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춘 수필가

배영춘 약력: 중국 서란시 출생.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 부국장. 동북아신문 편집위원. 수필/수기 등 수 십편 발표, 동포문학 수필부문 최우수상 등 수상 다수.

대로변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을 깬 나는 창문 밖을 내다봤다. 희붐히 밝아 오는 새벽이지만 많은 사람이 둘러서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통화하는 사람들 사이에 노인 한 분이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예감에 나는 대충 옷을 걸치고 나가 사람들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할머니 한 분이 잠을 자듯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얼굴의 주름만이 지나온 세월을 말해 주듯 깊이 팼고, 흐트러진 흰 머리카락은 차가운 새벽바람에 처량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이미 굳어진 할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언제 숨을 거두었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 옆에는 파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허름한 손수레에 실려져 있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천근만근 납덩이를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사는 동안 가슴 아픈 이별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크고 작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던 탓에 내 곁에서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절절히 느꼈다. 누군가 가난은 불편할 뿐, 죄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예민하게 자라고 있는 자식에게 부모가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큰 부끄러움으로 여겼고 부모를 멀리하는 경우도 보아왔다. 또한 부모의 눈에서 폭우 같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뒤로하고 집 떠나서 처절하게 망가져 버릴 만큼 ‘악바리’로 돈을 벌려고 하는 친구도 보아왔다.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왕이불가 추자년야 거이불견자친야,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父待), (往而不可追者年也 去而不見者親也)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연로하여 기다려 주지 않네. 한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가시면 다시 뵐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이시네.’

이 구절은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하라는 옛 선인의 가르침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겪은 아픔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살아오면서 가끔 부모님을 잊기도 했다. 이 또한, 세월이 지나면서 슬픔만이 아닌 그리움이 되기도 했다. 30여 년 전, 가난한 생활에 나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그만두었다.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이 좀 나아질 줄 알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점점 더 궁핍해지고 답답한 현실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을 보고, 나도 땅을 팔고, 집을 담보로 고금리로 돈을 빌렸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형제들은 차례로 한국에 왔고 어머니는 홀로 중국에 남게 되었다. 쾌활한 성격의 어머니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말수가 적어졌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 갔다. 내가 국제 전화 때마다, 어머니는 같이 살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매년 설날, 다른 가족은 오붓하게 즐거운 명절을 보내지만, 어머니는 혼자서 좋아하시는 소고깃국 한 그릇으로 단출하게 지냈고, 우리가 보내온 돈으로는 조금씩 조금씩 빚을 갚아 나갔다. 한두 잔씩 홀짝홀짝 마시는 술이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였다. 슬퍼도 술, 기뻐도 술, 가슴에 맺혀오는 응어리들을 술로 풀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술 마시는 일이 일상으로 바뀌어 갔다. 자식들에게 해준 게 없어서 느끼게 되는 심한 죄책감과 일찍 떠나보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고독과 함께 엄습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감정과 고통은 더더욱 술을 마시게 해 악순환을 거듭하게 했다.

부모 탓으로 돌리고 어느 순간부터 냉정한 태도로 엄마를 대하고 있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향을 등지고 떠난 나는 오직 타향 생활에 후회와 중도포기를 생각하다가도 오직 잘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4년 전 여름, 기회가 되어 어머니가 한국에 오셨다. 야속한 세월에 인제는 힘없고 허약한 할머니 모습으로 변했고 알콜 중독으로 치매 증상까지 나타났다.

다행히도 6개월간 요양병원에서의 입원 치료로 많이 호전되어 퇴원했다. 어머니는 여동생네 집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근처에 있는 광교 호수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나는 쉬는 날이면 어머니를 찾아뵈었고 마음의 여유까지 생기면서 엄마의 짜증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재밌게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온 가족이 함께 여행 다니고, 어머니가 음식을 즐겁게 드시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만에 가족의 행복을 느꼈다. 가끔 엄마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라는 생각을 하며는 마음이 아팠다... 그날도 어머니는 광교호수공원서 석양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기 시작하자 집으로 돌아오려고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건너는 순간, 갑작스러운 차 사고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해 여름, 나는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껴안고 서서 저 세상 가신 부모님이 있는 곳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여기 누워 계시는 할머니도 얼마나 추웠을까 싶다. 왜 이렇게 급히 가야만 했을까? 무엇이 바빠 어머니처럼 급히 가셨을까? 자식의 효도 한번 받아 보지 못하고 갖은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인제 와서 무관심과 옆을 지켜주지 못하고, 말동무가 되어 주지 못한 죄책감에 나는 목 놓아 어머니를 불러본다. 어머니가 계신 곳, 더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햇볕이 따가워 났다. 할머니의 시신은 운구차로 어디론가 향했다.

우리는 가파른 인생길 걷다 보니 어느새 지천명이 훌쩍 지났다. 많은 지출, 적은 돈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긴다는 건 너무 어렵다. 급변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가정의 중임을 책임지는 나를 포함한 가장들은 명예퇴직이란 압박감 때문에 끊임없는 노력과 치열한 경쟁으로 심신이 날로 지쳐간다. 가정주부 역시 가사와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느라 노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늦게나마 자신의 시간을 갖고 최대한의 지출을 줄이며 급급히 노후 대비를 하곤 한다. 간혹 늙어서 자식에게 의지하겠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젊은 세대도 사회의 유행을 따라가기 바쁘게 살다 보니 항상 부모님께 소홀할 때가 많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일반 서민들, 특히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일부 노인들이 무척 힘들다. 찾기 힘든 일자리와 일자리를 찾았더라도 적은 월급으로 생활만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니, 아무리 일에 대한 의욕이 넘쳐도 결과적으로 허무할 때가 많다.

혼 가족이 증가함에 따라 외로움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독거노인도 많다. 이분들이야 말로 힘든 환경 속에 살고 있으니 언제나 생명의 위험이 뒤 따른다. 그러다보니 고독사 하셨다는 우울한 소식도 가끔 들려온다.

고령자를 위해 모든 세대가 통합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노인의 자원봉사, 취업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인들이 자식들의 무관심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려는 의욕을 상실하고 있다.

어머니는 한없이 무거운 짐을 어깨에 걸치고 힘든 삶을 살아 오셨다. 때문에 나도 자식에게 더 힘든 삶을 대물림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싶다. 지금이라도 게을리하지 않게 운동하고, 가족들과 논의하며, 준비가 조금 미흡한 부분을 보완, 대처하고 노력하는 중이다.
 
  2019년 4월 06일 한국에서

 

제2편

부부의 미적 거리(美的距離)
                                                                      
 배영춘

 “할만 해?”남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본다.
 “이쯤이야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몸도 안 좋은데 쉬시지 왜 나와서 맘 아프게 해요”진심 어리게 들려오는 말 한마디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억양을 들어봐서 중국에서 온 부부인 것 같다.

남자는 팔소매로 땀을 스윽 닦고는 미안한 듯 사탕을 꺼내준다. 아내가 같이 일해 준다는 게 고맙고 미안했던 모양이다.
 “여보, 무거운 것은 조금씩 자주 나르고 쉬엄쉬엄 해...”힘없는 남자의 목소리는 숨이 차있었다.
 ''제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제 곁엔 당신이 있잖아요”여인은 살짝 웃어 보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출근길, 나는 자전거를 타고 길옆 공사현장을 지나다닌다. 오늘은 신호등에 걸려 잠깐 머물면서 엿들은 대화다. 애정이 넘치고 다정한 모습에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일에서도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서로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것 같아 천생연분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아내에게 어떻게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약간의 트러블에도 짜증과 화를 내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고,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개가 되고 소가 되는 행동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말없이 참으며 아침에 눈을 뜨면 웃는 얼굴로 안부를 묻는다. 사랑한다는 말로 추켜 세워주고, 자기 목숨과 같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기뻐해 준다. 이러한 아내를 나는 당연하다고만 생각해왔다. 아내 앞에서 점점 기고만장했고 멋대로 행동할 때가 많았다.

우리는 가끔 속상한 마음에 상대방의 단점과 과거 일까지 콕콕 집어 이야기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지며 흥분하게 된다. 분노한 상황에서 타인의 말은 들려오지 않고 주위의 상황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상대와의 갈등도 더 깊어진다.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서로 간의 양보가 없으니, 찢어지는 아픔이 상처로 되어 각자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어느 한 문인이 말하기를 시간의 차이를 공간적 차이라고 하고, 마음의 거리를 심리적 거리라는 의미에서 미적(美的)거리라고 말 한 적이 있다. 나도 그 문인의 생각에 공감한다. 나는 심리적 거리인 미적 거리를 얼마만큼 잘 유지하며 살고 있었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한 편의 시나 수필을 볼 때도 미적 거리가 밀접한 상태에서 훌륭하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킨 글을 보았다. 한편 미적 거리가 밀접하더라도 수습이 잘 안 되고 흐트러진 글을 읽을 때도 있다. 물론 나의 글도 아직 흐트러지고 두서없을 때가 많다. 이것을 얼마나 잘 마무리하는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에서도 순간의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아름다운 미적 거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을 울린 위 지안 (于 娟) 은 서른이 되기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작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중에는 이런 글이 있다.

아내는 매일 야근에 시달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면 남편이 자신의 침대 속에 먼저 누워 있었다. 아내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남편에게 비키라고 화를 내면 매번 배시시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병실에 돌아와 누워있는데 왠지 침대가 따뜻하고 아늑해서 "또 내 병상에 누워있었지?" 하고 묻는데 남편은 웃기 만하기에 한마디 하려는 순간, 간호사가 끼어들어 이런 말을 했다.

 "조금 전 남편분이 침대에 눕는 걸 보고 제가 저지를 했는데, 남편분께서  아내가 유난히 추위를 잘 타서 병상을 체온으로 미리 따뜻하게 해놔야 한다더군요”

순간 아내는 최근까지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그렇게 구박을 받아 가면서도 남편이 왜 자신의 자리에 누워있었는지 그 마음을 인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짜증만 냈던, 기념일이나 생일에 그럴듯한 선물을 받아야 자신을 생각해 주는 것이라고 믿어 왔었기에 미안함은 더 컸다고 한다...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살 수 없는 복잡한 현실에서 우리는 각종 스트레스를 안고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소통하는 방법, 조그마한 실수도 받아 줄 수 있는 아량도 필요하다. 상호 간에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자기 생각과 고민을 이야기하다 보면 아름다운 미적 관계 유지에도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내 마음속 일부 중에, 당신만을 채울 수 있는 큰 공간이라는 걸 말해주고, 배려하는 행동과 차분한 대화를 하다 보면 봄 눈 녹듯이 마음이 풀릴 것이다. 행복한 삶,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여자에 대해서, 더 나아가 아내에 대해서 많이 알고 이해와 배려를 해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행복한 미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넓은 마음으로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부부의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져 사랑이 메말라 가는 사람도 있다. 또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름다운 미적 거리로 행복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 자체가 시험인지 모른다. 이해와 배려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나도 여생을 아내에게 추울 땐 따뜻하게, 더울 땐 시원하게 해주는 한없는 아량을 베풀고 싶다. 불평, 비난을 자제하면서 미적 거리를 유지하며 멋지게 살고 싶다.


2017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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