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자 문학평론가

엄정자(厳貞子), 1982년 1월,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부 졸업, 선후로 교사 기자로 근무,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대표 겸 회장, 연변작가협회회원, 일본조선학회회원, 일본조선족연구학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수필 「화산 우에서 사는 사람들」 제9회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필 「감나무에 담긴 정」 제1회 同胞文學 安民賞 수필부문 우수상,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를 출간.

요즘 「세계의 철학자에게 인생 상담」이란 교육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오늘은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1926~ 1984년)의 『광기의 역사』라는 책에 관한 토론을 하였다.

푸코에 의하면 ‘광기’(狂氣)가 고대나 중세기까지는 신에게 좀 더 다가가 근원적인 것을 계시하는 신령(神靈)한 증상으로 여겨졌는데 이런 인식이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어졌고 그래서 광인은 별다른 제약 없이 일반인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7세기에 이성의 시대가 도래하고 노동윤리가 변하면서 사회적으로 광인은 배제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광인만이 아니라 극빈자, 거지, 부랑자, 방탕아, 매독 환자, 무신앙자, 동성애자 등이 부정적인 낙인을 받아서 감금당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르네상스 시대까지는 광인이 ‘정상인’에 속했으나 그 후에는 ‘비정상인’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푸코는 이같이 사람을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정상인’과 ‘비이성적이고 반사회적인 비정상인’으로 구분하는 인식론적 장(場)을 에피스테메(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이나 학문적 지식) 이라 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에피스테메의 범위도 달라지고 배척당하는 사람의 분류도 달라진다고 하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확실히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정상인’에 속하는 무리의 범위도 달라지었다. 그때마다 그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렇게 ‘변두리 인간’이 된 사람의 삶은 필연적으로 힘들어졌다.

조선 시대만 보아도 양반과 상민으로 나뉘어 있어서 양반은 고귀하고 상민은 비천하다는 에피스테메가 사회를 지배했다. 그래서 상민은 아무리 똑똑해도 공부를 할 수 없고 벼슬도 할 수 없었다. 지어 아버지가 양반인데도 어머니가 비천한 출신이라 해서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오죽하면 그가 도적이 되어서 사회를 뒤엎어보려고까지 했겠는가?

다행히 조선 시대의 양반제도가 사라지며 양반계급의식도 사라지었다. 물론 지금도 부자와 빈민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개천에 용이 나오는 시대가 되었으니 사회인식이 많이 변한 셈이다.

‘변두리 인간’의 범위는 그 시대 그 사회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다른데 이 범위를 정하는데 국가 간의 관계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사회적 에피스테메 범위 밖에 밀려난 ‘변두리 인간’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재러시아 고려인 2세였고 아버지는 적들의 토벌을 피하다가 우연히 국경을 넘어간 항일유격대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만나 결혼한 것이다. 그런데 장남이었던 아버지가 중국에 있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족을 이끌고 중국에 돌아오게 되면서 다시 중국 국민이 되었고 그 이듬해 내가 태어났으니 나는 백 프로 확실한 중국 국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사회적으로 우호 국가이던 소련이 적대국이라는 에피스테메가 형성되었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적국에서 온 ‘외국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고 나에게는 ‘소련 콧대’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날도 동네 아이들과 고무줄 넘기를 놀고 있었다. 나 때문에 줄이 끊어진 것도 아닌데 상대편 애들은 내 탓이라고 우겼다.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나를 욕해?”라며 내가 대들자 그 애는 “소련 콧대 주제에, 소련 콧대 소련 콧대!”라고 나를 놀렸다. “나 소련 콧대 아니야!” 하면서 내가 외쳐도 애들의 놀림은 그치지 않았다. 울음이 터진 나는 “엄마!”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소슬한 가을바람이 높지도 않은 내 콧등을 차갑게 지나가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정치 운동에 의한 에피스테메 역시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은 인간은 테두리 밖으로 밀어냈고 그렇게 만들어진 변두리 인간들의 운명은 더없이 불행했다.

내가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 사회적으로 지식이 많을수록 사상이 반동이라는 에피스테메가 형성되면서 판소리연구를 하던 아버지가‘잡귀신’으로 분류되었고 그 때문에 나는 ‘홍소병’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중학교 교등학교 시절에는 외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특무’(스파이)일 가능성이 있다는 에피스테메 때문에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공청단에 가입할 수 없었다. 형제가 외국에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사회관계’에서 걸리었다.

다행히 세상이 변해서 입시제도가 회복되면서 사회적 에피스테메도 변하였고 나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옛날에는 ‘변두리 인간’이던 나도 드디어 ‘일반인’의 범주에 들어갔다.

이같이 시대의 변화는 사회적 에피스테메의 변화를 일으키고 한 사람의 개인적인 운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에피스테메는 같은 시대라 해도 지역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일본의 개성파 배우인 무로이 시게루(室井滋)는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의 쇼와(昭和)시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이혼은 비정상적인 일이었고 그래서 이혼한 부모를 둔 시게루는 “이다음 의과대학에는 못 가겠네.”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서 도쿄에 오니 시골공동체에서는 ‘변두리 인간’이었던 그녀가 ‘일반 사람’이더라는 것이었다. 이미 도시문화의식이 형성되고 개방된 도쿄에서는 자기 같이 부모가 이혼한 사람쯤은 눈에 뜨이지도 않았다고 하였다. 자신감을 가지게 된 그녀는 어린 시절 사회적인 소외를 당하면서 형성된 성격을 개성으로 살려서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 그 주요한 원인이 에피스테메의 확장이다. 이렇게 확장된 에피스테메가 사회적으로 차별과 불링(bullying-괴롭힘)을 당하는 변두리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에는 우한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 병원체(病原體)로 인식되면서 우한 사람을 기피(忌避)하던 데로부터 전국적으로 감염자가 나타나자 중국 사람 전반이 병원체(病原體)로 인식되어 기피(忌避) 대상이 되었다.

물론 의학적인 면에서 필요한 격리를 해야 하겠지만 이것이 전 세계를 공포와 공황 상태에 빠지게 한다는 것은 주시할 문제이다. 과도한 공포는 사람들의 광기를 불러일으킨다.

일본은 우한에 있는 일본국민을 전세기로 실어오고 호텔에 격리하였는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괴롭힘이 일어났다. 우한에서 온 사람들을 병원체(病原體)라고 인식하는 에피스테메가 그 호텔 직원의 아이들에게까지 확장돼서 학교에서 아이가 이지메(괴롭힘)을 당했다는 뉴스가 오늘 텔레비전에서 방송되었다. 부모가 그 호텔 직원일 뿐 감염된 것도 아닌데 “바이러스 덩어리”라 괴롭힘을 당한 아이는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베트남의 한 호텔에서는 입구에 중국 손님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종이까지 붙였다고 한다. 어딘가 20세기 초의 상하이 조계지에서 “중국 사람과 개는 사절한다.”라는 팻말을 걸고 중국 사람을 차별했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처사이다.

더욱이 유럽에서는 병원체(病原體)에 대한 인식이 전반 아시아인으로 확장돼서 인종차별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북부 삐카르 데이 지방의 일간지 『클리에·피카르』는 1월 26일 일면의 머리기사로 마스크를 쓴 아시아 여성의 사진과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황색경보」라는 헤드 라인을 실었다. 사설에서도 “황화(黃禍)?”라는 제목을 달았다.

다음 날 인종차별 확산에 위기감을 가진 여성이 익명으로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이 글에 따르면 '중국인'이라는 말은 중국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사람들도 한데 묶고 있다며 바이러스를 인종과 연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였다.

파리 근교 센 생드니 현의 학교에서도 많은 아시아계 어린이가 주위로부터 무시당하거나 심한 말을 듣는 등 괴롭힘을 당하였고 어른들도 상대가 악수를 해주지 않거나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외면당하고 기피당하는 병원체(病原體)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지어 버스에 탑승한 중국계 고등학생에게 “저 중국인이 바이러스를 옮긴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라고 정색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국립음악원에서도 동양인 학생들에게는 수업을 중지하고 병원체(病原體) 취급을 하였다고 한다. 숭고한 예술을 가르치는 전당에서마저 이 지경이니 전 세계가 공황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에피스테메가 있다. 하지만 그 에피스테메가 무대한 확장되어 사회적 공포를 조성할 때 사회적인 ‘광기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 광기가 만연할 때 사회는 공황에 빠지고 많은 사람이 불행에 빠지게 된다. 그로 인해 불필요한 희생들이 생기게 된다.

때문에 에피스테메의 과도한 확장을 막는 일은 전 사회적인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언론과 매체가 그 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이고 우리 매 개인도 유언비어에 미혹되지도 말고 유언비어를 확산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침착하게 해나가는 것으로 사태의 악화를 막아야 할 것이다.

요즘 일본연변대학학우회에서는 마스크를 모아서 모교에 기부하는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 마스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비상시기일수록 힘을 모으고 서로 돕고 사랑을 나누며 그렇게 난관을 극복해가는 것이 바람직 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책 제도같이 큰일은 나라에 맡겨도 되겠지만 우리 자신들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할 것이다. 사람마다 나갈 때는 마스크를 쓰고 돌아와서는 손을 깨끗이 씻고 양치질을 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나 자신이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한다면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를 막는 것이 될 것이고 그러면 에페스테메의 확장도 공제되지 않겠는가.

에피스테메의 확장으로 인한 광기를 막는 데는 우리 매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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