까지 남겨주신 사리 밝고 인간애와 동포애가 가득 넘치는 위대한 분이셨다. ‘중국동포 여러분. 힘내세요. 국경과 법 제도가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의 믿음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건강 잘 돌보십시오. 2003. 11. 29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대통령은 법무부와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의 여러 유관부처에 지시하여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동포정책을 조속한 시일 내에 기술적으로 마련하여 줄 것을 지시하였다. 하여 2007년에 방문취업제도(H-2)가 도입되고 2008년에 재외동포비자(F-4)가 나와 동포들도 한국에서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미련하고 무식한 중국동포들은 노무현 정부시절에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하였다고 노무현대통령을 마구 욕 하고 비난하는데 참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세상물정을 모르면서 아무소리나 지껄여대면서 헛소리 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부실하고 무식하면 정말 약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1999, 한국국회에서 제정한 재외동포법에 중국동포와 러시아.CIS(고려인)만은 동포로 인정을 해 안주어 정당한 동포대우를 받지 못하다가 노무현대통령 재임기간인 2004년에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 나오면서 재외동포법이 개정되어 중국조선족과 고려인들도 한국에서 동포대우를 받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이 한국 땅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잘 살수 있는 것은 다 그분의 은덕인 것이다. 중국동포들은 그분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물 마실 때 우물 판 이 잊지 말자!

봉하마을은 별로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50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한국의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어 마을 주변으로 정비정돈이 아주 잘된 편이었다. 주차장에 주차한 관광버스에서 내린 후,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봉하빵이라고 적힌 상가가 있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경비를 서던 전경으로 보이는 청년이 이쪽으로 들어오면 안 되고, 큰길을 따라 둘러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마도 안쪽은 고 노무현대통령의 가족 분들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들어가 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총각이 알려 준대로 큰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서 갔다. 멀리 산 정상에 전망대가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렇게 큰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고 노무현대통령이 태어나 자란 고향집이 나타났다. 집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안내판부터 한번 읽어보았다. 대통령의 생전에 써놓은 자필메모가 굉장히 재미있었다. 노무현전대통령의 생가 자체는 별로 큰 볼거리가 아니었다. 그냥 다만, 이렇게 허술하고 누추한 작은 초가집에서 5명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을 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크게 들었다. 예전의 시골은 모두 그랬겠지만 ...

박영진 yongzhenpiao@naver.com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수기 수십 편 발표. 수상 다수. 동포문학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한반도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수상

194691(음력 86), 이 초가집에서 아버지 노판석 씨와 어머니 이순례 씨의 3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노무현전대통령은 2002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가난을 딛고 선 소년의 꿈, 대한민국 최초의 평민대통령의 탄생,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이 저절로 떠오른다.

생가를 복원할 때 봉하마을에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생각하여 노대통령께서는 무척 많은 심혈을 기울려 주셨다 한다. 복원될 생가의 설계과정에 대통령이 직접 수차례 걸친 자문과 협의, 꼼꼼한 메모를 통해 직접 의견을 제시했다. 대통령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생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를희망했다. 전통적인 초가집형태로 복원된 생가는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099월에 복원사업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되었다.

생가 바로 뒤쪽에 마을길 하나를 두고 노무현전대통령 사저가 있다. 대통령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생각해 집의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건축한 대통령님의 세심함과 진심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노무현대통령의 집은 노무현대통령이 2008225일 퇴임 후 2009년 서거 전까지 생활했던 공간이다. , 나무 등 자연재료를 사용하여 설계했으며 주변 산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지붕을 낮고 평평하게 지어 지붕 낮은 집으로 불린다. 귀향을 통해 참여정부 국정철학인 국가균형발전을 몸소 실천한 노무현대통령은 이 집에서 마을의 생태계와 공동체를 복원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일에 힘을 쏟으며 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모색했다.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집이라는 노무현대통령의 뜻에 따라 20185월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생가와 사저의 바로 옆에 기념품 가게 사람 사는 세상이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방문객들이 편히 쉬어 갈수 있는 공간을 원했던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지어진 곳이다. 당초에는 방문객들이 앉아서 커피나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작은 찻집으로 설계되었다. 서거 이후 대통령을 오래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품 매장으로 바뀌었다. 묘역과 생가 관리를 맡고 있는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봉하재단)에서 운영하며 판매수익금은 묘역과 생가 관리, 그리고 노무현 기념사업에 쓰이고 있다.

생가와 사저의 중간에 만남의 광장이 있었다. 만남의 광장은 봉하마을을 방문한 시민들이 대통령님 나와주세요!’를 외치면 밀짚모자를 쓴 대통령이 나와 시민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기념공간으로, 현재 야외영상관으로 조성하여 대통령이 손 흔들던 그날의 기억들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과 시민들의 만남은 200831일부터 마지막 인사가 있던 125일까지 총 153, 횟수로는 369회에 이른다. ‘대통령님, 나와주세요!’라고 하면 밀짚모자를 쓰고 나와서 한 시간이상 이야기를 하고 노래도 불러 주었다는 대통령님의 그 소탈한 모습이 그리웠고, 그 장면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평범하고도 소박한 이런 대통령님을, 또 그가 살았던 지붕 낮은 이 작은 사저를 진시황과 아방궁에 빗대고 막말과 망언을 거리낌 없이 했던 자유망언당과 자유막말당 인사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개처럼 살았던 개무리당과 개나라당이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책임지지 않는 언론의 왜곡된 보도, 검찰의 먼지털이식 표적수사와 선택적 정의, 선택적 수사, 선택적 분노 그리고 수수방관했던 진보세력의 양심과 정치에 무감각한 국민들의 차가운 무관심이 한국역사에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비극적 오점을 남기게 되였다. 국가원수를 모독하여 죽음에로 내몬 이런 국제적 망신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만남의 광장에서 고 노무현대통령의 묘역으로 가는 길에 야외전시대가 있다. 생태문화공원 잔디광장에 설치된 야외전시대는 노무현대통령의 연보와 삶의 자취를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통령의 삶을 따라 걷다보면, ‘운명처럼 다가온 시대와 그 시대가 부여한 과제를 회피하지 않고 살아간 인간 노무현의 발자취, 그리고 그의 가치와 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야외전시대로부터 봉화산으로 오르는 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함께 걷는 대통령의 길- 봉화산 숲길이다. ‘봉화산 숲길은 노대통령이 손님이 오는 날이면 늘 함께 거닐었던 길이다. 부처님이 누워있는 마애불을 지나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통령이 세상을 마감한 부엉이바위가 있고 좀 더 올라가면 사자바위와 봉수대, 그리고 호미든 관음상이 있다. 산 능선 위에는 대통령 서거 후 49재를 지냈던 정토원이라는 작은 절(암자)이 있다.

함께 걷는 대통령의 길, 작은 봉하마을이지만 가까이에서는 논길, 숲길, 습지길을 다 만날 수 있다. 노무현대통령은 귀향이후 친환경 생태농업 현장을 따라 봉하들판의 논둑길, 봉화산 생태숲길, 화포천 습지길 등 마을과 마음으로 이어진 길 곳곳에 아름답고 살기 좋은 농촌마을의 꿈과 희망을 담기 시작했다. 자주 숲길을 산책하면서 어릴 적 기억들을 되살려 길을 복원하고 청소를 했다. 소박하고 평범하여 여느 길 걷듯 걸어지는 길이지만, 걸음마다 찍히는 발자국에는, 어린 노무현의 추억에 상기된 대통령의 기억이 있고, 아름다운 농촌에 대한 대통령의 꿈이 있고,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대통령의 고민이 있으며, 인간 노무현의 고뇌가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의 꿈 봉하마을에서 꽃핀다. 아름다운 농촌마을에 대한 대통령의 꿈은 김해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의 조성과 화포천 살리기로도 이루어진다. ‘흙길 따라 풀, , 나무를 함께 보면서 새소리 벌레소리 들으면서 길을 걷는 삶, 그것이 국민들의 복지다.’라고 했던 노무현대통령의 뜻을 살려 사람 사는 들녘이라 이름 지어진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농촌마을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봉하산 기슭에서부터 봉하 들판까지 이어진다. 3만여 평에 이르는 공원은 작지만 높은 산 봉화산’, 국내 최대 하천형 습지인 화포천, 경작지 채원, 학습장 벼리채, 봉하 들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태적으로 이어진 <-->은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공원의 자연환경을 학교 삼아 많은 가족과 아이들에게 생태교육을 진행 중이다.

국가보존 묘역1- 고 노무현대통령 묘역, ‘화장한 유골은 안장하되 봉분을 만들지 않겠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지하에는 안장시설을 하고 아주 작은 비석만 남기라는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검소하게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낮은 너럭바위를 봉분처럼 올렸다. 묘역의 박석은 국민참여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너럭바위에는 대통령 노무현여섯 글자만 새기고, 박석 하나하나에 담긴 국민들의 존경과 추모, 애도와 사랑의 글 전체가 비문을 대신하게 만든 묘역이다. 추모하는 글이 새겨진 박석과 자연박석이 어우러져 사람 사는 세상을 형상화 했다.

묘역 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수반)을 지나니 헌화대(참배공간)가 나타났다. 수반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 묘역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곳이고 헌화대는 너럭바위를 앞에 두고 헌화와 참배를 하는 곳이다. 우리 탐방가족 일행들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고 노무현대통령 묘소에 참배를 하고 나서 해설사의 해설을 귀담아 들었다. 너럭바위 아래 석함에는 참여정부 5년 다큐멘터리 5부작 DVD, 대통령 일대기 및 국민들의 추모 모습을 기록한 추모영상 DVD를 함께 안장했다.

국민참여 박석 묘역에는 추모글이 새겨진 15천여 개의 박석이 있다. 박석 기부에 참여한 18천여 국민의 마음이 담긴 국민참여 박석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추모비로 비문을 대신하고 있다. 자신의 박석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도록 사람 사는 세상홈페이지에서 박석 찾기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으며, 묘역 입구에 있는 묘역안내소에서도 안내받을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고 노무현대통령이 그토록 꿈꾸던 꿈이었고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이 내건 슬로건이기도 하다. 노무현재단은 후원회원만 6만 명이 넘는 한국에서 최대의 단일한 정치조직이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가치와 철학, 업적을 선양하고 유지, 계승, 발전시켜 그 뜻이 나라와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앞으로 노무현재단은 서울 종로구에 들어설 노무현시민센터와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기념관 건립, 추모기념사업, 사료편찬사업, 노무현시민학교 운영 등 착실한 사업추진으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아주시는 뜻과 정성에 보답한다고 한다. 한국의 기득권을 차지한 철면피, 후안무치한 친일잔당(자한당의 전신)들의 거센 저항에 맞서 국비가 아닌 전액이 국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건설된 국립천안독립기념관처럼, 정의로운 사회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온몸을 불태웠던 노무현을 잊지 않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과 살아 숨 쉬는 행동하는 한국의 양심을 또다시 한번 뼈저리게 피부로 느끼게 된다.

고마운 고국에 와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오늘, 한심한 한국인들한테서 개돼지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했을 때 따뜻한 손길을 보내주신 고마운 노무현대통령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100년 후까지 이어질 노무현의 꿈과 정신, 한국의 민주주의 미래를 더 키워가는 데 나의 작은 참여가 자그마한 보탬이 된다고 생각되면서 나도 노무현재단의 후원회원이 되려고 마음먹었다.

어느덧 봉하마을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민으로 권력을 잡았다가 다시 서민으로 돌아간 대통령, 역대로 가장 청렴한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대통령, 여느 대통령들과는 달리 대통령의 재량권으로 사용할 수 있는 6조원(탕어금)을 국고에 반환한 바보대통령, 퇴임 후 생활할 사저건축을 위해 친구한테 빌린 10억 때문에 사냥개와 같은, 하이히라 같은 사이코패스 인간들에 의해 지들의 기득권을 건드렸다고 무서운 피비린 보복에 걸려 억울하게 세상을 하직한 불쌍한 대통령, 존경하고 사랑하는 고 노무현대통령이 이곳에서 고이 잠드시기를,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기도하면서 우리는 이순신 리더쉽 국제센터가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창원, 진해항으로 떠났다.

2019. 11. 11. 김제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