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짧은 소설

박명호 약력: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작품집/소설집: [또야 안뇽] [돈돈]. 잡감집 [촌놈과 상놈](2003), 장편소설 [가롯의 창세기], 소설집 [우리집에 왜 왔니](2008)수상: 제5회 부산작가상.
박명호 약력: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작품집/소설집: [또야 안뇽] [돈돈]. 잡감집 [촌놈과 상놈](2003), 장편소설 [가롯의 창세기], 소설집 [우리집에 왜 왔니](2008)수상: 제5회 부산작가상.

 

종자개량법과 금연법

 

황소가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멀리 지나가는 암소를 보며 질러대던 황소의 울음소리도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황소라는 이름도 사라졌다. 다만 종자번식을 위한 몇 마리 수소가 존재할 따름이다. 한우 종자 개량법에 의하여 우수한 수소들을 별도 관리하여 거기서 정액을 채취 공급한다. 나머지 수소들은 암소를 보고 소리 질러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원래 황소는 한번 교미한 암소를 곁도 보지 않을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금연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담배를 피우거나 유사 행위를 했을 때 최고 징역 10년까지 처벌을 받는다. 입법 과정에서 한자 지식의 무지함으로 금연법(禁煙)은 담배뿐만 아니라 연애 금지(禁戀)로도 확대되었다. 엉뚱하게 이 법은 수컷, 곧 남성에게만 적용된다는 단서까지 달려 있었지만 그에 항의하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여인의 창가에서 애절하게 불러대던 사랑의 세레나데도 여인을 향한 윙크나 그 어떤 제스처도 자칫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수컷 거미가 목숨을 걸고 암놈에게 접근하는 것처럼 남자가 여자에게 접근하려면 거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불쌍하다. 집마다 남자들의 고함소리가 사라졌다. 서서 볼일 보는 남성 공용 화장실도 없어졌다. 남자들의 몸도 점점 왜소해져 간다. 곧 종자 개량법에 의해 번식을 위한 몇 놈의 우수한 사내만 있으면 된다. 그 법의 부칙에는 60이 넘은 남자들은 남해 무인도 집단시설에 보내거나 개처럼 목줄을 매도록 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돌고 있었다.

남자도 곧 황소처럼 사라질 것이다.

 

감동 커피

 

비슷한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면, 어느 것이 꿈이고 현실인지 혼동할 수 있다. 시인 장자에게 진한 감동을 줬던 자판기 커피에 얽힌 두 사건은 십 년이 지난 지금 와서 둘 다 비몽사몽이 되어버렸다.

기차출발 시각이 조금 남은 장자는 역전 광장으로 나왔다. 커피를 뽑아 담배를 피울 요량이었다. 마침 광장 한쪽에 자판기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동전을 밀어 넣고 버튼을 눌렀다. 가만히 보니 자판기가 아니라 젊은 사내였다. 청년의 귀에 동전을 넣고 남방의 단추를 누른 것이었다. 장자가 미안하다고 쓴웃음을 짓자 청년은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청년의 열린 남방 사이로 종이컵이 보였다. 청년은 잘못하다 들킨 듯이 쑥스러워하면서 커피를 내밀었다. 장자는 커피를 받아들고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청년은 이내 사라졌지만 커피향기는 꽤 오래 남아 있었다.

장자는 우울증이 심각한 후배 시인에게 위로주를 샀다. 자아(自我)의 신화(神話)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도와주는 수많은 표지가 있다고 술잔마다 위로를 실었다.

둘은 헤어지기 위해 전철역 의자에 연인처럼 앉았다. 힘없이 쳐진 후배의 어깨가 안쓰러워 장자는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그때 그들 앞에 불쑥 커피 한 잔이 내밀어졌다. 낯선 중년이었다.

참 보기 좋습니다.’

사내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쑥스러운 듯 가버렸다. 자판기에 커피를 뽑다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에 감동되어 무의식중에 커피를 그냥 내민 것 같았다. 자아의 신화가 실현된 것이다.

세상은 정말 살아야 할 가치가 있네요.

오히려 장자와 후배 시인이 한동안 꿈인 듯 감동에 젖어 있었다.

 

노인은 달을 보고 있지 않았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아파트 쉼터로 갔다.

반달이 참 정겹게도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달 쪽으로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다가 인기척에 뒤돌아보았다.

한 노인이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저 노인도 달을 보고 있구나! 제법 낭만적이네

나는 그 노인을 알고 있다. 어쩌다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그를 보는 정도였는데 얼마 전 뜻밖에 꿈에서 그 노인을 만났었다. 나는 노인을 따라 오래 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침침한 긴 복도와 높은 천정, 그리고 적막한 방에는 소파가 하나 외롭게 놓여 있었고, 그 소파에 헌 옷가지 걸쳐 놓은 것 같은, 아니 영혼이 다 빠져나가버린 뱀허물 같은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가 내가 따라온 그 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노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낡고 오래된 백 년의 고독 같은 적막한 분위기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건들면 풀썩 먼지로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창으로는 햇살이 반쯤 넘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노인의 얼굴은 뚜렷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친근감이 갔다. 혹시 내가 아닐까하다가 깨어났다.

그 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달은 아파트 옥상 쪽으로 기울었다. 배가 고픈지 짝을 찾는지 들고양이 울음이 요란했다. 나는 일어났다. 돌아오면서 노인 쪽을 봤다. , 노인은 달을 보고 있지 않았다. 노인은 달을 등지고 어둠 속에 그냥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그때 꿈속의 모습처럼 그렇게 어둠 속에 있었다.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누웠으나 여전히 잠을 이울 수가 없었다. 백 년의 고독 같은 노인의 잔상도 잔상이지만 때맞춰 울어대는 들고양이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콰이江의 다리

 

냉탕수영은 겨울목욕의 백미다.

K는 온탕에서 반신욕으로 땀을 흘린 뒤 냉탕으로 가서 한바탕 헤엄질 하고 탕 턱에 머리를 베고는 배영으로 누워 마무리한다. 그러노라면 늘 어떤 노래를 흥얼거린다. 기분이 최고조에 다다른다. 노래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나오는 대로 흥얼거린다. 그것이 오래된 그의 목욕 습관이다.

‘콰이江(강)의 다리’. 경쾌한 행진곡이지만 일본군에 포로가 된 영국군의 이야기를 다룬 아주 오래된 영화주제곡이다. 왜 그 노래가 떠올랐는지 그도 알 수 없다. 조심성 많은 K가 주변을 살펴보더니 사람이 없자 휘파람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휘파람은 물기 많은 목욕탕의 벽에 공명하여 행진곡답게 아주 경쾌해졌다. 저절로 신이 났다. 신이 나자 여음과 물장구까지 섞어가며 혼자 기분을 다 내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K는 얼른 노래를 중단한다. 때밀이 칸막이 뒤에서 익숙하게 보던 사내가 나왔다. 약간은 겸연쩍은 눈인사를 건넸다. 아, 그때 K에게 스쳐 가는 인물이 있었다. 목욕탕에서 그를 볼 때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해서 늘 고개를 갸웃갸웃하곤 했는데 그제 딱 마주친 것이었다.

콰이강의 다리! 그 영화 속 일본군 수용소 소장이었다.

짧은 머리, 건장한 체구, 그리고 미남형이지만 약간 답답한 듯한 강인한 인상….

바로 그가 엉성한 수용소 감옥에서 기어 나오는 영국군 포로처럼 ‘뭔 일이야?’ 하는 표정으로 영화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곤 조금도 어색함 없이 방금 K가 있던 냉탕 속으로 뛰어들었다.

콰이강의 다리 주제곡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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